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54] 포인트 라이팅, 비즈니스 라이팅

 글을 쓰는 사람은 오로지 한문을 배워 한문을 쓰던 지난날입니다. 이 흐름이 오래도록 이어졌기 때문에 글을 쓴다 할 때에 ‘글쓰기’라 하지 않고 ‘작문(作文)’이라는 한자말을 쓰고 말았어요. 그러나 이 말마디는 뜻있는 분들이 오래도록 애쓴 끝에 ‘글쓰기’로 갈음하여 자리잡을 수 있었고, 이제는 대학입시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조차 ‘글쓰기 학원’이라는 이름을 내걸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책과 글쓰기를 지식으로 말하는 이들은 ‘작문’이라는 중국말이나 ‘글쓰기’라는 한국말이 아닌 ‘라이팅(writing)’이라는 영어를 씁니다. ‘포인트 라이팅’이란 무엇이고, ‘비즈니스 라이팅’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이 될까요. 우리는 우리 말로 생각하며 좋은 뜻을 나눌 수는 없는 겨레인가요.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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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3] World Class Luxury, ALPHEON

 한국 자동차 회사가 아닌 나라밖 자동차 회사이니까 자동차에 붙이는 이름이 우리 말이기 어렵고, 누리집에서 이 자동차를 알릴 때에도 우리 말로 알리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한국사람이요, 자동차를 파는 사람은 한국말로 한국사람한테 이야기하면서 팔아야 합니다. 자동차 이름이 영어요, 자동차를 돋보이도록 붙이는 말마디 또한 “World Class Luxury”라 할지라도 이곳저곳 어떤 기능이 있는가를 밝힐 때에는 한국말로 풀어서 적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로 적을 때에도 ‘월드클래스 오너’라고 말하고 마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사람한테는 무슨 넋과 어떤 얼이 있다 할는지요.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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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읽으려고 하는 책은


 사람들이 읽으려고 하는 책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싶은 길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길에 따라 사람들이 읽으려고 하는 책이 달라집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길에 따라 내가 읽으려고 하는 책이 달라집니다.

 나 스스로 내 아이를 사랑하고 싶다면, 내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먼저 고릅니다. 내 아이를 한결 깊이 사랑하는 길을 걷고 싶다면, 굳이 내 아이와 읽을 책을 고르기보다 아이 손을 맞잡고 놀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딱히 책이 없더라도 내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얼마든지 신나게 걸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갑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골 터전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 살아갑니다. 도시에서 살아도 더 큰 도시로 들어가려고 애씁니다. 더 큰 도시에서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찾으려고 힘씁니다. 더 작은 도시로 가거나 시골마을로 가려고 마음쓰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장만해서 즐겁게 모는 사람은 자가용을 장만해서 즐겁게 모는 길에 걸맞게 책을 고릅니다. 또는, 책 따위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도시에서 빽빽히 밀리는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리는 사람은 커다란 도시에서 빽빽히 밀리는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리는 길에 따라 책을 살핍니다. 또는, 책이란 아예 생각할 수 없이 고단합니다.

 여성해방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는대서 남녀평등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여성해방 이야기 지식을 더 쌓는 일하고 남녀평등 이루는 길은 같지 않습니다. 삶은 삶이고 지식은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요리책을 많이 읽어 이 요리 저 요리를 안다 한들, 맛집을 많이 다녀 맛난 밥으로 무엇이 있다고 안다 한들, 나 스스로 밥을 차리지 않는다면 이 모든 지식은 지식으로 그치지, 삶으로 이어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맡을 몫이란 교과서나 교재에 담긴 지식을 아이들이 머리속에 더 많이 가두도록 내모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 스스로 지식을 바란다면 아이 스스로 바라는 지식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갈고닦도록 돕는 일이 교사가 할 몫입니다. 아이가 지식을 찾으려 할 때에 지식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며, 지식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어떠한 길을 거쳐야 하는가를 찬찬히 밝히는 일이 교사가 할 몫입니다. 교사는 아이들한테 지식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이란 교재나 교과서에 모두 담겼으니까요. 교사는 몸으로 삶을 보여주면서 삶을 물려줄 뿐입니다.

