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하게 조금 다르게 함께 살아가기 - 자폐인 형제와 함께 살아온 한 가족의 진솔한 삶의 기록
주디 카라시크 지음, 폴 카라시크 그림, 권경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함께 있어 좋은 나날
 [사랑하는 배움책 2] 주디 카라시크·폴 카라시크, 《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

 


- 책이름 : 함께 살아가기
- 글 : 주디 카라시크
- 그림 : 폴 카라시크
- 옮긴이 : 권경희
- 펴낸곳 : 양철북 (2004.8.9.)
- 책값 : 9800원

 


 겨울날 방바닥에 불이 뜨끈뜨끈 올라옵니다. 참 좋습니다. 내 삶에서 글쓰기를 내 일로 삼겠다고 여긴 1995년부터 지난 2011년까지 겨울날 손가락이 차갑게 얼지 않고 글을 쓴 적이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곳 전남 고흥에서 마련한 우리 시골집에 불을 후끈후끈 넣도록 기름값을 많이 버는 삶이란 소리가 아니요, 우리한테 목돈이 넉넉히 있어 햇볕전지판을 지붕에 붙여 따순 물 마음껏 쓴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남녘땅 고흥 시골마을은 날이 참말 폭하니까 방바닥에 불을 조금 넣어도 따스히 겨울을 날 수 있어요.

 

 지난겨울 나던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다달이 기름 300리터를 빠듯하게 써야 했습니다. 이러고도 물은 얼어붙어 얼음물 빨래를 하느라 날마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이무렵 첫째 아이는 막 네 살로 접어들며 밤오줌을 가릴 듯 말 듯했으니 아이 기저귀 빨래는 퍽 줄었지만, 겨울철이니 아이 두툼한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넘쳤어요.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게 말할 뿐, 한창 얼음물 빨래를 하며 절로 곱아 따가운 손가락을 겨드랑이에 끼며 녹이면서 빨래할 때에는 참말 봄이 언제 오나 하고 노래노래 했어요. 노래로 견디고 봄꽃을 그리는 꿈으로 살았어요.

 

 오늘 내가 퍽 따스한 시골집에서 손가락 얼어붙지 않으며 글을 쓰기에 춥게 겨울살이를 하던 지난날을 잊을 수 있지 않습니다. 돌이키면, 나는 추위를 덜 타지만, 옆지기는 추위를 많이 탑니다. 그동안 집식구한테 너무 모진 삶을 보내도록 했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따스한 날씨가 이렇게 좋다면, 따스한 손길로 따스히 나누는 사랑은 참말 얼마나 좋으며 기쁘고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 모진 미움이나 차디찬 매몰참이나 쓰라린 생채기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슬프며 고단한 삶이 될까요.


.. 이날 큰오빠 데이비드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 지붕 위에 올라갔다. 큰오빠가 이 집에서 산 지 거의 40년이 되도록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평생을 자폐증에 허우적거렸던 오빠에게 그 흔한 경험을 맛보며 줄 생각을 더 일찍 못했던 것이다 … 불현듯 만약 늘 자기가 집안에 걱정을 안겨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0, 98쪽)


 함께 있어 좋은 나날입니다. 좋은 사람하고 있으니 좋은 삶이요 좋은 나날이라 할 테지만, 좋고 아니고를 떠나 함께 있어 좋은 나날이에요.

 

 나는 우리 아이들이랑 옆지기하고 한집에서 살아가며 이들 (나를 뺀) 세 식구가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느 모습은 좋고 어느 모습은 나쁘다고 금을 그을 수 없어요. 어느 모로 보든, 어느 모습을 느끼든, 한결같이 내 살붙이요 내 사람이며 내 빛덩어리예요. 밥을 먹고 똥을 누는 사람이고, 잠을 자고 눈을 뜨는 사람이에요. 춤을 추고 노래하는 아이들이며, 까르르 웃다가 엉엉 우는 아이들이에요.

 

 오직 함께 있어 좋은 나날입니다. 비싼 밥을 먹을 수 있대서 좋지 않아요. 푸성귀를 잔뜩 벌여 먹는대서 나쁘지 않아요. 값싸게 장만해서 밥을 먹으니 좋을까요.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사를 하신 다음 남은 떡을 손수 가져다주셔서 고마이 먹으니 좋을까요.

