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숲 책읽기


 깊은 숲이 아니어도 나무 백 그루쯤 우거지면 새들이 둥지를 틀면서 시원스러운 푸른바람이 산들산들 붑니다. 꼭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무들이 깊디깊은 숲을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퍽 많은 돈을 들여 번듯한 도서관을 새로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골목동네 작은 집이나 시골마을 멧자락 집에 예쁘장하게 책꽂이를 갖추어 삶을 밝히는 책 백 권쯤 마련하더라도 아름다운 책숲입니다. 백 차례쯤 되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만한 책을 백 가지 마련하는 도서관이 백만 가지 책을 꾸준하게 새로 갖추는 도서관 못지않게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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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산티아고를 걸었어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
 [책읽기 삶읽기 60] 서영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이 곧게 뻗은 한길을 걷는 사람은 다 다른 모양새와 생각과 느낌입니다. 누군가는 앞만 바라보며 걸을 테고, 누군가는 옆을 두리번거리며 걸을 테며, 누군가는 자꾸자꾸 멈출 테지요.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걷기 때문에 다 다른 생각과 이야기와 느낌이 태어납니다.

 산티아고라 하는 데를 걷는 길 또한, ‘걷는 길은 같다’지만, 이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은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게 느끼거나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서영은 님이 내놓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라는 책은, 산티아고를 걸었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산티아고를 걸었대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네 골목을 걷든, 아파트 골마루를 걷든,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려 할 때에 느낌이 태어납니다.


..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학상 심사를 거의 도맡아 해온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순간 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란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이 나에게, 내가 그동안 심사를 너무 많이 해온 것을 깨우쳐 주었다. 폭식 … 그 순간 나는 작가로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너무 멀리 떠나 와 있는 것을 느꼈다 … 나는 문학을 시작할 때 내 문학이 있을 자리는, 그 낡은 구두, 제 몸을 아무리 부딪혀도 삶이 양지로 변하지 않는, 또는 끝내 양지 쪽으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비통한 증거로서, 다 해진 그 구두가 있는 자리라 여겼다 ..  (15, 16, 17쪽)


 서영은 님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라는 책에서 ‘내려놓기’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막상 서영은 님 스스로 내려놓기를 했다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내려놓기를 하겠다’는 생각만 잔뜩 드러날 뿐입니다.

 참으로 내려놓기를 할 마음이라면, 굳이 ‘무엇을 내려놓아야지’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내려놓았을 테니까요. 제대로 내려놓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내려놓을 마음이 없는데다가, 어쩌면 내려놓지 않은 채 마지막 삶길까지 걸을 매무새인 터라 ‘내려놓지 못하는 내려놓기’ 이야기가 가득하지 않나 싶습니다.

 문학상이든 작가이든 김동리이든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 교수이든 강사이든 가정주부이든 짝짓기 연인이든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나 스스로 즐거울 삶을 찾아 나 스스로 즐거울 길을 걸으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즐겁고 아름다이 받아들여 옳고 바르게 펼치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안 한대서 더 훌륭하거나 많이 한대서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써서 상도 받고 글삯도 벌어야 좋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소설꾼 김동리 님하고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건 없건 나한테 따사로운 사람이거나 나한테 커다란 사람이거나 나한테 애틋한 사람이거나 나한테 좋은 사람이면 넉넉합니다.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믿음을 품는다 하고, 마음 깊이 살가이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믿음을 붙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에 믿음을 품기도 하며, 마음 깊이 넉넉히 맞아들이기 때문에 믿음을 붙잡기도 합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어떻게 일구려 하느냐가 대수롭고, 내 길을 내 발로 어떻게 디디려 하는가가 대단합니다. 돈없는 삶도 내 삶이고 돈있는 삶도 내 삶이에요. 가난하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지 않고, 가멸차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지 않아요. 어떠한 길을 걸어가며 어떠한 삶을 일구든, 내가 나를 바라보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매무새이면 알뜰합니다.


