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새 옷 비룡소의 그림동화 93
엘사 베스코브 글 그림, 김상열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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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로 흙을 밟는 어린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1] 엘사 베스코브, 《펠레의 새 옷》(지양사,2002)


 스웨덴에서 1874년에 태어나 1953년에 숨을 거둔 엘사 베스코브라는 분이 빚은 그림책 《펠레의 새 옷》을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2002년에 한 번 우리 말로 나왔고(지양사), 2003년에 다시금 새로운 판이 나옵니다. 어쩌면 2002년에 나온 《펠레의 새 옷》은 저작권 계약을 안 맺은 책이라 할 테고, 2003년에 다른 출판사에서는 저작권 계약을 맺고 책을 내놓았겠지요. 간기를 보면 이러한 대목을 짚을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넣은 엘사 베스코브 님은 당신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가 ‘으레 당신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당신 아이는 ‘내 그림책’을 하나씩 가지는 셈이고,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 그림책을 자랑스레 여겼다고 하는군요.

 인천 화평동에는 여든아홉 살 그림할머니가 수채그림 교실을 열어 사람들한테 수채그림을 가르치는데, 이 그림할머니는 당신 네 딸 한 아들이 시집장가를 갈 때에 아이마다 한 권씩 따로따로 육아일기를 그려서 선물로 주었어요. 아이한테 아파트를 사 주거나 자가용을 사 주는 일도 참 대단한 선물이라 할 만하지만, 아이가 어디에서 누구 사이에서 어떻게 태어나서 어찌저찌 자라나며 함께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쏠쏠히 담은 육아일기만큼 대단한 선물이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엘사 베스코브 님은 당신 아이들한테 늘 가장 대단하면서 사랑스러운 선물을 나누어 준 셈이구나 싶습니다.


.. 펠레는 할머니의 당근밭에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는 펠레의 양털을 빗어서 솜처럼 부풀렸습니다 ..  (8쪽)


 오늘 아이는 새벽 네 시 이십팔 분에 깼습니다. 엊저녁 열 시 조금 지나 잠들었으니, 너무 일찍 깼습니다. 그러나 네 시 반쯤 되어도 창밖은 환합니다. 머잖아 여름에 접어들 시골자락은 네 시면 동이 틉니다. 다섯 시면 벌써 꽤 밝아 텃밭에서 토마토 잎을 갉아먹는 무당벌레를 잡습니다. 아이가 이무렵에 깨는 일을 무어라 나무랄 수 없습니다. 에그, 좀 느긋하게 잘 노릇이지, 이렇게 일찍 깨면 어쩌누. 오줌을 눈 기저귀를 갈고 새 기저귀를 대며 이불을 여미지만, 좀처럼 다시 잠들지 않습니다. 한숨을 먼저 쉬면서 아이 코를 닦습니다. 아이는 코피가 난다며 손가락으로 콧구멍에 살짝 손을 넣어 핏방울을 하나 묻혀 보여줍니다.

 아이를 눕히고 코에 소금물을 살짝살짝 넣으며 코피를 닦고 코피가 멎도록 합니다. 콧등과 머리를 꼬옥꼬옥 주무릅니다. 이윽고, 아침 글쓰기를 그치고는, 그림책 《펠레의 새 옷》을 들고 아이 곁에 눕습니다. “벼리, 책 읽을래.” 하고 말합니다. “그래, 책 읽고 싶으면 여기 누워.” 아이하고 팔베개를 하며 누운 채 새벽녘 밝은 빛살을 머리 쪽으로 받으며 그림책을 펼칩니다. 왼쪽에 적힌 글을 읽고, 오른쪽에 나오는 그림에 따라 글에는 안 적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들려줍니다. 오빠는 늘 맨발로 다니는데, 오빠가 어디나 맨발로 다닐 수 있게끔 길은 흙길이고, 길에 병조각이나 유리조각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빠가 돼지우리에 들어가 먹이를 주는 그림을 읽으며 오빠가 돼지우리에도 맨발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구나, 이렇게 씩씩하고 일 잘하는 오빠이지만, 돼지우리에 들어갔다 나올 때에는 발을 씻어야겠지. 돼지 냄새가 많이 날 테니까. 그렇지만 늘 맨발로 다니니까,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돌어갈 때에 발을 씻겠지.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집에서도 추우니까 불을 피우는구나. 재봉사 아저씨네 두 아이 가운데 언니는 벼리보다 어려 보이는데 가위를 갖고 노네. 가위로 천 조각을 자르면서 노는구나. 한손에는 가위를 들고 한손에는 실패를 들었네. 펠레 오빠가 자작나무 땔감을 지고 나르니까, 재봉사네 두 아이도 가슴에 땔감을 한둘씩 안고는 함께 일하는구나. 펠레 오빠는 언제나 맨발로 일하고 놀았는데, 양한테서 얻은 털로 지은 새옷을 입을 때에는 반짝반짝 신을 신었어. 그러고는 양한테 가장 먼저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는구나. 그림책에는 ‘아기 양’이라고 나오지만, 양한테 아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양은 ‘새끼 양’이라고 해야 맞아. 돼지는 새끼 돼지야.