 

 오물오물 냠냠 제사떡을 씹어먹습니다.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우리가 드릴 만한 무언가 있을까 떠올리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어 스스로 일구는 삶인 어르신인데, 우리가 드릴 만한 무언가는 따로 없습니다. 그래, 이와 같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주셔요. 다 받을게요.’ 하는 한 가지를 드릴 수 있을까요. 딸아들 모두 도시로 나간 이웃 어르신들 댁에 틈틈이 마실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될까요. 무엇보다 우리 네 식구 스스로 우리 삶을 우리 손과 몸뚱이 놀려 짓는 길을 걷는다면, 시나브로 예쁜 선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흐뭇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 큰오빠의 목욕 가운 밑에 가려져 있던 상자를 찾아 내가 빌렸던 책 두 권을 팽개치듯 던져 넣는 순간 갑자기 큰오빠가 한 번도 자기 방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물건들을 치우느라 반나절 동안 놀지도 못하고 고생 고생 하는데, 왜 이래야 하지? 그런데 큰오빠의 물건은 언제나 큰오빠가 원하는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  (37쪽)


 아이들은 더 예쁘장하게 생겼다 해서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더 일찍 말문을 튼대서 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더 빨리 글을 깨치고 책을 읽는대서 더 똑똑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다울 때에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똑똑하고 좋아요.

 

 아이들은 천재도 영재도 아닌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내 아이가 아닌 아이입니다.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은 목숨이고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 스스로 눈빛 맑은 삶일 때에, 아이들은 아주 마땅히 천천히 저희들 눈빛 맑은 삶을 사랑하면서 씩씩하게 저희 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을 학원에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삶을 배워서 아이하고 함께 눈 손 마음 몸 꿈 사랑을 맞추면서 펼치면 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우리 보금자리가 배움터가 되도록 슬기로이 일구면 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 터가, 이 집이, 이 마을이, 이 흙땅이, 이 숲이, 이 멧자락이, 이 냇물이, 이 바람 쐬는 후박나무 마당가 빨래줄이 배움터예요.

 

 배움터는 저 멀디먼 읍내나 면내나 도회지에 있지 않아요. 배움터는 저 머나먼 일본이나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호주나 캐나다에 있지 않아요. 내 보금자리가 배움터예요. 내 마을이 배움터예요.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배움꽃이에요.


.. 나는 이 상황이, 비록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지만,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임을 알고는 있었다. 큰오빠에게 내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인 것처럼, 내게 큰오빠도 한 핏줄인 가족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고도 옳은 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걸 그 당시에는 원치 않았다. 나는 버스를 타고 달아나고 싶었던 것이다 …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오빠는 자폐증이 없는 사람들이 자폐인들을 보는 시각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영웅이 아니라 자폐증이 없는 사람들이 영웅인 영화를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누구라도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자폐증이 있는 형인 걸 알 수 있다 ..  (101, 184쪽)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스스로 깨달아요. 장애인이라 하든 비장애인이라 하든, 어느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야 비로소 무언가를 배우면서 이 땅에서 튼튼하거나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아요. 사람들이 도시로 너무 많이 몰리는 나머지, 도시에서 돈버는 일자리에 쫓기듯 휘둘리는 나머지, 그만 학교라고 하는 울타리를 세울밖에 없고, 장애인 시설이나 복지 시설을 마련할밖에 없어요.

 

 가만히 헤아려 보면 누구나 쉽게 알아채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디이든, 그리 멀지 않은 예전에는 누구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누구나 집에서 어버이와 둘레 어른한테서 배웠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가리지 않아요. 누구보다 내 집 어른들이 당신들 목숨을 나눈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아끼고 믿을 때에 배움씨앗이 배움꽃으로 피어나요. 배움열매가 맺고 새로운 배움나무가 흙땅으로 떨어져 자라자면, 우리들 살아가는 마을살이가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해요.

 

 마을이 학교라 하는데, 마을에 앞서 집이 학교예요. 작디작은 보금자리 집 한 채가 배움터예요. 작은 배움터가 서로 모이고 서로 얼크러지면서 예쁜 배움마을이 돼요. 배움집 하나가 모여 배움마을이 되고, 배움마을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배움나라가 됩니다. 배움나라가 하나둘 엮이면 배움별, 곧 이 지구별이 온통 배움빛으로 가득하겠지요.


