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사진

 


  두 아이를 씻기고 빨래를 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빨래나 밥하기나 청소처럼, 집에서 날마다 으레 자주 하는 일거리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고 생각한다. 마침 첫째 아이가 통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기에 얼른 사진기를 가져온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이렇게 씻기면서도 막상 아이 사진을 찍자고 생각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하루 내내 아이랑 복닥이며 아이들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왜 아이들 씻길 때에는 사진을 찍자고 생각하지 못할까. 아무래도 후다닥 씻기고 재빨리 빨래를 마쳐야 다른 집일을 더 일찍 끝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사진으로 찍자면 가장 쉽게 가장 흔히 찍을 만한 집일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막상 ‘사진쟁이가 가장 안 찍는’ 모습이 바로 집안일 하는 삶. 저마다 집에서 날마다 으레 하는 일을 사진으로 담아서 나눈다면 얼마나 재미날까. 다 다른 살림새와 다 다른 이야기를 꽃피우며 얼마나 앙증맞고 놀라울까.


  이른바 ‘생활사진’이니 ‘다큐멘터리’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빨래하는 삶이나 밥하는 삶이나 밥먹는 삶이나 설거지하는 삶이나 아이들이랑 노닥거리는 어버이 삶이나, 이런저런 흔하고 수수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 아주 드물다. 골목길 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는 사람들조차, 골목집 빨래줄마저 사진으로 그닥 안 찍기 일쑤이니, 이 나라에서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셈일까.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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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손

 


  바야흐로 따뜻한 날을 맞이하니, 여러모로 할 일이 많다. 그러고 보면, 어느 시골집이나 겨울철에는 곰이나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듯 웅크리며 느긋하게 쉬고, 들꽃 흐드러지는 새봄부터 차츰 바빠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맞아들일 집일은 날마다 같은 크기요, 우리한테 논은 없으나 뒤꼍 땅뙈기가 있어 밭으로 삼자면 일거리가 꽤 될 테고, 이제부터 도서관 책꽂이랑 책을 알뜰히 갈무리해야 한다. 첫째 아이는 아주 쉬잖고 뛰어놀아야 할 나이요, 둘째도 무럭무럭 자란다. 마음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는다면 이 숱한 일을 치르지 못한다.

 

  봄맞이 빨래를 실컷 하느라 손가락 마디가 쩍쩍 갈리지며 트는가 하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빨래는 빨래대로 두툼한 겉옷을 많이 빨아야 하니 팔뚝이 저리기까지 하지만,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잇다는 만큼, 손가락이며 손바닥이며 손목이며 쉴 겨를이 없다. 글을 쓴다는 일이란, 어떤 삶을 꾸린다는 이야기가 될까. 밥을 마련하고 옷을 짓고 집을 돌보는 손으로 글까지 쓴다고 하는 일이란, 어떤 사랑을 펼치겠다는 이야기가 될까. 옆지기를 아끼고 아이들을 어루만지는 틈을 다시금 쪼개어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떤 꿈을 이루려는 나날이 될까.


  이제 시골마을 흙일꾼이라면 누구나 실장갑을 끼고 일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실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가락 마디마디 트고 갈라지며 쑤시지 않은 데가 없으리라. 헌책방 일꾼은 실장갑을 여럿 끼고, 실장갑 사이에 비닐장갑을 덧낀다. 하루 내내 쉴 짬이 없을 뿐더러 물을 자주 만져야 하는 일꾼들 손이란, 한결같이 숨을 들이마시는 염통처럼, 한결같이 핏망울 흐르는 핏줄처럼, 한결같이 움직이는 온몸 힘살처럼, 목숨 하나 받아 마지막 숨을 쉬고 고요히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씩씩하고 튼튼하게 일하는 손이라 하겠지.


  문득 아이 손을 잡는다. 아이 손이 참 작다. 아직 어리니 손이 작을 테지. 하루하루 손이 커질 테고, 머잖아 아버지 손보다 커질 수 있겠지.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손을 얼마나 잡아 주었을까 궁금하다. 나는 내 아이들과 옆지기 손을 얼마나 자주 오래 따사로이 잡는지 궁금하다. 서로서로 손마디와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등을 따사로이 느끼며 저녁나절 곱게 접으며 잠자리에 든다.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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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

 


도마에
먹다 남은 다시마 조각
올려놓고
칼로
토막토막 썬다.

 

이윽고
빈 도마에
아무것 없지만
작은 나무칼로
마늘을 다지듯
통통통통 내리친다.

 

곧이어
작은 접시
작은 밥그릇
작은 수저
작은 국자
방바닥에
죽 늘어놓는다.

