2008년에 쓴 글입니다. 

‘가난’이라는 고마운 축복을 내버린 우리들
― 김영교 신부 쓴, 《가난한 마음》


- 책이름 : 가난한 마음
- 글쓴이 : 김영교
- 펴낸곳 : 성바오로출판사 (1979.11.15.)


 (1) 겨울나기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합니다. 그러나 우리 식구가 지내는 방 온도는 그예 1도. 마루이자 부엌은 영 밑으로 육 도. 엊저녁에는 영 밑으로 팔 도였으니 조금 올라갔습니다. 옆지기는 두꺼운 겉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저는 시린 손을 서로 부여잡고 비비거나 엉덩이 밑에 깔거나 바지주머니에 넣으면서 녹여야 비로소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 넘치는 물질문명 속에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하는 유럽인들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사랑의 계명을 안고 있는 가톨릭인들이기도 하다 … 교회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지만, 그 빛은 여전히 됫박 밑에 숨겨져 있다 …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교회는 시달려 보지도 않은 채 적응하는 현명을 배워 불의와 평온하게 공존하고 있다. 몇몇 항거의 의지는 그냥 우스운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가운데 정의에의 외침마저 멀어져 가고 있는 게 아닐까 ..  (117∼118쪽)


 어릴 적, 국민학교 이학년이나 삼학년쯤으로 떠오릅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연탄으로 불을 때는 5층짜리 나즈막한 아파트였습니다. 한겨울인 12월 겨울방학이었습니다. 연탄값도 만만치 않아서 형과 내가 지내던 방에 불을 넣을 수 없었는지, 아버지가 우리를 불러서 안방에 모여 앉습니다. 바닥에는 늘 이불이 깔렸는데, 그 이불에 아버지 어머니 형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쪼르르 기어듭니다. 마루에 온도계가 있었는데 영 밑으로 십 도쯤 되었습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눈이 와 주면 밖에 나가서 동무들하고 눈싸움을 하며 놀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 자기의 양심을 찾기 위한 괴로움이라면 그건 참으로 가치있는, 그리고 꼭 겪어야만 하는 괴로움이다 ..  (21쪽)


 제가 사오학년쯤 될 무렵이었던가, 연탄 때는 나즈막한 아파트마을에 ‘기름 보일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집 몇 군데에서 기름 보일러를 놓는데, 그 집에 놀러갈 때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름값이면 연탄값과 견주어 엄청 비싼 값. 보일러 값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더구나 보일러를 놓자면 방바닥이며 마루장이며 온통 뜯어낸 다음 구리파이프를 새로 깔고 시멘트로 바닥마감까지 다시 해야 했으니 돈이 꽤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연탄 한 장 쓱 밀어넣어서 겨울나기를 하기에는 몹시 추웠으니, 기름 보일러 집이 차츰 늘어납니다. 보일러 놓는다며 옷장이며 책꽂이며 갖은 짐바리를 아파트 앞 너른마당에 죄 내다 놓고 비닐을 덮어씌운 뒤 이웃집에 가서 며칠 묵는 집이 늘어납니다. 우리 이웃집들도 우리 집으로 많이들 ‘피난’을 와서 지냅니다.

 그러고 육학년쯤 될 무렵, 드디어 우리 집에도 기름 보일러를 들여놓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도 일찌감치 기름 보일러 놓고 따땃하게 지내는 이웃집으로 피난을 갑니다.


.. 어린아이들의 웃음은 조금도 꾸밈이 없다. 남을 조소할 줄도 모른다. 더구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말을 가려서 하는 것도 아니다. 어른이라면 하라고 하여도 안 할 소리지만, 유치원생이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느끼는 대로 이야기할 뿐이다. 자기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그 마음이 정말 귀여웠지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재미있게 웃는 모습들 역시 아름답기만 했다 ..  (25쪽)


 어제 아침에 동네 성당으로 교리공부를 하러 가는 길에, 또 엊그제 저녁에 동네 마실을 하며 골목길을 걸을 때에, 조그마한 기름집 짐차가 기름통을 잔뜩 싣고 다니더군요. 요즈음은 전화 한 통이면 집까지 기름을 날라다 줍니다. 아파트나 웬만한 도심지에는 다 도시가스가 들어와 적은 돈으로도 겨울나기를 할 텐데, 우리 식구가 사는 인천 중·동구 오래된 도심지에는 도시가스 들어오는 집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의 연탄을 때거나 기름을 땝니다.