.. 펠레는 할머니의 암소를 돌보고, 할머니는 양털을 물레로 자아 실을 뽑았습니다 ..  (12쪽)


 천천히 천천히 그림책을 넘기면서 읽습니다. 그림책 하나를 천천히 다 읽고는 내려놓습니다. 아이를 더 재우려면 아버지도 함께 드러누워야겠구나 싶어 그대로 누운 채 팔을 아이한테 뻗습니다. 아이는 마음껏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며 팔베개를 즐깁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 팔이 어떠하든 마음껏 머리를 굴립니다. 팔에 힘을 빼고 아이가 하는 대로 지켜봅니다. 삼십 분 즈음 이렇게 뒹굴거리던 아이는 이윽고 잠이 듭니다. 아이가 조용히 잠들었을 때에 살며시 일어납니다. 이불을 다시 여미며 발소리를 죽이며 방에서 나옵니다.


.. 펠레는 어머니한테 갔습니다. “어머니, 이 실로 옷감을 짜 주세요.” “그러구 말구. 그동안 네 여동생을 돌보아 주겠니?” 펠레가 여동생을 보살피는 동안,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짰습니다 ..  (20쪽)


 그림책 《펠레의 새 옷》을 곰곰이 다시 읽습니다. 어린 펠레는 새 옷을 입었습니다. 어린 펠레는 양털을 고르거나 물레를 잣거나 베틀을 밟을 줄 모릅니다. 가위질이나 바느질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린 펠레는 실을 물들일 줄 알아요. 실을 물들이려고 나무를 해서 불을 붙일 줄 알며, 물그릇을 짊어지고는 불이 옮겨 붙지 않을 만한 물가에서 물을 끓여 실에 파란 물을 들입니다. 파란 물을 들인 실은 나무 사이에 줄을 이어 걸어서 말립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 펠레는 당근밭에서 당근줄기 아닌 다른 풀을 알아보면서 김매기를 할 줄 압니다. 소를 몰거나 부릴 줄 압니다. 어린 동생한테 뜨거운 죽을 호호 불어 가며 찬찬히 먹이며 귀여워 할 줄 압니다. 나룻배를 저어 냇물을 건널 줄 알고, 어른이 돈을 쥐어 주며 심부름을 시킬 때에 알뜰히 해낼 뿐 아니라, 돈셈을 바르게 해서 거스름돈을 받아 제 새 옷에 물들일 물감을 장만할 줄 압니다. 어린 동생들을 이끌며 땔나무를 즐거이 나를 줄 알아요.

 무엇보다 고마움을 잘 아는 어린 펠레입니다. 양한테 고맙다 인사할 줄 압니다. 할머니 들과 아저씨 들한테 고맙다고 인사할 줄 압니다. 하루하루 몸이 크면서 예전 옷이 작다고 느낄 줄 알며, 새로 옷을 맞추어야 하는 줄 알아요. 펠레는 저한테 작아진 옷을 어떻게 할까요. 아마, 이웃집 어린 동생한테 ‘자, 내가 아껴 입던 옷이야. 잘 빨았으니까 네가 더 크면 입으렴.’ 하고 물려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리고 일요일 아침, 펠레는 새 옷을 입고 아기 양을 찾아갔습니다. “아기 양아, 고맙다. 너의 털로 새 옷을 지을 수 있었어.” “음매애-애-애.” ..  (28쪽)


 할머니는 할머니이기 때문에 양털을 빗질할 줄 알며, 물레를 자을 줄 압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베틀을 밟을 줄 압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린 펠레를 귀엽게 바라보면서 도와줄 줄 압니다.

 어린 펠레는 귀여움을 받고 자라면서 앞으로 저보다 어린 동생한테 여러모로 손길을 내밀어 돕겠지요. 어린 펠레가 어른 펠레가 되면, 지난날 저처럼 어린 아이들이 저한테 도와 달라고 찾아오면 지난날 어른들이 저한테 했듯이 ‘어린 몸에 걸맞게 어떠한 일을 해내’야 좋고, 이러한 일을 해내는 보람과 값과 사랑을 느끼도록 이끌면서 아주 기쁘게 선물을 하나씩 나누겠지요.

