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며 재우는 마음

 


  두 아이를 재우려고 하나는 가슴에 얹고 하나는 한 팔로 감싸면서 한 시간 반 즈음 노래를 부르자면 힘들기는 꽤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두 아이를 달래면서 목이 살짝 쉴락 말락 노래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따사롭게 달라진다. 내 마음이 넉넉하게 바뀐다. 내 마음이 차분하게 거듭난다.


  아이들이 제아무리 짓궂거나 얄궂다 싶은 짓을 일삼았어도 이 아이들 곁에 끼고 노래를 부르며 재우다 보면, 그래 그래,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 더 놀고 싶고, 더 얼크러지고 싶고, 더 살을 부비고 싶어 이렇게 나한테 말을 걸거나 눈길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겠지. 고맙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오래오래 한결같이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하자, 하는 마음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오늘 저녁, 옆지기가 두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재운다. 쳇, 오늘은 두 아이랑 노래하며 재우는 즐거움을 혼자 차지하는구나. 그러나, 옆지기가 두 아이를 재워 주면서 나로서는 저녁나절 일거리를 홀가분하게 끝마칠 수 있다. 우리 두 어버이 노래가 아이들 가슴으로 차곡차곡 스며들기를 빈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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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시 책읽기

 


  다섯 시가 되면 우리 집 처마에서 함께 살아가는 제비들이 재재배배 노래를 한다. 제비들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새날이 밝았다고 깨닫는다. 그러나, 제비들 노래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새벽 두어 시면 아이들을 살며시 토닥이고는 조용히 일어나니까. 새벽 다섯 시에 제비들 노래소리를 들으며 이제 좀 자리에 다시 드러누워 아침까지 쉬자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일고여덟 시 사이에 일어날 테니, 이때에 홀가분하며 기쁘게 다시 일어나도록 몸을 누여야지.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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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406) 최우선적 1 : 최우선적 과제

 

주택 ‘보급율’이라는 말 자체가 드러내듯이 집을 많이 지어 팔기가 최우선적 과제였던 셈이다
《전상인-아파트에 미치다》(이숲,2009) 57쪽

 

  “말 자체(自體)가”는 “말이 바로”로 다듬습니다. ‘과제(課題)’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할 일’로 손볼 수 있고, ‘주택(住宅)’은 ‘집’으로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주택 보급율’이라는 전문 낱말 앞에서는 ‘집’으로 고쳐쓰기 어렵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주택 보급율’을 통째로 손질해서 손쉽게 적는 길을 찾으면 한결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최우선적(最優先的)’은 “어떤 일이나 대상을 특별히 다른 것에 비하여 가장 앞서서 문제로 삼거나 다루는”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최우선(最優先)’은 “어떤 일이나 대상을 특별히 다른 것에 비하여 가장 앞서서 문제로 삼거나 다룸”을 뜻하는 한자말인데, 서로 ‘-적’이 붙느냐 안 붙느냐만 다를 뿐, 보기글은 거의 같다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최우선 과제”나 “최우선적 과제”는 서로 뜻이나 느낌이 다른 보기글이 아닙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옳게 가누지 못한 채 두 가지로 얄궂게 퍼지는 슬픈 말씨입니다.

 

 최우선적 과제였던
→ 최우선 과제였던
→ 맨 먼저 할 일이었던
→ 가장 먼저 마음쓸 일이었던
→ 무엇보다 먼저 풀 일이었던
 …

 

  국어사전에 실린 ‘최우선적’은 매김씨 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다른 ‘-적’붙이 낱말도 매김씨 노릇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적’을 붙이며 매김씨로 쓰는 문화가 언제부터 뿌리내렸을까 궁금합니다. 이와 같은 말씀씀이는 우리 말 문화라 할 만할까요. 다른 사람이 쓰니 그예 따라 쓰는 말투인지, 번역 말투가 여러모로 스며들었는지, 아니면 한겨레 스스로 참으로 올바르거나 알맞다고 느끼며 쓰는 말투인지 궁금합니다.

 

 최우선적 목표 / 최우선 목표 (x)
 가장 큰 꿈 / 가장 먼저 이룰 꿈 (o)

 

  제가 따온 보기글에는 “최우선적 과제”이고,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에는 “최우선 과제”입니다. 이처럼 두 가지 글꼴로 쓰면서 얼마나 다른 뜻과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지 알쏭달쏭입니다. 이처럼 두 가지 글꼴로 쓰면서 하나는 이름씨 꼴 씀씀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매김씨 꼴 씀씀이라 나눌 까닭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통일을 위한 최우선적 실천 과제 (x)
 통일을 이루려면 가장 먼저 할 일 (o)

 

  국어사전에는 “최우선으로 삼다” 같은 보기글도 실리는데, 이 보기글에 ‘-적’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요. 붙이거나 말거나 뜻이나 느낌이 달라진다 할 수 있을까요. 붙이든 안 붙이든 뜻이며 느낌이 똑같은 말투가 우리한테 있을까요. 우리 말투에서 ‘-는’ 토씨를 붙이거나 ‘-가’ 토씨를 붙일 때 느낌과 뜻이 같든가요.

