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Eggleston (Hardcover) - Democratic Camera; Photographs and Video, 1958-2008
Elisabeth Sussman / Whitney Museum of Art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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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이글스턴 사진책이 퍽 여러 가지 뜬다. 그러나 내가 가진 책만큼은 좀처럼 안 뜬다 ㅠ.ㅜ 마이리뷰로 올리고 싶어 절판된 사진책에 글을 걸친다. 빛느낌이 새삼스러운 윌리엄 이글스턴 사진책이 잘 읽힐 수 있기를 꿈꾼다. 

 



 사진이 만든 빛, 사람이 살아가는 빛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7]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Los Alamos》(Scalo,2003)


 사진은 빛을 만듭니다. 빛을 담는 그릇이 사진이라 할 텐데, 사진은 빛을 담으면서 스스로 빛을 만듭니다.

 사진이 만드는 빛은 억지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진이 만드는 빛은 사람들 눈으로는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진이 만드는 빛은 더없이 눈부시거나 더할 나위 없이 고울 수 있습니다.

 사진은 빛을 붙들어매기 때문에 빛을 만들는지 모릅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에 멈추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빛을 만드는구나 하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사진은 틀림없이 빛을 만듭니다. 다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야 사진이 빛을 만듭니다. 사진을 찍어 나누는 사람이 있을 때에 사진 또한 빛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고운 삶터에서 고운 넋으로 살아갈 때에, 사진은 시나브로 고운 빛을 만듭니다.

 밉거나 슬프거나 아픈 삶을 누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 스스로 모르던 빛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진은 속일 수 있으나 속일 수 없습니다. 사진은 속일 수 없으나 속일 수 있습니다. 짐짓 대단하거나 씩씩하거나 무시무시한 듯 얼굴을 내미는 사람 뒤에 깃든 보드랍거나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빛을 담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얼핏 사랑스럽거나 예쁘거나 티없다 싶은 듯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 언저리에 감도는 어둡거나 쓸쓸하거나 힘겨운 빛을 담을 수 있는 사진이에요.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님 사진책 《Los Alamos》(Scalo,2003)를 읽습니다. 여느 사진쟁이들이 까망하양 필름으로 그림자 놀이에 흠뻑 빠져 허우적거릴 무렵, 윌리엄 이글스턴 님은 무지개 필름으로 무지개꿈을 누립니다. 여느 사진쟁이들이 까망하양 필름으로 까망과 하양 사이에 얼마나 많은 빛깔이 있느냐고 금긋기를 하는 동안, 윌리엄 이글스턴 님은 사람들 여느 눈으로 바라보는 여느 빛깔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봅니다.

 까망하양으로 담는 사진은 무지개빛 사진하고 견주어 차분하다고들 합니다. 어수선하지 않다고들 합니다. 다큐멘터리로 알맞은 듯 여깁니다.

 사람은 무지개빛으로 이웃과 동무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무지개빛으로 살아갑니다. 흙을 만지며 흙내음과 흙빛을 느낍니다. 밥을 먹으며 나락내와 나락빛을 느낍니다. 바람을 마시며 바람내음과 바람빛을 느낍니다. 햇살을 먹으며 햇살내와 햇살빛을 느껴요.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님 사진책 《Los Alamos》는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빛을 살피면서 사진이 만드는 빛이 무엇인가를 느끼도록 이끌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사진쟁이들은 굳이 까망하양에 얽매인 채 사진빛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오늘날 사진쟁이들은 으레 무지개빛을 다루지만 막상 사진빛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살며시 건드립니다.

 사진은 빛을 만듭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빛을 냅니다.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며 내는 빛을 담습니다. 사람은 사진에 담긴 빛을 들여다보면서 저희 삶을 새삼스러이 다시 바라봅니다.

