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책읽기

 


 늦은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고 칭얼노래 부르는 두 아이를 데리고 뒤꼍으로 나와 ‘이렇게 깜깜하고 조용한 밤, 너희들 코 자야지. 자, 하늘에 있는 별을 좀 보렴.’ 하고 이야기하던 이레쯤 앞서 별똥별을 본다. 어어, 별똥별이네, 별똥별을 보면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빌라 했는데, 하고 생각할 무렵 스윽 하고 멧등성이 너머로 사라진다.

 

 그래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해 주셔요.’ 하는 한 마디를 마음속으로 빈다. 짧은 동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오직 이 하나 아닌가 싶다. 이도 저도 더 떠올리지 못한다. 아마, 다른 막바지에서도 이렇게 빌지 않을까. 국민학교 사학년 때였가, 고향마을 인천에서 저녁나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게에 다녀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별똥별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에도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해 주셔요.’ 하는 한 마디를 빌었다.

 

 아이들은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 혼자 보았다. 머잖아 아이들도 별똥별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 어머니도 곧 별똥별을 보리라 생각한다. 우리 시골집 밤하늘에는 별이 촘촘히 뜨니까, 이 너른 밤하늘을 등에 지고 살다 보면 별똥별이 예쁘게 찾아들리라 믿는다.

 

 곰곰이 떠올리면, 군대에서 보초를 서던 깊은 밤, 한 시간 사이 별똥별을 일곱이나 본 적 있다. 하늘이 넓게 트이고 뭇별로 반짝이는 곳이라면 어렵잖이 별똥별을 만난다고 느낀다. 하늘이 좁고 전깃불 번쩍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별똥별이 못 찾아들리라 생각한다. 달도 별도 없는데 별똥이 어떻게 있을까. 달도 별도 생각하지 않는데 별똥을 어찌 생각할까. 달도 별도 잊는데 별똥이 왜 찾아올까. 달도 별도 느끼지 않는데 별똥을 누가 느낄까.

 

 별똥별 바라보며 가슴이 찌릿 울린 적 있는 사람이라면 밤하늘 그림을 그릴 때에 한쪽 자리에 조그맣고 예쁘게 별똥 지나가는 발자국 담을 테지. 별똥 발자국 그리고 싶어 일부러 밤하늘을 그림으로 빚겠지. (4345.2.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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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간 사자 웅진 세계그림책 107
미셸 누드슨 지음, 홍연미 옮김, 케빈 호크스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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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어떤 책을 어디에서 읽나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2] 케빈 호크스·미셸 누드슨,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

 


 책은 알맹이를 읽습니다. 껍데기를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회사원일 수 있고, 흙일꾼일 수 있으며, 대통령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깡똥치마를 입을 수 있고, 구멍나고 헐렁한 바지를 입을 수 있으며, 알몸일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선 채 읽을 수 있고, 누워서 읽을 수 있으며, 앉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일본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버마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책을 읽습니다. 원어민강사가 책을 읽습니다. 실업자가 책을 읽습니다.

 

 양복을 빼입은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한 달쯤 빨래하지 않은 옷을 걸친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학교옷 입은 고등학생이 책을 읽습니다.

 

 책은 누구한테나 열립니다. 이 사람한테는 열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열리는 책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값을 치러 책 한 권 장만합니다. 가난한 사람도 가멸찬 사람도 똑같은 책을 똑같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 어느 날, 도서관에 사자가 왔어요. 사자는 곧바로 대출 창구를 지나 자료실로 들어갔어요 ..  (5쪽)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눈으로 글자를 좇으며 읽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읽든, 누구나 책은 줄거리를 읽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이기 때문에, 책을 손에 쥔 사람마다 다 달리 받아들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나날에 비추어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저마다 쓸모와 찾을모가 다른 만큼, 같은 책 같은 줄거리라 하더라도, 이 줄거리를 가슴으로 삭이는 느낌과 맛이 다릅니다.

