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윤리학 - 함규진 선생님이 들려주는 윤리와 도덕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6
함규진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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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도덕·예의, 착함·참됨·고움
 [푸른책과 함께 살기 92] 함규진,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

 


- 책이름 : 10대와 통하는 윤리학
- 글 : 함규진
- 그림 : 돌 스튜디오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4.19.)
- 책값 : 11000원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다닌 중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배웠습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다닌 고등학교에서 ‘철학’과 ‘국민윤리’ 과목을 배웠습니다. 교사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너희는 도덕을 배우면서도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하기 일쑤였고, “국민윤리를 배우면서 윤리를 지킬 줄 모른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교사들한테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무렵 교사한테 대꾸 한 마디 할라치면 뺨따귀를 올려붙이거나 몽둥이로 등짝 머리통 허벅지를 마구마구 두들겨팼기 때문입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다닌 국민학교에서는 ‘바른생활’ 과목을 배웠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하나같이 옳고 바른 길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이런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치는 교사 스스로 옳고 바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도록 닦달하고 새마을청소를 시키며 제식훈련과 교련 따위로 우리들 가슴에 군국주의 넋이 스며들도록 내몰았어요.


.. 윤리가 왜 유익할까? 어떤 단체든,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는 질서를 잡기 위한 규칙이 있어야 해 … 법에 앞서 도덕이 있어야 그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고, 그러기에 도덕에 근거해서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가 필요한 거란다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간섭과 통제, 참 힘든 문제지 … 윤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에 말한 윤리의 정신에서 배려가 너무 지나친 경우라고 볼 수 있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거지 ..  (16∼17, 34쪽)


  고등학생이던 때, 국민윤리 교사한테 한두 차례쯤 여쭌 적 있습니다. 윤리나 도덕이나 철학이란 ‘착한 삶’을 말하려 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마땅하다 싶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대입시험을 잘 치르는 일 하나와 중간·기말시험에서 내신성적이 잘 나오도록 하는 데에 마음을 쏟으라는 이야기만 듣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고 참답게 살며 곱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바른생활이든 도덕이든 국민윤리이든 철학이든, 동양철학이든 서양사상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좌파가 되든 우파가 되든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중도가 되든 극좌나 극우가 되든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어느 갈래인가를 묻지 않으면서 가장 아름답게 내 삶을 꾸릴 때에 가장 즐겁게 누리는 날이 아닐까요.


  동무들은 거의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던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는 엎드려 자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국민윤리와 철학 과목을 귀기울여 듣지 않습니다. 나는 혼자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가장 착하게 살아가고 참다이 살림을 꾸리며 곱게 사랑할 길은 어떠한 모습일까 하고 꿈을 꿉니다.


  알맞춤하다 싶을 만한 땅을 얻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할 때에 가장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나는 흙일을 배운 적 없습니다. 흙일을 가르치는 어른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도시 인문계 학교를 다니며 대학시험에 목매다는 학생으로서, 도무지 흙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가면 흙일을 가르쳐 줄까. 나 혼자 시골마을로 찾아가서 배울 수 있을까. 논밭은 어떻게 마련하지. 논밭을 일구는 동안 밥은 어떡하나.


  혼자서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지만, 이런 걱정 저런 근심이 뒤따릅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와 중학교 세 해에 이어 고등학교 세 해에 다시금 제도권교육에 길들여지면서, 아름다이 꿈꾸며 즐거이 살아가는 일보다, 이런 논리 저런 이론을 앞세워 걱정과 근심을 쌓는 데에 더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 그런데 이상하잖아? 지식보다 함께 사는 법, 윤리적 생활방식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 왜 전보다도 더 비윤리적인 일들이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 거지? 학교를 윤리적으로 비람직한 공동체로 만들려면 학생들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 선생님들도 옛날이 좋았다는 타령만 늘어놓지 말고, 좋은 대학 보내는 일에 급급해 하지 말고, 학생들이 훌륭한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게끔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 전쟁 덕분에 발전한 기술은 ‘목적’조차 아니지. 그저 ‘부수적 효과’일 뿐이지. 로켓이나 인터넷을 개발하려고 전쟁을 벌인 건 아니잖아? ..  (61, 130쪽)


