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88] 노래목소리

 

 넓게 펼쳐진 논 사이를 걷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 손을 잡습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바람이 되게 붑니다. 된바람은 첫째 아이를 휭 하고 날려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드센 바람이 부는 날 논둑길을 거닐다니 싶지만, 바람이 거세면 거센 대로 듬뿍 맞아들일 수 있는 봄날이 좋습니다. 봄이 되어 한결 홀가분하게 먹이를 찾으며 새끼를 돌볼 들새와 멧새가 휭휭 불어대는 바람을 가르며 납니다. 새들이 날며 내는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사람이 바라보기에 같은 갈래 새라 하더라도 지저귀는 소리가 다릅니다. 흔히 참새는 “짹짹”이라 하지만, 참새가 보옹 보옹 하고 날갯짓하며 지저귀는 소리를 듣자니, 어느 때에는 “째째째” 하고 어느 때에는 “찍찍찍” 하며 어느 때에는 “찌이찌이찌이” 합니다. 참새 스스로 때와 곳에 따라 스스로 읊는 소리가 다르고, 동무 참새한테 이야기하는 소리가 다를 테지요. 까마귀는 까마귀 소리로 서로 뜻을 나눕니다. 직박구리와 동박새는 직박구리와 동박새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사람과 삶대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부르는 노랫소리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랫소리하고 아이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바람소리와 목소리와 노랫소리가 얼크러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이스코리아’라는 풀그림을 가만히 보다가, 이제 ‘코리아’ 사람들 입에 ‘보이스’가 영어 아닌 한국말처럼 익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5.3.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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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국어사전에서 '톺아보다'라는 낱말을 찾아보셔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오자'라고 말한다면, 어쩐지 너무 싱겁네요.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거나 살피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기울여 생각한다면, 말에 담을 넋을 살필 수 있어요.

 

 님이 쓰신 글에서 한 가지만 짚어 본다면, '마찬가지'라는 낱말은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처럼 쓰든지 '그와 마찬가지'처럼 쓰거나 해야 올발라요. 그런데, 이런 말씀씀이를 둘레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둘레 사람들도 제대로 모르니까, 모두들 잘못 말하거나 글쓰는 줄 모르면서 얄궂거나 뒤죽박죽이 되고 만 말로 넋을 담아내요.

 

 말과 글로 사랑을 빚지 못하기 때문에, 말과 글로 사랑을 빚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제 생각으로는, 에세이를 굳이 삶글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냥 수필이라 하면 돼요. 삶글로 쓰고 싶으면 삶글이라 하면 되지요. 시를 포엠이라 할 까닭이나 소설을 노블이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수필은 그냥 수필이라 하고, 때로는 산문이라 하면 넉넉하니까, 에세이를 이야기할 까닭이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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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3-25 06:53   좋아요 0 | URL
왜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라고 여길까? 왜 '돌아보다'를 잘못 적었다고 여길까?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음 듣거나 보는 낯선 낱말'이 있다면, 나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한 낱말이구나 하고 여기면서, 국어사전 한 번 들추어 새로 배우면 즐거울 텐데,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넓고 깊으며 새롭게 배우려 하지 못할까.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 아니라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한 낱말'이라고 여길 수 있는 가슴이라면, 책 하나를 읽을 때에도 더 새롭게 거듭날 수 있겠지.
 
삐비 이야기
송진헌 글 그림 / 창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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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마음을 주고받고 싶어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44] 송진헌, 《삐비 이야기》(창작과비평사,2003)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다니면 둘레 어른들이 아이한테 으레 사탕을 내밉니다. 어느 어른은 껌을 내밉니다. 아이한테 무언가 준다는 마음은 고맙지만, 사탕이나 껌을 주는 모습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아이 몸에 사탕이나 껌이 좋다고 여기는가 싶어 슬프기도 하고, 힘겹습니다.


  주는 마음은 고맙기에 언제나 마음을 받고 싶습니다. 따로 사탕이나 껌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먹을거리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을 받고 싶어요. 좋은 사랑을 받고 싶어요. 나도 좋은 마음을 나누고 싶고, 좋은 사랑을 펼치고 싶어요.


