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칭찬 안 하는 리뷰’를 쓴다?
 ― 최규석 님 만화책 느낌글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최규석이라는 분이 내놓은 만화책 《울기에 좀 애마한》이 있다. 나는 지난 2011년 11월에 이 만화책을 장만했고, 차근차근 읽고 나서 내 나름대로 느낀 이야기를 달아 2011년 12월 4일에 느낌글을 하나 적었다.

 

 나는 이제 어떠한 누리신문에도 글을 보내지 않으니까 ‘책소개 기사’라든지 ‘리뷰’라든지 ‘서평’을 쓰지 않는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책을 내가 살아가는 나날에 비추어 헤아리면서 ‘느낌글’을 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 누구나 ‘서평’이든 ‘새책 소개’이든 ‘리뷰’이든 ‘독후감’이든 ‘서평단 숙제하기’ 같은 재미없는 글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나 저마다 좋아하는 삶에 비추어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러한 느낌을 글이라는 밭에 예쁘게 실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한 번 누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삶인데, 왜 숙제하기 같은 글을 쓰느라 시간을 흘리는가. 너무 안타깝고 슬픈 노릇이다.

 

 오늘 2012년 1월 6일 낮, 첫째 아이랑 마당에서 공차기 놀이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와 살짝 셈틀을 켰다가, 누군가 내 느낌글에 붙인 토를 읽는다. 내 느낌글에 토를 단 이는 “사랑이 없으면 다 훌륭하지 않은 만화입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마땅히 “네.”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만화뿐 아니라 사진도 그림도 글도 노래도 춤도, 사랑을 실어 펼쳐 보이며 나누지 않는다면 훌륭할 수 없을 뿐더러 쓸모도 값어치도 없다고 느낀다. 사랑 없는 영화를 무슨 재미로 보나? 사랑 없는 영화가 어찌 훌륭할 수 있는가?

 

 내 느낌글에 토를 단 이는 “최규석 씨 만화에도 소외받는 자, 억압받은 자, 잊혀진 자들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치게 있습니다” 하고 말한다. 모르는 일이 아니다. 최규석 님은 당신 만화에 이런저런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다. 그러면 궁금한데, 따돌림받는 사람이랑 억눌린 사람이랑 잊혀진 사람들 이야기를 그리면 다 ‘훌륭한’ 작품이거나 ‘사랑 깃든’ 작품이 될까?

 

 그림감, 곧 ‘소재’를 무엇으로 고르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림감으로 다룬다고 더 사랑스럽지 않다. 발레하는 사람 이야기를 그린 《moon》은 사랑스럽지 않은 만화라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아이들 마음밭을 깊이 다루는 《너에게 닿기를》은 한낱 ‘연애’ 만화이고 ‘사랑 보여주는’ 만화가 아니랄 수 있을까. 데즈카 오사무 님은 《불새》라는 마무리 못 지은 만화에서 삶과 죽음과 사랑과 미움과 하늘과 우주를 그렸기에 ‘훌륭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는가. 《블랙잭》이나 《우주소년 아톰》을 손꼽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수로이 돌아볼 대목은 ‘소재’, 곧 “누구를 그리느냐”가 아니다. 한진중공업 일꾼을 그린대서 “따돌림받는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는 작품이 아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대서 “억눌린 사람”을 올바로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할머니들 삶을 보여준대서 “잊혀진 사람”을 착하게 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더 빗대자면, ㅈㅈㄷ이라 하는 신문에서도 수요집회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면 ‘기사로 다루었’으니 훌륭한 셈인가?

 

 사람들이 김관식 시집을 좀 읽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권정생 동화를 좀 읽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원수 동시를 좀 읽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박경리 소설을 좀 읽으면 좋겠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삶이어야 한다. 지식으로는 목숨을 지키지 못한다. 소재주의라든지 이름을 내세우는 진보나 개혁이라는 껍데기로는 아름다운 삶을 함께하지 못한다.

 

 우체국 일꾼은 ㅈㅈㄷ 신문사로도 편지를 나른다. 햇살은 대통령한테든 어린이한테든 떨꺼둥이한테든 곱고 따스하게 내리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픈 사람들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란 무엇인가? 사랑스레 마주하며 사랑스레 나눌 만화책이란 무엇인가?