  함규진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이라는 푸른책을 읽는 동안 지난일이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이만 한 깊이와 너비로 바른생활·도덕·국민윤리를 가르치려 했으면 생각이나 삶이나 꿈이 꽤 달라질 수 있었겠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는 적어도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조차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학교는 이와 같은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안 다루거나 멀리하도록 내몰았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입시기계가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푸른 넋 푸른 꿈을 키우지 못하도록 해야,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기꺼이 군대에 들어가 젊은 넋 젊은 몸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푸른 사랑 푸른 살림을 살피지 못하도록 해야, 이 아이들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 돈벌이하는 일에만 매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교과서보다 넓고 깊게 생각을 담는다 하더라도 이론 이야기와 논리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는 않아요. 교과서보다 이론을 넓게 살피고 논리를 깊이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이론이랑 논리 울타리에서 맴돌기는 서로 엇비슷해요.


  스스로 빚는 생각을 엿보지 못합니다. 스스로 누리는 좋은 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사이든 교사 아닌 사람이든, 책을 많이 읽고 학교를 오래 다녔으며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오기까지 한다지만, 그닥 윤리·도덕·예의를 지킨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대단하다는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막상 착함·참됨·고움을 빛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제 앞가림 못 하는 어른들’ 대부분이 이처럼 청소년기에 ‘도야’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야만적인 억압에 시달렸던 사람들이란다 … 오국이 스스로 의지와 결단으로 국가에 충성한다면 윤리적으로 잘못을 찾기 어렵지만,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오국이에게 주입한 것이라면 결코 옳다고 볼 수 없으니까 …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피에 굶주린 야수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거든. 그러나 그런 사람이 광기에 찬 체제의 하수인이 되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거야 ..  (79, 100, 140쪽)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신문읽기도 배웁니다. 신문을 제대로 읽는 길을 익힙니다. 그렇지만, 막상 스스로 ‘신문쓰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제도권 신문 틀’에 맞게 학급신문이나 학교신문을 만들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아이인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아 내 나름대로 내 꿈을 펼치는 ‘내 신문’을 빚도록 돕거나 이끌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를 읽히고 독후감 숙제를 하도록 몰아세우는 어른들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저마다 마음과 몸에 알맞다 싶은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도서관·새책방·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독후감 숙제나 대학입시에서 홀가분한 채 마음닦기를 거드는 책을 찾아 읽도록 살찌우지 않아요. 더 생각한다면, 아이들 스스로 ‘내 삶을 내가 손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 엮는 책’을 짓도록 일깨우지 않아요. 무엇보다, 어느 책이든 내가 꾸리는 삶이 밑바탕이 되어 태어나는 줄 찬찬히 들려주지 못해요.


  학교급식은 얼핏 보면 평등한 교육 문화입니다. 그러나, 학교급식이라는 굴레로 다 다른 아이들 다 다른 몸 다 다른 입맛을 다 똑같이 맞춥니다. 가장 좋은 밥을 학교에서 마련해 준다고 하지만, 다 다른 아이들 삶을 살필 수 없는 학교급식입니다.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을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어느 아이는 소젖을 마실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아이는 소젖을 마실 수 없습니다. 달걀이나 치즈나 기름이 안 맞는 아이가 있습니다. 밀가루나 유산균이 안 맞는 아이가 있습니다. 채식이라 해서 다 같은 채식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곰곰이 짚을 대목이 있는데, 풀을 먹는 소한테 고기 성분 깃든 사료를 주면 소가 미쳐요. 고기를 안 먹는 아이한테 고기 반찬을 내주는 일이란, 고기를 썰어 넣고 끓인 카레를 주는 일이란, 소한테 고기를 먹이는 일하고 똑같아요. 밀가루나 유산균이 몸에 안 받는 아이한테 국수나 김치나 냉면이나 동치미를 먹으라 하는 일이란, 갈매기한테 새우깡을 먹이며 내장을 망가뜨리는 일하고 같아요.


  아이들한테 가르친다는 윤리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들려준다는 도덕이란 무엇인가요. 아이들한테 다그치는 예의란 무엇이려나요.


