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티세븐 클로커즈 87 Clockers 1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왜 서로 치고받으며 올라서려는가
 [만화책 즐겨읽기 140] 니노미야 토모코, 《87 clockers (1)》

 


  첫째 아이를 재우면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깊이 곯아떨어지곤 합니다. 아직 갓난쟁이라 할 둘째 아이를 재우면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꼼틀꼼틀하면서 잠을 깨니 다시 다독이며 재웁니다. 돌이키면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와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여러 해 밤잠 다독이기를 한 끝에 이제 혼자 오래오래 잘 자는 삶이 되었어요.


  밤새 둘째 아이를 끌어안아 다독이고 다시 재우기를 되풀이합니다. 어느덧 새벽 여섯 시 반이 됩니다. 이래서야 어디 잠이나 이루겠느냐 싶지만, 자꾸 깨고 또 깨기를 되풀이하면서도 이럭저럭 잠을 자며 하루를 보냅니다.


  무릎에 누워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자는 아이가 입을 살짝 벌리며 싱긋 웃습니다. 꿈나라에서 하늘을 날거나 바다를 누비거나 무언가 신나는 삶을 빛내는 듯합니다. 좋은 꿈을 즐겁게 꿀 때에는 자면서 빙그레 웃음이 묻어나니까요.


- “나, 이제 슬슬 취업 생각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봄부터는 4학년이니까. 그런데 왠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나 할까.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해야 하나.” “오빠가 구직 활동. 풋. 이 취업난 시대에 베짱이 같은 음대생이 유유자적 활동해 봤자지.” “어머, 그런 거라면, 엄마가 하고 있는 피아노 학원 일 좀 도와주련? 나중에 아예 다 물려줄 테니까.” (23쪽)
- “비싸잖아. 이 CPU. 당신 부자야?”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에요.”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 “안 하는데요.” “역시 부자 맞네.” “나도 여대생이지만, 이걸 위해 아르바이트도 뛰고, 별별 노력을 다 하고 있다구! 이런 부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169쪽)

 

 


  누구나 잠을 잡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많이 잘 테고 누군가는 조금 더 적게 잘 테지요. 하루 여덟 시간을 잔다면 하루 가운데 1/3을 자는 셈이고, 서른 해를 살아가면 열 해를 자는 셈입니다. 예순 해를 살아가면 스무 해를 잠자는 데에 들이는 셈이에요. 아흔 해까지 살아간다면 서른 해를 잠을 자며 꿈누리에서 보냅니다.


  누구나 밥을 먹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버이가 차리는 밥상을 받지만, 이윽고 스스로 밥상을 차립니다. 흙을 일군다면 푸성귀나 여러 먹을거리를 스스로 마련하기까지 할 테니, 먹을거리를 마련해서 밥으로 먹기까지 품과 겨를을 퍽 많이 들입니다. 잠자는 겨를 못지않게 밥먹는 겨를을 들여요.


  누구나 똥오줌을 눕니다. 먹고 마시는 만큼 뒤를 봐요. 살아가며 똥오줌을 누는 데에 들이는 겨를도 퍽 많으리라 느껴요. 손발톱을 깎는 데에 들이는 겨를이라든지, 빨래를 하거나 몸을 씻는 데에 들이는 겨를도 무척 많겠지요. 이러구러하게 꽤 자질구레하다 싶은 데에 들이는 겨를이 참 많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왜 태어나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싶어 궁금합니다.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가노라니, 아이들한테 들이는 겨를이 무척 많습니다. 아니, 이모저모 할 겨를을 못 내며 거의 아이들하고 붙어 지냅니다. 내 몸을 다스리거나 씻거나 먹이는 겨를보다 아이들 몸을 다스리거나 씻거나 먹이는 겨를을 무척 많이 들여야 해요.


  그러면 우리 삶이란 무엇일까요. 내 어버이는 나와 형을 낳아 돌보느라 기나긴 나날을 들였어요. 나는 내 아이들을 낳아 돌보느라 기나긴 나날을 들여요. 이런저런 겨를을 뺀 나머지는 얼마나 되고, 나머지 겨를에 걸쳐 내 꿈과 사랑을 빛내는 어떠한 삶을 누린다 할 만할까요.


  잠을 자는 데에 들이는 겨를은 삶을 부질없이 흘리는 셈일까요. 밥을 차리거나 먹거나 설거지를 하는 데에 들이는 겨를은, 또 똥오줌을 누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몸을 씻는 데에 들이는 겨를은 내 삶을 어떻게 보내는 셈일까요.