.. 삐비는 겨울 내내 집 안에 갇혀 있었지 ..  (7쪽)

 


  이제껏 사탕이나 껌을 내민 어른들 가운데 먼저 아이 어버이한테 한 마디 물은 어른을 본 적 없습니다. 아이 곁에서 어버이가 “사탕 안 주셔도 돼요.” 하고 말하면 그제야 “아, 사탕을 주면 안 되었구나.” 하면서 잘못했다 말하는 분이 있고, 이런 말을 해도 “그래도 괜찮아.” 하면서 억지로 아이 손에 사탕을 쥐여 주거나 아예 봉지를 까서 입에 넣으려는 분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살아가니 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만, 서로서로 다 다르게 살아가는 다 다른 사람인 줄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으니, ‘주는 마음’이 ‘받는 마음’하고 똑같으리라 여기곤 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내 몸에 안 받는 무언가를 누군가 먹으라고 준다면 마음속으로 확 거스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납니다. 내가 딱히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으라며 한 권 열 권 백 권 선물해 준다 하면, 이 책더미는 너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좋다 하는 밥이라서 좋은 밥이 되지 않아요. 좋다 하는 책이기에 좋은 책이 되지 않아요. 좋은 마음을 나누며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삶이 될 때에 즐겁습니다.

 

 


.. 삐비는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손에 대지 않았어. 봄이 다 갈 때까지 타박타박 숲속을 돌아다녔지 ..  (15쪽)


  아이를 마주 바라보면서 눈빛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며 빙긋 웃는 어른이 반갑습니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따스히 말 한 마디 들려주는 어른이 반갑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부터 내 아이와 옆지기한테 따스한 말마디를 들려주는 내 모습일 때에 내 삶이 좋습니다. 나 스스로 내 아이와 옆지기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빙긋 웃는 매무새일 때에 내 하루가 빛납니다.


  다른 무엇이란 있을까요. 다른 더 좋은 삶이나 다른 더 빛나는 하루가 있을까요.

 

 


.. 이제는 나도 삐비를 피해 다녔어. 집에 가는 길에 삐비를 보아도 모르는 척 지나쳤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 바쁜 일이거든. 친구들과 할 일도 많고 ..  (28∼29쪽)


  말없이 빙긋 웃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동네 한 바퀴 마실을 해도 즐겁습니다. 집 앞 논둑에서 줄줄이 피어나는 온갖 들꽃을 찬찬히 내려다보아도 즐겁습니다. 마당에 서서 밤하늘 뭇별을 잔뜩 올려다보아도 즐겁습니다.


  밥 한 끼니 함께 먹는 살붙이가 고맙습니다. 물 한 모금 길어서 마실 수 있어 고맙습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따순 햇살이 보송보송 말려 주니 고맙습니다. 내가 뿌리거나 심지 않은 풀과 나무가 봄을 맞이해 새롭게 기운을 차리며 푸른 내음 나누어 주는 일이 고맙습니다.


.. 어느 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나는 숲속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삐비를 보았어. 나도 모르게 도망쳤지 ..  (32쪽)

 


  송진헌 님 그림책 《삐비 이야기》(창작과비평사,2003)를 읽습니다. 보드라우며 푸근하게 느낄 만한 그림결이 좋습니다. 그런데, 나무랑 풀이랑 모두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그리니 어딘가 걸맞지 않구나 싶어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 얼굴을 모두 똑같이 그리지 않듯, 나무는 모두 다른 나무일 텐데요. 들과 멧자락에 자라는 풀은 모두 다른 풀일 텐데요. 다 다른 나무가 얼기설기 섞일 텐데요. 같은 갈래 나무라 하더라도 크기와 잎사귀와 가지가 다를 텐데요. ‘풀’이라 하더라도 숱한 풀이 한 곳에서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자랄 텐데요.


