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꼬마 재봉사 네버랜드 세계 옛이야기 9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그림, 임정진 글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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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간이 나라에서는 얼간이로 살아가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4]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용감한 꼬마 재봉사》(시공주니어,2006)

 


 얼간이 나라에서는 얼간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사람들이 온통 외눈인 곳에서는 눈이 둘인 사람이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들 말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 같은 이야기는 조금도 내키지 않았어요. 너무 못마땅할 뿐 아니라 앞뒤가 어긋난데다가 올바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다만, 이렇게 못마땅한 느낌을 어른들한테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느낌을 드러내면 어른들은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하면서 머리통을 쥐어박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네가 선생한테 반항하느냐!’ 하면서 끔찍하게 두들겨패기 일쑤였어요.

 

 예나 이제나 《용감한 꼬마 재봉사》(시공주니어,2006)를 퍽 재미나면서 터무니없는 옛이야기쯤으로 들려주곤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얘기가 조금도 재미나지 않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도 옛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재봉사가 참 걱정스럽고, 재봉사가 만나는 사람마다 뭐 이리 바보스러우면서 못된 마음일까 싶어 슬퍼요. 그런데 재봉사마저 바보스러운 사람들 사이에 얼크러지며 스스로 바보가 되어 살아가니 더 딱해요.


.. 화가 난 재봉사는 옷으로 파리들을 힘껏 후려쳤어요. 그러고 나서 옷을 들어 보니 파리 일곱 마리가 죽어 있었어요. “한 방에 일곱 마리나 해치우다니! 난 정말 대단해!” 재봉사는 의기양앙하게 허리띠를 풀어 그 위에 수를 놓았어요 ..  (5쪽)


 어린 날, ‘그래, 바보스러운 나라에서는 나 스스로 바보가 되어야 살아남는가?’ 하고 생각하며 슬펐습니다. 모두들 바보짓을 하니까 나도 바보짓을 해야 살아남느냐 싶어 괴로웠습니다.

 

 군대에 끌려가던 스무 살 젊은 나이에, 나는 군대에서 사람 죽이는 재주를 배우면서 사람한테 욕지꺼리 마구 내뱉는 버릇을 들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주먹이든 군화발이든 개머리판이든 삽자루이든 마구마구 날아와서 두들겨패요. 비무장지대 지오피 조그마한 연병장에서 스물여덟 시간 물 한 모금 밥 한 술 먹지 못하며 얼차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완전군장을 지고 철책을 따라 행군을 하는 얼차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겨울날, 영 도 밑으로 이십 도가 훌쩍 내려간 날씨에 ‘뒤로 기기’를 하며 사격장부터 내무반까지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젊은 나이부터 바보로 뒹굴도록 하는 곳에서 웃음을 찾거나 고운 말씨와 마음을 건사하기란 몹시 힘듭니다. 나는 군대에서 나 스스로 착한 마음을 지킬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슬펐고, 이 슬픔 그대로 착한 마음을 버리며 내 목숨을 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이면 백, 이백이면 백아흔아홉이 웃음을 잃고 고운 말씨와 마음을 버리고야 맙니다.

 

 그러다가 꼭 한 사람, 이백 가운데 백아흔아홉이 바보스러운 짓과 끔찍한 욕지꺼리와 주먹다짐으로 물들거나 찌드는데 꼭 한 사람이 이러한 바보짓과 동떨어진 채 견디었어요. 아니, 견딘다는 말은 올바르지 않아요. 바보짓 굴레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꼭 하나 있었어요.

 

 나는 열여섯 달을 견디다가 열일곱 달째부터 바보짓을 함께 하고 말았는데, 꼭 한 사람 바보짓을 않는 이를 처음으로 보면서 ‘한 사람부터 바보짓을 거스르며 사람짓을 한다면, 사람사랑을 한다면, 이 바보스러운 굴레는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어요. 내 목숨만 건지려고 똑같이 바보짓 굴레에 달겨드는 일이란,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며, 내 목숨을 참다이 살리는 길도 아니라고 느끼며 부끄러웠어요.


