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사진으로 걷는 길
 ― 사진을 만든 사람

 


 사진을 만든 사람은 역사에 이름이 남습니다. 이이는 프랑스에서 특허권을 냈고, 이 특허권은 프랑스 정부에서 사들인 다음, 누구나 이 ‘새로운 재주’를 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글은 누가 맨 처음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림은 누가 맨 처음 만들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글이나 그림도 어떤 특허가 있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돌로 된 벽이나 나무판이나 종이에 아로새겨 오래도록 남도록 하던 글이나 그림은 누가 맨 처음 만들었을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사진기라 하는 연장이 있어야 찍습니다. 글은 연필이라 하는 연장이 있어야 씁니다. 그림은 붓이라 하는 연장이 있어야 그립니다. 사진기랑 연필이랑 붓이랑 연장 쓰임새가 다르다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저마다 연장을 써서 무언가 새로 빚는다는 대목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연장이 없이는 글도 그림도 사진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연필로 빚는 글은 ‘문학’이라는 자리를 마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붓으로 빚는 그림은 ‘회화’라는 자리를 마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기로 빚는 사진은 어떤 자리를 마련해 온갖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맨 처음 사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진을 찍는 연장은 값이 그리 싸지 않습니다. 품이 제법 듭니다. 사진기는 1/100초이든 1/1000초이든 붙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붙잡은 모습을 종이에 앉히기까지 훨씬 긴 겨를과 많은 품을 들여야 합니다. 종이에 적바림하면 태어나는 글이나 종이에 그리면 나타나는 그림하고는 적잖이 다릅니다.

 

 한겨레 살아가는 이 나라를 생각해 봅니다. 한반도라 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한반도를 넘어 만주나 일본이나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로 나아가 살아가는 사람한테 사진이란 어떤 삶이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돌이켜 봅니다. 여느 터전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던 여느 사람들은 사진을 얼마나 즐기거나 누렸을까 곱씹어 봅니다. 여느 터전 여느 살림 여느 사람들은 사진뿐 아니라, 글이나 그림은 얼마나 즐기거나 누렸을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장만해야 즐기거나 누린다 할 텐데, 그림이라 해서 누구나 쉬 즐기거나 누리지 않습니다. 글이라 해서 아무나 쉬 즐기거나 누리지 않아요. 지난날 한겨레 거의 모든 사람은 흙을 일구어 살림을 돌보았는데, 이들 가운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사람조차 매우 드물거나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람뿐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못 남겼다는 사람까지 샅샅이 훑더라도 ‘한겨레 거의 모두를 이루던 흙일꾼’ 가운데 글 문화나 그림 문화를 즐기거나 누린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50년대에는 어떻다 할 만할까요. 1970년대와 2000년대는 또 어떻다 할 만할까요. 2010년대에는 시골 여느 흙일꾼이 글 문화를 누린다 할 만할까요. 2020년대나 2050년대에는 도시 공장 일꾼이 그림 문화를 누린다 할 수 있을까요.

 

 글도 그림도 사진도 여느 터전 여느 살림 여느 사람한테는 너무 머나먼 이야기라 할는지 모릅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여느 터전하고 동떨어지거나 여느 살림하고 등지거나 여느 사람하고는 아득히 먼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제 사진은 여느 터전 여느 살림 여느 사람까지 그리 어렵지 않게 누리거나 즐깁니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은 드물어도, 아이들 복닥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담아 벽에 붙이거나 손전화로 담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는 나날 이야기를 시나 수필로 써서 벽에 붙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사랑스러운 짝꿍을 곱게 그림으로 담아 벽에 붙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연필만 있으면 글을 쓰고 붓만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지만, 막상 글이랑 그림은 여느 자리 여느 삶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는지 모릅니다. 작은 손전화로도 사진을 찍어 언제라도 돌아볼 수 있는 오늘날, 외려 사진이야말로 여느 자리 여느 삶하고 가장 가까이 어깨동무한다 할 만합니다.

 

 사진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삶 이런저런 대목을 살피지 않습니다. 새로운 길로 사진을 열면서, 이 사진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영업 사진관’이 생겼어요. 글을 쓰며 돈벌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장사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글도 그림도 돈벌이하고 동떨어진 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영업 문학관’이나 ‘영업 미술관’이란 없어요. 오직 ‘사진찍기’만 대놓고 돈을 법니다.