 

 


- “느려! 언제까지 만들고 있는 거야? 굶겨 죽이려고 작정했어? 대체, 우동은 왜 밀고 앉아 있는 거야?” “죄송해요. 근데 지금 밀가루밖에 없어서.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33∼34쪽)
- “그럼 그 사람이 1등이 아니게 되면, 제가 1등이 되면 그 사람과 헤어지고 저랑 같은 팀이 되어 주실래요?” (148쪽)


  잠을 자는 아이는 꿈을 꿉니다. 잠을 자는 어른도 꿈을 꿉니다. 누구나 잠을 자며 꿈을 꿉니다. 눈을 뜨고 지내는 곳에서 바라보는 삶 못지않게, 눈을 감고 지내는 꿈누리에서 바라보는 삶이 매우 길다 할 만합니다. 눈을 뜨면서 지구별 땅에 발을 디디고, 눈을 감으면서 어딘가 꿈누리를 훨훨 날아다닌다 할 만해요.


  눈을 뜨면서 지구별 땅에 발을 디딜 때에만 삶일까요. 눈을 감으면서 꿈누리를 훨훨 날아다닐 때에는 삶이 아닐까요. 거꾸로, 눈을 감으면서 꿈누리를 훨훨 날아다닐 때에 삶이요, 눈을 뜨면서 지구별 땅에 발을 디딜 때에는 삶이 아니지는 않을까요.


  밥 한 그릇에 쌀알이 몇 알 더 들었대서 더 배부르지 않습니다. 국 한 그릇에 국물이 조금 적게 담겼대서 덜 배부르지 않습니다. 잠을 1분 더 잔다거나 1분 적게 잔대서 더 느긋하거나 더 고단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이끄는 삶입니다. 내 마음이 일구는 삶입니다. 누군가하고 겨루며 1등이 되거나 2등이 되거나 3등이 될 때에 빛나는 삶이 아닙니다. 달리기를 해서 1등을 하거나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서로 겨루는 달리기부터 부질없는 노릇이라 할 만합니다.


  회사원으로 일할 때에 달삯을 1만 원 더 받으니 더 좋은 일자리가 아니에요. 달삯으로 10만 원 더 받는다거나 10만 원 덜 받는다고 더 좋거나 더 나쁜 일거리가 아니에요. 내 마음이 넉넉한 일자리일 때에 넉넉한 일자리입니다. 내 마음이 즐거울 때에 즐겁게 삼는 일자리예요.


  때로는 무슨무슨 경연대회에 나갈 수 있겠지요. 서로 재주를 뽐낼 수 있어요. 그런데, 노래 한 가락을 두고, 더 멋지게 불러 더 많은 사람한테 더 뭉클한 이야기를 베푼다 할 수 있을까요. 100만 사람 가슴을 적시는 노래가 내 가슴을 나란히 적시는 노래랴 할 만할까요.


  들새는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지저귀지 않습니다. 햇살은 사람들 따스하라고 내리쬐지 않습니다. 나무는 사람들 먹기 좋으라고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들새는 저희 삶을 일구면서 지저귀는데, 이 소리가 사람한테까지 좋은 결로 스며들곤 합니다. 햇살은 햇살 나름대로 따스한 기운인데, 이 기운을 날마다 고맙게 받아들이려는 사람한테 고맙게 스며들곤 합니다. 나무는 한 해를 살아내며 일군 빛을 씨앗 하나로 갈무리하면서 이 씨앗이 널리 뿌리내리기를 꿈꾸며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를 맛나게 누리는 사람이 맛난 열매 맺는 나무가 오래오래 튼튼하기를 빌며 씨앗을 흙으로 돌려주니 사람한테 맛난 느낌으로 스며들곤 합니다.

 

 


- ‘꿈이 없으면 안 되는 거야?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매일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 가사의 노래도 엄청 많잖아. 나도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놈인지는 알아. 음악을 좋아하지만, 남들과 경쟁하면서까지 뭐너가를 얻어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샘솟질 않는다.’ (41∼42쪽)
- “초심자가 됐든 초짜가 됐든 어떤 오버클록을 할지는 내 맘이잖아. 주제가 어쩌고저쩌고 할 거면 아까 그 CPU 도로 내놔! 점심은 내가 쏠 테니까.” (168쪽)


  서로 치고받는다 해서 더 높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서로 치고받을 때에는 그저 서로 맞고 때릴 뿐입니다. 서로 겨룬다 해서 1등부터 꼴등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 겨루며 마음이 다치거나 아프거나 고단하거나 조마조마할 뿐입니다. 1등이라서 홀가분하지 않고 꼴등이라서 걱정스럽지 않아요.


