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씻는 책읽기

 


 저녁 열 시가 넘도록 둘째 아이가 잠들지 않더니, 똥을 한 번 시원하게 눈다. 둘째는 아홉 시 살짝 넘은 때에도 똥을 푸지게 누었다. 그래, 이렇게 저녁똥을 누고 홀가분한 배를 두들기며 자려 했구나. 그런데 네 똥기저귀랑 오줌기저귀를 힘겨이 다 빨아 방에 널고는 좀 쉴까 했더니 다시 똥을 누네. 그러나 어찌 너를 탓하랴. 네가 이렇게 잠들기 앞서 신나게 놀며 똥을 누어 주니 고맙다 여겨야지. 한밤에 자다가 똥을 누면 얼마나 힘든데. 자다 깨어 기저귀를 갈다가 손에 똥이 질펀하게 묻으면 치우기 얼마나 까다로운데. 자칫 이불이 똥범벅이 되어 이불을 몽땅 빨아야 하면 얼마나 고단한데.

 

 생각해 보니, 첫째 아이는 한밤에 자다가 똥을 누기 일쑤였다. 자다가 이불을 다 걷고는 새 이불을 깔고 덮으며, 밤에 똥이불을 애벌빨래 해서 담가 놓는 일이 참 잦았다. 둘째를 생각하면 둘째는 똥이불 빨래를 거의 내놓지 않는다. 한겨울이 가도록 아버지한테 똥이불 빨래를 시키지 않았다.

 

 밑을 다 씻기고는 토실토실 엉덩이를 톡톡톡 치면서, 이 귀여운 녀석, 하고는 논다. 똥기저귀는 비누를 발라 두 차례 밑빨래를 하고는 뜨신 물에 담가 놓는다.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어머니랑 좀 놀라 하고는, 남은 뜨신 물로 똥기저귀를 마저 빨래한다. 둘째는 열한 시가 되어 비로소 깊이 잠든다. 살포시 안아 이부자리에 눕히니 가만히 실눈을 뜨며 ‘어머니인가 아닌가’를 살피더니 ‘쳇, 아버지잖아’ 하는 눈짓으로 다시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르더니 곯아떨어진다. 쳇, 아버지야말로 쳇이라고.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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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4:05   좋아요 0 | URL
된장 님 아기 키우는 글 보면서요, 우리 애들도 어렸을 적에 저렇게 응가를 자주 했던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많아요. 하루에 한 번 응가 누는 게 어느 정도 자라야 되는 일인지 까맣게 잊어 버렸어요.
기저귀 졸업하던 일이 아기가 하는 가장 큰 효도라고 제가 칭찬한 적은 있어요ㅋㅋ
기저귀 안 차면 엄마 할 일이 확 줄거든요.
부모가 아니면 똥기저귀 가는 수고를 어떻게 기쁘게 감당해 낼까요....

파란놀 2012-03-04 11:09   좋아요 0 | URL
하루에 서너 차례는 누잖아요.
천기저귀를 쓰면 똥이랑 오줌을
날마다 언제 어느 만큼 누는가를
헤아릴 수 있어요.

종이기저귀를 쓸 때에는
이런 모습을 잘 느끼지 어려울 수 있어요.

기저귀를 마치는 일은 효도라기보다..
집일을 좀 줄여 줄 뿐이에요 ^^;;;

효도는 다른 데에서 효도를 하리라 믿어요~
 
다녀왔어 노래 2
후지모토 유우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모두들 네가 참 좋아서 그렇단다
 [만화책 즐겨읽기 123] 후지모토 유키, 《다녀왔어 노래 (2)》

 


 졸려 두 눈이 벌겋지만 잠을 이루지 않는 아이는 더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아이가 한숨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면 한결 신나게 놀 텐데 하는 어버이 마음이지만, 아이는 더 버티고 또 버티며 다시 버팁니다. 지쳐서 곯아떨어질 때까지 자리에 누울 생각이 없고, “나 졸려, 잘래.” 하고는 자리에 누웠다가도 이내 슬슬 기어나와서 시익 웃고는 또 놀려 합니다.

 

 오늘 하루 어김없이 낮 열두 시 무렵부터 졸린 낌새가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밥을 먹고도, 또 한참 놀고도, 또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고도, 그예 더 버티고 더 엉겨붙고 더 낑낑거립니다.

