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맞추어 나올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마지막 교정 교열을 본다. 이제 다 끝냈고, 출판사 일꾼한테 편지를 띄웠다. 눈이 아프고, 몸이 무겁다. 이제 얼른 자야지. 명절에도 이 피디에프 파일을 읽느라 아주 죽어났다. 

예쁜 옷 입고 예쁘게 태어날 고운 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아... 표지 시안이 나오면 여기에서 골라뽑아야 하지... 에궁... ㅠ.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ookJourney 2011-09-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

파란놀 2011-09-14 09:12   좋아요 0 | URL
저도 알맞게 나와서 내 둘레 고마운 분들한테
좋은 말삶을 나누어 주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감자 밭 비룡소의 그림동화 91
애니타 로벨 글.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싸우는 아들, 싸우는 사내, 싸우는 바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5] 아니타 로벨, 《어머니의 감자밭》(비룡소,2003)



 한가위날, 온 식구가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입니다. 가방에 그림책 하나를 챙깁니다. 어느 그림책을 챙겨서 아이하고 읽을까 하다가 아니타 로벨 님 《어머니의 감자밭》(비룡소,2003)을 가방에 넣습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나, 할머니·할아버지 댁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아이가 텔레비전에 푹 빠지기를 바라지 않으니 그림책을 한 권 챙기지만, 아이는 텔레비전뿐 아니라 함께 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을 뿐 아니라, 이것저것 집에 없는 여러 가지를 놀잇감으로 삼습니다.

 폭신한 걸상에서 붕붕 뛰는 아이를 말리려 하더라도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아요. 이렇게 뛰며 놀기가 재미있으니 어찌할 길이 없겠지요.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갑기에 끄고는 옆지기가 그림책을 함께 읽자고 하지만, 아이는 이내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립니다. 작은할아버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합니다. 참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집에는 이런 것도 없고 저런 것도 없다지만, 읍내에 나오거나 마실을 나오면 어찌할 길 없이 이런저런 것을 아이들한테 보일밖에 없고, 아이는 이 여러 가지에 사로잡힐밖에 없습니다.

 좋은가 안 좋은가를 가리기 앞서 받아들이는 넋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 또한 좋은가 안 좋은가를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이곤 합니다. 이를테면 초·중·고등학교 졸업장과 대학교 졸업장이 좋은가 안 좋은가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나서 시골로 돌아간다든지, 또는 시골로 찾아간다든지, 이러면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려는 젊은 넋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대학교를 마쳤으니 일삯을 많이 주는 큰 회사에 들어가 사무직 일꾼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아주 마땅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럭저럭 돈을 벌고 나면 아파트 한 채 얻기를 바라고, 아파트 한 채를 얻기 앞서 자가용부터 장만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다 다른 삶을 일군다고 느끼기 힘듭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은 곳에 모여 다 같은 일을 할 뿐 아니라, 다 같은 돈을 벌고 다 같은 돈을 쓰다가는, 다 같은 아이들을 낳아 다 같은 틀에 맞추어 똑같이 길들이기만 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는 내 삶에 좋은가 안 좋은가를 헤아리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구나 싶습니다. 내 삶조차 좋은가 안 좋은가를 헤아리지 않는 만큼, 내 마을 삶자락을 헤아리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은 더 얕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나 내가 목숨을 얻어 누리는 지구별을 헤아리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은 거의 바랄 수 없거나 아예 꿈꿀 수 없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읽으면서 마음으로 아로새기고 싶은 그림책을 골라 커다란 가방에 넣고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찾아가지만, 첫째 아이는 이 그림책보다 다른 데에 눈길이 쏠릴 테고, 이 모습을 그저 말없이 바라봅니다.


.. 옛날 옛날에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지요. 두 나라 사람들은 서로 싸우느라 아무도 가축과 농사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 동쪽 나라 군대와 서쪽 나라 군대가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감자를 차지하기 위해 또다시 격렬한 싸움을 벌였지요 ..  (5, 26∼27쪽)


 그림책 《어머니의 감자밭》은 전쟁 이야기를 다룹니다. 까닭없이 싸우고, 끝없이 싸우며, 생각없이 싸우는 바보스러운 사내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예나 이제나, 싸움터에 총칼을 들고 나가서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는 이들은 온통 사내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들이 총칼을 들고 나가서 싸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퍽 먼 지난날, 한겨레 삶터로 쳐들어온 이웃나라 사람들을 물리치려고 성벽 안쪽에서 치맛자락에 돌멩이를 담아서 나른 아주머니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돌멩이를 담아서 나른 아주머니들이 있다고는 하나,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이면서 땅을 빼앗고 보배를 가로채려는’ 어머니는 없었습니다.

