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한사람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논쟁의 진짜 이유..."

그냥 잠을 잔대서 잘못을 줄이지는 않아요. 곰곰이 생각하며 좋은 꿈을 품어야 비로소 내 삶이 좋아지면서 잘못이 차츰 사라져요. 얼키고 설킨 마음인 채 잠들면 되레 더 뒤숭숭해지고 말아요. .. 제가 살아가며 느끼기로는, 진보나 보수 논쟁이란 참 덧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구나 싶어요. 논에 자라는 벼나, 벼를 심기 앞서 자라는 숱한 풀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거든요. 들꽃은 진보한테만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지 않아요. 나무열매는 보수한테만 맛나지 않아요. 무지개는 진보만 알아보지 않아요. 흰구름 파란하늘은 보수만 올려다보지 않아요. 진보도 보수도 다 논자락에서 거둔 나락을 밥으로 지어 먹어요. 예부터 어머님들은 나그네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따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밥 한 그릇 나누어 주었어요. 왜냐하면 이 편 저 편에 앞서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니까요. 왼날개와 오른날개가 고르게 있어야 날갯짓하는 새는 아니에요. 그저 '날개'가 있을 뿐이고, 몸이 홀가분하게 가벼울 때에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새예요. 글이란, 누구나 이녁 삶을 담는 만큼, 비판을 하든 비난을 칭찬을 하든 펌질을 하든, 모두 이녁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에요. 그러니까, 논쟁이란 하나도 없는 셈이에요. 드러나는 말과 글이 모두 그 사람 생각이자 마음이고 삶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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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이리와 놀자 - 즐거움 가득한 세계의 어린이들
매그넘 지음, 박현영 옮김 / 키다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놀이터와 놀이동무 모두 없는 도시에서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2 : 매그넘 포토스, 《얘들아, 이리 와 놀자》(키다리,2009)

 


  삣삣삣삣 하고 우는 작은 새가 잰 날갯짓으로 우리 집 처마 위아래를 오르락거리며 휙 지나갑니다. 낯익은 날갯짓이라고 느끼며 꽁무니를 좇습니다. 낯익은 날갯짓은 우리 집 앞길 전깃줄에 앉습니다. 꽁지를 팔랑팔랑 흔드는 꼴이 제비입니다. 아침나절 두 아이와 함께 제비 날갯짓을 바라봅니다. 이제 이 제비들은 차츰 따스해지는 날씨를 마음껏 누릴 텐데, 언제부터 짝을 만나고 알을 깔까 궁금합니다. 이 제비들 가운데 누가 우리 집 처마에, 또는 이웃집 처마에 둥지를 틀까 궁금합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 동무들하고 뛰놀면서 으레 제비를 보았습니다. 낮에는 제비들 낮게 가르는 날갯짓에 놀라워 하면서 뒤를 좇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달음박질로 제비를 좇다가 잡을 턱이 없는지 모르나, 모자를 들고 제비를 잡겠다며 이리 달리고 저리 달렸어요. 제비는 아이들을 우르르 몰게 하는 날갯짓이 재미난지 자꾸자꾸 우리 둘레에서 낮게낮게 날았어요.


  낮에는 제비하고 놀지만, 밤에는 박쥐하고 놉니다. 해가 기운 저녁나절, 모두들 집에서 밥을 먹고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바깥에서는 서로서로 숨바꼭질을 합니다. 으슥한 곳에 살금살금 발을 들여 숨다가 술래가 찾아올 때에 확 뛰쳐나가면 나와 함께 박쥐도 푸드득 하고 놀란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곤 했습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도시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아직 안 많거나 자동차 굴리는 집이 적은 동네에서는 제비도 박쥐도 저마다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이때에는 땅강아지도 사마귀도 저희끼리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어요. 개구리도 참새도 제 나름대로 보금자리를 누리겠지요.

 

 

 


  자동차가 부쩍 늘고 높다란 아파트가 솟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땅을 덮습니다. 빈터 하나 없이 온통 시멘트투성이가 됩니다. 나무 한 그루 마음껏 씨앗을 흩뿌리지 못합니다. 풀꽃 한 송이 기쁘게 씨앗을 날리지 못합니다.


