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생물 이야기 보고 느끼는 도감
오오노 마사오 글, 마쓰오카 다스히데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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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목숨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37] 마쓰오카 다쓰히데·오오노 마사오, 《땅속 생물 이야기》(진선출판사,2001)

 


  겨울눈이 온누리 흙을 하얗게 덮습니다. 겨울눈은 논밭을 덮고 멧자락을 덮으며 들판을 덮습니다. 겨울눈은 아파트 옥상을 덮고 아스팔트 까만 길을 덮으며 원자력발전소 지붕을 덮습니다. 춥디추운 겨울이 저물 무렵 온누리에 맑은 빗물 촉촉히 내립니다.


  맑은 빗물은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를 적시고 새봄을 알리는 작은 들꽃 풀잎을 덮으며 네 철 푸른잎으로 우거진 숲을 덮습니다. 이윽고 맑은 빗물은 큰도시 한복판 자동차 빗물을 때립니다. 높직한 아파트 유리창을 때립니다. 관공서와 초·중·고등학교 유리창을 때립니다. 이제 이 빗물은 나무를 타고 냇물이 되고, 시멘트로 만든 하수구를 거쳐 바닷물이 됩니다.


.. 나무가 자라면서 땅속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면 뿌리를 먹고 자라는 생물들이 많아집니다 ..  (6쪽)

 


  바람이 붑니다. 겨우내 차디차게 불던 바람이 잦아들며 봄내 포근하게 부는 바람으로 바뀝니다. 여름 동안 후덥지근하게 바람이 붑니다. 가을 동안 살랑살랑 따사롭게 바람이 붑니다.


  바람은 모든 목숨들한테 고운 숨결을 건넵니다. 아이도 어른도 고운 숨결을 누립니다. 해바라기도 수수꽃다리도 민들레도 냉이도 고운 숨결을 마시며 기운을 냅니다. 들쥐도 들고양이도 참새도 까치도 고운 숨결을 마시며 기운을 차립니다.


.. 썩어서 넘어진 나무 밑은 그늘이 져서 시원하고 눅눅합니다. 이런 곳에도 땅속에 사는 생물이 삽니다 ..  (15쪽)

 


  햇살이 따스합니다. 햇살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따스합니다. 겨울이라서 차가운 햇살인 적은 없습니다. 여름에만 따스한 햇살이지 않습니다. 겨울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며 사람들을 살리고 푸나무를 살립니다. 봄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펼쳐지며 지구별을 살리고 지구별을 덮은 흙을 살립니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갑니다. 곰도 흙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까마귀도 흙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보리는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벼도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시금치도 배추도 무도 당근도 하나같이 흙에 뿌리내리고 살아갑니다.


  흙이 있기에 좋은 나날입니다. 흙이 있어 기쁜 삶입니다. 흙이 없을 때에는 아무런 목숨도 더 살아가지 못합니다. 흙하고 한몸이 되는 풀과 나무가 있어 흙에 보금자리를 트는 짐승이 있습니다. 범도 여우도 승냥이도 멧돼지도 모두들 흙이 있을 때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먹이를 얻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흙이 얼마나 고마운 줄 짐짓 잊습니다. 흙을 잊은 사람들이 흙을 파헤치고 돌을 파묻습니다. 흙을 잊는 사람들이 흙을 치우고는 바닥에 돌을 깝니다. 집을 으리으리하게 짓습니다. 궁궐을 으리으리하게 올립니다. 흙에서 열매와 푸성귀를 얻던 사람들이 흙을 저버리고는 창을 만들고 칼을 갈아 전쟁을 만듭니다. 흙에서 삶을 누리고 사랑을 익히던 사람들이 흙을 등지고는 돈을 만들고 이름값을 만들며 무리힘을 만듭니다.


  사람도 살고 푸나무와 벌레와 뭇짐승이 살던 터에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사람만 들어설 수 있는 높은 탑과 절집과 무덤이 생깁니다. 오래지 않아 제철소며 발전소며 공장이며 하나하나 생깁니다. 그나마 흙으로 이루어졌던 길은 시멘트로 덮여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더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로 바뀝니다.