 이른바 ‘진보대연합’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아무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말로 진보가 크게 하나가 되는 일인지, 아니면 진보이든 아니든 크게 하나가 되는 일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이러한 이름을 내거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름대로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일 텐데, 이렇게 굵직한 이름 하나로 모여서 ‘아무개 반대’를 이루는 일만 하겠다는 소리이지, 정작 ‘진보를 이루는 어떠한 일’이라든지 ‘우리 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어떠한 일’이라든지 ‘진보이든 보수이든 누구이든 즐겁고 예쁘며 착하게 살아가는 좋은 일’을 하겠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자리에서 ‘아무개 반대’를 이루겠다는 소리일 뿐입니다. 다만, ‘아무개 반대’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아무개 반대’를 할 만하며, 아무개를 반대하는 일로도 좋은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아무개를 반대하면서 내 삶은 어느 쪽으로 어떻게 무엇이 나아지거나 좋아질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삶을 어느 쪽으로 어떻게 나아가도록 하고 싶은가요.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얼른 죽어서 거꾸러지기를 바라는가요.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한결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이이가 착하거나 참다운 길을 걷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가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욱 따사롭고 믿음직하게 살아가도록 도우면서, 저마다 옳고 바르면서 어여쁜 길을 씩씩하게 걷는 데에 내 몫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은가요.

 ‘진보 어깨동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루어질 만한 일이란 ‘평화 어깨동무’나 ‘평등 어깨동무’나 ‘일자리 어깨동무’나 ‘통일 어깨동무’나 ‘책읽기 어깨동무’나 ‘영화사랑 어깨동무’나 ‘집살림 어깨동무’입니다. 나 스스로 집살림부터 책읽기와 일자리를 거쳐 평화로운 삶을 어깨동무할 때에 바야흐로 진보 어깨동무이지, 처음부터 진보 어깨동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초원의 집》 둘째 권을 읽으면, “아빠는 다시 시냇가로 가서 물을 길어 왔고, 그동안 메리와 로라는 엄마를 도와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37쪽).”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섯 식구 작은 살림은 ‘엄마가 물을 길어’ 올 수 있고 ‘아빠가 아침을 차리며 두 딸아이가 아빠를 도와 밥을 하든 엄마를 도와 물을 긷든’ 할 수 있습니다. 밥을 하는 평화와 ‘아직 학교는 가 본 적 없는 어린 아이들이 집일을 거들며 함께 밥을 하고 함께 밥을 먹는’ 사랑이 깃드는 나날이 곧 책이면서 삶이고 사랑이면서 믿음입니다.

 아름다운 삶이란 진보나 보수로 나누지 않고, 착한 사랑은 좌파나 우파로 가르지 않으며, 참다운 책이란 어린이와 어른 모두 흐뭇하게 맞아들입니다.

 오늘날 한국사람 가운데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고픈 사람은 매우 드문 듯합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사람치고 삶과 사랑과 책을 예쁘게 하나로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아침에 안친 밥냄비에서 밥내음이 솔솔 납니다. 이제 밥상을 행주로 닦고 수저를 놓아야겠습니다.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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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책읽기


 손으로 아이 이마를 쓰다듬으면 아이 몸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옆지기 어깨나 허리나 다리를 주무르면 옆지기 몸이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흙을 쥐어 사르르 떨어뜨리면 흙이 어떠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손으로 나뭇잎이나 풀잎을 쥐어 스르르 어루만지면 잎사귀가 어떠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눈으로 보아도 척 알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눈으로 보기 앞서 살갗으로 다가오는 느낌으로 훤히 알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책으로 읽은 앎조각에 기대어 안다 할 수 있겠지요.