 

예쁘게 차린 밥
예쁘게 먹는다.
곱게 먹은 밥상
곱게 치운다.

 

다섯 살 사름벼리
두 살 산들보라
소꿉놀이 한창.

 


4345.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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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암, 청춘은 청춘 - 오방떡소녀의 상큼발랄한 투병 카툰
조수진 글.그림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
 [만화책 즐겨읽기 124] 조수진, 《암은 암, 청춘은 청춘》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이 아파서 힘들어 할 때에 참 슬픕니다.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이 아플 때에도 기운을 차리면 좋겠어요. 아프다고 괴로울 까닭이 없고, 아프니까 서러워야 하지 않아요. 아픈 일도 즐거운 삶이요, 아픈 나날도 고마운 하루예요.


  참말 몸이 아파 아무것 못하고 드러눕는 일이란 고달픕니다. 고달픈 나머지 몸이 더 축 처지기까지 해요. 아이들하고 더 살가이 놀기를 하나, 아이들 옷가지 빨래를 하나, 아이들을 씻기거나 먹이기를 하나, 집안을 치우거나 이불을 털기라도 하나, …… 참으로 깝깝합니다.


  그러나, 몸이 아픈 채 살아가며 내 둘레 좋은 사람들한테서 좋은 사랑을 받습니다. 때로는 좋은 사랑 아닌 모진 손길이나 거친 막말을 듣기도 할 테지요. 기쁜 삶을 즐거이 못 누리고, 아픈 삶이 더 아프고 피멍이 들는지 몰라요.


  꿈이 없는 나날이 될 수 있어요. 꿈하고 동떨어진 하루로 젖어들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는 꿈을 놓을 마음이 없어요. 앓아누워 손끝 하나 못 움직이며 끙끙거리지만, 내 둘레에는 틀림없이 나를 아끼며 믿고 돌보는 따스한 손길이 있다고 느끼며 기다리니까요.


- 밤새 노는 거,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거, 맛집 찾아다니는 거, 그런 거 무지무지 좋아하고, 운동이라고는 고등학교 이후로 끝, 뾰족한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니고, 약속 없을 땐 집에서 TV만 보고 앉았던, 공부랑 일은 악착같이 하면서 건강 챙기는 일은 무조건 귀찮아했던. (10쪽)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이 좋은 밥을 먹기를 꿈꿉니다. 나쁜 밥은 안 먹고, 나쁜 일은 안 하기를 꿈꿉니다. 무농약 유기농 곡식이라서 좋은 밥은 아니에요. 내 끼니를 내 땀을 흘려 거둔 곡식으로 챙길 수 있으면 좋은 밥이라고 느껴요. 내 손으로 내 땀을 흘리지 못하더라도, 내가 마련한 먹을거리를 내 좋은 사랑을 담아 차릴 수 있으면 좋은 밥이 된다고 느껴요.


  부디 가장 좋은 길을 걸어가면 좋겠어요. 일부러 덜 좋은 길을 가지는 않기를 빌어요. 애써 더 좋은 길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구태여 나쁘거나 궂은 길에 휩쓸리지 않기를 빌어요.


  모두들 기쁜 사랑이 열매를 맺어 태어나잖아요. 누구나 고운 사랑이 씨앗이 되어 자랐잖아요.


  가장 좋은 말을 나누고, 가장 좋은 웃음을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가장 좋은 일을 찾아, 가장 좋은 힘을 들여 어깨동무할 때에 즐거워요.

 

 


- 회사를 다니면서 아플 때는 참 눈물나게 서럽더니만, 그만두고 나니까 또 좋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거 있지요. (39쪽)
- 환자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나 봐요.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어쩐지 마음을 쓰기도 하고, 또 누군가 잘해 주면 금방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요. (92쪽)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이, 다툼도 미움도 시샘도 없이 살아가면 좋겠어요. 전쟁으로 지키는 거짓 평화가 아니라, 평화로 사랑하는 평화를 누리면 좋겠어요. 전쟁무기 잔뜩 갖추어 평화를 지킨다고 둘러대지 말고, 참말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돌보면서 평화를 누리면 좋겠어요.


  전쟁무기 만드느라 돈을 쓰지 말고, 마을을 살찌우고 가꾸는 일에 돈을 쓰면 좋겠어요. 전쟁무기 만드느라 머리를 쓰지 말고,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꿈을 키우는 데에 머리를 쓰면 좋겠어요. 전쟁무기 만드느라 공장을 세워 품을 팔지 말고, 내 보금자리를 보살피는 일에 품을 팔면 좋겠어요.