 중남미에서 이곳 토박이를 끔찍하게 죽이면서 보배를 가로채고 땅을 빼앗은 이들이건, 북중미에서 이곳 토박이를 모질게 죽이면서 보배를 가로챌 뿐 아니라 땅을 빼앗은 이들이건, 식민지를 넓힌다며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군대를 보낸 유럽 나라이건, 언제나 사내들이 총칼을 들고 대포를 쏘며 탱크와 비행기로 사람과 땅과 자연을 불살랐습니다.

 내 밥그릇을 넓히려고 총칼 같은 무기를 만듭니다. 내 밥그릇을 키우려고 남이야 죽건 다치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림책 《어머니의 감자밭》에 나오는 어머니는 조용히 감자밭을 일굽니다. 아들 둘을 돌보면서 감자밭을 일굽니다. 아들 둘이 바보스러운 전쟁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높직하게 울타리를 세우지만, 이 울타리에 고개를 내밀며 그예 휩쓸리고 마는 두 아들입니다. 더욱이, 이 두 아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내들이 군인옷을 걸치고 총칼을 걸친 모습을 바라보는 ‘도시 젊은 가시내’들은 꽃을 던지면서 좋아라 합니다.


.. “내가 보기에는 군복은 더러운 데다가 너덜너덜하고, 칼은 구부러지고 부러진 것 같구나. 얘야,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렴. 저녁에는 맛있게 감자를 튀겨 먹자꾸나.” “싫어요. 전 더 이상 감자를 키우고 싶지 않아요.” 큰아들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집을 나가 동쪽 나라로 가 버렸습니다 ..  (13쪽)


 아마 적잖은 아이들이 《어머니의 감자밭》이라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또는 《나는 평화를 꿈꿔요》라든지,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수많은 좋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좋으면서 훌륭하다는 그림책을 읽고 자라는 아이들이 푸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될 무렵, 한국땅에서는 어김없이 군대에 가야 합니다. 사내들은 ‘나라사랑’이라는 허울을 써야 합니다. ‘국가안보’와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에 길들어야 합니다.

 이웃한 나라에서도 이 틀거리는 비슷합니다. 남녘과 북녘은 서로를 아주 몹쓸 미운 놈으로 여기면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야 합니다. 서로를 믿으면 안 되고, 서로를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서로를 아낄 까닭이 없다 하고,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일이 없다 합니다.

 학교에서든, 신문·방송에서든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어느 어머니라 하든 ‘아이야, 너는 커서 저기 저쪽 나라 사람들을 흠씬 두들겨패며 죽이는 군인이 되어야 한단다.’ 하고 가르치지 않을 텐데, 아이들은 나이를 먹으며 어른이 되는 길에서 ‘싸움에 길들고 남을 밟고 올라서며 1등을 해야 하는 일에 물듭’니다. 아이들은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자라지 못합니다.


.. 어머니는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내 집을 부수고 내 밭을 짓밟았어요. 하지만 아직 창고에는 여러분 모두가 배불리 먹을 만큼 많은 감자가 있지요. 그 감자를 나누어 주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은 약속을 하나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이 쓰레기들을 모두 치운 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이에요.” ..  (32쪽)


 흙을 일구지 않고 무기를 만들면, 사람은 무얼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흙을 돌보지 않고 무기를 손에 쥐면, 사람은 하루라도 맑은 숨을 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흙을 아끼지 않고 무기를 잘 다루는 길만 배우면,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나 사람으로 나눌 사랑이 있기나 한지 궁금합니다.

 전쟁 이야기만 이와 같지 않습니다. 경제 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경제성장이 잘 되는 일과 우리 삶이 아름다이 거듭나는 길은 얼마나 이어졌을는지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운동경기도 이와 같습니다. 이런저런 운동경기에서 높다 하는 성적을 거두는 일하고 우리 삶이 참다이 태어나는 길은 얼마나 만날는지요.

 라면으로 만드는 밀은 누가 어디에서 거둘까요. 사람들이 먹는 밥은 누가 논을 돌보며 벼를 거두어야 할까요. 소시지나 햄이나 세겹살이 되는 고기는 누가 어디에서 짐승우리를 돌보며 짐승 목아지를 따서 고기로 손질해야 할까요.

