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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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는 사진, 읽는 마음, 따순 사랑
 [찾아 읽는 사진책 49]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님이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찍었는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책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을 읽습니다. 브레송 님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15쪽).” 하고 말합니다. 언제나 내가 두 발을 디딘 땅에서 내 모든 넋과 기운과 사랑과 땀방울과 말미를 바쳐서 일구는 사진 한 장인 셈입니다.

 참으로 마땅합니다. 글 한 줄을 쓸 때이든 그림 한 장을 그릴 때이든 노래 한 가락을 부를 때이든 춤 한 사위를 출 때이든 똑같이 마땅합니다. 언제나 모든 넋을 바치고 모든 기운을 들이며 모든 사랑을 쏟는 한편 모든 땀방울을 흘리면서 모든 말미를 깃들이는 삶입니다.

 사진을 찍으려 하는 사람 누구나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없습니다. 내 온마음을 바치지 않았으면 쉽게 찍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온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사진을 쉽게 찍습니다.

 사진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 모두 사진길을 걱정없이 걸을 수 없습니다. 내 온몸을 쏟아붓지 않았으면 사진길을 걱정없이 걸을 수 없습니다. 곧, 내 온몸을 쏟아붓는 사람은 사진길을 걱정없이 걷습니다. 다만, 사진길을 걱정없이 걷는대서 먹고사는 길이 다 풀리지 않아요. 때로는 먹고살기 힘겹고, 어느 때에는 밥을 굶으며, 어느 때에는 외롭거나 쓸쓸합니다. 그렇지만 내 온몸을 쏟아붓는 내 사랑하는 삶길을 일구는 사진일 때에는 가난이나 외로움이란 아무것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벗입니다. 살가은 길동무예요.

 브레송 님은 “나는 기쁨을 위해 일했고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일했다(21∼22쪽).” 하고 말합니다. 기쁘게 살아갈 사람들이고, 즐겁게 일할 사람들이에요. 꼭 사진을 찍기에 기쁘게 살지 않습니다. 반드시 사진기를 쥐었대서 즐거이 일하지 않아요. 호미를 쥐어 밭을 일구든, 펜이나 자판을 가까이하면서 회사일을 보든,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나 스스로 내가 선 일터에서 기쁘게 살아가면 됩니다. 나 스스로 내가 두 발 디딘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어울리면서 즐거이 일하면 돼요.

 기쁘게 살지 않을 때에는 기쁘지 않은 사진만 만듭니다. 기쁘게 살 때에는 아주 홀가분하면서 손쉽게 기쁨을 나누는 사진을 일굽니다.

 사진은 억지로 만들지 못합니다. 사진은 홀가분하게 찍습니다. 사진은 남달리 만들지 못합니다. 사진은 내가 살아가는 결과 무늬 그대로 곱게 찍습니다.

 사진은 전문가들끼리 키득거리는 꼼수가 아닙니다. 사진은 대학교 사진학과를 다니거나 나라밖 사진학교를 다닌 사람들끼리 꼼지락거리는 손재주가 아닙니다. 사진은 이름난 스승한테서 배우며 내 이름을 높이는 가방끈이 아닙니다.

 사진은 오직 내 사랑을 바친 삶입니다. 내 사랑을 바친 내 삶이 그대로 사진으로 나타납니다.

 사진을 억지로 만든다면, 내 삶부터 억지로 만들듯 꾸미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부터 꾸밈없을 뿐 아니라 수수할 때에 다큐멘타리라 하는 사진이 제대로 꽃을 피웁니다. 내 삶부터 살가운 손길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때에 상업사진이나 패션사진이 아리땁게 꽃을 피웁니다.

 누가 돈을 많이 준다 하면서 부탁하는 사진이기에 만듦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안 받고 찍어 주는 사진이기에 살갑거나 부드럽거나 착하거나 좋은 사진이 되지 않아요. 내 삶결 그대로 사진입니다. 내 삶결이 좋아야 내 사진이 좋습니다. 내 삶결이 보드라운 꽃송이여야 내 사진이 보드라운 꽃송이가 돼요.

 브레송 님은 “사진을 찍는 동안이나 암실에서 잔재주를 피워 사진을 조작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속임수들은 안목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실히 드러난다(26쪽).” 하고 말합니다. 잔솜씨는 누구나 알아챕니다. 잔재주는 누구나 느낍니다. 밥을 할 때에 어떻게 밥을 하는가는 밥술을 한 번 뜨면 누구나 알아챕니다. 요리사가 차리는 밥이든 어머니가 차리는 밥이든 할아버지가 차리는 밥이든 아이들이 차리는 밥이든, 밥을 차리면서 사랑과 꿈과 믿음과 땀을 어느 만큼 쏟았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져요.