  서로 사랑하려 할 때에 사랑을 합니다. 서로 좋아하려 할 때에 좋아하는 마음이 오갑니다. 서로 즐거이 누리는 삶을 꿈꿀 때에 참으로 즐거이 누리는 삶을 나날이 맞이합니다.


  돈을 벌고 싶다면 돈을 벌 노릇이지, 남을 누르며 혼자 차지하려고 바둥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을 얻고 싶으면 이름을 얻을 노릇이지, 내 이름값 키우면서 다른 이들을 깎아내릴 까닭이 없습니다.

 


- ‘정말 밋밋하다. 게다가 이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98쪽)
- ‘컴퓨터를 인터넷에도 연결하지 못해 여동생한테 무시당했던 내가, 설마 자작 컴퓨터를 만들어 내다니. 그리고, 또 오버클록을 시작해야 하나?’ (128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책 《87 clockers》(대원씨아이,2012) 첫째 권을 읽습니다. 오버클럭을 한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오버클럭을 한다 하고, 이 오버클럭을 하면서 지구별을 더 나아지도록 이끌 수 있다고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하든 지구별을 더 나아지도록 이끌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하든 지구별을 더 나빠지도록 이끌 수 있어요. 가장 빼어난 솜씨를 보인대서 더 나아지는 아름다운 길이 되지 않아요. 좀 덜 떨어져 보이는 재주라 해서 아무것도 못 이루지 않아요.


  솜씨가 빼어난 사람이 사진을 찍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빚는 사진을 일구지 않습니다. 재주가 없는 사람이 글을 쓰기에 사랑과 꿈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못 빚지 않아요.


  기계가 좋대서 더 나아 보이는 사진이 태어나지 않아요. 대학교를 다니거나 문예창작 강의를 들었기에 더 좋아 보이는 글이 나오지 않아요. 삶을 사랑하는 결대로 사진이 태어나고 글이 나와요. 삶을 아끼는 매무새대로 사진이 거듭나고 글이 빛나요.


  1등이란 그저 1등입니다. 2등 또한 그저 2등입니다. 오버클럭은 오버클럭입니다. 삶은 삶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라면 바이올린을 켜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든 좋아하는 마음을 북돋웁니다. 사랑 싣는 꿈이라면 바이올린을 켜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든 사랑 싣는 꿈을 나눕니다. (4345.4.15.해.ㅎㄲㅅㄱ)


― 87 clockers 1 (니노미야 토모코 글·그림,오경화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5.15./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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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을 벌고 싶다면 돈을 벌 노릇이지, 남을 누르며 혼자 차지하려고 바둥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을 얻고 싶으면 이름을 얻을 노릇이지, 내 이름값 키우면서 다른 이들을 깎아내릴 까닭이 없습니다. - 맞아요, 맞아...ㅋ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답지요.

파란놀 2012-04-17 21:20   좋아요 0 | URL
서로 아낄 수 있을 때에
즐겁게 피어나는
예쁜 꿈이 되리라 믿어요~
 


 그림 글쓰기

 


  첫째 아이가 그림을 그리며 머리카락을 함께 그려 넣는다. 아이는 이제 치마도 그림에 그린다고 말한다. 그래? 치마도 그렸니? 그렇지만 치마는 아직 잘 드러나지 않는걸. 아이 제 모습을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고, 동생을 그린다. 그러고 나서 이모랑 삼촌이랑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그린다. 아이 스스로 마음에 품는 좋은 사람들과 둘레 사람들을 하나하나 그린다. 아이 마음에 담기지 못한 사람을 굳이 그리지 않는다. 아이 마음에 담길 만하지 않은 사람을 따로 그리지 않는다.


  가장 사랑스러울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좋아할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장 빛나는 삶이 그림으로 드러난다. 가장 맑은 이야기가 그림으로 태어난다. 가장 애틋한 꿈이 그림으로 피어난다. (4345.4.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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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4-15 11:33   좋아요 0 | URL
아이의 그림 하나하나 발전 모습하나하나 소중히 여기고 사진 찍는 아빠 정말 멋져요.

