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 한국의 사찰 14
한국불교연구원 엮음 / 일지사 / 1978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문화를 사진으로 담는 외국사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6] 에드워드 B.아담스, 《한국의 사찰 (1∼18)》(일지사,1974∼1979)



 한동안 한국 사진밭에서 ‘장승’이나 ‘절’이나 ‘시골 농삿집’이 사진감으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요즈음은 장승이나 절이나 시골 농삿집을 사진감으로 삼는다든지 아끼려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2010년대로 접어든 요즈음으로서는 장승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몇 군데 안 남은 장승마저 목아지가 잘리거나 기둥이 뽑히곤 합니다. 절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제법 많기는 하지만, 이 나라 크고작은 절을 두루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어떻게 다르면서 아름답고, 이 절마다 어떠한 삶하고 사람하고 사랑이 눈물과 웃음으로 어우러졌는가를 깊이 톺아보는 눈썰미까지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시골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뿐 아니라, 시골마다 다 다르던 시골말은 텔레비전이라는 엄청난 대중매체에 힘입어 거의 사라집니다. 시골마을을 시골마을답게 하던 두레와 품앗이는 자취를 감춥니다. 도시사람은 국산 쌀이니 콩이니 보리이니를 따지지만, 정작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든지, 똥거름을 내어 흙을 일군 곡식을 제값을 치르며 장만하여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삶자락으로 시골로 찾아가는 도시내기 사진쟁이는 시골 농삿집을 꾸밈없이 바라보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해요. 시골이 왜 시골이요, 농삿집이란 무엇을 하는 집인가를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한국 삶이라 할 만한 사진이란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한국에서 한국 삶과 사람을 어깨동무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엮는 사진쟁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도시 골목동네 사람들 살림집이나마 살가이 들여다보며 이웃하는 사진쟁이는 몇 사람쯤 될까요. 스스로 가난한 도시 골목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며 ‘내 삶’인 ‘가난한 도시 골목사람’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사진쟁이는 한두 사람이나마 있기는 있을는지요.

 도시에 밀릴 뿐더러 도시한테 빼앗기거나 짓눌리는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흙을 일구면서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는 얼마나 될까요. 시골집을 전원주택처럼 꾸미는 사진쟁이가 아니라, 집은 시골이지만 대학교에 강의하러 다니거나 서울 같은 큰도시로 쏘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참말 시골자락에 마음과 몸을 깃들이고는 시골사람으로 지내며 시골마을을 수수하게 사랑하며 사진으로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요.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땅 곳곳에 풀집이 가득가득 하던 때에도 풀집 사진을 잘 안 찍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땅 어디에나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던 때에도 슬레이트지붕 사진을 잘 안 찍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도시마다 달동네 꽃동네 판잣집이건 성냥갑집이건 들어서며 올망졸망 복닥이던 때에도 이러한 삶자락을 잘 안 찍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아파트한테 밀리는 골목집 삶자락 또한 잘 안 찍습니다. 때때로 ‘출사’라는 이름으로 사진놀이를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진쟁이는 다큐사진을 하든 상업사진을 하든 영업사진을 하든 예술사진을 하든 순수사진을 하든 보도사진을 하든 무슨무슨 만듦사진을 하든, 정작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내 땅 내 터 내 마을 내 동네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사진기를 들 뿐입니다. 이러다가 일본이니 중국이니 미국이니 프랑스이니 독일이니 영국이니 티벳이니 인도이니 네팔이니 태평양이니 아프리카이니 쿠바이니 하고 나라밖으로 떠돌기만 합니다.