  흔히들 도시 골목에서 아이들 노랫소리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이들 노랫소리가 사라지기 앞서 빈터가 사라졌습니다. 도시 골목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달음박질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이들 달음박질이 사라지기 앞서 나무가 사라지고 풀이 사라졌으며 제비와 박쥐와 개구리와 사마귀가 몽땅 사라졌습니다.


  어른들부터 제비를 잊습니다. 어른들부터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참새 지저귀는 소리를 알아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개구리 울음소리를 고즈넉하게 들을 줄 모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서로서로 놀이를 물려주거나 이어주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놀이가 사라진 삶인 탓에 아이들 또한 놀이가 사라진 공부쟁이나 학원쟁이나 게임쟁이가 되고 맙니다. 어른들 스스로 회사일과 쇼핑과 유흥문명에 젖어들면서 아이들 또한 서로 어깨동무하며 새·벌레·풀·흙하고 뒹굴던 꿈을 빼앗깁니다.

 

 

 


  매그넘 사진쟁이들 사진에 미국 뉴욕 아이들이 시를 붙이고, 아야나 로웨 님이 엮었다고 하는 《얘들아, 이리 와 놀자》(키다리,2009)라 하는 사진책을 읽습니다. 엮은이 아야나 로웨 님은 “어떤 아이는 감정을 다쳤고, 누군가는 권력을 느꼈고, 어떤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두 아이는 의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40분의 짧은 휴식 시간 동안의 놀이를 통하여 모든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은 것이다.” 하고 책끝에 말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짝을 짓거나 무리를 이루어 놀다가 다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따돌리기도 괴롭히기도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참말 아이들 마음씨가 이와 같아서 서로 계급을 나누거나 힘으로 윽박지르거나 다툴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아이들 놀음놀이는 모두 어른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따라하는 모양새 아닌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을 풀밭에 ‘풀어놓아’ 보셔요. 아이들을 흙밭에 ‘홀가분하게 놓아’ 보셔요. 이 아이들이 서로 계급을 지을까요. 이 아이들이 풀밭에서 전쟁놀이나 총놀이를 할까요. 이 아이들이 흙밭이나 모래밭이나 물가나 냇가나 바닷가에서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힐까요.


  때로는 오래된 사진이고 때로는 요즈막 사진인 《얘들아, 이리 와 놀자》에는 일본 사진쟁이 히로지 쿠보타 님이 북녘 원산에서 1982년에 찍었다는 사진이 실립니다. 1982년 북녘 원산 바닷가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으로 서로 얼크러지며 놉니다. 2012년 북녘 원산 바닷가 여름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2042년 북녘 원산은 또 어떤 모습이 될까요. 미국 사진쟁이 버트 클린 님이 알라스카 아낙츄북에서 1953년에 찍었다는 사진에는 토박이 할배가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실뜨기를 가르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실뜨기는 1953년뿐 아니라 1993년에도 나타나고 1903년에도 나타났어요. 앞으로도 실뜨기 가르치는 할아버지가 있을까요. 이제는 실뜨기 물려주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없으려나요. 어른들이 벌이는 전쟁 때문에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마을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뒹굴며 노는 아이들 사진이 꽤 많습니다. 아이들은 깊은 밤에도 놀려 하니까요.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먼길 달리는 기차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졸음이 쏟아져도 더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빨래하는 아버지 곁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밭을 매는 어머니 곁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사진책 《얘들아, 이리 와 놀자》를 읽으면서, 한국에서 나온 《소꿉》(고래가그랬어,2009)이라는 사진책이 자꾸 떠오릅니다. 《소꿉》은 편해문 님이 사진을 담았는데, 아이들 예쁘장하고 맑은 놀이를 한 가득 담습니다. 《소꿉》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단한 놀잇감이 없고, 멋들어진 놀이기구하고 동떨어집니다. 그러나 모두들 참 재미나게 놀며 웃어요. 한국에서 나온 다른 사진책 《노래가 하나 가득》(일지사,1981)도 떠오릅니다. 이 책에는 김녕만 님이 사진을 담습니다. 윤석중 님 동요에 맞추어 아이들 놀이를 싱그럽게 잘 담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멋스러운 사진으로 아이들 놀이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으니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이네 집》(보리밭,1983)이라는 사진책 하나 더 떠올라요. 《현이네 집》은 이주홍 님 글에 맞추어 최시병 님이 아이들 놀이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고운 빛 가득한 아이들 모습과 눈빛이 살가이 담긴 어여쁜 사진책이에요.


