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8 : 삶을 읽는 길

 


  일본사람 오바나 미호 님이 그린 만화책 《아이들의 장난감》(학산문화사,2004) 둘째 권을 읽으면, 184∼185쪽에 “애초에 너희 엄마가 널 싫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부모한테서 미움이나 받는 아이가 너처럼 제대로 자랄 수 있겠냐?”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기 앞서, 내 어버이한테 아이로 살아오는 동안에도 생각했습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싫어할 수 없을 뿐더러, 내 어버이가 나를 싫어할 수 없어요. 곧, 내 모습은 내 어버이가 나를 사랑하던 모습이요, 내 아이들 모습은 내가 어버이로서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인 만큼, 나 스스로 나를 살가이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나부터 좋은 삶을 꽃피우며 아이요 어버이인 나날을 즐거이 누릴 수 있어요.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둘째 권으로 나온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면, 69쪽에 “원래 돈을 벌려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번 돈은 우리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잘 쓰면 되겠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네 식구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기 앞서, 내 꿈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늘 헤아립니다. 돈이란, 많이 벌거나 적게 벌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나와 내 식구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을 즐기고, 서로서로 예쁘게 어우러지는 놀이를 누리며, 언제나 웃고 떠드는 이야기를 꽃피우는 나날일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적게 벌자며 하는 일이란 없어요. 스스로 기쁘려고 하는 일이에요. 스스로 삶을 누리기에 알맞을 만큼 돈을 벌어요.


  먼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한테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담는 말이나 책은 아주 덧없습니다. 〈허생전〉이라는 옛문학도 있고, 러시아사람 톨스토이 님이 적바림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돈벌이는 부질없습니다. 삶을 누리는 하루가 대수롭습니다. 돈더미는 덧없습니다. 삶을 나누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처세·경영·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내건 ‘돈벌이 하자는 책’이 쏟아집니다. 돈벌이 또한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하자는 책이 넘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는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는 길이나 아이를 보살피는 길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길을 몸과 마음에 담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좋은 삶길을 깨닫지 못하고는 ‘육아책·교육책·학습책’을 굳이 읽으려 합니다.


  종이로 된 책은 누구나 굳이 안 읽어도 됩니다. 종이로 된 책에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없어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모두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요,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내 손으로 일구는 삶이요, 내 다리로 빛내는 슬기예요.


  곧, 어떤 책을 읽는가는 아무것 아닙니다. 이 책을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읽어도 됩니다. 이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안 읽어도 됩니다. 내 삶을 읽고, 내 옆지기와 아이들 삶을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아무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오직 좋은 사랑과 빛나는 꿈을 건사하며 어깨동무하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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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9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어딘가 일그러진 사람들
 [만화책 즐겨읽기 134] 데즈카 오사무, 《불새 (9)》

 


  이웃마을에서 잔치를 벌입니다. 이웃마을 어느 집 둘째아들이 무슨무슨 박사 학위를 땄다며 크게 잔치를 벌입니다. 잔치를 벌이는 만큼 인사를 할까 싶어 아이를 데리고 찾아갑니다. 잔치는 면내 중학교 체육관에서 엽니다. 체육관 앞에서는 커다란 돌판에 고기를 신나게 굽습니다. 체육관 안쪽에는 책상이 가득하고 무대가 마련됩니다. 다음달에 국회의원을 뽑는다 해서 그런지, 국회의원 예비후보자까지 꽤 외진 시골마을 잔치마당으로 찾아와 ‘남자 어르신’한테 손을 내밀며 꾸벅꾸벅 인사합니다.


  국회의원 예비후보자가 ‘남자 어르신’하고만 손을 잡고 허리 숙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리를 살짝 비킵니다. 나는 저 사람하고 손을 잡을 마음이 없습니다. 이녁이 시골마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아닌 도시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라 하더라도 이와 같지 않았겠지요. 도시에서라면 아줌마이고 아저씨이고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이고 누구한테고 손을 내밀었겠지요.


