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아빠는 요리사》 111권


 만화책 《아빠는 요리사》 111권을 사다. 예전부터 이 만화책을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예 안 보면서 지냈다. 50권쯤 나왔을 무렵 ‘아이고, 50권이나 되는 만화책을 언제 다 사서 보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지나치고 보니 어느새 100권이 나왔다. 그래, 100권까지 되고 보니 ‘으악, 100권이나 되면 이 만화책을 다 장만하자면 돈이 얼마가 되지? 눈알이 핑핑 도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나고 보니, 이제는 111권까지 나온다.

 예쁘게 쌓인 만화책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만화책방에 찾아간 나는 《아빠는 요리사》 111권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본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이 111권부터라도 읽자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마 머잖아 150권이 나오는 모습을 볼 테며, 어느덧 200권까지 나오는 모습을 마주할 테지.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면, 나로서는 내 눈을 고이 감아 흙으로 돌아가는 때까지 《아빠는 요리사》를 한 권조차 못 보며 지내겠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 앞선 백열 권은 못 읽을 수 있다. 이제부터 읽으면 되지. 만화책방 일꾼한테 여쭈니, 앞쪽 1권부터 100권 사이에는 다시 안 찍는 책이 있기 때문에 짝을 다 맞추기란 몹시 힘들단다. 그러니까, 앞엣권을 사자고 한다면 배부른 꿈일 수 있다. 앞엣권을 빈틈없이 장만해서 읽어도 기쁠 테지만, 111권부터 읽어도 기쁜 일이 되리라 본다. 바야흐로 111권째를 그린 만화쟁이 한 사람 손길과 마음길을 곱씹으면서 이 한 권에 깃든 사랑과 꿈을 내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집에서 밥하기를 도맡는 아버지로서, 나는 우리 살림집에서 우리 살붙이한테 어떠한 밥을 어떠한 맛이 나도록 어떠한 손품을 들여 얼마나 알뜰살뜰 사랑스레 차리는가를 돌아본다. 아이가 밥상머리에서 딴짓을 하거나 제대로 말을 안 듣는다며 골을 부리면서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느냐 되씹는다. 아버지로서 사랑을 담아 밥상을 차리면 아이 또한 시나브로 아버지 사랑을 느끼면서 즐거이 먹지 않겠는가. 채근한대서 더 맛나게 먹을 수 없다. 닦달하거나 나무란대서 아이가 밥을 더 기쁘게 먹을 수 없다. 차리는 마음은 차리는 마음대로 웃음으로 차리고, 차린 밥상 앞에서 다 함께 조용히 비손을 하면서, 오늘 우리한테 좋은 먹을거리가 되어 준 목숨한테 고맙다고 꾸벅 절을 하면 넉넉하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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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백기완 님이 어느 땅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 막상 떠올려 보자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황해도였던가 평안도였던가. 황해도가 아니었나 싶은데, 함경도이든 전라도이든 크게 보자면 한겨레 삶터에서 태어난 사람이요, 좁게 보자면 여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백기완 님이 내놓은 책을 모두 읽었다. 예전 책부터 요즈음 책까지 모두 읽었다. 백기완 님이 쓴 시집 《젊은 날》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로 나왔던 판에 따라 다 있다. 예부터 백기완 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고 생각했다. 백기완 님은 ‘당신 고향마을을 몹시 아끼며 사랑하는’ 분이다.

 백기완 님을 일컬어 ‘우리 말을 잘 살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왜 사람들이 백기완 님을 일컬으며 이런 이름표를 붙이는지 알쏭달쏭하다. 백기완 님 책을 제대로 안 읽었기 때문일까. 엉터리로 읽었기 때문일까. 읽다가 덮었기 때문일까. 백기완 님 삶과 넋을 읽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우리 말을 잘 살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는 백기완 님한테 걸맞지 않다고 느낀다. 백기완 님은 ‘우리 말을 잘 살리는’ 사람이 아니다. 백기완 님은 당신이 태어나서 자란 시골마을 사람들이 쓰던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태어나서 자란 시골마을, 곧 당신 고향마을 사람들 말마디 가운데 ‘한겨레 삶터’ 곳곳에서 함께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말을 즐겁게 나누는 사람이다. 전라도말을 전라도사람만 쓰거나 경상도말을 경상도사람만 쓰기보다, 서로서로 예쁘게 잘 쓰는 말을 다 함께 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며, 몸소 이러한 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백기완 님은 서울말을 표준말로 삼는 흐름을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서울사람이 예부터 서울에서 살아오며 쓰던 말이 오늘날 서울말이 아니기도 할 뿐더러, 지식인들이 표준말이건 서울말이건 한국말이건 너무 좁다랗게 옭아매는 모습을 몹시 안타까이 바라본다. 우리가 쓸 말이란 우리 겨레가 저마다 뿌리내린 고향마을에서 살가이 주고받는 말을 한껏 북돋우면서 나누는 말이어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이 백기완 님이라고 느낀다.