.. 우리는 스스로 마음에 비추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지. 그 느낌을 느낌으로 끝내지 않고 남을 돕는 일은 옳은 일이야 ..  (119쪽)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이라는 책을 생각합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란 참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한대서 아이들은 착함·참됨·고움하고 사귈 수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한다면 윤리·도덕·예의라 하는 지식을 집어넣을 수 있겠지요.


  착하게 살아가는 길 아닌 윤리를 따지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참다이 살림하는 길 아닌 도덕을 찾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곱게 사랑하는 길 아닌 예의를 살피는 일을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그렇다고 《10대와 통하는 윤리학》이라는 작은 책 하나에 이 모두를 어우르는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 작은 책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제도권학교에 다니며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대학바라기를 해야 하는 아주 많은 아이들이 교과서 윤리와 도덕과 예의 울타리에서 홀가분하게 지내는 넋을 보듬으려 할 뿐이니까요.


  삶을 바꾸고 싶으면 넋을 바꿀 노릇이고, 넋을 바꾸고 싶으면 말을 바꿀 노릇이며, 말을 바꾸고 싶으면 삶을 바꿀 노릇입니다. 학벌사회를 고치고 싶으면 나부터 학벌하고는 홀가분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가부장사회를 뜯어고치고 싶으면 나부터 서열이나 돈이나 직장을 내세우며 집일하고 등지는 매무새를 뜯어고치면 돼요.


  윤리에 앞서 착한 삶이에요. 도덕에 앞서 참된 넋이에요. 예의에 앞서 고운 말이에요.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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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는 어떤 마음일까
[말사랑·글꽃·삶빛 5] 뜻을 살피지 않는 한국사람

 


  책을 읽습니다. 한국글로 적힌 책을 읽습니다. 한겨레가 빚은 글이기에 ‘한글’이고, 한글은 ‘한국사람이 쓰는 글’, 곧 ‘한국글’입니다. 한국글로 적힌 책은 한국말을 옮겼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글인 한글로 적었다 해서 모두 한국말이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온 나라에 있는 빵집 가운데 ‘빠리바게뜨’나 ‘뚜레쥬르’는 한국글로 적었어도 한국말이 아닙니다. ‘라이브쇼’는 한국말이 될까요. ‘녹음방초승화시’나 ‘남아수독오거서’는 한국말이라 할 만한가요. ‘만땅’이나 ‘오라이’나 ‘땡큐’나 ‘바이바이’는 모두 한국글로 적은 모습인데, 이들 한국글은 한국말로 삼아도 되나요.


  푸름이가 읽도록 엮은 책 하나를 읽다가 “배려하는 마음을 상대도 알 수 있도록 드러내 보이는 행동 방식이 바로 예의야” 하는 대목을 봅니다. 책은 줄거리를 헤아리자고 읽는 책이기에, 낱말 몇 군데나 말투 곳곳이 엉클어지거나 뒤틀렸어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린 글로 엮은 책이라 해서 줄거리를 못 헤아리지 않아요. 한국말을 알맞거나 알차게 다스리지 못한 글로 빚은 책이기에 줄거리가 흐려지거나 감추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배려하는 마음”을 들려주는 푸른책 한 권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밝히고픈 뜻을 넉넉히 헤아립니다. 다만, 줄거리는 줄거리대로 읽되 한국말은 한국말로 살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배려’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뜻풀이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 합니다. 한국글로 ‘배려’로 적지만, 이 낱말 온 모습은은 ‘配慮’입니다.

 

 配慮 = 마음을 씀, 마음쓰기, 마음씀
 배려하는 마음 = 마음쓰기하는 마음, 마음쓰는 마음

 

  한국글로 적자니 ‘배려’이기에, 얼핏 이 낱말을 한국말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配慮’는 ‘配慮’이지 ‘배려’가 아니에요. 한자말 ‘配慮’는 한국글로 적어도 한국말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말 시늉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말은 ‘마음쓰기’나 ‘마음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찬찬히 마음을 쓰면서 살펴봅니다. 누군가한테 “마음을 쓰는” 일이란,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쓰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뜻으로 마음을 씁니다. 곧, 한국말 ‘마음쓰기’나 ‘마음씀’은 한자말 ‘配慮’를 쓰는 뜻하고 한동아리입니다. 다만, 국어사전에는 ‘마음쓰기’나 ‘마음씀’ 같은 낱말이 안 실려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살피도록 마련하는 국어사전에는 한국말을 안 싣고 한자말을 잔뜩 싣고 맙니다.