 맨발로 흙을 밟으며 살아가는 어린이는, 흙 기운을 곱게 맞아들입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흙을 좋아할 줄 알고, 흙을 좋아할 줄 아니까 흙을 어떻게 사랑하면서 돌봐야 하는 줄 알겠지요.

 고마운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에 둘러싸여 고마운 이웃과 짐승과 푸나무하고 어깨동무하는 펠레한테는 하루하루 새로운 나날이면서 언제나 즐거운 삶입니다. 시골 닭을 시골 닭답게 투박하고 수수하게 흙내 나도록 그린 그림책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4344.5.14.흙.ㅎㄲㅅㄱ)


― 펠레의 새 옷 (엘사 베스코브 글·그림,지양사 펴냄,2002.10.1./8500원)
― 2003년 3월 21일에 비룡소 출판사에서 새로 나옴(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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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5.11. 



 꽃을 주다


 마당에서 놀든 멧자락에서 놀든 아이는 으레 꽃을 꺾는다. 아이는 꽃을 꺾은 다음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살며시 내민다. 꽃 좀 보라 하고 꽃이 예쁘다 한다. 그러면, “아이야, 예쁜데 이렇게 또 꺾으면 어떡하니. 이제 그만 꺾고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아이 참 예쁘다 하고 쓰다듬어 주렴.” 하고 이야기한다.

 마당 어디에서나 풀씨가 뿌리내려 풀꽃이 피고, 멧자락 어디에서나 풀씨나 나무씨가 떨어져 꽃이 핀다. 아이한테는 온갖 꽃송이가 좋은 동무이자 이웃이자 놀잇감이 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때에 자그마한 꽃송이를 꺾어 놀았겠지.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구석자리나 시멘트 갈라진 틈에서 자라는 들꽃을 바라보며 한두 송이씩 꺾었으니까.

 우리 살림집이 도시에 그대로 있었으면, 우리 아이는 무얼 하면서 놀 수 있었을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무엇을 바라보거나 껴안으면서 제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이할 만할까. 어린이집과 학원과 셈틀과 텔레비전은 아이 어린 삶을 얼마나 북돋우거나 사랑스레 보듬는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4344.5.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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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네 시 반 빛살


 자동차 없던 옛날에는 새벽 네 시 반 빛살을 새벽 네 시 반 빛살로 고스란히 받아들였겠지요. 자동차 드물던 지난날에는 새벽 다섯 시 반 빛살을 새벽 다섯 시 반 빛살이라며 그대로 맞아들였을 테고요.

 자동차 넘치는 오늘날 자동차 없거나 드물던 예전 삶자락처럼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동차가 있건 없건 많건 적건, 새벽은 새벽입니다. 멧골 깊은 조그마한 집에서 새벽을 맞이하며 바라보는 하늘은 조용히 동이 트는 하얀 빛깔입니다. 햇볕이 있어 푸나무가 자라고, 햇볕이 있기에 사람이 살아갑니다. 햇볕을 눈으로 느끼며 잠에서 깨고, 햇볕이 스러지면서 조용히 잠자리에 듭니다. 햇볕이 걸린 아침이나 낮에 잠을 잔다면 늦잠을 잔다 하지만, 햇살이 내리쬘 때랑 전기로 밝힌 등불이 비칠 때랑 사뭇 다릅니다. 밝은 낮 그늘진 데에서 누우면 눈이 안 아프지만, 전기로 밝힌 등불 둘레에 있으면 눈이 아픕니다. 햇볕은 내 눈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바람이 조용합니다. 아침나절 거세거나 매운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든 맵든, 이 바람은 내 몸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든 산들거리는 바람이든 내 몸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전기로 돌리는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내뿜는 바람은 내 몸을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합니다. 몇 날 며칠이고 산들바람을 쐴 수 있으나, 몇 시간째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을 쐬면 몸이 망가집니다.

 숱한 작은 목숨이 얼크러진 흙을 밟으면 무릎이나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는 흙땅을 밟아도 무릎이나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공을 차는 선수들은 잔디를 깐 땅에서 신나게 뜁니다. 아스팔트 땅바닥에서는 공을 차지 않습니다. 아스팔트 땅바닥에서 뛸 수 없습니다. 아니, 아스팔트 땅바닥에서 신나게 뛰는 사람은 남보다 일찍 무릎이 다치거나 무너집니다. 제아무리 값비싸며 좋다 하는 신을 신었대도 아스팔트 바닥에서 오래 걷거나 달리거나 뛰면 무릎이 버티기 힘듭니다. 어느 사람이든 몸뚱이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도록 맞추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누구나 자연이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목숨이니까요.

