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은 하나
[말사랑·글꽃·삶빛 2] ‘팩트’와 강용석

 


 나는 강용석이라는 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분이 어떠한 일을 하며 살았고, 어떠한 생각을 펼친다거나, 앞으로 어찌 지낼는가를 살피지 않으며, 딱히 알고 싶은 대목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나로서는, 또 우리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까지도, 이분 넋이나 얼이 조금도 스며들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2012년 첫머리를 뜨겁게 달구는 사람으로 이름 석 자를 올리는 강용석 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2013년에도 이렇게 뜨겁게 달구는 이름 석 자가 될까요. 2022년에는 어떠할까요. 2032년이나 2202년에는 어떠할까요. 앞으로 2412년이나 2712년에는 또 어떠할는지요.


 ‘팩트’ 한방에 화성으로 날아간 강용석 (한겨레 2012.2.25.)


 누리편지를 열어 보려고 셈틀을 켜던 며칠 앞서, ‘팩트’라는 낱말을 큼직한 사진 밑에 작은따옴표까지 달아서 띄운 글 첫 줄을 보았습니다. 보려고 해서 보지는 않았으나, 한국말로 곱게 이름을 붙인 신문에서 띄운 머릿기사에 적은 낱말이 ‘팩트’였기 때문인지, 이 대목이 갑자기 내 눈에 뜨였구나 싶습니다.

 

 왜 ‘팩트’일까 문득 궁금했으나, 궁금하기보다는 슬펐습니다. 아니, 슬프다고 할 수도 없어요. 껍데기는 한글이면서 알맹이는 한국말 아닌 낱말과 말투가 얼마나 넘치는데요. 어설피 뭇칼질을 하며 깎아내리는 한겨레 말글이 얼마나 많은데요. 슬프게 스러지고 아프게 사라지는 한겨레 말글은 얼마나 많은가요.

 

 참말, ‘참말’이 죽습니다. 참으로, ‘참’이 숨을 거둡니다.

 

 거짓말이 날뜁니다. 거짓이 춤춥니다.

 

 참말은 노래하지 못하고, 거짓말이 노래합니다. 참이 살아나지 못하고 거짓이 들뜹니다.

 

 참사랑으로 참삶을 일구어 참넋을 아끼는 참뜻으로 빚는 참말을 보살필 줄 아는 참사람을 이 나라에서 찾아보는 일이란 부질없는 꿈일 수 있습니다. 아니, 둘레에서 참말을 참사랑으로 아끼는 참사람을 찾지 말고, 나 스스로 조용히 살아가며 내 살붙이들이랑 참말로 참사랑을 나누면 넉넉하겠지요. 먼발치에서 찾을 참말이 아닌 내 삶에서 스스로 누리는 참말이면 흐뭇하겠지요.


 ‘참말’ 한 마디에 입을 다문 아무개
 ‘참말’ 한 마디에 할 말 없는 아무개
 ‘참말’ 한 마디에 ‘거짓말’ 들통난 아무개


 부디 거짓스러운 껍데기 스스로 거둬들여, 좋으며 참다운 삶을 착하게 누리는 이웃이요 동무라면 좋겠습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서로서로 참다운 이야기를 참다이 빛나는 말글로 꽃피우는 하루라면 좋겠습니다. (4345.2.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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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7 10:59   좋아요 0 | URL
너무 좋은 글입니다.
구절구절이 다 와닿습니다. 저는 YTN 뉴스에서
날씨 안내하기 전 화면에 '웨더' 라고 나오는 이 부분이, 볼 때마다 거슬려 미치겠습니다.

파란놀 2012-02-27 19:37   좋아요 0 | URL
아, 그러기도 하나요?
웨더라...
좀 많이 지나치네요 에궁...

페크pek0501 2012-02-27 12:22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어제 티브이를 보니 리액션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거슬렸어요. 꼭 그런 말을 써야 하나, 싶어요. ㅋㅋ

파란놀 2012-02-27 19:37   좋아요 0 | URL
리액션은
일본만화 때문에
크게 물들었구나 싶어요.
아니, 일본 연예방송에서도
이런 말은 자주 나오겠지요...
 
Leni Reifenstahl: Africa (Hardcover)
Angelika Taschen 지음 / TASCHEN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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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사진을 39장 붙입니다. 좀 많이 붙이니 저도 힘들고 그렇지만, 레니 리펜슈탈 사진삶을 하나도 모르며 엉터리로 편견만 품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무튼, 읽는 사람 마음입니다.