.. (장애인 보호시설) 브룩 팜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서, 오빠는 정기적으로 집을 방문했다. 집에서는 오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빠는 마음껏 쉬었으며, 그가 좋아하는 쇼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오빠는 일을 통해서나 카운슬러의 지도를 받아 개선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그저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집에서 사는 가족이었다 ..  (175쪽)


 주디 카라시크 님이 글을 쓰고, 폴 카라시크 님이 그림을 넣은 《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를 읽습니다. 두 카라시크 남매는 당신 식구들 이야기를 책 하나로 함께 빚습니다. 두 남매가 쓴 두 남매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은 장애인이라고 해요.

 

 장애인, 그래요, 장애인이라고 해요.

 

 이야기책 《함께 살아가기》 첫머리부터 거의 끝자락까지 ‘장애인과 살아가기’를 이야기해요. 어느덧 마무리가 될 무렵, 두 사람 카라시크 남매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은 이제껏 함께 살았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닌 ‘그저 나와 같은 한식구’요, 나와 같으면서 다른 목숨인 어여쁜 사람이라고 깨달아요.


.. 파란 불이 들어오자, 우리는 앞으로 나간다. 차 안은 조용하다. 폴과 나와 큰오빠, 말은 소리 없이 우리의 뇌 안에서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다 ..  (232쪽)


 《함께 살아가기》를 읽는 동안에도, 《함께 살아가기》를 덮은 뒤로도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두 사람뿐 아니라 다른 집에서도 서로 엇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모두들 제도권학교에 발을 디뎌 ‘현대 교육’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쉽게 ‘장애인’이라고 배워요. 이 낱말을 쓸밖에 없습니다.

 

 내 어릴 적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왜 한국말에는 ‘장애인’을 가름할 만한 낱말이 없을까?’ 하고 몹시 궁금했어요. ‘병신’은 한국말이 아니에요. 한자말이에요. 장애인도 한자말이에요.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바꾼 말이고, 장애인을 다시 장애우로 바꾸자고 하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한자말 굴레에서 맴돌 뿐이에요. 이런 낱말을 바꾼대서 복지나 문화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아요. 무엇보다 말바꾸기는 삶짓기하고 너무 동떨어져요. 삶을 아름다이 사랑할 길을 찾아야지, 껍데기 말만 갈아치운대서 나아질 수 없어요.

 

 귀머거리 절름발이 장님 외다리 외팔 애꾸 얼금뱅이 …… 온갖 말마디는 있는데, 이 모두를 아우르는 한국말은 딱히 없습니다. 왜 없을까, 왜 한국말에는 이런 말이 없을까,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장애인’을 가리키는 한국말 없는 일이란 참 좋은 일 아닌가 하고.

 

 왜냐하면, 굳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를 까닭이 없으니까요.


.. “엄마와 아빠는 네 큰형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큰형 다음엔 다른 자식은 절대로 안 낳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폴, 엄마와 아빠는 자식을 넷 낳기로 했고, 또 실제로 네 명을 낳았지.” ..  (149쪽)


 왼손을 쓰니 왼손잡이입니다. 오른손을 쓰니 오른손잡이입니다. 몇몇 사람은 바른손이라고도 쓰지만 바른손잡이라고는 쓰지 않습니다.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니 장님입니다. 귀로 듣지 못하니 귀머거리입니다. 다리를 저니 절름발이입니다. 팔이 하나, 곧 외로 팔 하나 있으니 외팔입니다. 얼굴이 얽어 얼금뱅이입니다.

 

 장님도 귀머거리도 절름발이도 외팔도 얼금뱅이도 누가 누구를 따로 놀리는 말이 아닙니다. 바보도 멍청이도, 곰곰이 따지면 누가 누구를 놀리는 말이 아닙니다. 저절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돌을 가리켜 돌이라 합니다. 똥을 가리켜 똥이라 합니다. 금을 긋거나 사이를 나누는 말이 아니에요. 바라보며 느끼는 그대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닭은 닭이고 개는 개요 고양이는 고양이예요. 개를 고양이라 가리켜야 높아지지 않아요. 말을 소라고 가리켜야 훌륭해지지 않아요.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애늙은이가 되면 안 됩니다. 할머니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보고 젊다느니 어리다느니 말할 수 없어요. 할머니는 할머니예요.