 

 곰곰이 살피면, 글은 책이나 신문으로 묶으며 돈을 법니다. 그림은 작품으로 돈을 법니다. 글과 그림이라 해서 돈벌이를 안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진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돈을 버는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글을 쓰더라도 돈을 벌지 못하면 먹고살지 못해요. 그림을 그리더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그림그리기를 더는 하지 못해요. 돈이 없으면 연필과 종이를 장만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붓과 물감을 장만하지 못합니다. 돈이 있어야 사진기이든 필름이든 메모리카드이든 장만한다지만, 돈이 있지 않고서야 글도 그림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겨레 발자취와 삶을 돌아볼 때에, 여느 자리 여느 살림 여느 사람이 글이든 그림이든 즐거이 누리지 못한 까닭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한글이 있었어도 지배계급은 한문으로 살아가며 권력을 누렸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살림 여느 사람이 누구나 쉽게 글을 쓰도록 문을 열지 않았어요. 더욱이, 그림그리기는 여느 자리 여느 살림 여느 사람은 아예 건드리지 못하도록 꽁꽁 닫아 걸었습니다.

 

 사진을 처음 만든 사람은 돈을 버는 길을 찾으려 했다지만, 이 돈벌이는 누구한테나 열린 문이었습니다. 많든 적든 돈 얼마를 치르면 누구나 즐기거나 누릴 수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글이랑 그림은 돈을 얼마를 치르더라도 계급과 권력이라는 높직한 울타리를 세우고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꽁꽁 틀어막았습니다.

 

 오늘날 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글은 못 쓰겠더라’ 하고 말하거나 ‘나는 그림은 못 그리는걸’ 하고 말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꼭 계급과 권력 때문은 아니지만,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는 울타리가 좀 높기는 높습니다. ‘등단’이나 ‘출판’이나 ‘언론’이나 ‘대학교’라는 울타리가 참 많습니다. 사진 갈래라고 이런 울타리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만, 사진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사진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 누구라도 1회용 사진기이든 값진 사진기이든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진을 즐기거나 누리면서 마음껏 나눌 수 있어요.

 

 곧, 사진과 사진기라는 새 길을 처음 만든 사람은 어쨌든 ‘돈’이라는 테두리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이제, 사진을 누구나 마음껏 즐기는 이 자리에서는 저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기울이는가에 따라 새 삶을 이룰 만합니다. 어떠한 장비를 갖추더라도 내가 바라보는 삶을 내 눈길로 곱게 담을 수 있습니다. 애써 작품으로 꾸미거나 잔치마당을 마련해야 하지 않습니다. 따로 사진책을 안 묶어도 됩니다. 즐기는 삶처럼 즐기는 사진이면 넉넉합니다. 누리는 삶만큼 누리는 사진이면 흐뭇합니다.

 

 더 헤아릴 수 있으면, 글이랑 그림도 이와 같아요. 즐기는 삶대로 즐기는 글쓰기이면 돼요. 누리는 삶결을 살려 누리는 그림그리기로 나아가면 돼요.

 

 그리고, 연필이든 붓이든 사진기이든 없어도 홀가분합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내 글을 씁니다. 내 가슴속에 곱게 글을 씁니다. 내 사랑을 실어 내 가슴 깊이 그림을 그립니다. 내 꿈을 담아 내 가슴 한 자리에 사진을 찍어요. 살가운 내 살붙이들 이야기를 마음밭에 아로새깁니다. 고마운 내 이웃과 동무 이야기를 마음밭에 씨앗으로 심습니다. 나는 내 슬기를 빛내어 내 사진을 늘 새로 빚으며 누립니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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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푸른 솔아 - 박영근 시선집
백무산.김선우 엮음 / 강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봄부터 피어날 꽃들한테 한 마디
[시를 노래하는 시 13] 박영근, 《솔아 푸른 솔아》

 


- 책이름 : 솔아 푸른 솔아
- 글 : 박영근
- 펴낸곳 : 강 (2009.5.9.)
- 책값 : 7000원

 


 추운 겨울날 피어나는 겨울꽃이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는 가을에 피어나는 가을꽃이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환하게 피어나는 여름꽃이 있습니다. 따스한 바람과 함께 따스한 빛깔과 내음 베푸는 봄꽃이 있습니다.

 

 꽃은 봄부터 피어납니다. 봄부터 피어나는 꽃은 겨울까지 핍니다. 추운 한겨울 동안 꽃은 조용히 시들거나 잠잡니다. 이듬해 봄에 다시금 피어날 꿈을 꾸면서 추위를 견딥니다. 아니, 추위를 받아들인다고 해야겠지요.