 

 아마, 누군가는 독후감이나 보고서 숙제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삶을 밝히는 눈을 북돋우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거나 수험 공부 때문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그저 즐거워서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지식을 한껏 쌓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파헤치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이름난 사람이 썼기에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읽겠지요. 아마, 누군가는 마음에 환히 켜지는 등불을 깨닫기에 읽겠지요.

 

 책방에 서서 책을 읽습니다. 커다란 새책방 한쪽에 서서 책을 읽으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작은 헌책방 한쪽에 쭈그려앉아 책을 읽어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읽으나, 오래도록 안 팔린 채 꽂히기만 한 책을 읽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예전에 판이 끊어진 책을 찾아 훑기도 하지만,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누군가 즐거이 사서 읽다가 내놓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 아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어요. 도서관 규칙에 사자에 대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  (9쪽)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돌아보면, 책을 손에 쥘 겨를조차 없기 일쑤인데, 아이들 눈빛이 좋은 책이고, 아이들 손짓 발짓이 멋진 책이며, 아이들 목소리가 해맑은 책이곤 합니다. 이 땅뿐 아니라 온누리 수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고 돌보고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면서 둘도 셋도 없이 어여쁜 ‘아이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자락 논밭을 일구는 흙일꾼은 호미와 낫과 쟁기를 부려 손발과 얼굴 모두 흙빛으로 바뀌는 나날을 보내며 ‘흙책’과 ‘풀책’과 ‘하늘책’을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고기를 낚는 바다일꾼은 ‘물고기책’과 ‘바다책’을 읽으리라 생각해요.

 

 종이에 글로 담는 책이란, 이 땅 숱한 이야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점 하나라고 느낍니다. 많디많은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 간추려 종이에 글로 담는다고 느낍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듭니다. 종이로 바뀌는 나무는 나무로 숲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마다 다른 숲삶을 알알이 아로새깁니다. 책장을 넘겨 종이 내음을 맡을 때에는 잉크 내음이나 화학처리 내음이 난달지 모르지만, 이 화학약품 냄새 밑바닥에는 흙에 뿌리내리고 햇살을 받아먹으며 잎사귀 푸르게 늘어뜨리던 우람한 나무에 아로새긴 기나긴 나날 이야기에 서린 냄새가 깔려요.

 

 시골 숲에서 책을 읽으면 시골 숲바람을 맞으며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도시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깜깜한 땅밑 시끄러운 쇠바퀴 소리에 흔들리면서 책 알맹이를 받아먹습니다. 아이들 재우고 나서 모로 누워 책장을 넘기면 새근새근 숨소리 들으며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시외버스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멀미 나며 어지러운 머리로 책 줄거리를 헤아립니다.


.. 사실, 사자는 도서관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사자는 커다란 발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도서관을 걸어 다닐 수 있었어요. 이야기 시간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되어 주었지요. 게다가 이제 도서관에서는 절대 으르렁거리지 않았어요 ..  (18쪽)

 

 


 케빈 호크스 님이 그림을 그리고 미셸 누드슨 님이 글을 쓴 그림책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200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간 사자》에 나오는 ‘사서 맥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규정·규칙·법규를 따집니다. 언제나 무슨무슨 규정을 찾고, 노상 어떤저떤 규칙을 헤아립니다.

 

 관리직이라는 자리라면 어쩔 수 없을까요. 공무원이라는 자리라면 어찌할 길이 없을까요.

 

 도서관에는 사자라고 못 들어가란 법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라고 도서관에 가지 말란 법 없습니다. 열여섯 살에 아기를 낳은 어머니라서 도서관에서 가로막을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대서 도서관을 드나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누구나 도서관에 드나들되, 책 하나에 깊이 마음을 쏟는 다른 사람들을 헤살 놓지 않으면 돼요. 침을 묻히며 책장을 넘긴다든지, 책장을 몰래 오린다든지, 거칠게 책장을 뒤적인다든지 하는, 애먼 짓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호젓하게 책을 즐길 수 있으면 돼요. 나와 내 아이와 내 아이가 낳을 아이가 오래오래 책 하나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여기는 매무새라면 돼요.