  어느덧 도시가 나타납니다. 도시에서는 흙 한 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래도록 흙 한 줌 없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고 쓰러집니다. 온통 공장과 가게와 건물과 길로 넘치던 도시에 조그맣게나마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숲터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숲터는 흙이 햇살과 바람과 물을 머금어 이루는 고운 삶터가 아닙니다. 돈으로 짓고 돈으로 가꾸며 돈으로 허무는 땅입니다.

 

 


.. 매미의 애벌레는 나무 뿌리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그 매미 애벌레의 몸을 자기 집으로 만들어 사는 버섯도 있습니다. 땅속에서 썩은 잎을 먹고 자라는 장수풍뎅이의 애벌레가 보입니다 ..  (24쪽)


  사람들 숫자는 차츰 늘어납니다. 10억이니 20억이니 30억이니 하다가는 50억을 넘고 60억을 넘습니다. 앞으로 사람들 숫자는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까요. 지구별을 온통 뒤덮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공룡처럼, 사람들 또한 끝없이 늘어나며 흙을 없애는 짓을 일삼을 테니, 사람들 스스로 언제 어떻게 사라지는구나 하고 깨닫지 못하면서 사라지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 모두 온통 화석으로 남으면서 먼먼 뒷날 새로운 목숨이 이 지구별에 깃들 때에 ‘지구별에서 사라진 공룡’처럼 ‘지구별에서 사라진 사람’을 파내어 박물관에 놓거나 전시관에 세우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공룡 그림책’을 그리고 ‘공룡 영화’를 찍듯, 아마, 즈믄 해쯤 뒤에는, 아니 고작 백 해나 쉰 해쯤 뒤에는 사람이 싸그리 사라지고, 이대로 십만 해나 백만 해쯤 지나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고는 ‘백만 해 앞서 잘난 척하며 지구별을 망가뜨리던 사람’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그리고 영화로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요. 도서관에는 어떤 책을 꽂으며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도서관은 사람살이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며, 사람들 스스로 어떠한 삶을 일굴 때에 아름다운 꿈을 품으며 착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칠 수 있는가요.


  학교는 어떤 데일까요. 학교에서는 어떤 교과서로 어떤 학문을 갈고닦아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꽃피우도록 이끄는가요. 흙이 무엇이고 흙이 어떠하며 흙으로 무엇을 이루는가를 이 지구별 학교는 얼마나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줄까요.

 


.. 얕은 곳이나 깊은 곳이나 땅속에는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흙이 딱딱하든 부드럽든 생물의 집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둡고 눅눅해도 이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땅속은 언제나 많은 생물들로 북적거립니다 ..  (30쪽)


  마쓰오카 다쓰히데 님 그림과 오오노 마사오 님 글로 이루어진 그림책 《땅속 생물 이야기》(진선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흙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숱한 목숨붙이 가운데 흙땅 아래쪽에서 지내는 목숨들 삶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을 눈여겨볼 일이 드뭅니다. 사람들은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이 있기에 사람이 사람다이 삶을 누릴 수 있는 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흙땅 아래쪽 목숨들은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살아갑니다.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흙에 깃들어 흙을 사랑하고, 흙을 품에 안으며 흙을 아끼는 하루하루를 누립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마당에서 달리고 기고 뛰며 놉니다. 큰아이는 신나게 달리고 작은아이는 볼볼 깁니다. 큰아이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작은아이는 이것저것 손에 쥐고는 입에 넣습니다. 마당이 흙땅이라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땅을 파며 놀겠지요. 시골집도 이제 모두 시멘트 마당이 되었기에, 아이들은 시멘트로 덮인 마당에서 뛰고 기며 놉니다.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시골에서조차 흙을 만지거나 누리거나 보듬기는 퍽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이 시멘트 마당에서 시멘트를 어떻게 걷어내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시멘트 없이 흙으로 바닥을 이룬 터에 흙으로 살림집 하나 짓는 나날을 꿈꿉니다.