  시험점수 잘 따려 하는 일은 공부가 아니에요. 아니, 공부인지 모르지요. 다만, ‘배움’이나 ‘가르침’은 못 될 테고요. 슬기롭게 배울 이야기는 시험점수가 아니에요. 아름답게 나눌 이야기는 시험성적이 아니에요. 대학생이라서 일을 잘한다면, 고등학생이나 초등학생은 일을 못하나요. 대학생이 풀베기를 잘하나요. 대학생이 무농약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을 줄 아나요. 대학생이 농약을 만들고 항생제를 만들며 비료를 만들지 않나요. 대학생 아닌 사람이 손으로 모를 심고 손으로 낫질을 하지 않나요.

 

 


- 제가 암에 걸리기 전부터도 항상 언니는 절 무진장 돌봐줬어요. 그리고 요즘 언니는, 열심히 일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각종 암 관련 정보 검색 중. (136쪽)
- 그렇게 장만한 두 장의 두건. 일상의 행복은 작은 것에서 오는 건가 봐. 두건 두 장을 장만하고 금세 행복해진 오방떡 소녀! (207쪽)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이 스스로 착한 벗님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스스로 이웃하고 살가이 사귀고, 스스로 살붙이를 어여삐 아끼면 좋겠어요.


  남들을 탓하며 하루를 보내기에는, 내 좋은 하루가 너무 아깝잖아요. 남들이 따라오기를 기다리기에는, 내 기쁜 나날이 너무 아쉽잖아요.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일구면 좋겠어요. 나부터 스스로 내 넋을 아끼면 좋겠어요. 좋은 살림을 좋은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좋은 이야기를 좋은 말마디로 영글면 아름다우리라 믿어요.


  오늘 바로 이곳에서 살며시 손을 맞잡고 들길을 걷는 아이들이 예뻐요. 오늘 바로 이곳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옆지기가 예뻐요.


  좋은 삶일 때에 좋은 꿈을 꿔요. 좋은 사랑일 때에 좋은 책을 찾아서 읽고, 좋은 말로 좋은 편지를 써요. 좋은 눈빛으로 좋은 땀을 흘리고, 좋은 발걸음으로 좋은 마을을 일구어요.


- 당신들 잘못이 아니야. 단지, 무슨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거야, 난. (16쪽)

 

 


  조수진 님 만화책 《암은 암, 청춘은 청춘》(책으로여는세상,2009)을 읽습니다. 만화를 그린 조수진 님은 끝내 암으로 죽습니다. 이 책이 나오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조용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암은 암이고 젊음은 젊음이라 했는데, 곰곰이 더 살피면, 암도 내 젊음이면서 내 삶이에요. 슬픔도 내 삶이면서 내 젊음이에요. 웃음도 기쁨도 괴로움도 고단함도 모두 내 삶이자 내 젊음이에요.

  따로 의사한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조수진 님 스스로 왜 암이라 하는 병에 걸렸는지 알아요. 그렇지만, 조수진 님은 이 까닭을 찬찬히 더 깊이 파고들면서 다스리지는 못했어요. 병원을 다니고 항암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이제껏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던 조수진 님 어여쁜 삶을 어여삐 사랑하는 길로 접어들지는 못하고 말아요.


  밥 한 그릇 더 좋게 챙겨서 먹고, 일이든 사랑이든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 여기는 곳에서 이루는 길을 찾아나서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해요.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벗어나 일산 호수공원 옆에서 지내는 데에서 그치거든요. 억지로 돈을 퍼부어 지은 못물이 아닌, 봄에는 봄빛을 담고 겨울에는 겨울빛을 실으며 천천히 이루어진 냇물과 멧자락과 들판이 어우러지는 삶터를 찾아나설 수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스스로 좋은 삶터를 꿈꾸고, 스스로 좋은 삶길을 걸어갔다면 한결 즐거울 텐데요.


  그러나, 조수진 님 또한 초·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앞만 보고 달렸어요. 다른 길은 하나도 못 보면서 살았어요. 나는 조수진 님을 탓할 수 없어요. 조수진 님이 더 넓고 깊이 꿈꾸지 못한 대목이 슬플 뿐이에요.


  다만, 앞만 보고 달리던 길에서, 암이라는 병이 도드라지면서 비로소 돈벌이와 악다구니 같은 도시살이에서 조금은 풀려났어요. 이러면서 만화를 그렸고, 이 만화에 조수진 님 삶을 찬찬히 실었어요.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삶을, 스스로 바라보며 느끼는 대로 담았어요.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을 담지는 못했어요. 암이 잦아들면 무엇을 하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암이 그대로 몸속에 녹아들면 이때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런저런 꿈까지 그리지 못했어요.