.. 내 마음에서는 김동리와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 싶은데, 밖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사진이 필요하다, 육필원고가 필요하다, 작가의 방을 꾸미겠다 등등의 일로 전화가 걸려왔다 … 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과 비례해서, 내 마음의 여유는 폭우에 깎이는 산의 절개지처럼 세상 속으로 쓸리어 나갔다. 얄팍하고 거짓된 칭찬, 집단심리에 편승한 일시적 관심인 줄 알면서도 나는 높고 낮은 강단에 올라, 독자들의 값싼 호기심에 부응하려고 애썼다 ..  (21, 30쪽)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여행책도 믿음책도 수필책도 아닙니다. 딱히 어느 한 갈래로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돋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어냐 하면, 함께 산티아고를 걷는 길동무한테 끝없이 투정을 부리는 대목. 길동무 마음을 살뜰히 읽지 않으며 그예 울타리만 쌓는 대목.


.. “너무 오래 쉬면 일어나기 싫어져요.” 노련한 카미노답게 치타는 앉지도 않고, 사진만 몇 컷 찍은 다음 이내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좋은 경치를 봐도 그냥 스쳐만 간다면, 도대체 이 길은 왜 있는 거야.’ 속으로 투덜대며, 마지못해 떠날 채비를 한다 … 그녀는 제법 많은 굴을 따서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비탈을 낑낑거리고 올라왔다. 몸이 추억을 되찾아가는 방법은 그 몸에 기억된 수고를 재현하는 것일까. 비탈 위에서 치타의 손을 잡아끌면서 나는 그녀가 단순히 먹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관계된 향수를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  (98, 190쪽)


 서영은 님은 스스로 이토록 낮아지고 싶어 글을 쓰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이토록 낮아지자 다짐하면서 글을 썼는지 모릅니다. 곁에서 사랑을 나누며 내미는 손길을 얼마나 못 받아들이며 얼마나 못 헤아리는가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이제부터는 참사랑과 참믿음을 찾아나서겠다는 다짐을 펼치려는지 모릅니다.

 ‘좋은 경치’는 ‘한 번 보았으니 됐’습니다. 왜냐하면, 길동무이든 서영은 님이든 ‘좋은 경치’가 있는 곳에서 뿌리를 박으며 살아갈 사람이 아니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서 ‘산티아고 걷기’를 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려는 산티아고 걷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서 참다운 삶을 바라보는 고운 넋을 일구려는’ 뜻에서 하려는 산티아고 걷기입니다. 서영은 님 스스로도 밝히고, 이제껏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사람들 또한 밝히는 대목이에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 한낱 관광객 아니겠어요. 좋은 경치에 얽매이자면, 한국땅에서 문학상 심사 오래오래 맡고 대학교수 이름쪽 단단히 거머쥐면 됩니다. 좋은 경치 아닌 좋은 삶을 일굴 노릇이고, 좋은 이름값 아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자며 마음닦이를 하듯 걷는 산티아고 ‘노란 화살표 길’이라고 느낍니다.

 먼 길을 오래도록 걷는 내내 곁에서 이모저모 챙기고 밥을 차리며 도움말을 끝없이 들려주는 길동무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으면서 산티아고를 걸었다면, 이 산티아고 걷기란 무슨 보람인가 알쏭달쏭합니다.


.. 도시에 들어서면 순례자들은 이방인이 된다. 도시가 버린 것은 ‘걷기’이다 …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통스러웠으니 산티아고가 거룩하고 성스럽기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 있다 ..  (108, 365쪽)


 에스파냐 도시이든 칠레 도시이든 일본 도시이든 한국 도시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사람들이 걷도록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자동차가 우쭐거립니다. 어느 도시이든 높직한 건물이 가로막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따스한 사람결보다 돈을 앞세웁니다. 어느 도시이든 풀과 나무와 흙이 아닌 시멘트와 아스팔트입니다.

 이러한 도시 얼거리를 일찍부터 알았다면, 서영은 님은 일찌감치 도시를 떠날 노릇입니다. 꼭 산티아고를 걷지 않았어도 슬기롭게 깨달아 아름다이 살아갈 노릇입니다.