 사진맛이란, 또 사진결이란, 또 사진삶이란, 나 스스로 내 사랑과 꿈과 믿음과 땀을 들이는 만큼 거듭납니다. 잔재주로는 잔재주 사진만 태어납니다. 잔솜씨로는 잔솜씨 사진만 만들고 말아요.

 브레송 님이 들려주는 “나는 인위적인 초상사진보다 여권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진열장에 겹겹이 쌓여 있는 조그만 증명사진들이 훨씬 더 좋다. 이런 사진들은 언제나 찍힌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이 얻길 바라는, 시적 동일시 대신 기록사진으로 남은 인물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다(30쪽).” 같은 말마디라든지 “암실에서 확대기를 통해 네거티브 필름을 재단하는 식으로 재구성한다고 해서 처음 찍었을 때 구성이 빈약한 사진이 살아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33쪽).” 같은 말마디를 가만히 되씹습니다. 번역을 한결 보드라이 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지만, 이 또한 사진찍기 삶읽기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브레송 님 책 《영혼의 시선》을 한국말로 옮긴 분 스스로 이 땅에서 누구와 이웃으로 사귀면서 어떠한 삶을 일구느냐에 따라 ‘어떤 한국말로 옮’겨서 ‘누가 읽도록 하려는 책’인가가 달라지거든요.

 이리하여 “누구나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50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삶을 사랑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동안 내 꿈을 이룹니다. 내 꿈을 이루는 동안 내 착한 아이를 쓰다듬는 내 손길을 따뜻하게 돌봅니다.

 “비행기는 너무 빨라서 한 나라에서 다음 나라로 이동할 때 일어나는 점진적인 변화를 볼 수 없다(59∼60쪽).” 같은 말마디를 읽을 때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좋으니까 밑줄을 긋습니다.

 나도 비행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고속철도 또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동차마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나는 내 두 다리를 사랑합니다.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들어 자전거를 탈 수 없거나 두 다리로 걸을 수조차 없이 된다면, 이때에는 한 자리에 가만히 누워 지내겠지요. 누워서 지내야 한다면 누운 자리에서만 둘레를 살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누워서 지내야 한다면, 누운 채 바라보는 내 둘레 삶자락을 사랑하면 됩니다. 아직 두 다리가 튼튼해서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면, 자전거로 달리며 만나는 내 삶터 둘레 이웃 보금자리를 가만히 살피면서 사랑하면 돼요.

 “앙드레 케르테스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는 그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87쪽).” 하고 적바림하는 브레송 님입니다. 그래요, 브레송 님은 앙드레 케르테스 님이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서듯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느낍니다. 나는 브레송 님이 한 줄 두 줄 살며시 적은 글월을 읽으면서 손에 펜을 쥔 브레송 님 뜨거운 핏줄기를 느낍니다.

 피로 쓰는 글이고, 피로 그리는 그림이며, 피로 찍는 사진입니다. 피를 바쳐 부르는 노래요, 피를 바쳐 추는 춤이며, 피를 바쳐 이루는 삶입니다.

 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내 사랑이 깃든 손발로 씩씩하게 일하며 일구는 삶을 좋아하는 내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4344.9.1.나무.ㅎㄲㅅㄱ)


― 영혼의 시선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글,권오룡 옮김,열화당 펴냄,2006.9.2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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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숭아 어린이


 어머니가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아이는 지난해에 이어 봉숭아물을 들였다. 그렇지만, 잠자리에서 몹시 번거롭게 여긴다.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싼 비닐을 모두 벗긴다. 손을 씻긴 다음 다시 잠자리에 누인다. 지난해에는 곯아떨어진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기에 이듬날까지 얌전히 지냈을까. 아이가 일찍 잠들었으면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한결 짙에 봉숭아물이 배었을까.