..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일을 / 뉘우치는 시간들 속에서 /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 시라고 쓰고 싶다 ..  (서시)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동백꽃은 거의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내가 구경하지 못했을 뿐 어느 골목집 마당 한켠에 곱게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 한두 그루 있었으리라 봅니다. 전라남도 고흥이라든지 해남이라든지 강진이라든지 여수라면, 곳곳에 동백나무 흐드러지고 동백꽃 붉습니다. 경상남도 통영이나 진해에도 동백나무 동백꽃은 붉게 흐드러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천 골목동네를 두루 돌아다니며 능금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탱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감나무 수수꽃다리 들을 골고루 구경했습니다. 때로는 석류나무를 보고 살구나무를 봅니다. 때로는 포도나무를 보고 앵두나무를 봅니다. 한 집에 온갖 나무 골고루 심어 돌보지는 못합니다. 조그마한 마당에 몇 가지 나무를 곱게 키우고 우람하게 보살핍니다. 사람 손길 안 닿는 데에서 높디높게 자라난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무를 아끼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사람이 애써 심지 않아도 스스로 씨앗을 퍼뜨립니다. 미루나무이든 느티나무이든 멀리멀리 씨앗을 퍼뜨립니다. 이 가운데 어른나무로 튼튼히 뿌리내리는 씨앗은 몹시 드물지만, 이 골목 저 골목, 볕바르거나 그늘지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애씁니다.


.. 경님아, 밤기차 어둑한 창가에 기대어 / 서울 가던 날 / 손 한번 흔드시지 못하고 / 번지는 들판의 불빛들 속에서 어머니 / 손 한번 / 흔 드 시 지 못 하 고 ..  (서울 가는 길)


 어떤 분은 어린나무를 장만해서 심어 돌보았겠지요. 어떤 분은 씨앗을 알뜰히 건사해서 작은 새싹부터 보살폈겠지요. 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 남짓 골목이웃하고 살아온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 동안 꽃을 피운 나무를 마주합니다.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도록 살아온 나무가 맺는 열매를 고마이 나누어 먹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꽃을 피우기까지 적지 않은 해를 보냅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열매를 얻기까지 꽤 긴 해를 보냅니다. 퍽 많은 사람들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키가 작은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곤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은 꽃과 잎을 모두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어떤 나무인가 알아차리지 못하곤 합니다. 아마,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겠지요. 다들 바쁘니까, 모두들 다른 데에 눈길을 두어야 하니까,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와 함초롬한 작은 새눈을 들여다보지 못하겠지요.


.. 그곳엔 비 내리는 판문점의 닳고 닳은 비애도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고지에 오르는 / 지겨운 전쟁도 없지 ..  (천지를 생각하며)


 자동차 끝없이 오가는 찻길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나 방울나무는 해마다 가지가 잘립니다. 찻길 가장자리에서 배기가스 듬뿍 마시며 맑은 숨을 내뿜도록 들볶이는 나무는 얼마 살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들 가녀린 길가 나무들, 곧 ‘길나무’들은 사람보다 오래 삽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보다, 길나무 목숨이 훨씬 깁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돈을 벌다가 도시에서 죽는 사람은 으레 병원 문턱을 드나듭니다. 찻길에서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배기가스를 들이마시고 햇볕 한 조각 제대로 받기 힘들며 전깃줄에 등불에 밤낮으로 시달리는 길나무이지만, 이들 길나무는 병원 문턱을 밟지 않습니다. 이들 길나무 가운데 병원에 드나들어야 할 녀석이 있다면 곧장 목이 잘릴 테니까요. 막바로 뿌리가 뽑히고 새 나무로 바뀔 테니까요. 도시에서는 나무이든 사람이든 목숨이든 흙이든 꽃이든 온통 돈으로만 재거나 따집니다.

 

 나무가 슬픕니다. 사람이 슬픕니다. 땅이 슬픕니다. 하늘이, 해가, 구름이, 바람이, 물이, 꽃이, 풀이, 모두모두 슬픕니다. 멧새가 다리쉼을 할 만큼 느긋한 나무를 찾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멧새 한 마리 한갓지게 둥지를 틀기 어렵다면, 착한 사람 하나 몸을 눕혀 쉴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셈이리라 생각합니다. 들짐승 한 마리 곱게 깃들며 삶터를 얻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들짐승 한 마리 조그마한 굴조차 팔 수 없다면, 고운 사람 하나 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펼 쉼터 하나 얻기 어려운 셈이리라 생각합니다.

