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3.28. 

하루하루 놀이가 늘어난다. 몸이 그만큼 단단해지며 집안이 좁다고 느낀다. 그래, 이제 곧 밖에서 혼자서 잘 뛰어놀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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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이 땅 국어교사가 읽었으면 하는 책



 저는 지난 2007년에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제 도서관은 제가 읽은 책을 그러모아 자그맣게 꾸몄습니다. 지난 2010년에 인천 골목동네를 떠나 충주 멧골자락에 깃든 ‘이오덕학교’ 밑으로 도서관을 옮겼습니다. 새로 옮긴 도서관에 책꽂이가 모자라 아직 바깥사람한테 문을 열지 않고, 이오덕학교 어린이와 푸름이만 드나들며 책을 읽도록 합니다. 사진책 도서관이라면서 멧골학교 어린이와 푸름이가 책을 읽도록 한다니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도서관에는 ‘사진책’을 비롯해 만화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과 인문책과 국어사전과 교육책과 문학책과 종교책과 다른 갖가지 책이 골고루 있거든요.

 사진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사진책을 마땅히 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진길을 걷는대서 사진책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길을 걷는 착하며 곧은 사람이 되자면, 먼저 ‘좋은 사진쟁이’가 되기에 앞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첫째를 낳았고, 2011년에 둘째를 낳습니다. 두 아이를 함께 보살피는 아버지로서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즐기지만, 아이를 낳기 앞서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몹시 좋아해서 꾸준히 장만하며 읽었습니다. 여느 사람 앞에서는 사진책 도서관을 꾸리는 한 사람이면서, 헌책방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보일 테지만, 다른 한쪽 모습으로는 어린이책과 그림책을 꽤 즐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국어교사로 일하는 분도 마찬가지일 텐데, 국어교사로 훌륭히 일하자면 ‘국어 교과목 교재’만 읽을 수 없습니다. 국어교사로서 우리 말글을 다룬 책을 함께 읽으며 배워야 하고, 국어사전도 자주 뒤적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 문학과 나라밖 문학도 꾸준히 읽으며 삭여야 해요. 우리 문학이나 나라밖 문학은 어린이문학부터 푸름이문학을 걸쳐 어른문학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추리문학도 있을 테고 공상과학문학도 있겠지요. 역사소설이나 시조나 하이쿠 또한 있을 테고요.

 소설을 살피면 법이나 의학을 다루는 소설이 있고, 정치나 사회를 다루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법’이나 ‘말을 다루는 법’뿐 아니라, 이 나라 역사와 사회와 정치와 교육 모두를 잘 살피며 올바로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곧, 수많은 갈래 수많은 책을 고루고루 마주하며 곰삭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을 읽는 국어교사라 할 때에도 수많은 갈래 수많은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찍기를 즐기려 하는 사람이라 할 때에도 ‘사진책’만 읽을 수 없습니다. 사회를 읽는 눈을 기르는 책을 함께 읽어야 하고,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을 다루는 책도 나란히 읽어야 해요. 학교나 집에서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린이 마음으로 다가서야 할 테니, 어린이책이나 그림책도 가까이하며 지내야겠지요.

 아직, 한국에서는 좋은 ‘어린이 사진책’이 없습니다만, 이웃 일본에는 훌륭한 ‘어린이 사진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자연과 생태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사진책’이나 ‘어린이 자연백과’를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에서 나온 책을 옮긴 판이 꽤 많구나 하고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1990년대에 한국말로 나온 《세계의 어린이》 서른네 권은 일본 사진쟁이들이 온누리 서른세 나라 어린이 한삶을 두루 살피며 담아낸 놀라운 사진책이에요. 《세계의 어린이》는 이제 판이 끊어져서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서른네 권이라든지 《웅진 과학 앨범》 84권을 헌책방에서 찾아보면서 찬찬히 사진을 살피고 책 엮음새를 돌아보면, 내가 어느 한 가지 사진감을 골라 사진으로 담는다 할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슬기롭게 배울 수 있어요. 《웅진 과학 앨범》 여든네 권 또한 일본 사진쟁이가 여든네 가지 자연 생태계 모습을 골고루 담은 책이고, 일본에서는 1983년에 처음 나왔어요.