 

 

 

 

 

 

 

 

 

 


 하루하루 사랑하며 찍는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0]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Africa》(Taschen,2010)

 


 2월은 어느덧 막바지입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아침 낮 저녁으로 바깥 날씨를 살핍니다. 1월과 견주어 2월은 저녁 다섯 시 사십 분까지 먼 멧등성이 위쪽으로 해가 걸립니다. 1월에는 네 시에서 다섯 시로 접어들라치면 해가 넘어가곤 했어요. 동짓날과 가까운 12월에는 네 시 즈음만 되어도 벌써 어둑어둑하다고 느꼈고요. 곧 3월이 되면 저녁 여섯 시 무렵까지 아직 멧자락에 해가 걸릴 테고, 4월로 접어들면 여섯 시 반 즈음까지도 햇살이 따숩게 내리쬐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늘 손으로 빨래합니다. 두 아이와 옆지기와 내가 입는 옷가지를 모두 내 손으로 날마다 여러 차례 빨래합니다. 빨래기계를 쓰지 않으니 언제나 내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내 몸이 하루라도 아프면 큰일입니다. 빨래뿐 아니라 온갖 집일을 제대로 건사하자면, 집일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살아가자면, 또 옆지기하고 살가이 삶꽃을 피우자면 내 몸부터 튼튼해야 해요. 내 몸이 튼튼하지 않고서야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요. 내 몸부터 튼튼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꿈은 곱게 이루지 못해요.

 

 아직 2월이기에 저녁 다섯 시 반에는 빨래를 걷어야 합니다. 이때까지 저녁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았어도 걷어서 방으로 들여야 합니다. 다섯 시 반을 넘을 때까지 바깥에 둔 2월 저녁 빨래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리거든요. 고작 몇 분 넘겼다 하더라도 옷가지마다 찬 기운이 빠질 때까지 잘 펼쳐 더 말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개면 이 옷을 입을 식구들이 즐거울 수 없으리라 느껴요.

 

 

 

 

 

 

 

 

 

 

 

 밥 한 그릇마다 사랑을 담습니다. 옷 한 벌마다 사랑을 싣습니다. 말 한 마디마다 사랑을 들입니다. 이부자리를 깔 때에도 사랑을 담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씻길 때에도 사랑을 싣기 마련입니다.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치울 때에도 사랑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내 삶은 어디에서나 온통 사랑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랑입니다. 언제나 결이 고운 사랑이기를 꿈꾸고, 늘 빛깔이 어여쁜 사랑이기를 바랍니다. 내 좋은 삶을 사랑으로 누리면서 내 손에 쥐는 사진기로는 아름답다 느낄 사랑 이야기를 엮고 싶습니다.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님이 1960∼70년대에 아프리카땅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삶을 담은 사진책 《Africa》(Taschen,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때때로 까망하양 빛깔로 담은 사진이 있으나, 1960년대에 담은 사진이면서 거의 모두 무지개 빛깔 사진입니다. 2002년에 처음 나왔다가 2010년에 레니 리펜슈탈 한삶 발자취를 다시 갈무리해서 새로 펴낸 책입니다만, 책 간기로만 헤아리면 마치 2010년을 앞두고 찍은 사진이라고 여겨도 될 만큼 무척 곱고 빛나는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2010년에 새로 나온 《Africa》는 틀림없이 1960년대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자그마치 쉰 해를 먹은 사진입니다.

 

 

 

 

 

 

 

 

 

 

 

 1902년에 태어나 2003년에 숨을 거둔 레니 리펜슈탈 님은 백두 해를 살았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장비를 갖추어 바닷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고, ‘푸른평화(그린피스)’ 회원이 되어 지구별을 푸르게 지키는 일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레니 리펜슈탈 님 삶을 놓고 1930년대에 〈올림피아〉라는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와 〈의지의 승리〉라는 나치 전당대회 기록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만 하지만, 레니 리펜슈탈 님은 나치 독일에서 영화밭 사람들이 ‘부역을 하지 않고 독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거나 ‘미국으로 조용히 건너가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금지된 열정》(오드리 설킬드 씀,마티 펴냄,2006)이라는 두툼한 책에 잘 나옵니다. 어쩌면, 레니 리펜슈탈 님 스스로 1930∼40년대에 독일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며 영화를 찍었느냐 하는 대목을 제대로 똑부러지게 밝히지 못했기에 이모저모 말밥이 있다 할 테지만, 곰곰이 살피면 적잖은 비평가들이 ‘넌 반성문 안 썼으니까 안 봐주겠어’ 하고 으르렁거리지는 않느냐 싶습니다. 이리하여, 레니 리펜슈탈 님은 영화감독이라는 일을 1945년 뒤로는 더는 하지 못합니다. 영화마을에서는 당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거든요.