 

 자동차 대는 자리는 그렇게 많은데요. 돈을 내고 자동차를 대든, 돈을 안 내고 자동차를 대든, 도시에서는 어디에나 자동차를 대는걸요. 자동차는 그렇게 많고, 자동차 다닐 길은 그렇게 넓으며, 자동차 둘 자리는 그렇게 넓은데, 어이하여 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뿌리를 뻗을 땅뙈기란 없을까요. 사람 하나 보금자리 예쁘게 꾸며 나무와 풀과 꽃을 즐거이 누릴 땅뙈기란 없을까요. 물줄기 햇살 받으며 시원하게 흐를 땅뙈기란 없을까요.


.. 몇 번인가 이사를 할 때마다 / 그 비좁은 골목길은 리어카 한 대의 이사 보따리에도 땀을 흘렸다 ..  (그 방)


 눈이 내립니다. 겨울눈은 겨울을 살아내는 나무마다 소복하게 쌓입니다. 하얗게 쌓이던 눈은 햇살이 들면서 스르르 녹습니다. 스르르 녹은 물은 나뭇줄기를 타고 흙으로 흘러내립니다. 흙으로 흘러내린 물은 흙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이윽고 봄입니다. 언땅이 녹고 겨울눈이 껍질을 벗는 봄입니다. 뭇새들 홀가분하게 지저귀는 봄입니다. 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 알을 까고 볼볼 기어나옵니다. 볼볼 기어나오던 벌레들은 새들한테 먹이가 됩니다. 새들은 재재거리는 소리로 흙일꾼 새벽을 깨웁니다. 흙일꾼은 쟁기와 호미로 밭을 갈아엎습니다. 밭자락에는 새로운 씨앗이 깃들고, 새 씨앗을 품은 흙은 새 목숨을 보듬습니다. 새 목숨은 너른 사랑을 받으며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너른 사랑 받으며 흙 위로 고개를 내민 새싹은 따사로운 햇살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 닫힌 철문 앞에서 / 원직 복직을 외치는 그의 쉰 목소리를 / 희망이라도 불러도 좋은 것일까 ..  (희망에 대하여)


 봄빛이 환합니다. 봄빛은 누런 들판을 푸른 들판으로 천천히 바꾸면서 환한 기운 나눕니다. 봄내음이 그윽합니다. 봄내음은 온누리에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며 풀먹는 짐승이랑 사람을 살찌웁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노래꾼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춤꾼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은 사랑꾼입니다.

 

 노래를 실어나르는 봄꽃은 노랗게 물듭니다. 춤을 실어나르는 봄꽃은 발그스름하게 물듭니다. 사랑을 실어나르는 꽃은 하얗게 물듭니다.

 

 봄부터 할미꽃과 진달래뿐 아니라 수유와 살구와 수수꽃다리가, 또 원추리와 감자와 당근이, 또 숱한 들꽃과 풀꽃이 들판을 잔치판으로 이룹니다. 나는 내가 이름을 아는 꽃은 이름을 아는 대로 참 곱구나 하고 쓰다듬습니다. 나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꽃은 이름을 모르는 대로 참 예쁘구나 하고 어루만집니다. 패랭이꽃이든 해바라기꽃이든, 모두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애틋한 느낌을 살려 붙인 이름이겠지요. 봄까치이든 민들레이든 마을과 고을마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맑은 넋을 살려 붙인 이름일 테지요.


.. 내 안에도 / 나도 몰래 / 나를 키우고 / 나를 살리는 것 있다는데 ..  (눈물)


 봄에는 봄꽃이 노래를 부르며 시가 하나둘 태어납니다. 봄에는 봄꽃이 춤을 추며 싯말이 하나들 퍼집니다. 봄에는 봄꽃이 사랑을 나누며 싯꿈과 싯무지개가 온누리를 빛냅니다.

 

 박영근 님 시집 《솔아 푸른 솔아》(강,2009)를 읽습니다. 푸른 솔을 노래하는 삶을 보낸 박영근 님 넋을 돌이키며 시집 여섯 권을 한 권으로 간추린 자그마한 시집을 읽습니다. 박영근 님이 쓴 시를 바탕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 한 가락 태어났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는 모릅니다. 그저 시를 읽습니다. “푸른 솔”을 노래한 넋은 어떤 결이었을까 하고 헤아리며 시를 읽습니다.