 널리 이름나지 않은 사진쟁이였지만, 당신 딸아이가 태어나서 시집을 가는 날까지 꾸준하게 사진으로 담아 책으로 엮은 《윤미네 집》(전몽각 사진,포토넷 펴냄)은 우리 국어교사들한테 적잖이 도움이 되거나 살가운 사랑으로 스며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예쁘게 찍는대서 더 좋은 사진이 아니고, 더 멋지게 찍어야 더 돋보이는 사진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결 그대로 받아들여’ 수수하게 찍으면 돼요. 사진이 꼭 작품이 되어야 하거나, 사진이 반드시 예술이 되어야 하지 않거든요. 지갑이나 주머니에 늘 넣어 다니면서 틈틈이 꺼내어 보는 애틋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우리 집식구나 좋은 동무하고 나눌 수 있으면 흐뭇한 사진삶입니다.

 저는 ‘사진삶’이라는 낱말을 제 깜냥껏 지어서 씁니다. 국어사전에는 안 실린 낱말이지만, ‘책삶’이나 ‘사진삶’이나 ‘말삶’ 같은 낱말을 곧잘 써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언제나 내 삶인 줄을 느끼자는 뜻입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찍기를 즐기려는 국어교사라 한다면, 노상 사진삶을 헤아려 주셔요. 사진삶으로 내 삶을 돌이키면서 내 가슴으로 어여삐 스며드는 좋은 사진책을 한 달에 한 권이나 두 권씩 장만해 보셔요. 더도 덜도 아닌 다달이 한 권이나 두 권입니다.

 한꺼번에 더 많이 찾아본대서 내 사진 눈길을 한껏 북돋우지는 못해요. 돈이 많대서 한꺼번에 수백 권을 장만한들 이 사진책을 내 삶으로 삭이기는 어려워요. 다달이 한 권이나 두 권씩 날마다 들추며 기쁘게 배우겠다는 매무새로 사진책을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합니다. 한국사람 사진책도 좋고, 나라밖 사진책도 좋아요. 사진책은 값이 꽤 비싸다 할 만하지만, 사진책은 한 번 펼쳤다 덮는 책이 아니라, 적어도 1000번은 되읽는 책이기 때문에 오만 원이든 십만 원이든 하나도 비싼 값이 아니라고 느껴야 즐겁습니다.

 저는 하루나 이틀에 한 권 꼴로 사진책을 사서 읽자고 다짐하며 살아가는데, 자가용을 굴리지 않거나 굳이 적금을 붓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내 삶을 돌볼 수 있으면, 날마다 사진책 한 권 사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헌책방에서 오천 원짜리 사진책을 살 수 있고,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사진책을 산다면 다달이 삼사십만 원쯤 책값으로 쓰는 셈이거든요. 자가용을 안 몰면 기름값이 고스란히 책값이 됩니다.