 

 전태일을 말하는 사람이기에 모두 훌륭하지 않다. 전태일 이름 석 자를 모르면서도 훌륭하게 삶을 짓는 사람이 많다. 전태일처럼 살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내가 선 땅에서 튼튼하고 씩씩하며 아름다이 삶을 지어야 할 사람이다.

 

 나는 ‘칭찬하는 리뷰’를 도무지 쓰지 못한다. 왜 칭찬을 하는가?

 

 나는 ‘비판하는 서평’ 또한 도무지 쓸 수 없다. 왜 비판을 하는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아끼는 하루하루를 담아 책을 읽는다. 이 이야기를 내 느낌을 고이 실어 글을 하나 쓴다. 내 삶에 비추어 최규석 님 만화책 《울기에 좀 애매한》은 최규석 님이 쓴 말마디 ‘애매한’이라는 말뜻 그대로 ‘어설프’다. 더구나 최규석 님은 책끝에 당신이 내놓은 이 만화책이 ‘어설픈’ 작품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스스로 어설프거나 부끄러이 여긴대서 어슬프거나 부끄러울 작품은 아니지만, 참말 어설프며 부끄럽다 싶은 작품이라고 느낀 나는, 이 느낌을 고스란히 글에 실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최규석 님이 더는 어설프거나 부끄럽다 싶은 작품을 우리한테 내놓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얼마 앞서 최규석 님이 새로 내놓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도 한참 앞서 사 놓고 아직 느낌글을 쓰지 않았다. 이 작품도 《울기에 좀 애매한》보다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최규석 님은 스스로 세운 울타리를 넘어서지 않는다. 왜 스스로 사랑스러운 삶을 붙잡지 않을까. 왜 스스로 더 좋은 누리에서 즐거이 꿈꾸는 삶짓기로 나아가지 못할까.

 

 나중에 할 말이었으나, 먼저 몇 마디 늘어놓는다면, 우리가 함께 사랑할 이야기는 “이제는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 있는 이야기”일 때에 아름답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나누는 사랑”을 눈물겹고 웃음짓도록 누리면서 예쁘게 어깨동무하는 만화를 그린다면 얼마나 기쁠까. 최규석 님이 칭찬이나 상패보다는 ‘다른 목소리’와 ‘여러 목소리’를, 아니 햇살과 같은 목소리와 바람과 같은 목소리와 흙내음 나는 목소리와 바다 품 같은 목소리와 멧골짝 같은 목소리와 들새와 같은 목소리와 풀벌레 목소리를 곱게 들으면서 어여삐 만화로 빚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빈다. 아니, 최규석 님 만화책을 읽는 사람들부터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고 낮으며 예쁜 삶을 사랑하면 좋겠다. (4345.1.6.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자리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소식지를 만들었어요.

2011년 12월 31일에 내놓아 1월 5일 어제 우체국에서 부쳤어요 ^^;;;

 

도서관 한 평 지킴이를 하시는 분들이랑, 1인잡지 <함께살기>를 받으시는 분

모두한테 부쳤으니까, 오늘이나 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까지는

집으로 가리라 생각해요.

 

도서관 한 평 지킴이이거나 평생지킴이인 분들, 또 <함께살기>를 받으시는 분

가운데 다음주 수요일까지 <삶말> 1호가 닿지 않았으면 얘기해 주셔요.

아마 배달사고일 테니까요 ㅠ.ㅜ

 

<삶말>을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지킴이가 되어 주시면 돼요.