 《어머니의 감자밭》에 나오는 어리석은 두 아들이 군인이 되겠다며 집을 뛰쳐나간 일은 참 딱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아들, 곧 사내는 이 둘만이 아닙니다. 군대를 이룬 모든 아들들, 모든 사내들이 어리석습니다. 장교이든 사령관이든 병사이든 한결같이 어리석습니다. 군인이 되어 사람을 죽이는 재주를 실컷 배우는 이들은 무슨 삶을 일굴 수 있겠습니까. 군인이 되어 사람을 죽이는 재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무슨 사랑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회사에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무슨 삶을 일굴 수 있나요. 대학교이든 초·중·고등학교이든 학원이든, 이런 데에서 학생을 잘 가르친다는 사람들은 무슨 꿈을 이룰 수 있나요. 공무원들은, 운동선수들은, 과학자들은, 전문가들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참말 무슨 삶과 사랑과 꿈과 믿음을 나눌 수 있나요.

 한가위를 지내고 시골집으로 돌아와서는 조용한 풀벌레 소리를 듣고, 구름 사이로 언뜻선뜻 비치는 햇살을 바라며 빨래를 넙니다. 푸른개구리 하나 집으로 들어오기에 손으로 살며시 쥐어 마당으로 내보냅니다. 한낮이 되어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고, 아침부터 네 차례 빨래를 하니 한가위를 둘러싸고 이래저래 쌓인 빨래가 어느 만큼 줄어듭니다. 옆지기는 둘째 갓난쟁이를 무릎에 눕히며 뜨개질을 합니다. 나는 땀을 흘리면서 이것저것 치우고 책을 들추며 밥을 차립니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고, 함께 바람을 마시면서 햇살을 누릴 수 있으면, 우리 밥거리를 텃밭에서 일구면서 가을녘 노랗게 물드는 나무들이 베푸는 작은 열매를 얻을 수 있으면, 그예 좋은 하루라고 여깁니다.

 도시가 생기기 때문에 싸움은 끊이지 않고, 도시가 커지기 때문에 싸움은 더 불거지며, 도시를 버티려 하면서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 고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바보스러운 아버지들을 불러들여야, 시나브로 싸움이 사그라들면서 사랑이 꽃피울 수 있습니다. (4344.9.12.불.ㅎㄲㅅㄱ)


― 어머니의 감자밭 (아니타 로벨 글·그림,장은수 옮김,비룡소 펴냄,2003.2.17./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기랑 사진찍기


 아버지는 책을 읽고 나서 책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은 속알맹이를 몇 군데쯤 사진으로 찍는다. 사진으로 찍고 나면 이 사진들을 책느낌글에 붙여 누리집에 함께 띄운다. 어머니가 책을 읽고 아버지가 책을 읽으니, 아이도 곁에서 책을 읽는다. 아버지가 책을 앞에 놓고 한두 쪽씩 넘기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으레 바라본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가 하듯 아이 그림책을 앞에 놓고서 사진을 찍는다. 어느 모로 본다면 대견스러운 모습일 테지만, 다른 모로 본다면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주며 무엇을 함께하느냐에 따라 서로서로 삶이 달라질밖에 없구나 싶을 모습이다. 어버이가 좋아하거나 즐기지만, 아직 아이한테는 이르거나 좋지 못하다 한다면, 이러한 ‘어버이가 좋아하거나 즐기는 일’은 어버이한테 얼마나 좋거나 즐거울 일이 될까. 전자파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기에 아이들한테 손전화뿐 아니라 요즘 새로 나오는 무슨 전자제품을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어른들은 손전화뿐 아니라 새로 나오는 무슨 전자제품을 신나게 사들여 오랫동안 만지작거린다. 제아무리 석유 걱정 지구자원 걱정 환경오염 걱정을 한다고 입으로 떠들어 보았자, 어른들은 자가용 굴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타야 할 만큼 타는 자가용이 아니라, 그냥 타는 자가용이 되고 만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타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이 아주 드물다. 이런 어른 곁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며 받아들일까.

 옆지기와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무엇을 보여주며 무엇을 함께해야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참다우면서 빛날까 하고 헤아린다. 아이들 몸과 마음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는 어른들 또한 몸과 마음이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보금자리에서 싱그러우면서 사랑스러울까 하고 가늠한다.

 어버이는 땅을 마련해야 한다. 어버이는 손수 일굴 기름진 흙으로 이루어진 땅을 마련해야 한다. 어버이는 바다나 냇물·멧자락·들판·숲이 고루 어우러진 살가운 땅을 마련해야 한다. 어버이부터 이곳에서 살림을 예쁘게 돌보아야 한다. 어버이가 돌보는 살가운 터전을 아이들이 기쁘게 물려받아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저희 아이들을 낳고 살아가고 싶을 만큼 예쁜 보금자리를 보살펴야 한다.