  문득 느낍니다. 어쩌면, 이 그림책에 나오듯이 ‘어린 동무 삐비’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던 모습이, ‘마을 동무 삐비’하고 한동안 함께 놀다가 그만 ‘학교 동무’들 말에 이끌려 삐비하고 등지던 삶이, 그림결에 시나브로 물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만히 바라볼 때에는 보드라우며 푸근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볼 때에는 ‘왜 꼭 다 다른 나무를 다 똑같이 틀에 박힌 모습으로 그려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도록 이끄는구나 싶어요. 다 다른 나무와 다 다른 풀을 다 다른 결과 무늬로 그리면서도 얼마든지 보드라우며 푸근하게 느끼도록 보여줄 수 있거든요. 언제나 나 스스로 포근한 마음이 될 수 있고, 늘 나부터 보드라운 사랑이 될 수 있어요.


  어린 동무요 마을 동무 삐비는 아직 숲속에서 비를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리라 생각해요. 어릴 적 숲이 고속도로로 밀리거나 댐으로 잠기거나 공장으로 파헤쳐지거나 아파트로 바뀌었을지라도, 어린 동무요 마을 동무 삐비는 이 아이가 기다리는 동무가 찾아올 수 있도록 조그마한 풀숲 한 귀퉁이를 찾아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리리라 믿어요. (4345.3.24.흙.ㅎㄲㅅㄱ)


― 삐비 이야기 (송진헌 글·그림,창작과비평사 펴냄,2003.4.30./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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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25 08:1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듣는 작가, 처음 보는 책인데, 마음이 뭉클뭉클 해지는군요. 그림도 좋고 내용도 좋고요. 나무가 다 비슷해보이는 것, 저는 그래서 그냥 눈감아 주고 싶어요 ^^

파란놀 2012-03-25 09:22   좋아요 0 | URL
그렇게 눈감아 줄 수 있기도 해요.
그런데, 그렇게 눈감다가는, 이분 그림밭이
더 즐겁고 넓게 뻗어 나갈 수 없겠구나 싶어
한 마디 붙였어요.

그저 이 그림책 하나로 끝낼 송진헌 님은 아니라고 느끼거든요.
저는 이분 그림을 <휠체어를 타는 친구>라는 동화책 사잇그림으로
처음 만났어요~
 

 


 사진이 남기는 아련한 이야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45] 구룡성 탐험대(九龍城 探驗隊), 《大圖解 九龍城》(岩波書店,1997)

 


  《大圖解 九龍城》(岩波書店,1997)이라는 책을 보면서 홍콩에 있었다던 구룡성이라는 곳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햇볕 한 조각 들어오지 않는 집이 한둘이 아닌 수십 수백 수천이 된다면, 이러한 집에서 수십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에 이르는 사람이 바글거리며 살아간다면, 이러한 삶터에서는 똥오줌을 어떻게 내보내고 물은 어떻게 끌어들이며 전기는 어떻게 얻어 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 내내 집안에 있어야 할 텐데, 햇볕을 쬐지 못하고 어두운 방에서 전깃불에만 기대어 약을 먹으며 몸을 살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반지하나 지하에 깃든 집이 있는 한국인데, 홍콩 구룡성은 반지하나 지하가 아니더라도 햇볕은커녕 바람 한 점조차 마실 수 없는 데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람은 살아갔고, 아이를 낳았으며, 사랑을 빚었어요.


  이제 사라진 구룡성이라는데, 홍콩사람은 이곳 발자취를 적바림했을까요. 중국사람은 이곳 삶터를 얼마나 아로새겼을까요. 홍콩도 중국도 아닌 일본에서 구룡성을 찾아간 사람들이 내놓은 책 《大圖解 九龍城》는 참 놀랍고 대단합니다. 아무래도 일본사람은 홍콩 구룡성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일을 안타깝다고 여겨, 이렇게 커다란 책 하나로 남기려 했겠지요. 좋다거나 멋지다거나 하는 삶터가 아닌, 어찌 되었든 사람이 살아가던 터전이라는 대목에서, 이 홍콩 구룡성을 찬찬히 뜯어 살피면서, 사람이 스스로 이룬 터전을 곰곰이 돌아보려고 했겠지요.

