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2.23. 

낮에 드디어 잠을 한숨 자 주는 아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이나마 낮잠을 자 주니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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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47] 스마트한 Samsung Wave

 오늘날 우리 나라에 있는 큼지막한 회사 이름은 ‘삼성’이 아닌 ‘Samsung’입니다. 이곳은 회사이름을 한글이 아닌 알파벳으로 바꾸었고, 이와 같은 회사로 ‘LG’나 ‘SK’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들 회사가 이름을 알파벳으로 바꿀 때에 처음에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이내 잦아들었고, 한국사람 누구나 이들 회사를 알파벳 이름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른 알파벳 이름 회사는 알파벳으로 이름을 적으면서 막상 ‘Samsung’만큼은 알파벳 이름으로 안 적습니다. 한글로 ‘삼성’으로 적습니다. 이곳 ‘삼성’ 아닌 ‘Samsung’에서 ‘스마트한 방법’으로 쓴다는 ‘스마트폰’인가를 만들며 이 물건에 ‘Wave’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광고를 할 때에도 이 이름을 따서 여러모로 멋있게 만듭니다. 한국사람 누구나 ‘삼성’이든 ‘Samsung’이든 따지지 않을 뿐더러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이듯이, 이 회사에서 만드는 물건에 ‘Wave’라 이름을 붙이든 ‘물결’이라 이름을 붙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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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1
스즈키 노리히사 지음 / 소화 / 1995년 11월
평점 :
절판




 믿음길이란 예쁘며 착하고 기쁜 삶길
 [책읽기 삶읽기 39] 스즈키 노리히사,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라는 일본사람을 이야기할 때에 으레 ‘무교회주의자’라는 이름을 앞에 붙입니다. 이 이름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치무라 간조 님은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치무라 간조 님이 말한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이란, ‘교회에 얽매이는 넋’이 아니라 ‘하느님을 참답게 믿으면서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구자는 넋’입니다.


.. 우치무라 간조 하면 어딘지 모르게 근접하기 어렵고, 근엄한 인물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실은 들이나 산에 피는 한 송이 꽃에도 눈길을 돌리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  (7쪽)


 하느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어야지, 예배당이나 절간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어야지, 하느님 얼굴을 새긴 동상이나 그림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지, 부처님 모습을 새긴 동상이나 그림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조각상이나 그림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늘 떠올리려고 마련합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를 보살필 뿐 아니라 우리가 엇나가지 않도록 알뜰히 이끈다고 생각하려고 마련합니다.

 거짓스러운 껍데기라는 ‘우상’을 섬기지 않을 노릇이면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우상으로 받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믿음으로 사랑할 넋입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내 삶으로 녹일 얼입니다. 나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부처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모든 말이 하느님이 들려주는 말과 같아야 합니다. 내 모든 낯빛과 매무새가 부처님이 살아움직이는 흐름과 같아야 합니다.


.. 간조가 그리는 천국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노동이 있고, 이 노동의 하나로 교육이 있다. 천국의 교육이 현세의 교육과 다른 것은 거기에는 “정부에 아부하고 국민에게 아양을 떠는” 학자는 없고, “무학이라고 해서 남 앞에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으며, 국회의원(간조는 현재의 국회의원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부언한다)과 어린이가 함께 공부한다. 천국에서의 미술은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상의 발표”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미켈란젤로나 베토벤이다 … 간조가 부정하려 한 것은 서양에서 전해진 기독교에 집착한 서양적인 제도나 의례이다. 그와 동시에 서양의 교파와 선교단체의 지배하에 굴복하고 있는 일본 교회의 체질이다 ..  (82, 99쪽)


 일본사람 우치무라 간조 님은 적잖은 한국사람한테 믿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무교회주의’라는 주의주장을 나누어 주었을 테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옳고 바르며 착한 삶’이나 ‘예쁘며 참답고 기쁜 삶’을 나누어 주었겠지요.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이라 해서 ‘교회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주의주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교회가 없어도 되는 믿음이란 교회가 있어도 되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믿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믿고, 교회가 있으면 있는 대로 믿습니다.

