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생각"이라는 새 자리를 마련합니다.

몇 해 앞서부터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오늘 밤

둘째를 무릎에 누여 재우는

깊고깊은 때에

비로소 글문이 열리는군요.

 

2013년에 책으로 빚는 꿈을 꾸면서

오늘부터 차근차근

천천히 적어 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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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목숨 살리는 봄볕
고을마다 골고루
내리쬐는데,

 

어느 고을에서는
매화꽃 하얗게 눈내리고,

 

어느 고을에서는
보리싹 푸르게 빛나고,

 

어느 고을에서는
아파트 유리창 빛살 눈부셔.

 

갓난쟁이는 마당을 기며
등판이 따뜻하고,

 

다섯 살박이는 흙밭에서
흙투성이 손발 따뜻하며,

 

빨래 너는 어버이는
후박나무 그늘에서 살짝 쉰다.

 


4345.3.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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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볼 42 - 무삭제 오리지널판, 완결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다운 마음을 품기
 [만화책 즐겨읽기 138] 토리야마 아키라, 《드래곤볼 (42)》

 


  모든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사람인 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닥 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스스로 사람인 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퍽 많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생각을 하기에 사람이라 할 만하고, 생각을 찬찬히 하면서 이 생각을 하나하나 이루기 때문에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은 사람만 하지 않습니다. 나무도 생각하고 여우도 생각합니다. 풀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벌레이든,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룹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길에 걸맞게 삶을 꾸립니다. 사람이 여느 푸나무라든지 짐승이라든지 벌레하고 다르다 한다면, 사람은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하며 더 사랑스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 “중요한 것은 기의 강도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거다. 넌 눈으로 쫓기 때문에 내 동작을 따라오지 못하는 거야.” (33쪽)
- “옛날엔 네게 뭔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지키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정체불명의 힘을 탄생시키고 있다고, 분명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도 지금 상황에선 마찬가지다. 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 위해, 즐거움을 위해, 적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자존심을 위해 싸워 왔다. 그러나 저 녀석은 달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지 않기 위해 한계를 계속 깨면서 싸우는 거야! 그래서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저 녀석은 끝내 날 죽이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내가 아주 약간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듯이.” (112∼113쪽)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생각을 좋은 삶으로 이룹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생각을 나쁜 삶으로 이룹니다. 생각을 슬기롭게 가다듬으면 슬기롭구나 싶은 삶을 이루고, 생각을 바보스레 내팽개치면 참말 바보스럽다 싶은 삶을 이루어요.


  누군가한테는 이웃을 돕느라 백만 원이나 천만 원을 선뜻 쓰는 일이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누군가는 이웃을 돕느라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군가한테는 이웃을 돕느라 일억 원이나 십억 원을 쉬 쓰는 일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서른 해를 갈무리해서 일억을 모으든, 어찌저찌 금세 십억을 모으든, 이렇게 모은 돈을 아주 홀가분하게 이웃돕기에 씁니다.


  누군가는 바다를 좋아하며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하루아침에 이 꿈을 이룰 수도 있을 테지만, 열 해나 서른 해를 두고 천천히 이 꿈을 이루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소설 하나 아름다이 쓰고프다고 꿈을 꿉니다. 하루아침에 소설 하나 아름다이 써낼 수 있을 테지만, 스무 해나 마흔 해를 두고 찬찬히 이 꿈을 이루기도 해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할 때에는, 이처럼 여러 갈래 온갖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저 사람 생각은 바보스럽거나 어리석다 나무라거나 비웃는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즐거이 여긴다면 내 생각은 조금도 바보스럽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요. 나 스스로 내 생각을 예쁘게 보살핀다면 내 생각은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참으로 빛납니다.