파란놀 2012-04-16 07:23   좋아요 0 | URL
예쁘게 잘 노니까요~
 


 둘째 아이 책읽기

 


  둘째 아이가 한손에 볼펜을 쥐고 다른 한손에 빈책을 쥐며 논다. 마치 제 누나가 둘째 아이 무렵일 때에 놀던 모습하고 같다. 아이들은 어버이 모습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하나하나 배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다면 어린이집 어른들이나 동무들을 바라보면서 또 무언가를 배울 테지. 아이들하고 나란히 들판에 들놀이나 들마실을 간다면 아이들은 들을 바라보고 느끼며 배우리라. 아이들이랑 뒤꼍 밭뙈기 흙을 갈거나 씨앗 한 알 심는다면 아이들은 흙삶을 바라보고 느끼며 배우리라.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면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삶을 바라보고 느끼며 배우겠지.


  내 모든 좋은 모습을 아이들이 바라보고 느끼며 배운다. 내 모든 궂은 모습 또한 아이들이 바라보고 느끼며 배운다. 곧, 나 스스로 오늘 하루를 어느 만큼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아이들 또한 스스로 아끼고 사랑할 하루가 달라진다. 나 스스로 내 꿈을 즐겁게 빚는다면 아이들 또한 저희 꿈을 즐겁게 빚는다. 나부터 예쁜 넋이요 고운 말이라면 아이들은 시나브로 예쁜 넋이랑 고운 말로 저희 마음을 빛내리라.


  둘째 아이도 첫째 아이도 새삼스럽게 새로 배우고픈 이야기가 많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옆지기와 나 또한 새삼스럽게 새로 배울 이야기가 많다. 아름다운 삶을 새로 일구면서 배우고, 좋은 사랑을 새로 지으면서 배운다. 따스한 봄날이 하루하루 이어진다. (4345.4.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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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49) 퇴보적 1 : 완전 퇴보적이다

 

“달리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고, 구직활동 같은 것도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완전 퇴보적이다. 그래서, 그래서? 오카모토는 연극 연습 같은 것도 해?”
《니노미야 토모코/오경화 옮김-87 clockers (1)》(대원씨아이,2012) 40쪽

 

  “하고 싶은 건”은 “하고 싶은 일은”으로 다듬습니다. “구직활동() 같은 것도”는 “일자리 찾기도”나 “일할 곳을 찾는 삶도”나 “일거리 찾아 뛰어다니기도”로 다듬을 수 있고, “안 맞는 것 같아서”는 “안 맞는 듯해서”로 다듬을 만합니다. ‘완전(完全)’은 ‘아주’나 ‘참’이나 ‘매우’로 손질하고, “연습 같은 것도 해”는 “연습도 해”로 손질해 줍니다.


  짧게 주고받는 말마디인데 ‘것(건)’이 곳곳에 지나치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사람들 말투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얄궂거나 흔들리는 말마디가 널리 퍼지는 일은 슬픕니다.


  국어사전에는 ‘퇴보적’이라는 낱말이 안 실립니다. 한자말 ‘퇴보(退步)’만 “(1) 뒤로 물러감 (2) 정도나 수준이 이제까지의 상태보다 뒤떨어지거나 못하게 됨” 두 가지 뜻으로 실립니다. 요사이 적잖이 쓰인다 싶기도 하는 ‘퇴보적’이라 여길 수 있는데, 이 낱말도 일본사람 입과 손을 거쳐 한국으로 스며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완전 퇴보적이다
→ 아주 고리타분하다
→ 참 구리다
→ 되게 낡았다
 …

 

  한자말 ‘퇴보’ 뜻을 헤아립니다. 누군가 이 한자말을 그럭저럭 쓸 수 있으나, 굳이 이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뒤로 물러감’이나 ‘뒤떨어지다’ 같은 낱말을 쓰면 넉넉합니다. 뒤로 물러가는 모습이란 ‘뒷걸음’입니다. 뒤떨어진 모습이란 ‘고리타분하’거나 ‘낡’은 모습입니다. ‘구리다’라 할 수 있고, ‘구리구리하다’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낡아빠졌다’라든지 ‘헌털뱅이’처럼 쓸 수 있어요.