또는 <함께살기>라는 1인잡지를 구독하시면 되고요.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동시 〈발〉

‘작은책’ 내놓는 말

삶글

내 고향은 영어를 참 좋아한다

수봉도서관 하늘누리

-의 : 어린이들의 마음

-적 : 플러스적인 매력

말익히기 : 있다

헌책방 뿌리서점 사진

악서(惡書)

블루버드(bluebird)

 

헌책방 우리글방 사진

후박나무 빨래

마실

군내버스

 

헌책방 기억속의서가 사진

사랑스레 살아갈 터는 어떻게 얻는가 (아나스타시아 3권 느낌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월의 라이온 1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품에 안은 따스한 도시락
 [만화책 즐겨읽기 55] 우미노 치카, 《3월의 라이온 (1)》

 


 나는 서울사람이 아니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무상급식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주민투표까지 한다 했을 때에 ‘다들 참 할 만한 일이 없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교육이나 복지를 헤아린다면, 모든 학교, 이른바 유아원부터 대학원까지 ‘학교에서 밥을 먹여 주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든다든지 주민투표를 할 까닭이 없어요. 그러나 이토록 마땅한 교육과 복지라 하지만, 나는 ‘무상급식’이라는 이름이든 제도이든 하나도 달갑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낮밥을 거저로 주겠다 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아요. 학교가 군대도 아니고, 무슨 줄세우기도 아니고, 아이들한테 밥판을 하나씩 안겨 차례대로 밥이랑 국이랑 반찬을 받도록 하는 일이 무척 소름돋습니다. 영양을 맞추는 영양사가 밥을 차린다지만,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먹어야 하잖아요. 똑같은 밥에 똑같은 반찬에 똑같은 국을 다 다른 아이들이 똑같이 먹도록 내몰잖아요.

 

 학교급식이란 폭력이라고 느껴요.

 

 아이들은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손수 도시락을 쌀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이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랑 함께 도시락을 쌀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이 다음으로는, 아이들 어버이가 도시락을 싸 줄 때에 아름답구나 싶어요. 사다 먹는 도시락이나 라면으로 때우는 낮밥은 슬프고, 급식을 받아먹는 일은 끔찍하다고 여겨요.

 

 사다 먹을 때에는 그나마 ‘내가 고른다’는 테두리라도 들지만, 급식은 ‘주는 대로 먹는다’가 되고 말아요.


- “강해졌구나. 밥은 잘 먹고 다니니?” (19쪽)


 사람은 산 목숨이에요. 산 목숨은 누구나 먹이를 스스로 찾아요. 나무도 꽃도 풀도 스스로 먹을거리를 찾아요. 뿌리를 뻗고 줄기를 올려 잎을 틔워서 목숨을 이어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씨를 떨구어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 새끼 느티나무가 자란다 하더라도 다 달리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면서 저마다 제 몸에 걸맞게 목숨을 이어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이라 해서 다 같은 나락을 얻지 않아요. 함평에서 흙을 일구든 거창에서 흙을 일구든, 흙을 일구는 일꾼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땀을 흘리고 다 다른 품을 들여요. 집집마다 ‘같은 품종 볍씨’를 심어서 거두더라도, 이 볍씨들 알맹이는 집집마다 같을 수 없어요.

 

 집집마다 다 다른 나락을 거두고, 집집마다 방아질과 키질이 다를 테며, 조리질이나 밥물 안치기가 달라요. 같은 함평쌀 함평 시골집 밥이라 해도 이 집이랑 저 집이 다 다른 밥을 지어요. 같은 거창 시골마을 작은학교 아이들이 싼 도시락 밥이라 하더라도 다 다른 맛 다 다른 사랑 다 다른 숨이 깃들어요.


- “아카리 언니가 그랬어. 특활부에서 중요한 시합이 있다고.” “이겼어.” “그렇구나. 잘됐다!” “히나! 야용이들 밥 챙겨 줘! 그리고 밥상 좀 차려 줄래?” (26쪽)
- “아! 레이 오빠, 이거 갖고 가! 도시락! 좀 크지만 꽉꽉 뭉쳤으니까 괜찮아!” “어! 아, 고마워!” “그리고 반찬이라긴 뭐하지만 이거! 꽤 맛있어!” “고, 고마워!” (40쪽)


 밭에서 뽑은 배추로 김치를 담근다 할 때에도 집집마다 맛이 달라요. 품앗이를 하며 아줌마들이 함께 김치를 담근다 하더라도 집집마다 김치맛이 달라요. 같은 쌀밥에 같은 김치 반찬이라 하더라도, 도시락 뚜껑을 열고 책상을 붙여 마주앉아 밥을 먹을 때면 서로서로 밥이랑 반찬을 돌려먹으면서 다 다른 집 다 다른 사랑 담긴 다 다른 손길을 느끼면서 몸과 마음이 따뜻해져요.