  여러 가지 ‘아이들 놀이 사진책’을 떠올리며 《얘들아, 이리 와 놀자》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2010년대를 달리는 한국땅에서 ‘아이들 놀이’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겠다 한다면 어떤 놀이 어떤 모습 어떤 아이가 담길까 궁금합니다.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담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여느 때에 얼마나 즐기거나 누릴까요. 오늘날 아이들은 어떤 동무가 놀이동무가 되고, 어떤 이야기를 놀이와 함께 빛낼까요.


  빈터가 없는 도시에서, 너른터가 사라지는 도시에서, 나무와 풀이 마음껏 자랄 터가 없이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이는 도시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지식과 정보와 영어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한테 어떤 놀이와 놀이터와 놀이동무와 놀이사랑과 놀이꿈과 놀이얘기가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4345.4.22.해.ㅎㄲㅅㄱ)


― 얘들아, 이리 와 놀자 (매그넘 포토스 사진,뉴욕 어린이 시,박현영 옮김,키다리 펴냄,2009.6.2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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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네 집 사진책 겉그림은 미리 안 긁어 놨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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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90] 고무신


  나한테는 운동신이 없습니다. 가죽신도 없고 다른 신도 없습니다. 나는 오직 고무신을 신고 걷습니다. 나는 고무신을 발에 꿰고 달립니다. 나는 고무신을 걸치고 자전거를 탑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고무신은 고무로 만든 신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입니다. ‘플신’이라든지 ‘뿔신’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겨울이 되면 고무신을 벗고 털신을 신습니다. 물이 안 새도록 하면서 발목 께에 털을 붙였기에 털신입니다. 옛날 사람은 비오는 날 나막신을 신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은 비오는 날 비신을 신기도 하지만, 으레 ‘장화’를 신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신’ 아닌 운동‘화’를 신고, 어른들은 ‘구두’를 신어요. 달리기 하는 사람은 ‘달리기신’이나 ‘육상신’ 아닌 ‘육상화’를 신습니다. 농구를 하건 배구를 하건 축구를 하건 모두 ‘신’ 아닌 ‘화’를 신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신집이나 신발집에 가서 신이나 화를 장만하곤 했는데, 나날이 신집이나 신발집이 사라집니다. 차츰차츰 ‘슈샵’이나 ‘슈스토어’가 생깁니다. 초등학교마다 English zone이 생기는 요즈음에는 사커슈와 키즈슈가 나옵니다. ‘신’은 사라지는 말이고, ‘靴’는 낡은 말이며, ‘shoe’는 멋스럽고 새로운 말이 됩니다. 시골마을 젊은이 가운데 고무신 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시골마을 아이들 가운데 고무신 즐기는 아니는 우리 아이 빼고는 만나기 힘듭니다. (4345.4.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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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 저 녀석

 


  이 녀석을 토닥토닥 재우고 나서 나도 스르르 눈을 감으면, 어느새 저 녀석이 잠꼬대를 하며 깨어 토닥토닥 달랜다. 저 녀석이 조용조용 사르르 잠들 무렵 나도 눈을 감지만, 어느새 이 녀석이 다시금 잠투정을 한다. 밤부터 새벽에 이르기까지 두 녀석이 갈마들며 삐질삐질거린다. 그래도 둘째가 제법 커서, 이제 가슴에 올려놓고 토닥질을 하지 않고 옆에 살며시 눕히고는 이불을 덮여 토닥질을 해도 곧잘 잠들곤 한다. 두 녀석 모두 자면서 이리 구르고 저리 도느라 밤새 여러 차례 박치기를 해댄다. (4345.4.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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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사는 집 자연과 나 34
로렌 스트링어 그림, 린다 애쉬먼 글 / 마루벌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내 살림집이 사랑스러운 줄 안다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0] 로렌 스트링어·린다 애쉬먼, 《우리들이 사는 집》(마루벌,2002)

 


  어떤 사람은 햇볕 한 줌 쬘 수 없는 곳에서 여러 식구 옹크리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드넓은 마당과 뜰을 거느리는 곳에서 여러 심부름꾼을 두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층층이 이룬 시멘트집을 비싼 값 치러 빌리거나 장만해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방 한 칸이 살림집이 되어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길바닥을 이불 삼아 한뎃잠 자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동무나 이웃이나 피붙이 집에 얹혀서 살아갑니다.