  그나저나, 박사학위가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우며 기쁜 일이기에 면내 사람들을 몽땅 부른 듯한 큼지막한 잔치를 열 만한가 궁금합니다. 석사가 되거나 박사가 되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그러나 이 일을 놓고 이렇게까지 큰돈을 들이는 큰잔치로 삼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를 안고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면내 중학교 건물을 죽 살펴봅니다. 생각해 보니, 시골마을에서는 아이 가운데 누군가 대학교에 들어가도 마을 어귀에 걸개천을 걸어요. 시골마을에서는 아이 가운데 누군가 ‘서울에 있는 큰회사’, 이를테면 삼성이나 현대나 엘지나 에스케이 같은 큰회사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걸개천을 걸어요.

 

 


- “물이 나올까요?” “나오기만 한다면, 땅에 몇 만 번이라도 키스해 줄 텐데.” “덜컹덜컹.” “쳇. 기계가 기계 흉내를 내다니! 너는 마음 편해서 좋겠구나. 물을 안 마셔도 50년은 살 수 있겠지?” (26쪽)


  면내 중학교는 건물이 여럿입니다. 참 크구나 하고 생각하며 어느 건물 한가운데에 적힌 ‘교내 현황’을 읽습니다. 이 면내 중학교에는 학생이 모두 아흔하나요, 교사는 모두 열넷입니다. 학년마다 한 학급이 있고, 한 학급이자 한 학년이 서른 안팎인 셈입니다. 곧, 교무실 하나랑 교실 셋을 빼고는 모두 빈 교실이라 할 만합니다.


  예전에 이 시골마을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때에는 이 교실이 꽉 찼겠지요. 예전에 이 시골마을 면에 장터가 설 때에는 교실마다 쉰 예순 아이들이 바글거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빈 교실 가득한 커다란 중학교 건물이 휑뎅그렁하다고 느낍니다. 중학교 건물처럼 크고 많은 사택을 바라봅니다. 예전에는 이 사택이 꽉 찼겠지요. 사택으로도 모자라, 면내 곳곳에서 하숙하거나 자취하는 교사가 있었겠지요.


  그러고 보니, 시골마을 시골학교이지만, 막상 시골사람이 시골학교 교사 노릇을 할 수 없어요. 교사는 고향마을에서 교사 노릇을 못하고 자꾸 다른 데로 옮겨 다닙니다. 시골 우체국 일꾼도, 시골 면사무소 일꾼도, 시골 보건소 일꾼도, 시골 파출소 일꾼도, 하나같이 이웃 도시에서 이곳으로 ‘발령’이 나서 일하러 올 뿐입니다. 시골살이를 모르고, 시골살이를 헤아리지 않았으며, 시골살이를 꿈꾸지 않는 도시사람이 시골 공무원이 되어 시골사람하고 마주합니다.

 

 


- ‘우리 아버지는 섬의 가난한 어부였답니다. 하지만 늠름하고 남자다웠고, 나는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거예요, 틀림없이. 나는 10살 무렵까지 자연 속에서 자라 일본이, 세계가, 얼마나 변했는지 전혀 몰랐었죠.’ (86쪽)
- “코무야, 떠날 때가 되었구나.” “엄마! 금방 돌아올게요, 엄마! 여왕님이 엄마더러 자신의 모습으로 궁궐에 가 달라고 하셨어요. 엄마, 돌아올 때까지만이에요.” “이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너란다. 네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코무, 네가 지구에 가도 좋은 일은 없을 거야. 여왕님에게는 고향이라도 너에게는 다른 세계니까.” “엄마, 걱정 마세요. 나, 내 힘을 시험해 볼래요!” (167쪽)


  아이를 품에 안고 마을잔치 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옵니다. 박사가 되었다는 사람 얼굴은 못 보았고, 박사 아들을 두었다는 할아버지 얼굴 또한 못 보았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술담배 냄새 넘치는 자리에서 비껴나 아이하고 샛길로 빠집니다. 얕은 멧등성이 옆에 낀 작은 길을 걷습니다. 멧등성이 옆에 낀 중학교 울타리 길가에 멧새와 들새가 지저귑니다.


  새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이 새들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참 작은 새 조금 큰 새 꽤 큰 새가 멧자락과 들판을 넘나들며 아침을 열고 낮을 누립니다. 저마다 먹이를 찾고, 저마다 둥지를 틀며, 저마다 삶을 잇습니다.


