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날리는 책읽기

 


  아버지랑 둘이서 뒷밭 돌을 고르던 아이가 힘들다고 호미를 내려놓더니, 이내 다시 뒷밭으로 오며 풀꽃 따기를 한다. 다섯 살 어린이더러 몇 시간 밭일을 함께하자고 말하기는 어렵다. 곁에서 거들며 놀다가 쉬다가 되풀이해야 하겠지. 뒤꼍 땅뙈기에 흐드러지려는 풀마다 꽃을 피운다. 들풀은 아이 키만큼 높이 자란다. 아이는 풀숲에 깃들어 꽃을 딴다. 풀씨를 맺은 송이를 입에 바람을 넣고 후후 분다. 꼭 민들레가 아니더라도 후후 불며 날릴 풀씨는 많다.


  누런 빛과 푸른 빛과 파란 빛 사이에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모든 빛깔이 또렷하고 맑다. 아이가 두 발로 서는 땅과 아이가 두 눈으로 바라보는 풀과 아이가 몸이며 마음으로 받아들일 하늘이 나란히 얼크러지는 곳이 아이한테 가장 아름다운 터전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한다면 세 가지 빛깔 사이에서 가르칠 때에 즐거웁겠다고 느낀다. 이제부터 흙땅 밟는 겨를을 차츰 늘려야겠다.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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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4-21 01:10   좋아요 0 | URL
류는 민들레씨만 보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는데,,ㅎㅎ
살이 좀 오른것같네요, ,,너무 귀여워요,,

파란놀 2012-04-21 01:18   좋아요 0 | URL
키카 나날이 크면서 아주 듬직한 시골 어린이 모습을 보여준답니다~~
류 어린이가 컸어도 풀씨 날리기는 늘 즐기겠지요~?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2) 선생님

 

20대끼리 나이 들먹이며 윗사람인 체한다면, 그것은 선생님처럼 나이가 제법 든 사람의 눈에는 … 인터넷 실명제가 거론되기도 하는데, 선생님은 거기에 반대하는 입장이야
《함규진-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 42, 86쪽

 

  ‘그것은’은 ‘이는’으로 다듬고, “사람의 눈에는”은 “사람 눈에는”으로 다듬습니다. “인터넷 실명제(實名制)”는 그대로 둘 때가 한결 나은 듯 여기지만, “인터넷 이름 밝히기”나 “인터넷 참이름 쓰기”처럼 쉽게 풀어내어 쓰는 길을 살필 수 있을 때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가 거론(擧論)되기도 하는데”는 “-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나 “-를 들먹이기도 하는데”나 “-를 하자 말하기도 하는데”로 손보고, “거기에 반대(反對)하는 입장(立場)이야”는 “이 생각에 반대해”나 “이와 달리 생각해”로 손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처럼 나이가 제법 든 사람의 눈에는
→ 나처럼 나이가 제법 든 사람 눈에는
→ 아저씨처럼 나이가 제법 든 사람 눈에는
→ 나이가 제법 든 사람 눈에는
 …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는 일을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쓰는 일이 마치 ‘순 우리 말 쓰기’라도 되는 듯 여깁니다.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하면서도 아름다운 말을 꿈꾸지 못하고, 올바른 정치를 꾀한다면서 올바른 말을 꾀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이라는 말마디는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남이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지, 누군가 스스로를 내세우거나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신하나 백성이 누군가를 가리켜 ‘임금님’이라 말할 뿐, 누군가 스스로 “임금님으로서 가로되”처럼 나타낼 수 없습니다. 누군가 어느 사람을 가리켜 ‘사모님’이라 말한대서, 어느 사람 스스로 “사모님은 이렇게 생각해” 하고 말할 수 없어요.


  이와 같은 말씀씀이는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씀이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거기에 반대하는 입장이야
→ 나는 이 생각에 반대해
→ 내 생각은 이와 달라
→ 나는 이와 달리 생각해
 …

 

  나를 스스로 밝힐 때에는 ‘나’라 말합니다. 맞은편을 높이는 말투로 가다듬는다면 ‘저’라 말합니다. 이를테면, 신문기자가 인간문화재 어르신을 만나뵙는 자리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고 물을 수 있을 텐데, 이때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말하면 알맞습니다.


  학교 교무실에서 ‘여러 교사’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때에 ‘여러 교사’는 스스로를 어떻게 밝히며 이야기를 나눌까요. 서로서로 “선생님은 말이야” 하며 말머리를 열지 않겠지요.