 

 레니 리펜슈탈 님 사진책을 넘길 때마다 당신은 백 해가 넘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냈나 싶어 궁금하곤 합니다.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애먼 손가락질을 할 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할 터이나, 당신한테서 도움과 사랑을 받아 나치 독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1945년부터 갑작스레 달라져 등돌리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괴롭힐 때에 어떻게 살아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레니 리펜슈탈 님은 누구보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했기에 모든 구비구비 가시밭길을 헤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발레하는 삶을 꿈꾸었으나 발목을 다쳐 발레꾼이 되지 못했기에 영화배우가 되었고, 영화배우로 뛰며 맨발로 얼음산을 타고 북극 얼음땅을 누비기까지 하며 영화감독을 꿈꾸더니 그예 영화감독까지 된 레니 리펜슈탈 님입니다. 영화마을에 발을 들일 수 없이 지내야 했으나 사진기와 촬영기를 들고 맨몸으로 아프리카 누바겨레 삶을 담았습니다. 예순을 넘고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오늘날처럼 작은 촬영기’가 아니라 ‘무겁고 커다란 촬영기’를 오른어깨에 걸치고 아프리카 누바겨레 기록영화를 찍었어요. 여든과 아흔에는 바닷속 아름다운 누리를 찍고요. 그러고 보면, 레니 리펜슈탈 님이 찍은 〈의지의 승리〉는 나치 독일 전당대회가 ‘굳센 뜻으로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여자’ 영화감독이 나치 독일에서도 씩씩하게 영화를 찍는 ‘굳센 뜻이 이기는’ 이야기일 수 있으리라 싶습니다. 당신은 예술을 이루었고, 당신이 이룬 예술이 남았기 때문에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까지 1930∼40년대 나치 독일이 ‘사람들을 어떻게 홀리거나 군국주의로 다스렸는가’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어요. 1934년 나치 전당대회 기록영화가 없었다면 ‘언론을 거머쥐어 사람들 눈과 귀를 다스리는’ 일이 어떠했는가를 알 길이 없었을 뿐더러,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로 그린 기록영화는 없으니 ‘왜 여느 독일 사람들이 나치한테 그토록 눈물콧물 다 바쳤는가’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아요.

 

 나는 늘 집안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집안일이란 날마다 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집안에서 살아가자면 언제나 집안을 이모저모 손질하고 다스려야 하거든요. 아침에 방을 쓸고닦았대서 이제부터 방을 안 쓸고닦아도 되지 않아요. 아침에 밥 한 그릇 배불리 먹었으니 며칠 동안 굶어도 되지 않아요. 아침에 쓸고닦은 방이라 하더라도 낮이나 저녁에 또 쓸고닦아야 합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씻겼어도 저녁에 또 씻겨야 하곤 합니다. 아침에 밥을 했으면 낮이나 저녁에도 밥을 해야 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에요. 일이란 끝이 없으나 삶부터 끝이 없습니다. 날마다 할 일이 쌓이지만, 날마다 나눌 사랑이 가득합니다. 곧, 날마다 마음을 기울일 일이 많은 만큼, 날마다 생각할 꿈이 많고, 날마다 사랑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고되다 싶은 삶이라면 고되는 대로 생각하며 사랑할 삶입니다. 즐겁다 싶은 삶이라면 즐거운 대로 생각하며 사랑할 삶이에요.

 

 레니 리펜슈탈 님 사진책 《Africa》는 구비구비 흐르는 삶이 있었기에 태어납니다. 맨 처음, 발목 다친 발레꾼 레니 리펜슈탈 적부터 사진책 《Africa》가 태어났습니다. 영화배우가 되어 몇 천 미터 높은 멧자락을 맨몸으로 오르내리던 때에 사진책 《Africa》가 태어났어요. 나치 전당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영화로 담으며 사진책 《Africa》가 태어난 셈입니다. 영화마을에 발을 붙일 수 없던 슬프며 외로운 나날 사진책 《Africa》가 태어났다 할 만합니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이었으니 아프리카땅을 밟으며 누바겨레를 만났을 때에도 이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 사진기를 누르고 촬영기를 돌립니다. 돈으로 사고파는 삶이 아닌 사랑으로 누리는 삶일 수 있기에 누바겨레 온삶을 맨살 그대로 담아내어 두고두고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누바겨레는 1960∼70년대 기록사진과 기록영화에 남은 모습대로 살아가지 않는다지만, 누바겨레 뒷사람이건 오늘날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건, 이 두툼한 400쪽짜리 사진책 《Africa》를 넘기면 1960∼70년대 모습이 마치 오늘 모습인 듯 살아납니다. 아니 이 사진책에 남은 누바겨레 모습은 1960∼70년대 모습이 아니라 1800년대, 1500년대, 1000년대 모습 그대로라 할 수 있어요. 흙으로 집을 짓고, 흙을 일구어 살아가며, 햇살 따사로운 누리에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즐거이 얼크러지는 예쁜 나날을 기쁘게 누린 삶자락이란 오래오래 이어온 꿈이자 사랑입니다. 아름답게 누린 삶이 사랑으로 빛납니다.

