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책읽기


 부산마실을 나온 네 식구가 보수동 헌책방골목 이곳저곳을 걸어서 다닌다. 책을 보고 가게를 보며 사람을 본다. 이른아침 아직 세 식구가 달콤하게 잠을 자는 동안 아버지 혼자 조용히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본다. 여관에서 가볍게 밥을 먹은 다음 기저귀가방만 들고는 밖으로 나온다. 보수동 골목집으로 이어지는 끝자락 빵집 못 미쳐 새로 문을 연 헌책방 앞에 선다. 이곳은 열쇠 만드는 일을 함께한다고 적힌 헌책방이다. 헌책방 이름은 ‘천지서적’.

 무척 낯익은 이름이요, 열쇠를 함께 만든다는 말마디를 보고는 얼른 들어가고 싶다. 설마 서울 성수동에 있던 헌책방이 이곳으로 옮겼을까.

 둘째를 품에 안고 걸어가는데, 헌책방 일꾼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다. 아, 맞구나. 서울에서 헌책방을 하시던 분이 맞다.

 이제 부산 보수동 헌책방 일꾼이 된 〈천지서적〉 사장님은 이야기한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내 가게도 아니고, 치우라 할 때에 비켜 줘야 하는데, 여기로 와서 내 집을 사고 가게를 열었으니까요, 앞으로 오래오래 이곳을 지키면서 할 겁니다.”

 2011년 5월에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쪽 끝자락에 살림집을 마련하고 골목길 쪽으로는 가게를 내셨단다. 좋다. 참 좋다. 작은 헌책방골목 작은 헌책방이 좋다. 작은 헌책방에서 일하는 작은 일꾼이 좋다. ‘내 가게’로 장만해서 헌책방골목을 지킬 수 있는 삶이 좋다. 헌책방골목 한켠을 이곳으로까지 이어 책손 발걸음을 맞이하는 삶이 좋다.

 서울에서는 달삯 내느라 빠듯할 수밖에 없다면, 부산에서는 집을 살 수 있을까. 부산에서 문화를 하거나 예술을 한다는 적잖은 사람들이 부산을 버리고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가 ‘부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기관지 2011년 9월호 머릿글’로 적힌다. 보수동 헌책방골목 문화관 7층에 있는 책쉼터에서 이런 글 하나를 읽는다. 이러면서 헌책방 〈천지서적〉 일꾼을 나란히 생각한다. 부사문화재단 사람들은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을 ‘문화인’이나 ‘예술인’으로 여길까.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이 ‘부산 문화를 일구’거나 ‘부산 예술을 지킨’다고 느낄까.

 부산일보사에서 1980년대 첫머리에 실었던 글을 그러모아 1983년에 내놓은 《고향》이라는 두툼한 책을 두 권 본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깃든 작은 헌책방 〈글벗 2〉와 〈천지서적〉에서 이 두툼한 책을 본다. 부산과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자랐던 사람 가운데 ‘어른이 되어 이름이나 돈이나 힘을 날린 여러 사람’들이 어린 나날을 돌이키면서 ‘오늘(1980년대 첫무렵)’하고 견주는 이야기가 촘촘히 실린 책이다. 1983년에 부산일보사에서 펴낸 이 책(나는 사진책이라고 느낀다)에 실린 사진은 1983년 언저리 ‘눈부시게 달라지고 새롭게 꽃피우는 경제성장’으로 해맑게 보인다는 부산 모습을 비춘다.

 스물여덟 해 지난 2011년 눈길로 1983년 모습을 어림한다. 2011년에서 1983년을 되새길 때에 이 같은 부산 모습은 어떤 삶자취로 아로새길 만할까. 부산일보나 부산시나 부산문화재단이나 부산땅 예술인 문화인 교육인 정치인 경제인 체육인 …… 들은 1983년에 나온 《고향》이라는 두툼한 책을 알까. 떠올릴까. 값어치나 빛줄기를 헤아릴까.