 아이한테 젖을 물리면서도 비손을 드립니다.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면서도 비손을 합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면서도 비손을 합니다. 조그마한 아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 스스로 밥을 떠먹도록 오랜 나날 가르치거나 이끌면서 비손을 품습니다.

 삶이 온통 비손입니다. 삶이 온통 사랑입니다. 삶이 온통 믿음입니다.

 믿음은 교회 안팎 어디에나 있지, 교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경책에도 적히지만 성경책에만 붙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목사님만 읊을 수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을 나누는 모든 사람들 착한 가슴속에서 샘솟습니다.


.. 전쟁이라면 모조리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도달하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간조가 오직 성서에 깊숙이 빠져든 결과였다 ..  (110쪽)


 믿음을 고이 건사하기에 아름답습니다. 믿음길을 걸으며 빙그레 웃기에 아리땁습니다. 믿음씨앗을 솔솔 뿌려 다 함께 하느님나라로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끌기에 어여쁩니다.

 하느님나라란 하늘나라일 수 있고 흙나라일 수 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도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나무로 짠 마지막 쉼터에 깃들어 땅속에 깊이 묻혀도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작고 좁다는 가난한 사람 살림집이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시골자락 흙집이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어디나 하느님나라요, 어디나 하느님나라가 아닙니다.


.. 어떤 인간의 전기를 읽거나 쓰는 일은 한동안 그 사람과 마음의 여행을 함께하는 것이다. 더욱 때만 달랐지 그 인물과 몸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  (164쪽)


 우치무라 간조 님 이야기를 읽는 까닭은 우치무라 간조라 하는 대단하거나 훌륭하다는 사람을 떠받들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우치무라 간조라 하는 한 사람이 사랑하려고 한 ‘아름다움’이 무엇일까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 삶을 한껏 ‘아름다이’ 북돋울 길을 내 손으로 씩씩하게 일구고픈 기운을 보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란 아름다운 삶을 읽는 즐거운 웃음꽃입니다. 책읽기란 예쁜 꽃송이를 품에 살포시 안으며 활짝 웃다가는 너를 꺾어 품에 안으니 미안하구나 하고 울 줄 아는 눈물바람입니다. (4344.3.4.쇠.ㅎㄲㅅㄱ)


―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 (스즈키 노리히사 글,김진만 옮김,소화 펴냄,1995.11.30./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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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학부모·어버이, 제도권학교·대안학교


 아이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지내자면 힘듭니다. 아이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기란 참 힘듭니다. 그러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학교에 보내는 일도 그리 좋은 일은 못 됩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한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 하는 모습이나 이야기는 어버이 스스로 보여주거나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은 삶이지 지식이 아닙니다. 배움은 삶이지 정보가 아닙니다.

 오늘날 학교나 학원은 지식과 정보만 다룹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삶을 보여주거나 마주하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수많은 대안학교가 제도권학교에 맞서서 태어납니다만, 대안학교는 학교 살림돈을 얻자며 시험공부 하는 교과서를 받아들입니다. 대안학교 스스로 대안교과서를 만든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들 스스로 앞으로 어디에서 누구하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까’를 놓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도시에 깃든 대안학교라면 제도권학교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라 할 때에는 ‘대안’이라는 한자말이 ‘다른 길’을 뜻하는 만큼, 참말 제도권학교하고 다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제도권학교는 시골마을에 자리해도 도시에 있는 학교와 똑같이 가르칩니다. 제도권학교는 가난한 동네에 깃들어도 부자가 모인 동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르칩니다.

 대안학교라 한다면, 도시 아닌 시골에 뿌리내려야 올바릅니다. 시골에 뿌리내려서 시골사람을 키울 수 있어야 대안학교답다 할 수 있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어 도시에 자리잡는 대안학교일 때에는, 도시에서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가는 길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아 맞아들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는 아이가 되지 않도록, 돈이 아닌 삶을 깨달으며 나와 내 동무와 살붙이와 이웃을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일깨우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어버이 혼자 집살림 꾸리고 바깥살림 돌보며 아이하고 살아가기 벅찰 수 있습니다. 벅차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아이하고 복닥이면서 벅찬 나날을 보내는 만큼, 아이하고 더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다고 느끼며, 아이 앞에서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한 길을 씩씩하며 즐겁게 살아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는 어른을 가르칩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고, 어른은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서로서로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이 나라 학교 가운데에는 아이와 어른이 서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데가 없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으로 여겨 섬기거나 높이거나 따숩게 끌어안는 얼거리를 짜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어버이라서, 참 힘들지만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나날을 잇습니다. 아이는 아이라서, 참 신나게 뛰어놀며 씩씩하게 배우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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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긋하게 책읽기