 

 이 아이는 참 왜 이렇게도 더 놀려고만 하지, 하고 생각하던 저녁나절, 귤조각 입에 문 아이가 스르르 눈을 감고는 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빛 환한 방인데, 어머니랑 아버지랑 동생이랑 복닥복닥 떠들어도, 첫째 아이는 다시 깨지 않고 아주 깊이 잠듭니다.

 

 하얀 천으로 아이 눈을 가립니다. 이러고 한 시간쯤 지나니 아이가 끄응끄응 하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옳거니, 쉬가 마렵구나. 벌떡 일어난 아이인데, 비틀비틀 합니다. 그래, 잠이 안 깬 채 몸만 일어났구나. 대견하네. 아버지는 두 손을 아이 어깨죽지 사이에 넣고는 아이를 대롱대롱 흔들면서, “쉬 하러 가자, 쉬 하러 가자.” 하고 노래합니다. 오줌그릇 앞에서 아이 바지를 내리고 살그머니 앉힙니다. 입에 문 귤을 뱉으렴, 하고 말하지만,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오물오물 할 뿐.

 

 쉬를 누었다 말았다 하기를 1분쯤 하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까딱 합니다. “다 누었니?”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슬 일어납니다. 바지를 올리고 가슴으로 안습니다. 이제는 잠자는 방으로 옮겨 누입니다. 아이는 이때부터 다시 깨지 않고 아주 달고도 깊게 잠을 잡니다.

 

 


- “아빠, 이거 무지 비쌌지, 괜찮아?” “용돈 다 썼어?” “내 저금 빌려줄까?” “너희가 걱정할 만큼 아빠가 변변치 못해 보이냐. 앞으로 많이 쓸 거라고 생각하면 싼 거야! 안 그래, 여보?” “맞아. 그럼 앞으로 다 같이 많이 놀러가야겠다!” (24쪽)
- “그리고 경품행사에 사쿠라 오빠 이름으로 응모하면 이게 또 당첨된단 말이지! 그렇게 굳은 돈으로 고기라든지 고기라든가 고기를 사서 조금이라도 풍성한 식탁을!” “아하하, 좋다. 재미있네. 나도 너네 집 식구가 되어 보고 싶어!” (134쪽)


 나는 내 네 살 적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일곱 살 적도 그닥 떠올리지 못합니다. 열 살 때도 그리 많이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곰곰이 되새깁니다. 내 한 살 적에는, 내 두 살 적에는, 내 세 살 적에는, 내 네 살적에는, 또 내 다섯 살 적에는 어떤 모습으로 놀며 복닥였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첫째 아이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 누이고는 이불을 여밉니다. 머리칼을 쓸어넘깁니다. 나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내 다섯 살 적 나 또한 내 아이처럼 이렇게 잠잘 줄 모르며 놀다가 갑자기 곯아떨어지고는 어머니 품이나 아버지 품에 안겨 방 한켠에 눕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문득 누군가 나를 안고 잠자리로 가던 느낌과 따스함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 ‘이런 식으로 오빠를 찬찬히 관찰할 기회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응, 확실히 니시야마가 예쁘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가.’ (64∼65쪽)
- “알아. 잊으려고 하는 거겠지, 엄마를.” “난 도저히 잊을 수 없는데!” “그랬구나. 많이 힘들지? 우리 집은 두 분이 돌아가신 지 6년 정도 됐는데.” “6년쯤 지나면 잊을 수 있는 거야?” “못 잊어. 아직도 여전히 슬픈걸. 하지만 정말 힘들 때는 울어도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웃기로 약속했어. 우리끼리, 아주 오래 전에.” (102∼104쪽)

 


 나는 내가 잘 모른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사랑받으며 살았습니다. 나는 내가 잘 떠올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김없이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 나는 내가 낱낱이 되새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사랑을 먹으며 컸습니다. 나는 내가 똑똑히 헤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사랑을 누리며 지냈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바보처럼 아이들을 꾸짖는 날이면, 내 어버이도 나를 바보처럼 꾸짖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예쁘게 아이들을 돌보며 아끼는 날이면, 내 어버이 또한 나를 예쁘게 돌보며 아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내 어버이가 나를 너무 다그치거나 꾸짖기만 하던 모습이 깊이 아로새겨진 나머지, 내 아이들을 너무 다그칠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 어버이가 나를 몹시 다그친 생채기가 남았다 하더라도, 내 아이들한테는 고운 사랑으로 마주하자고 다짐하며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내 어버이가 나한테 물려준 사랑을 제대로 못 깨닫고는 내 아이들한테 못난 어버이 모습을 보이는지 모릅니다.