 어느덧 새책방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던 얄팍한 책 “한국의 사찰”을 생각합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다 보면 드문드문 한 권쯤 보이는 “한국의 사찰”입니다. 1974년에 1권이 나왔고, 1979년에 18권이 나왔습니다. “한국의 사찰”을 펴낸 ‘일지사’는 100쪽이 채 안 되는, 말 그대로 ‘얄팍한’ 책을 꿋꿋하게 엮었습니다. 《불국사》(1번,1974)부터 《범어사》(18번,1979)까지, 여섯 해에 걸쳐 남녘땅 절과 북녘땅 절을 샅샅이 누비면서 ‘제대로 남아나지 못한 자료’를 뒤지거나 갈무리하면서 작은 책을 한 땀 두 땀 일구었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한국의 사찰”을 차곡차곡 모으는 동안, 이 작은 책에 사진을 넣은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책을 쓴 사람은 따로 밝히지 않고 ‘한국불교연구원’이라고만 되었습니다. 그러려니 하며 이 책들을 어느덧 열 권 모았는데, 열 권째로 《낙산사》(14번,1978)를 사서 읽던 2010년 9월,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이 놀랍니다. 책 안쪽에 “한국의 사찰”을 엮은 사람들 이름이 줄줄이 적혔기 때문인데, 맨 끝에 적힌 사진쟁이 이름은 외국사람이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때때로 바뀌기는 하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은 오직 하나, ‘에드워드 B.아담스’라고 하는 분입니다.

 사진쟁이 이름 옆에는 묶음표를 치고 “Principal of Seoul International School”이라 적히고, “한국불교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이름도 적힙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서울국제학교’는 1973년에 문을 열었고, 에드워드 B.아담스라는 분은 이때에 서울국제학교를 함께 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B.아담스라는 사람에 얽힌 자료나 이야기는 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한국의 사찰” 열여덟 권에 실린 사진을 이분이 홀로 맡아서 찍었을 뿐이라고만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진사 1631∼1945》(눈빛,1999) 같은 책을 뒤적이지만, 1945년까지만 다룬 《한국사진사》에서 에드워드 B.아담스 님 발자취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1945년 뒤에는 우리네 사진밭이 어떻게 나아갔는가를 다루는 책이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중에 ‘현대 한국 사진 발자취’를 다루는 책이 나온다 한다면, 이러한 책에 에드워드 B.아담스라는 외국사람이 한국땅 절집을 담은 사진을 놓고도 한두 줄이나마 짤막히 다룰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돌아본다면, 에드워드 B.아담스 님은 1970년대에 이 나라 절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우리네 절집이 1970년대에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10년대인 오늘날 더듬어도 자그마치 마흔 해 앞선 때 모습이니, 오늘날보다 한결 잘 살아남은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에드워드 B.아담스 님이 찍은 사진들 필름을 건사해 준다면 한결 빛나는 사진으로 나중에라도 다시 마주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1970년대에 이분이 절집 사진을 남겼기 때문에 뜻있거나 뜻깊지 않습니다. 절집을 두루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차근차근 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에 값있으며 아름답습니다. 어떤 멋이라든지 이러저러한 예술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절집이니 절집을 고스란히 찍는다’는 매무새로 “한국의 사찰” 열여덟 권이 태어나도록 밑거름 노릇을 했기 때문에 알차고 훌륭합니다.

 내가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한겨레붙이라서 한겨레붙이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며 사진으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불교를 믿으니 절집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천주교나 개신교를 믿으니까 절집 사진은 안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발을 디딘 터전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사진기를 들어야 합니다. 바쁜 틈을 쪼개면서 사진기를 들어야 하고, 바쁘니까 바쁜 삶을 즐기면서 사진을 즐겨야 합니다.