 

 그러니 나는 무상급식이건 유상급식이건 학교에서 밥을 차려서 주는 일이 아주 싫어요.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 안 넣을 생각이지만, 학교에 놀러가더라도 학교밥을 얻어먹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집에서 지은 밥을 도시락에 담아 예쁘게 즐기고 싶어요.


- “그런데 딱 생각이 나는 거야. 어제 내가 히나에게 한 말은, 옛날에 엄마가 나한테 하던 말 그대로였지 뭐니.” (132쪽)


 요즈음은 옆지기가 아침마다 마련하는 당근물을 마셔요. 당근을 갈아 낸 물을 마시면 누런쌀로 지은 밥조차 따로 안 먹어도 힘이 솟아요. 시골집에서 시골사람다이 시골살이를 누리는 나날을 잇는다면, 아마 앞으로는 당근물이랑 풀물을 마시면서 곡식은 가루를 내어 먹거나 날로 100번 넘게 냠냠짭짭 씹으며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렇게 되면 우리 식구는 당근물이랑 풀물이랑 곡식가루랑 날푸성귀 몇 가지를 도시락으로 쌀 테지요.

 

 우리 집 같은 밥차림이 아니더라도, 학교급식은 생채식을 하는 사람하고 동떨어져요. 생채식으로 몸을 지키거나 건사하는 사람은 어쩌지요? 달걀이나 밀가루가 몸에서 안 받는 사람은 어쩌지요? 아이들한테 왜 우유를 마시게 하지요? 발효식품을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지요? 아니, 무엇보다 아이들 어버이가 집에서 밥을 하지 않아도 되나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랑 집에서 함께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밥거리를 손질하는 나날을 보내지 않아도 되나요? 아이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기만 하면 똑똑해지나요?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밥은 다른 사람이 해 준다’고 버릇이 들어도 되나요?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집에서 어머니가 싸 주시는 도시락 따스한 손길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여름에도 스텐 도시락통 따스한 기운이 좋아서 부러 무릎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낮밥때가 안 되어서 도시락을 까먹은 적은 없어요. 나는 그저 도시락통 따스함이 좋아 공부하는 때에도 가끔 무릎에 도시락통을 올려놓곤 했어요. 가방을 메면 도시락통 따스한 기운이 등짝으로 퍼지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내가 어린 나날 여섯 해와 푸른 나날 여섯 해(국민학교 1·2학년 때에도 도시락을 먹었는지는 가물가물합니다) 어머니 도시락통 따스함을 고마우며 곱게 아로새기는 만큼, 우리 집 아이들한테도 도시락을 베풀고 싶지, 급식을 우겨넣고 싶지 않아요.


-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앉은 그 사람의 말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어른인데도 나에게 진지하게 “말을 걸어” 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가족 외에 그런 사람은 딱 하나뿐이었다 ..  (152쪽)
- ‘시설에 들어가면, 돌아가도 쭈욱 누군가가 있고, 잠잘 때도 누군가가 있고, 이제 “마음놓울 수 있는 시간”은 365일 중에서 한시도 없어진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찾아왔다. 장례식에는 핏줄을 나누느 친척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그때 방에 들어온 그 사람만이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163쪽)


 사람들 먹는 밥은 사람들 손으로 짓습니다. 사람들 먹는 밥이 될 곡식이나 푸성귀나 물고기나 뭍고기나 여러 가지들은 사람들 손으로 흙과 바다에서 얻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먹을거리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흙을 만지고 흙을 디디며 흙에서 잠을 자면서 숨을 얻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곧 유아원부터 대학원까지 모두, 급식을 안 해야 가장 아름답습니다. 급식을 하지 말고, 교실마다 ‘밥하는 부엌’을 마련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마다 집에서 ‘밥할 먹을거리’를 챙겨, 아이들이 교실에서 스스로 밥을 지어 함께 나누어 먹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겨를’뿐 아니라 ‘밥을 차리고 먹은 다음 치우는 겨를’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고마운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온마음으로 아로새겨야 씩씩하게 튼튼하게 자란다고 느껴요.

