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마당 걷기

 


 볕살 아주 따사롭던 아침, 네 식구 마당으로 나와서 한동안 놀다. 첫째 아이는 목긴신을 신지 않는다. 날이 따스하니까. 둘째는 아직 혼자 걸을 수 없으니, 양말 신긴 채 누나 목긴신을 신긴다. 뚜벅뚜벅 어머니 손을 잡고 아직 여린 힘으로 한 발씩 내딛는다. 마음껏 기고 마음껏 놀며 마음껏 자라렴. (4345.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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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턱에 앉은 어린이

 


 문턱에 앉아 바깥을 내다 본다. 한겨울 찬바람이 부는 아침, 찬바람이 집안으로 스며든다. 아이는 찬바람 부는 한겨울이라지만 밖에서 뒹굴며 놀고 싶겠지. 그러면 놀면 되지. 그러나, 어머니랑 아버지는 밖에 함께 나와서 놀아 주지 않고, 저 혼자 놀라 하면 아직 혼자 놀지 않는다.

 

 나는 어릴 적 어떻게 했는가 되새긴다. 찬바람 휭휭 부는 날, 그냥 집에 눌러앉았던가. 찬바람 맞으며 아랑곳 안 하고 놀았던가. 툇간에 서서 찬바람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아들이며 바람을 느꼈던가. 바람 따라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을 올려다보았던가. 바람이 씽씽 부니 이런 날, 바람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부리나케 연을 들고 밖으로 나와 연을 날리며 놀았던가. (4345.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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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 후비는 어린이

 


 아이가 코를 후빈다. 코가 막혀 답답하니 코를 후비겠지. 아이가 한결 어릴 적에는 아침 낮 저녁으로 코에 소금물을 넣고는 솜막대기로 살살 코를 긁어 주었다. 이제 이렇게 안 하며 지내는데, 때때로 소금물을 코에 넣고 손닦개로 흥 풀도록 한다면, 아이가 굳이 코를 후비지 않아도 되리라. 그런데, 이렇게 하면 되는 줄 자꾸 잊는다. 아니, 자꾸 잊는다기보다 아예 생각을 못 하는 채 하루를 보내지 않느냐 싶다. 아이와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막상 아이 코를 뚫을 생각을 못 했다고 떠올린다. 코 후비는 아이 모습 사진을 찍고 며칠이 지난 오늘, 이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아하, 내가 아이 어버이로서 무얼 못 하며 지냈는가를 새삼스레 깨달으며 뉘우친다. (4345.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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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큰거리는 팔로 글쓰기

 


 저녁이 찾아오고 아이들은 졸리면서 잠자리에 누우려 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잠자리로 파고든다. 등허리를 펴고 누우니 팔뚝이 퍽 저리다. 팔뚝 주무를 힘이 없어 그냥 누운 채 눈을 감고 끙끙거리며 생각한다.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일을 얼마나 했다고 팔뚝이 저린가. 아이를 오래오래 안거나 업었기에 팔이 저린가, 빨래를 많이 해서 팔이 저린가, 집 안팎을 치우거나 갈무리했다고 팔이 저린가, 무얼 했다고 팔이 저린가.

 

 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나 빈책을 찾는다. 모로 드러누워 빈책 뒤쪽에 몇 글자 적는다. ‘시큰거리는 팔’이라고 적는다. 시큰거리는 팔이지만, 이 팔로 글을 몇 줄 적고 싶다고 생각한다. 몸이 고단하더라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자고 다시금 생각한다. 한숨짓는 나한테 옆지기가 묻는 말을 생각한다. 아무 대꾸를 못하고 생각만 하다가 어느새 잠들고 말았지만, 새벽에 다시 일어나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어느 만큼 어떻게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생각한 적 있었나. 섣불리 어떤 틀을 지우지 말자고만 생각하면서, 막상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 좋을까를 잊거나 잃지 않았는가.

 

 나부터 내 삶이 어떠한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가 생각한다. 나부터 어떠한 사람 어떠한 꿈 어떠한 사랑을 꽃피우기를 빌며 글을 쓰는가 헤아린다. 아직 나부터 똑똑하거나 튼튼히 선 생각이 없기에, 내 옆지기와 우리 아이들 꿈과 사랑을 생각하지 못하며 흘러오지 않았느냐 싶다.