.. 사자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규칙을 어겼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사자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맥비 씨는 눈치 채지 못했어요. “관장님, 메리웨더 관장님! 사자가 규칙을 어겼어요. 사자가 규칙을 어겼습니다!” ..  (26쪽)

 


 ‘메리웨더 관장’은 사자가 규칙을 어긴 일이 없으니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굳이 규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사자가 반가우면 도서관에서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규칙을 어겼더라도 사자가 좋으면 규칙을 고칠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이 그리 크지 않아 새로운 책을 더 받아들일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되거든요. 묵은 책은 버리고 새로운 책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도서관을 늘릴까요. 책꽂이 사이사이에 새 책꽂이를 놓을까요. 책꽂이 위에 새 책꽂이를 붙이고 사다리를 놓을까요. 도서관 둘레에 다른 도서관 하나를 열어 새로운 책은 그곳에 둘까요.

 

 도서관 손님으로 사자를 받아들이는 규칙을 마련해도 되겠지요. 규칙이란 아예 없애고 서로 즐거운 책삶을 누리자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은 누구한테나 책이니까요. 책에 깃든 넋은 누구한테나 좋은 씨앗이니까요. 책으로 나누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나 사랑이니까요. (4345.2.19.해.ㅎㄲㅅㄱ)


― 도서관에 간 사자 (케빈 호크스 그림,미셸 누드슨 글,홍연미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2.1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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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紀行
강운구 글.사진 / 까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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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이야기 찾아나서는 사진마실
 [찾아 읽는 사진책 78] 강운구, 《자연기행》(까치글방,2008)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별자리를 그릴 수 있습니다. 별자리 이름이나 크기나 모양이나 잘 모르지만, 이모저모 모인 별을 뭉뚱그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따로 무슨무슨 자리라고 알지 못하더라도 서로서로 어떻게 엮으면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밤하늘 뭇별을 이 나라 어디에서나 올려다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깊은 시골자락에 깃든 집에서 올려다봅니다. 읍내나 시내에서는 뭇별을 올려다보기 어렵습니다. 커다란 도시로 나가면 달빛을 느끼기조차 어렵습니다.

 

 어릴 때 인천에서 살아가며 별자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책을 읽은 적 있지만, 막상 밤하늘 뭇별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없었어요. 밤하늘 별은 올려다보지 못하며 별자리 책만 뒤적인들, 별이고 별자리이고 밤하늘이고 알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까치글방,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강운구 님은 “우리 나라의 식물사전에는 수선화가 화훼식물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은 야생의 수선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주 남녘 대정 땅의 수선화는 엄연히 야생으로 여러 대를 이어오고 있다(14쪽).” 하고 말합니다. 식물사전이든 식물도감이든 적잖이 다리품을 팔지 않으면 엮을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 땅 골골샅샅 누비며 이 같은 사전과 도감을 내놓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미처 못 디딘 땅이 있을 테고, 아직 살피지 못한 꽃과 풀과 나무가 있겠지요. 어느 꽃은 아주 드물게 아주 좁은 데에서만 피고 질 수 있으니까요. 어느 꽃이 피고 지는 아주 조그마한 터에 때맞추어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면 어느 꽃이 있는 줄조차 모를 수 있으니까요.

 

 

 

 망원경이 있으면 도시 한복판에서라도 밤하늘 별을 살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막상 도시 한복판에 깃들면서 밤하늘 별을 느끼려 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도시 한복판이란 밤별이랑 동떨어진 곳이니까요. 경제성장과 경제개발에 온넋 쏟는 도시 한복판이지 않겠어요. 더구나, 도시 한복판에서는 밤별뿐 아니라 낮꽃 또한 동떨어진 곳이로구나 싶어요. 낮에 마주할 나무하고도 풀하고도 새하고도 동떨어진 곳이겠지요.