 사진은 모두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진은 아주 작은 점 하나를 보여줍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주 작은 점 하나를 바라보면서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을 누리는 저희 삶을 넓거나 깊게 되새깁니다. 점 하나가 발판이 되어 흐름을 곱씹습니다.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길이를 돌이킵니다. 점에서 비롯해서 점으로 돌아오는 너비를 헤아립니다.

 빛나는 삶입니다. 누구나 빛나는 삶입니다. 무엇을 찍든 빛나는 사진입니다. 이름나며 예쁘장한 모델을 찍어야 빛나는 사진이지 않습니다. 대단하거나 거룩하다는 뜻을 애써 심어야 놀라운 사진이지 않습니다.

 만듦사진은 부질없습니다. 다큐사진은 덧없습니다. 사진은 오직 사진일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빛을 사람내와 사람빛을 깨달으며 시나브로 담을 때에 비로소 사진빛을 이룹니다. 사진빛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람빛을 모른다는 소리입니다. 사진꿈을 꾸지 않는다면 사람꿈하고 등졌다는 소리입니다. 사진넋이 없다면 사람넋하고 동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사진사랑이란 사람사랑입니다. 사진이야기란 사람이야기입니다. 사진삶이란 사람삶입니다. 사진길이란 사람길입니다. 사진은 사람입니다. (4344.11.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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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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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삶 걸쳐 사랑을 빚는 사람들
 [만화책 즐겨읽기 64] 니시 케이코, 《남자의 일생 (1)》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날마다 옷을 걸칩니다. 날마다 잠을 잡니다. 어느 누구라도 밥·옷·집이 없이는 목숨을 잇지 못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밥·옷·집을 누리든, 밥·옷·집을 맞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내 목숨이 끊어지거나 흔들립니다.

 누군가는 사랑스러운 터에서 사랑스러운 밥·옷·집을 누립니다. 누군가는 슬프거나 메마른 터에서 슬프거나 메마른 밥·옷·집에 허덕입니다.

 사랑으로 맺은 내 목숨일 텐데, 왜 사랑으로 꽃피우지 못할까요. 사랑으로 이루는 내 삶일 텐데, 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가요.

 스스로 밥을 차리지 못하면서 스스로 사랑을 할 줄 모릅니다. 스스로 옷을 짓지 못하면서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잊습니다. 스스로 집을 건사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사랑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나무라기도 하고 추켜세우기도 합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나라가 무너진다 걱정하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해야 나라가 산다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어떤 나라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짚지는 않습니다. ‘어떤 나라가 어떻게 살찌우는’가를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나라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 한다면, 나라힘을 거머쥔 몇몇 사람이 저희 밥그릇을 채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부터 ‘밥그릇 더 채우기’에 마음을 쏟기 때문입니다. 삶을 참답게 사랑하면서 삶을 예쁘게 가꾸는 일에 마음을 쏟는 여느 사람으로 이루어진 나라일 때에는, 제아무리 밥그릇 채우기에 힘쓰는 권력자나 공무원이 가득하다 하더라도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어 ‘나라 살찌우기’를 한다고 나서지 못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옳은 삶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사람들 스스로 옳은 삶으로 고치지 않으니까, 사람들 스스로 옳은 삶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자꾸자꾸 슬프며 안쓰러운 정책이나 돈벌이만 판칩니다. 돈벌이에서 홀가분하지 않은 여느 사람들인 만큼, 이러한 터전에서 정치권력을 붙잡아 행정을 맡는 이들이 옳거나 바르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지 않아요.


- “아무 생각 없이, 난생 처음 긴 휴가를 내서, 체면치레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어.” (12쪽)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어버이일 때에, 이 어버이가 보살피는 아이들도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길을 걷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어버이일 때에, 이 어버이가 돌보는 아이들 또한 착하게 살아가려는 길을 걸어요.

 어버이 스스로 좋은 터에서 좋은 꿈을 꿀 때에, 아이들이 좋은 넋을 길어올리며 좋은 말꽃을 피웁니다. 어버이 스스로 좋은 밥을 좋은 손길로 지을 때에, 아이들이 좋은 마음을 좋은 빛줄기로 가득 채웁니다.