  몸에 깃든 병을 스물다섯 살에 알아채어 스무 해 가까이 아픈 채 살다 떠난 홍윤 님이 남긴 《별 다섯 인생》이라는 책을 읽으면, 이 책에는 아파하는 슬픔도 틀림없이 있지만, 아파하는 삶을 스스로 아끼며 좋아하는 꿈도 나란히 있어요.

 


- 한 번은 제가 어떤 요양원에서 얼마 동안 지내면서 그곳에 자주 방문을 와서 찬양을 불러 주고 말씀을 나누는 젊은 전도사님을 혼자서 좋아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함께 요양원에 있던 어떤 언니가 그걸 알고는, “넌 좋아하는 사람의 짐이 되고 싶니?”라고 묻더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뭐랄까, 제 자신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렇지만! 울 언니는 단호하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정신이 아파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보다는 몸은 아프더라도 마음이 훌륭한 사람이 더 나은 거야!” (221쪽)


  미우라 아야코라 하는 일본사람은 일찌감치 ‘죽은 목숨’이었다지만 참 오래오래 살았어요. 권정생이라 하는 한국사람은 참말 젊은 나이에 ‘죽은 목숨’이었다지만 참 오래오래 살았어요.


  두 사람 모두 더없이 아파 미칠 노릇인 몸뚱이를 늘 붙잡으면서 날마다 아파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아파 미칠 노릇이면서 즐거움에 겹고 웃음이 넘치는 글을 남겼어요. 아플 때에는 아무것 못하고 자리에 드러눕지만, 겨우 손끝을 움직일 만하다 싶으면 글조각을 여미었어요.


  마음 여린 착한 사람들은 스스로 더 높이지 않고 스스로 더 낮추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하고 가장 사랑할 만한 길을 찾아요. 늘 오늘 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거든요. 노상 오늘로 삶을 마감할 수 있거든요. 날마다 가장 좋은 삶을 누리려 애써요. 글 한 줄을 쓰더라도 온힘과 온사랑 가득 담는 마지막 글이 되도록 했어요.


  《암은 암, 청춘은 청춘》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멧새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으며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면, 여름바람이 후박나무 잎사귀 스치며 춤추는 노랫가락을 한 번이라도 들으며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면, 가을햇살이 벼이삭 따사로이 보듬는 손길을 한 번이라도 곁에서 나란히 누리며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면, 하얀 눈송이가 온 들판 고요히 덮고 흰별 숱하게 빛나는 밤하늘을 한 번이라도 바라보면서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면, 《암은 암, 청춘은 청춘》이라는 만화책은 한 권으로 끝맺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4345.3.11.해.ㅎㄲㅅㄱ)


―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조수진 글·그림,책으로여는세상 펴냄,2009.5.18./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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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꼬마 인디언
루터 스탠딩 베어 지음, 배윤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참 좋아하는 환경책 가운데 하나인 <숲속의 꼬마 인디언>인데 아마 2쇄를 못 찍은 듯싶다. 더구나, 이 책은 '좋은 환경책'으로 뽑히는 일조차 아직 못 보았다고 느낀다. 이 밤에 문득 너무 슬프다고 느낀다. 2005년에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느낌글을 썼지만, 오마이뉴스에만 걸쳤을 뿐 아무 데도 올리지 않았던 옛글을 새로 손질해서 올려 본다. 부디, 늦게나마 이 책이 제대로 읽히며 받아들여지기를 꿈꾼다.....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흰둥이
 [환경책 삶책] 루터 스탠딩 베어, 《숲속의 꼬마 인디언》


 - 책이름 : 숲속의 꼬마 인디언
 - 글쓴이 : 루터 스탠딩 베어(오타크테)
 - 옮긴이 : 배윤진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5.3.19.)
 - 책값 : 8500원

 


 (1) 자연과 사랑


  해마다 오월이면 시골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논마다 모를 심어 물 가득 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논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제 시골은 더할 나위 없이 바쁜 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내기철은 지난날하고 견주어 무척 이르다고 합니다. 모내기는 보리를 다 거두어들이고 털고 밭을 간 뒤에야 했다고 하는데, 요사이는 거의 달포쯤 일찍 모내기를 한다고 할까요. 날씨와 철을 거스르고 그저 ‘빨리빨리, 많이많이’를 외치는 도시 물질문명 흐름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얼른 심고 얼른 거두어 돈을 더 벌자’는 데로 이어진다고 할까요.