  곧, ‘학생’ 앞에서 ‘교사 스스로’를 높이는 말투로 ‘선생님’이라는 낱말을 쓰는 셈입니다. 대이름씨 아닌 ‘선생님’이지만, 학생 앞에 서는 사람들이 대이름씨를 올바르게 가누지 못하는 노릇입니다. 학생 앞에 선 교사가 ‘스스로를 높이는 듯’한 말투로 한국말을 잘못 쓰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교사는 한 가지를 더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先生)’이라는 낱말은 높이는 말입니다. 높이는 자리에 쓰는 ‘선생’입니다. 처음부터 높이는 낱말인 터라, 굳이 ‘-님’을 붙이지 않아도 돼요.


  ‘스승’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한국말입니니다. 할아버지가 어린이를 바라보며 “네가 내 스승이구나.” 하고 말합니다. 어린이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제 스승이에요.” 하고 말해요.


  더 생각해 보면, ‘손님’을 가리키는 한자말 ‘고객(顧客)’을 더 높여 일컫는다며 ‘고객님’이라 말하곤 합니다. ‘손님’이라는 낱말이 ‘손’을 높이는 낱말이요, ‘고객’이라는 한자말부터 ‘손님’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르지만,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바로잡지 못하면서 더 엉뚱하게 ‘고객 + 님’처럼 말을 하고야 맙니다. 엉뚱하게 말하면서 스스로 엉뚱한 줄 모를 뿐 아니라, 마치 좋은 말을 한다는 듯 잘못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나 스스로 바보가 되지 않자면 생각하며 말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일구고 싶으면 생각하며 말을 북돋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넋과 꿈을 어여삐 돌보고 싶으면 생각하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4345.4.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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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끼리 나이 들먹이며 윗사람인 체한다면, 이는 나이가 제법 든 사람 눈에는 … 인터넷에 이름을 밝히도록 하자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와 달리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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젯밥과 화분 신생시선 29
김수우 지음 / 신생(전망)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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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리며 생각을 담는 시
[시를 노래하는 시 15] 김수우, 《젯밥과 화분》

 


- 책이름 : 젯밥과 화분
- 글 : 김수우
- 펴낸곳 : 신생 (2011.7.30.)
- 책값 : 8000원

 


  날마다 내 삶은 시입니다. 즐겁게 웃는 날은 즐겁게 쓰는 시입니다. 슬프게 가라앉는 날은 슬프게 가라앉는 시입니다.


  날마다 누리는 대로 시가 태어납니다. 기쁘게 누린 하루라면 기쁘게 누린 빛으로 시를 빚습니다. 슬프게 보낸 하루라면 슬프게 보낸 눈물로 시를 일굽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 내 마음속 깊은 데부터 웃음이 샘솟습니다. 아이들이 낑낑거리거나 울면 내 가슴 곳곳이 아프게 울며 속이 울렁거립니다.


.. 목련 방울에 봄눈 내린다 ..  (목련, 여미다)


  봄비 내리는 하루가 지납니다. 어제와 오늘 내리 봄비가 내립니다. 올해 봄비는 이레에 한 차례쯤 찾아듭니다. 날이 마른다 싶으면 비와 바람이 찾아옵니다.


  봄이기에 봄비입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봄비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내 삶터가 시골이면 시골 논밭에 내리는 봄비가 풀과 푸성귀와 나무한테 어떤 빗방울로 스며드는가 하고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내 삶터가 도시라면 도시 건물과 찻길과 자동차에 내리는 봄비가 이곳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고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빗소리가 그친다 싶은 새벽 다섯 시 조금 지날 무렵, 창호종이 바른 문 바깥으로 하얀 빛이 비칩니다. 천천히 동이 트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 하얀 빛살을 느끼며 귀를 기울입니다. 빗소리가 그치니 새소리가 들립니다. 들새는 새벽녘부터 먹이를 찾으러 부산을 떠나요. 비가 그쳐 이제 날개를 말린다며 바지런을 떠나요.