 첫손 꼽는 요리사가 지어야 좋거나 맛나거나 아름다운 밥이지 않습니다. 훌륭하다는 요리책에 나오는 대로 지어야 좋거나 맛나거나 아름다운 밥이 되지 않아요.

 사랑을 담는 밥일 때에 좋거나 맛납니다. 빛줄기를 따사로이 싣는 밥일 때에 기쁘면서 고맙습니다.


- “제가 살게요. 할머니 땅 전부 다. 집도, 산도, 밭도.” (20쪽)
-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의좋던 친척들이 싸우는 걸 보기도 괴롭고, 결국 아무도 이곳을 돌볼 수 없게 되어 남의 손에 넘어가느니.” (57쪽)



 이 나라에서 남자들은 언제부터 밥짓기에서 손을 떼었나 궁금합니다. 이 나라에서 남자들은 언제부터 밥짓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집살림에서 멀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 남자들이 어리석거나 어리숙하거나 어처구니없는 길을 걷더라도 이 나라 여자들은 어리석거나 어리숙하거나 어처구니없는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 여자들도 이 나라 남자들처럼 어리석거나 어리숙하거나 어처구니없는 길을 걸었다면 나라가 폭삭 무너졌겠지요. 마을이 와장창 사라졌겠지요. 살림이 송두리째 날아갔겠지요.

 이 나라 여자들은 밥순이요 집순이요 빨래순이요 아기순이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 남자들은 밥돌이도 아니요 집돌이도 아니며 빨래돌이나 아기돌이 또한 아닙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놓지 않은 이 나라 여자들이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내동댕이친 이 나라 남자들이에요.

 오늘날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등돌립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저버립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처음부터 모릅니다.

 목숨보다 아름다운 무엇이 내 삶에서 또 있으려나요. 목숨보다 값진 무엇이 내 나날에서 다시 있으려나요.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할 무엇이 내 하루에서 어떻게 있으려나요.


- “7시에 저녁식사예요. 빨래와 식사 준비는 내가 할게요. 식비는 반반 부담이에요. 카이에다 씨는 장작 패기와 목욕물을 맡아 주세요.” “아, 그런 거 해 본 적 없는데.” “간단해요. 그럼, 7시에.” (70쪽)
- “자네 꽤나 신경질적이군.” “난 할머니 같은 우아함도 관용도 배려도 없어요.” “아니, 관용 외엔 있는데. 의외로.” “그런 건 도쿄에서 다 닳아 없어졌어요.” “오오, 자신을 너무 깎아내리지 말라고.” (136쪽)



 주식이 있어야 나라가 있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있어야 마을이 있지 않습니다. 아파트와 재개발이 있어야 보금자리가 있지 않습니다.

 들판이 있어야 합니다. 멧줄기가 있어야 합니다. 바다와 냇물과 푸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짐승과 벌레가 있어야 합니다. 바람과 햇살이 있어야 합니다. 흙과 돌과 모래가 있어야 합니다.

 손전화나 피아노는 없어도 됩니다. 책이나 졸업장은 없어도 됩니다. 영화나 잔치마당은 없어도 됩니다. 통계청이나 서울시청은 없어도 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없어도 됩니다. 교사나 판사나 의사나 운전기사는 없어도 됩니다.

 오직 하나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내가 있고 이웃이 있으며 벗이 있으면 돼요. 어버이가 있고 아이가 있으면 됩니다. 딸이 있고 아들이 있으면 돼요. 할머니가 있으며 할아버지가 있으면 됩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있어야지 텔레비전 소리는 없으면 그만입니다. 호미가 있어야지 공장은 없어도 넉넉해요. 숟가락이 있어야지 골프장은 없을 때에 즐거워요.