- “카, 카카로트, 너, 임마. 왜 트랭크스 애들 놔두고 이런 놈과 강아지 따위를 먼저 구한 거야! … 카카로트, 넌 겨우 저런 띨띨이 대신 모처럼 도움을 준 친구들을 죽게 내버려둔 거야.” (89, 93쪽)
- “앗! 베지터 머리 위의 동그라미도 사라졌네! 다시 살아난 거야! 그러고 보니 넌 아주 극악무도한 녀석은 아닌가 보다!” (164쪽)

 

 


  열예닐곱 푸름이로 보내던 내 지난날을 헤아립니다. 그무렵 나는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참말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머리로만 이야기를 짓고 몸으로는 안 움직인다면 이때에는 생각이 생각 아니라 덧없는 딴소리일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내가 품는 생각이라 한다면 나 스스로 즐거이 몸으로 옮기는 삶이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섯 학기를 다니는 동안 지옥철을 타며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철이로구나 하고.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겪으며, 이 지옥철에 탄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 어떤 마음 어떤 몸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힘겹고 고단하며 짜증을 내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로 어떤 이야기를 빚으면, 내 몸은 어느새 나 아닌 다른 사람한테 살며시 깃듭니다. 나는 내 눈이 아닌 다른 사람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이하고 마주하면서 때때로 아이 눈이 되어 어버이인 나를 바라봅니다. 아이 키높이라면 어떻게 비칠까 하고 생각하며 아이 눈으로 마당을 뛰고 아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몸이 아플 적마다 이렇게 몸이 아프다 한다면, 나보다 훨씬 몸이며 마음이 아프다 하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 아픔에 빗대어 다른 이 아픔을 생각한달 수 있으나, 다른 이 아픔을 생각한다기보다 다른 이들 삶과 이야기를 내 삶과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은 셈입니다.


  아이를 안을 때에는 ‘안긴 아이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긴 아이가 느긋해 하도록 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늘 이와 같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밥을 짓는 사람은 밥을 먹을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사랑을 속삭이려 하는 사람은 사랑을 듣는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어른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숨 한 번 들이마시면서 바람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햇살 한 번 올려다보면서 해와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으며 풀잎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물을 마시며 물방울과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 “아냐! 이건 필요없어. 돌려줄게!” “엑?” “역시 이런 건 우리 취향이 아냐. 성능은 좋지만. 이런 위급한 때에 미안하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싸우고 싶다. 이미 부우도 합체를 풀고 있으니.” (96쪽)
- “사실 지금이니까 고백하는 건데, 뚱보 마인 부우라면 초사이어인3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되도록 아이들의 힘을 믿고 싶었어. 앞으로의 지구 운명을 위해서도.” (101쪽)
- “가끔은, 지구 놈들 스스로도 책임을 지게 하란 말이다!” (151쪽)


  나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 목숨대로 좋으며 고맙다고 여깁니다. 나 스스로 대단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힘을 내며 살아간다고 여깁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함께 해바라기를 하다가 스르르 잠듭니다. 무릎에 누여 조금 토닥이다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힙니다. 첫째 아이는 햇살 고운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놉니다. 혼자 재잘재잘 떠듭니다. 대문 앞 논자락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저기, 개구리 소리.” 하고 나지막히 이야기합니다. 소리를 죽이고 봄개구리 우는 소리를 같이 듣습니다. 아이는 아직 개구리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 수많은 개구리가 한꺼번에 깨어나거나 새로 태어나면, 그야말로 온 들판에 왁왁 소리 울려퍼질 테지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 아이 스스로 개구리 소리를 익숙하게 맞아들이겠지요.