 산티아고는 거룩하지 않으니까요. 산티아고는 산티아고이지 서울이나 제주가 아니에요. 산티아고에서는 산티아고를 온몸으로 부대껴서 온마음으로 느껴야 해요. 내가 살아온 대로 보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이야기인 줄을 깨달아야 해요.

 이제 책을 덮습니다. 외롭다고 생각하며 외롭다는 이야기를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수없이 되풀이하는(그렇다고 ‘외로움’이라는 낱말로 외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일기책은 덮습니다.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살아가더라도 외롭다고 느낄 수 있고, 사람들한테 둘러싸였으나 내 마음 차분하게 사랑할 길을 찾지 못하기에 외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산티아고에서 한국땅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떨치거나 예쁘게 껴안으면서 참살길을 보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글·사진,문학동네 펴냄,2010.4.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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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책


 청바지를 빨고 이불을 빨아야 한대서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손으로 빨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식구가 늘고 아이가 여럿 있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맞다. 그러나 여러 아이와 큰식구가 버스나 기차로 오가다 보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내 옷, 옆지기 옷, 아이 옷을 손으로 빨래한다. 이불을 빨래하고 청바지를 빨래한다. 이불 한 채를 빨면 기운이 폭 빠진다. 청바지 한 켤레를 빨면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물을 듬뻑 머금은 이불을 낑낑 들고 빨래줄에 널어 물짜기를 하면 등허리가 결린다. 청바지를 탕탕 털어 물방울이 흩날리면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아기수레도 싣고, 기저귀도 실으며, 젖병도 싣고, 이렁저렁 옷가지를 챙겨 실어야 하니까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여러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니까 고단해서 자가용에 몰아넣으면 한숨을 덜면서 골 아픈 일이 적단다. 책방마실이라도 해서 책을 잔뜩 장만한다면 낑낑 끙끙 들고 오기 힘들지만, 자가용에 실으면 거뜬하단다.

 차츰 더운 날이 된다. 찬물로 북북 비비고 밟으며 이불을 빨아서 넌다. 빨래를 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는다. 헹굼물로 쓰기 앞서 낯을 씻고 팔다리에 끼얹는다. 몸씻이를 하며 이불을 빨래한다. 해바라기 하는 마당에 이불을 널면서 눈을 살짝 찡그린다. 이불과 기저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한참 마실하다 보면 어느덧 다리가 아프다며 안아 달라는 아이를 덥석 안는다. 장마당에서 여러 먹을거리를 장만하느라 가방이 꽤 무겁다. 뒤로는 가방이, 앞으로는 아이가 무게를 서로 버틴다. 첫째는 아기수레 없는 채 즐거이 네 살 어린이로 자랐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씩씩한 몸뚱이가 있기에, 첫째는 제 다리로 이 땅을 당차게 박차며 함께 뛰논다.

 몸이 고단하니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려우니 책 한 권 펼치기 만만하지 않다. 어버이부터 책읽기를 제대로 못하니까 아이한테 책읽기를 하라고 이르지 못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버이가 쉴새없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는 이 심부름을 하고 저 일을 거든다. 나는 아이한테 집살림이나 집일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저 우리 집 살림과 일을 바삐 하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줄 뿐이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어떤 이름이 붙는지 낱낱이 알지 못할 뿐더러, 낱낱이 알아볼 겨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아이한테 늘 “벼리야, 꽃이나 풀이나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이 꽃이나 풀이나 나무가 예쁜 줄 느끼면 돼. 고마운 꽃이고 어여쁜 풀이며 사랑스러운 나무야.” 하고 말한다. 멧자락에서 날마다 듣는 수많은 멧새 소리를 하나하나 가누지 못하지만, “우리 집 둘레에 새가 참 많이 살지? 아버지는 새 이름을 잘 몰라. 그러나 이 새들 목소리가 다 다르구나 하고 느껴. 다 다른 새들 목소리를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 좋구나.” 하고 말한다.