-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 곁에 있고 싶다고 내 안의 뭔가가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손녀였다는 건 나중에서야. 하지만, ‘사랑’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182쪽)


 니시 케이코 님 만화책 《남자의 일생》(시리얼,2011) 1권을 읽습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남자의 일생》 가운데 첫 권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생각할 한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람 가운데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 사람 가운데 남자로 살아가는 사람, 이 둘은 서로 어떻게 맺고 만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남자는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지, 여자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남자와 여자는 나란히 무엇을 돌아보며 사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니, 삶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이야기하자고 이끕니다. 삶을 나 스스로 생각하자고 이야기하도록 이끕니다. 삶을 나 스스로 아끼며 사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이끌어요.

 삶을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사랑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삶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내 목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살포시 나누지 못합니다.

 삶을 바탕으로 사랑이 태어납니다. 삶을 밑거름 삼아 사랑을 꽃피웁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스스로 삶을 옳게 바라보고 착하게 보듬으면서 사랑을 새삼스레 새로 빚습니다. (4344.11.13.해.ㅎㄲㅅㄱ)


― 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글·그림,최윤정 옮김,시리얼,2011.4.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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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미 2012-01-1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가 너무 절절하셔서... 방금 샀어요. 이 작가 다른 만화 사놓고 안 읽고 있었는데 후기 보고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알라딘 중고샵으로 사서 땡크스투를 못드림 ㅠ

파란놀 2012-01-10 13:31   좋아요 0 | URL
땡크스투는 없어도 돼요.
중고샵으로 값싸게 사서 읽을 수 있으면 좋지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며
1권 2권 3권 읽어 보면,
무언가 응어리를 터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구나 싶어요.

오늘 하루 즐거이 누리셔요~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2) 베리 쿨


.. “스포츠 하는 남자애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 안 드니?” “별로 안 드는데. 열심히 뛰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나 재수 없니?” “괜찮아, 괜찮아. 아주 쿨해. 베리 쿨!” ..  《와타나베 페코/김진수 옮김-라운더바우트 (1)》(대원씨아이,2011) 173쪽

 사람들은 누구나 말을 합니다. 어린 나날부터 배운 대로 말을 합니다. 배우지 못한 말은 하지 못합니다. 배운 말을 조잘조잘 늘어놓습니다. 배우지 못한 말은 주워섬기지 못합니다. 배운 말을 나긋나긋 풀어놓습니다.

 사람들이 배우는 말은 지식조각을 꿰어맞추는 말이 아닙니다. 몸으로 하루하루 받아들이는 말이 사람들이 배우는 말입니다.

 아주 쿨해 (△)
 베리 쿨 (x)


 아이들은 어린 날부터 영어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영어를 배우니까,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아주’ 쿨하다고 말하다가도 ‘베리(very)’ 쿨이라고 영어를 섞습니다. 워낙 자주 듣고 아주 흔히 듣는 영어이니까,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더군다나, 방송에서고 인터넷에서고, 또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쿨(cool)’이라는 영어를 쓰는 어른들은 이 영어가 들어오기 앞서 어떤 말로 당신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냈는가 잊습니다. 그저 아이들 앞에서고 어른들 앞에서고 ‘쿨’이라고만 말합니다. 아이들은 이 어른들 말투를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쿨은 쿨이지 쿨 아니고 뭔가?’ 하고 여깁니다. 굳이 ‘쿨’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쿨은 쿨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며 지나갑니다.

 괜찮아, 괜찮아, 아주 차분해
 괜찮아, 괜찮아, 아주 바른 말이야
 괜찮아, 괜찮아, 아주 맞는 말이야
 괜찮아, 괜찮아, 아주 잘 짚었어


 아이들이 생각없이 말을 한다면,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어른들부터 생각없이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생각있이 말을 하도록 이끌자면,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생각있이 말을 해야 합니다.

 어른들 말마디에는 생각씨가 거의 없습니다. 어른들 말투에는 사랑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른들 말결에는 마음씨가 그닥 드러나지 않습니다. 알맹이 없는 말에, 씨알 없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는 말이면서, 꿈이 없는 말이에요.