 

 최우선적으로 다룰 예정 / 최우선으로 다룰 예정 (x)
 가장 먼저 다룰 생각 / 맨 먼저 다룰 생각 / 무엇보다 먼저 다룰 생각 (o)

 

  ‘-적’붙이 말씀씀이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앞서, 이 말씀씀이가 내 생각과 마음과 느낌을 얼마나 담아내는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이런 글씀씀이가 우리 삶과 문화를 얼마나 가꾸는가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나다움을 북돋우거나 우리다움을 빛내는 말을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 모습을 고이 보여주거나 우리 삶결을 어여삐 나누는 글을 쓰는지 살펴볼 노릇입니다.

 

 최우선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 최우선의 비중을 두고 있다 (x)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다 / 무엇보다 큰 무게를 두고 있다 (o)

 

  손쉽게 써야 하는 말은 맞으나,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말은 아닙니다. 단출하게 쓰면 한결 나은 글이 된다고 하나, 얼렁뚱땅 쓴다고 해도 되는 글이 아닙니다.


  굳이 멋을 부려야 하는 말은 아니나, 겉치레로 부리는 멋은 제맛이 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꼭 아름답게 써야 할 글은 아니나, 아름다움과 미움과 못남과 싱그러움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아차리거나 되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알맞게 쓰지 않는다면, 먼 뒷날 사람들 또한 알맞게 쓰기 어려운 말입니다. 지난날 살던 사람들이 알맞게 쓰지 않은 탓에 오늘날 우리들이 알맞게 쓰는 말을 잊었다고 할밖에 없습니다만, 앞사람 탓만 하면서 마구잡이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앞사람이 잘못한 짐을 기꺼이 지면서, 뒷사람이 뒤틀리거나 엉터리로 찌든 말을 이어받지 않게끔 한결 마음을 쏟고 땀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오늘 흘리는 땀방울을 뒷사람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 내 삶을 가꾸고 내 마음을 빛내면서 내 넋과 얼을 고스란히 싱싱하고 튼튼하게 일으키는 말을 찾고 글을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342.3.13.쇠./4344.9.17.흙./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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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보급율’이라는 말이 바로 드러내듯이, 집을 많이 지어 팔기가 맨 먼저 할 일이었던 셈이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38) 최우선적 2 : 최우선적으로 들어갈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하늘나라에 최우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이 지금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전병욱 옮김-예수처럼 아이처럼》(달팽이,2011) 107쪽

 

  “들어갈 수 있는 권리(權利)를 주셨다는 것을 기억(記憶)하고”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신 줄 생각하고”로 손볼 수 있습니다. ‘지금(只今)’은 ‘오늘’이나 ‘바로 오늘’이나 ‘바로 이곳에서’로 손질하고, “있다는 것을”은 “있는 줄”로 손질해 줍니다.

 

 최우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 맨 먼저 들어갈 수 있는
→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 누구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는
→ 앞장서서 들어갈 수 있는
→ 맨 앞에서 들어갈 수 있는
 …

 

  가장 알맞게 쓰면 좋을 말을 생각합니다. 가장 즐거이 주고받으면 기쁠 말을 헤아립니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 아닌 내 슬기를 빛내어 헤아립니다.


  남보고 잘 쓰라 할 말이 아닙니다. 나부터 앞장서서 잘 쓰면 넉넉한 말입니다. 올바른 정치를 바라듯 올바른 말글을 바랍니다. 곧바른 사회와 문화를 꿈꾸듯 곧바른 말과 글을 꿈꿉니다. 아름다이 빛나는 한국이 되기를 빈다면, 아름다이 빛나는 한국말이 되도록 애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한 가지씩 살핍니다. 한 가지씩 가다듬습니다. 한 가지씩 바로잡습니다.


  한 가지 낱말을 살찌웁니다. 한 가지 말투를 북돋웁니다. 한 가지 말결을 다스립니다.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돌보면서 좋은 삶을 누립니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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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여러분한테 하늘나라에 맨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신 줄 생각하고, 여러분이 있는 바로 이곳이 하늘나라인 줄 느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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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3) 초하의 1 : 초하의 숲

 

 

관악산에 비하면 사랑스럽고 다정하다. 초하의 숲으로 들어가면 펄펄해지는 젊은 잎의 기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호원숙-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2006) 25쪽

 

  “관악산에 비(比)하면”은 “관악산을 생각하면”이나 “관악산을 견주면”이나 “관악산보다”로 손보고, “사랑스럽고 다정(多情)하다”는 “사랑스럽고 살갑다”나 “사랑스럽고 포근하다”나 “사랑스럽고 좋다”로 손봅니다. “젊은 잎의 기운을 충분(充分)히 받을”은 “젊은 잎 기운을 넉넉히 받을”이나 “젊은 잎 기운을 실컷 받을”이나 “젊은 잎 기운을 가득 받을”로 손질해 봅니다.