 문득, 어릴 적 옛집에 보일러 돌리려고 형하고 나하고 늘 기름 심부름을 다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세 살 위 형은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았기에 저보다 덜 힘들었을 텐데, 눈이 소복히 덮이고 얼어붙은 길을 걸으며 기름집으로 찾아가, 두 통씩 이십 리터를 채우고 돌아올 때면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형도 이마며 얼굴이며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생각해 보면, 그나마 우리 집은 형과 제가 기름 심부름이라도 하지, 계집아이들만 있는 집에서는 그 집 아주머니가 작은 통을 들고 여러 번 날라야 하거나, 그 집 아저씨 혼자 날라야 했습니다.


.. 한번은 비스켓을 하나 주니까 조금 떼어서 나에게 도로 준다. 혼자 먹으라니까, “아녀, 수녀님이 뭐 먹을 거 있으면 남하구 나누어 먹으라고 했어” 하면서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  (49쪽)


 고등학생이 된 1992년 여름날이었던가, 우리 집은 연탄 때던 나즈막한 아파트를 떠나, 이제 막 인천에 새도시로 꾸민다며 북적이던 연수동으로 옮깁니다. 논밭과 산만 있던 연수동인데, 인천을 ‘서울로 일 나가는 사람들 잠집’으로 꾸미는 계획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아파트마을을 이곳에 세웠어요. 사는 사람 숫자가 1000도 안 되던 연수동은 하루아침에 3만이 되고 5만이 되었다가 30만을 훌쩍 뛰어넘으며 ‘동’에서 ‘구’로 탈바꿈합니다.

 제 어렴풋한 머리로 돌아보면, 1979년 즈음부터 살던 집에서 떠난다는 일이 믿기지 않는 한편으로 달갑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곳은 집도 허름하고 기름 심부름 하느라 고단하기도 하며 크기도 작다고 하지만, 어릴 적 동무들이며 이웃들이 모두 살아가는 동네인데.

 이즈음 인하대부속병원이 이 작은 아파트 큰길 건너에서 공사를 합니다. 그때는 요즘과 달리 ‘소음방지’나 뭐 그런 규제가 적었는지 몰라도, 터닦기를 한다며 쿵쿵 찧을 때마다 우리가 살던 조그마한 아파트가 웅웅 울리며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웃들은 꿋꿋이 버티는데 우리만 달랑 옮겨 가면 어쩌라고.


.. 아이들 차림이 너무 초라하여 모두가 걸인이냐고 물으니 그 수녀님은 갑자기 아주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왜 꼭 그렇게 표현해야만 하느냐는 거다. 마치 자기 어린애나 되듯이 그들 편이 되어 화를 내고 있었다. 크게 혼난 셈이다. 수녀님들의 집은 바로 그 우물 옆에 있었다. 집시들의 집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초라한 집이었다 … 전교는 언제 하느냐니까 자기들은 전교는 하지 않고 그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남자 손처럼 거칠어진 그들의 손은 그대로 그 생활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  (65∼66쪽)


 일곱 살 밑이었을 때 일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일곱 살부터만 생각이 납니다. 그때까지 집옮김이 참 많았다고 하지만 하나도 모릅니다. 저로서는 이때, 1992년, 오랜 살붙이 동네를 떠나는 일이 처음으로 겪은 집옮김입니다.

 아버지는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이웃집 주고 합니다. 형과 내가 열 몇 해 함께 써 온 2층침대도 이웃집 누구를 줘 버리고(새 집에는 방이 따로 있다고 하며), 책상도 걸상도 버리고, 흑백텔레비전도 버리고, 부엌 밥상과 걸상도 버리고, 또 뭐도 버리고 ……. 2층침대는 제가 가져가서 죽는 날까지 집에 두고 싶다며 매달리지만, 제 매달림이란 헛짓입니다. 우리 집 낡은 자전거도 버려지고, 새 집, 더욱이 막 지은 ‘깨끗’한 집에 들어가는 우리들은 헌 물건을 들고 가서는 안 될 듯이 여겼습니다.

