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손가락은 다시

 


  해가 뉘엿뉘엿 기운 봄날 저녁, 멧등성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실을 나온다. 둘째는 수레에 태우고 민다. 자전거수레를 밀수레로 쓸 줄은 몰랐다. 이 자전거수레는 나하고 둘이서 다섯 해 동안 멀디먼 길을 씩씩하게 달려 주었다. 이제는 두 아이를 태우며 마실을 다녀 주니, 새롭게 고마운 밀수레요 아기수레 구실을 한다. 돌돌돌 구르는 수레에 탄 둘째는 이웃마을 돌울타리 장미나무 앞에서 장미잎을 손가락 하나 뻗쳐 만지며 좋아한다. 손가락을 쫙 펼쳐 만질 만한데, 왜 한 손가락만 뻗어 만질까. 아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여러 손가락으로 만질 때보다 한 손가락에 마음을 더 가다듬으며 만질 때에 한결 깊이 느낀다고 떠올린다.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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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 쉽고 재미있게 익히는
배상복.오경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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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모른다
 [책읽기 삶읽기 103] 배상복·오경순,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

 


  배상복 님과 오경순 님이 함께 쓴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잘 모릅니다. 한국땅 학교에서 한국말을 옳게 가르치는 틀이 없기도 하지만, 한국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배우며 옳게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도 합니다.


  책을 찬찬히 읽다가, 오늘날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떠올립니다. ‘국어(國語)’라는 한자말은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쓰였다 하지만, 이 한자말을 바로잡거나 고치려는 공공기관이나 교사는 그리 안 많습니다. ‘國語’라는 낱말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일본말’을 가리키던 낱말이요, 일본 제국주의자가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며 ‘일본말’을 ‘國語’라는 과목으로 가르쳤습니다. 한국말은 ‘조선말’이나 ‘조선어’라는 이름으로 가르쳤어요. 더 깊이 헤아려도 이와 같아요. 한겨레는 예부터 ‘한겨레 말’을 썼을 뿐입니다. 다만, 한겨레 스스로 한겨레 말을 가리키는 이름은 따로 없었어요. 굳이 이런 이름이 있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았으니까요. 조선 때에 한겨레 글이 태어나기는 했으나, ‘한겨레 글’인 ‘훈민정음’은 여느 사람(백성)이 쓰는 글이 아니라 권력자와 지식인이 쓰는 글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식민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학교라는 데가 생기며 여러 과목을 가르쳤고, 이때에 이 나라 이름은 ‘조선’이었기에, 학과목은 ‘조선말’이나 ‘조선어’였어요. ‘국어’라는 말은 안 썼어요.


  그나저나, 국어라는 낱말이 이러하건 저러하건, 이 말을 쓰건 말건, 한국사람이 오늘날 쓰는 한국말이 어떠한가를 학교에서 찬찬히 가르치지 않기도 하지만, 스스로 찬찬히 익히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지 않으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 언어라는 것은 태생한 배경과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과거 전화가 귀해 이장 집으로 달려가 전화를 받고 우체국 먼 길을 가서 전화를 하던 때를 생각하면 “들어가세요.”라는 표현이 충분히 상상이 간다. 언어라는 것이 반드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미를 전달할 때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세월이 흘러 어원은 잘 모르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써 온 표현도 적지 않다 … 외국어나 외래어는 우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구나 엉터리 영어라면 우리 말을 쓰는 게 낫다 ..  (19, 141쪽)


  요즈음 한국사람은 ‘한국말’과 ‘외국말’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한국말과 외국말 사이에 있는 ‘들온말(외래말)’도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외래어(外來語)’처럼 한자로 적으니 못 알아들을 수 있는데, 한자 뜻풀이 그대로 “밖에서 들어온 말”이기에 한국말로는 ‘들온말’입니다. “들어와서 쓰는 말”이라는 뜻으로 ‘들온말’입니다.


  들온말은 아직 한국말이 되지 않았으나, 한국사람이 여러모로 쓰는 낱말을 가리킵니다. 들온말을 쓰는 까닭은, 이제부터 한국말을 새롭게 빚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온말을 여러모로 쓰면서 이 들온말을 한국말로 알맞고 슬기롭게 가다듬거나 갈고닦아 풀어낼 낱말을 빚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사람은 들온말을 한국말로 갈고닦지 않습니다. 들온말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게다가, 들온말 아닌 바깥말(외국어, 다른 나라에서 쓰는 말)을 마치 한국말처럼 삼으며 버젓이 써요.


