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최수연 글.사진 / 그물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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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찾을 수 없기에 사진으로 찍을 만하지 않다
 [찾아 읽는 사진책 65] 최수연, 《소》(그물코,2011)



 최수연 님이 빚은 사진책 《소, 땅과 사람을 이어 주던 생명》(그물코,2011)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소를 사진으로 담아 책으로 내놓은 분이 드문드문 있습니다만, 이 사진책 《소》처럼 흙에 두 발을 디디며 논밭을 일구는 일소를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분은 퍽 드물구나 싶어요. 그런데, 일소를 담은 사진책만 드물지 않습니다. 흙일꾼을 담은 사진책 또한 드물어요. 흙을 일구는 일꾼을 사진으로 담아 본들 신문이나 잡지에서 잘 실어 주기 어렵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싣는다 하더라도 꾸준하게 실어 주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 신문과 잡지는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를 다루어서는 돈벌이를 할 수 없거든요. 신문·잡지뿐 아니라 여느 책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흙일꾼이든 일소이든 푸성귀이든 논밭이든 바다이든 갯벌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 될 터전과 땀방울을 다루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대학교를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니면서 사진길을 걷는다는 젊은이는 거의 모두 패션사진을 하려고 합니다. 드물게 다큐사진에 온삶을 바치겠다고 외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만, 패션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흙일꾼이나 일소를 사진감으로 삼지 않아요. 아니, 흙일꾼이나 일소를 사진감으로 삼아서야 돈벌이를 할 수 없겠지요.

 어찌 되든 먹고살아야 합니다. 누구나 밥을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밥을 굶으면서 사진길을 걸으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같이 패션사진으로 흐르는 한국땅 사진밭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를 말할 뿐입니다. 일소이든 흙일꾼이든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일소와 흙일꾼처럼 흙을 만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흙땅을 보금자리로 삼아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흙을 믿고 흙을 사랑하며 흙을 아끼는 나날을 누리면 돼요. 사진이란 삶이고, 삶에서 태어나는 사진이며, 삶을 아낄 때에 사진을 아끼는 만큼, 흙을 사랑하면서 믿는 나날이면서 사진기를 가만히 손에 쥔다면, 일소하고 흙일꾼을 포근하게 사랑하는 따사로운 마음길로 어여쁜 사진 하나 차근차근 길어올리리라 생각해요.

 《소》를 빚은 최수연 님은 이야기합니다. “이제 일하는 소는 거의 볼 수 없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들녘의 일꾼으로, 사람의 친구로 몇 백 년을 함께했던, 그러나 지금은 동화책에서나 만나게 된 일하는 소 이야기는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되면서 시작한다(4쪽).”고. 참, 그렇습니다. 그래도 일하는 소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 한 해를 살아온 충청북도 음성 멧골자락 건너편 마을에는 일소를 부려 논을 갈고 밭을 가는 할배가 있어요. 봄철에 시골버스를 타고 골골샅샅 천천히 지나다니다 보면, 어김없이 어느 시골자락에서든 일소를 부리는 흙일꾼을 만날 수 있어요. 옛날과 견주면 숫자가 무척 많이 줄었지만, 일소를 아끼는 착한 흙일꾼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가만히 살피면, 최수연 님 말마따나 일소가 크게 줄었습니다. 왜냐하면 일소에 앞서 흙일꾼부터 크게 줄었으니까요.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가 당신 딸아들한테 흙에서 일하도록 이끌기보다 흙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펜대나 셈틀을 붙잡으라고 내몰기에, 더더욱 일소를 마주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시골마을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는 시골마을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한테 ‘너희는 커서 흙일꾼이 되어야지.’ 하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 초·중·고등학교는 이곳 아이들이 여느 때부터 흙일을 하면서 튼튼한 흙일꾼으로 자라도록 돕지 않습니다. 이것을 탓하거나 저것을 나무라기 앞서, 오늘날 이 터전에서는 흙일꾼으로 태어나 흙일꾼으로 살아가는 얼거리부터 무너졌어요. 돈벌이나 밥벌이에 휘둘리면서 삶짓기나 삶가꾸기를 헤아리던 마음결이 흔들려요.