.. “땅꼬마, 나처럼 해 봐.” 거인이 돌을 주워 손으로 꼭 쥐자, 돌에서 물이 찔끔 나왔어요. 재봉사는 “그까짓 것쯤이야!” 콧방귀 뀌며 주머니에서 치즈덩어리를 꺼내 돌인 척, 꼭 쥐었어요. 그러자 치즈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나왔지요 ..  (9쪽)


 곰곰이 생각하면,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겪거나 치러야 한다는 군대에 앞서, 중·고등학교 입시지옥은 모든 푸름이들을 바보짓 구렁텅이로 밀어넣습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입시지옥은 푸름이뿐 아니라 푸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마저 바보짓 수렁으로 몰아세워요. 서로서로 똑같이 바보짓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꼴입니다.

 

 왜 사람사랑을 할 수 없을까요. 왜 도시에서만 살아야 할까요. 왜 회사나 공공기관에 일자리를 얻어 펜대를 굴리는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여기는가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어느 어른이나 교사나 이웃이나 살붙이 가운데 나한테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착하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라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동무 가운데에도 ‘우리 함께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구며 살자.’ 하고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거꾸로, 나 스스로 ‘나는 시골로 가서 흙을 일구며 살래.’ 하고 꿈꾸지 못했습니다. 나 스스로 동무들한테 ‘우리 이런 바보짓 굴레에서 벗어나자. 우리 시골에서 흙이랑 살자.’ 하고 먼저 말할 줄 몰랐습니다.

 

 나는 바보짓 하는 사람으로 뒹굴기 싫습니다. 나는 사람사랑을 꽃피우는 사람으로 살림을 돌보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들 먹을 푸성귀를 우리 땅뙈기에서 일구고, 좋은 책과 좋은 말과 좋은 꿈으로 내 살붙이들 마음자락을 아끼고 싶습니다.

 

 온통 물질문명 피바람이 몰아치는 터전이라 하지만, 물질문명이 아닌 사람삶을 헤아리고 싶어요. 내 몸을 움직이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고운 삶길을 찾고 싶어요.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아닌 삶·사랑·사람·꿈을 아끼고 싶어요.


.. 거인은 창피하고 화가 나서 재봉사를 해치우기로 마음먹었어요. 거인은 재봉사를 동굴 집으로 데려가 침대에서 자게 했어요. 하지만 침대가 너무 커서 재봉사는 그냥 바닥에서 잠을 잤지요. 한밤중이 되자 거인은 커다란 쇠몽둥이를 가져와 침대를 쿵, 내리쳤어요 ..  (16쪽)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님이 일군 그림책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읽습니다. 옛이야기 틀을 고스란히 살리며 예쁘장하게 빚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님 나름대로 다시 풀이하거나 읽어낸 대목은 따로 없구나 싶어요.

 

 책끝에는 어린이문학을 비평한다는 김서정 님 덧말이 붙습니다. 김서정 님은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두고 “이 이야기가 주는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36쪽).” 하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가정과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이보다 더 잘 말해 주는 옛이야기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36쪽).” 하고도 말합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주제읽기’로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읽거나 가르치지 싶어요. 초등학교에서건 어린이집에서건 여느 살림집에서건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이러한 틀에 맞추어 읽히거나 이야기하지 싶어요.

 

 그런데, 참말 《용감한 꼬마 재봉사》가 이러한 이야기인가요. 《용감한 꼬마 재봉사》가 ‘집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인가요.

 

 나는 이 그림책을 아무리 읽어도 ‘얼간이 나라에서는 얼간이로 살아갈밖에 없구나’ 하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얼간이 나라에서 얼간이로 살아가면서,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얼간이인 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비꼬거나 비웃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재봉사는 조금도 멋있지 않습니다. 재봉사는 조금도 씩씩하지 않습니다. 재봉사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저 얼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스스로 얼간이가 되면서 ‘바보짓 가운데 가장 꼭대기’인 임금님 자리까지 가고야 맙니다.