.. 연필 하나 공책 하나, 젯밥으로 올리니 / 한 종지 행빛이 슬몃 앉더라는 낡은 소반 이야기 / 안부처럼 듣는다 / 탯줄 끊고 세 이레 머리맡에 놓았다는 // 미역국 겨우 받은 / 어미의 착한 제사가 내 시의 起源이었던 것 ..  (제왕판)


  인천에 살던 때에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서울에서 살던 때에는 서울에서 마주하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음성에서 살던 때에는 음성 멧자락에 뿌리내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고흥에서 살아가는 오늘은 고흥 시골마을 집집마다 아리땁게 가지를 뻗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겨우내 푸른빛 건사하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동백꽃은 이른겨울에도 햇살 따사로울 적에 몇 송이 피었고, 흐드러지는 봄날에 흐드러지는 꽃송이가 활짝 벌어졌습니다. 후박꽃은 곁에 동백꽃이 흐드러지다가 몽땅 진 이즈음까지 꽃송이를 벌리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몽우리가 차츰 커집니다. 길쭉하고 두툼한 몽우리가 언제쯤 터지려나 생각하며 날마다 올려다봅니다. 겨우내 작은 몽우리가 있었는데, 겨울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몽우리는 어떤 빛 어떤 내 어떤 결이 깃든 꽃으로 거듭날까 궁금합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데리고 후박나무 곁으로 와서 하늘던지기를 곧잘 합니다. 후박꽃 몽우리 있는 데까지 휙휙 던집니다. 아이는 붕붕 날며 후박잎을 건드립니다. 살짝살짝 하늘을 날며 까르르 터지는 아이 웃음이 후박꽃으로 조금씩 스며들리라 생각합니다.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아이처럼, 씩씩하고 튼튼하게 서서 줄기를 뻗고 잎을 틔우며 꽃을 내는 우리 집 마당가 나무가 되겠지요.


.. 산복도로 골목, 고무대야와 플라스틱 상자들 / 긴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키운다 / 모퉁이마다 식구로 모여 앉은 연두빛 // 파 상추 웃자라는 텃밭이 목숨처럼 깊으니 / 동백 산당화 심심한 정원이 꿈처럼 넓으니 ..  (대야大野)


  기저귀 빨래를 갭니다. 옆지기랑 아이들이 새근새근 자는 새벽녘 조용히 일어나 기저귀를 갭니다. 하루 내내 비가 오기에 빨래를 집안에 널었습니다. 날마다 빨래를 하는 만큼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늘 빨래를 합니다. 갓난쟁이 있는 집은 날마다 빨래가 한가득입니다. 아기 기저귀 빨래를 미룰 수 없습니다.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다 가려 기저귀 쓸 일이 없어지던 때에 둘째가 태어나며, 다섯 해째 날마다 수북하게 쌓이는 빨래를 껴안습니다.


  날마다 하는 빨래인 만큼 어제 한 빨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할 빨래를 아침마다 생각하고, 낮나절 햇볕 받아 잘 마른 빨래를 갤 뿐입니다. 비오는 날 빨래를 집안에 널며 문득문득 지난해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장마철 빨래를 어쩜 그리 잘 견뎠을까 하고 떠올립니다. 지난겨울에도 빨래를 집안 곳곳에 널며 어쩜 그리 잘 보냈을까 하고 되새깁니다. 앞으로 아이가 돌을 지나고 낮기저귀를 떼며 차츰 나이를 먹으며 밤오줌을 가릴 나이가 되고 보면, 이제 기저귀 빨래는 많이 줄겠지요. 기저귀 빨래가 줄 무렵이면 둘째 아이도 제 누나마냥 더 많이 만지고 더 많이 느끼며 더 많이 배우고픈 어린이 삶을 누리겠지요.


  오늘 비가 그치면 뒤꼍 빈터 돌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돌을 고른 다음 삽과 괭이로 흙을 갈아엎으면 곁에서 첫째 아이는 호미를 들고 흙을 쪼리라 봅니다. 한나절 실컷 돌고르기 땅갈기를 하고 나서는, 지난여름 거두어 갈무리한 씨감자를 칼로 싹둑싹둑 썰어 폭폭 묻어야지요.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감자묻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즐겁게 따라하겠지요.


  씨앗을 심는 어버이 곁에서 씨앗을 심는 아이입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기쁘게 노래하는 아이입니다. 맛나게 밥을 먹는 어버이 곁에서 맛나게 밥을 먹는 아이입니다. 예쁘게 꿈을 꾸는 어버이 곁에서 예쁘게 꿈을 꾸는 아이입니다.


.. 나무는 제 몸 두 배나 되는 둥근 그늘을 왼쪽으로 부려놓고 있었다 ..  (살그머니)


  좋은 삶을 생각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빚습니다. 슬픈 삶에 얽매이면서 슬픈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좋은 삶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좋은 살림을 꾸립니다. 슬픈 삶에 허덕이면서 슬픈 일에 짓눌립니다.