.. 우리는 자연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배워 나갔기 때문에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을 사랑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편히 먹고 살아가라고 그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내어주는 것 같았다 ..  (16쪽)


  맹자를 낳아 가르친 어머님은 아이가 자라는 삶터를 참으로 깊이 살펴야 한다고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그래,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맹자 어머니가 집을 세 차례 옮긴’ 이야기를 듣고 자라요. 그러면 요즈음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이를 낳는 어버이나,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은 둘레 삶터를 어느 만큼 생각하며 살아가나요?


  사람들이 착하게 어울리고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삶터라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잘 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북돋우는 어버이요 어른인가요? 더 이름높은 대학교에 잘 들어가도록 할 만한 터전이 되는 데에 아이들을 몰아넣는 어버이요 어른인가요?


  돈을 버는 일자리 얻는 어른들 일터를 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날 삶터는 위와 아래와 옆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시멘트 도시입니다만, 일터 또한 옆 부서 사람도 모르고 옆 회사 사람도 모릅니다. 옆 가게에 누가 어떤 꿈과 사랑으로 일하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옆 건물은 어떤 이야기 감도는 터전인지 살피지 않아요.


  어린이나 어른이나 둘레 삶터에서 ‘배울’ 수 있는 이야기나 ‘나눌’ 만한 사랑이란 없어요. 오로지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더 빨리 성공하고 떵떵거리면서 아늑하게 사는 일이야’ 하는 대목만 되풀이합니다. 풀과 흙과 햇살과 냇물을 곁에 두면서 사랑을 배우던 마음(자연스러움을 배우는 마음)은 어느 결엔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숲속의 꼬마 인디언》이라는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인디언들은 자연이 지혜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자연의 현명한 법칙을 깨우쳤다(17쪽)”고 말합니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해와 달을 보면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촉촉한지 메마른지를 느끼면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벌레와 새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아도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옛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풀과 열매와 나무를 찬찬히 살펴서 ‘사람이 먹어 좋은 푸나무 열매와 곡식’을 알아냈습니다. 이 모두 자연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얻는 슬기이자 깨달음입니다.


.. 백인들이 말을 길들일 때 보면 거칠고 잔인한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길들일 때에는 말에게 절대로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 온순하게 길들인 조랑말은 학대를 받으며 길든 녀석보다 훌륭했고 믿음직스러웠다 ..  (42쪽)


  “우리가 말을 잘 아는 만큼 녀석도 우리를 참 잘 이해했다”는 수우겨레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글쓴이는 “수우족에게는 욕도 없고 흉악한 말도 없다. 나는 백인들이 말몰이를 대대적으로 할 때마다 동물들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을 보았다. 백인들은 혀를 간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48쪽)” 하고 덧붙입니다.


  참말, 지난날 흰둥이랑 오늘날 한겨레랑 엇비슷합니다. 너무 거친 오늘날 한겨레예요. 너무 메마르고 차가우며 쌀쌀맞은 오늘날 한겨레입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끔찍하게 거칠고 메마릅니다. 학교도 집도 마을도 학원도 회사도 국회의사당도 신문사도 방송국도 …… 어디를 보고 어디를 찾아가도 차가우며 쌀쌀맞습니다.


  ‘혀를 간수하는 길’을 배우지 못한 흰둥이들 맞습니다. 이들 흰둥이는 혀뿐 아니라 손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합니다. 둘레 사람을 괴롭히고 끔찍하게 죽이는 무기를 엄청나게 만들어서 잘못도 죄도 없는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모질게 때려잡고 죽입니다. 흰둥이들은 머리 간수하는 길마저 배우지 못해서, 그 많은 책과 학문으로 이뤄낸 지식과 기술을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겁게 두루 나누는 데’에 쓰지 않고 돈만 많이 벌고 남보다 높고 큰 자리에 올라앉으려는 데에만 씁니다. 이를테면 경제학과 법학을 훌륭하게 공부한 이들이 이런 지식으로 ‘대기업 세금 안 내기’ 하는 일에 머리를 빌려주듯 말입니다.


.. 초원뇌조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춤을 추는 사실에서 나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새벽녘이야말로 생명체들이 하루 활동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시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밤새도록 춤을 추고서 해가 뜰 무렵 잠자리에 드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 인디언과 그들이 기르는 동물이 말이나 눈빛만으로도 서로 잘 헤아리는 사이라는 것은 신비로울 것도 없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85, 202쪽)


  사람도 목숨이요, 짐승도 목숨입니다. 어느 목숨이든 햇볕과 함께 따사로운 사랑을 북돋웁니다. 햇살을 누리며 너그러운 꿈을 빛냅니다. 햇빛을 나누며 살가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매질이나 손찌검’만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아요. ‘막말이랑 거친 몸짓’으로도 아이들을 들볶아요. 돈으로도 아이들을 괴롭히고, 학벌과 학원과 시험공부로도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체벌은 ‘사랑스러운 매’가 아닌 ‘폭력’입니다. 체벌을 안 한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해야 사랑이 됩니다. 밥을 안 굶긴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담은 밥을 차려야 사랑입니다. 예쁘장하게 옷을 입히고 자가용을 태운대서 사랑이지 않아요. 참으로 사랑스레 아이들을 얼싸안고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랑이에요.