 머나먼 나라에서 사진감을 찾는 젊은이를 꾸짖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처음 익혀 사진기를 갓 손에 쥔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하고 섞입니다. 이들한테는 도시내기로 살아가며 패션사진을 찍거나, 도시에서 출사를 나가는 다큐사진을 찍는 길 말고는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나설 사진길이 까마득합니다. 배우지도 가까이하지도 만나지도 스치지도 못하는 흙이자 흙일꾼이자 일소예요. 도시에서 살아가며 건물을 찍거나 자동차를 찍거나 자동차 옆에 선 모델을 찍는 사진쟁이는 많을 테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며 호미를 찍거나 밭고랑을 찍거나 가랑잎을 찍는 사진쟁이는 있기나 있겠습니까.

 더 파고들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치고, 바깥으로 나다니며 돈벌이하기에 바쁜 나머지, 집에서 집식구들 사랑스러운 삶자락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부터 퍽 드물어요. 내 보금자리부터 아름답게 느끼면서 아름답게 일구는 삶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럴듯한 모습에 얽매이기 일쑤예요.

 최수연 님은 “13년 전 나는 전주를 지나고 있었고 내 앞에 나타난 풍경은 우연이었다. 처음 소 사진을 찍을 때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에 셔터를 눌렀다. 그 세월이 벌써 15년을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118∼11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열다섯 해뿐 아니라 앞으로 맞이할 열다섯 해 사이에도 아주 많은 모습들이 달라지리라 봅니다. 언제나 달라지는 삶입니다. 늘 새로운 삶입니다. 달라지기 앞서 예전 모습이기에 더 멋스럽거나 더 애틋하지 않습니다. 새로 맞이할 모습이라서 더 어여쁘거나 더 값지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선 이곳이 가장 멋스럽고 더없이 어여뻐요.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어깨동무하는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가 참으로 애틋하면서 그지없이 값져요.

 사진책 《소》는 잊혀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진책 《소》는 따뜻하게 사랑하면서 아낄 내 삶이 깃들 보금자리를 어떤 빛깔로 일구고 싶은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4344.10.10.달.ㅎㄲㅅㄱ)


― 소, 땅과 사람을 이어 주던 생명 (최수연 글·사진,그물코 펴냄,2011.10.1./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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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28.) 

 살고 싶은 마을 들머리에서


 충청북도 멧골자락을 떠나 전라남도 시골자락으로 옮기려고 한다. 빠듯한 살림돈으로는 좀 벅차기에 이모저모 알아보며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듯하다. 돌이키면 참 기나긴 나날 골머리를 앓으며 알아보았구나 싶지만, 달력을 들여다보면 며칠 안 지난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새 보금자리를 알아보러 움직이면서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낼 겨를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 혼자 움직일 때에는 이대로 고단하고, 네 식구 함께 돌아다닐 때에는 이대로 고달프다.

 이제 새 보금자리 집임자를 만나서 이 집을 우리가 물려받고 난 다음 신나게 집안을 손질해서 살림을 옮기면, 이제껏 힘겹게 복닥이느라 떨어져 지내기도 하고,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일산에서 북적인다며 어수선했던 일이란, 애틋하게 돌아볼 옛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고마운 옛이야기로 되새기고 싶고, 살가운 새이야기를 길어올리고 싶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놀면서 들판이랑 멧자락이랑 바다와 벗삼을 터전에서 우리들 보금자리를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와 가슴을 알뜰히 채운다.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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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바꾸는 책읽기


 옳고 바른 길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고 바른 쪽으로 생각을 가다듬고자 힘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슬프거나 안타까운 길로 빠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와 달리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길로 씩씩하게 걸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참 많은 사람들이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닌대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가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어린이가 즐거이 익히도록 마음을 기울인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알차게 가르친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중학교부터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는데,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한국말을 알차고 튼튼하게 다스리는 길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는 영어로 강의해야 세계시민이라도 되는 듯 여기지, 대학생이 대학생답게 한국말을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옳고 바르게 써야 한다는 마음을 심지 못해요.