 부산에 닿아 만화쟁이 호연 님한테 전화를 건다. 호연 님은 요즈막에 내놓은 만화책 《사금일기》(애니북스)를 놓고 ‘팬 사인회’나 ‘독자만남’이나 여러 일로 몹시 바쁘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이야기꽃을 살짝 피운다. 만화쟁이 호연 님은 이야기 끝자락을 “제가 지킨 부산을 즐겁게 구경해 주세요.” 하고 맺는다.

 참말 그렇다. 부산은 호연 님이 지켰다. 호연 님 같은 사람들이 지켰다. 이름이 하나도 알려지지 않던 나날에도 부산에서 살았고, 이름이 조금 알려진 나날에도 부산에서 살아가는, 호연 님을 비롯한 숱한 사람들이 부산에서 살면서 부산문화와 부산예술을 알알이 일군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들은 부산에 깃들며 부산사람을 마주하면서 부산다운 헌책방을 지키는 동안 부산 책삶을 알뜰살뜰 보살핀다.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책읽기 향긋한 내음을 나누는 헌책방 〈천지서적〉이 사랑스럽다. (4344.9.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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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9-25 16:50   좋아요 0 | URL
음,성수동에 있던 천지 서적이 부산 보수동으로 내려갔군요.아마 비싼 임대료때문에 그런가 봅니다.사실 서울은 비싼 임대료때문에 헌책방 하기가 힘들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아마 이젠 서울보다 부산이 헌책방 수가 더 많지 않을까 싶네요ㅜ.ㅜ
 



 헌책방 책읽기


 책은 물건이 아닙니다. 책은 책입니다. 쌀은 물건이 아닙니다. 쌀은 쌀입니다. 쌀은 쌀이지만 ‘물건을 사고팔듯’ 쌀도 사고팔 수 있습니다. 볍씨를 심어 모를 낸 다음 모를 옮겨심고는 석 달이나 다섯 달을 기다려 나락을 베어 얻은 쌀은, 논일꾼만 먹을 밥이 되지 않습니다. 논을 일구지 않는 사람도 돈을 치러 장만해서 먹을 밥이 됩니다. 책 또한 책방에서 사고팔지만, ‘사고판대서 모두 물건이라 여길’ 수 없습니다. 책은 새 것이건 헌 것이건 종이에 아로새진 이야기를 마음으로 아로새기면서 내 삶을 새롭게 북돋우거나 일구는 길동무 구실을 합니다.

 책은 내 주머니를 털어 기쁘게 장만한 다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은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찾아가서 가만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읽고 내려놓아도 책읽기입니다. 반드시 장만해서 내 집 내 책꽂이에 꽂아야 책읽기가 아닙니다.

 읽기와 훑기는 같지 않습니다.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훑는 일은 책읽기가 아닙니다. 훑기이자 살피기입니다. 내 집 내 책꽂이에 건사할 만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입니다.