 아이는 새벽 네 시 반 무렵 쉬가 마렵다고 깨더니 여태 잠들지 않습니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어도 새벽녘 밝은 빛살을 받으면서 잠자리에 드러누울 수는 없었을까요.

 코피가 난 아이를 얌전히 자리에 눕혀 코를 닦고 머리를 주무릅니다. 아버지는 새벽 글쓰기를 하고 싶지만, 이내 일을 멈추고, 그림책 《펠레의 새 옷》(지양사,2002)을 들고 아이한테 갑니다. (4344.5.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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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71] TODAY TV와 라디오

 텔레비전은 으레 ‘TV’로 적지만, 라디오를 ‘RADIO’로 적는 일은 몹시 드뭅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다만, 라디오를 알파벳으로는 안 적지만, ‘POWER 무엇무엇’이라느니 ‘LOVE 무엇무엇’이라고 일컫습니다. 더욱이, 텔레비전이든 라디오이든 오늘 이야기를 보려면 ‘TODAY’를 헤아려야 합니다. 서울방송은 ‘GO REAL RA(DIO)’라는 뜻으로 ‘고릴라’라는 이름을 쓰는 듯한데, 이와 같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한국사람이라 한다면,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하는지 미국말을 하는지, 아니 ‘영어 함께쓰기(영어 공용)’를 하는지 뭘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4344.5.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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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0 : 책쉼터

 히로세 다카시 님이 1992년에 내놓은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으면서 “그렇다면 핵무기는 대체 여태껏 무엇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는 것인가? 놀랍게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이 믿기 힘든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믿고 있다. 핵무기가 없으면 당연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160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더없이 뻔하며 올바른 생각이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토록 뻔하며 올바른 생각을 제대로 살피거나 찬찬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쪽에 핵무기가 있으면 저쪽에서 선뜻 공격하지 못한다지만, 이쪽도 저쪽도 핵무기가 없으면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쪽에 군대가 있으면 저쪽에서 섣불리 쳐들어오지 못한다지만, 이쪽도 저쪽도 군대가 없으면 전쟁이란 터지거나 생기거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핵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무기가 있으니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이 있기 때문에, 또 명예라는 허울이 있고 돈이라는 껍데기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다툼과 싸움이 생깁니다.

 좋은 책을 읽는 사람이 모두 좋은 삶을 일구지는 않습니다만, 스스로 좋은 삶을 바라면서 좋은 책을 읽을 때에는 좋은 삶을 일굽니다. 좋은 책을 읽는다지만, 내 이름값을 높이거나 몸값을 높이려는 뜻에서, 이른바 ‘처세·경영’이나 ‘자기계발’을 하겠다면서 좋은 책을 읽는다면 좋은 삶을 일구지 못합니다. 그저 더 돈을 벌어들이거나 더 이름값을 높이거나 더 권력을 단단히 하려고 애쓰겠지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더 읽으며 “요즘의 미사일 경쟁은 규모의 우위에 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적을 순간적으로 격멸시키는 성능에 목적을 두는, 보다 잔인한 형태가 되었다(299쪽).”라는 대목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전쟁이란 ‘내 나라를 사랑하며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이웃나라를 깡그리 죽여 없애는 짓’입니다. 군대란 ‘이웃나라 사람을 남김없이 죽이고 이웃나라 마을을 송두리째 없애는 짓’을 재빨리 하도록 살인훈련을 하는 데입니다.

 미국이든 러시아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새 무기를 더 만들고 새 군대를 더 키우는 데에 돈과 힘과 겨를을 들인다 하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새 무기나 새 군대가 아닌, 착한 사람과 참다운 누리와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며 돌보는 데에 돈과 힘과 겨를을 들일 수 있기를 꿈꿉니다. 잘 팔리는 책만 잔뜩 쌓는 커다란 새책방보다는 마을사람 누구나 끌신을 신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실할 만한 작은 책쉼터가 온 나라 곳곳에 두루 자리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비손합니다.

 크고 북적거리는 책쉼터에서 다시금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나 자기계발 책만 들여다보는 삶이 아니라, 조그마하며 수수한 책쉼터에서 어른은 《돼지가 있는 교실》(달팽이,2011)이나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2011) 같은 책을 읽고, 아이는 《펠레의 새 옷》(지양사,2001)이나 《미스 럼피우스》(시공주니어,1998) 같은 그림책을 읽을 수 있으면 아주 기쁘겠습니다. 착한 삶을 사랑하며 착한 이웃하고 사랑을 나누는 어여쁜 작은 마을이 그립습니다. (4344.5.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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