  푸른책을 읽다 만난 “배려하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이 대목은 이렇게 적어서는 옳게 뜻을 알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이 책 이 대목을 읽으며 글쓴이 뜻이 무언지 어렵잖이 헤아려요. 글쓴이가 무얼 말하려 하는지 읽습니다. 말투와 말법과 낱말은 엉성하지만, 뜻은 새깁니다.


  뜻을 알 수 있다 하면서 한국말을 자꾸자꾸 얄궂게 쓰거나 엉터리로 씁니다. 뜻만 알 수 있도록 하면서 한국말을 제대로 익히거나 올바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푸른책에서 본 글월을 새롭게 적어 보겠습니다.

 

 내 마음을 알 수 있도록 드러내 보이는 몸가짐이 바로 예의야
 내가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알 수 있도록 드러내 보이는 몸짓이 바로 예의야
 넉넉한 마음을 알 수 있도록 드러내 보이는 매무새가 바로 예의야

 

  ‘配慮’이든 ‘마음쓰기’이든 내가 너한테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처럼 다듬습니다. 말투를 손질해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나 “내가 어찌 마음을 쓰는가”나 “내가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뜻을 또렷하게 나타내도록 “넉넉한 마음”이나 “따스한 마음”이나 “좋은 마음”처럼 적어 봅니다.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일 때에 서로를 헤아리는 모습이 될까 하고 곱씹습니다.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이 서로를 아끼는 몸가짐이 될까 하고 되뇝니다.


  뜻을 찬찬히 살핍니다. 글흐름과 말흐름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부터 제대로 마음을 쓸 때에 내 말이 살아납니다. 내가 내 말넋을 북돋울 때에 겨레말이든 나라말이든 한국말이든 아름다이 빛납니다.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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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1 13:15   좋아요 0 | URL
저를 반성하게 만드시는군요... (일부러 그러셨다는 의미 아닌거 아시죠?)

된장님의 우리말에 대한 바로잡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노력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제 오늘 했습니다. 다음에도 고쳐주셔요.
저는 철자조차도 종종 틀린답니다. 창피하죠....

오늘 봄비가 옵니다. 된장님, 봄이 왔어요. 꽃이 너무 화사해요.
음.... 남자분께 이런 말을 써도 될지 모르지만, 애정을 전합니다, 이웃으로써. ^^

파란놀 2012-04-21 18:36   좋아요 0 | URL
봄은 아주 즐거운 철이에요.
이 즐거운 철에는
즐거운 넋을
내 가슴으로 고이 담아
좋은 말마디로 꽃을 피우면
더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큰 책꽂이 옮기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19.

 


  아주 커다란 책꽂이를 스무 개쯤 얻은 지 석 주가 지났다. 혼자서 이 책꽂이들을 나르고 자리잡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잡고 들면 그리 어렵잖이 나르거나 자리잡을 수 있지만, 혼자서 하자니 힘이 무척 부친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더러 도와 달라 할 만한 무게가 아니다. 혼자서는 등짐을 질 수 없을 뿐더러, 너비와 길이 모두 참말 크다. 두 짝을 맞붙여 세우면 책을 신나게 꽂을 만큼 좋은 녀석인데, 들어 나르기 참 버겁다.


  줄자로 길이와 너비를 잰다. 교실 문을 지나갈 수 있겠다고 느끼며 혼자 나른다. 골마루 한쪽에 세운 녀석을 십 미터 남짓 끌다가는 한쪽으로 눕히며 낮은 문턱 사이를 지나 밀어넣는데, 이동안 등판과 이마에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머리와 등짝과 두 손을 몽땅 써서 무거운 책꽂이를 밀어넣고 나서 한숨을 돌린다. 눕혀서 넣었기에 천천히 일으켜세운다. 그냥 일으켜세우면 천장에 닿는 만큼 옆으로 돌려 눕히며 세운다. 이러다 책꽂이 무게에 그만 손을 놓쳐 쿠웅 하고 넘어진다. 아래쪽 뒷판이 조금 깨진다. 마지막에 놓치다니.