 무엇이든 버려지고 무엇이든 새로 들여놓은 15층짜리 아파트는, 5층짜리 연탄불 아파트보다 거의 네 곱 넓습니다. 방이며 집이며 적은 돈으로도 훨씬 따뜻하고, 형하고 나는 방을 처음으로 따로 얻습니다. 그러나 동네에서 함께 어울릴 동무가 없습니다. 학교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들도 없고, 우리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듯한 동네 구멍가게와 빵집과 문방구와 책방과 푸주간과 수위실, 여기에 한 주에 두 차례씩 오던 책차(짐차에 책 싣고 다니며 빌려주던)하고도 모두 마지막입니다.

 집은 넓고 깨끗하며 따뜻합니다. 그렇지만 시설 좋은 시멘트 울타리에 갇혔다고 느끼니, 몸이 무겁고 마음은 가라앉습니다. 고등학교 한 해를 겨우 새 집에서 다니며 마무리지은 1994년, 인천 부모님 집에는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 둘레에서 지냅니다. 이듬해인 1995년부터는 부모님 집하고는 ‘이제 떠나요’ 하고는 박차고 나옵니다.


 (2) 가난


 아버지한테는 ‘없이’ 사는 일이 반갑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 보란 듯이 살고픈 마음이 깊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명절 때면, 돈 잘 버는 작은아버지가 ‘그해에 나온 가장 비싼 차’로 차갈이를 하며 찾아와서는 ‘차 없는’ 아버지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세배돈을 안 받아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해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끝끝내 세배돈을 안깁니다. 아버지는 평교사로 일하는 당신 주머니가 가벼울밖에 없는 데에도 동생(작은아버지) 앞에서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덥석덥석 작지 않은 돈을 내미는데, 작은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가 내놓는 세배돈 × 2, 또는 × 3을 내놓습니다.


.. 그렇지만 아나운서의 말을 많이 알아들으리라 생각했던 내 기대는 완전히 어긋나고 말았다. 그렇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아웃’, ‘코너’, ‘업사이드’ 등의 말마디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모두 독특한 이태리말로만 방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골인이 되어 사람들이 환호에 뒤범벅이 되었을 때도 아나운서의 입에서는 영 ‘골인’이란 말이 나올 않았다. 물론 이태리말로는 수없이 되풀이했을 테지만 … 거의 세계 공통어로 되어버린 스포츠 용어이기에, 외국어라고 배타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오히려 옹졸한 마음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단어들을 한 번도 우리 말로 옮겨 보지 못한 우리의 언어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초라한 언어의 생태가 꼭 지나온 우리 민족의 슬펐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면, 옹졸한 열등의식의 표현일까 ..  (72쪽)


 제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해, 아버지가 자가용을 처음으로 뽑습니다. 그때까지는 장롱면허증이었는데, “나이 마흔을 넘어 이제 나도 자가용을 몬다!”면서, 첫 차를 뽑은 그날 온 식구를 태워서 달리고 또 달리셨습니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시면서 그냥 앞으로만, 또 앞으로만. “나도 이만하면 베스트 드라이버 아니냐?” 하면서 웃던 아버지. 참 딱하다고, 아버지 나이가 몇 갠데, 이런 철딱서니없는 짓(없는 살림에 자동차를 지르셨으니)을 하셨나 싶어, 아버지를 뺀 세 식구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내 싱글벙글. 처음 가 보는 낯선 곳 밥집에 들어가서 바깥밥도 사 주고 아주 좋아하십니다.

 기름값이 아까워 자주 타지도 못하는 차이건만, 먼지 않을세라 늘 덮개를 씌웁니다. 틈틈이 4층집에서 내려와 덮개를 벗겨 들여다보시다가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날마다 형과 나와 어머니는 차 닦는 심부름을 도맡습니다. 아버지는 4층 툇마루에서 내려다보며 여기를 안 닦았다느니 저기를 더 닦으라느니 시킵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아버지로서는 당신이 안 닦고 온식구한테 시키면서 4층집 툇마루에서 내려다보며 차닦이를 시키는 일이 동네자랑으로 보여지는 일이었구나 싶습니다.