 하루가 지나고 들여다본다. 고작 한두 시간쯤 쌌을 뿐인데 물이 제법 곱게 남았다. 얼마나 갈는지 모르나 이만큼 얇게 남은 봉숭아물도 고맙도록 곱다. 한 살을 더 먹어 다섯 살에 봉숭아물을 들일 적에는 잘 견디며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으려나.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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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냄새 (자동차가 사람을 죽인다)


 첫째가 또 “아, 냄새!” 하고 말하면서 코를 싸쥔다. 자가용이 없고, 자동차를 탈 일이 없는 우리 살림이기에, 어쩌다 한 번, 그야말로 한두 달에 한 번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자동차마다 켜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나부터 ‘아이고, 냄새야!’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 놔서’ 이렇게 느낀 그대로 곧바로 말로 내뱉지 못한다. 말없이 꾹 참는다. 옆지기는 이런 나를 보며 ‘왜 이리 찌푸린 낯’이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옆지기를 보면, 아마 나와 비슷하지 싶은데, ‘똑같이 낯을 찌푸린’ 모습이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자동차에서 켠 에어컨 바람이 내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코로 쉼쉬기 힘드니까.

 아이는 자꾸자꾸 “아, 냄새!”를 되풀이한다. 에어컨을 켠 자동차이지만 아이를 생각해야 하기에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여니 바깥바람이 들어온다. 바깥바람을 쐬는 아이는 이제 코를 더 싸쥐지 않는다. 비로소 찌푸린 얼굴이 풀리고, 까르르 웃는다. 그러고 보면,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치고 ‘차 안에서 밝게 웃거나 맑은 눈빛을 보여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모두들 에어컨 바람에 찌들면서 ‘딱딱하게 찌푸리거나 굳은 얼굴’이 되고 만 탓이 아닌가 싶은데, 에어컨을 틀 때에는 등줄기나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흐르는 일은 없을 테지만, 몸과 마음은 나날이 무너지거나 무디어지는구나 싶다. 그나마 창문을 열고 자동차를 몰면 낫다 할 테지만, 자동차를 이룬 플라스틱과 쇠붙이에다가 기름을 태우면서 나는 냄새와 뜨거운 기운, 여기에 아스팔트를 달리면서 고무바퀴가 닳아 날리는 먼지가 온몸으로 깃들 테니까, 어느 모로 보더라도 ‘사람 몸에 좋을 구석’이 없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면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대로 몸이 망가진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꺼도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대로 몸이 다친다. 자동차를 어쩌다가 한 번 얻어 타는 사람조차 몸이 찌뿌드드하면서 고달픈데, 날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자동차에서 한두 시간이나 서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몸이며 마음이 얼마나 고달플까.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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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02 18:16   좋아요 0 | URL
아이가 차를 안타 에어컨 바람의 냄새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냄새가 나는 이유중의 하나는 에이컨 필터가 오래되서 그럴수도 있습니다.에어컨 필터도 때가되면 갈아주어야 한는데 차 주인중에는 이를 모르는 분들이 많지요ㅜ.ㅜ

파란놀 2011-09-03 06:12   좋아요 0 | URL
오래된 차이든 새로 나온 차이든 다 에어컨 냄새가 나요.
둘째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 금세 눈이 발개진답니다.
필터도 필터이겠지만
에어컨이란 워낙 사람한테 나빠요...
 


 노란 마티즈


 튀김닭집 아저씨가 우리 집 가까이까지 날라다 준다고 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배웅을 나가겠다고 한다. 둘이 어디쯤 만날 수 있을까 어림해 보는데, 튀김닭집 아저씨는 ‘노란 마티즈’를 타고 간다고 이야기한다. 알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고는, 아이를 수레에 태워 신나게 자전거를 달린다. 그나저나 나는 ‘마티즈’라고 하는 자동차를 모른다. 내가 아는 자동차는 ‘프라이드’하고 ‘그랜저’하고 ‘티코’ 세 가지쯤? 이밖에 다른 자동차는 잘 모르겠다. 길쭉해서 사람을 많이 싣는 자동차는 다 ‘봉고’로 여긴다. 내가 국민학생 때에는 온 나라에 ‘포니’라는 자동차가 넘쳤기에 포니는 알아볼 만하지만, 요즈음 포니를 타는 사람은 만날 길이 없다. 자동차 이름은 하나같이 낯설 뿐 아니라 마음으로 스미지 못한다. 자동차라는 탈거리부터 나한테는 너무 낯설고 무서우며 마음으로 스미지 않기 때문일 테지.