 


- “자, 덴데! 소원을 말해라. 나메크어는 아직 기억하고 있지?” (157쪽)
-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그동안 혼자서 수고 많았다. 다음번엔 착하게 환생해라. 그럼 1대1의 승부를 해 주마. 기다리겠다. 나도 더욱 실력을 키우면서.” (197쪽)


  토리야마 아키라 님 만화책 《드래곤볼》(서울문화사,2002) 마흔둘째 권을 읽습니다. 영어 쓰기 좋아하는 일본사람이니 책이름을 ‘드래곤볼’로 붙였는데, 한국말로 옮기자면 ‘미르구슬’ 또는 ‘용구슬’입니다. 만화책 《드래곤볼》은 미르구슬을 찾아나서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권법만화라고도 여길 수 있지만, 줄거리와 사람들 매무새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모험만화도 권법만화도 무협만화도 판타지만화도 우주만화도 격투만화도 …… 아니라고 느낍니다. 《드래곤볼》은 사람으로 태어나 한삶을 누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느냐를 찬찬히 짚는 만화라고 느껴요.


  곧,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이룹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루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가장 아름답게 가다듬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가장 사랑스럽게 돌봅니다.


  그저 생각만 해서는 이루지 못합니다. 생각이 살찌울 수 있게끔 북돋웁니다. 생각이 꽃피울 수 있도록 보살핍니다. 착한 넋과 고운 몸가짐으로 생각을 일으켜세웁니다. 기쁜 웃음과 맑은 눈빛으로 생각을 갈고닦아요.

 


- “그렇군. 넌 아직 하늘을 나는 방법도 모르는구나. 하긴, 무리도 아니지. 스승도 없을 테고, 그런 걸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 좀 전에 욕해서 미안하다. 용서해라. 네 실력이 어떤지 알고 싶었던 거야.” “엑?” “역시 넌 내 예상대로 정말 대단한 놈이었어. 하지만 파워를 잘 이용 못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싸워 보는 것도 이게 처음이지? 내가 이제부터 네 집에 함께 살면서 가르쳐 주마! 알았지?” “예? 하지만. 우,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안 돼요. 그, 그래서 상금이 필요해 무리해 가며 온 건데.” “괜찮아. 걱정 마!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내가 미스터 사탄한테서 받아 줄게. 저 녀석은 영웅이란 핑계로 엄청난 돈을 모으고 있거든.” (240∼241쪽)


  《드래곤볼》 이야기를 이끄는 ‘손오공’은 마흔둘째 권을 마무리하면서 ‘우부’라는 아이한테 이 실마리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우부라는 아이는 아직 맑고 착한 넋이기 때문에 손오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곧바로 깨닫습니다.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 하늘을 날지 못해요. “생각을 끌어올리도록 돕는 벗이나 스승이 없”으니 제 몸과 마음에 깃든 놀라운 힘을 아직 끄집어내지 못해요.


  사람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이루도록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손오공이 쓰는 가장 빼어나며 멋지고 아름다운 ‘싸움솜씨’는 ‘원기옥’입니다. 모든 사람들 넋을 하나로 모두어 빚는 가장 커다란 꿈이자 생각이라 할 원기옥이에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기 때문에 원기옥을 쓰거나 하늘을 날지 않아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기 때문에 ‘에네르기파’를 금세 익히지 않았어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았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사랑했어요. 착한 넋으로 생각하고 고운 얼로 사랑할 때에 삶이 아름다이 빛납니다. (4345.4.6.쇠.ㅎㄲㅅㄱ)


― 드래곤볼 42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조대웅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2.9.26./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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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햇살 책시렁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4.

 


  봄햇살이 책시렁으로 스며든다. 겨울에는 골마루 쪽으로는 햇살이 들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아마 봄부터 가을까지는 골마루 쪽으로도 햇살이 드는구나 싶다. 옛 초등학교 건물이기 때문일까. 햇살이 아주 포근하게 스며든다. 옆지기가 보던 책을 골마루에 새로 세운 커다란 책꽂이에 꽂자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꽂는데, 곱게 스며드는 저녁햇살을 느낀다. 하루에 한두 시간 바지런히 꽂는다. 한두 시간쯤 책을 꽂노라면,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날마다 조금씩 하노라면 어느새 일을 마무리짓겠지.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천천히 오래도록 할 뿐이다. 100쪽짜리 책이든 300쪽짜리 책이든 날마다 조금씩 읽으며 한 권을 마무리짓는다. 한꺼번에 읽는 책이 아니라 차근차근 읽는 책이요,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차근차근 삶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삼는 책이다.


