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2.16.
 : 자장자전거

 


- 저녁 다섯 시 십 분. 자전거를 끌고 면내 우체국으로 간다. 이듬날 갈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우체국만 얼른 들렀다 돌아오기로 한다. 첫째 아이는 어김없이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아버지가 바지를 갈아입고 양말을 신을 무렵 “나도 갈래. 나도 아버지 따라 갈래.” 하고 말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 한낮을 지난 뒤 자전거마실을 아이랑 함께 할라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수레 한쪽에 기대어 잠들곤 한다. 가만히 앉아 수레에 이끌리는 동안 아침부터 쌓이고 밀린 졸음이 왈칵 쏟아지는구나 싶다. 수레에 앉아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이 자전거는 ‘자장자전거’인가?

 

- 수레에 앉아 아버지랑 마실을 다니는 아이는 늘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른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조용하다면 졸립다는 뜻이다. 졸릴 때에는 아주 조용하며 얌전하다. 이러다가 어느새 고개를 톡 떨군다.

 

- 자장자전거를 타고 늦은 낮잠을 자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레끈을 푼다. 안아서 방으로 들이려 하는데, 아이 어머니가 나와서 아이를 안는다. 나는 대문을 닫는다. 자전거랑 수레는 집 한쪽에 기대어 놓는다. 땀을 식히고 물 한 잔 마신다. 자전거마실을 하며 이제 날이 따스해지려나 생각해 보는데, 따스해지려다가 다시 찬바람 불고, 찬바람 불다가 살짝 포근하고, 이럭저럭 되풀이한다. 곧 따스한 바람만 부는 철이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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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2.7.
 : 된바람

 


- 어떻게 된바람 부는 날 우체국을 다녀온다. 그렇다고 이 된바람이 가라앉고 나서 우체국에 갈 수 있지도 않다. 보내야 할 편지가 있으면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모질어 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하루나 이틀쯤 지나고서 바람이 가라앉으면 고맙지만, 하루나 이틀을 기다리지만 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면, 그냥 길을 나설밖에 없다.

 

- 면내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도 된바람이 드세다. 참 드세다. 나야 자전거를 몬다지만 수레에 앉아서 함께 가는 아이는 아주 춥겠다. 햇살은 따사로이 비추지만 바람은 자전거가 휘청거리도록 분다. 그래도 면내로 가는 길은 얕은 내리막이기에 그렁저렁 달린다. 우체국에 들른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어를 높이고 선 채 힘껏 발판을 밟아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용을 쓰면서 한 발 두 발 구른다. 걸을 때보다는 조금 더 빠르다는 생각으로 겨우 자전거를 끈다.

 

- 바람이 되게 드세기 때문에 수레 덮개를 내리기로 한다. 뒷거울로 살피니 아이는 몸을 앞으로 폭 숙인다. 바람이 너무 불기 때문이리라. 웬만한 바람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아이인데. 덮개를 내리려고 자전거를 멈추니 아이가 몸을 일으킨다. 바람도 바람이지만 졸립구나. “바람이 너무 불어 덮개를 내릴게. 덮개 내릴 테니까 코 자.” 덮개를 내리며 달리는데 아이는 멍한 눈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이러다가 이내 한쪽으로 고개를 기대고는 잠든다.

 

- 고작 2.1킬로미터 길이지만 바람이 드세기에 한 번 다리쉼을 한다. 어쩜 이런 날 자전거를 끌고 나오나 싶지만, 이런 날 우체국에 들러야 하니까, 봄을 기다리는 겨울 들판이랑 파란 빛깔 하늘이랑 하얀 빛깔 구름이 얼크러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둘째가 제 두 다리로 걸어다닐 무렵이면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다닐 테니, 머잖아 끌 ‘두 아이 수레’는 이만 한 무게를 버틸 수 있게끔 하늘이 날 담금질한 셈으로 치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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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939) 나의 37 : 나의 동생

 

.. 다음은 나의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 꼬마일 때, 내 동생은 무엇이나 다 알고 싶어하는 아이였읍니다 ..  《도로시 에드워즈/최경림 옮김-고집장이 꼬마 여동생》(동서문화사,1982) 20, 151쪽

 

 “여동생의 또 다른 이야기”는 “여동생과 얽힌 또 다른 이야기”나 “여동생이 저지른 또 다른 이야기”나 “여동생이 겪은 또 다른 이야기”로 다듬습니다.