 주머니를 털어 장만하든 말든, 손에 쥐는 동안 내 마음에서 무언가 뭉클하게 샘솟는 이야기가 있어야 책읽기가 됩니다. 서서 한 쪽을 읽든 선 채로 백 쪽을 읽든, 이렇게 읽으면서 내 넋을 곱게 돌보는 길을 헤아린다면 책읽기가 됩니다. 도서관에서는 제아무리 많다 싶은 책을 읽어도 ‘값을 치르지 않’아 고맙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서거나 앉아 책을 읽다가 내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몸둘 바를 모르면서 ‘이 책 얼마예요?’ 하고 묻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책 뒤에 찍힌 값대로 돈을 치릅니다. 헌책방에서는 헌책방마다 다 다른 값을 치릅니다. 같은 헌책이라 하더라도 헌책방 한 곳에 스며들기까지 거친 길은 다 다릅니다. 어느 책은 무척 거친 길을 거칩니다. 어느 책은 무척 고운 길을 거칩니다. 어느 책은 얄궂은 책임자한테서 버려지는 바람에 잔뜩 구겨지거나 먼지와 때와 파리똥을 뒤집어씁니다. 어느 책은 사랑스러운 책임자가 예쁘게 들고 와서 헌책방에 내다 팔았기에 무척 정갈합니다. 여느 책이든 드문 책이든 헌책방마다 똑같이 값을 매길 수 있지만, 다 다른 사람이 일구는 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다 다른 책을 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면서 다 다른 값을 매깁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마당에서는 물건이란 다 같은 값일 테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누리집을 뒤지면서 ‘책값’이 아닌 ‘인터넷 최저가’를 따질 테니, 책을 책으로 여기지 못하고 물건으로 다루면서 ‘인터넷 최저가’에 길들고 만다면,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헌책방마다 같은 책을 놓고도 책값을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 그만 어리둥절할는지 모릅니다. 뭐 이런 주먹구구가 다 있나 여길는지 모르고, 바가지가 아니냐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책은 이야기입니다. 책이라는 종이에 아로새긴 이야기가 먼저 하나 있습니다. 처음 새책으로 찍을 때에는 모든 책은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새책이 다 다른 사람한테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팔려서 다 다른 책임자가 다 다른 넋으로 다 다른 매무새로 읽을 때에는 ‘다 같은 새책’이 ‘다 다른 책’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다 다른 책’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책임자가 더는 이 책을 돌볼 겨를이 되지 않아 헌책방에 내놓는다면, 이때부터는 ‘다 다른 헌책’이 됩니다.

 새책 소식을 듣고 기쁘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이 내놓은 책, 신문사 보도자료로 들어갔다가 한 주 만에 버려진 책, 출판사 일꾼이나 글쓴이가 당신한테 고맙다고 여긴 이한테 선물했다가 슬그머니 버려진 책, 기쁘게 읽은 책이지만 집을 옮기거나 나라밖으로 떠나며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해서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 책임자가 숨을 거두면서 집식구가 헌책방으로 몽땅 내놓은 책, 책임자가 숨을 거두어 대학도서관에 모든 책을 바쳤으나 대학도서관은 책 놓을 자리가 모자라다며 몰래 내다 버리는 통에 헌책방 일꾼이 폐휴지 모으는 곳에서 건져내어 어렵사리 되살린 책, 폐휴지와 함께 재활용쓰레기로 버려졌다가 헌책방 일꾼이 가까스로 되살린 책, 쌈짓돈 그러모아 장만해서 읽고 예쁘게 건사하다가 살림돈이 바닥나는 통에 조금이나마 돈을 얻으려고 책임자가 내다 팔아 헌책방으로 들어온 책, 내 가난한 지난날을 곱씹으면서 오늘 가난하게 살아가며 좋은 책 하나 만나고 싶어 할 젊은 가난한 넋이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값싸게 장만하기를 빌며 기꺼이 내놓았기에 헌책방 책시렁에 꽂힌 책, …… 모든 책은 똑같은 책이지만, 모든 책은 모두 다른 책입니다. 모든 책은 처음 새책방에 꽂힐 때에는 다 같은 이야기를 거느리지만, 모든 책은 새책방을 떠나 헌책방으로 들어올 때에는 모두 다른 이야기를 다스립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똑같은 책을 여럿 장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부산에 있던 인문사회과학책방에서 팔던 자국이 남습니다. 이 책은 이름난 소설쟁이 아무개 이름이 적힙니다. 이 책은 신문사 아무개 기자한테 선물한 자국과 드림 도장이 찍힙니다. 이 책은 이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끄적인 일기가 깃듭니다. 다 같은 줄거리를 종이에 찍은 책이지만, 다 같은 줄거리를 읽는 사람은 다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이야기를 살아내면서 책 하나에 수많은 삶과 눈물과 웃음과 죽음을 아로새깁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읽거나 장만할 때에는 물건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는 물건을 사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웃 헌책방하고 ‘값 견주기’라든지 ‘흥정’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흥정이란, 물건, 곧 공산품을 살 때에 하는 일입니다. 쌀을 사거나 푸성귀를 살 때에는 흥정을 할 수 없습니다. 고운 목숨을 장만해서 내 목숨을 사랑하는 먹을거리를 장만하는데 흥정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심어 내가 기르지 못한 푸성귀를 돌보고 길러서 이렇게 내놓아 준 분한테 고마울 뿐입니다. 내 마음밭을 일구고 내 생각밭을 가꾸며 내 삶밭을 꾸릴 새 기운을 북돋우는 고마운 책을 장만할 때에는 ‘책을 살’ 뿐 ‘돈값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낯과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 아끼며 사랑했을 책 하나를 나는 얼마나 아끼며 사랑할 만한 마음그릇인가를 돌아보면서 헌책방 앞에 서서 책 하나 곰곰이 읽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면서 주머니를 뒤적입니다. 나는 헌책방으로 책을 장만하러 가는 길에 내 지갑에 빳빳한 종이돈을 마련합니다. 헌 돈을 내건 새 돈을 내건 다를 구석 없다 할 테지만, 고마운 마음밥을 베푸는 이음고리이자 쉼터인 헌책방 일꾼한테는 ‘되도록 빳빳한 새 돈’을 건네고 싶습니다. 책 몇 권 장만하고는 간이영수증을 받습니다. 헌책방 일꾼이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는 숫자를 읽으며, 이 영수증을 고이고이 건사해서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크면 하나하나 보여주자고 생각합니다. (4344.9.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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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는 못 살겠다