 생각을 기울인다거나 생각을 쏟는다고 하더라도, 말을 말답게 가꾸는 일은 참 힘들구나 싶습니다. 그나마, 생각이라도 조금 기울인다면 반갑기는 한데, 생각을 조금 기울인다고 해서 이제껏 얄궂게 쓰거나 엉터리로 쓰거나 잘못 쓰거나 바보스레 쓰던 말투나 낱말을 바로잡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아니, 고치거나 바로잡을 수 없다고 해야 옳지 싶어요.

 생각을 바꾼다고 하지만, 삶을 바꾸지 않고서야 생각이 바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삶을 바꾸려고 힘써야 한다고 느껴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쪽으로 바꾸려고 힘쓸 때에, 내 말이나 글은 저절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쪽으로 바뀌기 마련이에요. 삶을 바꾸려고 힘쓰지 않으면, 생각이건 말이건 무엇이건 바뀔 수 없구나 싶어요.

 내 삶을 바꾸겠다는 뜻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삶을 즐겁게 바꾸면서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삶을 착하게 바꾸면서 내 삶을 참다이 보살피는 길을 찾으려고 책을 손에 쥐어야지 싶어요. 삶을 바꾸는 책읽기요, 삶을 사랑하는 책읽기일 때에, 비로소 책읽기가 가장 어울리면서 밝게 빛나리라 느껴요.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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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0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10-10 20:42   좋아요 0 | URL
한기호 님이 이곳 알라딘서재까지 찾아와서 글을 읽어 주시니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한기호 님 스스로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알아채려 하지 않으니 안쓰럽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한기호 님이 글을 쓴 '논리'에 따를 때에, '헌책방에서 헌책을 사고파는 일' 또한 유통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제는 거의 말하는 사람이 없으나, 지난날 한동안 '헌책방 때문에 새책이 안 팔린다'는 이야기를 출판평론이라면서 쓴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나는 알라딘중교샵을 찾아가서 그곳에 꽂히고 팔리는 책을 보았을 때에, '알라딘중교샵'에서 팔리는 책 갈래에서는, '종이를 아깝게 버리는 자기계발서'를 '한 권이라도 새책으로 덜 찍게 하면서 돌려읽기를 시키는 대목'을 보여주기에, 이 하나로는 참 고마운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알라딘중고샵> 때문에 헌책방이나 인문사회과학책방이나 '인문책 출판사'가 걱정하거나 어렵거나 힘들 대목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할 수까지 있어요.

한기호 님이나 솔 님은 제가 <알라딘중교샵>을 놓고 쓴 글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하나도 잡아채려고 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10월 9일에 쓴 글 말고, 이에 앞서 쓴 글도 있으니, 이곳 게시판에서 잘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빨래하기와 글쓰기


 둘레 사람들이 흔히 ‘최종규 씨는 집에서 손빨래를 하지 않고 기계빨래를 하면 글을 쓸 겨를을 더 낼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걱정해 주는 이야기는 아주 고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빨래하는 내 삶을 돌아본다면, 나는 참으로 오랜 나날을 빨래하기로 보낸다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다가, 밥을 차리고 치우며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는 품을 누군가 해 준다면 얼마나 홀가분할까요. 밥을 하자면 먹을거리를 읍내 저잣거리로 찾아가서 장만해야 하는데, 이 몫을 누가 해 준다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든 읍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든 하면서 내 품을 덜어 준다면, 집안을 쓸고닦아야 하고, 집살림을 돌보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해 준다면, 나로서는 아주 느긋할 수 있겠지요.

 이것저것 하자면 하루에 집일로 쏟는 품은 참 많습니다. 집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글쓰기라든지 책읽기에 더욱 마음을 기울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집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내 글이 한결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책방마실을 마음껏 즐기면서 책읽기를 아주 신나게 할 수 있을까 참말 모르겠습니다.