 아이들 말은 말대로 슬프게 무너집니다. 아이들 삶은 삶대로 아프게 흔들립니다. 아이들 넋은 넋대로 뿌리없이 휩쓸립니다. (4344.11.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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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식 노래 부르기


 ‘불후의 명곡’이라는 자리에 나오는 노래꾼들이 김현식 님 노래를 부른다. 주어진 노래이니까 김현식 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참 좋아하니까 김현식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 그런데, 왜 김현식 님 노래를 불러야 할까. 무엇하러 방송에서 김현식 노래를 ‘노래꾼마다 제 결에 맞추어 판을 새로 짜서 불러’야 할까.

 꼭 한 사람을 빼놓고는 이 노래꾼들이 김현식 님 노래를 왜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점수를 얻으려고 부르는가. 옛사람을 그리려고 부르는가. 1등을 하려고 부르는가. 혼자 슬픔에 잔뜩 젖으려고 부르는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돼지 멱을 따든 소 멱을 따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 나 또한 노래방에서는 염소 멱이든 토끼 멱이든 딸 테니까. 노래방에서는 제 마음대로 제가 좋아하는 노래에 푹 젖어들으면 되니까.

 그런데 ‘불후의 명곡’이라 하는 자리라 한다면, 노래꾼마다 빛깔과 목소리와 결과 내음과 이야기가 다르다 하다면, 저마다 다 다른 빛깔과 목소리와 결과 내음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노래여야 하지 않을까. 저 혼자 푹 젖어드는 노래를 부르려 한다면, 방송에 나오지 말고 노래방에 갈 일이 아닌가.

 김현식 님은 슬픔과 아픔에 젖은 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김현식 님은 당신 삶결에 따라 당신 노래결을 가다듬었다. 김현식 님은 당신 삶무늬에 맞추어 당신 노래무늬를 북돋았다. 김현식 님은 당신 삶자락에 녹아드는 당신 노래자락을 이루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어느 노래꾼이든 음반을 낼 때랑 무대에 설 때 똑같이 노래를 부르는 법이 없다. 오늘 무대와 글피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결과 노래무늬가 똑같지 않다. 첫째 음반과 둘째 음반에 같은 노래를 담더라도 두 노래는 결과 무늬가 다르다. 김현식 님은 당신 음반과 무대에서 당신 노래를 어떻게 불렀을까. 어떤 삶이면서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알리라고 하는 노래꾼 한 사람은 김현식 님 노래를 ‘알리다운 노래’로 불렀으나, 다른 노래꾼들은 ‘노래방다운 노래’로 부른다. 참 슬프며 아프다. (4344.11.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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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는
이토우 히로시 지음 / 그린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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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늘 새롭게 달라지는 고마운 내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6] 이토우 히로시, 《구름이는》(그린북,2003)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 해 삼백예순닷새 가운데 똑같은 날이란 없습니다. 구름이 없는 하늘이든 구름이 흐드러지는 하늘이든 구름이 조금 있는 하늘이든 똑같거나 비슷한 날은 없습니다. 아마, 열 해 스무 해 쉰 해 일흔 해를 돌이키더라도, 어느 하루 똑같다 싶은 하늘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낮하늘도 똑같은 날이 없고, 밤하늘도 똑같은 날이 없습니다.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도 똑같은 날이 없으며, 싱그러이 부는 바람도 똑같은 날이 없습니다. 나날이 자동차 늘고 고속도로 늘면서 배기가스 흘러넘칩니다. 매캐한 바람이 온누리를 덮어요. 이런 날씨에 무지개 만나기란 아주 힘듭니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무지개는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제 더는 보기 어려운 무지개인데, 아주 드물게 무지개를 만날 수 있더라도 이 무지개 또한 똑같은 모습인 적은 없습니다.


