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순례
서문당 편집부 엮음 / 서문당 / 1988년 6월
평점 :
절판



 사진을 살리는 길, 사진을 빛내는 사랑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5] 임석제, 《韓國의 美, 古寺巡禮》(서문당,1988)

 


 1918년에 태어나 1994년에 숨을 거둔 임석제 님은 한국 ‘현대 리얼리즘 사진’을 일군 분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임석제 님 사진작품을 찾아보기란 아주 힘듭니다. 1940∼50년대에 찍었다고 하는 사진들을 ‘한국 현대 사진 역사’를 다루는 책에 띄엄띄엄 싣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사진책 한 권으로 갈무리해서 선보이지 못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벗고 나서며 이 같은 일을 하면 좋으련만, 또는 이 나라 사진 문화를 북돋우려고 하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이러한 일을 꾀하여 정부 뒷배를 받아 사진책을 내놓으면 좋으련만, 이 같은 일도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韓國의 美, 古寺巡禮》(서문당,1988)라는 196쪽짜리 사진책을 찾아내어 읽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사진을 1998년에 처음 배웠습니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에 사진책을 장만해서 꾸준히 읽으며 스스로 내 눈길과 마음길과 삶길을 가다듬는 일까지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사진기 다루는 손길이랑 사진이 실리는 신문을 읽는 생각길만 배웠습니다. 다만, 나는 사진을 배우기 앞서 언제나 혼자 책을 사서 읽으며 여러 가지를 익혔습니다. 헌책방을 바지런히 돌아다니고, 도서관하고 새책방을 꾸준히 찾아다니면서, 내 나름대로 내가 헤아릴 수 있는 책은 스스로 모두 살피며 익히곤 했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 학교에서 사진책 사서 읽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나는 푼푼이 돈을 모아 헌책방과 새책방에서 사진책을 장만했습니다. 돈이 모자라면 그저 책방 한켠에 선 채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기계를 다루는 손길은 학교에서 배울는지 모르나, 이 손길 또한 스스로 사진기 단추를 얼마나 자주 많이 누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깨달았으며, 사진을 읽는 마음길이랑 사진을 찍는 눈길 또한 스스로 삶을 어떻게 누리느냐에 따라 새로워진다고 느꼈어요.

 

 

 새책방에는 없고 헌책방에는 드문드문 들어오는 《韓國의 美, 古寺巡禮》를 잘 알아보며 즐거이 장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韓國의 美, 古寺巡禮》가 헌책방에 들어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거나 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는 대로 알아보거나 못 알아봅니다. 사진을 안 하는 사람은 사진을 안 하는 대로 알아보거나 못 알아봅니다.

 

 나는 임석제라는 분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1998년부터 곧잘 이 사진책을 헌책방에서 보았으나 막상 이 사진책을 장만한 때는 2008년 언저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 사진을 배우던 무렵에는 ‘문화재 사진만 밋밋하게 깃든’ 사진책이라고 여겨 슥 훑고는 내려놓았어요. 나는 ‘문화재 같은 건물’을 찍을 마음이 없었거든요. 2008년 무렵에 비로소 이 사진책을 장만한 까닭은 ‘한국 현대 사진’ 이론을 다루는 책을 읽다가 이분 이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 이 사진책을 내놓은 분이 한국 현대 사진 역사에 이름이 나오는 그분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한국 현대 사진을 다룬 이론책에는 임석제 님이 1988년에 내놓은 《韓國의 美, 古寺巡禮》라는 책을 적바림하지 않았거든요. 이분이 1940∼50년대에 어떠한 작품을 내놓았는가랑 1950년대 끝무렵부터 ‘멧자락 찍는 사진’으로 탈바꿈했다는 말만 있었어요.

 

 

 1988년에 나온 《韓國의 美, 古寺巡禮》 책날개에는 1918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서 “개인전 열세 차례”를 열고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장 역임”에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이요 “사진동우회 명예회원”이라는 글줄만 짤막히 적힙니다. 사진을 찍은 이가 남기는 말은 한 줄로도 안 실립니다. 사진하고 동떨어진 불교학자 한 분이 쓴 글만 앞뒤로 실립니다. 불교학자가 쓴 글에는 사진 이야기란 없고, 이 나라 문화와 역사에서 절집과 불교가 어떻게 이바지했는가 하는 이야기만 있습니다.