 백기완 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 말을 잘 살려서 쓴다고 뽐내지 않는다. 백기완 님은 당신이야말로 우리 말을 알뜰히 사랑한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은 당신 고향마을 사람들 구성지며 착한 말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온몸으로 아낀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인천사람으로서 인천말을 한다. 인천말은 부천말이나 수원말하고 다르다. 인천말은 서울말이나 경기말하고 다르다. 수원사람이 쓰는 수원말은 수원말대로 곱다. 내가 쓰는 인천말은 내 인천말대로 곱다. 더 곱거나 덜 고운 말이란 없다고 느낀다. 서로서로 똑같이 고울 뿐 아니라, 서로서로 나란히 예쁘다. 고운 사람으로서 고운 넋에 걸맞게 고운 말을 쓴다. 예쁜 삶을 사랑하면서 예쁜 꿈을 품고 예쁜 글을 쓴다. 백기완 님은 당신 고향을 예쁘게 사랑하며 곱게 아끼는 푸근한 할아버지이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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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차와 책읽기


 서울 홍대 앞에서 전철을 내린다. 사람들이 참 미어터진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 가운데 안 바쁜 사람은 아주 느리게 걷는다. 느리게 걸으면서 뒷사람 가운데 바쁜 이가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걸을 때에는 자리를 조금만 차지하면서 한쪽으로 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복판을 널따랗게 차지하며 여럿이 손을 나란히 잡으면서 걸으니, 이리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저리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미적거리는 앞사람 궁둥짝만 멀뚱멀뚱 올려다보면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끙끙거려야 한다.

 나 또한 이 미어터지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미어터지는 한 사람이다. 나 또한 사람물결을 이루는 한 사람이다. 바깥으로 나와도 길에는 사람으로 꽉 찬다. 참 놀란다. 언제 보아도 놀라는 모습이다. 서울에는 어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좁은 곳에 어쩜 이렇게 복닥거리면서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귀거나 어울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숲을 헤치고 만화책방에 들어간다. 만화책 28000원어치 고른다. ㅇ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만화책 두 권을 살까 하고 집어들다가는 150쪽이 안 되는 얄팍한 판인데 자그마치 12000원이나 붙은 모습에 깜짝 놀란다. 얌전히 내려놓는다. ㅇ출판사는 무슨 만화책을 이렇게 비싸게 찍어서 내놓을까. 더 값나가는 종이에 만화를 찍는다고 만화책 품격이 올라가는가. 여느 만화책은 물건값이 올랐어도 요즈음 4200원인데, ㅇ출판사는 왜 이리 비싼값을 버젓이 붙이는가. 여느 만화책 세 권 살 만한 값을 양장도 아니요 애장판도 아니며 빛깔그림이 들어간 만화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비싸게 값을 붙인다.

 망원역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책값을 셈한 다음 가방에 넣는다. 헐레벌떡 달려서 길을 건넌다. 푸른불이 깜빡거릴 때에 겨우 찻길 한복판 버스타는곳에 들어선다. 히유, 한숨을 돌린다. 어느 버스를 타야 하나 살핀다. 버스길 알림판을 여러 곳에 붙이면 좋으련만 한쪽에만 붙여놓아서 들여다보기 참 힘들다.

 271번 버스를 탄다. 버스가 들어올 때부터 안에 사람이 꽤 많이 탔다. 타도 되나 고개를 갸웃하는데, 내리는 사람이 제법 된다. 그러면 타고 되겠구나. 두 정류장을 더 가니, 내리는 사람은 적고 타는 사람만 많다. 버스를 모는 일꾼이 새로 타려는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한다. “뒷차 금방 오니까 뒷차 타세요. 너무 밀려요.” 그렇지만 뒷차를 기다려 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이 버스에 오른다. 가뜩이나 미어터지는 버스는 더욱 미어터진다.