 충주 멧골집을 떠나 부산에 닿는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에 섞이면서 대전역에서 고속열차로 갈아탄다. 길디긴 고속열차에 올라 많디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앉은 칸을 가로지르며 걷는다. 음성역을 떠난 무궁화열차는 맨 끝 역에 이르러 갑자기 늦어지며 그만 갈아탈 열차를 놓칠 뻔했다. 한숨을 돌리면서 우리 자리를 찾는다. 부산역에서 내릴 때에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1분이 채 되지 않아 열차가 선다. 무궁화열차는 안내방송이 나오고도 서다 가다 하며 한참 힘들게 하고, 고속열차는 있으나 마나 한 안내방송 때문에 부랴부랴 짐을 꾸리고 아이를 안아 밖으로 나온다. 넓디넓은 부산역으로 나온다. 쏟아지는 가게와 쏟아지는 자동차와 쏟아지는 소리 틈바구니에서 첫째 아이가 어디로 휩쓸릴지 걱정스럽다. 자칫 아이를 놓쳐 길을 잃을까 근심스럽다. 관광안내소와 백화점안내소와 부산역안내소 세 군데를 들러 ‘미아방지용 팔찌’ 같은 것을 장만할 데가 있느냐고 묻지만, 다들 모른단다.

 저 멀리까지 줄을 선 택시를 본다. 하나를 얻어 탄다. 짐을 싣는다. 짐을 짐칸에 다 안 실었는데 택시 일꾼은 일찍 짐칸 문을 닫는다. 음성에서 택시를 탈 때하고 아주 다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느긋하게 안 될까. 아버지 품에 안겨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차가 많아.” 하고 말한다. 아버지하고 읍내 장마당에 나올 때에 읍내 자동차를 보고도 ‘많다’고 말하던 아이한테 부산 시내 자동차는 얼마나 많은 숫자와 크기가 될까. 이 자동차 물결에 나도 한몫 끼면서 오직 다른 자동차 소리와 내가 얻어 탄 택시 소리만 듣는다. 우리가 얻어 지낸 충주 멧골집 마당은 시멘트 바닥이요, 맨 흙길을 찾아 걷기에 만만하지 않았지만, 찻길 바로 안쪽은 모조리 흙인데, 이곳 부산과 같은 데는 찻길 둘레도 아스팔트나 시멘트요, 집 둘레나 가게 언저리나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이다. 흙먼지 뒹구는 길은 아예 없다. 찻길 두 편으로 나무를 줄줄이 심은 일이 놀랍다고 할 만하다. 이 나무들이 죽지 않고 목숨을 잇는 일이 대단하다 할 만하다.