 임석제 님은 너무 잊혀진 이름이라고 느낍니다. 임석제 님 사진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실마리조차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이해선 님은 1980년에 창작 사진책을 하나 선보였고, 2005년에 어여쁜 사진책 하나 번듯하게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임응식 님은 문화훈장을 받고, ‘기리는 사진잔치’를 2012년에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눈부시게 열기도 합니다. 책으로도 전시회로도 좀처럼 만날 수 없다면, 임석제 님 사진넋이나 사진길이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묻히거나 잠잘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진책 《韓國의 美, 古寺巡禮》만 읽으며 임석제 님 사진을 말해도 될까 궁금합니다. 임석제 님이 한창 젊던 무렵 스무 해 즈음 펼친 사진은 모르면서 이 사진책 하나로 사진쟁이 한길과 한삶을 이야기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슬프고, 하는 수 없지만 서운합니다. 그러나, 임석제 님이 지난날 같은 사진길을 걷지 않기 때문에 굳이 지난날 사진을 들추어 말할 까닭이 없을 수 있겠지요. 임석제 님은 한창 젊던 무렵 바지런히 걷던 사진길은 그치고 새 사진길을 걸은 만큼, 새 사진길을 놓고 이야기할 만하달 수 있겠지요.

 

 

 

 사진책 이름처럼 ‘옛절 나들이’를 하면서 옛절 자취를 보여주는 《韓國의 美, 古寺巡禮》입니다. 옛절 모습을 보여주고, 옛절에 깃든 돌탑을 보여줍니다. 옛절과 함께 나이를 먹는 굵고 우람한 나무를 보여줍니다. 옛절이 깃든 깊은 멧자락이 얼마나 아름답고 푸르게 우거진 숲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임석제 님이 찍은 옛절과 옛절 언저리 사진은 ‘옛절만 곱게’ 담기지 않습니다. 지구별에서 가장 아름답다 여길 만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나라밖에 널리 내세울 만큼 훌륭한 문화재라는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신비스러운’ 사진이 아닙니다. ‘고요한 아침 나라’ 같은 느낌이 없습니다. ‘국보나 보물이 된’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느낌조차 없어요.

 

 임석제 님이 담은 옛절과 옛절 언저리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하고 함께 살아낸 쉼터이자 믿음터’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보아도 ‘절집을 드나드는 사람들 모습’이 꽤 자주 나타나요. 절집에서 붙인 걸개천이 곳곳에 보입니다. 우람한 나무 앞에 멋없이 박은 알림판도 보입니다. 예술스럽다거나 종교스럽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꽤 수수합니다. 퍽 투박해요. 부러 힘을 주어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괜시리 바람 넣은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으로만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에요. 이 사진을 보고 나서 절집 나들이를 하면 바로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겠구나 싶어요. 어깨에 힘을 뺀 채 홀가분히 담은 사진인 만큼, 푸근하다면 푸근하게 느낄 사진이요, 살갑다면 살가이 느낄 사진입니다.

 

 

 

 국보 이름 붙은 문화재이니까 더 거룩하게 여겨야 하지는 않아요. 수수한 풀과 나무이기에 더 어여삐 바라보아야 하지는 않아요. 모두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저마다 애틋한 삶벗입니다. 서로서로 좋은 꿈길입니다.

 

 이야기를 품을 때에 즐거이 읽는 글이 됩니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즐거이 누리는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빚을 때에 기쁘게 쓰는 글이 됩니다. 이야기를 일굴 때에 기쁘게 나누는 사진이 됩니다. 사진책 《韓國의 美, 古寺巡禮》는 절집을 나들이할 때에는 절집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느낀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절집 아닌 배움집, 곧 초·중·고등학교를 찾으러 이 나라 골골샅샅 누비면, 이들 초·중·고등학교 둘레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느낄 수 있어요. 자그마한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뿐 아니라, 조그마한 학교에서 청소하는 일꾼을 만나며 사진이야기 엮을 만합니다. 깊디깊은 두메에 깃든 학교 사택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깊디깊은 두메가 둘레 숲과 멧자락과 냇물이랑 얼마나 어여삐 얼크러지는가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을 찍을 수 있으며, 학교를 아주 옛날에 마치고 할머니가 된 사람이나 아저씨가 된 사람을 찍을 수 있어요. 마을에서 나고 자라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다녔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을 수 있어요.