 아주 조용한 곳에서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붙잡으면 온누리를 따사롭게 비출 살가운 글을 가득가득 길어올릴 수 있는지 그야말로 모르겠어요.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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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0 13:37   좋아요 0 | URL
저두 정말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딱 제 생각을 써주셨어요.
집안일을 천천히 하지 않고 나아갈 때, 과연 나의 삶이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예전에 너무나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마트와 외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때
돈의 여유는 조금 있었지만 과연 행복하고 여유로왔나, 사랑스러웠나 하는 지점에서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파란놀 2011-10-10 17:54   좋아요 0 | URL
앞으로는
마음 착한 사람들이
마음 착한
고운 길을
슬기로이 깨달아 주리라 믿어요~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 동화는 내 친구 72
아스트리드 린드 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한테 무슨 놀거리를 베푸는가요
 [어린이책 읽는 삶 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불러비의 아이들》(국민서관,1981)


- 책이름 : 불러비의 아이들
- 글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옮긴이 : 이반
- 펴낸곳 : 국민서관 (1991.2.20.)
- 2000년에 ‘논장’에서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로 다시 나옴


 (1) 어린이삶을 생각한다


 집을 떠나 바깥마실을 다니다가 셈틀방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늘 ‘담배 안 태우는 자리’에 앉지만, 이곳에 앉아도 담배 내음을 맡아야 합니다. 내가 또닥거리는 자판에도 담배 기운이 서립니다.

 집을 떠나 바깥마실을 다니다가 여관에서 잠을 얻어 잘 때가 있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는 담배를 태우지 않지만, 어느 여관에 들어가더라도 담배 기운이 자욱합니다. 한겨울이건 한여름이건 맨 먼저 창문을 활짝 열고 한참 담배 내음을 빼냅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 눈높이로 바라보자면 ‘담배를 마음껏 태울 자리’가 줄어듭니다. 그러나, 담배를 안 태우는 사람 눈높이에서 살피자면, 담배를 태우지 못하도록 하는 자리가 늘어난다지만, 어디에나 담배 내음이 흐릅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 눈높이로 생각하자면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할 곳’이라든지 ‘자전거가 달리거나 사람이 걷는 길’이 늘어난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가용 아닌 자전거와 두 다리로 움직이는 사람 눈높이에서 돌아보자면 좁은 골목에서도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사람이 걸어다닐 길에까지 자동차가 떡 하니 올라서서 버티기 일쑤입니다.


.. 나는 ‘리자’라고 하는 소녀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나를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나는 일곱 살인데, 금방 여덟 살이 될 거여요. 엄마는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해요. “너는 이제 그만큼 컸으니, 청소하는 것쯤은 도울 수 있지 않니?” 그렇지만 라스와 핍은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어린애들까지 인디언놀이에 끼워 주고 싶지 않아. 너는 아직 너무 어리단 말야!” … 엄마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창고에서 잠잔다는 일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내가 남자들이 재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면 여자아이들도 그래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니까, 승낙해 주었읍니다 ..  (10, 57∼58쪽)


 옆지기 어버이와 동생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살아갑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와 함께 경기도 일산으로 찾아가는 길은 퍽 고단합니다. 먼저 서울로 들어서야 하고, 서울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서 일산으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이동안 매캐한 배기가스와 담배 내음에다가 시끄러운 소리로 골이 띵합니다. 북적이는 사람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바삐 오가느라, 아이들을 건사하며 사람숲을 헤치기란 좀 고달픈 일이 아닙니다. 이 많은 이웃들이 서로를 따사로운 사랑으로 마주하지 못하니, 서울에서든 일산에서든, 아이들하고 즐거이 마실하기는 참 힘겹습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이렇게 느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든 도시에서 살아가든 늘 매한가지입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느냐도 틀림없이 돌아볼 노릇인데, 이에 앞서, 사람들이 바라는 길이 거의 한쪽으로 쏠립니다. 돈벌이와 이름얻기와 힘겨루기, 이 한 갈래 길로만 쏠리고야 맙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원에 넣으면서, 정작 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대학교에 넣으려 하면서 막상 아이들이 대학교 졸업장으로 어떤 슬기를 깨우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가를 곱씹지 않아요.