  ‘초하(初夏)’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 초여름”으로 풀이합니다. ‘초(初)여름’을 다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른 여름”을 뜻한다 나옵니다. 곧, 한국말로 적자면 ‘이른여름’인 셈입니다. ‘이른봄-이른여름-이른가을-이른겨울’처럼 적바림하면 넉넉합니다. ‘늦-’이 앞가지 되어 네 철을 나타내듯, ‘이른-’을 앞가지 삼아 네 철을 가리키면 돼요.

 

 초하의 숲
→ 첫여름 숲
→ 이른여름 숲
→ 여름 어귀 숲
→ 여름 들머리 숲
 …

 

  한국말을 생각합니다. 사랑스럽게 쓸 한국말을 생각합니다. 한국말을 헤아립니다. 살가이 나눌 한국말을 헤아립니다. 한국말을 돌아봅니다. 알차게 빚을 한국말을 돌아봅니다. 한국말을 꿈꿉니다. 해맑게 일굴 한국말을 꿈꿉니다.


  한국말 담는 국어사전에는 ‘첫여름’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이래저래 살피지 않더라도 이 자리에서는 ‘첫여름’이라는 낱말을 넣으면 됩니다. “첫여름 숲”입니다. “여름을 맞이한 숲”이라 적바림해도 됩니다. 꾸밈없이 적바림하면 되지요. 수수하게 적어 “이제 막 무르익으려 하는 여름숲”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여름숲’이라는 낱말이 안 실리면 어떻습니까. 봄숲을 말하고, 여름숲을 노래하며, 가을숲을 누리고, 겨울숲을 즐기면 돼요. 봄비이듯 여름비입니다. 봄바람이듯 여름바람입니다. 봄바다요, 여름산이며, 가을꽃이고, 겨울나무입니다.


  생각할 때에 말이 열립니다. 헤아릴 때에 글이 빛납니다. 꿈꿀 때에 말이 살아납니다. 사랑할 때에 글이 노래합니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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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보다 사랑스럽고 살갑다. 한껏 푸른 여름숲으로 들어가면 펄펄해지는 젊은 잎 기운을 한가득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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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그림책 8
마사 알렉산더 그림, 샬롯 졸로토 글, 김은주 옮김 / 사파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좋아할 삶인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5] 마사 알렉산더·샬로트 졸로트, 《우리 언니》(언어세상,2002)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붙으려 하는 아이가 새벽에 다시금 깨어 새벽 내내 곁에 있도록 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쯤, 새벽에 한 시간쯤, 낮에 한 시간쯤, 아이가 혼자 새근새근 달게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한 시간 짬을 얻어 호젓하게 어떤 일 한 가지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홀가분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깊이 잠들었다 싶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와서 셈틀을 켭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가 낑낑거리며 깨더니 아버지한테 기어옵니다. 내 무릎으로 올라와서 척 눕습니다. 곁에 누나도 자고 어머니도 자는데, 이렇게 살을 부비며 자야 잠이 잘 오는지 모르고, 꿈나라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지 모릅니다. 아이 삶에서 헤아리자면, 하루 한 시간 떨어져 지낸다는 일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될는지 모릅니다.


.. 언니는 언제나 동생을 돌보았어요. 폴짝폴짝 줄넘기를 하면서도 동생을 지켜보았고 ..  (4쪽)

 


  읍내에서 토마토 어린싹과 오이 어린싹을 장만합니다. 넉넉히 장만하고 싶지만, 여러모로 집일과 바깥일로 바쁘다며 뒷밭을 바지런히 일구지 못해, 작은 두 고랑에 심을 만큼만 장만합니다. 둘째가 많이 어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야 하다 보니, 둘째를 붙드느라 밭고랑 일구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얼른 스스로 서고 스스로 걸어 주어야 홀가분하게 밭을 일굴 텐데, 둘째는 돌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스스로 서서 걸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신나게 뛰노는 누나를 날마다 쳐다보면서도 스스로 서서 걸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봅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씩씩하게 서서 씩씩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 되면, 이제부터 ‘기어다니고 들러붙기만 하던 모습’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마음대로 걷고 뛰고 달리며 눈앞에서 사라지겠지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 아이 찾느라 바쁜 날을 맞이할 테지요. ‘품 안 아기’로 지낼 날은 얼마 안 남았다 할 만합니다. 늘 품어 달래며 토닥일 아기로 지낼 마지막 며칠일는지 모르니, 이 나날을 온통 아끼고 사랑하며 누릴 노릇이라 할 만합니다.