.. 내게 무슨 정서적인 마음이 깃들어서가 아니다. 그냥 푸른 나무와 맑은 공기, 그리고 옛날 로마인들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그 폐허가 좋을 뿐이다 … 복잡한 시가지만 벗어나면 신호등도 없고 배기가스도 없는 한적한 길에 이른다. 평평한 아스팔트 위에 이따금 옛 로마의 길이었다는 돌길에 바퀴가 닿으면서 오토바이는 털털거린다 ..  (97∼98쪽)


 열세 평짜리 작은 집에서 살 때에는, 중풍 든 할아버지까지 다섯 식구가 지내는 집이 좁기는 해도 좁다고 느낀 적은 따로 없습니다. 집에 붙어 있는 때보다 밖에 나가 뛰논 때가 더 많아서 그럴는지 모릅니다만, 큰방에 아버지 어머니 계시고, 작은방에 할아버지와 형과 내가 지내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설이나 한가위 때면, 작은집 세 식구 열두 사람에다가 고모댁 두어 집 열 사람 즈음 찾아오면,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이 빼곡합니다. 스물∼서른쯤 되는 사람들이 오글오글 바글바글했는데, 이렇게 빼곡할 때면 빼곡한 대로 같이 놀고 같이 일하고 같이 어울리고 같이 살 부비며 잠자고 이야기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마흔여덟 평 큰 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얄궂게도 설이나 한가위 때 찾아오는 작은집 숫자가 줄고, 고모댁에서도 찾아오는 일이 줄었습니다.


.. 미사는 발음의 정확성으로 이루어지는 기술이 아니고, 마음의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제사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110∼111쪽)


 마흔여덟 평짜리 큰 집에서 지낼 때, 주말에 가끔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연수동 끄트머리까지 걸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걸어서 송도유원지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관교동까지도 걸어 보고, 주안까지도 걸어 보았습니다. 동무들이 없으니, 이웃들이 없으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고, 걱정거리나 즐거움을 함께할 사람이 없으니.


.. 세상에는 조용히 남을 도우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남을 도울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할머니처럼 가난한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  (112쪽)


 ‘집만 넓으면 뭐 해?’ 하는 생각, ‘우리 집만 따뜻하면 뭐 해?’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참 책임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는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냥 있는 대로 살지, 있는 만큼 살지, 왜 더 가지려고 하는지, 왜 더 높아지려고 하는지, 왜 더 쟁이거나 쌓으려고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동생(작은아버지)들이 자존심 좀 깎으면 어때? 일터(아버지 학교. 인천부터 광명으로 버스 출퇴근을 스무 해쯤 하셨습니다)로 버스를 타고다니면 어때? 우리들 입성이 좀 후줄근하면 어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좀 가난한 동네에 살면 어때? (형이나 내가) 남들보다 성적이 좀 떨어지면 어때? 우리 집이 작으면 어때? 연탄을 때고 살면 어때? 바깥밥 한 번 못 사먹고, 뷔페라는 곳 구경을 못하고 살면 어때?

 아버지가 살아온 지난날이 있고, 큰아들이라는 무게가 있을 테지요. 아버지 어깨에 지워진 짐이 있으며, 아버지가 어리거나 젊은 날 짓눌리며 흐느껴야 했던 아픔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그때 아버지한테 주어진 그 괴로움과 어려움과 고달픔과 힘겨움 들은 아버지를 못살게 굴거나 들볶으려던 일들이었을까요. 아버지를 더 큰 사람으로 추슬러 내거나 다스려 내는 깨우침 들은 아니었을까요.

 한 사람이 가진 앎과 슬기를 혼자만 꿍치듯 머리속에 가두어 놓는 사람은 교사라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저마다 가진 한 조각 앎과 슬기라 해도 스스럼없이 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서는 자리가 교사입니다. 하나가 있으니 하나를 나누고, 하나가 없으니 고개숙여 배우는 자리, 그런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교사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르지요. 아버지는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는 훌륭한 분이었는지도. 다만 학교 바깥과 집안에서는 껍데기와 겉치레에 너무 매인 채, 또 바깥 눈길에 너무 마음을 쓰느라 속살과 속치레에는 안타까이 손을 놓아 버린 분이었다고 느낍니다.