 

 다리 하나를 쓰지 못하면 두 다리 쓰는 사람하고 같을 수 없어요. 두 다리 쓰는 사람은 외다리로 살아가는 사람 마음을 알 수 없어요. 거꾸로, 외다리는 두다리 삶을 모르겠지요. 그러나, 두 사람은 두 사람대로 서로 좋은 삶을 일구어요.

 

 기운센 사람은 일을 더 많이 하겠지요. 기운이 여리면 여린 대로 일을 하며 살림을 꾸리겠지요. 기운이 세어 일을 많이 한대서 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기운이 세기 때문에 짐을 더 나를 수 있고, 기운 여린 사람을 등에 업고 함께 길을 나설 수 있어요.

 

 사람 삶에는 ‘정상’이나 ‘비정상’이 없어요. ‘장애’도 ‘비장애’도 없어요. 모두 다 달리 선물받은 삶이에요. 오롯이 사람으로 바라볼 나날이에요. 뻐드렁니는 뻐드렁니이고 토끼이는 토끼이예요. 덧니는 덧니일 테고 주걱턱은 주걱턱이에요. 모두들 함께 있어 좋은 동무요 좋은 이웃이고 좋은 사람이에요. 더 예쁘거나 덜 예쁜 틀이 없어요. 더 나쁘거나 덜 나쁜 금이 없어요.


.. 오빠에게는 우리가 그 여행에서 함께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빠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함께 있음’은 정말 중요한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빠에게 우리는 미래에도 같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가족은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  (186쪽)


 함께 걸어가면 돼요. 함께 쉬면 돼요. 함께 놀면 돼요. 함께 밥먹으면 돼요. 함께 잠자리에 들고, 함께 활짝 웃으면 돼요.

 

 얼굴이 검으니까 깜둥이예요. 얼굴이 하야니까 흰둥이예요. 나는 누렁둥이일 뿐이고, 나는 내 살결이 누렁둥이라서 이 모습이 좋아요. 크레파스에 살빛이라는 말을 쓰는 일이 잘못이지 살빛이라는 낱말을 쓰는 일이 잘못일 수 없어요. 아프리카땅 아주 더운 나라에는 눈이 없어요. 눈이 없는 곳에서는 눈이 없으니 눈이라는 낱말조차 있을 턱이 없어요. 우리한테는 함박눈 싸락눈 흰눈이 있어요. 눈송이 눈꽃송이가 있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살빛을 쓰면 아름다운데, 크레파스 공장에서 엉뚱한 빛깔을 살빛으로 넣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 살빛을 잊었어요. 한겨레 살빛은 흙빛을 닮은 살결 빛깔이었거든요. 이러한 빛깔을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었어요. 구리빛도 누런빛도 아닌 흙빛이 여느 한겨레 살빛이었어요.

 

 사람들 살빛뿐 아니라 잎빛을 보거나 줄기빛을 보아도 서로 매한가지예요. 잎이라 해서 ‘다 똑같은 푸른잎’이 아니거든요. 참나무 푸른잎 빛깔이랑 소나무 푸른잎 빛깔이 같을까요. 살구나무랑 매화나무 푸른잎이 같은 푸름일까요. 은행나무랑 벚나무 줄기는 똑같은 빛깔일까요. 도토리랑 밤이랑 똑같은 빛깔일까요. 개나리랑 원추리랑 수선화랑 달맞이랑 똑같은 노랑일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저 노랑이나 푸름이니 빨강이니 파랑이니 하면서 뭉뚱그려요.

 

 함께 있어 좋은 사랑이라고 느끼면 기쁘겠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고마운 사랑인 줄 느끼면 반갑겠어요.

 

 아,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글을 쓰던 나는 이제 졸음이 쏟아져요. 세 식구 새근새근 자는 옆방으로 살금살금 발소리 죽이며 건너가서 다시 이불 뒤집어쓰고 눈을 붙여야겠어요. 네 식구 나란히 누워 하얗게 동 트는 새 아침 예쁘게 맞이해야겠어요. 이불 뒤집어쓰고 따순 기운 듬뿍 받고 싶어요.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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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947) 미모의 1 : 미모의 인기가수

 

.. 어리석은 자여! 미모의 인기가수 유아린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  《기선-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3)》(서울문화사,2006) 81쪽

 

 ‘자(者)’는 ‘이’로 다듬습니다. ‘유일(唯一)한’은 ‘하나 있는’이나 ‘하나뿐인’으로 손보고, ‘후회(後悔)하게’는 ‘뉘우치게’나 ‘안타까워하게’나 ‘슬퍼하게’로 손봅니다.