 

 스스로를 살리고 동무를 살리며 온누리를 살리고프던 꿈을 시 한 자락으로 읽습니다.


.. 전철도 끊긴 동암역 근처 / 눈 쌓인 골목 미루나무 가지 끝 // 빈 새둥지 속에 / 뜨거운 별빛 한줄기 떨어진다 // 오랜 기다림도 그친 곳에 / 눈은 내려 쌓이리 ..  (동암역 근처)


 1958년에 태어나 2006년에 숨을 거둔 박영근 님은 쉰 해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쉰 해를 넘기지 못한 삶이란, 딱 마흔여덟아홉에서 멈춘 삶이란, 쉰을 코앞에 두고 스러진 삶이란, 어떤 사랑이 담긴 이야기일까요. 쉰을 코앞에 두고 스러져야 했을 때에, 박영근 님은 당신 나이를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요.

 

 박영근 님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몇 살까지 삶을 누렸을까요.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일찍 흙으로 돌아간 삶이었을까요,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조금 더 길게 누리다가 흙으로 돌아간 삶이었을까요.


..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 홑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  (길)


 내 무릎에 안긴 채 잠든 아이를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몇 해쯤 더 아버지 무릎에 안긴 채 잠들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우리 아이는 열다섯 살이 되거나 스물다섯 살이 되어도 아버지 무릎에 안긴 채 잠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 둘 아버지인 나는 앞으로 몇 살까지 아이들을 무릎에 안으며 무릎과 발목이 뻣뻣하게 저려도 싱긋 웃으면서 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하루는 언제나 꽃밭입니다. 아이한테서 꽃내음을 맡고, 나한테서 꽃내음을 맡습니다. 아이한테서 꽃빛을 느끼고, 나한테서 꽃빛을 느낍니다. 서로서로 꽃과 같은 결과 무늬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포근하며 촉촉한 꽃잎처럼, 곱고 보드라운 꽃잎처럼, 향긋하고 어여쁜 꽃잎처럼, 환하고 맑은 꽃잎처럼, 하루하루 좋게 누리고 싶다고 꿈을 꿉니다.

 

 그리고, 박영근 님 시집에 나오는 〈꽃들〉을 읽습니다. “공장 담벼락을 타고 올라 / 녹슨 철조망에 / 모가지를 드리우고 망울을 터뜨리다 / 담장 넘어 비로소 피어나는 꽃들, / 흐르는 바람에 / 햇살 속에(꽃들)” 하고 노래하는 〈꽃들〉을 읽습니다.

 

 참말 박영근 님 시에는 꽃이 자주 나옵니다. “카티자, 세상에 꽃이라니, 도대체 무슨 꽃들이 / 저렇게 빨갛고 노란 것일까 / 기억 속의 꽃들이 한꺼번에 말을 잃고 / 병원 계단을 오른다(임시 묘지의 시)” 하고 외치면서도, 참말 꽃이 자주 나옵니다. 웬 꽃이냐며 혀를 차지만, 어인 꽃이냐고 울부짖지만, 그래도 꽃을 말합니다. 꽃을 바라보고 꽃을 느끼며 꽃을 어루만집니다.


.. 계절이 골목길 건너 백목련의 꽃망울과 은행나무 가지 위에서 바뀔 무렵이면 / 그 집엔 밀린 빨래들이 그 작은 마당과 / 녹슨 창틀과 흐린 처마와 담벽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 햇살에 취해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  (이사)


 밀린 빨래도 작은 마당 꽃망울 내음을 받아들입니다. 안 밀리고 그날그날 즐기는 빨래도 작은 마당 꽃망울 내음을 받아먹습니다.

 

 빨래는 꽃내음을 먹으며 더 보송보송하게 마릅니다. 꽃내음 깃든 옷을 입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 넋은 꽃넋으로 거듭납니다. 꽃내음 깃든 옷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 이마에서 꽃방울 같은 땀방울이 떨어집니다.

 

 이제 봄이고, 이제부터 봄꽃이 피어납니다. 흙으로 돌아간 박영근 님은 좋은 거름이 되어 봄꽃이 흐드러지도록 돕는 작은 흙알갱이로 살아가겠지요.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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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기계 들이면
아침 낮 저녁
쉴새없이 빨래하던 내 손
느긋하게 쉰다.
하얗게 트거나
쩍쩍 갈라지는 일
줄어들겠지.

