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책! 출판사 습격기 - 일상탈출 책벌레들의 거침없는 인문 출판사 탐방
조희경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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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있어야
 [책읽기 삶읽기 74] 조희경 외, 《출판사 습격기》(서해문집,2009)



 ‘기업맞춤형 전문취업교육-출판편집 과정’을 들은 학생들이 일곱 군데 출판사와 한 군데 책읽기모임을 찾아간 이야기를 담은 책 《출판사 습격기》(서해문집,2009)를 읽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책 만드는 일을 배운 분들이 책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난 이야기를 묶은 책인데 왜 ‘습격기’ 같은 이름을 붙였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불쑥 찾아갔대서 습격기가 될까요.

 나는 ‘습격’이니 ‘공격’이니 ‘공습’이니 하는 군대말을 몹시 싫어합니다. 더구나, 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군대말을 내세우는 일이 매우 못마땅합니다. “갑자기 상대편을 덮쳐 침”을 뜻하는 군대말 ‘습격(襲擊)’이 아니고서는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을까요. 이렇게 ‘세게’ 나가야 이 책이 사람들 눈에 뜨인다고 여겼을까요.

 생각해 보면 “출판사 방문기”나 “출판사 취재기”처럼 이름을 붙이면 ‘밋밋하다’거나 ‘느낌이 너무 옅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러면, 좋은 이름을 알맞게 찾아야 합니다. 책마을에서 함께 일하고픈 꿈을 꾸는 분들이라면, 일곱 군데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만난 사람들한테서 들은 알차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에서 책이름 하나를 어여삐 길어올려야 합니다. 책이름을 붙이는 일 또한 ‘책 만드는 일’인 한편 ‘책을 사랑하는 길’이니까요.


.. “갑자기는 아니고 출판사에 계속 근무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커리어가 쌓였고, 내 적성에 맞고 보람을 느끼는 이 일을 계속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결국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시작하게 됐어요.” ..  (88쪽/1인출판사 산처럼 윤양미 대표)


 책을 만드는 일은 남다르다 싶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 만드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책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할 만한 일입니다. 더 많이 배웠대서 책마을에서 일할 수 있지 않습니다. ㅅㄱㅇ 같은 대학교를 나와야 책마을에 몸을 담글 수 있지 않습니다.

 나는 대학졸업장이 없습니다. 나는 대학졸업장 없이 출판사에서 네 해 즈음 일했습니다. 퍽 드물지만 나처럼 대학졸업장이 없는 사람도 뜻과 사랑과 믿음과 꿈이 있으면 얼마든지 책마을에서 땀을 흘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출판사를 차릴 수 있습니다.

 그저 돈만 벌 생각으로 출판사 일꾼이 되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예 돈벌이만 헤아리며 책을 내놓는 출판사 또한 있겠지요.

 어디에서나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돈만 바라보는 바보가 있고, 돈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있고, 꿈은 부질없다고 여기는 바보가 있습니다.

 책마을이건 영화마을이건 노래마을이건 만화마을이건 춤마을이건, 돈만 바라보는 사람이 널리 사랑받거나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합니다. 참으로 책이나 영화나 노래나 만화나 춤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애틋하게 아낄 때에 시나브로 사랑받으며 차근차근 뿌리를 내립니다.


.. 아침독서운동은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 시달리고, 우리 주위에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는 현실 속에서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행복한아침독서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의 책 읽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  (199쪽)


 똑똑한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닙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이 즐기는 책이 아닙니다. 누구나 읽는 책이며, 아이부터 할매 할배까지 두루 나누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한테만 읽히는 어린이책이란 없습니다. 사진책이란 사진쟁이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사진쟁이부터 즐기는 책이 사진책이요, 사진쟁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즐기면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사진책입니다.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글책이나 노래책이나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즐기는 삶이면서 즐기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삶이면서 사랑하는 책이에요. 좋아하는 삶으로 좋아하는 책입니다. 땀흘려 일구는 삶처럼 땀흘려 일구는 책이에요.


.. 돌베개에서 출간하는 책들은 돈과 풍요를 논하지 않는다. 출판계 사람이 아닌 우리로서는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없다 ..  (35쪽)


 책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있어야 책을 만듭니다. 책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으로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여야 비로소 책마을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돈과 풍요’를 바라거나 꿈꾸거나 꾀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책을 다루며 책을 만드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서 ‘돈과 풍요’를 글로 쓰거나 삶으로 누리지 않습니다.