 

 미모(美貌) : 아름다운 얼굴 모습
   - 미모가 뛰어나다 / 미모가 수려하다 / 특출한 미모, 팔등신의 몸매

 

 미모의 인기가수 유아린
→ 아름다운 인기가수 유아린
→ 어여쁜 인기가수 유아
→ 얼굴 예쁜 인기가수 유아린
 …

 

 ‘미모’는 “아름다운 얼굴”을 뜻하기 때문에 “미모가 수려(秀麗)”처럼 적으면 겹치기가 됩니다. ‘수려’란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가리키거든요. 국어사전에 실린 이 보기글은 올바르지 않아요. “얼굴이 아름답다”든지 “아름다운 얼굴이다”처럼 적으면 한결 쉬우며, 겹말이 될 걱정이 없습니다. “특출한 미모, 팔등신의 몸매”라는 말은 “남달리 예쁜 얼굴, 아름다운 몸매”쯤으로 다듬는 편이 낫지 싶습니다.

 

 길게 따질 까닭 없이, 얼굴이 예쁜 사람한테는 “얼굴이 예쁘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괜히 ‘아름다울 美 + 얼굴 貌’라는 한자말을 지어서 써야 하지 않아요. ‘예쁘다’고 말할 때에는, 으레 그 사람 얼굴을 가리키는 만큼, “예쁜 인기가수”라 하면, 그 인기가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굴 예쁜 인기가수”라 하지 않고 “예쁜 인기가수”라고만 해도 넉넉해요.

 

 있는 그대로 쓰면 뜻을 헤아리기에도 한결 낫고, 괜히 토씨 ‘-의’가 들러붙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안 쓰니까 뜻이 두루뭉술해지면서 겹말을 쓰고 말며, 얄궂은 토씨까지 덕지덕지 붙고 말아요. (4340.3.8.나무.ㅎㄲㅅㄱ)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5) 미모의 2 : 미모의 소유자

 

.. 풍류객마냥 펄럭펄럭 날아다니는 호랑나비과의 꼬리명주나비도 무시할 수 없는 미모의 소유자다 ..  《조복성-조복성 곤충기》(뜨인돌,2011) 98쪽

 

 ‘풍류객(風流客)’은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랍니다. ‘풍류’란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이거나 “멋스럽고 풍치 있게 노는 일”이랍니다. ‘풍치(風致)’는 “멋진 경치”라 하는군요. 그러니까, 풍류객이란 “한갓지게 멋을 누리며 노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만하네요. 그러면, 이 자리에서는 “풍류객마냥 날아다니는”이라 적지 않고 “멋스러이 날아다니는”이나 “멋있게 날아다니는”처럼 적어도 넉넉하리라 봅니다.

 

 “호랑나비과의 꼬리명주나비”는 “호랑나비과 꼬리명주나비”로 다듬습니다. “무시(無視)할 수 없는”은 “빼놓을 수 없는”이나 “빠지지 않는”이나 “손꼽히는”으로 손질합니다.

 

 미모의 소유자다
→ 아름다운 모습이다
→ 아름답다
→ 어여쁜 모습이다
→ 어여쁘다
 …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가리켜 한자말로 ‘소유자(所有者)’라 하지만, “-의 소유자”처럼 쓰는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는 “-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보기글을 “미모를 가진 사람”처럼 풀면 어울리지 않아요. 한국 말투는 “-을 가진 사람”이지만, “미모를 가졌다”라느니 “얼굴을 가졌다”라느니 하고 하지 않는 한국 말투이니까요.

 

 한국 말투대로 수수하게 적자면 “아름답다”입니다. 같은 뜻으로 “어여쁘다”라고 하거나 “아리땁다”라 할 수 있습니다. 나비를 가리키는 보기글이니, “예쁘다”나 “예쁘장하다”라 해도 잘 어울려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참으로 어여쁘다
 빼놓을 수 없도록 아리땁다
 매우 예쁘다
 …

 

 앞쪽에 꾸밈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매우 예쁘다라 해도 되고, 몹시 예쁘다라 해도 되며, 참 예쁘다라 해도 됩니다. 눈부시게 어여쁘다라든지 환히 빛나도록 어여쁘다라 해도 돼요.