 

틀림없이
빨래 일거리 줄면서
집살림 더 살가이
보듬는 길 찾을 만하다.
나날이 무럭무럭 크는
두 아이 곱게 배울
좋은 살림빛 돌볼 짬 낸다.

 

저녁나절
아이들 씻긴 물로
기저귀랑 옷가지랑
빨래하며 생각한다.
기저귀며 옷가지며
손빨래하는 아버지
오늘날 얼마나 될까.

 

아니,
빨래는 안 해도 돼.
아이들 씻기고 입히며 먹이는
집안일 즐거이 웃으며 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까.
너무 바쁜 아버지들 아닌가.
너무 밖에서 노는 아버지들 아닌가.

 

아이들 씻기고 남은 물
언제나 너무 아까운 나머지
아이들 옷가지 빨래하는 데 쓴다.
빨래기계한테는
이불이랑 두꺼운 겉옷 맡기고
가벼운 옷가지랑 기저귀
이 물로 손빨래하면 될 테지.

 

씻은 물은
빨래하는 물이 된다.
빨래하는 물은
옷부터 빨고 걸레를 빨며
이 물은 다시
바닥을 닦는 데 쓴다.
물 한 방울 고맙다.

 

물잔에 따라 마시면서
밥을 안치면서
국을 끓이면서
낯을 씻으면서
이를 닦으면서
어디에서 흘러
어디로 가는가 생각한다.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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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복소복 흰눈 책읽기

 


 날이 흐리지만 빨래를 내다 널었다. 옆지기가 문득 묻는다. 하늘에서 하얀 게 떨어지는데 그냥 두느냐고. 아직은 그냥 두자고 말한다. 아침을 먹고 바깥을 살피니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이내 펑펑 쏟아진다. 첫째 아이는 좋아라 하며 신을 꿰고는 마당을 누빈다. 둘째 아이는 볼볼 기어 유리문에 기대어, 나도 나가서 놀고 싶은데, 하는 눈빛이다. 아버지는 눈 맞는 빨래를 걷느라 부산하다.

 

 기저귀 빨래는 그럭저럭 말랐기에 방에 잘 널면 금세 보송보송해지며 개도 될 만하리라 느낀다. 다른 빨래는 집안에 들여 좀 오래 말려야 한다고 느낀다.

 

 눈이 오는 날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펄쩍펄쩍 뛰며 놀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눈이 오는걸. 그러면 비가 오는 날은? 그래, 비가 오는 날도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며 놀아야겠지. 옷이 젖든 몸이 젖든 어찌 되든 실컷 놀아야지. 실컷 노는 동안 어버이는 집에서 물을 따숩게 덥혀 놓고 기다려야지.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젖은 옷을 벗기고 몸을 씻긴 뒤에 새 옷을 입혀야지.

 

 눈은 손으로 만지고 혀로 낼름 받아먹고 얼굴로 받으며 살갗으로 찌르르 차갑게 울리는 느낌을 찬찬히 아로새겨야 비로소 눈이 되리라 생각한다. 눈을 느끼지 못하고서는 눈 덮인 마을 담은 그림책을 읽거나 눈 오는 날 노는 이야기 실은 소설책을 읽는들 아무런 웃음도 눈물도 샘솟지 못하리라.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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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치마와 동백나무

 


 여름치마를 겨울에 입은 아이가 눈을 맞는다. 속에 옷을 따숩게 입었으니 여름치마를 걸친들 무엇이 대수랴. 아이는 이대로 잘 뛰어놀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 이야기를 겨울날 따순 방바닥에 이불 뒤집어쓰고 엎드려 읽기도 한다. 겨울 이야기를 무더운 여름날 부채질하며 나무 그늘에서 읽기도 한다.

 

 여름치마를 입은 시골마을 겨울아이가 동백나무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는다. 눈이 내리니 눈을 안 맞겠다며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래, 동백나무 가지 안쪽은 어떻디.

 

 동백나무 자라고 동백꽃 피는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눈이 올 적마다 땅에 닿기 무섭게 녹는다. 아이 머리카락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되든 밭뙈기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되든 지붕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되든, 이내 사르르 녹는다.

 

 따스한 겨울 따스한 마음으로 따스한 하루를 누린다.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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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2-22 16:00   좋아요 0 | URL
동백나무 우산을 썼네요.^^
고흥에도 눈이 금방 녹나봐요.
전 경상도에만 눈이 녹는줄 알았어요.

파란놀 2012-02-23 08:12   좋아요 0 | URL
날이 워낙 폭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