 


 (2) 자연과 사람


  아이들을 낳아 학교에 보내려 할 때에는, 더 낫다 싶은 교육법이라든지 교수법이라든지 학원이나 학교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더 낫다 싶은 교재와 교육과 학교와 시설을 살피기 앞서, 어버이부터 스스로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길을 찾는 분은 뜻밖에 몹시 드물구나 싶어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안 가도 되거든요. 아이들은 반드시 학원을 다녀야 더 똑똑해지거나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거든요.


.. 아이들은 자라면서 결코 호되게 비난을 받거나 심한 체벌을 받지 않았다. 그 까닭은 수우족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호된 질책이나 매질이 효과가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활과 화살 다루는 법을 익히기 전에 먼저 그것을 만드는 기술과 지식을 배워야 했다 ..  (18, 24쪽)


  책을 읽기 앞서 ‘무언가 읽을 때에는, 이렇게 읽은 이야기를 내 삶으로 받아들여 하나씩 즐거이 옮기는 몸가짐’을 익혀야 좋다고 느껴요. 책을 더 많이 읽는 일은 대수롭지 않아요. 한 권을 읽든 몇 쪽만 읽든, 즐겁게 받아들여 즐거이 살아갈 수 있어야 아름답다고 느껴요.


  언제나 그래요. 책을 읽는 됨됨이가 먼저예요. 책으로 얻는 지식과 기술은 나중이에요. 활과 화살 다루는 법을 먼저 익힌다면, 활과 화살을 잘못 쓰거나 나쁘게 쓸까 걱정스럽고 근심하고 말아요. 책을 읽어 지식과 기술을 얻는다고 할 때에도 ‘어떻게 쓸는지’를 배우지 못하거나 깨닫지 않는다면 엉뚱한 데에 쓰거나, 그저 지식과 기술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고 말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요. 저를 낳아 기른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떤 일을 잘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왜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못하기 마련이고, 하다 보면 시나브로 익숙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어떤 일이건 배움이건 기술이건, 이런 일이나 배움이나 기술을 몸에 익히는 까닭을 헤아리고 받아들여야 즐거운 삶으로 거듭나요.


..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둘도 없는 스승이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학교를 마치고 나면 졸업장이라는 종잇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식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나름의 훈련을 다 받고 나면,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었다 ..  (62쪽)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살아가는 모든 길’을 가르치고 물려줄 사람이에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한 사람으로 사랑스럽고 착하게 살아가는 좋은 길’을 배우며 이어갈 사람이에요.


  아이한테 말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바로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쓰는 말이 달라집니다. 어버이가 옳고 깨끗하며 아름다이 말을 하면 아이들도 아주 마땅히 옳고 깨끗하며 아름다이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그릇되고 잘못되며 비뚤어진 넋으로 일을 하면서 이웃을 괴롭힌다면, 아이들도 이 모습과 버릇을 따르고 배우기 일쑤입니다.


  어버이는 둘도 없는 스승이에요. 어버이는 가장 좋은 길동무예요. 어버이는 곁에서 늘 마주하는 이슬떨이예요. 어버이는 언제나 첫손으로 꼽을 살붙이예요.


  아이들 앞에서 둘도 없는 스승이 되어야 할 어버이예요. 아이들을 ‘공부 지옥’과 ‘시험 지옥’에다가 ‘학원 감옥’으로 옭아매어서는 안 될 어버이예요. 아이들이 저마다 슬기와 꿈과 사랑을 뽐내고 빛내는 길을 찾아야 할 어버이예요.