 

 바라보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찬찬히 보여주면 돼요. 가만히 들여다보는 내 마음에 어떤 느낌이 피어나는가를 곰곰이 돌이키면서 적으면 돼요.

 

 마음을 살찌우면서 말을 살찌워요. 마음을 가꾸면서 말을 가꿔요. 삶을 사랑하면서 말을 사랑해요. 내 삶을 이루고 내 삶을 둘러싸며 고이 빛나는 푸나무와 풀벌레를 마주하면서 내 좋은 말글을 곱게 빛냅니다.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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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읽을 책

 


 이제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여섯째 권을 읽기로 한다. 여섯 권 한 질을 장만한 지 꽤 되었으나 드디어 여섯째 권을 읽는다. 첫째 권을 읽으며 이 책을 ‘빨리’ 읽을 수 없겠다고 곧바로 느꼈다. 이른바, 읽고 나서 느낌글 하나 쓰며 지나가면 될 책이 아니니까. 더욱이 여섯 권을 읽으면 여섯 권 모두 다른 느낌글을 써야 하는 책이니까. 느낌글을 쓴다는 일은 숙제하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 우리 식구들하고 어떤 삶을 즐거이 지으면서 고운 사랑씨앗 이 터에 심는가 하는 길을 찾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일이 되니까.

 

 엊저녁 옆지기는 나한테 여섯째 권을 얼른 읽으라고 다시 이야기한다. 그래, 이제 여섯째 권 읽기를 굳이 더 미룰 까닭이 없다. 여섯째 권을 읽으면서 다섯째 권을 읽으며 받아들이고 받아먹은 사랑밥을 차근차근 풀어내어 우리 삶짓기에 걸맞을 느낌글 하나로 그려야지. 다른 어느 책보다 먼저 읽을 책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그릇을 차분히 닦아세우려고 조금 더 천천히 읽겠다 다짐했으니, 이 다짐에 걸맞게 즐거이 받아쥐어야지.

 

 그런데, 여섯째 권을 손에 쥐어 첫 쪽을 펼치면서, 새삼스럽지 않게 이런 생각 하나 떠오른다. 나 스스로 내 삶을 하루라도 더 일찍 더 아름다운 결로 거듭나도록 애쓰려 했다면, 이러한 다짐 그대로 아나스타시아 여섯 권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식구들 삶짓기도 한결 빨리 이룰 수 있지 않았겠는가. 나 스스로 ‘나는 내 마음그릇이 요만큼뿐이야.’ 하고 틀을 세우는 바람에 내 책읽기는 스스로 이러한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겠는가.

 

 기쁘게 읽자. 기쁘게 읽고 기쁘게 글을 쓰자. 기쁘게 읽고 기쁘게 글도 쓰면서 기쁘게 삶을 일구자. 즐거이 땀을 흘려 새로 갈면서 일구고, 신나게 땀을 쏟아 멋지게 새로 샘솟을 사랑을 알뜰살뜰 짓자.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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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Moon : 스바루 1
소다 마사히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앞서 '최규석 만화 비평'을 한 까닭을 이 만화책 느낌글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함께 적어 보았습니다. 최규석 님을 비롯해서 한국땅 한국만화가 옳고 아름다이 나아가지 못하는 아쉬운 울타리를 부디 하루 빨리 깨달아 스스로 예쁘게 허물어 주면 기쁘겠어요.

 

 


 같이 눈 맞추며 춤춘다
 [만화책 즐겨읽기 105] 마사히토 소다, 《moon (1)》(학산문화사)

 


 아이하고 놀면서 눈을 안 맞춘다면 함께 노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아닙니다. 동무하고 놀면서 눈을 안 맞춘다면 동무는 이내 ‘이놈 뭐 하나?’ 하고 느끼면서 시큰둥해지고 맙니다. 내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모르되, 내 눈으로 내 둘레를 마음껏 살필 수 있다면, 서로 마주보면서 밥을 먹고 함께 뛰놀며 이야기꽃 피울 때에 참말 즐거워요.