  그림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삶은 흙에서 오고, 삶은 흙에서 마무리합니다. 숨결은 흙에서 샘솟고, 목숨은 흙에서 얻습니다. 사랑은 흙에서 태어나고, 믿음은 흙에서 꽃피웁니다. 새 봄철, 따순 바람을 느끼며 큰아이하고 뒤꼍 땅뙈기 한쪽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네 식구 좋은 밥이 될 좋은 푸성귀 얻기를 꿈꾸며 씨앗을 심습니다. 봄비는 씨앗을 살찌우고, 봄바람은 씨앗을 품으며, 봄햇살은 씨앗을 어루만집니다.


  오늘 흙땅 아래쪽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작은 씨앗들은 흙땅 아래쪽에서 어떤 나날을 누릴까요. 작은 씨앗들은 언제쯤 흙땅 위쪽으로 새싹 하나 틔우며 새로운 나날을 맞이할까요. (4345.3.16.쇠.ㅎㄲㅅㄱ)


― 땅속 생물 이야기 (마쓰오카 다쓰히데 그림,오오노 마사오 글,김창원 옮김,진선출판사 펴냄,2001.4.2./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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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2.3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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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과 라이브러리, 책과 리브로
 [책읽기 삶읽기 101] 도서관미디어연구소,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

 

 

 


  도서관과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를 읽습니다. 2012년 3월에 33호이니 아직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부터 꾸준히 내놓을 수 있으면 머잖아 50호를 넘고 100호를 넘으며 200호를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내놓은 책이기에 뜻있거나 값있지 않고, 새로 내놓는 책이기에 어설프거나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따사롭고 사랑스레 글 하나 빚을 수 있느냐에 따라 뜻이랑 값이 달라집니다.


.. 도서관은 독서실 정도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곳인 동시에,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곳이 도서관이다. 이 두 속성을 공간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도시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  (12쪽/독일 건축가 이은영)


  대학교에 문헌정보학과가 있습니다. 사서자격증이 있고,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도서관이 섭니다. 대학교에도 도서관이 있고,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인 한편 크고작은 도서관을 이럭저럭 갖춥니다. 초등학교에 도서관 마련하는 일이 널리 퍼졌으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한켠에도 아이들 읽힐 책을 꽂곤 합니다.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에는 으레 도서관이나 책꽂이를 갖춥니다. 책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책을 들어 사람을 배웁니다. 곧, 책 하나는 이야기 하나 담는 그릇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틀과 흐름과 넋을 보여주는 길동무나 길잡이 구실을 함께 합니다.


  사람은 어린이일 때나 어른일 때나 배웁니다. 어린이도 서로서로 가르치고, 어른도 서로서로 가르칩니다. 나이 다섯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마흔다섯 살이든 여든다섯 살이든, 싱그러이 살아가는 넋이라면 언제나 배우고 늘 가르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무엇이든 기쁘게 배우고 예쁘게 가르칩니다. 오늘 하루 어제 하루 고맙고 즐겁게 누린다고 느끼지 못할 때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어느 것도 가르치지 못해요.


  스스로 즐거울 때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스스로 고마울 때에 스스로 고맙게 가르칩니다. 어떤 지식이라서 배우지 않고, 어떤 지식이기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자격증을 배우지 않으며, 어떤 자격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워요. 삶을 느끼고 삶을 좋아해요.

 

 


.. 좋은 시는 우리를 무감하게 길들이지 않고 매일 새롭게 아파하며 신생하게 한다 ..  (26쪽/이은정의 시읽기)


  날마다 즐거이 누릴 삶인 줄 느낄 때에는 시를 읽으며 내 넋이 온통 시가 됩니다. 언제나 고맙게 누리는 사랑이라고 느낄 때에는 그림 하나 읽으며 내 얼이 가득 그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 한 줄은 글 한 줄이 되어 즐겁습니다. 노래 한 가락은 노래 한 가락이 되어 기쁩니다. 그림 한 장은 그림 한 장이 되어 아름답습니다.