  시골 면내에서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중학교에 아흔 아이가 다닌다 하고, 중학교 교사가 열넷이라 하지만, 또 시골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도 있다지만, 아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면내에서 마주치는 일은 드뭅니다. 모두들 어디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쉬거나 마실을 할까요.


  마을잔치가 벌어지지만, 마을잔치 자리에 아이들이 복닥거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리 뛰거나 저리 달리지 않습니다. 온통 할머니와 할아버지뿐입니다. 어찌 되든 잔치 자리인데, 이 잔치 자리에 젊은이와 어린이는 왜 보이지 않을까요. 젊은이와 어린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잔치자리에서 아무것도 얻어먹지 않고 슬쩍 빠져나왔기에 배고픕니다. 배고픈 아이를 걸려 집으로 돌아오기는 힘드니, 면내 택시를 불러 사천 원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조용한 집에서 조용히 낮밥을 먹고 조용히 부대낍니다. 살몃살몃 비추는 햇살을 머금으며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걷습니다. 둘째가 푸지게 눈 똥을 치우며 새 빨래를 합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새소리를 듣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하루를 돌아봅니다.

 

 


- “나는 당신을 지켜보다가 동정심이 생겼습니다. 이 별이 좋죠?” “네, 좋아요! 내 남편이 잠들어 있으니까요. 난, 다른 여자가 없어서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별은 남편과 나의 세계. 이 별에 자손을 남길 때까지 죽을 수가 없어요!” “좋아요. 당신은 지구인을 버린 거죠? 그러면 다른 별의 여성을 받아들여요. 다른 별 여성과 당신 아이들을 맺어 주세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 건 싫어요!” “다른 별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즉, 이 별에 새로운 종족을 만드는 거예요.” (118∼119쪽)
- ‘포근한 침대는 졸고 있는 코무가 깨지 않도록 살며시 에워쌓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고 있는 아기를 이불로 살짝 덮어 주는 엄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81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아홉째 권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 지구별 사람들은 어디를 바라보며 어디로 걸어가는 사람들인지 가만히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느 결로 예쁘고, 어느 무늬로 미우며, 어느 모양으로 아름답거나, 어느 모습으로 슬플까 생각합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나와 옆지기한테서 사랑을 받아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옆지기와 나한테서 받는 사랑을 즐거이 물려받은 가슴에 저희끼리 새 사랑을 일구어 새롭게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살림을 꾸릴 테지요.


  좋은 꿈이 아닐 때에는 좋은 사랑을 빚지 못한다고 느껴요. 좋은 넋이 못 될 때에는 좋은 믿음을 누리지 못한다고 느껴요. 좋은 눈이 아닐 때에는 좋은 흙을 건사하지 못한다고 느껴요. 좋은 손과 발이 아닐 때에는 좋은 일과 놀이를 펼치지 못한다고 느껴요.


  오늘날 사람들은 왜 자꾸자꾸 비틀어질까 싶어 슬픕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왜 자꾸 서로서로 겨루거나 다투거나 빼앗거나 윽박지르거나 괴롭히는가 싶어 슬픕니다. 왜 전쟁무기를 만들면서 평화를 억누를까요. 왜 공장을 지으면서 삶터를 망가뜨릴까요. 왜 권력자와 공무원을 만들면서 스스로 삶을 무너뜨릴까요.


  대통령이나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지 못해요. 왜냐하면 ‘나라’라는 울타리는 처음부터 없으니까요. 없는 울타리를 짐짓 있는 척 만들며 대통령이나 임금이 생기고, 대통령이나 임금을 모신다며 공무원이나 신하가 생겨요. 대통령이나 임금을 지킨다며 군대가 서요. 곧, 군대란 나라와 평화를 지키는 무리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임금이나 공무원을 지키는 무리일 뿐이에요. 군대가 있을 때에는 이웃한 ‘나라’ 여느 사람들을 짓밟아요. 군대가 이웃한 ‘나라’ 임금님이나 공무원만 노리는 일이란 없어요. 군대란 이웃한 ‘나라’ 여느 사람들이 일군 기름진 땅을 노리고, 기름진 땅에서 거둔 열매를 노리며, 기름진 땅을 일구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생각뿐이에요.