 

 사진은 더 도드라진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은 더 거룩한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예요. 사진은 더 모자라거나 덜 떨어진 문화나 예술이 아닙니다. 더 높지 않으나 더 낮지 않아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문화나 예술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문화이며 예술이에요. 삶으로 누리는 사진이고, 삶이 꽃으로 피어나는 사진입니다.

 

 

 

 국보급 문화재이든 국보 문화재이든 ‘문화재’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국보라서 더 훌륭하지 않으며, 국보가 아니라서 초라하지 않습니다. 모두 좋은 문화재이며, 모두 사랑스러운 삶자락입니다. 먼먼 옛날 어떤 살림살이가 오늘날에는 국보가 될 수 있고, 오늘날 어떤 살림살이가 먼먼 앞날 국보가 될 수 있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이곳 이 하루를 누릴 때에 즐겁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누리는 내 이야기라면 흐뭇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오늘을 씁니다. 글도 늘 오늘을 씁니다. 지나간 아득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도 한다지만, 지나간 아득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기도 해요. 이를테면, 《韓國의 美, 古寺巡禮》처럼 문화재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지나간 아득한 이야기와 오늘 살아가는 이야기가 골고루 담깁니다. 곧, 이야기를 담을 때에 사진이 됩니다. 어제를 찍거나 오늘을 찍거나 앞날을 찍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찍느냐 이야기를 못 찍느냐가 대수롭습니다. 이야기를 살릴 때에 사진이 살고, 이야기를 빛낼 때에 사진이 빛납니다. (4345.2.28.불.ㅎㄲㅅㄱ)


― 韓國의 美, 古寺巡禮 (임석제 사진,서문당 펴냄,1988.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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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5 : 남아수독오거서

 

잊힌 꿈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릴 적 ‘남아수독오거서’라는 한자를 배울 때 처음 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때, 나도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물만두 홍윤-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 23쪽

 

 “꿈에 대(對)해 생각을 하곤”은 “꿈을 생각하곤”이나 “꿈이 무엇이었나 생각을 하곤”으로 손보고, “가졌던 것 같다”는 “가진 듯하다”나 “가졌으리라 본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다섯 수레 분량(分量)의 책”은 “다섯 수레만큼 되는 책”이나 “책 다섯 수레”로 손질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한문을 배워야 하는데, 이때에 으레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같은 한문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이라는데, 중국 옛글에 나오는 말마디입니다.

 

 남아수독오거서
 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
 사내는 모름지기 책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
 사람은 책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
 …

 

 내가 중학생 때에 이 말마디를 처음 들었는지 국민학생 때에 처음 들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아마 중학생에 앞서 국민학생 때에 들었으리라 떠오르는데, 이 말마디를 처음 들으면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뜻보다 ‘왜 ‘사람’이 아닌 ‘남자’라고 말하나’ 싶어 몹시 거슬렸습니다. 척 보아도 남자와 여자를 갈라 놓는 말마디이니까요.

 

 중학생이 되어 영어를 처음 배울 때에 ‘man’이나 ‘men’이라는 낱말이 꼭 ‘사내’만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듣습니다. 으레 ‘사내’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했어요.

 

 나는 이때에도 퍽 거슬렸습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쓰는 나라나 겨레나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았어요. 말마디에 이토록 ‘사내와 가시내를 금긋는 넋’을 담아야 하는가 싶어 슬펐어요.

 

 이모저모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여느 사람들 여느 말에서는 사내와 가시내를 따로 금긋는 말마디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똑같이 사람이고, 사내를 가리키는 말마디이든 가시내를 일컫는 말마디이든 서로 고르게 어우러져요. 1900년대로 접어들어 소설을 쓰는 이들이 일본 말투를 엉성하게 들여와 ‘그 = 3인칭 사내 가리키는 대이름씨’, ‘그녀 = 3인청 가시내 가리키는 대이름씨’처럼 엉뚱하게 쓰며 이 말마디가 퍼지고 말았지만, 한겨레 말글에서 ‘그’는 ‘사내와 가시내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두루 쓰는 대이름씨’일 뿐입니다.