  ‘퇴보적’이나 ‘퇴보’와 같은 낱말을 어떻게 다듬느냐 하고 생각할 일이란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예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이 이러한 한자말로 가리킬 만한 모습을 예부터 어떤 낱말과 말투로 즐겁게 나타냈을까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생각을 어떻게 나타낼 때에 즐겁고, 서로서로 뜻과 넋을 어떠한 말씨로 담아서 나눌 때에 기쁜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의 퇴보적 민주주의
→ 뒷걸음치는 한국 민주주의
 퇴보적이고 시키는 대로 사는 로봇이 좋습니까
→ 고리타분하고 시키는 대로 사는 로봇이 좋습니까

 

  앞으로 차근차근 한 발짝씩 나아가는 삶입니다. 내 좋은 앞날을 꿈꾸며 씩씩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삶입니다. 어여쁜 삶을 어여쁜 넋으로 꿈꾸면서 어여쁜 말을 빚습니다. 빛나는 삶을 빛나는 얼로 바라면서 빛나는 글을 일굽니다.


  생각 하나 씨앗 되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좋게 뿌리는 말씨앗이라면 좋게 거두는 숱한 말열매를 맺습니다. 얄궂거나 뒤틀린 채 뿌리는 말씨앗이라면 자꾸자꾸 얄궂거나 뒤틀리고 마는 말마디가 됩니다.


  말을 빚는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기를 빕니다. 글을 엮는 꿈을 어떻게 북돋울 때에 흐뭇할까 하고 살피기를 빕니다.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려고 애쓸 때에 아름다이 살아갑니다. 스스로 알맞고 해맑게 말글을 빚자고 생각할 때에 비로소 알맞게 해맑게 빚을 말글을 찾습니다.

 

 퇴보적 환경정책을 버릴 것이다
→ 한물 간 환경정책을 버릴 생각이다
→ 낡은 환경정책을 버리려 한다

 

  흙을 살리면서 삶을 살립니다. 넋을 살리면서 말을 살립니다. 흙을 돌보면서 삶을 돌봅니다. 얼을 돌보면서 글을 돌봅니다. 흙을 가꾸면서 풀과 나무가 기쁘게 뿌리내릴 터전을 가꿉니다. 말과 글을 가꾸면서 내 이웃과 동무가 즐거이 어깨동무할 삶터를 가꿉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밭을 알뜰살뜰 여미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5.4.1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달리 하고 싶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일자리 찾기도 나랑 안 맞는 듯해서.” “되게 고리타분하다. 그래서, 그래서? 오카모토는 연극 연습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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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문명 - 한 지구 시민의 생태 평화 순례기
마사키 다카시 지음, 김경옥 옮김 / 책세상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작은 숲과 작은 사람을 사랑하며
 [환경책 읽기 35] 마사키 다카시, 《나비 문명》

 


- 책이름 : 나비 문명
- 글 : 마사키 다카시
- 옮긴이 : 김경옥
- 펴낸곳 : 책세상 (2010.10.12.)
- 책값 : 9500원

 


  봄을 맞이한 들판은 금세 푸른 물결이 됩니다. 봄바람 가볍게 살랑일 때에는 푸르게 푸르게 물결칩니다. 마늘밭도 유채밭도 여느 풀밭도 눈부시게 반짝이며 물결칩니다. 아마 예전에는 보리밭 푸른 잎사귀가 함께 물결쳤겠지요.


  문득 돌이키면 지난날에는 ‘보리고개’라 했어요. 보리고개 넘기 벅찼다고 했어요. 그무렵에는 어떠한 삶이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떻게 끼니를 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내 어릴 적 학교에서 교사들한테서 ‘보리고개’ 소리를 듣고 이것저것 배울 때에 늘 궁금했습니다. 왜 굶고 왜 힘겨우며 왜 고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고.


  나로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라 할 만한 1950∼60년대 이야기를 〈민족일보〉라는 신문 줄인판을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읽으며 되새긴 적 있습니다. 1950∼60년대 어두운 그늘 이야기가 〈민족일보〉라는 신문에 날마다 실렸는데, 이무렵 〈민족일보〉 첫머리를 채우는 기사 가운데 참 자주 나오는 이야기는 ‘오늘은 몇 사람이 길에서 굶어죽었느냐’하고 ‘오늘은 몇 아이가 어버이 잃은 채 길바닥에서 우는가’예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길바닥에 몇몇씩 널브러졌다고 했어요. 갓난쟁이들이 포대기에 감기거나 바구니에 담긴 채 ‘제법 먹고살 만하게 보이는 집’ 문간에 놓이는 일이 흔하다고 했어요. 예전 신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시골에서는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풀이라도 뜯으며 목숨을 잇지만, 도시에서는 뜯을 풀조차 없으니 굶어죽는다 했어요.