  ‘나라’에서는 아이들 숫자가 줄어드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요. ‘나라’에서는 ‘군인이 될 젊은 사내’ 숫자가 줄어들까 걱정해요. ‘군인이 될 젊은 사내’ 숫자가 줄지 않도록 애쓰면서, 이들 ‘군인이 될 젊은 사내’가 더 좋은 터전을 누리도록 애쓴다든지, 아니면 ‘군인이 될 젊은 사내’ 머리를 텅텅 비워 바보가 되도록 이끌면서 이들이 ‘나라’가 시키는 일을 고스란히 따르도록 애써요.

 

 


- “코무, 그래, 에펠의 30번째 아이였지. 엄마는 잘 계시니?” “다, 다, 당신은 로미죠?” “그래, 로미란다.” “아, 다행이다. 난 좀더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따뜻한 분이시네요.” “…….” “저, 로미,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들어주실래요?” “뭔데?” “그 눈과 귀라는 거 만져 봐도 돼요? 신기해서요.” “만져 봐.” “아, 물이 나온다. 와, 눈에서 물이 나오네요.” “울면 자연히 나오는 거야. 눈물이라고 하지.” “우리들은 울어도 소리만 나는데, 이상해. 역시 지구인이구나. 목아 미를 때 울어서 물을 마시면 좋겠다.” (148∼149쪽)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 없으면 일그러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품지 못할 때에는 죽은 목숨입니다. 몸뚱이는 숨을 쉬고 밥을 먹는다 하더라도, 사랑을 거느리지 않을 때에는 죽은 살덩이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사랑을 꽃피우기에 사람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살붙이를 사랑하며 내 이웃과 동무를 사랑합니다. 내가 디딘 땅을 사랑합니다. 흙땅에서 자라나는 풀과 꽃과 나무를 사랑합니다. 흙땅에서 자라나는 풀·꽃·나무에 기대는 뭇 벌레와 짐승을 모두 사랑합니다. 이들이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물과 바람과 햇살을 하나하나 사랑합니다.


  어우러지기에 사랑이 됩니다. 어우르며 어깨동무하기에 사랑입니다. 어울리고 노래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입니다.


  입을 맞추거나 살을 섞을 때에만 사랑이 되지 않아요. 입맞추기는 입맞춤으로 끝나기 일쑤요, 살섞기는 살섞기에서 맴돌기 일쑤예요. 참사랑으로 다시 태어나자면, 서로를 아낄 줄 아는 맑은 꿈이 깃들어야 해요. 참사람으로 살아가자면, 나와 모두를 곱게 어루만질 줄 아는 밝은 숨이 함께해야 해요.

 

 


- “이 사람들은 불완전해.” “그래. 몸이 반밖에 없어!” “그쪽이 이상한 거지. 한 명이야? 두 명이야?” “물론 한 명이죠!” “안 그러면 아기가 생기지 않잖아요?” (196쪽)


  어딘가 일그러진 사람들은 지구별을 자꾸 일그러뜨립니다.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은 지구별을 자꾸 망가뜨립니다.


  사랑을 물려받아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지구별을 찬찬히 사랑합니다. 사랑을 물려주며 사랑을 꽃피우는 사람은 지구별을 한결같이 사랑합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생각을 빚습니다. 나쁜 생각은 나쁜 생각을 빚습니다. 좋은 손길은 좋은 손길로 이어집니다. 나쁜 손길은 나쁜 손길로 이어집니다.


