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내려앉은 잠자리


 새벽안개 걷히는 아침나절, 오늘 적바림한 느낌글과 함께 그림책 속그림을 누리집에 함께 띄우려고 사진을 찍는다.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사진을 찍는데 마지막 사진을 찍을 무렵, 빨랫줄에 앉아서 쉬던 잠자리 한 마리가 그림책 가장자리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잠자리한테는 이 그림책 가장자리가 쉴 만한 터로 보였을까. 잠자리도 책을 함께 읽고 싶었을까. 한동안 가만히 서서 잠자리를 바라보다가 ‘자, 나는 이제 책을 덮고 집으로 들어가야 해. 너도 네가 갈 곳으로 가렴.’ 하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린다. 잠자리는 푸드득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날아간다. 나도 책을 덮고 집으로 들어간다.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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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싹 내인생의책 그림책 5
스티브 브린 지음, 강유하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포근한 보금자리로 사랑스레 돌아오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2] 스티브 브린, 《찰싹》(내인생의책,2007)



 그림책 《찰싹》을 장만한 날부터 첫째 아이는 이 그림책을 몹시 재미있게 들여다봅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보기도 하고, 방바닥에 이리저리 굴리다가도 또 들여다보곤 합니다. 아버지도 자리에 드러누워 펼쳐서 아이한테 읽히기도 하고, 어머니도 자리에 드러누워 둘째까지 함께 보라며 읽히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한테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힐 만하지 않다면 그림책으로서는 어딘가 모자라다고 느낍니다. 한두 번 읽히고는 더 읽힐 마음이 들지 않다면, 이런저런 지식이나 정보를 보여주기는 하더라도 덧없다고 느낍니다. 하루에도 차근차근 열 번 스무 번 되읽을 만하지 않다면, 이만 한 그림책은 처음부터 장만하지 않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기 앞서는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를 다루는 그림책도 곧잘 장만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아직 없으니, 어른은 나 혼자 보는 그림책이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때부터, 이런저런 지식 그림책이나 정보 그림책은 썩 덧없습니다. 자연이나 생태나 환경을 다루는 그림책도 그다지 재미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멧골자락에 깃든 작은 집에서 살아가기에 자연 그림책이나 생태 그림책이 그닥 재미나지 않을는지 모르나, 한국에서 내놓는 자연 그림책이든 일본이나 서양에서 내놓는 자연 그림책이든 ‘자연 생태계 지식’이나 ‘꽃 정보’에 머물곤 합니다. 이와 같은 지식과 정보를 보여주려는 넋을 옳게 드러내지 못해요.

 그림책 《찰싹》에는 푸른개구리가 나옵니다. 이 그림책에는 푸른개구리가 무얼 먹고 얼마만 한 크기이며 어디에서 사는지를 한 마디로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다른 짐승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고, 개구리 한살이나 짝찟기나 갈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푸른개구리 한 마리가 작은 못에서 살아가며 겪는 여러 가지 일을 보여줍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푸른개구리 보금자리는 푸른개구리가 좋아하면서 즐거이 지내는 터전입니다. 푸른개구리는 작은 날벌레를 잡아먹습니다. 개똥벌레까지 잡아먹습니다. 어린 푸른개구리는 커다란 잠자리까지 잡아먹지는 못합니다. 푸른개구리를 잡아먹을 만한 여러 가지 큰 새가 나오지만, 이 그림책에서 큰 새들은 푸른개구리를 잡아먹지 않고, 이모저모 도와줍니다. 이밖에, 푸른개구리 ‘찰싹이’가 머나먼 곳을 널리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곳이 어떠한 터전이요 살림인가를 자연스레 보여줍니다.


.. (푸른개구리) ‘찰싹’은 혼자서 하기를 좋아합니다. 뭐든지 혼자서 ..  (3∼4쪽)


 만화와 같은 결로 보여주는 그림책 《찰싹》은 따로 어떤 가르침(교훈)이 없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에 따라 무언가 가르침말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따로 어떤 ‘말’이 적히지 않는 그림책이기에, 이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아이한테 풀어서 들려줄 때에 어버이들 나름대로 이런 덧말 저런 덧생각을 들려주면 돼요. 다만, 가르침말이란 따분해서는 안 되고, 억지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아이들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거이 맞아들일 만한 사랑스러운 나눔말이어야 합니다.

 푸른개구리 찰싹이한테든,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한테든, 가장 바라고 가장 좋아하며 가장 빛나는 마음밥이란 바로 사랑일 테니까요.


.. 찰싹은 완전히 혼자가 되었습니다 ..  (29쪽)


 사랑은 따스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사랑은 살가운 사랑입니다. 사랑은 넉넉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즐거운 사랑입니다. 사랑은 믿음직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깨동무하는 사랑입니다.

 아이하고 밥 한 그릇을 밥상에 차려서 먹는 자리에서도 사랑이 어린 밥을 내놓고 함께 먹습니다.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나가는 길에도 어버이는 따사로운 손길로 아이를 보듬습니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슬슬 마실을 다닐 때에도 아이가 바람을 시원스레 맞으면서 이 시골길을 마음껏 즐기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사랑이기에 홀가분합니다. 사랑이기에 예쁩니다. 사랑이기에 해맑습니다. 아이는 어른 앞에서 맑은 눈빛으로 조잘조잘 떠듭니다. 아이는 어른 앞에서 맑은 귀를 열어 어른들이 맑은 소리를 들려주기를 기다립니다. 어른들이 맑은 소리를 들려주면 이 맑은 소리는 아이들 가슴에서 맑은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노래로 되살아납니다. 어른들이 맑지 않은 소리를 아이들 앞에서 섣불리 들려준다면, 아이들 가슴에서는 맑지 못한 먼지가 피어오르겠지요.