 지난달에는 ‘이와고 마츠아키(岩合光昭)’라는 사진쟁이 사진책 《旅ゆけば猫》(日本出版社)를 인터넷책방에서 외국책 주문으로 샀고, 지지난달에는 ‘안젤 아담스(Ansel Adams)’라는 사진쟁이 사진책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Quercus)를 서울 홍대 앞 사진책 전문책방에서 장만했어요. 어린이 놀이를 사진으로 어떻게 담으면 좋을까 아리송하다면, ‘토몬 켄(土門 拳)’이라는 일본 사진쟁이 사진책 《腕白小僧がいた》(小學館)를 찾아보셔요. 편해문 님이 내놓은 《소꿉》(고래가그랬어 펴냄)도 참 괜찮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을 처음 찍으려 하는 분들한테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안목 펴냄) 같은 책이 퍽 괜찮다 싶은 길동무 노릇을 하리라 생각하는데, 이 자그마한 책을 즐거이 삭이자면 열 달에 걸쳐 열 번쯤 다시 읽으며 천천히 곱씹어야 한다고 느껴요. 열 해나 스무 해에 걸쳐 ‘좋은 사진열매 하나 맺고 싶다’는 꿈을 꾸는 국어교사라면 《농부》(전민조 사진,평민사 펴냄) 같은 사진책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사진 솜씨가 퍽 모자라다고 느끼거나 쑥쓰럽게 여기는 국어교사라면 《내 멋대로 사진찍기》(김윤기 씀,들녘 펴냄) 같은 사진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 펴냄)라는 책을 하나 내놓았고, 올해에는 《사진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새로 하나 내놓을 생각입니다. 제가 쓴 책에 붙인 이름 그대로, 국어교사로 아이들하고 하루하루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분들이라면, “좋은 내 삶 그대로 좋은 내 사진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좋은 내 아이들하고 좋은 하루하루 만나는 즐거움 그대로 좋은 내 사진이야기를 일구는” 보람을 누리거나 나눌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사진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내 매무새를 다스리는 길잡이가 되는 책이라면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씀,녹색평론사 펴냄)하고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이오덕 씀,삼인 펴냄)입니다. 먼저 올곧은 한 사람으로서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면서, 내 사진빛은 어여삐 보듬고 싶습니다. 먼저 올곧은 한 사람이 되지 않고서 사진빛만 예쁘장하게 꾸민대서 내 사진이 즐겁거나 반갑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먼저 내 오늘과 내 하루를 착하고 참다이 살아갈 때에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 모두 아름다이 빛난다고 느낍니다. (4344.4.7.나무.ㅎㄲㅅㄱ)
 

(전국국어교사모임 '함께여는 국어교육'에서 써 달라 하는 글을 하나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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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6 : 다시 읽는 책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라는 책이 2005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쯤부터 더는 나오지 않았는데, 올 2011년 3월에 새판으로 다시 나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말끔한 새옷을 입고 새로 태어납니다. 2005년에 읽은 책이지만 여섯 해 만에 새로 선보이는 새책을 다시 장만해서 다시 읽습니다. 예전 책은 옆에 놓고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밑줄을 긋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다가 예전에 읽던 책을 슬그머니 들춥니다. 어디 견주어 볼까? 오, 웬만한 곳에서 거의 비슷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조금 다른 데에서 밑줄을 긋는다면 내 생각이 바뀐 셈일까요? 예전과 오늘 같은 자리에서 밑줄을 긋거나 별을 그린다면 내 생각이 한결같은 셈일까요? 아니면 내 생각은 예나 이제나 틀에 박힌 채 고인 셈일까요? “이름이 없는 것은 상도 안 준다. 오로지 이름을 붙이는 것만이 관건이다. 읽기와 산수로만 지능이 평가된다. 감수성과 관찰력이 뛰어난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던 적은 언제였던가(66∼67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그으면서 별을 하나 그립니다. 예전 책에는 이 대목에 별을 둘 그렸습니다. 열 해쯤 뒤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 한다면, 그때에는 이 대목에 거듭 밑줄을 긋거나 별을 그릴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그때까지 내 넋이 이와 같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일구는 사람일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라는 책을 서울마실을 하며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 들렀을 때에 장만해서 읽습니다. 책방 〈풀무질〉에서는 이 책을 퍽 잘 보이는 자리에 예쁘장하게 얹어 놓습니다. 널리 보고 얼른 사서 읽으라는 뜻입니다. 제가 이 책을 사면서 〈풀무질〉에 있던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는 다 팔립니다. 〈풀무질〉 일꾼은 책방에서 다 팔린 이 책을 더 주문해서 사람들한테 알릴까요. 이 책이 놓이던 자리에 다른 ‘안 팔리는’ 책을 얹을까요.