.. 할아버지는 앞을 잘 보지도 못하면서, 창가에 베고니아 화분을 놓고 참 잘 돌봐 주고 있답니다. 할아버지는 그 꽃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곤 했읍니다. 또, 벽 위에는 아름다운 그림들도 걸어 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 두 그림을 좋아해요 … 햇빛 속에 앉으면, 할아버지는 갑자기 ‘좋군, 좋은데!’라고 되풀이하여 중얼거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좋군, 좋은데’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나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래요. 그때는 보나마나 아주 옛날이었을 겁니다 … “할아버지는 정말 안되셨어요. 눈등을 보실 수 없잖아요. 그 대신 노래를 불러 드릴까요?” 안나가 말했어요. 그녀는 할아버지가 우리의 노래 소리를 듣기 좋아하므로,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  (46∼47, 88쪽)


 아이들은 일을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아니, 어른들부터 일을 하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돈을 벌 뿐,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이름값을 높일 뿐, 일을 즐기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힘겨루기에 얽매일 뿐, 어깨동무를 하는 아름다운 일을 사랑하지 않아요.

 내 손으로 밥을 얻어야지요. 내 손으로 옷을 지어야지요. 내 손으로 집을 살펴야지요.

 밥도 옷도 집도 내 손으로 건사할 수 없다면, 어른인 내가 하는 일이란 무엇이 되나요. 밥도 옷도 집도 온통 돈으로만 마련해서 쓰고 버리는 흐름에 젖어든다면, 내 아이는 어른인 나한테서 무엇을 배우거나 물려받을까요.

 아이들은 일을 못할 뿐 아니라 놀이도 못합니다. 아이들은 일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면서 놀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슬프지만 안타깝지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어른들부터 놀지 못하는걸요. 어른들부터 일하지 않는데다가 놀지 않는걸요.

 놀지 못하는 어른들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지 못하지요. 신나게 놀고 즐거이 노는 길을 사랑하지 못하는 어른들이니, 이 어른들이 아이를 낳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노는 기쁨을 누리도록 돕지 못해요.


..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도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썰매에서 소리치는 일은 하지 않았읍니다. 나는 등을 대고 누워서 하늘에 있는 찬 별들을 쳐다보았읍니다. 별은 너무 많고 너무나도 멀리 있었읍니다. 그때, 나는 모피깔개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라스와 핍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나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렀읍니다 ..  (107쪽)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해 본들 부질없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을 낮밥이든 저녁밥이든 도시락이든 바깥밥이든, 사랑이 깃든 밥이어야 해요. 급식을 거저로 해 준다거나, 도시락을 누가 싸 준대서 아이들이 맛나게 먹지 않아요. 급식이든 도시락이든 사랑이 담겨야 몸을 살찌우는 밥이에요.

 아이들한테 훌륭한 교과서나 교재나 책을 안긴다 해서 아이들이 똑똑해지지 않아요. 교육과정이 빈틈없다고 해서 아이들이 빈틈없이 자랄까요. 원어민 영어강사가 가르친대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 배우나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나와야 비로소 교사 구실을 하는가요.

 아이들은 놀아야 해요. 아이들은 놀면서 일해야 해요. 아이들은 일해야 해요. 아이들은 일하면서 놀아야 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살아숨쉬는 목숨이어야 해요. 아이들은 펄떡펄떡 뛰는 가슴으로 사랑을 나누는 빛줄기여야 해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가장 슬기로운 꿈을 물려받으면서 한껏 빛나는 씨앗을 마음밭에 심으면서 하루하루 보람차게 누려야 해요.


 (2) 어린이문학을 생각한다


 2000년에 ‘논장’출판사에서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로 다시 나온 어린이책 《불러비의 아이들》(국민서관,1981)을 읽었습니다. 1981년 책이든 2000년 책이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문학입니다. 옛 번역이든 새 번역이든 아름다운 이야기 감도는 사랑스러운 책이에요.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1981년 책을 뜻밖에 만났습니다. 이윽고 2000년에 새롭게 옷을 입은 책을 만났습니다. 두 가지 책을 나란히 놓고 곰곰이 살피다가, 2000년 책은 책시렁에 예쁘게 꽂고, 1981년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기로 합니다. 나한테는 1981년 번역이 더욱 애틋하면서 살갑기 때문입니다.