 

 팔이 시큰거리면 시큰거리는 대로 글을 쓰면 된다. 시큰거리는 대로 집일을 하고, 시큰거리는 대로 내 길을 걸으면 된다. 시큰거리는 팔이 말끔해진다면, 말끔해진 대로 집일을 하고, 말끔해진 대로 내 길을 걸으면 된다. 고단하면 고단한 대로 집식구들과 부대끼고, 홀가분하면 홀가분한 대로 집식구들하고 꽃피울 사랑을 찾으면 된다. 나 스스로 좋은 꿈을 즐거이 꾸면서 하루를 빛낼 때에 내 옆지기와 우리 아이들 예쁘게 살아갈 꿈을 마음속으로 알뜰살뜰 그릴 수 있겠지. 새 아침에는 새 마음으로 거듭나는 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하며 이 새벽을 누리자. (4345.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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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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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는 삶을 배우지 못한다
 [책읽기 삶읽기 95] 장정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마티,2011)

 


 소설쓰는 장정일 님이 내놓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마티,2011)을 읽습니다. 1권에 이은 2권이니 3권이나 4권도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다른 이가 쓴 소설을 퍽 많이 읽습니다. 소설을 비롯해 온갖 책을 꽤 많이 읽습니다. 모든 갈래 수많은 책을 읽는지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만, 문학책 테두리에서만 책을 읽지는 않습니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은 장정일 님이 읽고 나서 당신 느낌을 밝힌 글을 그러모은 책입니다. 이른바 ‘독서일기’입니다. ‘전문서평’이나 ‘책 비평’이 아닌 ‘읽은이 느낌’을 풀어놓는 글입니다. 서평이나 비평이 아닌 만큼, 책 하나를 둘러싼 장정일 님 생각을 홀가분하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서평이나 비평에 매이지 않는 만큼, 책 하나를 한껏 즐거이 돌아보거나 살피거나 말할 수 있습니다.


.. 인문학과 고전이 대학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대학이 죽었다는 것 … 한국인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마저 ‘인간이 자라는’ 교육을 받아 보지 못했다. 즉 시험지옥 속에서 점수 벌레로 사육되면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삭제된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  (22, 23쪽)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읽은 책을 두고 ‘좋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안 좋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아깝구나’ 하고 말할 수 있으며, ‘내 동무나 이웃더러 읽으라 할 수는 없겠네’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따로 틀에 매이지 않고 내 느낌을 말하기에 장정일 님 독서일기는 마음 가벼이 읽을 만합니다. 다만, 장정일 님 독서일기를 읽는 사람도 장정일 님처럼 마음 가벼울 때에 홀가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내 생각을 어떤 틀에 가두려 하지 않을 때라야 즐거이 읽을 수 있습니다. 내 넋을 가꾸면서 내 삶을 일구려 하는 마음가짐을 건사해야 비로소 책읽기를 예쁘게 누려요.


.. 기업이 제공한 친절에 중독되었던 만큼 당신은 기업에 휘둘리기 쉬운 ‘봉’이 된다 … 1921∼29년 즈음엔 기업인들이 전체 대학 이사회의 66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때는 미국 자본주의가 거대 자본가 중심으로 통합·재편된 때와 겹치는데, 그때부터 거대기업들은 후원을 무기로 좌파 지식인을 색출하고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보이는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계급이익에 유리하도록 철학·심리학·인류학·정치학을 통제했다 ..  (34, 79쪽)


 책 하나를 읽거나 책 여럿을 겹쳐서 읽은 느낌을 풀어놓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장정일 님은 이 느낌글을 쓰는 힘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하고.

 

 장정일 님은 책을 읽으면서 ‘책 읽은 느낌 적는 글’을 쓰는 힘을 얻었을까요.

 

 사회를 읽고 정치를 읽고 경제를 읽고 문화를 읽고 언론을 읽고 문학을 읽고 교육을 읽는 눈썰미나 눈길이나 눈높이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 얻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얻은 힘이나 눈썰미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문득 깨달은 대목이 있을 테고, 책에 밝힌 이야기가 밑거름이 되어 비로소 알아챈 대목이 있겠지요. 그러나, 책으로 얻은 힘이나 눈썰미라 할 만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곧, 장정일 님 스스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몸부림으로 온누리를 읽고 지구별을 헤아릴 수 있구나 싶어요.

 

 삶을 바탕으로 삶터를 읽습니다. 삶을 발판으로 사람을 읽습니다. 삶을 거름으로 삼아 사랑을 읽습니다.