 

 “저 자연의 품속은, 자연의 것은 더 아름답다. ‘자연을 보호하자’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연을 보호할 만한 능력이 물론 없다. 그것을 있는 자리에 그대로 두고 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자기 집, 자기 방으로 못 옮겨서 안달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한 해에 두어 번, 들이나 산의 숲에 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의 모든 꽃은 그 사람의 것이다(33쪽).” 하고 읊는 말마따나 자연 터전은 나날이 파먹힙니다. 곰곰이 살피면, 사람들은 자연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파먹으면서 경제를 살찌웁니다. 자연을 파헤치면서 돈벌이를 합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국립공원을 세웁니다. 국립공원 아닌 데는 마음껏 무너뜨리고, 국립공원조차 신나게 어지럽혀요. 강운구 님이 “헉헉대며 꼬박 4시간은 올라야 이르렀던 노고단이 지금은 시암재의 주차장에서 쉬엄쉬엄 30분쯤 걸으면 된다. 망가진 덕택이다(198쪽).” 하고 외치지 않더라도, 이 나라 사람 누구나 한껏 망가진 한국 자연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리하여,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 어른들 이야기처럼 됩니다.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꿀풀이든 다른 꽃이든 따며 놀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들판과 멧자락과 냇가와 바닷가에서 마음껏 하루 내내 뒹굴거나 뛰놀도록 풀어놓는 어른부터 없어요. 아이들이 두어 살만 되어도, 아니 한두 살만 되어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넣잖아요. 아이들은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잖아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때부터 ‘대학입시 수험생’처럼 되어 영어도 배우고 한자도 배우며 갖은 지식을 머리에 꾹꾹 눌러담아야 하잖아요.

 

 

 

 똑똑해지는 오늘날 아이들이 아닙니다. 지식만 많이 갖추는 오늘날 아이들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고, 이웃을 아끼는 넋이란 없으며, 나와 동무를 사랑하는 꿈이란 없어요. 곧,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름을 불러 준다고 다 나의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다(51쪽).” 하는 말처럼, 아이들 스스로 누구를 어떻게 왜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기쁜 나날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맙니다. 아이들 스스로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길하고는 너무 동떨어지고 맙니다.

 

 아름다이 살아갈 나날인데 아름다이 품을 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이웃인데 사랑스레 북돋울 얼을 가누지 못합니다. 착하게 꾸릴 살림인데 착하게 보듬을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강운구 님이 내놓은 사진책 《자연기행》은 한국땅 골골샅샅 두 다리로 밟으며 안쓰러이 느낀 이야기를 다룹니다. “식물사전에 올라 있는 이 풀(개불알풀)의 호적명 대신에 시골에서는 ‘봄까치꽃’이라고 부른다(65쪽).”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꽃 한 송이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아름답고, 멀리 물러서서 무리를 보면 화려한 빛깔이 눈부시게 아름답다(8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보다 강운구 님한테 아름다울 이야기를 찾아나섭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강운구 님 스스로 알아주겠다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만나며 얼싸안습니다.

 

 나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눈으로 밤하늘 올려다보며 뭇별을 곱게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손으로 들판 억새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호미를 쥐어 흙을 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씨앗 한 알 건사하며 내 사랑을 듬뿍 쏟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글 한 줄 쓰면서 내 꿈을 살포시 실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면서 내 하루를 고맙게 여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자연기행》은 여러 매체에 실은 글을 그러모은 탓인지, 똑같은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합니다. 똑같이 되풀이하더라도 곰곰이 되새길 만하다 볼 테지만, 이 작은 책에 미처 싣지 못한 더 너른 이 나라 자연마실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⅜쯤 차지하는 되풀이하는 이야기는 덜고 새 글과 새 사진을 담으면 얼마나 살뜰하고 푸진 이야기책이 되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4345.2.19.해.ㅎㄲㅅㄱ)


― 자연기행 (강운구 글·사진,까치글방 펴냄,2008.7.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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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4 : 녹음방초승화시

 

.. 5월이라고 그야말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이다. 꽃은 나뭇잎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다. 병꽃과 철쭉 그리고 팥배나무 꽃이 피어 있지만 이파리에 숨어 있다 ..  《호원숙-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 22쪽

 

 “나뭇잎의 기세(氣勢)”는 “나뭇잎 기운”이나 “나뭇잎이 올라오는 기운”이나 “나뭇잎이 드리우는 기운”으로 다듬습니다. “피어 있지만”은 “피었지만”으로 손질하고, “숨어 있다”는 “숨었다”로 손질합니다.