 내가 버스에 타려 할 때에 버스 일꾼이 뒷차를 타라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바삐 가야 한다면 그냥 탔을까. 곰곰이 헤아린다. 음, 나도 그냥 버스에 오르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까. 옆지기하고 아이랑 함께 마실을 와서 서울버스를 타야 하는 몸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아무래도 나는 미어터지는 차를 타지 말고 텅 빈 뒷차를 타라는 버스 일꾼 말을 따랐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뒷차를 기다리다 보면 ‘버스 일꾼 말처럼 뒷차가 금세 오기’도 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뒷차는 올 생각을 않는’ 때가 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때를 맞추어 가야 하기는 하지만, 서울에는 버스도 많고 차도 많으니까 그냥 기다려 보겠지. 그러나, “뒷차 타셔요”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힘들다고 느낀다. 겪어 보니 그렇다.

 시골집으로 옮기기 앞서를 떠올린다. 아직 인천에서 살아가던 때, 식구들과 함께 마실을 간다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일을 떠올린다. 시내버스에 사람이 꽉 차면 으레 이 꽉 찬 차를 보냈다. 좀 홀가분한 뒷차를 기다렸다. 꽉 찬 버스가 지나가면 으레 뒷차는 텅 비기 마련이요, 곧 새로 오기 일쑤인데, 이러하지 않을 때도 꽤 되지만, 홀가분한 뒷차가 금세 오는 적도 잦다.

 나는 새로 나오는 책을 그때그때 읽는 일을 좋아한다. 이와 함께, 새로 나오는 책을 한두 해쯤 묵힌 다음 읽는 일도 좋아한다. 때로는 다섯 해나 열 해쯤을 기다린 끝에 읽기도 한다. 모든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그때그때 맞추어 읽을 수 없기 때문이요, 내 마음밭을 차분히 가다듬은 다음에 읽어야 할 책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내 가슴이 어느 책 하나를 받아들일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고 여긴다면, 책상맡에 오래도록 꽂기만 한다. 때로는 나중에 사자고 생각한다. 요사이는 나중에 사자고 생각하기보다는, 어찌 되든 사 놓고 보기 일쑤이다. 요사이는 한두 해쯤 지나고 나서 품절이 된다든지 새책방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는 책이 퍽 많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는 한 번 지나치면 두 번 다시 못 만나는 책이 매우 많기도 하다.

 그때그때 새로 나오는 흐름에 맞추어 읽는 책은, 새로 나온 느낌을 곱씹으면서 즐겁게 읽는다. 몇 해쯤 묵힌 다음 읽는 책은, 이 책이 참말로 내가 오래도록 곁에 두면서 읽을 만한 책인가를 돌아보면서 즐거이 읽는다.

 어떠한 책이든 한 번 읽고 치운다면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책이든 한 번 읽고 나서 두 번 세 번 잇달아 읽는다든지, 한두 해 뒤에 다시 읽고프다고 생각할 만큼 되어야 비로소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열 번쯤 되풀이해서 읽는다든지, 여러 사람하고 돌려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살 만한 값이나 보람이나 뜻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뒷차 기다리기를 좋아한다. 앞차를 타고 먼저 간다고 해서 나쁘지 않다. 사람들 물결이 앞차로 쏠리면서 버스타는곳에 미어터지던 사람이 싹 줄어 호젓해지는 느낌이 좋고, 한결 홀가분한 뒷차를 가뿐히 타면서 창밖을 느긋하게 내다보는 느낌이 좋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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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멀미


 옆지기는 차멀미를 한다. 나도 어릴 때에 차멀미를 했는데, 어느결에 차멀미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차를 탈 때에 속이 좋지는 않다. 그저 꾸욱 참을 뿐이지.

 이제 나도 옆지기만큼은 아니지만 차멀미를 한다. 시골집에서 지내다가 때때로 볼일 보러 도시로 나갈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괴롭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내리’니까.

 볼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미식거림을 참아야 한다. 오늘은 그나마 빈속으로 나왔기에 서울 닿을 무렵에 눈알이 핑핑 돌지만 그럭저럭 버틴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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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환경연대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 


 발굽병이든 구제역이든 다 괜찮아요
 ― 제삶을 제대로 제값 치르며 살아가요



 도시에는 도시가스가 있습니다. 밥을 하거나 따순물을 쓸 때에 그닥 근심하지 않습니다. 꼭지만 돌리면 따순물 졸졸 흐릅니다.