 그림을 그리는 강우근 님은 오늘날 도시사람이 눈여겨보지 않는 들꽃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참말 ‘오늘날 도시사람’이 안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은 ‘오늘날 시골사람’이 아닌 ‘오늘날 도시사람’입니다. 오늘날 시골사람은 굳이 이 책을 안 읽어도 들꽃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아니, 들꽃보다는 들풀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먹는 풀인지 살피고, 어떻게 먹는 풀인지 돌아봅니다. 도시사람만 이 책을 읽는다 할 텐데, 도시사람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도시 둘레에 흐드러진 여느 들꽃이나 들풀을 어느 만큼 돌아볼 수 있을까요. 아니, 돌아보기는 할까 모르겠습니다.

 한낱 지식읽기로 그칠 책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도시사람한테 책 좀 그만 읽고 들꽃 좀 들여다보며 당신 삶을 되새기자 하는 이야기를 펼치는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이지만, 막상 이 책은 지식쌓기 책으로 그칠 듯해 무섭습니다.

 그러나 천 사람 만 사람이 속내를 꿰뚫으며 사랑할 수는 없겠지요. 너무 바쁘고 매이며 고달픈 도시살이일 테니까요. 다문 한 사람이라도 도시에서 들꽃이나 들풀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4344.4.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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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5 :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아름답다고도 말합니다. 책을 읽어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아름답습니다. 책을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도 말합니다. 내 마음을 옳고 바르게 가다듬도록 날마다 힘쓰지 않는다면 내 삶은 어느 하루라도 아름답기 어렵습니다.

 책이란 종이에 글을 찍을 때에 책이라 합니다. 종이에 글을 찍어도 얇은 종이에 찍어 날마다(또는 주마다) 내놓으면 신문이라 합니다. 종이에 글을 찍어도 다달이(또는 여러 달에 한 번) 내놓으면 잡지라 합니다.

 책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새기면 ‘글을 모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야기꾸러미를 글로 담았고, 이렇게 담은 글을 낱권으로 묶어 책이라 하겠지요. 책 가운데에는 얇은 책이 있고 두꺼운 책이 있으며 여러 권짜리 책이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이어도 책입니다. 글이 없이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으로 이루는 책이 있습니다. 글만 빼곡한 책이 있습니다. 어떠한 모습이든, 글을 담든 그림을 담든 만화를 담든 사진을 담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책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책이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종이로 묶은 책을 읽기도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하고 사귀면서 ‘사람책’을 읽는다고도 합니다. 사람책을 읽기 때문에, 꽃책이나 나무책이나 하늘책이나 바다책을 읽을 수 있겠지요. 봄에는 봄책을 읽고 겨울에는 겨울책을 읽습니다. 비가 오면 비책이요, 눈이 오면 눈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넋을 살려 사랑책일 테고, 믿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믿는 얼을 북돋아서 믿음책일 테지요.

 살림을 하는 사람한테는 살림책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한테는 일책입니다. 놀이를 하는 사람한테는 놀이책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노래책이요, 춤을 추면 춤책입니다. 어느 책이 더 나은 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책은 모자라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뜻이 있습니다. 책마다 값이 다릅니다.

 나로서는 내 하루를 아름다이 일구며 어여삐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손에 쥐는 책입니다. 아낌없이 사랑하는 내 삶이기를 바란다면, 나로서는 내 삶을 아낌없이 사랑할 넋을 보듬는 책을 바라봅니다. 심심풀이처럼 시간죽이기를 바란다면 심심풀이를 하는 책이나 시간죽이기를 하는 책을 바라보겠지요. 지식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지식책에 손이 갑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이름값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처세책이나 경영책이나 자기계발책에 손길이 갑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책을 읽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책을 종이책으로만 읽을 수 있고, 책을 사람책이나 삶책이나 자연책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책 하나에 사랑을 담으면서 살아갈 수 있고,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살림집을 아기자기하게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4344.3.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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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가분하게 쓸 글