  내 눈빛이 맑을 때에 내 살붙이들 눈빛이 함께 맑습니다. 내 눈빛이 흐릴 때에 내 살붙이들 눈빛이 함께 흐립니다. 내 손길이 따사로울 때에 내 이웃들 손길이 같이 따사롭습니다. 내 손길이 차가울 때에 내 이웃들 손길이 같이 차갑습니다.


  날마다 맞아들일 일과 놀이는 아주 마땅합니다. 기쁜 일과 재미난 놀이를 맞아들여야 마땅합니다. 어떤 일이든 내 삶을 북돋울 가장 기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놀이가 되든 내 슬기를 빛내어 아이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즐기는 놀이가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몰든 영화를 보든 호미질을 하든 빨래기계 돌리든, 내 삶은 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젖먹이 죽을 끓이든 미역국을 끓이든 당근물을 짜든 누런쌀을 불리든, 내 밥은 나 스스로 가장 고마운 밥이어야 합니다. 글월 한 장 쓰든 시 한 자락 쓰든 일기 한 줄 쓰든, 내 글은 나 스스로 가장 밝은 글이어야 합니다.


.. 국경수비대는 나그네의 자루를 오늘도 헤집고 있을 거다 // 티벳식당 여주인은 햇살도 그늘도 둥근 만두로 빚을 거다 // 새벽버스는 터덜터덜 출발하고 닿으며 또 새벽이 될 거다 ..  (길, 그 후)


  바람이 붑니다. 구름이 흐릅니다. 해가 고개를 내밉니다. 풀잎이 살랑입니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 도란도란 말소리 들립니다. 경운기 움직이는 소리 납니다. 들새가 우짖습니다. 군내버스 두 시간에 한 대씩 지나가며 부릉부릉 합니다. 우체국 일꾼이 오토바이 타고 지나갑니다. 두 아이가 찧고 까붑니다. 빨래가 팔랑입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으며 보송보송 마른 고운 결을 손마디마다 느낍니다. 새로 피어나는 봄꽃에 볼을 대며 보드라운 잎사귀를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이 작고 어여쁜 목숨이 얼마나 따뜻한가 하고 헤아립니다. 내 몸과 마음에 깃든 가장 좋은 이야기를 이 아이들한테 물려줄 때에 나 스스로 좋은 넋이고 말이며 꿈인 삶을 일구는 나날이 되리라 느낍니다.


.. 바람이 내는 가위질 소리를 들어야 한다 / 몸에 무수히 돋는 발톱을 참아야 한다 ..  (퇴행退行)


  김수우 님 시집 《젯밥과 화분》(신생,2011)을 읽습니다. 서정시를 쓴다는 김수우 님인데, 나는 김수우 님을 골목동네 사진을 찍은 분으로 처음 알았습니다. 《지붕 밑 푸른 바다》(눈빛,2003)로 만났거든요. 부산 골목동네 이야기를 담은 사진과 글을 읽고 나서, 김수우 님이 빚은 시집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진과 글로 골목자락 삶을 들려주는 목소리가 정갈하다면, 오직 시넋으로 삶을 보여주는 목소리는 어떠할까 궁금했습니다.


  하루에 두어 가락 읽기도 하고, 며칠에 한 가락 읽기도 하면서 《젯밥과 화분》을 곁에 둡니다. 시를 읽다가 아이를 품에 안고,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다가 시를 읽습니다. 시를 읽다가 밥을 하고, 빨래를 마친 다음 마당에 널고 나서 기지개를 켜고는 시를 읽습니다.


.. 남편은 뭍으로 돌아와 무사히 늙고 아들은 새 집을 사고 딸은 서정시를 쓴다는데 ..  (엄마와 북어)


  김수우 님은 고기잡이 아버지를 둔 서정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밝힙니다. 그렇구나, 서정시를 쓰는 김수우 님이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시집에 적힌 해적이를 읽다가 ‘백년어서원’이라는 이름이 보여 이곳은 무엇을 하는 데인가 알아봅니다. 부산 중구 동광동 골목자락 한켠에 인문책방을 열어 꾸리기도 한답니다. 인문책방에서는 인문소식지가 함께 나옵니다.


  시집을 다 읽습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서정시란 ‘서정(抒情)’를 이야기하는 시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서정시란 이름은 익히 들었으나, ‘서정’이 무얼 가리키는가를 배운 적은 없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한자말 ‘서정’은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 냄”을 뜻한다고 합니다. 곧, 서정시란 “마음을 그리는 시”입니다. “생각을 담는 시”입니다.