 이 놀랍고 대단한 나무를 가만히 올려다보면서 살그머니 줄기를 쓰다듬거나 어루만질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무가 뿌리내린 조그마한 흙 둘레에 씨앗을 퍼뜨려 애써 고개를 내밀 여느 풀은 얼마나 될까.

 배고프고 졸린 첫째와 저녁밥을 먹는다. 경상도사람이건 전라도사람이건 목소리가 크겠지. 충청도에서 지낼 때에는 읍내 밥집에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사람을 못 보았다. 귀가 멍멍하다. 밥집에서 나올 때에 옆지기가 아이를 바삐 부른다. 아이는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 밥집 바깥은 바로 찻길이라 아이가 함부로 나가면 안 된다. 도시 자동차는 어린이를 잘 살피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는 여기이든 저기이든 아이들이 많으니까, 시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데가 아니니까, 시골에서는 갓난쟁이가 되든 네 살 첫째가 되든 나란히 읍내 마실을 다니면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마다 아는 척을 하며 아이한테 인사를 하는데, 이 커다란 도시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나.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더더구나 이 아이들을 눈여겨보거나 고이 헤아리기 어렵다.

 자동차가 지나갈 만한 넓이일 뿐이라, 사람들은 골목길 가장자리에 바싹 붙어서 이맛살을 찌푸린 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사람들 마음 흐름대로 걷거나 움직일 수 없다. 자동차 눈치를 살펴야 한다. 자동차에 따라 멈춰야 하고 자동차에 따라 에돌아야 하며 자동차에 따라 귀가 따가와야 한다.

 문득 옆지기가 말한다. “도시에서는 못 살겠지요?” 시골집을 나서서 커다란 도시로 들어선 하루, 옆지기 이 말 한 마디를 내내 가슴에 아로새긴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이렇게 시끄럽고 이렇게 걱정스러운 곳에서 아이하고 즐거이 살 수 없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잔치가 있으니 찾아와서 책누리를 즐기지, 이 헌책방골목이 아니라면 이곳 부산 어디에서 숨통을 틀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는 ‘옆지기 몸이 몹시 나빠 시골로 집을 옮겼어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착하게 건사하기 힘들다.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따스히 돌보기 벅차다.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사랑스레 아끼기 힘겹다.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아이 손을 힘껏 붙잡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를 살가이 껴안고 아이가 마음껏 뛰놀도록 보금자리 사랑스레 일구는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다. (4344.9.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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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과 노래와 어린이


 피아노를 치다가 피아노 위에 얹은 하모니카를 들고는 피아노 걸상에 서서 춤을 추면서 하모니카를 부른다. 하모니카를 불며 춤을 추는 누나를 동생은 평상에 누워 목아지를 쪼옥 빼며 바라본다. 아이들이 이루는 사랑과 평화를 집에서 맞아들일 수 있는 어버이는 즐겁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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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길 책읽기


 네 식구가 여러 날 함께 움직일 짐을 꾸린다. 어른 둘이 짊어질 가방에는 어른 둘이 쓸 여러 가지보다 두 아이가 쓸 여러 가지가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두 아이가 입을 옷가지만으로 가방이 셋 나온다. 철이 바뀌는 때요, 네 식구가 갈 곳은 퍽 따스한 곳인 터라, 여름옷과 가을옷을 한꺼번에 챙겨야 하니 옷가방이 여럿 나올밖에 없는지 모른다. 여름옷만 챙기거나 가을겨울옷만 챙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옷걸이를 열일곱 챙기고, 빨래집게를 스물 챙긴다. 빨래비누는 다섯 장 챙길까 생각한다. 우산은 안 챙기고 싶은데, 그래도 넣어야겠지. 손닦개를 넣고 걸레로 쓸 천을 하나 마련한다. 여관에서 머물 때에는 방바닥을 훔쳐야 하니까. 빨래바가지 하나쯤 넣을까 하다가 내려놓기로 한다. 아이 수저를 챙기기로 한다. 옷가지를 넉넉히 챙겼지만, 기차와 시외버스 에어컨을 걱정하면서 담요를 하나 챙기려 하고, 갓난쟁이를 눕힐 때에 쓸 깔개를 챙기기로 한다. 논둑에서 자라는 호박 한 알 땄고, 다 먹지 못한 멧느타리버섯 몇을 챙긴다. 부산에서 만날 분한테 드려야지.