.. 서점에 가서 비닐에 포장된 이 책을 뜯어 보지 말자. 책값을 아까워 하는 사람은 영혼이 가난해진다 ..  (29쪽/류대성의 청소년책 읽기)

 


  논밭에서 땀흘리기를 아까워 할 때에는 곡식이든 푸성귀이든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땀방울 알뜰히 흘릴 때에 맛나게 먹을 곡식이랑 푸성귀를 거둡니다. 나무는 언제나 힘껏 길어올린 밥과 물을 가지마다 골고루 보내며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사랑스레 여길 때에 아이가 씩씩하고 맑게 자랍니다. 아이하고 부대끼는 하루를 살가이 보듬을 때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큽니다.


  책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책으로 일굴 넋이 말라비틀어집니다. 품값을 아깝다 여길 때에는 내 삶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손 맞잡으며 마실을 다니거나 아이하고 밭고랑이 나란히 앉아 김매기를 싫어할 때에는 내 밥그릇이 말라비틀어집니다. 아이하고 고운 말 어여쁜 말 섞기를 귀찮다 여길 때에는 내 말이 말라비틀어집니다.

 


.. 지난 2월 24일 ‘손바닥TV’에 출연해서는 “시인이 시는 안 쓰고 왜 그런 곳에 가 있느냐고 하는데, 이게 모두 시”라며 웃었다 ..  (39쪽/송경동 시인 만나기)


  모든 하루가 모든 책입니다. 모든 삶이 모든 이야기입니다. 시가 아닌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태어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시로 빚지 못할 삶은 없습니다. 시로 영글 수 없는 삶이란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소설로 태어납니다. 모든 이야기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든 다른 이름 다른 옷을 입고 태어납니다.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며 시를 쓸 줄 알기에 삶을 쓸 줄 압니다.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할 줄 알기에 시를 쓰며 삶을 누릴 줄 압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달래며 끙끙 앓기에 시를 쓰고 삶을 읽을 줄 압니다.


  아이한테는 어버이 말 한 마디가 사랑밥입니다. 어버이한테는 아이 말 한 마디가 믿음밥입니다.

 


..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이런 자리에서 이런 영어를 쓰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담으며 사랑할 말을 이렇게 놓치거나, 잃거나, 버렸구나’ 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넋으로 곱게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  (42쪽/《뿌리깊은 글쓰기》 소개)


  좋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좋은 넋이 되지 않고서는 좋은 밥상을 차리지 못합니다. 좋은 꿈이 아니고서는 좋은 말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을 책 하나로 꽃피우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할까요. 삶을 책 하나로 갈무리하며 열매를 맺으려는 사람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할까요.


  다달이 나오는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2012.3.)는 어떤 사람들 어떤 삶과 어떤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을까요.

 


.. 우리 도서관(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의 요즘 동향을 보면 교과 과정에 연계된 책들이 가장 많이 대출된다. 다른 도서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몇 학년과 연계된 문학 읽기라든가, 과학 교과서와 연계된 과학 원리와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통계를 보는 입장에서 문학이나 학습 원리를 순수하게 바라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  (84쪽/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 대표 김윤순)


  아이들이 학교 교과서를 더 잘 외우도록 돕는 부교재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린다 하면, 도서관이 설 뜻은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지식을 외우고 점수를 따는 시험만 치르도록 하는 학교라면, 학교가 설 값어치는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하며 아이들 꿈을 밝히는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이들 믿음과 이야기를 북돋우는 어버이하고 하루하루 예쁘게 누리지 못한다면, 아이들한테 도서관은 어떤 뜻인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동무를 곱게 사귀며 즐거이 어깨동무하지 않고서,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점수따는 겨루기를 일삼는다면, 학교란 이 지구별에서 아무 값어치를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98쪽짜리 조그마한 잡지 《라이브러리&리브로》 하나로 어떤 삶을 밝힐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는 사람들 삶에 얼마나 스며들 만할까요. 조그마한 잡지 하나에 서린 이야기 하나는 우리들 아름다운 터전을 얼마나 따사로이 품을 만한 손길이 될까요.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잉글리쉬 존’처럼, ‘코리아’ 아닌 한국땅이지만, 도서관보다는 ‘라이브러리’를 말해야 합니다. 책을 책이라 적기보다는 ‘冊’으로 적어야 맛이라 여기는 지식인이 꽤 많고, ‘book’으로 적는 기자가 무척 많으며, 그예 ‘리브로’를 이야기하는 책일꾼이 많습니다. (4345.3.16.쇠.ㅎㄲㅅㄱ)