 

 나는 나대로 내 보금자리에서 살붙이들과 부대끼는 나날이 아름답게 누리는 사랑어린 삶입니다. 이 삶을 사랑하기에 날마다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날마다 빨래를 할 수 있으며, 날마다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4345.2.27.달.ㅎㄲㅅㄱ)

 

 

 

 

 

 

 

 

 

 

 

 

 

 

 

 

 

 

 

 

 

 

 

 

 

 

 

 

 

 

 

 

 

 

사진은 사진대로 곧게 잘 살펴야 마음을 살찌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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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39장이나 올라가는군요!
참 좋은 사진들이고 글들입니다. 저렇게 하나에 헌신하고 정열을 키우는 분들은,
언제봐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름답네요....

파란놀 2012-02-27 19:36   좋아요 0 | URL
사진을 하나씩 올려야 한다는 알라딘... -_-;;;
언제쯤 나아질까요. 에궁...

이 사진책은 5만 원이었나 해요.
값이 되게 싸요.
특가 판이라고 하는데,
아프리카 삶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에요.
 
Leni Reifenstahl: Africa (Hardcover)
Angelika Taschen 지음 / TASCHEN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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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에 써서 <포토넷>이라는 잡지에 실었는데, 알라딘서재에는 안 걸쳤더군요. -_-;;;; 왜 그랬을까 모르겠으나, 아무튼, 안 걸친 탓에, 레니 리펜슈탈을 그야말로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료 한 가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레니 리펜슈탈 다른 사진책 하나 느낌글을 올리기 앞서, 이 글부터 올립니다.

 

<아프리카> 사진책은 이 글 다음에 새로운 글로 붙입니다. <아프리카>만 검색에 뜨고 <카우 사람들> 사진책은 안 뜨거든요.

 

 

 

 


 살아가는 마음과 사진찍는 마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The People of Kau》(Collins St James's Place,1976)

 

 

 밤 열두 시 가까이에 겨우 잠든 아이가 새벽 네 시 오십 분에 깹니다. 오줌을 누었군요. 기저귀를 갈아 준 다음 재우려는데, 여러 날 일이 밀린 아빠가 셈틀을 켜니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자꾸 칭얼대더니 그예 아빠 무릎으로 달려와 폭 앉습니다. 아마, 아이도 아빠와 함께 새벽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놀고 싶은 듯합니다. 아이는 아빠 품에 안긴 채 아주 조용하고 다소곳하게, 아빠가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모습을 말똥말똥 바라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글을 쓰는 일이란 ‘누가 옆에서 글쓰기를 지켜보는 셈’이라 멋쩍고 쑥스럽습니다. 아이가 아직 글이며 말이며 모르는 열아홉 달짜리라 하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채로 글을 쓰기는 힘듭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눈길이 있음을 느끼면, 허튼 글을 어수룩하게 쓸 수 없습니다. 아니, 누군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글이란 허투루 어수룩하게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내 모든 알맹이를 담아내고, 내 모든 고갱이를 깃들이며, 내 모든 빛나는 삶줄기를 쏟아내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매한가지입니다. 언제나 모든 땀을 들이고, 노상 갖은 힘을 바치며, 늘 마지막 손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엮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독일사람은 백둘이라는 숫자를 찍을 때까지 삶을 꾸렸습니다. 이이를 놓고 갖가지 말밥이 있음은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마티,2006)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누리에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한 사람을 갉아먹거나 깎아내리는 이야기만 넘치고,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예술쟁이’가 어떤 사랑과 믿음으로 영화와 사진과 환경운동에 몸과 마음을 내놓았는가를 읽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때로 시인 서정주와 예술쟁이 레니 리펜슈탈을 견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만, 두 사람은 맞댈 만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릇이 다르고, 걸은 길이 다르며, 받은 대접이 다른데다가, 아픔과 생채기를 씻어내며 새삶을 여는 매무새가 다릅니다. 나치 기록영화를 찍은 탓에 죽는 날까지 멍에를 지고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은 숱한 손가락질을 받고 영화필름과 재산과 피붙이까지 빼앗겼으나, 이 모든 아픔을 겪으면서도 세상과 등지지 않습니다. 외려 더 다부지게 세상과 맞서면서 다시금 영화를 찍으려는 꿈을 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마을 사람들은 레니 리펜슈탈이 영화마을에 다시 못 돌아오도록 문을 닫습니다. 아주 굳세게 닫아 겁니다. 꿈이자 빛을 잃은 레니 리펜슈탈이지만, 이녁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촬영기가 아닌 사진기를 집어듭니다. 촬영기에 넋을 들일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을 사진기를 쥐어들면서 기쁨과 웃음으로 삭여냅니다. 일흔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긴 때에 내놓은 《The People of Kau》를 보면, 이녁이 사진이라는 눈길로 이루어낸 애틋함과 뜨거움에는 고운 꿈이 맑은 빛으로 서리며 담기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런데, 영화마을로 돌아가지 못한 레니 리펜슈탈은 사진마을에서도 비아냥을 듣고 해코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바족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높이 기리고 손뼉을 쳤으나, 레니 리펜슈탈이 누바족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파시즘 냄새가 난다고 깎아내립니다. 사진을 사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외눈박이 정치빛으로 재고 맙니다.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볼 노릇인데. 껍데기를 벗고 알맹이를 감쌀 노릇인데. 껍데기를 걷어차고 알맹이를 사랑할 노릇인데. 그리고, 참사랑을 할 노릇인데. 거짓사랑 아닌 참사랑과 참삶을 아껴야 할 텐데.