  어딘가 일그러진 사람들은 둘레 사람들을 자꾸 일그러뜨립니다. 사랑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둘레 사람들한테 시나브로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지구별 한쪽은 끝없이 일그러지지만, 지구별 다른 한쪽은 아주 천천히 되살아납니다. 앞으로 이 지구별은 어떻게 될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일그러지면서 지구별을 일그러뜨리는 사람만 가득하며 끝내 뻥 하고 터질는지, 스스로 사랑을 북돋우면서 지구별을 사랑스레 보듬는 사람이 늘어 시나브로 사랑이 감돌는지, 참말 알 길이 없습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 불새 9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5.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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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7
아서 랜섬 글, 유리 슐레비츠 그림,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억눌린 그늘에서 빛줄기를 품에 안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9] 유리 슐레비츠·아서 랜섬,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시공주니어,1997)

 


  러시아라고 하는 나라는 참 오래도록 무시무시한 독재자가 흙일꾼을 억눌렀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고단하고 고달프며 고된 러시아에서 예부터 여느 흙일꾼 입과 입으로 거쳐 내려오는 옛이야기는 그지없이 아름답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에 앞선 조선, 조선에 앞선 고려, 고려에 앞선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발해, 이들에 앞선 부여와 옛조선 모두, 여느 흙일꾼은 권력자가 부를 때마다 군인으로 끌려가야 했고, 수없이 세금을 내야 했으며, 언제나 무엇이든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겨레 옛사람도 오래오래 살가우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꽤 많이 물려주곤 했어요.


.. 똑똑한 두 아들은 농부 부부가 언제나 이것저것 챙겨 주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는 제때 밥만 얻어먹을 수 있어도 다행일 지경이었어요 ..  (5쪽)

 


  어떤 기운으로 옛이야기를 빚어 아이들한테 찬찬히 물려줄 수 있었을까요. 어떤 넋으로 옛이야기 한 자락 살가이 아끼며 아이들한테 고이 이어줄 수 있었을까요.


  옛이야기를 빚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궁금합니다. 오래도록 물려주는 이야기란 어떤 삶에서 지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임금님이나 궁궐 신하가 옛이야기를 지었을까요. 사대부나 싸울아비가 옛이야기를 지었을까요. 양반이라든지, 넓디넓은 땅을 차지한 부자가 옛이야기를 지었을까요.


  오래된 책에 한자로 적바림된 문학이 적잖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들 오래된 책에 한자로 적바림된 문학을 가르칩니다. 이른바 옛문학이라 합니다. 여기에 새로운 때에 새롭게 쓴 문학을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이야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옛이야기도 새이야기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옛이야기와 살아온 옛사람 옛삶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없습니다. 이와 함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 이야기와 오늘 이웃과 오늘 삶을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적바림한 지식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적바림한 지식으로 시험을 치러 성적을 매기고 계급(등수)을 나눕니다.

 

 


..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말했어요. “나도 가고 싶어요. 나도 맛있는 고기랑 보드라운 흰 롤빵을 먹고, 옥수수 브랜디를 마시고, 차르의 딸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어머니가 말했어요. “멍청한 녀석 같으니, 네가 가서 도대체 뭘 하겠다고 그래? 보나 마나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곧장 곰 품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아니면 네가 네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뭔지 몰라 저게 뭘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늑대들이 널 날름 잡아먹을 텐데.” ..  (9쪽)


  15세기 건축이니 10세기 문화이니 하고 학교에서 가르칩니다만, 막상 학교를 다니며 건축이나 문화를 배우는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아이는 없습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스스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지을 줄 아는 아이도 없습니다. 문학으로 사랑을 배운다든지 영어와 과학과 수학을 배운다 하더라도, 막상 어른이 되어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기까지, 내 좋은 짝꿍부터 내 살붙이와 내 아이들을 옳게 사랑하고 착하게 아끼는 길을 익히지 않습니다. 아이를 바르게 가르치고 아이와 즐거이 누리는 삶을 배우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사람끼리 나눌 웃음과 눈물을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누군가 곁에서 죽었을 때에 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 또한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흔히, 학교를 다녀야 ‘사회살이’를 배울 수 있다고 하나, 정작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사회살이’ 가운데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울 일이 없습니다. 손빨래를 배우나요 기계빨래를 배우나요. 밥하기를 배우나요 설거지를 배우나요. 아이낳기를 배우나요 아이키우기를 배우나요. 집짓기를 배우나요 집손질을 배우나요.