― 라이브러리&리브로 33호 (도서관미디어연구소 엮고 펴냄,2012.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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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민방위 소집, 마늘밭, 한미자유무역협정

 


  시골마을 민방위 소집을 이태째 치른다. 지난해에는 충청북도에서 치렀고 올해에는 전라남도에서 치른다. 지난해에 민방위 소집을 치를 때에는 ‘리’를 아울러 사람들이 모였고, 올해에 민방위 소집을 치를 때에는 ‘면’을 아울러 사람들이 모인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내가 모르는 젊은 분이 한 사람 왔다. 누구일까. 어느 집 젊은 분일까. 주소는 이쪽으로 되었으나 광주라든지 순천이라든지 광양에서 살아가는 분일까. 고흥군 도화면을 통째로 아울러 민방위 소집을 한다고 느낀다. 민방위 소집을 하는 이웃마을 회관에서, 이웃마을 이장님이 이름 적으라고 내민 종이에 찍힌 소집자 주소를 보니, 도화면 맨 아래쪽 지죽리까지 있다. 지죽에서 면 소재지까지는 면 소재지부터 읍내까지 될 만큼 먼 길인데.


  ‘면’을 아우른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민방위 소집에 나온 젊은 사람들, 이른바 서른 첫머리부터 막바지인 사람들은 대여섯. 소집자 이름에 올랐으나 안 나온 사람까지 치면 모두 열서넛 즈음. 면을 통틀어 민방위 소집을 받는 젊은 사람이 고작 이만큼이라 한다면, 젊은 사람이 참 없다는 뜻일 테지. 가만히 보면, 면내 우체국이건 면사무소이건 파출소이건 농협이건, 이런저런 데에서 일하는 마을 젊은이는 얼마 없다고 느낀다. 하나같이 순천에서 오고 광주에서 오며 여수나 광양 같은 데에서 온다. 그리고, 시골마을 젊은이는 순천으로 나가고 광주로 나가며 여수나 광양 같은 데로 나가지만, 이보다는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고 싶어 한다.


  서울에서 고흥으로 일하러 오고프다 하는 젊은 교사나 공무원이 있을까. 부산을 떠나거나 대구를 떠나거나 인천을 떠나거나 대전을 떠나면서, 전라남도 맨 끄트머리에 자리한 고흥으로 일하러 가겠다 하는, 또는 살림집을 옮기겠다 하는, 끝없는 가게와 아스팔트와 아파트 물결하고는 동떨어진 숲으로 들어가고 논밭 사이로 들어가며 바다를 품에 안는 터로 옮기겠다 하는, 이런 젊은 사람은 백만 사람 가운데 몇쯤 될까.


  앞으로 몇 해 더 지나면 내 민방위 소집은 끝난다. 나는 군대를 좀 일찍 갔으니 올해로 끝일는지 이듬해에 끝일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민방위 소집마저 끝날 무렵, 우리 면 테두리에서 민방위 소집을 받을 젊은 사람은 얼마나 남을까. 이 시골마을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더 젊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시골마을 젊은이 숫자로는 예비군 훈련은 못하지 않을까.