 책이란 사랑이니까요. 책이란 눈물이니까요. 책이란 믿음이니까요. 책이란 웃음이니까요.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은 돈으로 팔 수 없습니다. 눈물은 돈으로 갚지 못합니다. 웃음은 돈으로 베풀지 못합니다.

 책은 오직 땀방울과 굳은살로 길어올리는 사랑씨입니다. 책은 꼭 하나, 사랑과 믿음을 어우르는 이야기바구니입니다.

 돈도 숫자도 경제도 풍요도 아닌 책이기에, 이 책이 더 낫고 저 책이 덜 떨어진다고 가르지 않습니다. 책은 그저 책이고, 사람은 그저 사람이며, 삶은 그저 삶입니다. 다 다른 삶에서 다 다른 사람이고 다 다른 책입니다.


.. 한국 사회에서 정통 인문 출판을 고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대중 인문서들은 어느 정도 수요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이학사에서 내는 책들은 많은 시간 곱씹어 보며 공을 들여 읽어야 되는, 단적으로 말하면 읽기 힘든 어려운 책들이 많아 시장성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필자들이 편집자들에게 ‘어려운 원고 읽으려면 지겹거나 힘들지 않은지’ 물어 볼 때가 있다고 한다 ..  (138쪽/이학사)


 홀로 출판사를 꾸리는 윤양미 님은 “인문서는 주로 대도시 대형서점에서 판매되거든요. 그래서 ‘산처럼’이 거래하는 서점들은 대도시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국한되어 있어요(92쪽).” 하고 밝힙니다. 인문책을 내는 출판사만이 아니라 어린이책을 내든 자기계발이라는 책을 내든, 거의 모든 출판사는 큰도시 큰책방과 누리책방에 책을 넣습니다. 시골마을 책방에까지 책을 넣는 출판사는 거의 없으며, 시골마을 책방에 넣은 책으로 돈을 버는 출판사 또한 거의 없습니다. 시골마을 책방에서 팔아서 거두는 돈이라 해 보았자 서울에 있는 큰책방에서 한 시간 동안 팔아서 거두는 돈보다 훨씬 적을 테니까요.

 어쩔 수 없이 책방은 큰도시에 몰립니다. 어쩔 수 없이 출판사는 큰도시에, 이 가운데 서울에 쏠립니다. 큰도시에 몰린 책방에서 책을 팔고, 서울에 깃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듭니다. 이러한 책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넋을 일구도록 이끄는 이야기꽃이 깃들까요. 부디, 사랑을 놓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랑을 살가이 보듬을 줄 아는 손길을 잊지 않으면 고맙겠습니다. (4344.8.27.흙.ㅎㄲㅅㄱ)


― 출판사 습격기 (조희경 외,서해문집 펴냄,2009.7.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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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 꽂이 어린이


 아이가 핀을 스스로 꽂는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꽂던 핀인데, 이제는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나누어 꽂는 핀이 된다. 영화 〈말괄량이 삐삐〉에 나오는 삐삐처럼 되고픈지 머리카락을 둘로 나눈다. 핀을 머리카락에 주렁주렁 달면 그럭저럭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용케 머리카락을 찬찬히 그러모아서 핀을 꽂는다. 처음에는 덜렁덜렁했지만 이제는 콩콩 뛰거나 달려도 핀이 안 떨어진다. 아버지가 핀을 꽂아 준다 할 때에는 이렇게 꽂을 일이 없겠지. 아이 스스로 핀을 꽂으니까 이렇게 꽂고, 이렇게 꽂은 핀이 떨어지지 않게끔, 어머니나 아버지는 잘 여미어 아이 마음에 들도록 다시 꽂아 준다.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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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6 23:56   좋아요 0 | URL
자기 혼자 열심히 꽂는 모습이 정말 이쁘네요. ^^

파란놀 2011-08-27 06:08   좋아요 0 | URL
참 예쁜 아이를
자꾸 나무라는 듯해서
오늘도 새벽부터 괴롭습니다..
 