  한 나라 사람들 살림집이라 하더라도 모두 다릅니다. 시골과 도시로만 가를 수 없는 살림집입니다. 도시에서도 아파트와 골목집으로 나눌 수 없는 살림집입니다. 아파트라 하더라도 값싼 아파트와 비싼 아파트로만 금그을 수 없는 살림집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웃집을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내 집부터 어떠한 모양새요 빛깔이며 결인가조차 못 들여다보는지 모릅니다. 내 살림이 어떠한가부터 못 느끼는 나머지, 동무나 이웃 살림은 하나도 헤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을 안 기울이는지 모릅니다. 곁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나 동무 살림을 헤아리지 못하는 만큼, 사람 아닌 뭇목숨이 어디에서 어떤 보금자리를 이루어 하루하루 누리는가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한다고 해야 할 테지요.


.. 우리들이 사는 집은 모두 좋아요. 놀고, 쉬고, 서로 돕고, 서로 아껴 주고 ..  (26∼31쪽)

 

 


  봄에 비바람이 모질게 찾아든 적 있었나 하고 가만히 떠올립니다. 그리 멀지 않던 옛날에는 봄부터 비바람이 모질게 불던 일이 없었다고 떠올립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봄부터 모진 비바람이 찾아들어 태풍 못지않았다고 떠올립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봄바람이 봄바람 같지 않은 날이 잦습니다. 봄비가 봄비 같지 않은 날이 이어져요.


  무엇을 날려야 하기에 바람이 이토록 불까요. 무엇을 씻어야 하기에 비가 이렇게 퍼부을까요. 우리들 살림집은 모진 비바람을 어떻게 맞아들이나요. 우리들 마을은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얼마나 좋은 터전인가요.


  널따란 찻길과 고속도로는 우리 보금자리에 얼마나 쓸모있을까 궁금합니다. 높다란 건물과 끝없는 가게와 수많은 공장은 우리 삶터를 얼마나 알뜰히 돌볼까 궁금합니다. 발전소를 왜 자꾸자꾸 지어야 할까요. 아파트는 언제까지 새로 더 지어야 할까요. 앞으로 석유는 얼마 못 쓴다고 하면서 비행기 타고 나라밖 마실 다니는 일은 왜 더 늘어나기만 하고, 나라밖에서 한국으로 여행하러 오는 사람을 늘리는 데에 용을 써야 하나요. 발전소 매연과 쓰레기물뿐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가 지구별을 날마다 끔찍하게 더럽히는데, 왜 우리들은 이런 쓰레기와 먼지와 찌꺼기를 안 느끼며 살아갈까요. 내가 가게에서 사다 먹고 버리는 비닐봉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묻히거나 불타서 어디로 갈까요.


.. 나무 기둥의 구멍. 바닷가 물 웅덩이 ..  (24∼25쪽)

 