  ‘외국어(外國語)’ 또한 한자로 적으니 어떤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할 수 있는데, 말뜻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 쓰는 말”, “이 나라 아닌, 이 나라 바깥에서 쓰는 말”이 ‘외국어’입니다.


  영어도 외국어요 일본어도 외국어입니다. 미국사람 쓰는 미국말이든 일본사람 쓰는 일본말이든, “한국 아닌, 한국 바깥에서 쓰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까닭은 한국 바깥에서 쓰는 영어를 잘 익혀야 한국 바깥으로 나가서 외국사람을 사귈 때에 좋기 때문이에요. 한국에서 한국사람끼리 주고받자면서 영어를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아요.


.. 참고로, 총각김치를 담글 때 쓰이는 어린 무를 ‘총각(總角)무’ 또는 ‘알무’ ‘알타리무’라 하는데, 1988년에 개정된 표준어 규정은 순수 우리 말인 ‘알무’ ‘알타리무’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해서 한자어 계열인 ‘총각무’로 쓰도록 했다. 따라서 ‘총각무’ ‘총각김치’가 표준어이고, ‘알무’ ‘알타리무’ ‘알타리김치’는 표준어가 아니다. 순 우리 말을 버리고 한자어를 표준어로 선정함으로써 비판이 있는 부분이다 … ‘간절기’는 정체불명의 말이다. 한자어권 어디에도 이런 단어는 없다. 일본식 표현을 오역한 것일 뿐이다 … 지난 2000년 국립국어원이 ‘간절기’를 신어 목록에 올렸지만 이는 한 해 동안 신문이나 잡지 등에 새로 등장한 용어를 모은 것일 뿐이다. 이 가운데는 유행어뿐 아니라 비속어도 포함돼 있다. 그 말이 어법상 옳은 것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  (45, 120쪽)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라는 책에도 군데군데 나오지만, 국립국어원은 나라에서 세운 ‘한국말 지킴터’다운 노릇하고는 좀 동떨어집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맞고 슬기롭게 쓰도록 돕거나 이끄는 구실을 잘 못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말’을 그러모으는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이에 앞서 ‘한국사람이 더 아끼고 사랑할 만한 좋은 말’부터 그러모으도록 힘써야 할 노릇입니다.


  신문이나 잡지에는 누가 글을 쓰겠습니까. 한국말을 옳게 가누거나 가꾸는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나요. 들온말과 바깥말을 찬찬히 가늠할 줄 아는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나요.


  교과서도 제대로 서지 않은 한국이고, 학교도 제대로 서지 않은 한국이며, 신문·잡지 또한 제대로 서지 않은 한국입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나머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을 일깨우는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같은 책을 써야 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얼마나 모르면 이 같은 책을 애써 써야 할까요.


.. 결국 “5만 원이세요.” “10만 원이세요.”처럼 돈에다 “-세요.”를 붙이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돈을 존대하는 기형적 어투다. 고객을 존중하기는커녕 돈이나 사물을 높여 손님을 놀리는 듯한 표현이다 … ‘쿨비즈’는 일본에서 쓰이는 용어를 우리가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똑같은 운동에 똑같은 이름이 쓰였다. 일본에서 영어를 어떻게 조합해 쓰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엉터리 영어를 가져다 우리가 국가 정책 용어에 버젓이 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말로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  (63, 143쪽)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라는 책은 중학생 즈음이면 읽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 나타나는 낱말이나 말투는 퍽 어렵습니다. “창의적인 이름을 붙이면” 같은 글월이 보이는데, “슬기롭게 이름을 붙이면”처럼 다듬을 만합니다. “돈을 존대하는 기형적 어투다” 같은 글월은, “돈을 높이는 엉뚱한 말이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어법상 옳은 것인지는” 같은 글월은 “그 말이 옳은지는”으로 다듬으면 되고, “한자어를 표준어로 선정함으로써 비판이 있는 부분이다”는 “한자말을 표준말로 삼아 비판받는 대목이다”로 다듬으면 즐겁습니다.


  67쪽을 읽으면,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역시 주체와 관련된 것을 높이는 간접 높임이므로 ‘교장 선생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고 해야 한다. 아예 말을 바꾸어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로 해도 해도 된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간접 높임’을 쓰든 말든, “교장 선생님 말씀이 있다”라는 말이, 참말 말이 되는지부터 살펴야지 싶어요. 이 대목부터 제대로 따져야지 싶어요.