 글 한 줄이나 책 한 권에 너른 사랑을 담았는지 얕은 돈셈이 스몄는지는, 책을 가만히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고 슥 훑으면서도 알 수 있으며 껍데기만 보아도 훤히 꿰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알며 나누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누구랑 이웃하는 사람인가요.

 내 손길은 무엇을 느끼려 하고, 나는 어떻게 느낀 이야기를 내 앎조각으로 받아들이려 하며,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픈 목숨인지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눈으로 책을 읽습니다.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몸으로 책을 읽습니다. 귀로 책을 읽습니다. 발가락으로 책을 읽습니다. 머리로 책을 읽습니다. 나는 이렇게도 책을 읽고 저렇게도 책을 읽습니다. 책 하나를 여러 가지로 읽습니다. 책 하나를 오롯이 읽자면 내 삶을 예쁘게 바쳐야 합니다.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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圖說 古事記 (ふくろうの本) (單行本)
篠山 紀信 / 河出書房新社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말하고 보여주고픈 사진책은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 다만, 시노야마 기신 님 사진 가운데 이와 같은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기에, 이이 문화재 사진책에 이 글을 걸친다.)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담지 않은 예쁜 한국사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9]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シルクロ-ド (2) 韓國》(集英社,1982)



 일본 사진쟁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님은 일본에서 내로라 하는 여자 배우 사진을 꽤 많이 찍었습니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여자 배우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할 만한 사진쟁이일 텐데, 시노야마 기신 님이 내놓은 사진책은 ‘여자 배우 사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문화유적 사진을 곧잘 찍었으며, ‘비단길’을 돌아본 발자국을 그러모아 두툼한 사진책 《シルクロ-ド》를 여덟 권짜리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비롯해서 한국과 중국을 거쳐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서 마무리짓는 《シルクロ-ド》 여덟 권인데, 이 가운데 둘째 권이 한국이고, 여덟 권 가운데 둘째 권 한국 이야기에서 ‘여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일본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을 찍기란 한결 수월할 텐데 외려 일본 이야기 다룬 첫째 권에서조차 일본사람 모습은 얼마 없습니다. 거의 모두 ‘비단길이 일본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 하는 문화유적 사진투성이입니다.

 이란에서야 사람 사진 찍기가 힘들밖에 없다지만, 중동이든 중국이든 파키스탄이든 문화유적 사진이 꽤 많이 차지합니다. 뜻밖이라 할 만한 사진책인 《シルクロ-ド》이면서 뜻밖이라 할 만한 엮음새인 《シルクロ-ド》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보다 한국 이야기 담은 둘째 권에서 ‘여느 한국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다 보니, 1982년에 나온 이 사진책을 돌아보면서 1970년대 끝무렵과 1981년 즈음 한국땅 한국사람 자취를 꽤 알뜰살뜰 느낍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集英社,1982)을 펼치면, 책 겉그림부터 무지개빛 사진입니다. 비단길 사진책 여덟 권 가운데 흑백사진은 한 장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문화유적을 담을 때에 흑백사진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고도 할 터이나, 사람 사는 발자국을 담는 ‘한국 사진쟁이 사진’은 으레 흑백입니다.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진쟁이이든 외국 사진쟁이이든 거의 늘 흑백입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 《シルクロ-ド》처럼 무지개빛으로 아리땁게 채우는 일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집식구와 《シルクロ-ド》 여덟 권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생각합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이 빚은 《シルクロ-ド》이든, 이이가 담은 일본 여자 배우 사진이든, 이이는 ‘예쁘게 느껴 예쁘게 바라본 사람을 예쁘게 읽을 예쁜 사진’으로 태어나도록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느낌은 무지개빛이 아닌 흑백으로 담을 때에도 똑같이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토몬 켄 님이나 기무라 이헤이 님이 담은 사람사진을 들여다보면, 흑백이지만 하나도 흑백 같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데, 시노야마 기신 님 사람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고운 무지개빛이면서 이 무지개빛을 흑백으로 바꾼다 한들 무지개빛 느낌이 사라질 수 없구나 싶어요. 게다가, 무지개빛이 아니고서는 이 느낌을 사진쟁이부터 예쁘다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러한 무지개빛을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무지개빛으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내 삶이 얼마나 무지개빛인가를 모르며’ 지나치기 쉽겠구나 싶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 겉껍데기에는 흰옷을 입고 춤추는 할아버지 사진이 담깁니다. 겉껍데기를 열면 사진책 겉장에는 아기를 나란히 업은 두 계집아이 사진이 담깁니다.