  때로는 ‘목공’을 하기도 한다지만, 낫질 호미질 삽질 가래질 쟁기질을 할 줄 모른다면, 공예이든 공작이든 ‘손놀림’을 얼마나 아름다이 돌보는 배움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사회살이’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지식조각만 머리에 가득 채우는 셈이라고 느껴요. 학교를 다닐수록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귀는 ‘사회살이’하고는 등을 진 채, 점수와 돈과 이름과 겉모습으로 ‘혼자 살아남기’에 치우치는 얕은 생각만 키우는 노릇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 “같이 드시자고 꺼내기가 부끄럽네요. 저야 괜찮지만 같이 드시자고 할 만한 음식은 아니거든요.” “난 괜찮소. 어서 꺼내시오. 하느님이 주신 음식을 좀 먹어 봅시다.” ..  (12쪽)


  똑똑하다 여기는 아이들 가운데 참말 똑똑하다고 느낄 아이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여느 어른들이 일컫는 똑똑한 아이들이란, 그저 영어 몇 마디 주워섬기거나 시험성적 조금 높다 하는 아이들일 뿐,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거나 돌볼 줄 아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람을 따스하고 넉넉히 품을 줄 아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란 빛나는 사람입니다. 맑은 눈이 빛나고 밝은 머리가 빛나며 싱그러운 가슴이 빛날 때에 비로소 똑똑한 사람입니다. 눈이 빛나지 않고서야 똑똑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빛나지 않고서야 똑똑하다는 말이 부질없습니다. 가슴이 빛나지 않은 채 지식만 쌓거나 책만 읽었다면 무엇이 똑똑하달 수 있나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면 아이를 함부로 학교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느껴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면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껴요.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면서 ‘학교에도 보낼’ 수 있지만, 아이를 올바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학교에만 넣는’다면 아이들이 망가집니다. 아이들이 망가질 때에는 어른도 나란히 망가지는데, 어른부터 일찌감치 망가진 삶이니까 아이들까지 망가뜨리려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학교에만 넣’고 말아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할 몫이란, 사랑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곧, 예부터 두고두고 물려준 이야기 한 자락이란 사랑 한 자락입니다. 어버이로서 당신 삶을 사랑하던 꿈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갈무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사랑을 받아먹은 아이들은 차츰 어른으로 자라고, 이윽고 어른이 되어 새로 아이들을 낳을 무렵에는, 지난날 제 어버이한테서 받아먹은 사랑이 깃든 이야기를 다시금 물려줘요. 새롭게 새 사랑을 새 아이들한테 물려줍니다.

 

 


.. 시종이 살펴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바보의 친구들이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종은 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죄다 하찮은 농부들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지요. 시종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궁전으로 돌아가서, 배에는 신사 분은 한 분도 없고 그저 지저분한 농부들만 잔뜩 있떠라고 전했습니다. 차르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농부와 결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무척 언짢아졌습니다. 이제 차르는 어떻게 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지 곰곰 궁리하기 시작했지요 ..  (31쪽)


  아서 랜섬 님이 그러모은 러시아 옛이야기에 유리 슐레비츠 님이 그림으로 새옷을 입힌 그림책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시공주니어,1997)를 읽습니다. 온누리에 둘도 없는 바보가 하늘 나는 배를 타고 독재자 차르한테 찾아가서 어여쁜 딸을 색시로 맞이한다는 줄거리를 담는 옛이야기입니다. 참 러시아사람은 대단합니다. 놀라운 꿈을 신나는 줄거리로 엮어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갈무리했어요. 서슬 퍼런 독재자 차르가 무시무시하게 칼을 휘두르고 윽박지르던 나날이었을 텐데, 입과 입으로, 눈과 눈으로, 가슴과 가슴으로, 이렇게 이야기 한 자락 고이 보듬었어요.


  옛이야기 한 자락 건사한 러시아 옛사람은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갈 때에 무얼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잘 알았겠지요. 새로 태어나 새로 살아갈 아이들은 좋은 사랑을 누려야 하는 줄 깨달았겠지요. 총도 칼도 돈도 힘도 이름도 한낱 부질없을 뿐, 오늘 이곳에서 예쁜 사랑을 즐거이 누리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더없이 빛나는 이야기인 줄 느꼈겠지요.