 

 참말 무상급식을 한다며 돈 어마어마하게 쓰지 말고, 교실마다 부엌을 마련하는 한편 집집마다 ‘먹을거리 마련할 돈’을 조금씩 보태는 일이 사람이 사람다이 자라도록 돕는 참배움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 돌아가는 길. 바람이 세차게 부는 다리 위에서, 품에 안은 도시락은, 마치, 조그만 생물처럼 따스했다. (84쪽)


 우미노 치카 님 만화책 《3월의 라이온》(시리얼,2009) 1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3월의 라이온》은 2009년 6월에 1권이 옮겨졌는데, 나는 2012년에야 이 만화책을 읽습니다. 내 좋은 벗님이 2009년 6월에 이 만화책이 갓 나왔을 때에 참 재미있고 좋으니 꼭 읽어 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주었는데,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상 이 만화책을 사서 읽지 않았습니다. 우미노 치카 님 다른 만화책 《허니와 클로버》 1권을 읽다가 나로서는 그닥 재미있지 않다고 여겼거든요.

 

 그러나 모르는 노릇이에요. 2009년 그무렵에는 그닥 재미없다고 느꼈을는지 모르나, 2012년 오늘 다시 읽으면 ‘어, 예전에는 몰랐던 재미가 있구나.’ 하고 느낄는지.

 

 모든 책은 처음 갓 나올 때에 읽으란 법은 없거든요. 사람은 나이를 먹기 마련이요,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 마련이에요. 새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고, 따스히 돌아보는 손길을 가다듬기 마련이에요. 더 바빠지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더 느긋해지는 사람이 있어요. 더 사랑스레 거듭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더 메마르고 마는 사람이 있겠지요.

 

 가만히 헤아리니, 내가 우미노 치카 님 만화를 예전에 영 못마땅히 여긴 까닭은 ‘만화에 나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일본사람인데 머리통은 크면서 다리가 너무 길’어요. ‘가느다란 몸뚱이에 여자들 가슴은 되게 커’요. 너무 걸맞지 않고 너무 ‘예뻐 보이게 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이런 모양 이런 모습이 참말 예쁜 모습인지 알쏭달쏭해요. 다리가 길도록 그림을 그려야 예쁜이 모습이 될까요. 가슴을 크게 그려야 예쁘장한 여자 모양새가 되나요.

 

 만화쟁이마다 ‘취향’이 있으니, 취향대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나무라거나 탓할 수 없어요. 그저, 이런 취향이 자꾸 도드라져 눈에 걸리면 만화책 하나에 살가이 담아 나누려는 애틋한 꿈과 사랑과 믿음과 이야기가 자꾸 흐리멍덩해지고 맙니다.

 

 예쁜 그림을 보여주자는 만화는 아닐 테니까요. 때로는 예쁜 그림만 보여주려는 만화를 그리는 분이 있는데, 《3월의 라이온》이나 《허니와 클로버》가 예쁜 그림을 내세우려는 만화는 아니겠지요.

 

 품에 안은 따스한 도시락 좋은 기운이 ‘아픔과 슬픔을 먹고 자란’ 누구한테나 고운 웃음과 눈물로 스며들 수 있으면 기쁘겠어요. (4345.1.6.쇠.ㅎㄲㅅㄱ)


― 3월의 라이온 1 (우미노 치카 글·그림,서현아 옮김,시리얼 펴냄,2009.6.25./9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책 하나하나 꽂으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1.2.

 


 새해를 맞이하고도 온갖 집일이 나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 일거리에 치이지 말자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나를 부르는 집일을 예쁘게 맞이하자고 다짐한다. 나 스스로 기뻐하면서 집일을 해야, 비로소 우리 집식구를 예쁘게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렇게 느낀다. 내가 사랑하면서 집일을 건사할 때에, 내가 사랑하면서 얼싸안는 우리 집식구 아닌가.