 겉껍데기 사진이 어느 동네 무슨 사진인지를 알아챌 한국사람이나 인천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만, 겉껍데기 춤추는 흰옷 할배 사진은, ‘이제는 헐려 사라진 인천공설운동장(이 운동장은 자그마치 1930년대에 터를 닦은 역사가 매우 깊은 곳입니다만 인천시는 이런 역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며, 이 공설운동장하고 옆에 있던 야구장을 함께 허물었습니다. 인천 숭의야구장 또는 도원야구장은 1920년대에 웃터골이라는 데에 처음으로 마련되었다가 이제는 헐린 자리에 1934년부터 옮겨져서 2008년까지 있다가 공설운동장과 함께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에서 민속무용대회를 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로, 사진에 나온 흰옷 할배는 학춤을 춥니다. 사진 오른쪽 아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숭의3동 꼭대기 전도관 건물과 밑으로 죽 이어진 골목집 모습이 보입니다. 아는 사람이 드물 테지만, 황해도 은율탈춤은 인천에서 하고, 무형문화재도 인천에서 지정되었습니다. 전국 민속무용대회를 인천에서 할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린 날 공설운동장에서 했던 민속무용대회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인천에서 민속무용대회를 하던 이무렵이든 다른 무렵이든, 한겨레 여느 사람들이 즐기거나 누리던 옛춤을 사진으로 담은 한국 사진쟁이는 얼마쯤 있었을까요.