.. 온힘을 다해 달려오던 유니콘은 그대로 나무를 들이받아 나무에 뿔이 박히고 말았어요. 재봉사는 유니콘을 산 채로 잡았지요. 하지만 왕은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사나운 멧돼지를 잡아 오라고 했어요 ..  (25쪽)


 나는 생각합니다. 온누리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온누리에는 참말 믿을 사람이 많다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내 둘레 사람들한테 믿음직하며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얼간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나라에서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어떤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디디는 흙땅이 살갑고 아리따운 보금자리면 넉넉합니다. 내가 디디는 이곳이 아리따운 보금자리이듯, 내 이웃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 또한 서로서로 아리따우면서 아늑하기에, 이러한 보금자리가 예쁘게 모이고 얼크러지는 아리따운 마을이면 흐뭇하다고 여깁니다.

 

 아리따운 보금자리에는 따로 우두머리가 없어도 됩니다. 공무원이니 국회의원이니 교사이니 무어니 무엇 하나 없어도 돼요. 마을에서도 마을 우두머리란 없어도 됩니다. 서로서로 제 삶을 지을 줄 아는 착한 삶이면 흐뭇해요.

 

 아주 어린 나날 처음 《용감한 꼬마 재봉사》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나는 착한 집에서 착한 일꾼이 되어 착한 꿈을 키우는 착한 사랑을 나누며 살겠어.’ (4345.1.12.나무.ㅎㄲㅅㄱ)


― 용감한 꼬마 재봉사 (블라디미르 비노쿠르 글·그림,임정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6.6.1./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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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앓아눕는 책읽기

 


 몸이나 마음이 아프는 일이 즐겁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거리끼지는 않는다. 몸이 아프건 마음이 아프건 나 스스로 어딘가 잘못한 구석이 있으니, 아주 마땅히 아프고야 만다고 여긴다.

 

 몸앓이를 된통 하건 마음앓이를 모질게 하건, 이렇게 앓아누워 여러 날 보내고 나면 내 삶을 조금 달리 추스르곤 한다. 그러나 이내 예전 몸앓이랑 마음앓이를 잊고는 바보스러운 굴레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제대로 앓아눕지 않았기 때문일까.

 

 앓아누워 갤갤대면서 내 옆지기 몸과 마음은 어떠한가 헤아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벅차고, 손발이 모두 차갑게 식으며 끙끙거리는 동안 생각도 꿈도 집일도 어느 하나 건사할 수 없다. 참말 몸이나 마음 한켠 아픈 사람들은 어찌 목숨을 건사하나. 어찌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 말짱한 듯 살림을 꾸릴 수 있나.

 

 튼튼한 몸이란 어버이한테서 받은 놀랍고 대단하며 멋진 선물이다. 이와 함께 여리며 아픈 몸이란 어버이한테서 받은 뜻있고 사랑스러우며 값진 선물이다. 튼튼하건 여리건 고운 목숨이다. 어떠한 목숨이건, 나는 사랑스러운 꿈을 마음밭에 심으면서 이 땅에 태어난다. 튼튼하기에 더 일하거나 튼튼하기에 더 훌륭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여리거나 아프기에 아무것도 못하거나 하찮게 살아가지 않는다.

 

 흔히들, 한국땅 권정생 할아버지하고 일본땅 하이타니 겐지로 님을 나란히 놓곤 하는데, 나는 권정생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으레 일본땅 미우라 아야코 님을 나란히 꿈꾸곤 한다. 아픈 몸과 마음에서 피워내는 어여쁜 꽃송이를 나누는 넋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살가운지.

 

 이제 아픈 몸을 어느 만큼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을 듯하다. 내 하루는 어떠한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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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 뻥뻥 차는 어린이

 


 공을 제법 잘 찬다. 잘 안 튀는 바람 빠진 공이지만 꽤 잘 찬다. 바람 꽉 찬 잘 튀는 공이라면 얼마나 멀리 찰까. 아이는 후박나무 그늘 자리에 서서 아버지보고 더 뒤로 가라 하면서 공을 찬다. 바람 빠진 잘 안 튀는 공이기에 멀리 가지 못한다. 나는 아이 말을 안 들으며 앞으로 다가가서 공을 받고 되찬다.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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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엄마와 보육사가 함께 슨 솔깃한 자연교육이야기
아이카와 아키코 지음, 장희정 옮김 / 호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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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
 [사랑하는 배움책 3] 아이카와 아키코,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

 


- 책이름 :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
- 글 : 아이카와 아키코
- 옮긴이 : 장희정
- 펴낸곳 : 호미 (2011.10.24.)
- 책값 : 13000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간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며 살아가기에 더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훌륭하게 삶을 짓는 사람은 어떠한 얼거리나 터전에서도 훌륭하게 삶을 짓습니다. 홀가분하게 삶을 빚는 사람은 어떠한 곳 어느 때라도 홀가분하게 삶을 빚습니다.