 (3) 《가난한 마음》이라는 작은 책


 《가난한 마음》이라고 하는 책을 읽고 나서, 동네 성당 신부님한테 요즈음 퍽 훌륭하다고 느낀 책을 하나 읽었는데, 이 책을 쓰신 김영교라고 하는 신부님을 아느냐고 여쭈어 봅니다. 잘 모르겠다고 말씀합니다.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 보면, 요즈음은 어느 신학대학교에서 교수 노릇을 하시는 듯한데, 이 책을 쓴 분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인천 답동성당 앞에 있는 가톨릭 책방에 가서 수녀님한테 여쭈어 봅니다. 《가난한 마음》은 남은 책이 없어서 다시 살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기는 했습니다만, 글쎄요, 또다시 이 책을 만나서 기쁘게 가슴으로 안아들고서 동네 성당 신부님한테 선물로 드릴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그리스도 역시 가난 자체를 축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난을 견디는 마음과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축복한다 … 그(그리스도)의 땅은 가난했고 주위에는 유난히도 나약하고 병든 사람이 많이 들끓었다. 그는 늘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친구로 자처했다 ..  (178∼179쪽)


 옆지기와 책 이야기를 가끔가끔 하면서 느끼고, 가톨릭 책방에 가 보면서도 느끼는데, 우리 나라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고이고이 당신 믿음을 지켜 오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적어내려간 책이란 거의 없습니다. 지난날에도 그러했지만 요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좋은 믿음이고 반가운 믿음이며 훌륭한 믿음이라 한다면, 마음속으로만 모시고 지키거나 가꾸는 일도 나쁘지 않지만, 콩알 하나만큼 작은 믿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자그마한 책으로 묶어서 이웃들과 나누어도 괜찮을 텐데 하고 느낍니다.

 신부님들이 세상사람들과 부대끼며 헤아린 이야기나 수녀님들이 마을사람들과 믿음을 나누면서 돌아본 이야기를 생활글 하나로 짤막하게 쓰고 그러모아서 자그마한 책을 묶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아닌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도, 당신들이 한삶을 부대끼고 겪어내며 부딪히면서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짤막짤막 끄적이면서 자그마한 책을 묶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살아온 이야기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갈 이야기를 조촐하게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 하느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게 원칙이라고 외치면서도 교회 자신은 가난한 이를 위한 구호비로 십일조를 떼어놓지 않는 모순 속에 빠져 있다 …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선 거짓말이다. 풍부할 때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영영 남을 도울 수 없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가난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사랑의 정신이란 먹고 나머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빵을 함께 떼는 것을 뜻한다 ..  (183∼184쪽)


 《조선왕조실록》에도 역사가 담기고 문화가 담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마음》 같은 여느 사람들 살아간 이야기 한 자락에도 역사가 담기고 문화가 담깁니다. 여느 사람들 역사와 문화에는 자연스러운 믿음이 스미고 풋풋한 뜻과 살가운 사랑이 배어듭니다. (2008.1.28.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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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
박연 지음 / 대교출판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재미있는 삶이 아니면 재미없는 책
 [만화책 즐겨읽기 23] 박연,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



 책이란 하늘에서 똑 떨어진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닙니다.

 만화책이든 글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떠한 책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책이 재미없을 수 없습니다. 나하고 안 맞는 책을 만났을 뿐입니다. 책을 재미없게 여길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나날이 재미없다면 책 또한 재미없고, 내가 살아가는 나날이 재미있을 때에 내가 읽을 책도 재미있습니다.

 책은 학습지나 교재나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닙니다. 책은 그예 책이며, 이야기를 종이에 글로 적바림한 묶음입니다. 책은 ‘학습지-교재-교과서-참고서’처럼 지식을 가르치거나 지식을 외우도록 이끌거나 지식을 풀어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 수많은 책은, 책이라는 이름이나 허울을 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작 책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학습지이면서 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든지, 교재나 참고서일 뿐이면서 책이라고 껍데기를 씌우기 일쑤입니다.

 책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교재나 학습지가 책인 줄 잘못 알기 때문입니다. 책을 재미없어 하는 사람은, 참다운 책, 곧 참책이라 할 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책다운 책이 무엇인가를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하고 함께 노는 동무를 재미없다고 여긴다면, 나하고 함께 노는 동무도 나한테 재미있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왜 재미없다고 여기거나 느낄까요? 재미없다고 느끼면 재미없다고 느끼는 까닭을 생각하거나 찾거나 알아보면서, 이 재미없는 밑뿌리를 고치거나 가다듬거나 추슬러야 합니다.