.. 눈앞에 있는 이렇게 가까운 나라인데 보이지 않았을 까닭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은 외면하고 있었던 탓입니다. 그렇다면 왜 외면했던 것일까요? … 자연이 심하게 병들어 있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나무를 심었던 겁니다. 그랬는데 나무를 심는 일이 이토록 기쁘고 즐거운 일일 줄이야. 아프고 어두운 기운 같은 건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기쁨만이 산을 가득 채우게 되다니, 왜일까? … 그 나라들을 일부러 화나게 해서 반일 감정을 갖게 하고, 그 반발하는 감정으로 일본을 위협하게 해서,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군대를 가질 필요를 감정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연출입니다. 북한이 저질렀다는 일본인 납치 문제도 ‘헌법 개정 캠페인’과 연계해서 이용하고 ..  (12, 31, 118쪽)


  봄을 맞이한 들판을 바라보거나 쓰다듬으면서 생각합니다. 예전 사람들은 풀죽을 먹었다고도 하는데, 조금 억센 풀은 데쳐서 먹고, 여린 풀은 날것으로 먹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갓 돋은 잎은 여리니 그냥 먹을 만하지만, 날이 흐르고 흘러 차츰 억세지면 데치거나 삶아서 먹겠지요. 곡식가루 조금 쓸 수 있다거나 얻을 수 있으면 풀떡을 해서 먹겠지요.


  옆지기가 가루 반죽을 합니다. 풀물(녹즙)을 짜고 난 찌끼를 잔뜩 넣어 빵처럼 굽습니다. 마당가에서 뜯은 쑥으로도 빵을 굽습니다. 퍽 적은 곡식가루로 한두 끼니 넉넉히 먹을 만큼 됩니다. 아마 옛날 옛적에는 곡식가루보다 풀을 훨씬 많이 넣으며 떡을 하거나 빵처럼 구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붕에 기와를 얹는 제법 살림이 있다 하는 집이라면 쌀밥을 먹었겠지만, 지붕에 풀짚을 얹는 여느 흙일꾼 집이라면 으레 풀을 많이 먹었으리라 생각해요.


  들을 다니고 멧줄기를 드나들면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얻어요. 다만, 1950∼60년대는 한국전쟁 뒤끝이라 민둥산이 많고 숱한 나무들이 타죽거나 말라죽었을 테니, 들나물이나 멧열매 얻기는 퍽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땔감에 쓸 나무를 찾아야 해요.


..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대도시 빌딩 뒤는 쓰레기 산, 공장 굴뚝에서는 뭉게뭉게 가스가 피어오르고, 수많은 자동차가 달리고 있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별에서 서로 부를 차지하느라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니 … 세계의 많은 도시와 시민 생활은 거의 모든 것이 환경에서 뺏어 온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산업이나 경제가 발달했다는 오늘날 자연이 받는 타격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숲을 파괴해 마을을 만들고 사막을 낳고 … “침략하겠습니다” 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들 “자위를 위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  (17, 64, 99쪽)


  예부터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흙을 일구었습니다. 임금이나 신하나 사대부나 권력자나 이런저런 몇몇 사람은 흙을 안 일구며 살았을 텐데, 100으로 치면 98에 이르는 여느 사람들은 아주 마땅히 흙을 일구며 밥과 옷과 집을 얻었으리라 생각해요. 땅을 넓게 차지하는 땅임자라면 쌀밥을 배불리 먹었을는지 모릅니다. 여느 흙일꾼이라면 쌀밥 먹기는 벅차고, 으레 나물죽이나 나물밥, 아니면 풀을 뜯어다 먹는 삶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부터 내려오는 ‘밥풀(먹는 풀)’과 ‘약풀’ 이야기란 여느 흙일꾼이 여느 삶에서 늘 찾아서 먹던 풀 이야기라고 느껴요.