 

 


  한국땅 인천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있습니다. 인천 동구 송림1동과 송현1·2동 한켠에 있던 달동네 작은 집들을 싹 밀어붙인 주택공사에서 높직한 아파트를 올려세우면서, 예전 이 마을 자취가 어떠했는가를 몇 가지 남겨 지은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남은 집 모양은 거의 ‘모형’입니다. 달동네 집들에서 뜯거나 남긴 간판이라든지 문살이라든지 조금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형으로 새로 지었습니다. 인천에서 살던 지난날 이곳 박물관을 드나들며 곰곰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박물관이라 한다면,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달동네 살림집’ 몇 곳을 고스란히 남겨, 이 달동네 살림집을 드나들면서 돌아보도록 해야 비로소 박물관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하고. 벽도 지붕도 보일러도 부엌도 방도 온통 고스란히 남긴 골목집 몇 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래도 박물관을 세웠으니 고맙다 여겨야 할는지 모르나, 남기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터가 아니라 모형을 따로 만들어 보여주는 터로 그친다면, 박물관을 짓는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요. 돌이키면, 박물관까지 짓는다 한다면, 예전 달동네 살림집과 마을 이야기를 찬찬히 아로새기는 책이라도 하나 있어야 옳습니다. 예전 달동네 사람들 모습을 담고, 달동네 살림집 모습을 담으며, 달동네 마을 한해살이를 찬찬히 보여주는 사진책과 글책과 그림책이 있어야 마땅해요. 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책을 갖추어 사람들한테 선보여야 옳습니다.

 

 


  다시금 《大圖解 九龍城》을 들춥니다. 《大圖解 九龍城》은 구룡성에 깃든 집을 모조리 훑었을까 궁금한데, 훑을 수 있는 만큼 샅샅이 훑으며 집 하나하나 어떠한 모양새요 살림새였는가를 그림으로 나란히 보여줍니다. 사진으로 보여줄 대목은 이곳저곳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아서 보여주고, 그림으로 보여줄 대목은 ‘통 그림’을 써서 종이 두 쪽씩 펼치도록 하면서 보여줍니다.


  홍콩 구룡성에서 살던 사람들은 가난해서 이곳에서 살아야 했을까요. 이곳저곳에서 밀리고 쫓기며 구룡성으로 흘러들었을까요. 인천에 아직 곳곳에 많은 달동네처럼, 서울에 아직 곳곳에 남은 달동네처럼,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에 있을 달동네처럼, 이런 까닭 저런 까닭이 있어 사람들은 달동네로 천천히 스며들 테지요. 작은 집 작은 방을 얻어 조그마한 살림을 꾸릴 테지요. 목숨이 달린 동안 다시금 기운을 차려 살아가고자, 이 한 곳으로 시나브로 모여들 테지요.


  홍콩 구룡성 사람들한테도 사진기는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홍콩 구룡성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사진을 구룡성에서 찍었을까 궁금합니다. ‘구룡성 탐험대’는 구룡성이 사라지기 앞서 이곳 발자취를 아로새기려는 사진을 찍었는데, 홍콩 구룡성 사람들은 제 보금자리였던 이곳에서 어떤 꿈 어떤 사랑 어떤 삶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았을까 궁금합니다.

 

 


  생일잔치 때에 사진을 찍었을까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에 사진을 찍었을까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을까요. 사랑스러운 옆지기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어떤 모습 어떤 삶자락 어떤 눈물 어떤 웃음 어떤 하루를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사진으로 한 장 찍으며 아로새기는 오늘 하루가 됩니다. 사진으로 한 장 남기며 가만히 돌아보는 어제 하루가 됩니다. 사진으로 한 장 옮기며 이듬날 새롭게 살아낼 기운을 북돋우는 하루가 됩니다.


  사진으로는 무엇을 할 만할까요. 살림집을 옮기는 날, 짐차에 꾸역꾸역 짐을 다 싣고 나서 덩그러니 텅 빈 방이나 집을 둘러보다가는 사진 한 장 찍는다면, 이러한 사진으로는 무엇을 할 만할까요. 무엇을 돌이킬 만할까요. 무엇을 되새길 만할까요.


  백 마디 말이나 천 마디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더 깊거나 더 넓거나 더 아련하거나 더 애틋한 이야기를 빚을 만한가요. 깨끗함도 지저분함도 아닌, 그예 덩그러니 텅 빈 모습을 사진으로 옮기면서 무엇을 느낄 만한가요.