 가방에 아이들 옷가지를 넣기 앞서 바닥에 죽 깔았을 때에, 문득 우리한테 자가용이 있으면 이만 한 짐을 조금도 짐으로 여기지 않았으리라 느낀다. 아마 이것저것 더 챙겨서 자가용 짐칸에 차곡차곡 실으려 했으리라. 어른 둘은 아이 몫까지 등으로 짊어지고 손으로 들어야 한다. 오로지 몸뚱이를 써야 한다. 택시를 얻어 타더라도 가방은 손수 짊어져야 한다. 기차를 타서 짐칸에 올려놓으면 우리 가방만 줄줄이 놓일 텐데, 어떻게 보면 ‘어디 집을 옮기는’ 사람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런데 참말 우리는 ‘집을 옮기려고’ 길을 떠난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머물러야 하니까 옷가지를 더 챙긴다. 조금 무겁거나 벅차더라도 새 마을로 가서 여관에 풀어놓으면 되니, 더 힘을 내자고 다짐한다.

 혼자 마실길을 나서면 내 가방에는 책이 꽤 들어간다. 혼자 마실길을 나서건 온 식구가 마실길을 나서건 내 옷가지는 몇 챙기지 않는다. 내 옷을 하나 덜면 아이 옷가지를 너덧 더 넣을 수 있으니까. 옆지기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어버이라면 으레 이러한 마음이지 않을까. 아이 옷가지를 꽤 많이 챙긴다 하더라도 여느 때에 ‘아이가 참 예쁘다고 여기며 좋아하던 옷’을 모두 챙기지 못한다. 아이는 어쩌면 제가 여느 때에 좋아하던 옷이 한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없다며 투덜거릴는지 모른다. 어쨌든 ‘다른 예쁜 옷이 있으’니까 옷이야 금세 잊고 신나게 뛰놀 마음으로 부풀 수 있다. 어찌 되든, 아이는 제 옷가지 때문에 가방이 큼지막할 수밖에 없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알 까닭도 없다. 어버이라면 이렇게 살아내야 하니까.

 새삼스럽지만,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내 한두 살이나 두어 살이나 서너 살이나 너덧 살이나 대여섯 살 무렵, 내 어버이가 나를 데리고 어디를 돌아다닐 때에 짐을 얼마나 꾸려 어떻게 짊어졌을까를 헤아려 본다. 생각나지 않더라도 어떤 모습 어떤 느낌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곱씹는다. 예전에는 시외버스나 기차가 훨씬 좁았고, 가난한 평교사 살림에 좀 넉넉한 기차를 꿈꿀 수조차 없었을 텐데, 내 어버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마실을 다녔을까. 아니, 마실을 다닐 엄두를 아예 못 냈을까.

 오늘부터 여러 날 땀 실컷 쏟으면서 어른 둘이 낑낑대겠구나. 옆지기는 첫째 아이가 힘들어 하리라 걱정한다. 첫째도 둘째도 모두 힘들겠지. 어른보다 아이가 훨씬 힘든 마실길이 될 터이니, 이래저래 고단하다면 고단한 대로 차에서 눈을 붙이면서 아이들을 상냥하게 보듬으며 토닥이는 어버이 구실을 잊지 말자고 생각한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할 수 있지만,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 이런 생각이 쓸려서 사라지지 않기를 빌며 꾹꾹 적바림한다. (4344.9.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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