- “맞아, 집에 가야지. 집이 어디니?” “이 근처야? 아님 멀리서 왔니?” “…….” “엄마가 걱정하시잖아.” “없어요. 죽었어요.” (89쪽)
- “부모님 욕 먹이기 싫으면 다시는 하지 마.” (110쪽)

 

 


 아이들은 하루하루 자랍니다. 어른들도 하루하루 자랍니다. 아이들은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늡니다. 팔뚝과 허벅지에 힘살이 붙습니다. 어른들은 키가 줄고 몸무게가 줍니다. 팔뚝과 허벅지 힘살이 아이들보다 뒤처지거나 따라잡힙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삶을 누리면서 새로운 사랑을 누립니다. 어른들 또한 날마다 새로운 삶이요, 새로운 사랑이에요. 다만, 적잖은 어른들은 당신들이 날마다 새롭게 자라며 새롭게 사랑받는 나날을 누리는 줄 제대로 못 깨닫기 일쑤입니다.

 

 나이 스물도 꽃이요 나이 서른도 꽃이며 나이 마흔도 꽃이에요. 나이 쉰도 꽃이고 나이 예순과 일흔 또한 꽃이에요.

 

 동백나무는 열 살이든 쉰 살이든 백 살이든 꽃을 피웁니다. 느티나무는 이백 살이든 삼백 살이든 사백 살이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를 떨구고는 어린 느티싹이 돋아 무럭무럭 자라도록 이끕니다. 감나무는 열다섯 살에도 스물다섯 살에도 싱그럽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감나무는 쉰다섯 살이나 백다섯 살에도 말간 감꽃을 피우며 고운 내음을 온 들판에 퍼뜨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어서 죽고, 나무도 어느 만큼 늙으면 죽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에 드디어 죽음을 맞아들이며 기쁘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무도 더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할 때에 조용히 가지가 말라붙으며 시나브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나는 내 어버이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갑니다. 나는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들 목숨을 맞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내 아이는 내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냅니다. 내 아이가 낳을 아이들은 내 숨결을 받아들여 곱게 꿈을 키웁니다.

 


- “있을 때 잘해야겠지. 아빠 좋아해? 많이 걱정하실 거야.” (120쪽)
- “그게 다가 아냐.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이 집안 사정에 있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 (152쪽)


 후지모토 유키 님 만화책 《다녀왔어 노래》(대원씨아이,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아이들끼리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습니다.

 

 만화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나는 어떤 모습과 이야기를 누리며 살아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서 나와 옆지기가 그만 갑작스레 목숨을 잃고 두 아이가 남아야 한다면, 두 아이는 앞으로 어떤 꿈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루하루 웃음으로 꽃을 피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웃음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하루 웃음으로 새싹을 내고 웃음으로 줄기를 올리며 웃음으로 뿌리를 튼튼히 내리는 삶이라면,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늘 웃을 수 있겠지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웃음으로 잎을 틔우고 웃음으로 꽃과 열매를 이룬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더라도 웃음꽃이요 웃음열매를 누릴 테지요.


- “모두 네가 너무너무 소중해서 그런 것뿐이니까, 금방 화해할 거야.” (157쪽)


 아름답게 즐기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트는 싹입니다. 예쁘게 일구는 하루일 때에 예쁘게 맺는 열매입니다. 따사로이 보살피는 손길로 살림을 일굴 때에 따사로이 피어나는 꽃입니다.