 

 일본사람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쓰고 엮은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2011)에 나오는 ‘숲 유치원’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 어느 어머니는 “육아를 하기 전까지는 간단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했지만, 아이를 앞에 놓고 작은 일이지만 날마다의 삶을 신중하게 다시 돌아보곤 한다(195쪽).”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한테 들어맞을 말은 아닐 테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지 않는 동안 ‘작은 데까지 꼼꼼히 살피며 내 삶 되짚기’를 못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작은 데까지 찬찬히 헤아리며 내 삶 돌아보기’를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아요.


.. 아이들은 이백 미터 남짓 한 산길을 한 시간쯤 걸려 천천히 이동하면서 벌레하고 놀기도 하고 나무 열매나 낙엽, 꽃잎을 줍기도 한다 … 움직이는 동물들은 표정이 있다. 웃고 찡그리는 표정에서 아이들은 감정을 느낀다 … 산골짜기에서 나는 이른 봄의 풀 냄새, 흙냄새, 짐승들의 똥 냄새, 향긋한 꽃향기 ……. 자연에는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다양한 냄새가 있다 ..  (20, 25, 35쪽)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에 온누리를 더 두루 살피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내 삶을 더 낱낱이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때에는 아이가 언제나 내 곁에 붙으며 같이 움직이니,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로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이 아이 눈썰미와 눈높이와 눈길에서는 아이 삶과 어버이 삶이 어떠한가를 톺아보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면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녁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을 한결같이 올바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대서 온누리를 밝게 헤아리는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이 한꺼번에 생기지 않아요. 웃고 울며 뛰고 놀며 먹고 자며 아프고 일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앞으로만 치닫던 내 발걸음’을 멈추거나 그치면서 차근차근 ‘함께 살아가기’를 되뇔 때에 비로소 무언가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았어도 퍽 이른 나이부터 학원에 넣는다든지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보내고는 오직 돈벌이에 얽매인다면, 이러한 삶을 보내는 어버이는 아무것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바라보거나 못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삶을 느끼도록 이끌지 않으면서 꽤 이른 나이부터 영어이니 수학이니 한자이니 하며 ‘나중에 대학입시 치를 준비’로 아이를 몰아세우는 어버이 또한 아무것도 못 느껴요. 푸름이가 된 아이한테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는 어버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대학교는 시험을 치러야 들어가는 데가 아니에요. 대학교는 ‘대학교 마친 다음 돈 잘 버는 일자리 수월하게 얻도록 자격증이랑 졸업장 따는’ 데가 아니에요. 곧, 중·고등학교란 문제집과 참고서를 잔뜩 짊어지고 ‘대학입시 공부를 하는’ 곳이 될 수 없습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이 푸른 꿈 마음껏 꽃피우도록 이끄는 곳이어야 합니다. 푸른 빛 흘러넘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이 아이들한테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서 안기면 안 돼요. 살아숨쉬는 책을 선물하든지, 살아숨쉬는 이야기를 들려주든지, 어버이 스스로 살아숨쉬는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살림을 일구어야 해요.

 

 아이들은 집에서 어버이와 함께 삶을 누리면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참다이 배우는 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간다 할 때에는, 이제부터 공부뿐 아니라 삶짓기까지 스스로 살피면서 익히는 길을 찾을 마음이어야 합니다.