 

 집안에 짐이 쌓이지 않게 하자며 빈 상자랑 다 읽은 책을 자전거수레에 차곡차곡 싣는다. 날이 차니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갈무리하기로 한다. 두 시간 즈음 땀 뻘뻘 흘리며 상자를 끌러 책을 꽂는다. 꽂히기를 기다린 책들을 하나하나 쓰다듬는다. 그림책 꽂을 책꽂이도 모자라겠다고 느끼지만, 꽂는 데까지 꽂자. 빽빽하게 꽂지 말고 손이 들어갈 틈은 남기자고 생각한다.

 

 아침에서 낮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포근하고 보드라우며 맑다. 어느새 한낮이 가깝다. 이제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 밥을 차려야지. 아이가 배고프다며 어머니 괴롭히겠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그림책 두 권 뽑는다. 《로타와 자전거》가 여기에 있었군. 아버지부터 대단히 좋아해서 아끼며 읽던 그림책이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그림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 주었나. 이제 아이는 이 그림책 글을 새로 읽어 주면 예전보다 훨씬 잘 알아듣겠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책이나 그림책이 꽤 많이 번역되는데, 《로타와 자전거》만큼은 다시 나오지 못하는 일이 안타깝다. 내 오래된 책은 자꾸 낡으며 때가 타는데, 새로운 책은 그예 안 나오려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2-01-06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마다 신문을 깔아주는 건 습기 때문일까요? 궁금해서 여쭙니다~~
이스트리드 린드그렌 '로타와 자전거'도 못 읽은 책이라 궁금하고요~ ^^

파란놀 2012-01-06 05:49   좋아요 0 | URL
신문종이 잉크냄새가 벌레를 쫓아 주고
신문종이가 습기를 빨아먹어 줘요.
책을 오래 두면서 안 다치게 하려면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낫게 건사하는 길이에요 ^^;;;

그러나, 신문종이 깔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다고 해요.

또, 제가 '보기 좋은' 모습은
굳이 좋아하지 않다 보니까... 에궁...

예쁘게 접어서 깔 겨를이 없기도 하고요 .ㅠ.ㅜ

..

<로타와 자전거> 이야기는 쓰려고
몇 해 앞서부터 준비하는데
아직 글을 안 썼습니다 ^^;;;
 
내 이름은 윤이에요
헬렌 레코비츠 지음, 박혜수 옮김, 가비 스위앗코스카 그림 / 배동바지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내 보금자리를 빛내는 손길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7] 헬렌 레코비츠·가비 스위앗코스카, 《내 이름은 윤이에요》(배동바지,2003)

 


 어린 나날, 내 어버이가 집을 옮겼던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내 어린 나날 발자국을 살피면 꽤 자주 이곳저곳 옮겼다고 나오는데, 나는 도무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무렵 내 어버이는 어떤 마음으로 이리저리 살림집을 옮기셨을까요. 우리 형은 형이 어린 나날 집을 이리저리 옮기던 일을 떠올릴까요. 형한테는 어린 나날 자꾸 집을 옮기는 일이 어떻다고 느꼈을까요.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읽던 어린 나날,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집을 자꾸 옮겨 동무를 사귈 수 없다’고 얘기하는 대목에 으레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새 학교에서 새 동무를 못 사귀나? 새 동네에서 새 동무를 못 만나나? 나라면, 새 학교와 새 동네에서 더 많은 동무를 만나고 사귀면서 ‘옛 동무’랑 ‘새 동무’ 모두하고 어울릴 수 있어 기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남아돌거나 넘쳐서 집을 자꾸 옮기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집을 자꾸 옮겨야 하는 사람은 으레 돈이 없거나 모자라는 사람이기 일쑤입니다. 돈이 없으니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하니 집이나 방을 얻어 지냅니다. 집이나 방을 얻어 지내니 집임자나 방임자가 비우라 할 때에 비워야 합니다.