  하나를 들였으니 다른 책꽂이도 이처럼 들이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높고 넓어 먼저 들인 책꽂이 자리하고 어떻게 어울리도록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창문 쪽에 맞붙이면 해가 너무 잘 들어오니 책이 바래어 안 된다. 창문을 좀 가릴 테지만, 돌려서 붙여야 할까.


  책꽂이 사이를 지르는 나무 한쪽으로 천장하고 이어 보는데, 이렇게 해서는 무게를 못 버틴다. 작은 나무토막으로 네모상자를 만들어 책꽂이가 천장하고 꽉 끼도록 넣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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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 글쓰기

 


  괭이로 땅을 판다. 크고 단단한 돌이 나온다. 흙땅에 이렇게 큰 돌이 있으면 무얼 심어도 제대로 자라기 힘들겠다. 이런 곳에서는 지렁이도 굴을 파고 깃들기 어렵겠다. 괭이날이 폭폭 들어가는 곳은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를 만난다. 흙빛이 싱그러우면서 짙다. 흙빛이 좋다고 느낄 때에는 지렁이가 즐거이 보금자리를 틀겠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내 괭이질에 몸뚱이가 토막나는 지렁이를 본다. 지렁이는 몸이 토막나더라도 두 토막이 서로 다른 목숨이 되어 살아날 수 있단다. 부디 서로 잘 살아 주기를 빌며 흙을 덮는다. 그런데, 괭이질로도 지렁이가 다친다면, 트랙터나 경운기에 커다란 날을 달아 윙윙 하고 지나가며 밭을 갈 때에 지렁이는 어떻게 될까. 이때에도 지렁이가 토막나는 줄 느낄 수 있을까. 오늘날 흙일은 지렁이와 함께 건사하는 흙일이 아닌, 비료를 더 챙겨 흙심을 북돋우는 쪽에만 눈길을 두고 마는 흙일이 되는데, 여느 논밭에 지렁이는 얼마나 살아갈까. 비닐을 씌우는 밭에서 지렁이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함께 뒷밭에서 일하던 아이가 지렁이를 보고는 “여기 지렁이 있어.”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네가 흙을 잘 덮어 줘.” “아니, 아버지가 덮어.” 아이는 흙밭에서 나와 풀밭에서 논다. 풀씨를 날리며 놀다가 묻는다. “지렁이 흙 덮어 줬어?” “응, 잘 덮어 줬어.”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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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잡이 어린이

 


  첫째 아이랑 뒷밭 돌을 고른다. 아이가 실장갑을 낀다. 밭일을 할 때면 늘 떠올리는데, 실장갑은 언제나 어른 손에 맞게 나온다. 그런데, 어른 손에 맞게 나온다지만, 손이 큰 어른한테는 작고 손이 작은 아이한테는 크다. 실장갑을 적어도 세 가지 크기로 만들어 줄 수 없을까. 아이는 “장갑이 나한테 너무 커. 나한테 맞는 장갑이 없어.” 하고 말한다. 그래도 씩씩하게 호미질을 하며 논다. (4345.4.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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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4-21 01:09   좋아요 0 | URL
저곳에 뭘 심었을까요,궁금해지는데요,,

파란놀 2012-04-21 01:19   좋아요 0 | URL
감자를 심으려고요.
엊저녁부터 하느라 마무리짓지 못해서,
오늘 아이들 아침 먹이고 나서
다시 바지런히 마무리를 지으려 해요 @.@

마녀고양이 2012-04-21 13:16   좋아요 0 | URL
아, 감자를 심으실거군요.
오늘 그 일을 하시려 하는데, 그쪽에는 비가 오지 않나요?
비오면 하기 힘드실텐데..... 싹나고 자라면 또 사진 올려주셔요.

파란놀 2012-04-21 18:35   좋아요 0 | URL
비가 오니
하루 더 쉬고
돌을 마저 고르고
이랑 고랑 만들어
심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