 아이는 자전거를 달리니 좋아한다. 오가는 자동차 거의 없는 시골길을 달린다. 논둑에서 기계로 풀을 베는 마을 할배가 보인다. 기름을 넣어 날카로운 칼날로 풀을 베는 기계 소리가 윙윙거린다. 기계에 베인 풀조각이 내 볼에 닿는다. 앗 따거. 수레에 앉은 아이가 소리를 낸다. 아이도 맞았나 보다. 나는 하마터면 눈에 풀조각이 맞을 뻔했다. 풀을 베려고 기계를 쓸 때에, 이 기계에 잘리는 풀조각은 마치 유리조각이 날리는 듯하다. 몹시 따가울 뿐 아니라 피가 나기까지 한다. 기계를 써서 풀을 베는 사람은 한여름에도 두툼한 바지에 웃도리에 모자에 얼굴가리개까지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풀을 베면서 당신부터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둑에서 이렇게 뒤집어쓴 채 풀을 베니 옆으로 누가 지나가더라도 알아보지 못한다. 기계소리는 워낙 크기 때문에 소리를 질러도 알아들을 수 없다.

 용산리 시골버스 타는 곳에 이를 무렵 노란 빛깔 자동차를 만난다. 이 차가 마티즈라는 차인가 보다. 튀김닭집 아저씨가 차에서 내린다. 서로 웃으면서 튀김닭과 돈을 주고받는다.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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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01 08:22   좋아요 0 | URL
ㅎㅎ 요즘 포니1 길거리에서 돌아다닐 정도가 되면 차 값만 수천만원을 호가합니다.에쿠우스보나 넘 비싼 차죠.아마 시간이 흐르면 억대가 될 귀한 차니 길거리에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용^^

파란놀 2011-09-01 08:34   좋아요 0 | URL
그런 것도 있군요.
비싼 차가 되어 수집하는가 보네요 @.@
 
나비 때문에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7
이원수 지음, 이태수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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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면서 살아갈 아이와 어버이
 [어린이책 읽는 삶 6] 이원수, 《나비 때문에》(우리교육,2003)



- 책이름 : 나비 때문에
- 글 : 이원수
- 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우리교육 (2003.8.20.)
- 책값 : 7000원



 (1) 사랑하며 살아갈 고운 목숨


 둘째 아이 백날째를 맞이해서 음성 할머니랑 할아버지하고 일산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함께 만납니다. 음성 할아버지가 호젓한 물가 밥집에 자리를 맡았다고 해서 밥집 일꾼이 커다란 자동차를 이끌고 모두를 태우러 옵니다. 어른 여섯과 아이 둘이 탑니다. 네 살 첫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안기며 앞자리에 앉습니다. 커다란 자동차는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합니다. 바깥은 후덥지근한 날씨이지만, 자동차 안쪽은 썰렁한 찬바람입니다.

 커다란 자동차에 타고 문을 탕 닫자마자 아버지 무릎에 앉은 아이가 말합니다. “아, 냄새!” 아이는 코를 싸쥡니다. 자동차가 달립니다. 아이는 자꾸자꾸 “아, 냄새!” 하고 되풀이합니다. 아버지도 ‘에어컨 바람 냄새’가 싫습니다. 싫고 괴롭지만 ‘어른인 탓’에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합니다. 아이가 너덧 차례 되풀이 말할 무렵, “에어컨 바람 냄새가 힘들구나.” 하고 가늘게 말하면서 슬쩍 창문을 엽니다. 창문을 타고 바깥 논밭을 흐르는 바람이 들어옵니다. 아, 이 바람이 얼마나 좋은가. 시골자락 논밭을 흐르던 바람을 쐬면서 자동차를 타면 얼마나 시원한가.

 아이는 비로소 손을 내립니다. 냄새가 난다는 말은 이제 더는 하지 않습니다. 바람맞이 놀이를 하지만 눈을 뜨기 어렵습니다. 자전거로 내리막을 달릴 때에도 이만 한 빠르기에서도 눈을 뜨기 어려운데, 훨씬 빠른 자동차에서는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면 눈을 뜨기 더 어렵지요.

 그런데, 이렇게 창문을 연대서 ‘자동차 냄새’가 가시지는 않습니다. 아스팔트길을 달리는걸요. 이 아스팔트길에는 자동차가 달리며 닳는 고무바퀴 까만 먼지가 곱게(?) 내려앉다가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휭휭 날립니다. 자동차 뒤꽁지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먼지가 둥둥 떠다니며 창문을 타고 들어옵니다. 창문을 닫을 때에는 자동차 엔진이 있는 맨앞에서 기름이 타는 냄새와 엔진이 도는 냄새가 조용히 스며듭니다.