 작은 아이


 자전거를 몬다. 아이를 태우고 읍내에 다녀온다. 작은 아이는 수레에 태울 수 있다. 어른은 몸무게가 아무리 가볍다 하더라도 수레에 못 탄다. 작은 아이라서 이 수레에 탈 수 있다. 읍내에 닿는다. 작은 아이는 콩콩콩 뛰듯 걷는다. 작은 아이 키높이에서 바라보자면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는 몹시 무시무시하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로서는 조그마한 아이 때문에 차를 갑자기 멈추어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골목에서는 빠르기를 아주 늦추어야 옳다. 아니, 커다란 자동차를 골목까지 밀고 들어오며 다녀야 할 까닭이 있을까.

 읍내에 다녀오고 나서 아이를 씻긴다. 네 살 아이는 저 하고픈 대로 하면서 말을 안 들을 때가 잦지만, 아이가 하고픈 대로 말하지 않으니까 말을 안 듣는다 할 수 있겠지. 씻고 싶은 아이한테 씻자고 하면 금세 쪼르르 달려온다. 씩씩하게 옷을 잘 벗고, 땀에 젖은 옷을 빨자고 하면 이내 알아듣는다. 벗은 옷을 아버지한테 건넨다.

 따순 물은 미리 받았다. 아이를 씻긴다. 오늘은 몸이 많이 힘들기에 때밀이는 하지 말까 하고 비누만 바르다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때를 밀어 본다. 때가 시원스레 나온다. 이렇게 시원스레 때가 나오는데 내가 좀 힘들다 해서 때밀이를 미루면 아이는 찝찝하겠지. 나는 내 손이 크다고 느낀 적이 없으나, 아이 팔뚝 때를 밀고 어깨와 등허리와 엉덩이와 두 발바닥을 문지르다 보면, 아이가 느끼기에 아버지 손이 얼마나 크랴 싶다.

 저녁 열 시가 되도록 잠을 안 자고 놀겠다는 아이가 겨우 잠이 든다. 자리에 눕고도 한 시간 가까이 떠들면서 노는 아이 이마를 쓰다듬고 손을 잡는다. 아이 손은 아직까지 참 작다. 앞으로 한 살 두 살 더 먹고 열 살을 더 먹고 나면 아이 손이랑 아버지 손이랑 엇비슷한 크기가 될까. 그때까지 아이는 참으로 작은 아이일 테지. 작은 아이하고 살아가는 큰 어버이라 한다면, 큰 어버이는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사람이어야 좋을까. 더 따뜻할 사람이 되기보다 늘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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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돼지꿈
다시마 세이조 그림, 기무라 유이치 글, 박이엽 옮김 / 현암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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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는 늑대답게 꿈을 꿉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0] 다시마 세이조·기무라 유이치, 《늑대의 돼지 꿈》(현암사,2002)



 아버지는 새벽 두 시나 세 시 무렵이면 잠에서 깹니다. 이때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하루 내내 글쓰기를 조금도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면서 틈틈이 첫째 아이가 뻥뻥 걷어차는 이불을 다시 덮어 줍니다. 이리 돌아눕고 저리 구르며 이불이 이리저리 벗겨집니다. 살며시 덮었어도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불을 걷어차기 일쑤입니다. 어쩜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자다 보면 이럴 수 있겠지요.

 새근새근 자던 아이는 갑작스레 잠꼬대를 합니다. 꿈결에 터져나오는 말입니다. 예쁜 말로 잠꼬대를 하면 지난 하루 예쁘고 즐겁게 놀았다는 뜻이고, 미운 말로 잠꼬대를 하면 지난 하루 아버지와 어머니가 즐거이 놀아 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새벽녘, 두어 시간 글쓰기를 하며 뻣뻣해지는 몸을 아이 옆에 살짝 눕힙니다. 드러누운 채 손을 뻗어 작은 공책을 집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말 몇 마디를 작은 공책에 적바림합니다. ‘사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할 수 있는 일만 끝없이 많습니다.’

 우리 식구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이 돈으로 꽤 많은 일을 즐기거나 누리거나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식구한테 돈이 얼마 없으니,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합니다. 우리 식구한테 돈이 얼마 없으나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우리 네 사람은 못할 일은 한 가지 없이 온통 즐거이 누리거나 나눌 일이 가득하리라 느낍니다.

 집이 없거나 옷이 없다면 꽤나 고달프겠지요. 그렇지만, 집은 있되 사랑이 없다면, 옷은 많되 사랑이 없다면, 이러한 삶은 얼마나 삶답다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드높으나 사랑이 없으면, 힘은 세다지만 사랑이 없으면, 책을 많이 읽었되 사랑이 없으면, 이러한 사람들 삶은 얼마나 즐겁거나 기쁘거나 보람찰는지 궁금합니다.