 

 녹음방초승화시 : x
 녹음방초(綠陰芳草) :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향기로운 풀이라는 뜻으로, 여름철의
     자연경관을 이르는 말
  - 봄이 가고 여름이 돌아와 녹음방초의 계절을 맞게 되었다

 

 국어사전에 실린다 해서 모두 한국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국말은 아니나 한국사람이 익히 쓰는 낱말도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거꾸로, 한국말이지만 굳이 국어사전에 안 실어도 될 만하다 싶은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리기도 해요.

 

 ‘녹음방초’는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녹음방초승화시’는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하나는 왜 국어사전에 실리고, 다른 하나는 왜 국어사전에 안 실릴까요. 두 말마디는 어떠한 말로 여겨야 할까요.

 

 국어사전에 안 실린 ‘녹음방초승화시’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이 아닌 만큼 국어사전에 실을 까닭이 없습니다. ‘녹음방초’는 한국말일까요? 이 말 또한 한국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실립니다. 아무래도 사자성어이기 때문일까요?

 

 한문 ‘녹음방초승화시’는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 첫여름을 나타내기도 함.”을 뜻한다 합니다. 한문 ‘녹음방초’도 여름을 가리키지만, ‘녹음방초’는 ‘여름철’을 두루 일컫습니다. ‘녹음방초승화시’는 조금 달라, 여름 가운데 ‘첫여름’만 가리킨다고 합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돌아와 녹음방초의 계절을 맞게 되었다
→ 봄이 가고 여름이 돌아와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다
→ 봄이 가고 여름이 돌아와 나뭇잎이 푸르다
→ 봄이 가고 여름이 돌아와 나뭇잎이 싱그럽게 푸르다
→ 봄이 가고 여름이 돌아와 푸른 나뭇잎이 짙고 맑다
 …

 

 먼 옛날, 한국사람 가운데 양반이나 사대부나 임금이라는 자리에 있던 이들은 한문을 썼습니다. 이웃한 중국이라는 나라를 섬기며 중국사람이 쓰는 말글을 우러렀습니다. 먼 옛날, 한국사람 가운데 양반이나 사대부나 임금이라는 자리에 서던 이들은 ‘녹음방초’와 ‘녹음방초승화시’ 같은 말마디를 읊었습니다. 이러한 말마디는 옛날 옛적 한적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고,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한편,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권력이나 계급하고 동떨어진 자리에서 살던 이들은 한국말, 곧 한겨레말을 썼습니다. 한겨레말은 한글로 적을 수 있다지만, 예나 이제나 권력이랑 계급, 여기에 오늘날은 지식을 손에 쥔 이들까지, 한겨레말을 한글로 적어 버릇하지 않습니다.

 

― 여름 : 첫여름 + 한여름 + 늦여름

 

 더없이 마땅합니다만, 여름이 한창이면 ‘한여름’입니다. 봄이 한창이면 ‘한봄’입니다. 여름에 막 들어서면 ‘첫여름’입니다. 겨울에 막 들어서면 ‘첫겨울’입니다. 여름이 막바지라면 ‘늦여름’이나 ‘막여름’입니다. 가을이 저물 무렵이라면 ‘늦가을’입니다.

 

 한국말은 ‘여름’이고 ‘첫여름’입니다. 여름이기에 여름이라 말합니다. 첫여름을 맞이했으니 첫여름이라 이야기합니다. 참말 그뿐입니다. 더도 없고 덜도 없습니다. 삶을 삶 그대로 말할 뿐입니다. (4345.2.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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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안고 뜨개질

 


 잠든 아이를 무릎에 누인 어머니가 뜨개질을 한다. 양말 한 켤레 뜬다. 더디더디 뜨는 양말 한 켤레는 며칠이 걸린 끝에 마무리된다. 아이가 기어다니며 엉클어 놓은 실을 푼다. 실빛이 곱고, 입을 벌리며 자는 아이 낯빛이 곱다. (4345.2.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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