 자동차를 몰기에 더 빨리 더 아늑하게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품과 말미를 아낍니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게 여깁니다. 이렇게까지 더 빨리 가야만 하나요. 이렇게 가는 길이 더 아늑할까요.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더 빨리 어디론가 움직이는 일이 우리 삶에서 가장 대수로운가요.


.. 우리(개와 고양이)는 이렇게 매일 장난을 했습니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도 나를 정말 아프게 물거나 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장난이지요. 장난인 줄 잘 알면서도, 내가 화가 나서 그놈을 잡으려 뜀박질을 하는 건 쬐꼬만 게 버릇없이 굴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건 내 걸음이 고양이를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작은 놈에게 내가 지는 게 싫어서 약이 오르는 것입니다 … “이 자식아! 왜 꽃밭은 마구 짓밟고 지랄이야?” “오빠, 나비는 암만 뛰어다녀도 꽃나무 하나 부러뜨리지 않지? 참 용해.” 꽃나무를 다치는 건 나(개)고, 나비는 하나도 다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 속상합니다 ..  (22, 25쪽)


 달리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앞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를 읊으면서 서로 어떤 느낌이거나 생각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내가 눈이 먼 사람이라 하더라도 서로 마주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하고 등을 진 채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소리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은 대단히 큽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결이 나와 마주한 사랑스러운 님 얼굴로 가 닿는 느낌은 아주 애틋합니다. 나와 마주한 사랑스러운 님 입에서 나오는 소리무늬가 내 얼굴을 타고 흐르면서 내 귀로 스며드는 느낌은 몹시 고맙습니다.

 즐겁게 살아가자는 나날입니다. 기쁘게 누리자는 삶입니다. 예쁘게 어우러지자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나라도 겨레도 학교도 돈도 이름도 뛰어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제도는 우두머리와 세금과 군대가 있습니다. 한 핏줄끼리만 사랑할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나 돈이나 이름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사랑이 꽃피울 수 없습니다.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손길이 사랑입니다. 예쁘게 소꿉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이 사랑입니다. 신나게 고무줄을 튕기고 깨끔발을 하는 몸짓이 사랑입니다.


.. “왜들 싸우는 거냐? 너 때렸구나.” 선생님은 은준이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녀요. 먼저 날 할퀴었어요.” 은준이는 손목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학교서 싸움하면 못쓴다고 하지 않았니? 동무끼리 싸우는 것 아니야. 알겠니? 또 싸우면 벌선다.” 은준이는 선생님이 저를 나무라는 것이 싫었습니다. 동무 아이가 구슬을 뺏아 가려고 한 건 모르고 저만 나무랍니다. 손목을 할퀸 걸 보여 드렸는데도 우는 아이보다 저를 더 나무랍니다 ..  (58쪽)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늘 생각합니다. 이 자동차에 짐을 싣거나 사람을 실으며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차를 몰밖에 없습니다. 자동차가 있을 때랑 없을 때는 참 크게 다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몰자면 자동차를 장만해야 하고 기름값을 치러야 하며 보험삯을 물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돈을 들이자면 돈을 더 벌어야 하고, 돈을 더 버는 만큼 돈벌이를 더 지키자니 자동차를 더 빨리 몰아 돈벌이를 더 후딱후딱 해치워야 합니다.

 자동차가 없으면 돈벌이는 더 줄겠지요. 돈벌이가 더 주는 만큼 자동차로 빨리빨리 느긋하게 다니며 더 누리던 삶은 이제 더 없겠지요. 그러나, 돈벌이가 더 주는 만큼 무언가 더 생기기 마련입니다. 돈벌이가 더 느는 만큼 내 마음대로 내 삶을 아낄 겨를은 더 줄어듭니다.

 무엇을 누릴 삶인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랑을 아끼려는 나날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하고 이웃이나 동무를 맺고 내 살붙이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고픈 꿈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찬찬히 깨닫고 나서 자동차를 장만하든 장만하지 않든 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도 깨닫지 않은 채 서둘러 자동차를 장만한다면, 애써 자동차를 장만했더라도 즐겁게 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자동차가 있어야 하느냐 없어야 하느냐 하는 갈림길이 아닙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얼마나 사랑하고, 나와 함께 살아갈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떤 사랑을 꽃피우려 하는가 하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갈 내 고운 목숨이니까요. 툭탁거리며 싸우거나 눈알을 부라리며 다툴 슬픈 목숨은 아니니까요. 서로 아끼면서 어우러질 예쁜 보금자리이니까요. 미움과 시샘이 가득한 고달프며 아픈 보금자리는 아니니까요.