 

 어버이가 군인이라거나 교사라면, 또 회사 영업부 일꾼이라면, 이래저래 일터를 옮기기 마련이라 살림집까지 옮겨야 하곤 합니다. 교사인 우리 아버지였기에, 우리 식구는 다섯 해마다 집을 옮길 만했어요. 내가 태어난 집은 인천이지만, 아버지 일터는 ‘경기도 국민학교’였거든요.

 

 그러나 우리 집은 늘 그대로이면서 아버지 혼자 경기도 이곳저곳으로 다녔습니다. 새벽에 시외버스를 타고 떠나 늦은 밤에 시외버스로 돌아왔어요.


.. 내 이름은 윤이에요. 나는 한국에서 아주 먼 나라 미국으로 왔어요. 이곳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빠가 나를 곁으로 불렀습니다. “이제 너는 곧 새 학교에 다니게 될 거야. 그러니 네 이름을 영어로 쓰는 걸 알아두어야 해.” ..  (5∼6쪽)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내 어버이 집을 나오면서 거의 해마다 한두 차례씩 집을 옮겼습니다. 어릴 적 만화책이랑 동화책을 읽으며 생각하던 그대로 내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새 살림자리 찾아 옮기려 하면, 새 동네를 생각하고 새 동네를 돌아다녀야 합니다. 복덕방을 드나들고 온갖 집을 두루 구경합니다. 이러는 한편으로 옛 살림자리 짐을 꾸립니다. 일은 일대로 날마다 똑같이 해야 하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맞이하면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몸뚱이는 하나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치릅니다. 살림자리 한 차례 옮기자면 그저 죽어납니다.

 

 그런데 살림자리를 옮기면서 고된 삶을 잊습니다. 옛 자리는 옛 자리대로 아련하게 그립니다. 새 자리는 새 자리대로 새 모습을 마음껏 누립니다.

 

 그러나 살림자리를 옮길 때마다 살림짐이 불어납니다. 살림짐은 집을 옮기며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책들이랑 책꽂이. 한 해 두 해 흐르며 살림자리 새로 옮길 때마다 등골이 휩니다. 온몸이 후줄근합니다. 짐을 꾸리면서 여러 달 머리가 돌고, 짐을 풀면서 여러 달 머리가 어질합니다.

 

 슬슬 집옮기기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아니,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옮기지 않을 곳에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뿌리내리려는 마음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바야흐로 네 번째 집을 옮겨 전라남도 고흥으로 옵니다.


.. 나는 새로운 방법 같은 건 배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나는 그냥 미국이 싫었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게 달랐거든요. 그렇지만 아빠는 내게 연필을 건네면서 눈짓으로 “내 말대로 해.”라고 했습니다 ..  (8쪽)


 어릴 적에는 집을 안 옮기며 한 동네에서 열 몇 해를 살며 푸름이 나이를 보냈기에 집옮기기가 어떤 일인지를 살갗으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이들어 제금나고서는 언제나 집옮기기를 치르며 한 곳에서 느긋하게 네 철을 누리지 못하다 보니 뿌리박기가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가를 살갗으로 느끼고 싶어 애탔습니다.

 

 우리 집 둘째는 집옮기기를 한 차례만 겪습니다. 우리 집 첫째는 한 번 두 번 세 번 겪습니다. 고흥집으로 옮길 때에는 외할아버지 짐차에서 함께 짐을 내려 옮기겠다며 고 작은 몸과 고 작은 손으로 상자들을 척척 나르기까지 했습니다. 새해에 다섯 살이 된 첫째 아이는 나중에 무럭무럭 자란 뒤에도 저 네 살 적 이삿짐 나르던 일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아이 눈길과 눈높이에서는 이삿짐 나르기가 어떠한 일이었을까요. 동네에서 가까이 옮긴 살림자리가 아니라, 인천에서 충청북도로, 충청북도에서 전라남도로 옮긴 살림자리입니다. 옛자리로 마실할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새 자리로 오면 그예 새 자리에서만 살아갑니다. 옛 보금자리에서 보내던 나날을 첫째 아이는 얼마나 되새기면서 마음밭에 따사로이 보듬을까요.