  사람은 벌한테서 꿀을 빼앗습니다. 벌은 스스로 일해서 꿀을 빚습니다. 벌은 스스로 먹을 만큼 꿀을 빚을 뿐 아니라, 꿀을 빚으며 쓰레기를 내놓지 않습니다. 꿀을 먹고 나서도 쓰레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사람은 벌한테서 꿀을 빼앗아 플라스틱병에 담고 유리병에 담습니다. 종이로 상자를 만들고 짐차에 실어 나릅니다. 가게에 늘어놓고 전깃불을 밝힙니다. 플라스틱병에 담든 유리병에 담든, 꿀을 다 먹고 나면 병을 쓰레기로 버립니다. 쓰레기로 버려진 꿀병이 알뜰히 다시 쓰이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사람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먹습니다. 바다를 한갓지게 노닐던 목숨을 마구 사로잡아 빼앗습니다. 이곳 목숨이 저곳 목숨으로 옮기는 셈이기는 하나, 사람은 다른 목숨을 받아들여 제 목숨을 건사하는 줄 살피지 않습니다. 기름을 써서 배를 몰아 물고기를 잡고, 잡은 물고기는 기름을 써서 창고에 건사하며, 물고기를 실은 짐차가 가게로 실어 나르고, 가게에서는 냉장고에 두든 어디에 두든 다시 전기와 에너지를 써서 사람들한테 내다 팝니다. 그렇지만, 이동안 물고기는 쓰레기를 한 차례도 내놓지 않습니다. 바다에서도, 잡힌 고깃배에서도, 팔린 가게에서도, 물고기는 쓰레기 없이 제 목숨을 곱게 바칩니다.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내 삶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내 목숨을 이으려고 쓰레기를 얼마나 새로 만드는가 돌이킵니다. 내가 새로 만든 쓰레기 때문에 지구별은 얼마나 끙끙 앓는가 헤아립니다. 쓰레기 아닌 땀을 흘리고, 쓰레기 아닌 똥오줌으로 거름을 삭히며, 쓰레기 아닌 사랑 어린 이야기를 내 보금자리에 곱게 흩뿌리는 나날인가 하고 이모저모 톺아봅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며 생각합니다. 아이와 뒷밭에서 쟁기로 돌을 고르며 생각합니다. 온 식구 나란히 두 다리로 걸어 마실을 다니며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대로 내 삶이고, 내가 말하는 대로 내 삶이며,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삶입니다.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예쁘게 누리고 싶을까요. 나는 내 삶을 누리는 지구별을 얼마나 예쁘게 보살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을까요.


.. 바닷가 높은 절벽 위. 부엌 마룻바닥 아래 ..  (18∼19쪽)

 

 


  로렌 스트링어 님 그림과 린다 애쉬먼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우리들이 사는 집》(마루벌,2002)을 읽습니다. 그림책 《우리들이 사는 집》에 나오는 ‘사는 집’ 가운데 사람이 사는 집은 딱 한 곳입니다. 딱 한 곳을 빼고는 모두 뭇목숨이 사는 집입니다. 새가 살고 벌레가 살며 짐승이 삽니다. 아마, 이 그림책에는 안 나오는 아주 작디작은 목숨붙이 살아가는 집도 있을 테지요. 사람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몹시 작은 목숨붙이도 저마다 예쁘게 살림집 건사하겠지요.


  퍼붓는 빗줄기를 가르며 저 먼 멧자락 날아가는 하얗고 큰 새를 보았습니다. 빗길을 걷다가 한참 새를 바라보았습니다. 빗줄기 맞으며 날아가는 새한테도 좋은 보금자리가 있겠지요. 좋은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먹이를 물고 돌아가는 길이겠지요.


.. 우리들이 사는 집은 다 달라요. 나뭇가지 더미 속. 달콤한 벌집 ..  (4∼5쪽)

 


  내 살림집이 사랑스러운 줄 안다면, 가난한 이웃이건 가멸찬 이웃이건 저마다 가장 고운 꿈을 빚으며 보금자리를 돌보는 줄 느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강제철거라든지 막개발을 함부로 벌이지 못하리라 생각해요. 정부에서, 또 기업에서, 또 누구누구가 자꾸자꾸 강제철거라든지 막개발이라든지, 또 전쟁이라든지 무슨무슨 발전소나 공장이나 댐이나 고속도로 따위를 짓겠다며 강제수용을 한다며 다른 이 보금자리를 빼앗는 일이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부터 이녁 살림집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모르기 때문이지 싶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때리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막말을 퍼붓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혼자 차지하며 남을 외롭게 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온누리를 아낍니다.


  우리들이 사는 집은 내 온 사랑 담는 가장 좋은 터입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며 서로 아끼는 넋을 그러모아 마을이 이루어집니다. 좋은 넋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모여 더 큰 마을이 되고, 때로는 나라가 되거나 별이 되겠지요. (4345.4.21.흙.ㅎㄲㅅㄱ)


― 우리들이 사는 집 (로렌 스트링어 그림,린다 애쉬먼 글,마루벌 펴냄,2002.9.30./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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