 (2) 나비 때문에 살아간다


 ‘나비 때문에’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담은 짤막한 동화를 그러모은 어린이책 《나비 때문에》(우리교육,2003)를 읽습니다.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동화에 찬찬한 이태수 님 그림이 깃든 고운 이야기책입니다. 찬찬한 글에 걸맞게 찬찬한 그림이 붙습니다. 고운 글에 알맞게 고운 그림이 어우러집니다.

 나비 때문이든 동무 때문이든 뭐 누구 때문이든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가만히 살피면, 누구 때문에 엉망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 때문에 더 나빠진다거나 더 좋아진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내 마음이 어느 자리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입니다.


.. “임마 알아. 난 다 알아.” “어떻게 알아?” “나도 잘못했고 너도 잘못한 거야. 인제 싸우지 말잔 말이야.” “응, 그래.” 은준이는 인제 푸른 등나무 그늘에 가서 혼자 놀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여러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된 것입니다 ..  (74쪽)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 마음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내 넋이 믿음이라면 내 이웃이 되든 동무가 되든 살붙이가 되든 서로서로 늘 믿음입니다.

 더 밉거나 더 좋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길벗입니다. 더 반갑거나 더 못마땅하지 않아요. 하나같이 벗바리예요.

 나부터 마음을 살며시 기울일 때에 착한 삶입니다. 나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들일 때에 참다운 삶입니다. 내 손길과 내 눈길로 가만히 얼싸안을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 “아가, 아가들아, 인제 때가 되었구나. 은빛으로 부푼 너희들이 내게서 떠나갈 때가…….” “엄마,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이제 바람이 불어 오면 너희들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추며 멀리 사라져 가게 될 게다. 어느 들판일까? 산발치일까 그건 모르지만…….” “여기서 살고 싶은데요?” “아가, 엄마 말을 들어 봐라. 나는 일생을 사람들 발에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살아왔다. 그러면서 너희들을 기른 것은 지금의 이 경사스런 이별을 하기 위해서였단다. 이별은 슬프지만 그 슬픔을 씹어 삼키고 나면, 작디작은 너희들도 나처럼 어엿한 민들레가 된단다.” ..  (104∼105쪽)


 귀뚜라미 소리가 우렁찹니다. 귀뚜라미 소리에 섞이는 다른 풀벌레 소리가 어여쁩니다. 이들 풀벌레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쉬지 않고 갖은 노래로 채웁니다. 나는 빨래를 할 때이든 밥을 할 때이든 비질을 할 때이든 우는 아이를 안을 때이든 첫째 아이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이든, 언제나 이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한결 또렷이 들리고,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내 귀와 온몸으로 젖어듭니다. 때때로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이들 모든 풀벌레 소리가 한꺼번에 잦아듭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아름답던 노래 실타래가 그만 톡 끊어집니다. 그러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다 지나가고 나면 풀벌레는 다시금 기운차게 노래하면서 맑은 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시골자락뿐 아니라 도시자락에도 풀벌레는 있습니다. 풀섶이 거의 없다시피 한 도시라 할 테니 풀벌레 깃들 보금자리는 거의 없겠지요. 아파트 꽃밭에 풀벌레가 깃들 만하지만 꽃밭을 볼 만하게 꾸미자며 풀약을 자꾸 치면 이곳에서조차 풀벌레는 삶을 일구지 못할 테지요.

 온통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기계 소리밖에 들릴 길이 없는 도시자락이라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메마르지 않게끔 풀벌레는 한 마리 두 마리 목숨줄을 잇습니다. 그나마 참새와 비둘기가 이곳저곳 날아다니며 날갯짓 소리를 들려주고 힘겨이 살아내는 새들 울음소리를 나누어 줍니다.

 이 소리 저 소리가 내 마음으로 스며들며 내 몸을 움직입니다. 소리에 묻은 결과 무늬가 내 삶을 한결 고운 결과 무늬로 거듭나도록 돕습니다. 누구나 하루 스물네 시간을 풀벌레 소리에 폭 싸인 채 보낸다면, 온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과 사랑이 감도는 따사롭고 넉넉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나와 너와 우리는 다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갈 사람입니다. (4344.9.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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