  문득 고개를 갸웃합니다. 어느 시이든 마음을 그리고 생각을 담지 않던가? 마음을 그리지 않고서 시가 될 수 있는가? 생각을 담지 않으면서 시가 태어나는가? 마음도 생각도 없는 시라 한다면 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나?


  국어사전을 또 뒤적입니다. 이제는 ‘인문(人文)’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봅니다. 사람들이 참 자주 쓰는 낱말인데, 막상 이 한자말을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하도록 쉽게 풀어내어 이야기하는 이는 드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로는 “인류의 문화”라 합니다. 다시 ‘문화(文化)’를 찾아봅니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라 나옵니다. 가만가만 추스른다면, ‘문화’란 “이 땅에서 이루는 모든 삶과 살림”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인문’이라 한다면, “사람이 이루는 모든 삶과 살림”이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김수우 님이 서정시를 쓰고 인문책방을 꾸린다면, “마음을 그리며 생각을 담는 이야기를 사랑하면서, 이웃과 동무하고 얼크러지는 좋은 삶과 살림을 아끼려 한다”는 뜻이 될 테지요.


.. 누군가의 치열한 양식이 되는 건 가장 정직한 환생 ..  (糧食)


  마음은 내 몸에서 비롯합니다. 생각은 내 삶에서 샘솟습니다. 내 몸을 어디에서 가다듬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집니다. 내 삶을 어디에서 꽃피우려 하는가에 따라 내 생각이 바뀝니다. 내 몸을 어떻게 건사하려 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거듭납니다. 내 삶을 어떤 무늬와 내음과 빛깔로 돌보려 하는가에 따라 내 생각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시를 쓰는 마음은 사랑을 쓰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시를 읽는 마음은 사랑을 짓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새로 맞이하는 하루를 사랑합니다. 즐겁게 누리고 나서 덮는 하루를 사랑합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롭습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보람찹니다. 달콤하게 잠을 자고 나서 개운하게 일어납니다. 고단하도록 놀거나 일한 다음 맛나게 잠을 잡니다.


  모든 목숨은 흐르는 물을 마십니다. 곰도 여우도 토끼도 비둘기도 참새도 까마귀도 흐르는 물을 마십니다. 사람 또한 흐르는 물을 마실 때에 가장 빛나는 목숨입니다. 흐르는 물은 흐르는 삶입니다. 흐르는 물은 티끌을 씻고 온누리를 적시며 푸나무를 살찌웁니다. 마음을 그리는 시는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생각을 담는 시는 흐르는 물을 마시는 어여쁜 목숨과 같습니다. (4345.4.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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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안고 오줌 참기

 


  배에 누인 아이를 한손으로 보듬고, 옆에 누운 아이를 한손으로 쓰다듬으며 긴긴 밤을 얼마나 오래 보낼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두 아이 재우는 몫을 맡는다. 옆지기가 몸을 튼튼히 추스르기 힘들다 보니, 마음닦기를 하든 뜨개를 하든 아이들이 고이 잠들고 예쁘게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토닥토닥 자장노래를 부르며 재운다. 엊저녁 열 시 무렵부터 두 아이 재우기를 하다가 새벽 네 시에 일어난다. 처음 아이들 재울 적부터 쉬가 마려웠지만, 조금 참자 생각하며 아이들을 재운다. 첫째가 자는 소리를 느끼고 둘째 또한 자는 소리를 느끼며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나 스스로 끼루룩 하고 곯아떨어진다. 잠결에 첫째가 스르르 일어나 더 놀고파 하는 모습을 얼핏 본 듯하지만, 가슴에 누워 자는 아이 무게를 느끼며 다시 눈을 사르르 감기만 한다. 첫째는 어머니 곁에서 책이라도 읽다가 다시 잠들었을까.


  여섯 시간 아이를 안고 재우자니 가슴이며 팔이며 뻑적지근하다. 둘째 몸무게가 십일 킬로그램 즈음 되지만, 이만 한 몸무게라 하더라도 여러 시간 있자면 몸이 뻑적지근하다. 이제 쉬를 더 참기 힘들기에 둘째가 깨지 않기를 빌며 바닥에 몸을 살포시 내린다. 그런데 내 팔에 힘이 다 빠져 뻣뻣한 바람에, 그만 아이를 놓쳐 머리를 콩 박는다. 둘째가 눈을 반짝 뜬다. 아이고 미안해라. 아니야 아니야 아버지가 잘못했어, 괜찮아 괜찮아 잘 자렴, 토닥토닥 가슴을 다독인다. 아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나 스스로 품을 좋은 사랑은 어떤 모습일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해 본다. 나 스스로 누릴 좋은 삶은 어떤 사랑으로 엮을 때에 즐거울까 헤아려 본다.