 아이가 읽을 책은 숲이요, 아이가 찍을 사진은 다람쥐이다. 아이가 읽을 책은 배추씨요, 아이가 찍을 사진은 배추잎이다. 아이가 읽을 책은 호미요, 아이가 찍을 사진은 고랑이다. 아이가 읽을 책은 바람이요, 아이가 찍을 사진은 햇살이다. (4344.9.13.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토리 책읽기


 도토리가 떨어진다. 나도 줍고 아이도 줍는다. 도토리를 한 알씩 줍는 아이는 “아버지, 도토리요!” 하고 외친다. 처음에는 덜 익은 풋도토리가 떨어졌으나, 이제는 잘 익은 도토리가 떨어진다. 멧자락에서 살아가는 다람쥐한테는 아직 나무에 달린 도토리가 많을 테니까 바람 불어 떨어지는 한두 알쯤이야 대수롭지 않겠지. 그러나 날마다 한두 알씩 떨어지는 도토리는 아이한테 놀라운 선물이다. 도토리를 곱게 빻고 갈아 묵을 쑤자면 도토리 열매가 참 많이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 식구가 시골집에서 손수 도토리묵을 쑤지는 못한다. 길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으면서 한 알은 밭이나 빈터에 던지고, 한 알은 아이가 건사해서 밥그릇에 예쁘게 담는다. 겨울을 나고 봄을 즐기다가 여름을 누빈 참나무마다 가을을 맞이해서 도토리를 떨군다. 참나무는 좋은 숲동무이자 고마운 숲스승이다. (4344.9.13.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살아가는 책읽기


 모든 사람은 살아갑니다.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죽은 넋입니다. 모든 사람은 새로운 밥을 먹으면서 새로운 목숨을 얻어 새로운 나날을 살아갑니다. 새로운 밥을 먹어 새로운 목숨을 얻듯,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살아갑니다. 새롭게 살아간다 할 때에는 새롭게 자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는다’고 하는데, 늙기 또한 ‘자라기’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크기’로 ‘자라기’를 이루고, 어른은 ‘늙기’로 ‘자라기’를 이룹니다. 어린이나 푸름이는 자라면서 한껏 싱그러운 꿈을 키운다면, 어른은 자라면서 머잖아 눈을 감고 숨을 거둘 마지막날을 헤아리는 꿈을 보듬습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숨을 쉬기에 살아갑니다. 살아가기에 날마다 새로운 한 가지를 배웁니다. 오랜 나날 살아온 깜냥을 바탕으로 슬기를 빚을 수 있지만, 오랜 나날 살아온 깜냥은 잊은 채 하루라도 더 튼튼하거나 젊은 몸으로 뛰놀고프다는 덧없는 밥그릇에 얽매이는 바보스러움을 일굴 수 있습니다. 슬기도 배움이요 바보스러움도 배움입니다. 《어머니의 감자밭》이라는 그림책처럼, 사람들은 끔찍하게 죽이고 죽는 싸움(전쟁)을 치러야 비로소 나눔(평화)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가를 깨닫곤 합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삶, 바보스러운 짓, 멍텅구리 같은 모습 또한 고마운 슬기 구실을 합니다.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살아가는 책읽기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인 만큼 살아가는 마음읽기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랑읽기예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저 먼 곳에서 살아가거나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들 나날을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저 먼 때에 살았거나 살아갈 사람들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따사로운 손길을 받고 너그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저 먼 누리에서 어떤 사랑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씨를 냈는가를 따사롭고 너그러이 나눕니다.

 둘째 갓난쟁이는 새벽녘 칭얼거리다가 어머니 젖을 물고 잠듭니다. 이윽고 오줌을 누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울다가 다시 어머니 젖을 물고 새근새근 예쁜 소리를 내며 잠결에 듭니다. 첫째 네살박이는 어제 하루 고단하도록 놀더니 한밤에 힘겨운 몸으로 깨어 앓는소리를 하다가 어머니가 따숩게 건네는 말마디를 듣고 아버지가 살며시 가슴에 얹는 손바닥 따스함을 느끼면서 고즈넉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음을 열고, 마음을 열 때에 책 하나 손에 쥐어 읽을 만합니다. 살아가는 책읽기는 사랑하는 책읽기입니다. (4344.9.12.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