 하루이틀 찍고 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한두 해 찍어서 되는 사진이 아닙니다. 열 해나 스무 해를 찍었으니 뭔가 그럴듯하게 태어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겠다 마음먹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감을 온삶을 들여 차근차근 사랑하며 찍어야 비로소 사진쟁이 이름을 얻습니다. (4344.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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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44] 북카트, 위시리스트

 동네책방이 사라지며 인터넷책방이 생깁니다. 동네책방 숫자만큼 인터넷책방 숫자가 생기지는 않으나, 인터넷책방이 제법 많습니다. 제법 많은 인터넷책방, 그러니까 누리책방은 저마다 다 다른 말로 차림판을 꾸미고 책을 팝니다. 어느 곳은 ‘장바구니’라 하지만 어느 곳은 ‘북카트’라 합니다. 어디에서는 ‘책바구니’라는 말을 씁니다. 어느 곳은 ‘보관함’이라 하는데 어느 곳은 ‘위시리스트’라 하고, 또 어느 곳은 아예 영어로 ‘wishlist’라 적기까지 합니다. 아무래도 ‘보관함’이나 ‘위시리스트’는 “사고 싶은 책”이나 “나중에 살 책”이란 소리쯤 되겠지요. (4344.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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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값과 살림돈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1.



 좋다고 여기는 책이라면 망설이지 않는다. 살림돈을 덜어 책을 산다. 요사이는 썩 좋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사야 한다고 느끼는 책을 산다며 살림돈을 덜곤 한다. 지난 2007년부터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도서관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진책을 한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마땅히 없는 우리 나라인 만큼, 다른 개인 도서관보다 ‘사진책 도서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삶은 내가 읽을 책을 사서 즐기는 삶이기도 하지만, 내가 꼭 읽지 않더라도 앞으로 사라지고 말 듯하다고 느끼는 책까지 살림돈을 털어 장만하는 삶이다. 개인 도서관을 꾸리기 앞서부터 이렇게 책을 장만했다.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면서 책을 사기 퍽 힘들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도서관을 꾸릴 때에는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일이 없었다. 늘 다리품을 팔아 책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책을 샀고, 가방이 미어터지도록 책을 사들여 집까지 낑낑거리며 날랐다. 시골집 가운데에서도 멧자락에 깃든 두메에서 지내다 보니, 책방마실이 몹시 힘들 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마실하기도 벅차다. 새로 책을 갖추자면 인터넷을 하는 수밖에 없다.

 시골집에서는 인천 골목집에서 살 때처럼 달삯 짐 때문에 버겁지 않다. 그러나 시골집에서 살아갈 때에는 인천에서 살아갈 때와 달리 ‘돈을 벌 일감’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면 ‘글 써 달라’는 일감이든 ‘몸을 써서 도와 달라’는 일감이든 흔히 있다. 시골에서는 이런 일감이 싹 끊어진다.

 마땅한 노릇이다. 몸을 써서 돈을 벌 일자리야 마땅히 도시에 몰리며, 서울에 가장 많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자리 또한 도시에 있으며, 거의 모두 서울에 몰린다. 서울사람들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글을 좋아하지, 서울 바깥 도시라든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서울사람은 시골사람 글을 좋아할 수 없다. 삶과 삶터가 다르기 때문에 ‘시골사람 글이 무엇을 말하거나 밝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이는 시골사람이 ‘서울사람이 쓰는 글을 못 알아채는’ 흐름하고 똑같다. 시골사람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깨끗한 바람과 물을 마시면서 살아간다. 나무하고 멧짐승하고 벗을 삼는다. 시끄러운 노래가 아니라 멧새가 지저귀거나 멧쥐가 집구석에 기어들어 찍찍거리는 소리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풀어서 풀이든 벌레이든 스스로 잡아먹는 닭이 새벽마다 홰 치는 소리를 듣는다. 자동차 소리라든지 장사꾼 짐차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비가 오니 빗소리를 듣는다. 눈이 오면 온누리가 고요해지는 소리를 듣는다.

 인천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동안 빗소리와 눈소리를 느끼기는 했다. 골목 안쪽에 깃든 집에는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거나 못 다닌 만큼 참으로 호젓하다. 그러나 이런 골목동네를 어쩌다 한 번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되게 시끄럽다. 전철길하고 맞붙은 옥탑집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전철소리에 시달렸다.