.. 동생은 데이지 꽃밭 속에 옹크리고 앉았어요. 멀리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언니는 큰 소리로 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었어요 ..  (14∼15쪽)

 


  요즈막 저녁마다 두 아이를 나란히 재웁니다. 먼저 둘째 아이를 가슴에 얹은 다음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이노래이기 앞서 어버이로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원수 님 동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찬찬히 부릅니다. 한두 가락 부른들 아이가 잠들지 않습니다. 열대여섯 가락쯤 불러야 둘째가 스르르 잠듭니다. 열 가락 남짓 부를 즈음 첫째 아이가 옆으로 찾아와 눕고, 첫째 아이가 누을 즈음 잠든 둘째를 토닥이던 손으로 첫째를 토닥이며 예닐곱 가락쯤 노래를 부릅니다. 한 시간 남짓, 때로는 두 시간 가까이 쉬잖고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자장노래는 아이들을 재우는 노래일 수 있고, 자장노래는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마음을 북돋우는 노래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즐거이 부를 노래일 때에 자장노래로 부를 만합니다. 아이들과 낮에 기쁘게 놀며 부를 노래이기에 저녁나절 나란히 잠자리에 누워 부를 만합니다. ‘어린이’노래라는 이름이지만, 어린이노래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꿈과 믿음을 담뿍 싣는 이야기노래가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오늘날 온누리를 휘감는 대중노래로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꿈꾸며 믿기가 퍽 어렵겠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노래는 삶을 사랑하는 노래라면, 대중노래는 돈을 버는 노래가 될 테니까요.


.. 지금은 그런 잔소리하는 언니가 없어요. 햇살을 받아 빛나는 데이지 꽃들은 바람결에 한들거렸고, 커다란 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어요 ..  (17쪽)

 

 


  마사 알렉산더 님 그림과 샬로트 졸로트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우리 언니》(언어세상,2002)를 읽습니다. 낮나절 둘째를 무릎에 앉히고 읽습니다.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으니 첫째 아이가 슬금슬금 쳐다보다가 아버지 곁으로 다가옵니다. 첫째도 그림책 그림을 바라보며 아버지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러다가 얼마쯤 지나 첫째는 첫째대로 저 놀고픈 대로 놉니다.


  두 아이가 이 그림책 줄거리를 알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두 아이가 이 그림책을 좋아할 만한지는 모릅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내가 이 그림책을 좋아할 만하면 넉넉하리라 느낍니다. 두 아이 어버이는 서른여덟 나이에 이 그림책을 좋아해 주었으니, 두 아이도 나중에 천천히 자라며 이 그림책을 좋아해 주면 됩니다. 아이들이 여덟 살이 될 때에 좋아해 줄 수 있고, 열여덟이나 스물여덟쯤에 비로소 좋아해 줄 수 있습니다.


  삶과 꿈과 사랑을 아끼는 넋을 아이들 스스로 북돋울 수 있으면 됩니다. 삶과 꿈과 사랑을 보살피는 손길을 아이들 스스로 가다듬을 수 있으면 됩니다. 즐거이 누릴 삶이고, 기쁘게 꽃피울 꿈이며, 예쁘게 이룰 사랑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이끌지 못하는 삶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몰아세울 수 없는 꿈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나아가야 아름답다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들꽃은 선 채 바라보아도 예쁘고, 앉아서 바라보아도 예쁩니다. 이쪽에서 바라보든 저쪽에서 바라보든 언제나 예쁩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박질을 쳐도 예쁜 아이들입니다. 한 자리에 쪼그려앉아 조잘조잘 떠들어도 예쁜 아이들입니다.


.. 동생이 울면 언제나 언니가 달래 주었는데, 언니는 혼자였어요. 우는 언니를 따뜻하게 안아 주거나, 손수건을 건네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  (21쪽)

 


  어떻게 좋아할 삶인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누릴 새 하루일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차려서 어떻게 즐길 새 아침 새 밥상일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건사해서 어떻게 빨래하고, 어떻게 물을 받아 두 아이 어떻게 물놀이를 시킬까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맑은 넋으로 맑은 목소리 샘솟도록 할 때에 즐거우리라 느낍니다. 내 가슴속에서 밝은 얼로 밝은 이야기 울려퍼지도록 할 때에 기쁘리라 느낍니다. 좋아할 만한 삶을 스스로 빚고, 사랑할 만한 꿈을 스스로 일굽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스스로 빛내는 한삶입니다. 스스로 돌보며 스스로 웃고 떠드는 하루입니다. (4345.5.9.물.ㅎㄲㅅㄱ)

 


― 우리 언니 (마사 알렉산더 그림,샬로트 졸로트 글,김은주 옮김,언어세상 펴냄,2002.5.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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