.. 하늘 위를 날면 여러 가지 멋진 모양을 볼 수 있어요 ..  (2∼3쪽)


 길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다 다른 자동차라고 느끼는 일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는지 모릅니다만, 나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며 다 똑같은 자동차라고 느낍니다. 너무 많고 너무 빠르며 너무 무섭습니다. 너무 냄새나고 너무 짓궂으며 너무 부질없어요. 사람들은 왜 자동차를 몰아야 할까요. 사람들한테 자동차는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때때로 얻어서 타는 자동차까지 없어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늘 타는 자동차는 없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사람은 걸을 때에 사람입니다. 사람은 땅에 발을 디뎌야 사람입니다. 사람은 푸른 잎사귀 건드리는 바람을 마실 때에 사람입니다. 사람은 깊디 깊은 돌·모래·흙에서 걸러진 물을 마실 때에 사람이에요.


.. 하지만 나는 아무런 모양이 없어요 ..  (8∼9쪽)


 다 똑같은 틀에 맞추고 마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다 똑같은 틀에 끼우고 마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어른들부터 다 똑같은 틀에 따라 혼인잔치를 열고 혼인신고를 하며 혼인집을 마련합니다. 혼인살림부터 다 똑같으며, 혼인집이란 아파트 아니면 빌라가 되고 맙니다. 혼인집은 논밭과 멧자락과 바다와 냇물을 곁에 두는 살림집이 아닙니다. 온통 아스팔트랑 시멘트로 범벅이 되는 터에 깃듭니다.

 다 똑같은 틀에 따라 일자리를 얻어 일터에 나가 일손을 잡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계 톱니바퀴 부속품이 되어 일을 합니다. 아니, 일을 한다기보다 돈을 법니다. 다달이 엇비슷하게 돈을 벌되, 다달이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믿음을 길어올리지는 못합니다. 언제나 은행계좌에 숫자를 쌓지만, 막상 고운 넋과 얼과 뜻을 북돋우지 못해요.

 다 다른 사람들이라지만 무엇이 다 다른지 알 길이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옷을 입는다지만, 얼마나 다른 옷으로 얼마나 다른 매무새를 뽐내며 삶을 빛내는지 알 노릇이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라지만, 머리속에는 다 같은 지식이 쌓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라면서, 마음속에는 다 같은 정보만 쟁입니다.

 고운 결 사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착한 무늬 믿음을 살펴볼 수 없어요.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어른이 되면서, 내가 낳을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들 또한 아이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길에 몰아넣습니다.


.. 하지만 어쩌면 아무런 모양이 없는 게 ..  (26∼27쪽)


 이토우 히로시 님 그림책 《구름이는》(그린북,2003)을 읽습니다. 모양이 없다는 ‘구름이’라지만, 구름이는 ‘모양이 없는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언제나 다른 모양을 보여줍니다. 아니, 날과 철과 곳과 때에 따라 ‘같을 수 없는 삶’을 일구어요.

 구름이는 구름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이나 길이나 건물이나 목숨이 ‘늘 같은 모양’인 줄 여기지만, ‘늘 같은 모양인 삶이나 터나 목숨’은 없어요. 늘 다른 모양이요 삶이며 터이자 목숨이에요.

 겉보기로 모양새가 달라진대서 ‘다른 모습’이지 않아요. 마음밭이 나날이 거듭나야 비로소 다른 모습입니다. 마음결이 나날이 새로워져야 바야흐로 새로운 삶이에요.

 아무런 모양이 없을 때에 자연스럽거나 홀가분하거나 살갑지 않습니다. 모양이란 대수롭지 않아요. 꿈이 대수로우며 사랑이 대수롭습니다. 이야기가 애틋하고 삶자락이 어여뻐요.

 오늘은 오늘대로 좋은 삶입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예쁜 날입니다. 글피는 글피대로 고마운 꿈이에요. (4344.11.13.해.ㅎㄲㅅㄱ)


― 구름이는 (이토우 히로시 글·그림,이소라 옮김,그린북 펴냄,2003.2.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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