 앞마당 빨래줄에 널어 나부끼는 기저귀 사이사이로 뜀박질을 하며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벼리야, 네 동생처럼 네가 어릴 적에 네 아버지는 이렇게 네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을 쬐어 주었단다.” 아이는 햇볕을 머금으면서 자란다. 둘째가 태어나서 집일이 곱배기로 느는 바람에 집안 비질이나 걸레질조차 거의 못하며 지내지만, 첫째는 착하게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자란다. 밥상을 차리면 행주질을 맡으려 하고, 밥상을 치울 때에도 행주질을 해 보려 애쓴다. 착한 아이야, 너한테는 책이 따로 없어도 된다. 집안과 집밖이 모두 고우며 맑은 책이란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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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4   좋아요 0 | URL
아이쿠,빨래와 청바지를 직접 빠신다니 힘이 많이 드시겠네요.가끔은 문명의 이기를 좀 이용하셔도 좋을듯 싶습니다^^

파란놀 2011-05-30 22:54   좋아요 0 | URL
세탁기 파는 데를 한번 가 보았는데, 이불을 빨 만한 녀석을 사려면 100만 원은 있어야 하더군요... 그냥 이대로 잘 살아야지요 ^^;;;;
 



 시골 라디오 소리


 바람이 불고 새가 우짖는 시골 한켠에서 퍽 귀가 따갑게 하루 내내 들리는 소리란, 밭일을 하는 사람인지 개장수네인지 공장에서인지 마을회관에서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는 라디오 소리.

 뻐꾸기 우는 소리를 비롯해서 숱한 멧새가 우는 소리와 개구리가 우는 소리는 몇 시간을 고스란히 들어도 조금도 시끄럽거나 귀가 따갑지 않다. 바람이 부는 소리라든지,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 또한 하나도 안 시끄러우며 귀를 따갑게 하는 적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하고 라디오가 주절대는 소리는 몇 분만 듣더라도 금세 귀가 따가우며 괴롭다.

 바람이 부는 소리는 싱그럽고, 산들바람은 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자동차가 내달리는 소리는 차디차고,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는 귀청을 찢는다. 나뭇잎이 한들거리는 소리와 기저귀 빨래가 마르는 소리는 차분히 스며들면서 내 마음을 토닥인다. 손전화 울리는 소리와 텔레비전 새소식 소리는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내 생각을 억누르거나 짓밟는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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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5   좋아요 0 | URL
흠,시골이시라면 FM인가요? AM인가요? 서울이야 FM이 팡팡 터지지만 시골은 어쩐지 모르겠군요^^

파란놀 2011-05-30 22:51   좋아요 0 | URL
글쎄.. 라디오를 안 들으니 모르겠지만... 라디오 소리도 노래 소리도... 참 귀에 거슬려요... ㅠ.ㅜ
 



 빨래 그림자 놀이


 밤에 나온 둘째 똥기저귀는 새벽에 빨고, 새벽에 나온 둘째 똥기저귀는 아침에 빤다.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마당 빨랫줄에 넌다. 기저귀 하얀 빨래를 마당 빨랫줄에 너는 동안, 멧자락 숲에서 멧새가 우짖는 소리를 듣는다. 무슨 새일까, 어떤 새일까, 고개를 갸웃갸웃해 보지만 이름을 알지는 못한다. 그저 이름을 몰라도 고마운 소리를 아침부터 들려주니 반갑다고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첫째는 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온 모습을 보고는 토마토를 입에 물면서 뒤따라 나온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다 널고 들어갈 무렵 기저귀 나부끼는 사이사이로 요리 걷고 조리 달리면서 논다. 첫째야, 네 똥기저귀도 이렇게 아버지가 손빨래를 해서 해바라기를 시켰단다. 햇볕을 먹고 바람을 먹으며 나뭇잎 빛깔과 새소리 결을 함께 받아들이는 고운 기저귀와 함께 예쁘게 살아가렴.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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