 

 사진찍기에는 바른길이 없습니다. 그저,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넋과 얼을 고이 실으면서 사랑을 나눌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에는 바른길이 있습니다. 다만,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뜻과 빛을 굳은살 박힌 손끝으로 곱게 다스리면서 즐거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걷는 우리 한길을 얼마나 곱거나 맑거나 즐거운 길로 가꾸면서 우리 삶을 알차고 튼튼하게 돌보는가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일구는 우리 살림살이를 얼마나 싱그럽거나 따뜻하거나 고마운 길로 여미면서 우리 터전을 힘차고 넉넉하게 북돋우고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레니 리펜슈탈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바닷속 탐사를 즐기고, 바닷속 사진을 찍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에는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고 숱한 사람한테 일을 시켜야 하나, 사진을 찍을 때에는 홀로 사진기 하나만 쥔 채로 당신 꿈과 넋과 삶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이녁은 푸른평화(그린피스) 회원이 되고, ‘사람들 손에 망가지는 자연 터전’을 지키는 일에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

 

 《The People of Kau》를 덮은 뒤 한숨을 돌리고 싶지만 집일은 가득 쌓입니다. 어제 하루 몸이 고단하여 미뤄 둔 빨래를 합니다. 아이는 손빨래하는 아빠 곁에서 내도록 물놀이를 합니다. 빨래 한 대야를 하고 나서 쌀을 씻어 밥을 안쳐 놓습니다. 빨래를 다 마치고 나서 아이를 씻깁니다. 아이한테 새 옷을 입힌 다음 새로 지은 밥을 먹입니다. 국수를 삶아 세 식구 함께 먹을 낮밥을 마련합니다. 낮잠 잘 낌새가 보이지 않는 아이는 이 방 저 방 뛰어다니고, 무언가를 어디에선가 끄집어서 들고 다닙니다. 예술은 길고 삶 또한 기나깁니다. 하루는 길지만, 이 긴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가며, 칭얼쟁이 아이는 어느새 어여쁜 어른으로 자라겠지요. (4343.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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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만 권

 


 올 일월에 새로 내놓은 책이 올 한 해 십오만 권쯤 팔려 우리 식구들 넉넉히 밟을 흙땅을 장만하고 책을 마음껏 들여놓을 폐교를 사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꾸었더니, 옆지기가 십오만 권 아닌 백만 권을 꿈꾸어야지요, 하고 말한다. 좋은 삶 이루고픈 좋은 꿈이라면 백만 권이 맞다. 옆지기한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백만 권을 꿈꾸기로 한다. 고마운 이웃한테 책을 부치는 김에 ‘이 책이 널리 사랑받아 백만 권 팔릴 수 있기를 꿈꾼다.’고 적어 본다. 꿈을 이루는 좋은 삶을 착하게 누리자. (4345.2.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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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곳에서
태어나는

 

빛깔

곱다는데

 

햇빛 못 받더라도
햇볕 따숩게 쬐며
햇살 기쁘게 꿈꾸니까.

 


4345.2.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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