.. 백인들은 몸이 아프면 쓰디쓴 약을 먹고 비싼 약값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백인이 인디언처럼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면, 그들의 건강은 지금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자연을 업신여기며 살아가고, 그 결과로 어렵게 번 돈을 약값으로 쓰고 있다. 우리 인디언 의사들(주술사)은 가난하지만 백인 의사들은 부자다 ..  (109쪽)


  아름답게 살아야 좋은 나날이에요. 돈을 벌어 돈을 쓸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못한 나날이에요.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큰돈을 주고 사서 먹는다는 요즈음이에요. 몸을 살리는 밥도 약도 뭣도 다 바깥에서 사다 먹는다는 오늘날이에요.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를 수놓는 온갖 먹을거리 가운데 ‘우리 몸에 나쁘다’ 하는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겠지요. 가게에 가득 늘어놓은 먹을거리 가운데 ‘이것을 먹으면 우리 몸이 나빠져요’ 하고 외치는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병이 참 쉽게 납니다. 몸이 금세 지칩니다.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갑니다.


  참 궁금합니다. ‘가공식품을 먹는다고 죽는 일이란 없다’고 하지만, 곰곰이 살피면, ‘가공식품을 먹는 사람은 천천히 죽음길로 가는 꼴’ 아닌가요. 몸속에 나쁜 것들이 차츰 쌓이면서, 아주 돌이킬 수 없는 죽음길로 가는 모양새 아닌가요.


  저마다 스스로 하고픈 일을 찾아서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저마다 일하는 곳을 스스로 아주 즐겁게 여기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는 하는지 몹시 궁금해요. 회사라 하니까 다니고, 어쩔 수 없이 얽매여, 이제는 이냥저냥 길들여진 채 도시에서 돈벌이 쳇바퀴에 빠진 삶은 아닌가 궁금해요. 연애요 여행이요 술이요 담배요 하지만, 막상 사랑도 나들이도 좋은 놀이조차도 아닌 흐리멍덩한 나날은 아닌가요.


  사람들마다 꿈을 품으면 좋겠어요.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 ‘사랑스레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마음’을 ‘내 삶을 흐뭇하게 받아들이며 즐기는 마음’으로 일구면 참 좋겠어요. 숨을 쉴 수 있는 하루로도 고맙고, 두 다리 멀쩡하다는 나날로 고마우며, 팔 하나 제대로 못 쓰더라도 한 팔이 있으니 고맙다고 여길 줄 알면 좋겠어요. 한 달 벌이가 30만 원이면 어떻고 50만 원이면 어떻고 1000만 원이면 어떻습니까. 많이 벌어서 많이 쓰기보다는 알맞게 벌어서 즐겁게 쓰는 삶이 훨씬 좋구나 싶어요. 더 벌어서 더 쓰기보다는 내 삶을 누릴 만큼 벌어서 기쁘게 쓰는 삶이 매우 즐거우리라 느껴요.


.. 우리에게는 빵도 파이도 케이크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을 과일과 식물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소박하게 살았지만 건강하게 잘 살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깡통에 몇 달씩이나 저장한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보관한 음식은 생기가 없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  (124쪽)


  좋은 삶을 생각하면서 사랑할 때에는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3) 자연과 사랑


  읍내 나들이를 하다가 여든 가까운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길에서 차를 잡습니다.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놓치신 듯합니다. 읍내로 가는 길에 다니는 차는 얼마 없고, 할머니 앞에서 차를 세워서 태워 주는 사람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는 “버스 타문 젊은 사람들은 없어유. 죄 칠십 노인들뿐이지. 젊은 사람들은 살면 안 돼유. 뭐, 해먹을 게 읎으니께유.” 하고 말씀합니다.


  읍내로 가는 동안 할머니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머니는, 벌이도 시원찮고 꿈도 이루기 어려우며, 일마저 고된 시골에 젊은 사람들보고 와서 살라 할 수 없답니다. 젊은이보고 시골로 오라 해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이곳 시골 언저리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는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니 듣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습인걸요. 오늘 우리 삶이 이렇거든요. 할머니는 “도시로 나가면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아무도 안 돌아오잖유. 먹고살기 힘들어도 다 도시로 가야지.” 하고도 덧붙입니다.


.. 겨울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재미있게 놀았다. 겨울은 길었고 지독하게도 추웠다. 온 세상이 모두 눈으로 뒤덮였고, 강은 꽁꽁 얼었다. 그래도 우리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잘 놀았다 ..  (159쪽)


  추우면 추운 대로 놀면 됩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일하면 좋습니다. 춥다고 방에서 웅크릴 까닭 없고, 덥다고 그늘에서 땀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더위도 즐기고 추위도 즐겨야 사람 몸은 튼튼해집니다. 우리 몸을 튼튼히 가꾸면 우리 마음도 차츰차츰 튼튼해집니다.