 

 나의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우리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내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우리 집 고집장이 꼬마 여동생
 …

 

 한국말로 옮긴 어린이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 첫머리에는 “나의 여동생”이라 나오고, 책 끝자락에는 “내 동생”이라 나옵니다. 동생이 같은 동생이라면, 같은 동생을 가리키는 말마디도 같겠지요. 사람들이 오래오래 부르는 어린이노래에 “내 동생 개구쟁이, 개구쟁이 내 동생”이라 나오듯, 내 밑으로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동생은 “내 동생”입니다.

 

 나한테 동생인 아이를 가리킬 때에는 “내 동생”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동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형이라면 “내 형”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형”이라 할 수 있어요.

 

 더없이 마땅한 말마디인데, 어린이책을 쓰거나 엮는 이들이 으레 “내 동생” 아닌 “나의 동생”처럼 쓰고 맙니다. 어른책을 쓰거나 엮는 이들 또한 “내 동생” 아닌 “나의 동생”이라는 말마디를 곧잘 쓰고 말아요.

 

 바르게 쓰는 말이나 곱게 나누는 글을 떠나 생각하더라도, 문학을 하건 교육을 하건 예술을 하건 정치를 하건, 참말 말이랑 글이랑 바르고 곱게 써야 아름답습니다. 바르게 생각하면서 바르게 말하고, 곱게 헤아리면서 곱게 글을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2) 나의 38 : 나의 꽃

 

..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름을 불러 준다고 다 나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 ..  《강운구-자연기행》(까치글방,2008) 51쪽

 

 “되는 것은 아니다”는 “되지는 않는다”로 다듬습니다.

 

 나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내 꽃이 되지는 않는다
→ 나한테 꽃이 되지는 않는다
→ 내게 꽃이 되지는 않는다
 …

 

 나한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고맙게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한테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한테 꽃과 같은 사람으로 자리잡습니다. 나는 누군가한테 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이웃합니다. 나는 너한테 따스한 마음을 건네고, 당신은 나한테 고운 꿈을 나누어 줍니다.

 

 내가 심은 꽃이라 “내 꽃”이라 할 만합니다. 내가 심지 않았으나 날마다 그윽하게 바라보며 아끼기에 “내 꽃”으로 삼을 만합니다. 내가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는 “내 사랑스러운 아이”요 “나한테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내가 써서 스스로 즐기는 글 한 자락은 “내 좋은 글”이면서 “나한테 좋은 글”이에요.

 

 내 고운 꽃이 되지는 않는다
 내 사랑스러운 꽃이 되지는 않는다
 내 애틋한 꽃이 되지는 않는다
 내 아름다운 꽃이 되지는 않는다
 …

 

 내 말을 곱게 북돋웁니다. 내 말씨를 따숩게 돌봅니다. 내 말결을 살가이 가다듬습니다. 내 말투를 너그러이 보살핍니다. 내 말밭을 알뜰히 일굽니다.

 

 내 아름다운 꿈을 담는 말이 되도록 힘씁니다. 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싣는 말이 되도록 땀흘립니다. 내 참다운 뜻을 펼치는 말이 되도록 애씁니다. 내 꽃다운 넋이 오래오래 이어가도록 아끼는 말이 되도록 살아갑니다.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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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2-18 17:49   좋아요 0 | URL
교정보다 보면 '의'가 너무 많고 그것을 빼는 작업을 하면 좀 심하단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파란놀 2012-02-18 18:38   좋아요 0 | URL
너무 길들여져서 이 말투가 없으면
말이 안 된다고 여기니
참 어려운 일이에요..
 

두 아이 재우기

 


요즈음
아버지가 두 아이를
나란히 재운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잠자리에서
같이
손놀이 하고
노래 부르다 보면,

 

동생이 마지막까지
눈 반짝이며
놀려 하다가
새근새근 잠들고,

 

누나도

스르르
곯아떨어진다.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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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18 11:56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문득 든 생각인데요...
된장님 글을 보면, 우리말 살려 쓰기, 다시 쓰기, 제대로 쓰기...등등
김소월 님이 생각나는 거 있죠.
이쁜 시 잘봤습니다, 꾸벅(__)

파란놀 2012-02-18 17:08   좋아요 0 | URL
시를 쓰는 이들이
조금 더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말마디로
빛을 일구면 좋으리라 하고 생각해요..
 

 

 


 시든 동백꽃에 하얀 눈얼음
 [고흥살이 6]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네 식구 고흥 살림집에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와 산초나무가 마당가에서 자랍니다. 이 집에서 예전에 살던 할머니가 심어 돌본 나무들입니다. 산초나무에서 얻은 열매를 빻아서 국에 넣어 먹어 보았습니다. 후박나무가 우람하게 자랐기에, 이 후박나무 듬직한 줄기에 빨래줄을 드리웠습니다. 동백나무를 마당에서 늘 바라보며 언제 얼마나 꽃이 피고 지는가를 느낍니다.