 

 그러나 서로 눈을 마주하지만, 속마음을 영 나누지 못할 때가 있어요. 마음에 울타리를 세우면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아무런 사랑이 피어나지 않아요.

 

 마음도 사랑도 꿈도 믿음도 일도 놀이도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꽃피웁니다. 똑같은 길을 걷거나 똑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사랑이 되지 않아요. 서로를 따스히 어루만지고 서로를 너그러이 감싸안으며 서로를 알뜰히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랑이 돼요.

 

 눈을 마주친다 할 때에는 그저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내 속마음이 훤히 드러나도록 허물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에요. 말똥말똥 뜨는 눈이 아니라, 싱그럽고 해맑은 빛이 초롱초롱 흐드러지는 눈이어야 해요.


- “일본에 가는 걸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춤추는 게 왜 싫으냐고.” “그냥. 싫다고.” (36쪽)


 발레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moon》(학산문화사,2009) 1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moon》은 발레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야기를 발레에서 뽑아낼 뿐, 발레 만화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문 발레 지식을 파헤치거나 전문 발레 경연을 뽐내지 않아요. 이를테면, 만화책 《피아노의 숲》이 피아노 만화가 아닌 테두리하고 같아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은 피아노와 함께 자라면서 피아노를 삶으로 녹여내는 사랑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사랑은 피아노 아닌 바이올린이어도 같았을 테고, 피리나 하모니카나 기타였어도 비슷했으리라 느껴요. 무엇이냐 하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무엇을 왜 사랑하느냐예요.

 

 만화책 《moon》도 이 대목을 짚어요. 아직 한국만화가 다가서지 못하고, 일본만화는 퍽 수월하다 싶을 만큼 잘 짚는 대목이에요. 어떤 이야기(소재)를 다루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무슨 이야기를 다루든,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보여줄 수 있어야 참다이 즐거이 누릴 만화예요.


- ‘거짓말. 4시간이나 본 거야? …….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단 말이야.’ (46쪽)


 만화에 나오는 어느 일본사람은 《moon》에 나오는 주인공 가시내가 4시간이나 쉬지 않고 연습하는 모습을 시간을 잊은 채 지켜봅니다. 지켜보는 사람도 놀라고, 춤을 추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도 놀랍니다.

 

 그런데, 삶이란 이와 같아요. 삶은 시간을 따지지 않아요. 아이한테 젖을 물리며 시간을 재는 어머니는 없어요. 아이하고 손 잡고 작은 방에서 춤추며 노는 어버이 어느 누구도 몇 분 몇 초만 이렇게 논다며 시간을 재지 않아요. 사랑하는 짝꿍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몇 시간 동안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아야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고작 몇 초를 바라보더라도 애틋하게 느낄 사랑인 줄 알아채요.


-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니?” “아침에 일어났더니 말이죠. 열이 내려서 몸 상태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일이 없지 뭐예요.” “그야 입원 중이니까 당연하지.” “최악이지 않아요?” (58∼59쪽)


 만화책을 한 쪽 두 쪽 차근차근 읽으며 찬찬히 헤아립니다. 발레를 하든 어떤 춤을 추든, 1등을 하려고 춤을 추는 사람도 어김없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말예요, 1등을 하려고 춤을 추는 사람 이야기는 만화로 그리지 않을 뿐더러, 이런 사람 이야기는 만화로 그려도 재미없어요. 1등을 꿈꾸며 춤을 추는 사람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들 무슨 뜻이나 보람이나 빛이 있겠어요. 이런 만화에는 어떠한 사랑도 깃들지 않는걸요.

 

 공옥진 님 춤사위는 1등을 노리는 춤일까요. 지난날 수많은 굿판은 서로 1등 굿잔치를 보여주겠다는 춤사위였을까요. 이애주 님 춤사위를 떠올리거나 기리는 이들은 이애주 님이 1등 춤꾼이라고 여길까요.

 

 누구보다 뛰어난 춤이란 없어요.

 

 가장 멋스러운 춤이란 없어요.

 

 훌륭해서 역사에 남는다 하는 춤이란 없어요.

 

 춤을 추는 사위 하나를 느끼면서 웃고 울 뿐이에요.

 

 춤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면, 바로 이 대목, 춤을 추는 사위 하나를 느끼면서 웃고 우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해요.