 글 하나 써 주면 좋겠다는 편지가 그제 왔다. 오늘이나 이듬날 인천으로 마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얼른 일을 끝내야겠다 생각하면서, 새벽녘 편지 하나를 띄운다. 나는 늘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글 하나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를 적는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써 볼까? 곧바로 글을 쓴다. 원고지 20∼25장 사이로 글을 쓰면 좋겠다 했고, 한 시간쯤에 걸쳐 원고지 22장짜리 글을 마무리짓는다. 다 쓴 글을 한 번 죽 읽으면서 잘못 적은 곳 하나를 손볼 뿐, 딱히 더 다듬지 않는다. 이 글을 받은 쪽에서 어찌저찌 고쳐 달라 한다면, 그때에는 새로 써야지. 나는 예전부터 글을 고쳐서 쓰지 못한다. 어느 대목 하나 고쳐 달라 하면, 그쪽에서 알아서 고치라 하거나, 나 스스로 아예 새글을 쓴다. 좀 모자라거나 아쉬울 글이든 퍽 괜찮거나 좋다 싶은 글이든 나로서는 다 내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쓴 글이든 저렇게 쓴 글이든 나중에 낱권책으로 묶으려고 생각할 때에는 통째로 고쳐쓰기 일쑤이다. 마음이 바뀌기 때문일까. 글쎄, 이는 아니라고 느낀다. 예전에 옆지기한테 제대로 말을 못했는데, 제대로 말을 못한 까닭은 나 스스로 아직 제대로 깨닫거나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잡지사나 신문사 같은 데에 보내는 글은 새로 하나 쓰되 글을 다듬거나 고치지 않으면서 낱권책 글만큼은 고쳐서 쓰는 까닭이란, 신문이나 잡지에 싣는 글은 ‘꼭 이때까지 느낀 대로 써서 꼭 이때에만 읽고 새기는 글’이다. 낱권책에 싣는 글은 ‘낱권책이 나오는 어느 한때로 그치는 글’이 아니라, 적어도 열 해나 스무 해를 웃도는 글이 된다. 그래서 낱권책을 낸다 할 때에는 내가 앞으로 살아갈 열 해나 스무 해 앞날까지 돌아보면서 더 가다듬거나 추스른다. 그런데, 낱권책에 실을 글을 이렇게 가다듬거나 추스른다면, 여느 때에 쓰는 글도 이렇게 해야 옳지 않을까. 여느 때에도 열 해나 스무 해 앞서를 헤아리며 조금 더 알뜰히 여미어야 하지 않을까. 찬찬히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느 때에는 여느 때대로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마음과 몸에 걸맞게만 이야기를 풀고 싶다. 오늘은 오늘 느낌과 삶 그대로만 쓴다. 오늘 하루가 모여 내 삶이 되고, 내 삶은 내 글로 태어난다. 낱권책은 내 삶이라기보다 내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이다. 선물과 삶은 다르다고 느낀다. 내가 꾸리는 삶으로 오늘 하루를 살거나 살림을 돌본다. 오늘 하루를 살거나 살림을 돌보며 틈틈이 아이 몫을 떼어서 남긴다. 글은 늘 홀가분하게 쓴다. 낱권책 또한 홀가분하게 내 글을 고친다. 아직 엉성한 텃밭이지만, 우리 텃밭에 들이는 땀은 그날그날 들일 뿐 더 들이지 못한다. 날마다 힘닿는 대로만 힘을 들인다. 이듬날 줄 거름을 오늘 줄 수 없다. 다음달 뽑을 풀을 오늘 어찌 뽑겠나. 오늘은 오늘 이야기만을 쓴다. 아직 아이는 깨지 않았으나, 곧 깰 듯하다. 오늘 글쓰기도 이제 곧 마쳐야 할 듯하다. (4344.4.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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