  좋은 봄햇살을 받는 책들마다 좋은 기운이 찬찬히 아로새겨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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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4-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우라 아야꼬는 지금의 60~70대 여성들이 젊은 시절 좋아한 작가죠.빙점!
김남주, 프란츠 파농 책도 눈에 들어오네요.

파란놀 2012-04-08 06:25   좋아요 0 | URL
아직 책을 제대로 끌르지도 못했어요.
차근차근 잘 갈무리해야지요~

진주 2012-04-09 00:06   좋아요 0 | URL
괜시리 노이에자이트님 꼬리잡기를 합니다^^

미우라 아야꼬-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길은 여기에'자서전을 보면서 비로소 일본나라 사람을
일본놈이 아닌 일본인으로 인정하게 된 책이죠ㅋㅋ
애국심 충만하던 여고시절에 그 책을 만났거든요)

노이에자이트 말씀대로라면
저는 너무나 조숙했어요. 60~70대 여성들이라닠ㅋㅋ
조숙해도 너무 조숙했었군요, 제가 ㅎㅎㅎ

카스피 2012-04-1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넘 많으시네요.책장은 직접 다 만드셨는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저 책들을 보니 인천에 있었던 된장님 책방은 이제 완전히 문을 닫으셨겠지요?
 
나츠코의 술 애장판 6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누구를 사랑하면서 일을 하나요
 [만화책 즐겨읽기 111]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6)》

 


  무엇을 남기는 삶일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누리면서, 내가 남길 가장 아름다운 한 가지라면, 돈도 책도 집도 아닌 사랑과 꿈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옆지기와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을 때에도 이 한 가지를 깨달았을까 하고 돌아보면, 절로 고개를 젓습니다. 어쩌면 숱한 갈림길과 가시밭길과 에움길을 거치며 깨달았을는지 몰라요. 오래 걸리거나 더디 걸리더라도 이 길로 왔을는지 모릅니다.


  사랑이 없는 돈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책은 읽을 값어치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집은 메마르며 재미없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나는 사랑을 담아 돈을 벌고 나누며 누리는 길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나부터 꿈을 아끼고 북돋우며 책 하나 예쁘게 빚는 길을 좀처럼 살피지 못했습니다. 나 스스로 좋은 이야기 알뜰살뜰 꾸리며 집살림 돌보는 길을 아직 살가이 느끼지 못합니다.


- “잊을 수 없어요. 공중살포가 있던 그날 아침. 길가에 널려 있던 죽은 나비며 곤충들, 나무에서 떨어져 버둥거리던 작은 새. 농약을 뒤집어쓰고는 눈 통증이며 구역질, 두통을 호소하던 아이들.” (17쪽)
- “논의 턱도 없애고 좁은 논두렁을 넓혀 트랙터나 콤바인을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거야. 벼농사에 있어서 에너지 절약, 생산 단가 절감 사업이랄까.” “그, 그럼 이거, 좋은 건가?” “좋긴 개뿔! 보고도 모르겠냐, 나츠코! 저 기계가 논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저건 비옥한 흙이고 메마른 흙이고 가리지 않아!” (23쪽)


  글을 쓸 때이든 흙을 만질 때이든 자전거를 탈 때이든 길을 걸을 때이든 늘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를 사랑하면서 글을 쓰나. 나는 누구를 생각하며 흙을 만지나. 나는 누구와 살아가며 자전거를 타나. 나는 누구와 꿈을 나누며 길을 걷나.