- “저어, 이거? 미안. 내가 저쪽으로 조금 밀었거든. 눈이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뭐?” “흐음, 그래서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자유로운 거구나.” “뭐야 그게?” “나랑 같이 추자. 파 드 두!” (94∼96쪽)


 따돌림받는 사람을 만화로 그린대서 훌륭한 작품이지 않아요. 가난하거나 푸대접받는 사람을 만화로 그린대서 진보나 개혁이나 혁명이나 뭐가 되지 않아요. 만화는 편가르기도 아니요 예술도 아니에요. 만화는 문화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에요. 만화는 정치도 아니고 사상도 아니에요. 만화는 오직 만화예요. 만화는 사람들이 서로 얼크러지면서 빛내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으로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글이랑 그림으로 함께 보여주는 잔치마당이에요.

 

 한껏 홀가분하게 춤을 추어요.

 

 그예 거침없이 춤을 추어요.

 

 둘레 사람들 눈치를 왜 보나요. 내 삶은 이웃 눈치를 보는 삶인가요. 내 삶은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결을 북돋우는 가장 사랑스러운 내 꿈 아닌가요. 내 삶을 아끼면서 춤을 추어요. 내 삶을 사랑하면서 춤을 추어요. 내 삶을 누리는 신나는 웃음꽃과 눈물열매 나누면서 춤을 추어요.


- “어? 잘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거 아냐?” “최소한 나는 처음 보는데.” “…….” “그럼, 내 움직임을 외워서 한 발 앞서 춤춰 준 거라 이거군.” “그럴 수밖에 없잖아? 눈이 안 보이는 사람과 추는 거니까.” “……. 처음에는 파 드 두를 해냈다는 감개도 있었지만, 이런 건 파 드 두가 아니야. 나 혼자 추는 거랑 다를 게 없다. 아니, 오히려 혼자가 나을지도.” “어째서?” “파 드 두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추는 게 아냐. 서로가 100%로 부딪히면서 춤을 끌어올려 가는 거라고.” (182∼184쪽)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 하는 까닭은 시험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시험문제만 헤아린다면 삶은 아무 뜻이 없고 재미가 깃들 틈이 없어요.

 

 하나 더하기 하나라 하는 물음을 내밀 때에는 ‘무엇’을 하나 더하기 하나로 하는데, 하고 물어야 해요. 그냥 하나 더하기 하나만 해서는 몰라요. 저잣거리 장사꾼이 감알을 팔 때에 하나 더하기 하나를 말하는지, 한 사람 사랑과 두 사람 사랑을 하나씩 더한다 하는지,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하나 더하기 하나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잖아요. 흐르는 냇물을 하나 더하기 하나 하면 어찌 되는가라든지, 파리가 하나 더하기 하나로 짝짓기 할 때에 어찌 되는가는 사뭇 달라요.

 

 수학공식도 시험문제도 아닌 삶을 그리는 만화라 할 때에는 오로지 하나예요. 같이 눈 맞추며 춤추는 사랑처럼, 함께 마음 맞추며 어우러지는 사랑이에요.

 

 가난한 집 아이도 허물없이 활짝 웃어요. 가멸찬 집 아이도 근심스레 얼굴이 어두워요. 가난한 집 아이도 걱정스레 얼굴이 어둡고, 가멸찬 집 아이도 스스럼없이 활짝 웃어요. 참말 뭐가 다를까요. 삶을 아껴 주셔요. 사랑을 나눠 주셔요. 사람다이 참답고 착하게 살아요. (4345.1.9.달.ㅎㄲㅅㄱ)


― moon 1 (마사히토 소다 글·그림,김유리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9.12.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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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지짐 젓가락질 어린이

 


 어머니가 모처럼 김치지짐을 차린다. 아주 맛난 밥을 모처럼 즐긴다. 아이는 저 스스로 젓가락으로 쪽쪽 찢어 보고 싶단다. 아직 젓가락질 찢기는 서툴지만 그럭저럭 해낸다. 먹고 싶으니까, 먹으며 맛있으니까.

 

 제 손으로 쪽 찢어서 먹다가 매워 매워 하기에, 그러면 밥 함께 먹으면 돼, 하고는 먼저 얼른 내 젓가락으로 밥을 쥐어 입에 넣는다. 나중에는 저 스스로 먼저 밥을 입에 넣고 김치지짐 한 조각 입에 넣는다.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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