 도시가스는 시골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골가스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도시라 해서 모든 도시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빈민촌’이라 하거나 ‘철거민촌’이라고도 하며 ‘가난한 골목집’이라고도 하는, 제가 느끼기로는 그예 달동네랑 꽃동네인 집에는 도시가스가 잘 안들어갑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도 달을 보기 어렵지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면 밤하늘 달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에는 지킴이가 ‘지키는’ 꽃밭만 있으나, 골목동네 곳곳에는 골목사람 스스로 일구는 텃밭과 꽃밭이 예쁘장합니다.

 인천 창영동에서 첫째를 낳아 살던 때, 우리 집에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왔습니다. 머잖아 통째로 허물어 아파트로 확 바꾸려는 도시 정책 때문에 이러한 집은 도시에 깃들어도 도시 살림집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식구는 지난여름에 인천 골목집을 떠나 음성 멧골자락 시골집으로 옮겼습니다. 시골 멧자락에 붙은 집인 만큼 도시가스 구경은 꿈도 꾸지 않고, 전화줄에 딸린 인터넷은 되게 느리기도 하며, 면내나 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드뭅니다. 자가용이 없을 뿐더러 자가용 몰 생각을 안 하고 자가용 장만하거나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바깥마실을 할 때면 시골버스 지나는 때를 맞추어 큰길로 걸어 나갑니다. 으레 이십 분은 걷고, 다시 이십 분쯤 기다려 시골버스를 탑니다.

 누군가는 ‘느리게 살기’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냥 시골살이입니다. 하루에 여섯 대 오가는 시골버스에 맞추어 읍내를 다녀옵니다. ‘천천히’라기보다 시골살이에 맞추는 나날입니다.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더위를 느낍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느끼고, 봄에는 봄빛을 마주합니다.

 지난겨울 하룻밤 잘못한 탓에 물이 얼어붙어 삼월이 되어도 녹지 않으니 벌써 넉 달째 접어들도록 물을 길어다가 씁니다. 밥하고 설거지할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는 빨랫감을 들고 가서 하며, 몸을 씻기 참 힘듭니다. 어찌저찌 한겨울 지났고 곧 얼음이 사르르 녹아 물 한 그릇 고맙게 쓸 날을 맞이하겠지요. 힘들지만 힘든 대로 요모조모 더 알뜰히 살아내면 됩니다.

 우리 살림은 꽤나 가난해서 흔한 말로 ‘최저생계비조차 안 되는 살림돈’으로 어영부영 꾸립니다. 돈이 없으니 어디 나라밖으로 다녀온다든지 무슨 맛난 밥집을 찾아다닌다든지 예쁘장한 옷을 사입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여러 생협 물건을 장만해서 씁니다. 으레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여기지만, 생협 물건은 안 비쌉니다. 알맞게 붙인 값이요 알뜰살뜰 쓸 물건으로 매긴 값이에요. 몸소 논밭일을 하는 사람은 알 테지요. 똥거름 내고 손수 김매어 흙을 일군 먹을거리하고 풀약이랑 비료를 먹인 먹을거리랑 같은 값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내가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 옳게 벼농사 지은 일꾼 땀방울에 값하도록 돈을 제대로 써야 올바릅니다. 생협 고기는 마트 고기보다 비싸다 하지만 마땅히 옳은 고기이고, 더 맛있으며, 더 알맞게 즐기기 마련인데다가, 고맙게 얻습니다. 항생제와 사료 안 먹인 고기란 매우 드뭅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집에 살면서 발굽병이고 뭐고를 안 느낍니다. 우리는 고기를 사먹는 일이 없고, 집에서 집짐승을 안 기릅니다. 발굽병이란, 거의 날마다 아주 많이 값싸게 고기를 먹으려 하는 도시사람들, 더욱이 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라도 고기를 냠냠짭짭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도시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제값을 치를 줄 알며, 제삶을 꾸릴 줄 알아야, 발굽병이건 4대강사업이건 이 나라에 함부로 깃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발굽병이란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긴 병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사람만 받습니다. 도시사람이야 발굽병이 터져도 고기를 예전하고 똑같이 먹으나, 시골사람은 온 마을을 소독한다느니 출입통제라느니 하면서 꽤나 시끌벅적합니다. 그래도 지난 설날부터 장마당이 다시 열렸으니, 장마당마실을 못할 일은 이제 없겠지요.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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