..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 아무리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엄마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야 몸에도 좋은 법이다 … 아이들은 자신도 똑같이 자기 엄마한테서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기에 다른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24, 30, 115쪽)


 나는 참 오래도록 삶을 짓는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막상 삶짓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해서 어떻게 누리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아끼고 자연을 생각하며 푸나무를 보살필 줄 안대서 삶을 짓는 길에 접어드는 매무새는 아닙니다. 진보를 외치거나 개혁을 부르짖거나 보수를 움켜쥔대서 삶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일구는 삶도 짓는 삶도 누리는 삶도, 진보나 보수나 개혁이나 수구라는 틀로는 다가설 수 없습니다. 봄햇살은 모두한테 따사로운 봄햇살이고, 겨울햇살은 누구한테나 포근한 겨울햇살이듯, 삶짓기란 사상이나 철학이나 학문이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그 무엇으로도 재거나 따지거나 다가서거나 알아챌 수 없습니다.

 

 삶짓기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거든요. 나부터 참다이 사랑하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착하게 사랑하는 나날을 차곡차곡 누리면서 삶짓기를 이루거든요.

 

 손꼽히는 책을 읽는대서 삶을 깨닫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않아요. 손꼽히는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었기에 삶을 바로보거나 톺아보거나 들여다보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가고픈 삶을 생각하고 찾으며 씩씩하게 걸어갈 때에 스스로 깨닫거나 바로보는 내 모습이에요.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내 삶이 돼요.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 나날이 돼요. 내가 뿌리내리는 대로 내 삶이 돼요.


.. 지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인공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 한평생 자연과 접촉할 기회 없이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 텔레비전은 리모컨으로 조절하고, 휴대전화는 조작 단추만 누르면 신호가 간다. 그러나 숲과 같은 자연은 리모컨이나 조작 단추로 작동시킬 수 없다. 오로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변할 뿐이다 … (시청이 밀어붙이려 하던) 공원조성계획은 엄마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은 ‘골짜기’라는 낱말을 자주 썼다. 자연으로써 ‘골짜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엄마들의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다른 지역의 골짜기를 찾을 때에도 “논이 있네.” “올챙이고 살고 있을까?” 하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  (51, 89, 156쪽)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 유치원’은 아이들을 흙에서 뛰놀며 자라게 합니다. 숲놀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아이와 어버이가 저마다 생각하는 삶이 되도록 이끕니다. 누가 몰아세우거나 등떠미는 놀이나 배움이 아니에요. 대학입시를 일찍부터 채근하는 학습이나 자기주도나 창의력이나 무슨무슨 대단한 이름이 붙는 일이 아니에요. 흙땅을 맨발로 걷습니다. 나무를 두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꽃잎과 풀잎을 어루만집니다. 물웅덩이에서 뒹굽니다. 하늘을 바라봅니다. 구름과 바람을 느낍니다. 햇살을 내리쬐고 멧자락을 오르내립니다. 고드름을 따고 얼음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나뭇가지를 줍고 동무들과 어울려 숲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따로 외울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 보고 모레 보며 글피 보면서 아주 천천히 나하고 가까워지는 꽃이나 풀이 되면, 시나브로 마주하는 벗이 돼요.


.. 엄마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볼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은 아이마다 체력과 발달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럴 때 모든 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리고 신체 발달이 느린 아이한테 맞추는 것이다 …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  (86, 197쪽)


 어른은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뜻을 늘 되새길 수 있어야 어른이에요.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몸속 목숨으로 빚은 아이가 없으나, 나와 같은 목숨을 빛내는 숱한 이웃 어른과 ‘곧 어른이 될 새 목숨’이 함께 어우러질 사랑스러운 터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내 아이부터 찬찬히 바라보면서 이 땅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레 발을 디딜 터전을 꿈꾸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빛내는 꿈을 이루는 사랑을 따사로이 보듬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4345.1.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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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불어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기저귀 잔뜩 넌 빨래대 그만 와장창 소리 내며 쓰러진다. 빨래대를 받친 무겁고 큰 돌은 부질없었다. 후박나무 빨래줄에 넌 빨래들은 빨래집게가 틱틱 풀어지며 마당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보다 못해 빨래줄 빨래를 모두 걷는다.

 

 바람은 벽에 건 온도계를 날려 깨뜨린다. 천천히 몸이 낫는가 싶었으나, 된바람 맞으며 빨래를 널다가, 또 걷다가 그만 덜덜 떨다가 몸살까지 걸린다.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에 걸고 나서 자리에 드러눕는다. 갤갤 앓는 소리 몇 시간쯤 낸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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