  날이 폭하다며,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마늘밭에 서서 허리 구부정하게 김을 맨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늘밭에서 김매기 하는 모습을 벌써 한 달째 바라본다. 농약을 안 치고 손으로 풀을 잡는다며 모두들 땀을 흘린다. 나이 일흔 여든에 옛날 옛적 흙일을 한다. 풀약 안 친 마늘을 거두려고 힘쓰는 2012년 3월 15일 하루를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바로 오늘 3월 15일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시골 면사무소도 조용하고, 시골신문도 조용하며, 시골 논밭도 조용하다. 그런 협정 한두 가지 때문에 갑자기 온누리가 달라지겠는가. 그러나, 이제 참말 도시사람들은 ‘풀약 안 친 마늘을 제값 치르며 사는 일’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채 ‘더 값싸게 사먹는 마늘’에 손이 갈 테지. 풀약 안 치며 거두는 쌀이나 보리나 밀이 아닌, 더 값싸게 사먹는 쌀이나 보리나 밀에 손이 갈 테고, 되도록 사료는 안 주고 짚과 소죽으로 키우는 소를 잡은 고기보다는, 관세가 사라져 아주 값싸게 사먹을 만하다는 소고기에 손이 가리라.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으니, 어느 곡식 어느 짐승한테 농약·비료·항생제·사료를 어떻게 얼마나 주는가를 어느 만큼 깨닫거나 느끼겠는가. 다 똑같다 여기며 값이 더 싸다는 쪽으로 손이 갈밖에 없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앞세우고, 돈벌기 힘겹다는 말을 들이밀며, 아이들한테 고기를 먹여야 키가 큰다는 말을 외치잖는가.


  보름달이 훤하게 마을을 비추다가는, 찬찬히 초승달로 이운다. (4345.3.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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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17 19:10   좋아요 0 | URL
이글을 읽으니 참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기 없네요.서울에서 귀농한다는 분들이 많다고 하지만 다 자식 공부 다시킨 분들이 대다수니 시골은 나이드신 분들만 계시는것 같네요.

파란놀 2012-03-18 07:07   좋아요 0 | URL
서울이나 도시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서로서로 사랑할 줄을 모르는구나 싶어요.
 

 


둘째 아이 씻긴 물로
첫째 아이 씻고,

 

첫째 아이 씻은 물로
내 몸 씻은 뒤,

 

내 몸 씻은 물로
네 식구 빨래를 한다.

 

빨래하던 물로
씻는방 바닥을 닦고
걸레를 빤다.

 

이 물은 개수구를 거쳐
도랑을 지나
냇물과 섞이며
바다로 흘러가거나
땅속으로 스미겠지.

 

머잖아 아지랑이 되어
하늘로 솔솔 올라가면
지붕을 때리다가는
빨래줄에서 살짝 쉬는
빗방울 되고,

 

봄까치꽃 별꽃
조그마한 잎사귀에
하나 둘 셋
찾아들겠지.

 


4345.3.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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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신문 읽기 2 : Hello 한미FTA, 광수생각

 


  전남 고흥군 도화면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간다. 우체국 일꾼이 우표딱지를 뽑는 동안 우체국 안쪽 홍보종이 꽂힌 자리를 두리번거리다가 〈FTA 소식〉 59호를 본다. 2012년 3월 5일에 나온 이 소식지는 무척 좋은 종이로 만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한국사람한테 옳게 알리겠다는 뜻으로 적잖은 돈을 들여 만드는 소식지라 할 텐데, 올 2012년 3월 15일부터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펼쳐진다지. 그러니까, 3월 15일에 발맞추어 만든 뜻깊은(?) 소식지라 할 만하다.


  〈FTA 소식〉 59호를 보면, 자유무역협정을 기다리는 사람들 애타는 목소리가 실린다. 이 목소리 가운데 “우리 농업의 미래는 현재 고령화된 노동력이 자연 도태되는 향후 5년이 결정할 것이다” 같은 이야기에 눈발이 퍼뜩 선다. 교육부 아닌 교육‘인적자원’부라 하는 만큼,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일꾼을 두고도 ‘고령화된 노동력’이라 하는구나. 그런데, 이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가리켜 ‘노동력’이라 하든 말든, 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 도태’된다고 한다니, 더구나 앞으로 ‘향후 5년’이면 다들 숨을 거둘 듯 이야기를 한다니, 그래 시골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빨리빨리 죽어야 한다는 소리일까.