  못 먹거나 안 먹는 풀은 없었겠지요. 다섯 가지 넘는 풀을 골고루 섞어 먹으면 아주 드센 풀도 잘 먹을 수 있다 하는데, 이런 앎이나 슬기란 옛 흙일꾼이 스스로 풀을 뜯어먹으며 몸으로 깨달은 이야기라고 느껴요. 백 가지나 이백 가지 풀을 알던 옛사람이 아니라, 천 가지 만 가지 풀을 알던 옛사람이리라 생각해요. 나무 또한 열 가지 스무 가지 아닌 천 가지 만 가지 나무를 알았겠지요. 따로 나무도감 풀도감 꽃도감은 없지만, 스스로 ‘나무·풀·꽃 도감’이 되어 들판이랑 멧줄기를 누비는 흙사람이었으리라 봅니다.


  흙은 참말만 합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흙은 제 속살을 훤히 보여줍니다. 겨울을 난 봄들과 봄메에 푸른 옷을 입히는 흙입니다. 봄들과 봄메는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이 살아갈 수 있게끔 푸른 밥을 내놓는 흙입니다.

  쉰 살 일흔 살 백 살을 살아야 기쁜 삶은 아닙니다. 스무 살 마흔 살 예순 살을 살더라도 하루하루 아름답다고 느끼며 웃음을 누릴 때에 기쁜 삶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목숨이 늘어났다는 삶이 정작 즐겁거나 좋게 누리는 삶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즐겁게 얻는지 아리송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아름답게 누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서로서로 예쁘게 여미는지 모르겠습니다.


.. 물고기가 바다에 안겨 있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갑니다. 물고기의 생활이 바닷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생활은 자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산에 나무를 심으면 산 어머니뿐 아니라 바다 어머니도 크게 기뻐해, 사랑을 샤워처럼 쏟아냅니다 … 쿠니의 평화란 도대체 무엇에 의해 지켜지는 것일까요? 군대일까요? 꽃이나 새일까요? 군대가 만들어낸 평화가 진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오키나와가 전쟁터가 되기 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이 있고, 인생이 있고, 노래도 꽃도 과거도 미래도 있었을 겁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  (35, 37, 121, 124쪽)


  한삶 즐겁게 누리던 누군가는 나무로 다시 태어납니다. 한삶 곱게 누리던 누군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한삶 예쁘게 누리던 누군가는 굳이 어떤 모습을 껍데기로 쓰지 않고 아지랑이나 무지개나 물방울이나 햇살이 되어 온누리를 살랑살랑 누비기도 합니다.


  풀 한 포기가 너른 목숨입니다. 빗망울 또한 너른 목숨입니다. 산들바람이나 한들바람도 너른 목숨이요, 뭉게구름이나 소낙비도 너른 목숨이에요. 목숨이 목숨을 북돋웁니다. 목숨이 목숨을 살찌웁니다.


  지구별은 송두리째 너른 목숨입니다. 다 다른 목숨이면서 다 같은 목숨입니다. 서로 돌고 도는 목숨입니다. 내 몸에 여우 넋이 깃듭니다. 비둘기 몸에 들쥐 넋이 깃듭니다. 제비꽃 몸에 지렁이 넋이 깃듭니다. 서로 사랑하며 어우러지는 목숨입니다. 서로 아끼며 한덩어리를 이루는 지구별입니다.


  다툼이나 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만 죽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사람부터 죽이지만, 사람을 비롯해 참새와 박새와 할미꽃과 진달래와 느릅나무와 뽕나무를 나란히 죽입니다. 정치다툼은 사람만 줄세우기를 시켜 들볶을 뿐 아니라, 땅과 냇물과 멧등성이마저 금을 죽죽 갈라 들볶습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증으로 내세우는 학력 또한 우리 삶을 통째로 흔들며 뒤죽박죽이 되게 합니다.


  오직 사랑이 아니라면 흔들리는 삶입니다. 오로지 사랑이 아니라면 무너지는 지구별 삶입니다. 그예 사랑이 아니라면 자꾸자꾸 미움과 시샘과 따돌림과 악다구니가 판치고 마는 지구별 살림살이입니다.