.. 나는 내가 무엇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아마 엄마가 될 것 같아요 ..  (14쪽)


 《불러비의 아이들》에 나오는 어린 가시내가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나중에 어머니가 되리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눈시울이 촉촉히 젖습니다. 아, 그렇다면, 아이들을,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예쁘며 작고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내라면 먼 뒷날 아버지가 되리라 생각하겠지요.

 요즈음 아이들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요즈음 열두어 살 어린이와 열예닐곱 살 푸름이를 헤아려 봅니다. 스물두어 살 젊은이를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 가운데 ‘나는 어머니가 되겠어요’라든지 ‘나는 아버지가 되겠어요’ 하고 꿈꾸는 고운 넋은 얼마나 되려나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나 학자나 의사가 되겠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가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겠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는 몇이나 되려나요.


.. 우리 정원 뒤에는 호도나무·노가주나무들과 또, 많은 종류의 관목들이 빽빽한 과수원이 있읍니다. 나무가 정말 너무 많기 때문에, 아빠는 그것을 모두 베어낸 다음 소 목장이나 더 늘려야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나는 아빠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에는 숨을 장소가 많거든요 … 나는 다른 곳에서 크리스마스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불러비에서는 우리가 생강과자를 굽는 날에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그날을 크리스마스 이브만큼이나 재미있어 합니다 ..  (74, 90쪽)


 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어린이문학이 좋습니다. 나는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 또한 좋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길을 차근차근 밝히면서, 수수하고 투박한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는 이야기를 담는 린드그렌 할머님 문학과 이원수 할아버님 문학을 사랑합니다.

 돋보이는 문장력이나 구사력이나 수사력이나 표현력이 얼마나 담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상이니 환상이니 판타지이니 무어니 하는 실마리를 얼마나 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어린이문학은 사랑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느껴요. 내 사랑스러운 사람들하고 내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일구는 내 사랑스러운 나날을 아끼는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어린이문학이라는 이름이 걸맞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러한 어린이문학이 밑거름이 되어 어른문학도 태어나겠지요.

 사랑이 없다면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아닐 뿐 아니라, 문학조차 될 수 없으며,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 “생각해 보셔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옛날에는 이 뽑기를 무서워했던 어린애였었잖아요?” … “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에게 고함을 치며 무섭게 하는 어른도 있어.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 말을 전혀 듣지 않게 되고,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난폭해지게 돼. 신문에 난 기사야.” 안나가 말했읍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에게 어떤 사람이 고함치고 싶어 할까?”..  (125쪽)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예쁜 어머니와 멋진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나는 우리 집 두 아이가 예쁜 어머니가 되는 길과 멋진 아버지가 되는 길을 걷자면 스스로 무엇을 익히거나 받아들이거나 살펴야 하는가를 느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이들 가슴에서 싹이 돋아 자라날 고운 꿈과 빛을 기다립니다. 아이들 마음에서 움이 트며 꽃이 필 아리따운 이야기와 넋을 바라봅니다.

 어머니가 될 아이들은 담배 내음을 어떻게 마주할까요. 아버지가 될 아이들은 자가용을 어떻게 맞이할까요. (4344.10.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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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0-0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얘기를 빌어 어린이 문학에 대한 된장님의 생각을 엿보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린드그렌의 저 책은 중고책으로라도 사서 보려고 지금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종종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진정 사랑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파란놀 2011-10-10 07:06   좋아요 0 | URL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가 아이하고 함께 지내며 따사로이 돌보는 마음이 바로 어린이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1-10-1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아이가 시골 놀러가서
메뚜기를 잡고 신나하는 모습에, 트럭 뒷칸에서 방방 뛰고, 천염 염색을 열심히 하던 모습에, 참 기뻤어요............. 아주 건강해보였답니다.

파란놀 2011-10-10 17:53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이번 일처럼 딸아이랑
좋은 흙 밟는
좋은 나들이
마음껏 즐기셔요.

그리고, 아저씨도 잠을 깨워
함께 움직인다면
더 좋을 테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