.. 늑대는 놓쳐 버린 새끼 돼지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어요. “아, 맛있는 새끼 돼지. 그놈을 꼭 먹어야 해.” 늑대의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  (6쪽)


 새벽에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며 생각합니다. 지난 2008년부터 네 해째 기저귀 갈이와 기저귀 빨래로 하루를 보냅니다. 참말 어느 하루라도 손빨래를 쉰 날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내 큼지막한 가방에 아이 기저귀가 잔뜩 담기는데, 이 잔뜩 담긴 천기저귀는 더 줄지 않고 더 늘지 않는다고. 네, 늘 그대로입니다. 이 가방에 천기저귀 아닌 종이기저귀가 담겼다면, 가방은 차츰 가벼워질 수 있겠지요. 가벼워지다가 다시 무거워지겠지요. 그리고, 이 가방 둘레에는 비닐봉지에 담긴 쓰레기덩이가 차츰 늘 테고요.

 종이기저귀를 쓰는 집에서는 기저귀 값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기저귀는 따로 다른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하니, 버릴 때에도 돈이나 품이 꽤 듭니다. 종이기저귀를 쓸 때에는 물휴지도 함께 써야 합니다. 물휴지 값 또한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이기저귀를 쓰며 드는 돈이나 품이라든지, 종이기저귀 못지않게 써야 할 물휴지 때문에 들어야 할 돈이나 품을 넘어 생각할 노릇입니다. 종이기저귀나 물휴지는 갓난쟁이 몸에 얼마나 좋을까요. 자연에서 얻어 만든 종이기저귀나 물휴지인가요. 화학약품이나 화학소재로 만든 종이기저귀나 물휴지가 아닌가요.

 화학제품인 종이기저귀와 물휴지가 버려질 때에는 또 얼마나 끔찍한 쓰레기가 새로 생기는 셈인지요. 이 끔찍한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고 이 땅은 얼마나 더러워질는지요. 서울 옆에 있는 광역시 인천은 서울사람이 쓸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가 있고, 서울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를 쌓는 쓰레기터(매립장)가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쓸 웬만한 공산품을 만드는 공장은 인천에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쓸 웬만한 수입품을 들여올 항구 또한 인천에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버리는 똥물은 온통 인천으로 흘러들어 인천에서 거르든 어찌하든 하고 나서 인천 앞바다로 빠져나가게끔 합니다. 서울사람은 서울사람이 싼값으로 물건을 손쉽게 사들여 쓰고 버리도록 이루어진 얼거리가 무엇인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그저, 많이 벌고 많이 쓰며 많이 누릴 뿐입니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걱정스럽지만, 누구보다 서울사람이 걱정스럽습니다. 서울사람 다음으로는 부산사람이 걱정스럽고, 다음으로는 대구사람과 광주사람과 대전사람이 걱정스럽습니다. 무엇이든 돈만 벌어 돈만 써야 하는 톱니바퀴에 얽매여 살아가느라, 사랑도 사람도 삶도 옳게 들여다보거나 느끼기 어려운 이 사람들이 걱정스럽습니다. 돈벌이와 돈쓰기에 바쁜데 무슨 꿈을 꿀 수 있으려나요.


.. “흥, 그 새끼 돼지에 비하면 네 놈들은…….” 늑대는 토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씩씩하게 언덕 위로 올라갔어요 ..  (10쪽)


 그림책 《늑대의 돼지 꿈》을 읽습니다. 꿈에서 새끼 돼지 한 마리 맛나게 먹을 뻔하던 늑대는 잠에서 깬 뒤에 입맛을 다십니다. 꿈에서 새끼 돼지를 잡아먹었다 하더라도 배부를 일이 없건만, 괜히 입맛을 다십니다. 잠에서 깼으니 배가 고픈 늑대는 먹이를 찾아나섭니다. 늑대한테 먹이가 될 여린 짐승들은 멧자락에 널렸습니다. 토끼이든 사슴이든 팔만 뻗으면 닿을 곳에 널렸습니다.

 늑대는 토끼이든 사슴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멀리 날지 못하는 닭이든 병아리이든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꿈에서 본 새끼 돼지 오동통한 엉덩이를 떠올리고, 살진 허벅지를 되새깁니다.