 

 다섯수레 책읽기
 다섯수레 책
 다섯수레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마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이 말마디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이거든요. 중국사람 스스로 즐겁게 쓰려고 지은 말마디입니다.

 

 다시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나는 한겨레붙이입니다. 나는 한국땅에서 태어나 한국사람이랑 이웃으로 지내며 한국말을 씁니다. 나는 한국말을 예쁘게 빛내고 싶습니다. 사람들한테 책을 넉넉히 읽으며 생각을 넉넉히 살찌우라는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아무래도 나는 한국말로 이 뜻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다섯수레 책읽기”라 할 수 있어요. 한 마디로 간추려 ‘다섯수레’라는 낱말 하나 빚을 만해요.

 

 뿌리는 중국 옛글입니다. 중국 옛글에 나온 이야기를 한겨레 나름대로 삭히면 ‘다섯수레’로 옮길 만해요. 글잣수는 한결 적고, 뜻은 한결 또렷하며, 쓰거나 말하거나 듣기에 한결 살갑다고 느낍니다.

 

 한국말 빛깔을 살리면서 조금 더 재미나게 말삶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다섯수레’뿐 아니라 ‘여섯수레’나 ‘일곱수레’라 할 수 있어요. ‘열수레’나 ‘여든수레’라 할 수 있습니다. 열 살에는 ‘열수레’, 스무 살에는 ‘스무수레’, 서른 살에는 ‘서른수레’라 하면 돼요. 나이에 따라 수레 하나씩 늘려, 일흔 살에는 ‘일흔수레’가 되고, 여든 살에는 ‘여든수레’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삶과 넋을 살찌우는 말을 빛냅니다. “모름지기 열 살에는 열 수레어치 책을 읽고, 일흔 살에는 일흔 수레만큼 책을 읽으라 했다.” 하는 새 한겨레 이야기를 빚으면서 꿈과 사랑을 일굽니다.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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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센티미터 책읽기

 


 2012년 2월 25일, 첫째 아이 키가 99센티미터이다. 지난 두 달 사이에 0.8센티미터 자랐다. 더딘지 빠른지 알 길이 없다. 어찌 되었든 아이는 날마다 조금씩 자란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보면 아이 머리통이 내 턱을 툭툭 칠 뿐 아니라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머리통이 턱 가로막기 일쑤이다.

 

 첫째 아이는 키만 크지 않고 몸무게도 천천히 는다. 아직은 첫째 아이를 가슴으로 안아서 걸어갈 수 있지만, 오래지 않아 첫째 아이를 가슴으로 안아 걸을 수 없을 만큼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느는 날을 맞이할 테지. 그때에는 등으로 업기에도 벅찰는지 모른다. 바야흐로 어버이가 아이를 업는 삶에서 아이가 어버이를 업는 삶으로 달라지리라.

 

 그동안 얹혀살던 집이었지만 이제 이곳은 우리 집이기 때문에 문 한쪽에 연필로 아이 키를 재서 자국을 남기기로 한다.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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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죽은 글쓰기

 


 산 목숨이 아닌 죽은 목숨을 먹으면서 내 넋을 죽은 넋 아닌 산 넋으로 얼마나 알뜰히 지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참말, 죽은 목숨을 날마다 먹으면서도 산 넋으로 내 하루를 지킬 수 있을까.

 

 죽은 목숨을 먹더라도 나 스스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내 줏대를 다스릴 줄 안다면, 내 넋은 늘 산 넋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죽은 목숨에 고운 숨결 불어넣으면서 내 몸을 살찌울 수 있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나날을 누리리라 생각한다.

 

 산 목숨을 먹는다지만 나 스스로 흔들리거나 넘어지면서 내 줏대를 잃거나 잊는다면, 내 넋은 노상 죽은 넋이 되고 말겠지. 산 목숨을 싱그러이 빛나는 숨결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내 몸은 아름다운 하루를 기쁘게 누리지 못하겠지.