 억지로 사람이 만든 소리에서 풀려 빗소리는 빗소리대로 듣고 눈소리는 눈소리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쓰는 글은,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골목마실을 날마다 몇 시간씩 하던 사람이 쓰는 글하고도 다르다.

 우리 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지 않는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 가운데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맡기고 집에서 키운다는 사람은 요사이 본 적이 없다.

 모두들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으며 드는 돈’을 걱정한다. 정치하는 이들이 ‘어린이집 배움삯’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터에 어린이집을 마련해야 한다’고 바라거나 여러 가지 ‘아이돌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러한 바람은 옳다.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분들은 이러한 문화와 복지를 하려고 세금을 거두지,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군대를 크게 부풀리려고 세금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아이를 왜 어린이집에 넣어야 할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왜 우리 손으로 돌보거나 사랑하지 못할까. 우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하기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고 돈을 버는 일터로 나가야 할까. 우리가 돈을 번다는 일터는 우리 땅과 삶터와 자연을 얼마나 아끼는 일터인가. 내가 버는 돈이란 어떤 돈인가. 내가 번 돈을 나는 어떻게 쓰면서 살아가는가.

 ‘사진책 도서관’을 시골로 옮긴 뒤 겨우겨우 버티는 살림돈으로 먹을거리를 마련한다거나 몇 가지 세금을 내거나 기름값을 대다 보면 금세 바닥이 난다. 그래도 새로운 책을 사야 한다. 도서관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사진책을 사야 한다. 사람들이 함부로 보는 바람에 다치고 만 책을 다시 사기도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데에서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지만, 이 책들을 사다 보면, 우리 살붙이 이달치 살림돈은 거덜나겠다고 느끼며 선뜻 마지막 단추를 누르지 못한다. 며칠 더 기다리자고 생각한다. 하루만 지나도 이 책을 누군가 사 가리라 느끼지만, 며칠 더 기다리자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지만 아무도 이 책을 사지 않을 때에 내가 사자고 생각한다.

 하루가 지난 뒤, 내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깔끔히 팔린다. 나는 또 장바구니에 걸쳐진 책들 이름을 지운다. 마음으로 사고 눈으로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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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진책 도서관 일기'를 다시 쓰기로 한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에 시달리거나 치이면서, 도서관 일기를 못 쓰며 지냈다. 이제부터 조금씩 써야겠다. 도서관을 꾸리며 지키는 사람으로서 도서관 일기조차 못 쓰면 어떡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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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정비법 Outdoor Books 6
니와 타카시 지음, 최종호 옮김, 자전거(MTB) 정비교실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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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전거 설명서’ 안 읽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
 [책읽기 삶읽기 20] 니와 타카시, 《자전거 정비법》



 일본사람 ‘니와 타카시’ 님이 쓴 작은 책 《자전거 정비법》은 자전거를 집에서 나 스스로 손질하는 길을 글이랑 사진으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좋은 길잡이책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전거를 이제 막 타기로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전거 손질을 아주 훌륭히’ 해낼 수 있지는 않습니다. 이 책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꾸준히 읽는다면, 한 해쯤 지날 무렵에 비로소 ‘내 손으로 내 자전거 손질하기’를 제법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드물지만, 새 자전거를 사면, 종이로 된 상자에 자전거가 따로따로 부속으로 나뉜 채 들었고, 이렇게 나뉜 자전거를 하나하나 붙여야 합니다. 자전거집에서 파는 자전거는, 자전거집 일꾼이 하나하나 붙인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는 이들은 ‘처음 상자에 담긴 자전거’란 ‘몸통이 다 붙은 자전거’가 아니라 ‘부속으로 이루어진 자전거’인 줄을 모릅니다.