  봄입니다. 이 봄에는 들과 멧자락에 온갖 풀과 꽃이 잘 자랍니다. 이 풀과 꽃은 우리한테 좋은 나물이 됩니다. 맛은 심심하다고 하겠지만 원추리 잎을 따서 먹는 나물은 우리 몸에 참 좋습니다. 두릅도 좋습니다. 홑잎나물도 좋습니다. 죽나무도 좋고 돈나물도 좋습니다. 고사리와 도라지와 쑥과 냉이만 있지 않아요. 멧자락과 들판에 나는 모든 풀이 밥이자 약입니다. 이런 풀을 먹으면, 이렇게 철에 맞추어 스스로 자라나는 열매를 먹으면 몸에 탈이 날 일이 없습니다. 인삼을 먹거나 녹용을 안 먹어도 좋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씀바귀 뿌리를 캐서 먹어 보셔요. 곰쓸개보다 훨씬 우리 몸을 아늑하게 보살펴 줍니다.


.. 추장은 부족 사람들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봉사해야 한다. 그는 철저하게 이타적이어야 하고,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베풀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 전쟁에 나가는 것만으로 그 용기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희생을 할 수 있고, 사적인 이득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 용감해야만 한다 ..  (171쪽)


  “전시보다는 평화시에 더 큰 시험을 받았다”고 하는 수우겨레라고 합니다. 수우겨레 사람들이 시험받는 용기란, 전쟁터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일로만 시험받을 수 없고, 여느 때에 이웃을 얼마나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는가로 헤아린다고 합니다.


.. 그 순간 난 아버지한테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 사랑했고, 나도 아버지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한테 진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  (212쪽)


  처음이자 마지막으로(그 뒤로는 흰둥이들이 수우겨레가 살던 땅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는 바람에) 들소사냥을 나간 우뚝선곰(글쓴이 이름. 수우겨레 사람들은 태어날 적에 어버이한테서 이름을 받지만, 나중에 크면 제 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처음에 ‘오타쿠테(적을 많이 죽인 이)’였지만 나중에 ‘우뚝선곰’으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은, 어린 나이에 가까스로 새끼 들소를 잡았다는데, 화살을 다섯 발 쏘았답니다. 이때 어린 아들은 스스로 생각합니다. 훌륭한 사냥꾼이라면 한 발에 잡았어야 했는데, 다섯 발이나 쏜 일이 조금 부끄러워 나머지를 감출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아버지를 보자 사라졌고, 거짓말을 해서 내가 잘났다고 우쭐거리기보다는, 부끄럽다 하더라도 떳떳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요.


  글쓴이는 흰둥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면서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글쓴이는 이 책을 내놓으며 “백인 소년 소녀들이 이 책을 읽고 인디언 소년 소녀들에게 좀더 친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하고 밝혀요. 아마 인디언 동무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동무를 사랑하고 따스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겠지요. 지구별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 모두 곱게 아끼며 보살필 수 있기를 꿈꾸겠지요.


  곧, 이웃을 마주할 때에 나 스스로 살갑고 따뜻한 마음이라면, 서로를 다치게 하거나 해코지할 일이 없습니다. 전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꼼수나 꿍꿍이도 자리할 수 없어요. 수우겨레 마지막 추장으로 삶을 마감한 ‘우뚝선곰’은 흰둥이들이 수우겨레 삶과 발자국을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한편,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만가만 들려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살갑고 따뜻하게 어울리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겠다 싶습니다.


  《숲속의 꼬마 인디언》을 한국말로 옮긴 배윤진 님은 책끝에 한 마디 붙입니다. “글이라는 것을 꼼꼼하고 세밀한 논리와 설명의 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세련되지 못한 흐름이 나타나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촘촘한 백인 문화에 동화된 것이 아닐까(223쪽)” 하고.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한국땅에서 즐겁게 살아가면 됩니다. 나는 나대로 내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얼크러지면 됩니다. 스스로 가장 즐겁고 살가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에 해맑게 빛나는 나날입니다. 내 터전도, 내 마을도, 내 살림집도, 내 넋을 곱게 빛내며 곱게 돌볼 수 있습니다.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흰둥이라고 하지요?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한겨레로 바뀌며 슬픈 벼랑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습니다. 혀뿐 아니라 손과 머리와 마음 간수하는 길을 잃거나 잊으며 바보스레 나뒹굴 수 있습니다.


  좋은 새봄을 좋은 새봄으로 느껴 맞이하고 싶습니다. 좋은 살붙이를 좋은 살붙이로 껴안으며 새날을 기쁜 새날로 누리고 싶습니다. 나는 내 나이가 늘 좋습니다. 나는 내 동무와 이웃이 언제나 좋습니다. 나는 내 일거리가 좋고, 내 얼굴 팔다리 몸뚱이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고맙고, 내가 돌볼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4338.5.25.물./4345.3.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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