 돈을 버느라 바쁜 사람은 돈을 버느라 바쁜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돈을 버느라 바쁜 나머지 책 따위야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은 집식구가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구태여 책을 찾아 읽지 않더라도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아이돌보기는 거뜬히 잘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남아돌아 주식을 산다든지 은행계좌에 숫자를 푼푼이 쌓는 사람은 으레 돈굴리기를 다루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또는, 요사이는 인터넷을 또닥거리면 숱한 정보와 지식이 쏟아지니까, 애써 책이란 찾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여깁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농사짓기를 다루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농사짓기를 다루는 책을 갖추는 책방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시골 읍내에 있는 책방일지라도 농사책은 한 권조차 없습니다. 밑뿌리를 살핀다면, 농사책을 내놓는 출판사부터 없습니다. 시골마을에는 책방이 남아 나지도 않으나, 잘 살아남은 곳일지라도 흙을 일구는 손길과 넋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결을 보듬는 책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농사꾼은 그예 흙이랑 빗물이랑 햇볕이랑 바람이랑 마주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를 다루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도시사람은 다른 도시를 다루거나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책을 읽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이 읽는 ‘다른 도시나 시골 이야기 다룬 책’이란, 여행책일 뿐입니다. 서울사람은 인천 이야기를 읽지 않고, 인천사람은 수원 이야기를 읽지 않으며, 수원 사람은 당진 이야기를 읽지 않고, 당진사람은 옥천 이야기를 읽지 않습니다. 큰 틀로 따지면 어느 곳 이야기이든 ‘한국사람과 한국땅’ 이야기입니다. 내 이웃 이야기요, 내 동무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한국사람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피거나 찾아보지 않습니다. 우리 이웃과 동무들 살림살이 이야기를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지 못합니다.

 바쁘게 살아간다니까 바쁜 나머지 책을 바삐 읽거나 그냥 안 읽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간다면 느긋하게 책을 읽기도 하지만, 느긋한 나머지 책은 나중에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잘 읽습니다.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못 읽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몹시 아프기 때문에 몹시 좋아하는 책을 못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무척 괴롭기 때문에 무척 사랑하던 책을 멀리하고 마는 사람이 있어요.

 제아무리 맛나며 좋은 밥이랄지라도, 숟가락을 들어 스스로 떠먹어야 합니다. 손이 없으면 옆사람이 숟가락을 떠서 먹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누가 떠먹여 준달지라도 몸으로 받아들여 삭이는 몫은 나한테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몸으로 삭여야지, 옆사람이 삭여서 살아가 줄 수 없어요.

 제아무리 훌륭하며 좋은 책이랄지라도, 스스로 장만해서 스스로 읽어야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 선물해 줄 수 있고, 옆에서 책을 읽어 주거나 줄거리를 간추려 알려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누가 장만해 주거나 읽어 준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맞아들여 곱새기는 몫은 나한테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으로 곱새겨야지, 옆사람이 곱새겨서 살아가 주지 못합니다.

 해골바가지에 든 물일지라도 나 스스로 맛난 물이라고 여긴다면 내 몸에 도움이 됩니다.

 그야말로 쓰잘데기없을 뿐 아니라 엉망진창 엉터리 책일지라도 나 스스로 좋게 받아들이며 착하게 어루만질 수 있으면 내 마음에 보탬이 됩니다.

 책이란, 쓰는 사람부터 잘 써야 합니다. 책이라면, 만드는 사람부터 옳고 바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책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잘 읽어야 합니다. 책은 책인 나머지, 읽는 사람이야말로 옳고 바르게 읽어서 기뻐해야 합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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