  낮나절, 나를 뺀 세 식구가 고요히 잠든 모습을 십 분 남짓 바라보았습니다. 네 식구 가운데 세 식구가 고요히 잠드니 이 집안이 이렇게 고요하구나, 그야말로 고요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홀가분하고 고요할 때에 그동안 미룬 내 글쓰기를 다스려 볼까, 그동안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내 사진을 갈무리해 볼까 싶었는데, 막상 글을 쓰거나 사진을 갈무리하려다 보니 금세 졸음이 쏟아집니다. 옆지기와 두 아이가 잠을 즐기기까지 이래저래 복닥이며 치다꺼리하느라 힘을 많이 쏟았으니, 나 또한 곁에 나란히 드러눕고 싶더군요.


  그러면 아예 네 식구 다 드러누워 더없이 조용한 집안이 되도록 할까 생각하며 나도 둘째 곁에 누워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운 지 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첫째 아이가 칭얼거리며 깹니다. 아이고, 이 녀석, 쉬 마려우면 그냥 일어나서 예쁘게 쉬를 하면 좋으련만, 꼭 그렇게 징징거려야 하니. 그러나, 참말 첫째 아이는 모처럼 낮잠을 자며 고단함을 씻는데, 어째 쉬가 마려워 꿈과 잠을 모두 깨고 일어나야 하니 이렇게 눈물나도록 징징거려야 할밖에 없는지 몰라요. 아쉬우니까, 서운하니까. 그래, 슬프니까.


  둘째 아이는 누나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니 눈을 번쩍 뜹니다. 누나 따라 동생도 징징거립니다. 쉬를 다 눈 첫째를 누여 이불을 여밉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달래고는 곧장 둘째한테 달려가서 품에 안고 어릅니다. 토닥토닥 두들기고 나즈막하게 자장노래 부릅니다. 첫째 아이 징징거림은 이내 잦아듭니다. 둘째 아이도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아주 곯아떨어졌다 싶을 무렵 비로소 방바닥 이부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이제 나도 겨우 방바닥에 등을 댑니다.


- “게다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포장 정비로) 길을 넓히는 만큼 논의 면적은 작아졌어. 손해를 본 건지 이득을 본 건지.”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 일에 나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일이 30년 가깝게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어.” “물론 좋아라 기뻐하는 녀석도 있지. 농기구 메이커와 토목업자들.” (28∼29쪽)
- “난 모르겠어, 진키치. 정말 모르겠어. 고다 씨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작물을 짓는 사람이, 왜 외톨이 섬처럼 고립되어야 하는 거지? 공중살포만 해도 그래. 매년 몇 번씩은 꼭 일어나는 헬리콥터 추락사고. 몇 명은 꼭 농약을 뒤집어쓰고 병에 걸리거나 죽거나 하는데, 어째서.” “쌀의 연간 생산량 3조 8천억 엔. 그리고 농기계 값이 8천 억! 농약 값 천 8백 억! 비료 등 그 외 비용을 전부 합치면 1조 엔 이상! 알겠냐, 나츠코? 쌀은 생산량의 1/4이 기업의 먹잇감이 되는 거야!” (35∼36쪽)


  한갓지게 쉬자 생각하면서도 한갓지게 쉬지 못합니다. 이틀째 고뿔에 시달리는 둘째 곁에 누워 가만히 지켜보며 누웠다 싶더니, 마당에 널어 놓은 빨랫대가 갑자기 분 바람에 쿵 넘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번 일으켜 바로 세우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이윽고 또다시 바람이 휭 불며 쿵.


  시계를 봅니다. 멧등성이 너머 해가 어느 만큼 걸렸는가 올려다봅니다. 히유 한숨을 쉬고는 빨래를 걷습니다. 더 두어 햇살 더 먹도록 할 수 있지만, 아이 곁에서 자칫 잠들다가는 지는 햇살 차가운 기운을 받을까 싶습니다. 기저귀를 걷고 옷가지를 걷습니다. 오늘 빨래한 이불도 걷어서 갭니다.