  억누르는 독재자가 있건 말건,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 셈입니다. 미친 칼부림과 전쟁놀이 일삼는 독재자가 있건 말건, 귀여운 아이한테 좋은 이야기밥을 사랑으로 먹인 셈입니다. 좋은 삶을 누리려 애쓰며 좋은 젖을 아기한테 물립니다. 좋은 흙이 되도록 땀흘리며 좋은 밥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 군인들이 궁전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고, 궁전 뜰에는 챙이 말려 올라간 모자를 쓴 장교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보는 하늘을 나는 배 위에 앉아서 길동무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이제는 차르가 두려워서 벌벌 떨 차례였습니다 ..  (45쪽)


  책이 지식만 담는다면 책에는 길이 없습니다. 책이 처세와 돈벌이만 다룬다면 책에는 삶이 없습니다. 책이 가벼운 재미와 놀이에 기울어진다면 책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책이 사람들 사랑하는 삶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이야기 하나 담기지 않습니다.


  사람은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과 좋은 삶길을 걷고 아이들과 좋은 사랑길을 걷습니다. 사람이기에 사람다운 꿈을 건사하는 사람길을 추스릅니다.


  옛이야기는 책이나 교과서 귀퉁이에 적바림되지 않아도 사람들 가슴에 아로새겨져 사랑스러운 손길로 이어집니다. 신문이며 방송이며 책이며 영화이며 온갖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적바림되거나 널리 알려진다 하더라도 막상 오래도록 이어가는 일이란 없습니다. 사랑이 아닐 때에는 이어가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을 때에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얼마 못 가 스러집니다.


  왜냐하면, 독재자 아무개 씨라 하더라도 밥을 먹어야 살아요. 권력자 아무개 씨라 하더라도 바람을 마셔야 살아요. 군인 아무개 씨라 하더라도 물을 마셔야 살아요. 햇볕을 쬐지 않고서, 어머니 몸에서 열 달을 살지 않고서, 어머니 사랑을 받아먹지 않고서 태어나거나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임금님이란 아무도 없습니다. ‘온누리에 둘도 없는 바보’란 바로 ‘여느 어머니’이자 ‘여느 아버지’입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 (유리 슐레비츠 그림,아서 랜섬 글,시공주니어 펴냄,1997.6.18./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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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나무를 베어 불을 때고
집을 짓고
연장을 만들고
그릇을 깎고
지게를 만들고
수저를 깎고
냇물 건널 다리를 놓는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빚고
문에 바르고
한 장 두 장 묶어
조그맣게 책을 엮는다.

 

나이테마다
숲이 살아온 빛살 깃들고
숲과 살아온 사람 손길
살며시 스민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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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창고 책읽기

 


  웬만해서는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왼쪽 첫째손가락이 쩍쩍 갈라져 빨래를 할 때마다 너무 따끔거리는데다가 다 마친 빨래를 죽죽 짤 때마다 몹시 쓰라리니 반창고를 붙인다. 아니, 빨래할 때에는 그럭저럭 견디는데, 둘째가 똥을 누었을 때에 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면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야 하니, 이때에는 배기지 못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둘째 밑을 씻길 수 없는 노릇이다. 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약국에 들러 반창고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면내 우체국에 몇 차례 드나들면서 약국 들르는 일은 깜빡깜빡 잊는다.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잊은 듯한데 무얼 잊었지 하고 내내 생각하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가 집에서 둘째 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뜨신 물에 폭 담그며 똥기를 뺄 때마다, 그래 다음에 우체국에 갈 적에는 꼭 반창고를 장만하자고, 하고 다짐한다.


  잠자리에서 첫째손가락 쩍쩍 갈라진 마디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나야 오늘날 이렇게 면내 약국에 들러 반창고라도 사서 붙일 수 있다지만, 먼먼 옛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이렇게 죽죽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만날 어머니들은 춥고 시린 겨울날 아기들 똥기저귀를 어떻게 갈고 아기들 밑은 어떻게 씻겼을까. 한겨울에는 모두들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셨을까. 먼먼 옛날 집안 어르신이나 아버지 가운데 아기들 밑을 씻긴 분은 얼마나 있을까. (4345.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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