.. 자신의 정치적 대리인을 내세우는 데 실패한 저소득층은 오페라 하우스와 같은 과시적인 문화 시설을 짓기 좋아하는 정채 결정자들의 결정을 바꾸지 못한다 … 황우석 파동은 대한민국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만들고 과학 논문 검증가로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생명 윤리’에 대한 논의는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 교육에서 아이의 선천적인 능력보다 후천적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사회에서라면, 애초부터 ‘슈퍼 베이비’를 만들려는 시도가 지탄받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  (131, 157, 158∼159쪽)


 책으로는 삶을 배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책으로는 책을 배운다고 느낍니다.

 

 책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며 비로소 사람들 살아가는 다른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삶과 꿈과 넋과 사랑을 헤아리는 실마리를 얻는다고 느낍니다.

 

 똑같은 줄거리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읽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살아가니 다르게 읽을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터전에서 읽으니, 다르게 헤아릴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줄거리 담은 책을 누군가는 멧새 노래하는 숲속에서 읽고 누군가는 자동차 빵빵 소리 시끄러우면서 배기가스 자욱한 한길에서 읽는다고 생각해 보셔요. 같은 사람이 이러한 터전에서 읽을 때,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터전에서 읽을 때, 똑같은 줄거리 담은 책은 그때그때 어떻게 스며들까요.

 

 갓난쟁이하고 하루 내내 부대끼는 사람이 읽는 책, 공무원이 책상맡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슬쩍 펼치는 책, 서울로 일하러 가는 서울 변두리(인천, 부천, 수원, 의정부, 구리, 고양, 용인, 성남 같은) 사람들이 지옥과 같다는 전철에서 읽는 책,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에서 읽는 책, 회사원이 주말에 도서관에 나들이 가서 읽는 책, 이런 여러 가지 책은 얼마나 같거나 다를 만할까요.


.. 다산의 모든 저작은 유배지라는 열악한 환경과 마음의 괴로움 속에서 쓴 것이다. 그런데 그 초인적인 노력이 한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실학을 설명할 때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 두 아들에게 독서 이외의 다른 살길을 찾아보라고 길을 터주지 못한 것도 실학을 좀더 냉정하게 평가하도록 만든다 … 독서대국! 아마 그때(1970년대)는 여성지가 그 임무를 맡았나 보다. 농담이 아니라 윌리엄 골딩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해, 어떤 여성지는 그의 중편인 〈황제특명전권공사〉를 본문 가운데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어 넣기도 했다. 요즘의 여성지는 어떤지…… ..  (222, 266∼267쪽)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보금자리를 튼 터전에서 몸으로 배운다고 느낍니다. 삶을 부대끼며 삶을 배웁니다. 사람을 만나며 사람을 배웁니다. 일을 하며 일을 배웁니다. 놀이를 즐기며 놀이를 배웁니다. 설거지를 하며 설거지를 배웁니다. 빨래를 하며 빨래를 배웁니다. 호미질을 하며 밭을 배웁니다. 책을 읽으며 책을 배웁니다. 노래를 부르며 노래를 배웁니다. 사진을 찍으며 사진을 배웁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을 읽는다면 ‘글쓰기 다루는 책’을 배울 뿐, 글쓰기도 책도 배우지 못합니다. 스스로 글을 써야 글을 배웁니다. 책읽기 드러내는 책을 읽으면 ‘책읽기 드러내는 책’을 배울 뿐, 책읽기도 책도 배우지 못해요. 스스로 책을 읽어야 책읽기나 책을 배웁니다.

 

 소설쓰는 장정일 님은 책을 읽은 느낌을 책 하나로 그러모읍니다만, 이 책에는 ‘책 읽은 느낌’을 애써 담지 않습니다. 책 하나에 비추어 ‘장정일 님 스스로 이 땅에서 부대낀 삶과 꿈과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읽고 싶으면 읽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책은 안 읽어도 됩니다. 온누리를 배우고 싶으면 온누리를 내 가슴으로 끌어안으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책을 속깊이 알고 싶으면 독서일기 아닌 ‘책’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장정일 님 책을 왜 읽었을까요? 한 마디로 갈무리하자면, 장정일 님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헤아리고 싶어 이 책을 읽었습니다. (4345.2.2.나무.ㅎㄲㅅㄱ)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씀,마티 펴냄,2011.8.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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