  문득 울타리 너머 마늘밭을 바라봅니다. 이웃 할머니는 김매기를 하십니다. 아침에 나오셔서 여태 김매기를 하십니다. 쉬엄쉬엄 하신다지만 김매기를 하느라 하루 예닐곱 시간 밭뙈기에서 지내십니다. 할머니가 젊은 아주머니라면 더 일찍 김매기를 마무리지었을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같은 사회 흐름이라면, 굳이 김매기를 안 하고 풀약을 칠 수 있겠지요. 나라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니 한중자유무역협정이니 맺으면서 농사짓기마저 국가경쟁력을 들먹이고 더 값싼 공산품 수출을 들먹이잖아요.


- “나, 꼭 공중살포를 중지시킬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 벼를 위해, 흙을 위해. 이것만은 꼭.” (42쪽)
- “그렇지. 나도 농약을 많이 뿌릴수록 부지런하고 훌륭한 농사꾼이라고 믿었었네.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됐지? 난 내 동생을 죽게 했어. 그게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지. 동생이 죽은 후로 전국 각지에서 농약 중독 사고가 줄을 이었어.” (57쪽)


  할머니들은 먼먼 옛날부터 풀약 없이 두 손으로 김을 잡았습니다. 할머니들이 풀약이나 비료를 쓴 나날은 아주 짧습니다. 1960년대에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이 나라 시골마을에 비로소 풀약이랑 비료가 들어왔습니다. ㅂ씨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ㅈ씨 군사정권과 ㄴ씨 군사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온 나라 시골마을은 아주 풀약이랑 비료로 망가졌습니다. 이동안 푸성귀 값이랑 곡식 값은 꽁꽁 묶입니다. 시골사람 땀방울 밴 푸성귀와 곡식 값은 하나도 못 오르면서 공산품과 공공요금 값은 끝없이 치솟습니다.


  마늘밭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서 새잎을 돋우는 산초나무를 바라봅니다. 산초나무도 겨울을 견디고는 새잎을 내려 합니다. 온 들판 풀과 나무는 새잎 푸르게 내놓으며 봄누리 빛깔을 알록달록 가꿉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ㅂ씨와 ㅈ씨와 ㄴ씨 군사정권을 지나 민주정권이라 하는 나날을 보내는 요즈음까지, 이 나라 푸성귀 값이랑 곡식 값이 ‘공산품과 공공요금 값’과 어깨동무하며 올랐을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은 밥을 굶어야 했을까요. 쌀값이 너무 비싸 끼니를 걸러야 했을까요.


  아직까지 쌀 10킬로그램에 2만 원이 채 안 되기까지 합니다. 농약을 안 친 쌀이라 하면 10킬로그램이 4만 원쯤 합니다. 유기농으로 거둔 쌀이라 하면 10킬로그램이 5만 원 남짓 받겠지요. 그런데, 참말 얼마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농약 안 친 쌀’이든 ‘똥오줌 거름(유기농)으로 거둔 쌀’이든 값을 더 받아야 한다고 여긴 한국사람이 대단히 적었어요. 아직까지도 무농약 유기농 쌀이 농약 왕창 뿌리고 비료 가득 먹인 쌀보다 값을 더 받아야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도시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냥 값싸게 먹을 만한 쌀’을 사다 먹으려 할 뿐입니다.


  스스로 갉아먹는 셈이에요.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에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똑같은 땀방울(노동력)이라고 하지요? 한 사람 목숨값은 숫자나 돈으로 따질 수 없다지요? 그러면, 도시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만 제 대접과 제 값어치를 받아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 겨레는 무언가 크게 잊거나 잃지 않나요?


  스스로 사랑할 삶을 잊거나 잃은 나머지, 한국땅 이웃을 사랑하지 못해요. 한국땅 이웃부터 옳게 바라보며 착하게 사랑하지 못하니, 한국땅으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를 옳게 바라보며 착하게 사랑하지 못해요. 한국땅 이웃뿐 아니라 내 보금자리 내 아이들 또한 옳게 바라보지 못하잖아요. 내 아이들부터 입시지옥이 될 제도권학교에 밀어넣을 뿐이잖아요. 내 아이들부터 착한 삶과 참다운 슬기와 고운 넋을 보듬으면서 즐거이 살아가도록 이끌 어버이로 튼튼히 우뚝 서야 올바르잖아요.