 

 따스한 봄을 맞이하면 흐드러지게 피어날 동백나무 동백꽃이라는데, 지난겨울에 몇 송이가 곱게 봉오리를 펼쳤어요. 12월 1일에 첫 봉오리가 터졌고 12월 9일에 두세 봉오리가 더 펼쳤습니다.

 

 그러나 서너 봉오리까지만 터지고 다른 봉오리는 입을 꼭 다뭅니다. 일찌감치 봉오리를 터뜨린 서너 봉오리는 시든 모습으로 겨울을 납니다. 앙 다문 다른 봉오리는 찬바람과 눈바람을 모두 견딥니다. 바야흐로 아주 포근해지는 날씨에 이들 동백꽃이 한꺼번에 봉오리를 터뜨릴 테지요. 차디찬 눈바람이 아닌 포근한 햇살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기에 한겨울 며칠 따스한 기운이 퍼지더라도 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으며 꾹 참을 테지요.

 

 따스한 남녘땅입니다. 이곳에서 몇 봉오리는 그만 한겨울 들머리에 꽃을 터뜨려 철을 잊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철을 앞서갔다 할 수 있고 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살림집뿐 아니라 이웃 살림집 동백나무도 일찍 꽃봉오리 터뜨려 일찍 시든 동백꽃이 있습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동백나무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일찍 터진 꽃은 일찍 시듭니다. 늦게 터지는 꽃은 늦게 시듭니다.

 

 일찍 터져서 일찍 시들기에 더 못나 보이지 않습니다. 느즈막하게 터진대서 더 어여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봄을 피어야 제멋이라 하지만, 한겨울에 피어도 제멋이라고 느껴요. 꽃은 활짝 피어 흐드러질 때에도 멋스럽고, 꽃은 파들파들 시들어 쪼그라들 때에도 멋스럽거든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아름답습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싱그럽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씩씩합니다.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슬기롭습니다.

 

 몇 달 일찍 봉오리 터뜨린 동백꽃송이를 날마다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들었으니 잎이 곧 떨어지겠거니 생각합니다. 언제쯤 시든 잎이 흙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며 날마다 들여다보는데, 시든 잎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든 잎은 찬바람이랑 눈바람을 고스란히 맞습니다. 어쩌면, 다른 꽃봉오리 활짝 터질 봄에도 이 모습 그대로 있을는지 모르고, 다른 꽃봉오리 활짝 터진 다음 하나둘 지며 쪼그라들 때에도 나란히 쪼그라든 모습으로 있을는지 몰라요.

 

 《지는 꽃도 아름답다》(문영이 씀,달팽이 펴냄,2007)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일흔 넘은 나이에 글꽃을 피운 할머님 삶을 떠올립니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박정희 씀,걷는책 펴냄,2011)라는 책을 헤아립니다. 아흔 줄에 접어들었어도 그림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할머님 넋을 헤아립니다. 살결이 쪼글쪼글한 할머님들 삶은 그야말로 쪼글쪼글하다 할 만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학교나 문화나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나 한결같이 한껏 젊음을 뽐내는 어린 아가씨 허여멀건 몸매와 얼굴에 눈길을 둡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더 어려 보이려 애쓰고, 더 젊어지려고 용씁니다.

 

 나이에 걸맞게 슬기로이 살아가는 길을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에는 스물에 걸맞는 삶길이 있고, 서른 살에는 서른에 걸맞는 삶길이 있으며, 마흔 살에는 마흔에 걸맞는 삶길이 있어요. 쉰 살 삶길은 쉰 자락 걸어온 나날로 이룹니다. 예순 살 삶길은 예순 자락 걸어온 나날로 일구어요. 나이를 더 먹었대서 더 슬기롭지는 않아요. 나이가 어리다고 더 풋풋하거나 싱그럽지도 않아요. 삶은 밥그릇으로 따지지 않으니까요. 삶은 하루하루 얼마나 따순 사랑을 나누며 어깨동무했느냐 하는 꿈날개로 보살피니까요. (4345.2.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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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2-18 11:58   좋아요 0 | URL
전 시댁이 전북 고창이어서 선운사 동백은 가끔 봐요.
빗 속의 동백은 운 좋게 볼 때가 간혹 있었는데...
눈 속의 동백은 사진으로라도 귀한 선물이네요~^^

파란놀 2012-02-18 17:08   좋아요 0 | URL
눈과 꽃은 새삼스레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