 맑은 삶을 사랑하면서 맑은 넋과 꿈으로 맑은 이야기를 길어올릴 어른들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푸른개구리 찰싹이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귀로 흘리면서 제멋대로 놀려다가 그만 아주 혼자가 됩니다. 아주 혼자가 된 다음 깊이 생각에 잠기고, 깊이 생각에 잠긴 끝에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꼭 함께 살아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서로를 따사로이 아끼는 사랑을 애써 등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따사로이 아끼는 사랑어린 보금자리를 마다 할 까닭이 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저 배만 불리는 밥이란 맛나지도 즐겁지도 반갑지도 않아요. 배는 좀 덜 부르더라도 따순 손길로 알뜰히 마련해서 함께 즐기는 밥이라면, 제아무리 가난한 살림살이 가난한 밥상이라 하더라도 맛나고 즐거우며 반갑습니다. 푸른개구리 찰싹이는 사랑스러운 따스한 보금자리가 얼마나 좋은가를 천천히 깨달아 너그러운 어머니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4344.9.7.물.ㅎㄲㅅㄱ)


― 찰싹 (스티브 브린 글·그림,내인생의책 펴냄,2007.11.1./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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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책읽기


 음성 할머니가 아이한테 옥수수를 쪄서 내준다. 옥수수는 퍽 뜨겁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 뜨거운 옥수수자루를 거침없이 집어든다. 아뜨 아뜨 하면서도 옥수수자루를 입에 문다. 워낙 옥수수를 좋아하다 보니 뜨거운 옥수수라 하더라도 뜨거움을 견디면서 먹는다.

 뜨거운 옥수수를 맛나게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옆지기는 이듬해에 옥수수를 많이 심어야겠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아이도 옆지기도 옥수수를 잘 먹는데, 우리 텃밭에 옥수수를 잔뜩 심어야지. 새 보금자리에서 우리가 지을 텃밭을 얼마나 얻을 만한지 모르지만, 요 빈터 저 빈터에 신나게 심어야지. 겨우내 똥오줌 거름 잘 모아서 거름도 예쁘게 주어야지. 새해를 맞이해서 새롭게 옥수수를 심을 때에는 첫째 아이는 다섯 살이 될 테니까, 올해보다는 흙일을 한결 잘 거들겠지.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더라도 아이한테 글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네 살이건 다섯 살이건 글을 배우기에 퍽 이르다고 느낀다. 일곱 살까지는 글을 몰라도 되고, 여덟 살이 되어도 글을 몰라도 돼. 아이 스스로 글을 배우고 싶다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글을 가르치면 돼.

 글을 모르는 아이라 하지만, 호미 쥐기는 제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하나씩 둘씩 집어 밭고랑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쏙쏙 넣고 손바닥으로 판판하게 덮는 일 또한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양을 바라보면서 배운다. 아이는 흙을 일구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는 이런 책을 읽을 수조차 없다. 아이는 몸으로 배우고 삶으로 익힌다. 아이는 스스로 흙하고 하나로 얼크러지면서 흙을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 같은 이야기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대서 깨닫거나 느끼거나 배울 수 없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을 할 수 없다. 도시 일자리를 내려놓고 시골로 가야 한다. 도시에서 돈을 좀 덜 벌면서 빈터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텃밭을 일구어야 한다.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하늘바라기를 할 줄 모른다면, 환경책을 천만 권 읽는들 더할 나위 없이 부질없다.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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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책읽기


 엊저녁부터 22℃로 떨어진다. 드디어 올해에도 가을이 한복판에 이르는 한편, 머잖아 겨울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저녁나절 방 온도가 22℃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일러를 한 차례 돌린다.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던 때 22℃는 이제부터 보일러를 적게 때거나 안 때도 된다는 뜻이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22℃는 이제부터 신나게 보일러를 때야 하는 철이 닥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22℃는 온도계를 보기 앞서 내 살갗과 몸으로 먼저 느꼈다. ‘어, 오늘은 저녁부터 퍽 쌀쌀한데. 오늘은 창문을 더 일찍 닫아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아직 한가위가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꽤 쌀쌀하다고, 좀 서늘하다고 느끼는 저녁바람이 되었다고 느끼면서 온도계를 보았다. 그제까지는 저녁에 24℃나 25℃였고, 한밤에 23℃나 22℃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해가 떨어진 저녁부터 22℃가 되었으니, 곧 한밤에 20℃나 19℃까지 떨어지겠지.

 시골에서 살아가더라도 읍내나 시내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은 이러한 온도를 잘 못 느끼리라 본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날마다 하늘과 구름과 달과 해와 바람과 나무와 풀을 살필 때에 비로소 이러한 온도를 잘 느끼리라 본다. 두릅나무 작고 하얀 꽃이 한창 흐드러지다가 이제 하나둘 저문다.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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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 씻기


 아침에 아이를 씻기는데 무언가 미끈거려 내려다보니, 허벅지에 똥이 묻었다. 바지에도 묻었다. 이 녀석이 똥을 언제 누었지? 소리 없이 누었나? 아니, 소리 내며 누었을 텐데 아이를 씻기려고 물을 받는 사이에 누었나 보다. 그래, 잘 했다. 씻기다가 똥을 누었으면 물을 다시 받아야 하잖아. 내가 입던 바지도 곧 빨아야 했으니 잘 되었지. 똥 눈 아이 엉덩이부터 씻기고 몸을 씻긴 다음 똥빨래를 신나게 한다. 마땅한 노릇이지만, 모두 내 맨손으로. (4344.9.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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