  같은 2012년 3월 5일에 나온 〈한국농어민신문〉 2414호를 보면, 첫 쪽에 “이마트 물류단지 때문에 산지유통센터 벼랑에 몰려 존폐 걱정”이 나돈다는 이야기가 실린다. 3쪽에는 한중자유무역협정에 농업을 때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이야기가 실린다. 더없이 마땅할 테지만, 〈한국농어민신문〉 사설은 두 가지 모두 이명박 정부 농업정책이 아주 나쁘며 슬프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 있대서 오늘날만 농업정책이 아주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예전 다른 대통령일 때에도 농업정책이 좋았던 적은 하루조차 없었다고 느낀다.

 

 


  〈FTA 소식〉 59호에는 〈조선일보〉에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를 싣던 박광수 씨 만화가 맨 뒤쪽에 큼지막하게 실린다. 이 만화는 “한미FTA! 멀리 보고, 따져 보면 우리 마을, 우리 가족 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하는 말로 맺는다. 만화에 적은 몇 가지 말을 옮기면,


ㄱ. 레몬, 오렌지, 체리 등을 착한 가격으로. 피부 좋아지고, 다이어트 하고∼♪
ㄴ. 미국산 의류, 화장품, 가방 등을 저렴하게. 마음껏 멋내고∼♪
ㄷ. 외국인 투자증대로 일자리가 늘어. 취업에 성공하고∼♪


  이렇게 나온다. 아마 이 세 가지가 달라질 수 있겠지. 그런데 도시 아닌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시골 할머니들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여느 아이들은 여느 푸름이와 젊은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레몬과 오렌지와 체리를 ‘착한’ 값으로 사서 먹는다지만,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친 레몬과 오렌지와 체리를 ‘얼마나 착한’ 값으로 사서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니, 그리 궁금하지는 않다. 한국에서 만드는 화장품도 안 쓰고, 멋내는 가방이나 옷도 안 사 입는 우리 집에서는 ‘미국 옷·가방·화장품’ 어느 하나 부럽지 않고 바란 적조차 없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 따숩게 분다. 봄바람은 시골마을 논자락마다 푸르게 잎줄기 올리는 마늘 사이로 분다.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감귤도 잘 되고 유자도 잘 되며 참다래나 블루베리도 잘 된다. 석류도 잘 되고, 아마 올리브를 심어도 잘 되리라 생각한다. 오렌지나 레몬 또한 얼마든지 심어서 거둘 수 있을 테지. 이곳 시골마을은 해마다 차츰차츰 농약이든 비료이든 항생제이든 아무것 안 쓰는 흙일로 바뀐다. 이 나라에서 심고 거두어 이 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가 될 때에는, 멀리멀리 배로 실어 나를 일이 없다. 그날그날 실어 나를 수 있다. 굳이 방부제를 뿌릴 까닭마저 없다.


  농약도 항생제도 방부제도 안 쓰고 유기농으로 지은 오렌지와 레몬과 체리가 아니어도 ‘살빼기’ 하는 데에 도움이 될는지 잘 모르겠다.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외국 곡식이랑 열매 값이 더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농약이랑 항생제랑 방부제를 더 많이 먹는 셈일 텐데, 그러면 앞으로는 외국계 병원이 생겨서 외국 화학약품을 잔뜩 먹으면 되려나.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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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3-16 09:59   좋아요 1 | URL
글쎄 한미 FTA가 정부 말처럼 가족 경제에 큰 힘이 되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지는..^^;;;

파란놀 2012-03-16 16:11   좋아요 1 | URL
자유무역협정으로
이제 시골사람 삶은 더 나빠지고
도시사람도 도시사람대로 더 끔찍해질밖에 없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