- “저뿐인가요? 아무도 느끼지 못한 거예요? 하늘에서 농약을 뿌리고, 무차별적으로 벌레들을 죽이고, 공중살포가 안전하니 편리하니 말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일이 아닐까,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렇게 감상에 젖어선 벼농사를 지을 수 없어.” “감상이 없다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죠? 이 손으로 흙을 갈고, 모를 키우고, 논에 심고, 뜨거운 여름, 땀을 흘리며 그 성장을 확인하고, 가을, 황금빛으로 익은 벼이삭을 보는 기쁨! 그리고 그 벼를 베는 흥분!” (62∼63쪽)


  모든 시골마을 할머니들이 손으로 예닐곱 시간 김매기를 하지는 않아요. 훨씬 더 많은 여느 시골마을 할머니들은 할아버지와 둘이서 풀약을 쳐요. 젊은이들은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서로 툭탁툭탁 치고받으며 돈을 더 벌려고 악다구니예요. 젊은이들은 ‘무농약 유기농’ 푸성귀와 곡식을 일구려고 일흔이나 여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허리 구부정해지며 흙을 일구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초등학교에서 흙일을 가르치나요? 중학교에서 무농약 흙일을 가르치나요? 고등학교에서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는 흙일을 가르치나요?


  아이들 머리에 집어넣는 지식은 화학비료랑 똑같다고 느껴요. 아이들 몸에 집어넣는 예방주사는 화학농약이랑 똑같다고 느껴요. 아이들 마음에 집어넣는 도시 물질문명은 화학항생제랑 똑같다고 느껴요.


  나부터 아직 참답고 착하며 곱게 추스르지 못하지만, 아이들하고는 사랑스럽고 즐거우며 애틋한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을 누리고 싶어요. 우리 스스로 곱게 살아가는 나날을 빚고 싶어요. 우리 스스로 흙에서 먹을거리 한 줌 일구고 싶어요. 차근차근 흙을 살리고, 집을 살리며 몸과 마음을 살리고 싶어요. 한두 해 사이에 뚝딱 해치우는 흙일이 아닌, 두고두고 가꾸면서 사랑하는 흙일을 익히고 싶어요. 아이들이 물려받을 사랑이란 어버이인 나부터 날마다 기쁘게 맞아들이는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 “그렇지 않아! 2만 8천 엔이면 다들 의욕을 불태우고 공중살포도 반대해. 그 어려운 유기농 재배도 하겠다고 나서고. 농약 문제니 농사짓는 기쁨 따윈 관심도 없이 모든 것이 후다닥 결정되고 말았어. 농사도, 술을 빚는 것도, 마을을 일으켜세우는 것도, 돈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이 다 해결되는 거야. 공중살포가 중지된 건 기쁘지만, 조금도 이겼다는 느낌이 안 들어. 다들 돈을 좇아 움직이는 것뿐. 무엇 하나 달라진 건 없어.” (215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여섯 권째를 읽습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책이름처럼 ‘술’을 이야기하는 만화인데, 여섯 권째가 되도록 술 이야기보다 흙일 이야기가 훨씬 자주 더 많이 나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만화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본술’ 이야기는 거의 들려주지 않고 ‘수수하고 투박한 흙일’ 이야기만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게다가, 여섯 권째에 이르니, 흙일을 하는 사람 스스로 누구를 사랑하며 흙을 아끼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짚어요.


  좋은 술은 좋은 쌀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쌀은 좋은 흙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흙은 좋은 땀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땀은 좋은 삶에서 나오니까요. 좋은 삶은 좋은 사랑에서 나오니까요. 아, 그러면 좋은 사랑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4345.4.6.쇠.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6 (오제 아키라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10.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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