 더욱이, 상자에 ‘자전거 설명서’가 함께 든 줄을 모릅니다. 손전화 기계를 사든 사진기를 사든, 새 물건을 담은 상자에는 ‘제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밝히는 설명서가 듭니다. 가스렌지를 장만해도 ‘가스렌지 설명서’가 들었어요. 텔레비전을 새로 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을 사도 작은 약상자에 깨알같은 글씨로 박힌 설명서가 들었어요.

 웬만한 사람들은 설명서를 그냥 버립니다.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손전화를 새로 장만하면서 손전화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사진기를 새로 사들이면서 사진기 설명서를 낱낱이 살펴 스스로 ‘내 사진기 잘 다루기’를 해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이 더 모르는 대목입니다만, 디지털사진기뿐 아니라 옛날 필름사진기를 담은 상자에도 ‘사진기 설명서’가 들었습니다. 수동사진기를 어떻게 다루고, 필름을 어떻게 넣으며, 빛은 어떻게 맞추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주는 설명서가 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찍는다는 분들은 으레 사진교실에 나가거나 사진강좌를 듣는다거나 하는데, 이렇게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기를 사면 따라오는 설명서를 혼자서 한두 시간쯤 읽으면서 스스로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 됩니다. 어르신들은 당신 아이나 둘레 젊은이한테 설명서를 한 장씩 읽어 주면서 당신 스스로 만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 하면 됩니다. 사진기를 잘 다루는 젊은이여야 설명서대로 따를 수 있지 않습니다. 설명서에 적힌 글을 잘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어르신 가운데에는 눈이 나쁘다든지, ‘요즈음 사람들이 쓰는 글’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은 만큼, 젊은 사람한테 하루치 일삯을 주면서 설명서대로 도와 달라고 하면 됩니다.

 자전거를 살 때에 자전거집에 찾아가서 산다면, 자전거집 일꾼이 자전거를 ‘완제품’으로 다 맞추어 줄 뿐 아니라, 안장높이를 맞추어 주고, 페달을 살펴 주며, 손잡이가 흔들리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다스립니다. 뒷거울을 달아 준다든지 안전등을 붙여 주기도 해요. 그러나, 이보다 ‘자전거를 걱정없이 잘 타는 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페달을 어떻게 밟으며, 안장에 앉을 때에 허리나 머리나 손이나 팔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단골 자전거집에 들러 여러 시간 죽치며 얘기꽃을 피우다 보면, 자전거를 새로 산다든지 고치러 오는 손님을 만나곤 합니다. 자전거를 새로 사는 분들 가운데 ‘자전거집 일꾼이 하나하나 알려주는 대로’ 잘 삭이거나 배우는 분은 좀처럼 없습니다. 자전거집에서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자전거집을 나오면 다들 금세 잊는 듯합니다. 자전거를 손질하러 오는 분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손질법’이란 한 가지도 없는 듯해요. 게다가, 자전거를 사면서 ‘바람넣이’조차 안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바람이 빠지면’ 자전거집으로 가져와서 넣으면 된다고 여기는 분이 아주 많아요.

 바람 빠진 자전거를 함부로 타다가는 자전거 바퀴 튜브가 눌리며 조금씩 금이 가거나 찢어질 수 있습니다. 바람이 많이 빠졌다면 바큇살이 다칠 수 있어요. 이런 대목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란 얼마 안 되는 듯합니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자전거에다가 수십만 원에 이르는 자전거옷을 갖추었으면서 ‘바람넣이’ 하나 장만하여 자전거에 붙이고 다녀도 ‘무겁다’고 여기면서 바람넣이를 안 챙기는 자전거꾼마저 있습니다. 바람넣이조차 안 챙기며 자전거를 타고 먼길을 달린다면, 자전거 체인이 끊어지거나 못이나 뾰족한 뭔가를 밟아 튜브에 구멍이 났을 때에 손질할 만한 연장이란 아예 안 챙기겠지요. 자전거 나사를 조이는 연장 하나 무게가 1킬로그램이 되겠습니까, 100그램이 되겠습니다. 요즈음 나오는 자전거 나사는 ‘드라이버로 조이거나 푸는 나사’가 아닙니다. 몇 그램 안 되는 조그마한 연장으로 조이거나 풉니다. 이런 막대연장 하나쯤 지갑에 넣어 다니면, 꽤 알뜰히 쓸 수 있습니다.