 참말로 내 삶부터 재미없고, 내가 읽어야 한다는 책이 재미없으며, 내 둘레에서 흔히 보는 책이 재미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 삶이 재미없는 사람은 어떠한 책을 갖다 주어도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을 살뜰히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어떠한 책을 마주하더라도 가슴이 뭉클하거나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내 동무를 아끼며 좋아합니다. 내 동무를 아끼며 좋아하는 사람이 날마다 받아드는 밥 한 그릇을 고마이 여깁니다. 밥 한 그릇 날마다 고마이 여기는 사람이 내가 뛰어놀거나 살아가는 이 땅 들판과 멧자락과 냇물을 즐거이 맞아들입니다. 내 보금자리를 즐거이 맞아들이는 사람이 될 때에 비로소 책 하나 좋아하는 마음을 북돋웁니다.


- 생명의 신비를 가득 안고 있는 이 알갱이들이, 자라서 수많은 새 생명들을 잉태하고 키워낼 이 작은 알갱이들이, 지금 여기, 너를 위해 죽어 있는 거란다. 네 목숨을 이어 주기 위해 … 지금 여기, 너를 위해 기꺼이 죽어 있는 거란다. 네 한 목숨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기 목숨들을 버렸단다, 얘야. (13∼17쪽)


 만화책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를 읽습니다. 어렵게 나왔으나 쉽게 판이 끊어진 만화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어렵게 나왔으나 쉽게 판이 끊어진 만큼, 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나기도 몹시 힘듭니다. 갓 새책으로 나왔을 때부터 알아본 사람이 적었고, 나중에 버려지거나 잊혀지며 헌책방으로 한두 권 흘러들었어도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적으니까, 이 만화책 하나를 알뜰히 즐기기란 참으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고 살아가면서 만화를 그리는 박연 님이 내놓았던 만화책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입니다. 이 만화책에 담긴 이야기는 만화쟁이 박연 님이 머리로 꾸민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둘레에서 듣거나 몸소 겪은 삶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듯 그려낸 만화입니다. 가만히 보면, 동무나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어린 날 겪었음직한 이야기요, 보았음직한 이야기입니다. 또는 오늘날에도 이 나라 곳곳 어디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만화책이든 글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생각하고 부대끼거나 복닥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더 잘난 이야기가 없고 더 못난 이야기가 없어요. 모조리 우리 이야기요, 온통 우리 삶입니다.


- “저도 처음엔 네 식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를 보세요, 선생님. 그림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신발이 여기 있으니까 방에 한 사람 더 있는 거 아녜요? 그러니까 다섯 식구죠. 우리 아빠가 회사에 나가셔서 안 계시다고 우리 집 식구가 아닐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우리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한 식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잖아요.” (79∼80쪽)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받아들일 때에 내 가슴속에서 아름다운 꽃송이가 피어납니다. 가만히 헤아리면서 마주할 때에 내 마음속에서 어여쁜 꽃씨가 싹을 틉니다.

 작은 밭뙈기에 고구마나 감자를 심어 풀을 매고 거두어들이는 흔하거나 수수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씨를 묻고 북을 돋우며 풀을 매고 거두기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과 날마다 하던 일을 적바림해 놓고 보면, 알뜰살뜰 즐길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날마다 받는 밥상에 놓은 밥과 반찬을 누가 어떻게 마련해서 이렇게 내가 받아먹을 수 있는지를 곰곰이 살피면서 하나하나 적바림하다 보면, 날마다 밥먹는 이야기로도 날마다 재미나게 이야기꽃 피울 만합니다.

 똑같은 날은 없고 똑같은 말은 없으며 똑같은 일은 없습니다. 늘 다르고 언제나 바뀌며 노상 움직입니다. 늘 다른 줄을 느껴야 재미난 삶입니다. 언제나 바뀌는 줄 알아야 내 동무를 사랑하거나 좋아합니다. 노상 움직이는 줄 깨달아야 내가 이렇게 목숨을 선물받아 살아가는 고마움을 알아챕니다.


- “흥! 지 히이 맞는데 가만 있을 놈 뉘 있노! 보이소, 선상님요. 지 히이 맞는데 가만 있을 놈 뉘 있습니껴?” (152∼153쪽)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를 꾸며서 글로 적어야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책이 되지 않습니다.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눈부시게 그려서 엮어야 놀라운 만화책이 되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하다 싶은 이야기를 온갖 빛깔로 담아서 보여주어야 어마어마한 그림책이 되지 않습니다.