.. 그때 문득 늑대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요. “가만 있자. 아까 본 그 새끼 돼지가 이렇게 작았나?” 늑대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  (29쪽)


 꿈을 꾸는 늑대는 아름답습니다. 배는 곯고 뱃가죽은 등짝에 들러붙지만, 꿈을 꾸는 늑대는 예쁩니다. ‘귀엽고 작은’ 짐승을 잡아먹으려는 늑대가 뭐 아름답고 어디가 예쁘냐 묻겠지요. 그렇지만, 늑대는 꿈을 꾸기에 아름다우며 예쁩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꿈꾸지 않으니 아름답습니다. 이를테면, 범이 되겠다느니 곰이 되겠다느니 사람이 되겠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꿈을 꾸지 않으니 아름답습니다. 전투기를 만들겠다느니 탱크를 만들겠다느니 기관총을 만들겠다느니 하며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지 않으니 예쁩니다.

 늑대는 그예 저 고픈 배를 채울 맛난 먹이만 헤아립니다. 저 고픈 배를 채울 맛난 먹이로 흐뭇하고, 다른 어느 것도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늑대한테 이제 이슬만 먹고 살라 바랄 수 없습니다. 늑대한테 닭을 함부로 잡아먹지 말고 다리 한 짝만 뜯어 먹으라 할 수 없습니다. 늑대는 늑대로 태어난 삶을 알맞게 꾸려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 삶을 아름다이 돌보아야 합니다. 오이는 오이로 태어난 삶을 사랑스레 가꾸겠지요. 뽕나무는 뽕나무답게 살면서 뽕잎을 누에한테 기꺼이 내주겠지요.

 꿈을 꾸면서 아름답고, 꿈을 돌보면서 예쁘며, 꿈을 이루면서 즐겁습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 늑대의 돼지 꿈 (다시마 세이조 그림,기무라 유이치 글,박이엽 옮김,현암사 펴냄,2002.4.10./12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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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27 00:00   좋아요 0 | URL
아유, 된장님은 어쩜 이렇게 우리 글을 이쁘게 쓰시지요?
사실 저번에 된장님의 책을 받은 이후, 페이퍼를 쓰다가 잠시 멈칫거려요.
그러다 결국 포기했지만요... ^^

아까 달아주신 댓글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중독자는 '사로잡힌 이'로 하면 되는구나 하구요. 그렇구나 하고 다시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그런데 고치기가 쉽진 않아요. 한발씩 천천히 연습하려구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무식한지, 어느게 한자어고 아느게 한글인지조차 헛갈리니... 에공.

파란놀 2011-08-27 06:10   좋아요 0 | URL
말을 고치는 일은 아니에요.
삶을 바꾸는 일이에요.

한자말이고 아니고는
그닥 대수롭지 않아요.

다만, 흔하게 쓴다는 한자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낱말이 무얼 뜻하는지를 거의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쉽게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생각하거나 느낄
우리 말을 알맞게 쓰자는 이야기입니다.

'중독'이라는 한자말을 뜻과 느낌을 옳게 가누며
쓰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다른 낱말도 거의 이와 마찬가지라고 여기면 돼요.

우리 말과 글을 예쁘게 쓰는 일은 나중 일이고,
먼저, 알맞고 바르게 쓰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으면 돼요.

마녀고양이 2011-08-27 09:40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네요....
마음을 기울이다, 참 이쁜 말이예요.

파란놀 2011-08-27 21:00   좋아요 0 | URL
아무쪼록
마녀고양이 님다운
이쁜 말을
날마다 즐겁게 찾아서
집안 식구들하고부터
널리 나누어 보셔요~ ^^
 

 

[누리말(인터넷말) 84] THIS IS PORTFOLIO

 ‘LECTURE PROGRAM’이라는 ‘THIS IS PORTFOLIO’는 ‘Self Creative Artwork’라고 합니다. 누리편지를 열며 처음에는 외국사람한테 보낼 편지를 나한테 잘못 보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래쪽에 조그맣게 적은 한글을 보고서야 비로소 한국사람인 나한테 보낸 누리편지가 맞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참말 모르겠습니다. ‘THIS IS PORTFOLIO’도 ‘LECTURE PROGRAM’도 ‘Self Creative Artwork’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을 좋아합니다. 사진이 얼마나 예술인가 모르겠고, 사진이 굳이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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