  아이들이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면 좋겠다. 너무 일찍 일어나지 말고, 알맞게 잠을 자고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신나게 새 하루 맞이하면 좋겠다. 날마다 새롭고 좋은 날이란다. 언제나 기쁘며 고마운 하루란다. (4345.4.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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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4.17∼19.
 : 비오는 밤에 아이와 자전거

 


- 어쩌다 보니 사흘 내리 밤자전거를 탄다. 게다가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밤자전거를 탄다. 시골은 길을 비추는 등불이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해도 틀리지 않다. 우리 시골마을은 더 외지고 고즈넉하다. 등불을 달지 않은 자전거가 달리면 좀 아슬아슬하다 여길 수 있다. 내 자전거 등불은 건전지가 다 닳아 쓰지 못한다. 그래도 굳이 밤자전거를 달린다. 우리 시골마을 둘레를 다니는 자동차는 거의 없으니 걱정하지 않는다. 또, 나는 밤길 달리기를 퍽 좋아한다.

 

- 4월 19일은 어떤 날일까. 시골에서 살아가니 4월 19일이 되든 5월 16일이 되든 그닥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4월 5일이라 해서 딱히 어떤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4월 5일을 나무 심는 날로 여기는 사람들은, 4월 5일이라는 기림날을 5월 16일이 기림날이 되도록 한 사람이 이 나라 시골마을을 온통 뒤집고 망가뜨리면서 만든 날인 줄 모른다. 게다가, 숲을 지키려면 ‘나무 심기’ 아닌 ‘씨앗 심기’를 해야 옳다. 씨앗을 심고, 씨앗이 흙 품에서 곱게 살아가도록 북돋아야 올바르다.

 

- 아이와 함께 밤자전거를 타며 밤을 누린다. 깜깜한 밤을 누린다. 아이더러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보라 이야기한다. 끝없이 조잘거리는 아이한테 조금은 입을 다물어 보라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 물 가둔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어 보라 이야기한다. 물 있는 논에서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물 없고 들꽃만 가득 핀 논에서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한참 조용히 있더니, “아버지, 개구리 어디서 우는데요?” 하고 묻는다.

 

- 저녁 일고여덟 시 무렵에 면으로 밤자전거를 타고 다녀온다. 시골 면소재지는 조용하다. 가게는 일찍 닫고, 길에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볼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 걸어서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본다. 깜깜한 밤길을 홀로 걸어서 집으로 가는 고등학생 사내아이는 날마다 어떤 마음이 될까.

 

- 사흘 내리 밤자전거를 타는 오늘은 빗방울이 듣는다. 비가 그친다 싶어 자전거를 몰았더니 면에 닿을 무렵 빗줄기가 굵어진다. 그래도 아이는 좋다고 한다. 돌이키면, 지난여름에는 태풍이 몰아치며 막비가 퍼붓던 날에도 아이랑 자전거를 탄 적 있다. 막비에다가 모진 바람이 칼날처럼 휘몰아칠 때에도 아이는 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더운 날에는 아버지랑 아이가 더위를 느끼며 자전거를 탔고, 추운 날에는 서로 꽁꽁 얼어붙으며 자전거를 탔다. 꼭 날이 좋을 때에만 자전거를 타란 법이 없다. 늘 타고 언제나 함께할 수 있어야 자전거마실이라고 느낀다.

 

- 빗물에 적은 깜깜한 길을 천천히 달린다. 옷이 젖는다. 아이가 뒤에서 조잘조잘한다. “응? 뭐라고?” “아버지 옷 다 젖는다구요.” “아, 그래? 비가 오니 하는 수 없어.” “네.” 수레 덮개를 내렸기에 아이는 비를 안 맞는다. 수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를 걱정해 주는구나. 고마운 아이 예쁜 아이와 자전거 나들이를 마친다. 이제 날이 개고 꽃바람 일렁일 때에 네 식구 다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기를 빈다. 읍내 자전거집에 들러 옆지기 자전거 튜브랑 연장 몇 가지 사서 손질해 놓아야겠다.

 

(밤자전거 마실이라 사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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