..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거부하고 있는 오바마 시에는 보상금이 내려오지 않아서 이런저런 공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자연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고 할 때, 그것은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뭇 생명들 위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 생태는 말뿐이고, 현대 문명의 속셈은 역시 돈을 좇고 있습니다 … 대도시의 고층빌딩도 대지가 받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숲에서 나온 물로 살아갑니다. 카펫보다 대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카펫의 번영을 위해 대지가 더럽혀지고 파괴되어서는 안 됩니다 ..  (51, 53, 87, 168쪽)


  마사키 다카시 님이 빚은 《나비 문명》(책세상,2010)을 읽습니다. 나비 한 마리가 큰물결 일으킨다는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한 오늘날입니다만, 막상 스스로 나비 물결 일으키는 줄 깨닫는 사람마저 없을 듯한 오늘날이 아니랴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랑도 나비 물결입니다. 슬픈 전쟁무기도 나비 물결입니다. 고운 속삭임과 눈맞춤도 나비 물결입니다. 차갑거나 메마른 돈벌이도 나비 물결이에요.


  좋은 생각은 나비 물결로 퍼집니다. 궂거나 슬프거나 미운 생각 또한 나비 물결로 퍼집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따사롭게 살아갈 때에, 나 스스로 따사로운 사랑 기운을 내 둘레에 퍼뜨립니다. 나 스스로 얄궂게 오늘 하루 내동댕이칠 때에, 나 스스로 모질거나 미운 기운을 내 둘레에 퍼뜨려요.


.. 어느 날 긴 여행에서 농장으로 돌아와 아, 집으로 돌아왔구나 싶었던 게 책상 앞에 앉아 창밖에 선 삼나무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밖으로 나가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 이제야 왔어요.” 하고는 나무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랬더니 나무도 기쁜 듯 “오오.” 하고 답해 줬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20년이나 서로 마주보고 살았는데 지금까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니, 원래 삼나무 숲이었던 곳에 집을 지었는데 똑 부러지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니 … “나도 병들어 있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그루 벚나무였습니다.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굵은 가지 몇 개가 잘려 있고, 나무껍질은 바짝 말라 바삭거리고 있었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뿌리 근처에는 회색약이 두껍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나무 둥치에 손을 갖다 대니 나무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 왔습니다 ..  (14∼15, 28쪽)


  나무한테 말을 걸면 나무가 대꾸를 합니다. 쑥풀한테 말을 걸면 쑥풀이 대꾸를 합니다. 종달새한테 말을 걸면 종달새가 대꾸를 합니다. 개구리한테 말을 걸면 개구리가 대꾸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한테 말을 거나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지내는 사람들은 누구한테 말을 거나요.


  어떤 말을 거는 삶인가요. 어떤 꿈을 마음속으로 일구면서 말을 거는 삶인가요. 어떤 사랑을 이루고픈 꿈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보듬으면서 말을 거는 삶인가요.


.. 우리 몸은 온전히 우리가 먹은 것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먹은 건 무엇일까요 ..  (70쪽)


  하루하루 새 아침이 밝습니다. 날마다 새 새벽이 찾아듭니다. 나날이 새 햇살과 새 어스름과 새 달과 새 바람을 맞이합니다. 어제를 즐거이 누리면서 오늘을 즐거이 맞아들입니다. 오늘을 즐거이 누리고 나서 이듬날을 새롭게 꿈꿉니다.


  어떤 보배를 얼마나 내 손아귀에 쥐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꿈을 어떤 사랑으로 키우면서 어떤 삶을 어떤 하루로 누리느냐가 가장 대수롭습니다.


  살아가는 나날 언제나 배웁니다. 학교에 들어가야 배우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땄기에 다 배우거나 많이 배웠다 할 수 없습니다. 배움이란 삶이거든요. 살아가는 나날이 모두 배움이거든요.


  햇볕을 먹습니다. 햇볕 담은 풀을 먹습니다. 햇볕 담은 풀에 맺힌 사랑을 먹습니다. 내가 먹고 옆지기가 먹으며 아이들이 먹습니다. 사람은 돈이나 학력이나 아파트나 은행계좌를 먹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햇볕을 먹습니다. 사람은 물을 먹고, 바람을 먹습니다. 사람은 흙을 먹지, 아스팔트나 자동차를 먹지 못합니다. 사람은 햇살이 실린 무지개를 먹지, 원자력발전소나 전기를 먹지 못해요.


  내가 먹는 밥이 내 몸을 돌고 돌아 똥오줌 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먹은 밥 그대로 우리 지구별 모습이 달라집니다. 내가 누리는 밥삶이 지구별이 앞으로 나아갈 모습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 가두는 이야기로는 지구별이 아름답게 이어갈 수 없습니다. 몸으로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가 되어야 비로소 지구별이 한껏 푸른 빛깔로 온누리에 맑게 빛납니다. (4345.4.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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