 손재주를 부린다고 해서 칼질을 더 잘하거나 자전거를 더 잘 타지 않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칼질을 하고 밥을 차립니다. 한손으로 자전거를 타든 두 손 모두 놓고 자전거를 타든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야 하는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오갈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물려입거나 얻어서 입거나 1천 원 주고 사 입거나 10만 원이나 100만 원 주고 사 입든 똑같은 옷입니다. 때가 묻거나 더러워졌으면 똑같이 빨래를 해서 똑같이 말린 다음 다시 입는 옷입니다. 내가 입은 옷이 더 좋다거나 네가 입은 옷이 더 꾀죄죄할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제 몸에 알맞춤한 옷을 입을 뿐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든 내 하루입니다. 어떤 놀이를 즐기거나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든 내 삶입니다. 내 하루는 내가 알차게 보내야 합니다. 내 놀이와 내 일은 나 스스로 사랑하면서 붙잡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는다고 더 좋은 내가 아니고, 꾸지람을 듣는다고 더 못난 내가 아닙니다. 칭찬을 받으며 더 사랑스레 살아가면 되고, 꾸지람을 들으며 더 씩씩하게 지내면 됩니다.


- ‘으응? 쟤들이 또 득이에게 무슨 짓을.’ “너희들, 무슨 일이니?” “이 녀석, 뭐 먹었는 줄 알아? 바보 녀석! 그걸 먹으라고 먹어.” “나 이만 한 바퀴벌레 먹었다. 창수가 잡아 줬어.” “이 바보야! 누가 바퀴벌레 따위 먹으랬어? 그런 거 먹으라고 먹니, 이 바보야! 왜 먹었어, 왜 먹었어? 왜?” “배가 고파서. 왜?” (212∼216쪽)


 만화책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를 다시 읽습니다. 만화를 그린 박연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당신이 사랑하는 그림결에 담습니다. 박연 님 만화를 쥐어들어 펼칠 때에 박연 님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랑스레 복닥복닥 보내던 지난날을 예쁘며 곱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랑스레 바라본 동무들 삶을 만화로 담았으니, 이 만화에 담긴 사람들과 삶이란 한결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착한 일을 하든 미운 짓을 하든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착한 사람은 없고 처음부터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모두 사랑받아 예쁜 목숨을 선물받은 사람들이요, 누구나 사랑스런 손길을 둘레에 나누어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만화에는 교훈이 따로 없습니다. 만화에는 주제도 따로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동화이든 소설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교육이든 정치이든, 우리 삶터 어디에도 교훈이나 주제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느낄 수 있으면 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보여주면 됩니다. 서로서로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알차며 한껏 즐거이 어울릴 터전을 돌볼 수 있으면 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책날개 앞쪽에 “너…, 손바닥으로 하늘 가려 봤니?” 하는 말마디가 실립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란 참 바보스러운 짓이라고들 한다는데, 사람들은 참 바보스레 살아갑니다. 바보짓을 하고 바보일을 하며 바보놀이를 합니다. 그래도 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립니다. 가리려 한다고 가려지겠습니까만,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밭에서 김매기를 하다가 한 번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봅니다. 아주 살짝이지만 꽤 시원합니다. 풀밭에 드러누워 손바닥을 쫙 펼쳐서 하늘을 가리며 놀기도 합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니 파란하늘과 흰구름이 꽤 잘 보입니다. 드러누워 팔을 뻗으니 이내 팔이 저리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서 노는 몇 분이나 몇 초는 꽤 재미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놀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이렇게 만화책 한 권 빚어냈습니다. (4344.2.15.불.ㅎㄲㅅㄱ)


―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 (박연 글·그림,대교출판 펴냄,199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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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34] NEW!

 이제는 ‘NEW’는 영어라 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영어 아닌 우리 말이라 해도 될 만큼 사람들이 널리 씁니다. 어린이도 늙은이도 으레 쓰는 말마디이니까, 외국말이라 여기지 말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어린이네이버’가 아닌 ‘쥬니어네이버’ 동요듣기에 적힌 ‘NEW’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설마, ‘어린이네이버’로 이름을 고치기를 꿈꿀 수 있겠으며, ‘새 노래’ 같은 말마디를 쓰리라 바랄 수 있겠습니까. (4344.2.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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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4. 

인천에 닿아, 옆지기 외할아버지,외할머니 댁에 닿다. 저녁나절, 졸음을 참으로 하모니카를 부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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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4. 

마실 가는 길. 아이는 힘드니까 자꾸자꾸 땡깡똥깡.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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