 

 《다녀왔어 노래》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이이면서 어른이요 모두 씩씩하고 튼튼하며 어여쁜 사람입니다. 《다녀왔어 노래》에 나오는 네 아이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우며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서로서로 아끼는 기쁨을 누리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돈이야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게 살아가면 되지요. 책이야 없으면 없는 대로 재미나게 이야기꽃 피우면 되지요. 집이야 좁으면 좁은 대로 서로 엉겨붙으며 복닥거리면 되지요. 옷이야 서로 물려입거나 한 벌로 두고두고 아껴 입으면 돼요. 다만, 오직 한 가지, 서로를 좋아하고 믿으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어떠한 웃음도 누리지 못합니다. (4345.3.2.쇠.ㅎㄲㅅㄱ)


― 다녀왔어 노래 2 (후지모토 유키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11.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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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그린다

 


 밤이 깊어도 잠들 줄 모르는 아이하고 부대끼다가 그림종이를 펼친다. 둘째는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끼어들고 싶다. 둘째가 어머니한테 기어간 사이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저 그리고픈 대로 그리고, 아버지는 첫째 곁에서 이모저모 그림을 그려 본다. 그림종이 앞에 엎드려 그림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후다닥 그린다. 아이는 오른손에 연필을 쥐고 엎드린 채 그림을 그렸지만, 아버지는 아이 왼손에 연필 쥔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알아보려나, 알아보겠지. 그런데 나는 첫째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 좀처럼 알아보지 못한다. 응, 무얼 그렸나. 이게 귤이니?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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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날 어디를 ‘여행’하라 한다면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7] 장을선,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

 


 사진을 찍어 상을 받아야 할 까닭이 없고,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날려야 한다든지, 사진을 찍으며 책을 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좋아하니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누리는 길동무인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는 넋을 다스리는 사진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사진공모전은 덧없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일구며 저마다 다 다른 사랑을 빚은 사진에는 차례나 번호나 점수를 매길 수 없어요. 어떤 사진을 몇 작품으로 만들었다 해서 작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사진을 찍기에 사진작가가 되지 않습니다. 한자말로 적어 ‘작가(作家)’인데, 사진작가란 “사진을 짓는 사람”이란 소리입니다. 이제껏 없던 사진을 새롭게 지을 때에 이러한 이름을 쓴다지만, 누구라도 ‘이제껏 있던 사진을 다시 찍’는 일이란 없어요. 다른 사람이 내놓은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 하더라도 빈틈 하나 없이 똑같이 베끼지 못합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 작품을 베끼거나 따른다는 일이란 얼마나 슬픈 일이 될까요. 내 삶은 내 삶이지, 다른 사람 삶을 흉내낼 수 없어요. 내 넋은 내 넋이지, 다른 사람 넋을 따라갈 수 없어요.

 

 내 눈길에 따라 내 나름대로 빚는 사진이에요. 참가비도 상금도 상장도 없이, 사진공모전에 사진을 보낸 사람들 작품을 모두 한 자리에 실어 스스럼없이 나누거나 보여주거나 즐길 때에 비로소 서로서로 즐거울 ‘사진잔치’로 자리잡으리라 생각해요.

 

 

 장을선 님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사진예술사,1990)을 읽습니다. 여섯 아이를 낳아 돌본 어머니 길을 걸으며 사진기를 다른 한손에 쥔 장을선 님이라고 합니다. 장을선 님은 1989년에 여덟 번째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하나를 받고는 나라밖으로 ‘사진 배우는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하고, 이 사진여행길에 찍은 사진을 《아프리카의 인상》이라는 사진책으로 낼 수 있었다 합니다.

 

 적잖은 돈이 들 사진여행을 마흔 날 동안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고, 케냐와 이집트를 사진기 걸쳐메고 돌아봅니다. 사진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한편으로는 부럽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쉽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케냐와 이집트를 밟는 마실길이기에 고작 마흔 날밖에 못 다니겠지요.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프리카를 꿈처럼 그리며 살았기에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사진책 《아프리카의 인상》을 읽으며 ‘아프리카 이야기’와 ‘케냐 이야기’와 ‘이집트 이야기’가 얼마나 예쁘게 얼크러지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라 이름을 붙이니 아프리카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할 뿐, 사진만 들여다보아서는 왜 어떻게 아프리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흔 날 마실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에 살림집 얻어 여러 해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를 이웃집 드나들듯 자주 오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래 눌러지내며 사진을 찍어야 가장 잘 찍지 않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갔대서 제대로 못 찍지 않습니다. 오래 눌러지낼 때에는 오래 눌러지내는 빛을 담습니다. 몇 번 스치듯 지나갈 때에는 짧은 한동안을 빛내는 결을 담습니다.