 

 내 지난 사흘을 돌이킨다. 사흘 동안 죽은 목숨을 먹으니 몸이 무겁고 마음을 쉬 가다듬지 못한다. 방귀가 너무 자주 나올 뿐 아니라 방귀 냄새까지 구리다. 무거운 몸과 지친 마음이 될 때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거운 몸으로 집안을 얼마나 알뜰히 건사할 수 있는가. 지친 마음으로 집식구를 얼마나 따스히 아낄 수 있는가. 무거운 몸일 때에 어떤 책을 손에 쥐어 마음밭 야무지게 살찌울 만한가. 지친 마음일 때에 내 눈은 어떤 아름다운 빛을 깨달으며 사진을 찍는가. 어수선한 몸과 마음이면서 글 한 줄 곱게 여밀 수 있는가.

 

 몸이 죽으면 마음이 죽고, 마음이 죽기에 생각이 죽어, 죽은 생각으로는 죽은 글을 빚는다.

 

 죽은 글을 남길 때에는 사람 넋이 죽으면 이렇게 슬프며 괴롭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 송두리째 죽음수렁에 빠질 때에는 이렇게 갑갑하며 아프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일까. 온통 죽음에 휩싸인 수렁이기에, 이 수렁에서 헤쳐나와 빛줄기 곱게 누리고픈 꿈을 꾸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햇살을 먹으며 햇살을 느끼고 싶다. 햇살을 느끼며 햇살을 사랑하고 싶다. 햇살을 사랑하며 이 햇살을 내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나누고 싶다. (4345.2.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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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05.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 한 권 - 형설서점 2012.0227.17

 


 수없이 많은 책이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새로 죽습니다. 새로 죽는 책이 있으니 새로 태어나는 책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꽂힐 자리만큼 먼저 태어난 책 가운데 적잖은 책이 자리를 물려주고 떠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더 꽂히면서 예전에 태어난 책이 제자리를 지키려 한다면 책꽂이가 날마다 늘어야 하고, 책터 또한 꾸준히 커져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이 있고 새로 죽는 책이 있기에, 헌책방은 두 가지 책을 모두 받아들입니다. 헌책방은 어떠한 책이든 끌어안기 마련이라, 조그마한 살림을 그대로 건사한다면 책이 날마다 쌓이거나 넘쳐 그만 바닥에 책탑이 몇 겹으로 올라섭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버스역 둘레에 깃든 헌책방 〈형설서점〉을 찾아와 책을 살핍니다. 순천과 가까운 남해에 있다는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삼천포에 있다는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목포에 있다는 어느 학교 어느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전라남도 어디께에 있다는 문화방송 지국 도서관에서 흘러나온 책, …… 도서관에서 버린 책이 제법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한국땅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 숫자가 ‘0’이거나 0에 가까우면 으레 버립니다. 1990년을 앞뒤로 맞춤법이 예전 책이면 그냥 버립니다. 아무래도, 도서관이라며 한 번 지으면 책꽂이를 더 늘린다거나 도서관 자리를 더 키우지 않기 마련이니까, 새로 장만하는 책만큼 예전 책을 버리고야 말밖에 없는 한국 도서관이에요.

 

 이런저런 ‘도서관에서 버린 책’을 살살 쓰다듬다가, ‘1986 사랑의 책 보내기’ 운동을 하며 나돌았을 ‘기증도서’ 한 권을 만납니다. 겉에는 이런 자국이 없지만, 안쪽에 딱지 하나 붙고 도장 하나 찍혀요. 박재삼 시인 수필책을 구경할가 싶어 집어들다가 뜻밖에 알아보는 ‘옛 책마을 운동 발자국’ 하나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버려 주니 고맙게 헤아리는 지난날 발자국입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이 건사했다면 그 도서관에서는 대출 실적 ‘0’이었으니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테고, 그 작은 도서관이나 그 학교 도서관에 내가 찾아갈 일은 없을 테니, 나로서는 이런 발자국을 더 살필 수도 없었겠지요. (4345.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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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2-29 10:22   좋아요 0 | URL
순천의 형설서점이군요.저고 가본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헌책방을 운영하고 계신가 보군요.요즘 서울 헌책방도 한두군데씩 사라지는데 잘 운영되었으면 합니다.
그나저나 된장님도 남쪽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으니 전라도 지역 헌책방을 자주 돌아보시겠네요.결혼하시기전에 가끔씩 숨책에서 뵌 기억이 나는데 이제 헌책방을 들르러 서울에 올라오실 일은 아마 거의 없으시겠네요^^

파란놀 2012-02-29 22:51   좋아요 0 | URL
서울 갈 일부터 거의 없으니.......
흠...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