.. 나는 새가 되고 싶었어요. 훨훨 날아서, 날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나의 둥지로 돌아가 조그만 갈색 날개에 머리를 폭 파묻고 있으려고요 ..  (18쪽)


 헬렌 레코비츠 님이 글을 쓰고, 가비 스위앗코스카 님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내 이름은 윤이에요》(배동바지,2003)를 읽습니다. 《내 이름은 윤이에요》에 나오는 아이 윤은 윤이네 어버이를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깁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긴 만큼, 윤이네 어버이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하겠지요. 앞으로 오래오래 미국에서 살아갈 꿈을 품겠지요.

 

 아이 윤은 미국에서 살고 싶었을까요. 아이 윤은 미국에서 살아야 할까요. 아이 윤은 왜 한국말 나누던 한국 동무들하고 떨어져야 할까요. 아이 윤은 이제껏 듣지도 말하지도 배우지도 못한 미국사람 말을 새로 듣고 쓰며 배워야 할까요.

 

 그림책 《내 이름은 윤이에요》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살피는데, 윤이네 어버이가 윤이한테 ‘자, 우리 이제 새 살림자리로 옮겨서 살아간다.’ 하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윤이네 어버이는 당신들 생각대로만 살림자리를 옮깁니다. 옮기고 나서 아이하고 더 살가이, 더 따스히, 더 포근히, 더 사랑스레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긴 살림자리란, 그야말로 ‘이름이든 돈이든 무엇이든’ 더 많이 벌거나 얻으려고 힘쓰려는 일이니, 이제 아이하고 느긋하게 이야기할 겨를은 좀처럼 없겠지요.

 

 윤이네 어버이는 왜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겨야 했을까요. 아이 윤이랑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기에 미국으로 살림자리를 옮겼을까요. 아이 윤은 미국에서 무슨 꿈을 어떻게 꾸어야 좋을까요.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기를 바라나요. 이 어리디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니까, 새 살림자리에서 저 스스로 살아날 길을 찾으라는 뜻일까요.


.. 교실로 돌아가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글씨 연습 시험지들을 주었습니다. 나는 YOON이라고 쓰기 싫었어요. 그래서 대신 CUPCAKE라고 써 넣었습니다 ..  (22쪽)


 내 보금자리를 빛내는 손길은 내 손길입니다. 어느 누구도 내 보금자리를 빛내 주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든 아이가 되든, 내 보금자리는 내 손길로 보듬습니다. 나 스스로 찾고 나 스스로 누립니다. 나 스스로 돌보고 나 스스로 사랑합니다.

 

 어린 윤은 어린 윤 나름대로 삶길을 찾습니다. 힘들게 부딪히고 슬프게 울면서 천천히 윤이 길을 찾아요.

 

 윤은 길을 잃을 수 있었겠지요. 윤은 길을 버릴 수 있었겠지요. 윤은 길을 모를 수 있었겠지요. 고맙게도 새 터에서 좋은 새 이웃과 동무를 하나둘 만나면서 비로소 웃음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말 윤은 길을 잃을 수 있었어요. 어쩌면, 윤이처럼 어버이들 생각만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옮긴 집안 아이들 가운데 적잖은 아이들은 길을 잃거나 버리거나 모르는 채 떠돌다가 사라졌겠지요. 아니, 한 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박으며 지내는 집안 아이들조차 길을 못 찾거나 못 보거나 못 느끼면서 떠돌다가 사라지기도 해요.

 

 집안에 사랑이라는 따스함이 없으면 아이들은 길을 잃습니다. 아이들이 길을 잃는 집안이라면 어른들도 길을 헤맵니다. 보금자리에 꿈이라는 맑은 빛이 없으면 아이들은 싱그러움을 잃습니다. 아이들이 싱그러움을 잃는 보금자리라면 어른들도 싱그러움을 잃어요.

 

 한겨레 수많은 윤들이 맑은 웃음과 밝은 빛을 곱게 건사하면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4345.1.6.쇠.ㅎㄲㅅㄱ)


― 내 이름은 윤이에요 (헬렌 레코비츠 글,가비 스위앗코스카 그림,박혜수 옮김,배동바지 펴냄,2003.6.10./9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