 

 살결이 까만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 아프리카가 되지 않습니다. 책이름처럼 ‘아프리카를 느낀’ 무언가도 되지 않습니다. 서로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일은 언뜻 보기에 잘 빚은 사진이라 할 만하지만, ‘서로를 구경하고 지나치는’ 일에 그치곤 합니다.

 

 왜 얼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과 어른들 얼굴을 가만히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아프리카란 어떤 땅이고, 케냐란 어떤 나라이며, 이집트는 어떠한 삶터인가요. 세 가지 궁금한 대목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애써 마흔 날에 걸쳐 두 나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상 사진으로 빚는 이야기는 못 태어나는 셈 아닌가 싶어요. 참말, ‘구경하는 사진(인상)’으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사진’으로는 새로 태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 사진책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살가우며 수더분해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삶으로 깊숙히 스며들며 담은 이야기를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마실하는 날이 넉넉하지 못해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겉스치는 ‘느낌(인상)’을 담는 사진이 된다 하겠으나, 겉스칠 때에는 겉스치며 마주하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즐기면 돼요. ‘반짝 하는 놀라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짧은 동안 마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살포시 담는 사진’을 보여주면 넉넉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기쁘게 담으면 되거든요. 이를테면, 귀여운 손자가 명절날 찾아와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더라도 이 며칠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나로서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여긴 사진을 찍습니다. 고작 하루만 머물다 돌아가든, 하루조차 아닌 몇 시간만 머물고 돌아가든 나는 내 손자를 아주 예쁘게 여기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마흔 날 어디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녀오라 한다면 어디를 다닐 만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내 옆지기라면 우리 보금자리 뒤에 깃든 천등산부터 걸어 소백산맥 길을 따라 지리산을 지나고 태백산을 아울러 오대산과 설악산 있는 데까지 멧길 천천히 걷기를 할 텐데, 나라면 마흔 날 동안 어떤 마실을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일본 도쿄 헌책방거리를 마흔 날 동안 쏘다니며 책을 살피고 장만하며 누리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꿈꿉니다. 고흥 시골마을을 골골샅샅 누비며 맞아들이면 얼마나 즐거우랴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따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바닷마을을 휘 돌아볼 수 있어도 무척 기쁘겠구나 하고 꿈꿉니다. 자전거 타고 한국땅 헌책방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마실을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습니다. 문닫은 시골 작은학교를 자전거 타고 찾아다니고, 작은학교 깃든 시골마을 작은가게에 들러 깡통맥주 하나 마시면서 사진을 찍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요즈음도 ‘대한민국 사진전람회’에서 큰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밖 마실을 보내 주는지 궁금합니다. 요즈음도 나라밖으로 마실을 보내 준다면, 사진쟁이 스스로 가고프다는 곳으로 보내 주지 말고, 지구별 나라들을 하나씩 콕콕 집어, 해마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서, ‘해마다 다 다른 나라 삶과 사람과 삶터를 다 다른 사진쟁이가 다 달리 담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해에 한 나라씩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도록 이끈다고 할까요. 이러면서 작은 사진상 받는 이한테 나라안 골골샅샅 돌아보도록 이끌어, 해마다 두 가지 사진열매 빚을 수 있어요.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지구별’을,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한국땅’을.

 

 아이를 여섯 낳아 돌본 어머니이기 때문에 꼭 여섯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거나, 여섯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섯 아이 삶을 두고두고 사진으로 갈무리한다면, 장을선 님으로서는 아직 한국에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놀라운 ‘사진 육아일기’를 여섯 권 빚을 수 있고, 이 여섯 아이들네 아이들 이야기까지 갈무리하며 ‘사진 생활일기’를 수없이 빚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프리카도 좋고, 록키산맥도 좋아요. 그런데 장을선 님이 선보일 첫 사진책이 《아프리카의 인상》이니 서운합니다. 두 번째 사진책은 《The Spring of Rockies》이니 슬픕니다. 장을선 님 아이들이 당신한테 힘이 되고 사랑이 되며 믿음이 되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막상 장을선 님 아이들 삶과 사랑과 믿음을 고루 갈무리한 사진으로는 사진책을 일구지 못하니 쓸쓸합니다.