 


  오늘날 한국 곳곳에 높직하게 아파트가 올라선 데마다, 조금 아련한 옛날을 되새기면, 어느 곳이든 달동네 살림집이 줄줄이 있었거나 논밭이 있었거나 멧등성이가 있었습니다. 높직한 아파트가 올라서기 앞서 예전 삶자락을 누군가 사진으로 담았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예전 삶자락을 누군가 사진으로 담았다면, 왜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나중에 이 사진을 어디엔가 팔 수 있으니까? 나중에 이 사진으로 옛이야기를 아스라이 떠올릴 수 있으니까? 이곳 예전 모습을 나는 안다고 자랑할 수 있으니까?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않으면 너무 쓸쓸하니까?


  값져 보이는 사진기를 갖춘 사람들이 언젠가 골목동네를 휘 쏘다니면서 ‘이곳은 곧 재개발로 사라진대. 사진으로 찍어 놔야 해.’ 하고 흘리던 말을 얼결에 곁을 스쳐 지나가다 들은 적 있습니다. 사라지는 삶터라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면, 사라지는 사랑도 사진으로 남기고, 사라지는 삶도 사진으로 남길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오늘 즐겁게 살아가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고 싶습니다. 나로서는, 오늘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이웃이랑 동무를 내 좋은 살붙이하고 얼크러지며 사진으로 담고 싶습니다. 나로서는, 오늘 고맙게 누리는 내 좋은 보금자리를 기쁘게 사진으로 담고 싶습니다.


  《大圖解 九龍城》을 덮습니다. 이 사진책은 틀림없이 놀랍고 대단합니다. 다만,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실 만큼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마 누군가 구룡성에 깃들며 누린 사랑스러운 삶을 떠올리면서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던 구룡성 이야기’를 사진으로 갈무리한 발자국을 언젠가 조용히 내놓을 날이 있겠지요. “大圖解 九龍城”이 아닌 “보금자리 구룡성”이나 “구룡성 이야기”나 “구룡성”이라는 이름이 붙는 사진책을 기다립니다. (4345.3.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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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꽃 책읽기

 


  언제 피었나 미처 헤아리지 못하던 날 봄까지꽃을 보았습니다. 다른 들꽃은 언제 피려나 미처 돌아보지 못하던 날 별꽃을 보았습니다. 뒤이어 어느 들꽃이 필까 하더니 냉이꽃이랑 광대나물꽃을 보았으며, 매화꽃하고 동백꽃을 보았습니다. 꽃들은 누가 들여다보아 주기를 바라며 피지 않습니다. 꽃들은 철에 따르고 날에 따르며 스스로 알맞게 피어납니다.


  자그마한 꽃을 쪼그려앉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느새 깨어난 벌이 꽃들 사이를 오갑니다. 이 벌은 들에서 사는 벌일까 멧자락에서 사는 벌일까 누군가 키우는 벌일까 궁금합니다. 집벌이 있을 테고 들벌이랑 멧벌이 있을 테지요. 벌들은 작은 꽃들 사이를 오가며 꽃가루받이를 해 줄까요. 작은 꽃잎을 살짝살짝 건드리며 곱게 흐드러진 빛깔이 고맙다고 인사할까요.


  논둑 제비꽃을 바라보고 돌 틈 제비꽃을 바라봅니다. 빗물을 머금은 조그마한 제비꽃은 내 손톱만 합니다. 봄까지꽃 둘레에 냉이꽃이 피고, 냉이꽃 둘레에 광대나물꽃이 피며, 광대나물꽃 둘레에 제비꽃이 핍니다. 손바닥 아닌 손가락 너비만큼 될까 싶은 자리에서 온갖 들풀이 줄기를 뻗고 꽃송이를 벌립니다. (4345.3.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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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3-24 13:36   좋아요 0 | URL
제비꽃이 피었군요,,역시 봄은 오고있어요,,

파란놀 2012-03-25 06:45   좋아요 0 | URL
제비꽃이 온 시골 곳곳에 곱다라니 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