 단골 자전거집 일꾼은 이야기합니다. “자전거 설명서요? 아무도 안 가져가서 다 버리지. 처음에는 안 버리고 모아 뒀는데, 너무 많이 쌓여서 버려야 해요. 아무도 안 읽어요.”

 자전거를 사면서 자전거 설명서를 챙기지 않는 사람들이니, 자전거 설명서를 읽을 까닭이란 없는지 모릅니다. 자전거 설명서를 읽지 않으니, 자전거 페달을 어떻게 밟아야 하고, 내 허리와 손을 어떻게 두어야 하며, 자전거로 찻길을 달릴 때라든지 거님길이나 자전거길을 달릴 때 어떻게 해야 좋은지를 모릅니다. 한 마디로 갈무리하자면, ‘자전거를 타는 기본 예의’조차 익히지 않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셈입니다.

 자전거를 걱정없이 타는 길이란 ‘안전장구 갖추기’가 아닙니다. 안전장구를 아무리 잘 갖추었어도, 서울 한강 자전거길 같은 데에서 30∼40킬로미터로 싱싱 내달린다면, 앞 자전거하고 부딪히거나 자칫 미끄러져 나동그라질 때에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헬멧은 ‘시속 30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자전거꾼 머리’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아니, 25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는 자전거꾼 머리도 지켜 주지 않아요. 100만 원짜리 헬멧이든 1000만 원짜리 헬멧이든 똑같습니다. 걱정없이 타자면, 자전거를 달리는 기본 예의를 먼저 갖추어야 하고, 자전거란 ‘더 빨리 싱싱 내달리려고 하는 탈거리’가 아닌 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전거대회에 나갈 선수가 되려고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대회에 나갈 선수가 되려고 자동차를 몰지 않아요.

 좋은 탈거리이며 고마운 탈거리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동무와 이웃을 사랑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길을 살펴야 합니다. 내 자전거를 내 몸과 같이 여기면서 아끼는 사람이라면 ‘자전거 설명서’를 즐거이 읽으면서 삭이리라 봅니다. 다만, 자전거 설명서는 한두 번 읽는대서 다 외우거나 알 수 없습니다. 오래도록 꾸준히 들여다보면서 가다듬어야 비로소 내 몸으로 스며듭니다.

 《자전거 정비법》이라는 작은 책은 자전거 설명서에 나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풀이합니다. 자전거를 새로 살 때에 설명서를 알뜰히 챙긴 분이라면, 이 책에 깃든 이야기란 설명서에 나온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넣은 사진’으로 보여줄 뿐인 줄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전거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으면, 나 스스로 자전거 부품을 하나하나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분들은 자전거를 사면서 설명서를 챙기지 않으니까 《자전거 정비법》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나마, 이런 책까지 챙겨 읽으려는 자전거꾼은 몹시 드물 텐데, 아마, 일본사람 ‘니와 타카시’ 님은 ‘자전거를 사면서 설명서를 버리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고 느끼면서 이런 책을 썼겠지요.

 그런데, 설명서를 챙기지 않는 자전거꾼이 《자전거 정비법》 같은 책은 제대로 읽거나 알뜰히 받아들일까요. 참 궁금합니다.

 뭐, 설명서를 안 읽어도 손전화 기계로 전화 못 거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명서를 안 읽는다고 사진기 단추를 못 누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명서를 안 읽었기에 자전거에 못 올라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4344.3.1.불.ㅎㄲㅅㄱ)


― 자전거 정비법 (나와 타카시 글,최종호 옮김,진선books 펴냄,2007.11.10./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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