 

 작품이 되어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삶이 될 때에 사진이에요. 사진은 삶을 사랑하는 꿈을 보살피는 좋은 길동무 가운데 하나예요. (4345.3.2.쇠.ㅎㄲㅅㄱ)


― 아프리카의 인상 (장을선 사진·글,사진예술사 펴냄,199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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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빨개요
뻬뜨르 호라체크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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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인 나한테 선물하는 그림책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0] 뻬뜨르 호라체크, 《딸기는 빨개요》(시공주니어,2002)

 


 나는 어릴 적 그림책을 보며 자라지 않았습니다. 딱히 그림책이 없었으나 어린 나날을 따분하게 보내거나 심심하게 누리지 않았습니다. 놀거리 많았고 놀이동무 많았습니다. 무엇을 돌아보든 놀거리요, 어디를 다니든 놀이동무였습니다.

 

 오늘날 그림책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그림책만큼 아이들 어버이는 그림책을 꽤 많이 장만합니다. 그림책을 집에 가득 모시는 아이들은 어느 때라도 마음껏 그림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집에서든 어린이집에서든 학교에서든 그림책은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좋은 그림책 많이 나오는 오늘날이라 아이들이 즐거울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좋은 그림책 두루 볼 수 있어 오늘날 아이들은 맑은 꿈을 빛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좋은 그림책 걱정없이 누릴 수 있으니 오늘날 아이들은 너른 사랑을 따스히 가꿀 만한지 궁금합니다.


.. 빨간색 딸기 ..

 


 내 어릴 적 그림책이란 없었으나, 집 둘레 어디에서나 풀을 보고 꽃을 보며 나무를 보았습니다. 풀을 만지고 꽃을 만지며 나무를 만졌습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밟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뭉게구름을 보며 소나기를 봅니다. 빗소리를 듣고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새소리를 듣습니다. 하늘빛을 헤아리고 물빛을 들여다봅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오늘날 그림책에 담기는 이야기란 하나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담는 그림책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그림책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예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여기는 모습을 담는 그림책입니다.

 

 곧, 그림책이 없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우리 스스로 곱게 돌보면 기쁩니다. 그림책이 없다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즐거이 살아가며 예쁘게 사랑하면 됩니다. 그림책을 모르더라도 어른들부터 좋은 나날 누리며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좋은 꿈을 물려받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 주황색 귤 ..

 


 뻬뜨르 호라체크 님 작은 그림책 《딸기는 빨개요》(시공주니어,2002)를 읽습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하다고 여겨 장만하기도 했지만, 아이에 앞서 나부터 보기에 즐거웁기에 장만합니다. 아이가 예쁘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이에 앞서 어른인 내가 예쁘게 읽을 만하다 싶기에 장만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이 그림책을 읽을 어른부터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읽기에 즐겁지 않은데 아이가 읽으며 얼마나 즐거울까 모르겠어요. 때로는, 어른한테는 재미없어도 아이한테는 재미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모름지기 그림책이라 하면, 누구나 즐기고 누구나 좋아하며 누구나 사랑을 느낄 때에 그림책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그림만 예쁘장하거나 귀엽게 그린대서 그림책이 아니에요. 재미난 말놀이를 한다든지, 아이한테 무슨무슨 학습 효과가 있대서 그림책이 아니에요.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지는 삶을 담는 책이에요.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나날을 빛내어 그러모으는 책이에요. 그림책은 이 지구별 사람들이 다 함께 어깨동무하며 사랑할 꿈을 돌보거나 보살피도록 이끄는 책이에요.


.. 내 그릇에 담긴 알록달록한 과일들을 보세요 ..

 


 “내 그릇에 알록달록” 담는 과일을 하나씩 앙증맞게 담은 그림책 《딸기는 빨개요》입니다. 참 곱게 그렸고, 참 재미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왜 ‘빨간빛-노란빛-주황빛’처럼 옮기지 못했을까요. 한국 아이들한테는 한국말로 ‘빛깔’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지요.

 

 알록달록 어여쁜 빛깔을 알록달록 아리따운 말구슬로 엮으면 참으로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두 아이 아버지인 나는 아이랑 나한테 선물하려고 이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좋은 책, 좋은 마음밥, 좋은 선물, 좋은 꿈, 좋은 이야기밥, 좋은 하루로 빛내는 예쁜 그림책이라고 여겨 장만합니다. (4345.3.2.쇠.ㅎㄲㅅㄱ)


― 딸기는 빨개요 (뻬뜨르 호라체크 글·그림,시공주니어 펴냄,2002.2.10./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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