 이보다 한국땅 여느 사람이 즐기는 문화라든지 한국땅 여느 사람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애써 흑백으로 담는 사진이 아니라, 빛깔 고운 결 그대로 무지개빛을 살리는 사진쟁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서 골목길 사진을 찍는 꽤 많은 분들은 거의 모두 흑백으로만 바라보며 흑백으로만 찍기 일쑤입니다. 삶터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흑백이기 때문에 흑백사진을 찍을밖에 없을 테고, 삶터와 사람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흑백인 탓에 흑백사진을 찍기만 해요. 골목길 모습이 흑백사진하고 잘 어울리니까 흑백사진을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골목길 삶자락을 ‘흑과 백’이라는 두 갈래로만 쩍 갈라서 바라보니까, 한국땅 숱한 사진쟁이는 골목길 사진을 흑백사진으로만 담기 일쑤이며, 때때로 무지개빛으로 담는다 하더라도 ‘흑과 백’이라는 틀을 스스로 떨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골목동네 사람과 삶터가 얼마나 아리땁게 빛나면서 결이 고운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땅 여느 골목길 모습도 제법 사진으로 옮깁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땅 여느 골목을 다른 사진하고 똑같이 무지개빛으로 바라보며 무지개빛으로 담습니다. 햇볕과 그림자가 알맞게 드리운 어여쁜 모습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니, 놓칠 까닭이 없으며, 햇볕과 그림자를 기쁘게 받아들여요. 신나게 즐깁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은 ‘비단길’이 사진책 줄거리입니다만, 햇볕과 그림자를 예쁘게 맞아들여 기쁘게 즐기는 한국사람하고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쟁이 스스로 기쁘게 즐기는 예쁜 넋을 곱다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탈리아에서 비롯하여 중동과 아시아 여러 나라와 중국을 거쳐 한국땅을 마지막으로 해서 일본으로 들어온 비단길 문화는 ‘한국에서 예쁘게 꽃피웠구나’ 하고 시노야마 기신 님부터 느끼기 때문에, 시노야마 기신 님 사진책 《シルクロ-ド》 여덟 권 가운데 한국 이야기에서는 사람사진이 아주 많이 나올 뿐 아니라, 꽤 재미나기도 하며, 참 살갑기까지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애써 문화유적을 돌아보며 사진으로 담을 까닭이 없는 셈입니다. 중국 문화이건 유럽 문화이건, 또 일본이나 몽골이나 무슨무슨 서양 문화이건,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저희 나름대로 예쁘게 곰삭이며 신나게 살아가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예쁜 사람을 예쁜 눈길과 손길을 거쳐 예쁜 사진으로 빚으면 됩니다. 어찌 보면 ‘비단길 사진’ 가운데에 ‘옷감집 사진’을 넣는 모습이라든지 ‘자개장 문을 열고 이불과 베개 놓인’ 모습 찍은 사진이라든지 뜬금없다 할 만합니다. 여느 살림집 여느 책상머리 모습 사진이라든지 시골 논밭 돌보는 사람들이 새참 먹는 모습 사진이라든지 가을날 울긋불긋 물든 나무 밑에서 올망졸망 노는 어린이들 담은 사진 또한 비단길 문화랑 뭐가 이어졌느냐 할 만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여느 사람 수수한 삶이야말로 ‘문화’이자 ‘비단길 문화’입니다. 박물관에 모셔진 궁궐사람 금관이건 양반집 술병이건 똑같이 문화라 할 터이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는 여느 사람 수수한 삶이 곧바로 문화이자 비단길 문화입니다. 한국땅 사진쟁이조차 제대로 사진으로 담지 않은 한국사람 모습이기에, 《シルクロ-ド》를 내놓은 시노야마 기신 님은 누구보다 이 같은 모습을 더 파고들며 가슴으로 껴안으려 했다고 느껴요.

 사진을 함께 바라보던 옆지기는 문득 “포대기 빛깔이 참으로 곱다”고 말합니다. 문득 이런 말을 뱉으면서 “우리 나라에서 포대기 사진을 칼라로 찍은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옆지기가 문득 느끼면서 뱉은 말마디와 문득 물은 말마디에 말문이 막힙니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저는 이렇게 느끼지 못했고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골목길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흑백사진으로 빚을 수 없다고 느껴 무지개빛으로 사진을 담기는 하나, 포대기 빛깔을 고이 돌아보거나 느끼려 하지 못했어요. 옆지기 말을 듣고 나서 사진을 가만히 다시 돌아보며 새삼 깨닫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에서는 아기 업은 어린 계집아이 포대기 빛깔뿐 아니라, 여느 저잣거리에서 아기를 업은 아줌마들 포대기 빛깔이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를 뿐 아니라 모두 밝고 맑으며 곱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이 빛깔을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담지 않은 예쁜 한국사람을 언제 어디에서나 듬뿍 느끼면서 신나게 사진기 단추를 눌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1970∼80년대 한국사람이 얼마나 예쁘며 재미나고 즐겁게 알뜰살뜰 살림을 꾸렸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국사람 한국사진으로는 알아챌 길이 없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거나 좋아한다는 서양사람조차 한국사람 어여쁜 무지개빛까지 알아채거나 알아보지는 못해요. 그래도 한국사람은 ‘서양사람이 바라본 한국 모습 사진’을 썩 좋아하는 듯합니다.

 일제강점기 역사와 임진왜란 역사 때문에 한국사람이 무던히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일본사람 가운데 빛을 빛 그대로 사랑하며 아끼는 사진쟁이가 틈틈이 한국사람 어여쁜 무지개빛을 조용히 예쁘게 사진으로 옮겨서 고즈넉하게 ‘사진 문화유산’을 새삼스레 선물처럼 내밀어 줍니다.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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