  먼저, 이렇게 함부로 쓰는 말은 잘못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한국말이니까요. 다음으로, 한국말은 임자말이나 토씨를 줄이거나 지우곤 합니다. 이런 한국말 빛깔을 헤아리며, “너, 할 말 있니?” 같은 말투를 돌아봅니다. “너, 할 말 있니?”에서 가지를 치면, “선생님, 하실 말씀 있어요?”가 되고, 이 흐름에 따라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 때에도 “교장 선생님(이 하실) 말씀이 있겠습니다”처럼 될 수 있어요. 이와 같은 흐름과 결과 무늬를 찬찬히 짚을 때에, 비로소 한국사람 스스로 잘 모르는 말을 잘 생각하도록 도우리라 믿습니다.


  109쪽을 읽으면, “그래도 ‘배워 주다’를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간첩이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웬 ‘간첩’? 북녘에서는 ‘가르쳐 주다’를 ‘배워 주다’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누군가 쓴다면 ‘간첩’인지 살피라 하는 소리인데, 이와 같은 말투는 인권과 인격을 깎아내릴 뿐 아니라, 고장말을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북녘을 떠나 남녘으로 온 사람이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요. 중국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와서 살아가는 이웃이 매우 많아요. 이들은 ‘북녘 말투’를 이녁 고장말로 그대로 쓰면서 살아가는데,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라는 뜻일까요? 북녘말은 북녘말대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껴안을 때에 남북이 하나되는 슬기로운 길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북녘사람은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 됩니다. 북녘사람 말투는 나쁘거나 못된 말투라도 되는 듯 적바림한 대목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잘 모르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한겨레 이웃’이나 ‘한겨레 동무’나 ‘한겨레 살붙이’부터 잘 모르기도 한다고 느껴요. 한국사람은 영어를 배우고 일본말을 배우고 하지만, 정작 경상도말이나 전라도말을 얼마나 배우려 하나요. 서울말만 듣고 익힐 뿐, 막상 인천말이나 수원말이나 평택말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얼마나 살피려 하나요. 북녘말을 헤아리기 앞서, 같은 울타리라는 남녘에서조차 이웃말을 돌아보지 못해요. 강원말에서도 춘천말과 원주말과 고성말과 양구말은 달라요. 경상도말에서도 마산말과 진주말과 거제말과 통영말은 모두 달라요. 통영에서도 마을마다 조금씩 달라요. 섬마다 또 살짝살짝 달라요. 우리 한국사람은 외국말은 외국말대로 배워야겠습니다만, 한국사람으로서 ‘한겨레 이웃말’부터 제대로 살피고, ‘한겨레 이웃삶’ 또한 사랑스레 돌아보며, ‘한겨레 동무마을’을 따사로이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5.5.19.흙.ㅎㄲㅅㄱ)


―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 (배상복·오경순 글,이수영 그림,21세기북스 펴냄,2012.5.14./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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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너에게 닿기를> 15권이 나왔다며 놀랐는데, 오늘은 <치하야후루> 15권 나온 소식을 들으며 놀란다. 두 가지 만화 모두 아주 천천히 읽기 때문에, 치하야후루는 아직 4권까지 읽었는데 15권까지 남았구나. 갈 길이 멀고 또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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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후루 15
스에츠구 유키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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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밥상
서정홍 지음, 허구 그림 / 창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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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삶을 시로 빛냅니다
[시를 사랑하는 시 10] 서정홍, 《우리 집 밥상》(창작과비평사,2003)


 

- 책이름 : 우리 집 밥상
- 글 : 서정홍
- 그림 : 허구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2003.7.20.)
- 책값 : 8000원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말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나는 고등학생 때에 처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사람을 자꾸 바보로 만들듯 시험공부만 시키는 갑갑한 시멘트 교실에서 숨막혀 죽고 싶지 않아 처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마음속에서 샘솟아 널리 나누고픈 말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나는 신문배달로 먹고살던 무렵, 신문배달 이야기를 시로 썼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니, 신문배달 안 해 보았다 하는 사람은 드문데, 정작 신문배달 삶자락을 시로든 수필로든 소설로든 희곡으로든 적바림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였어요. 딱 한 번,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 가운데 《해와 같이 달과 같이》라는 작품에서 신문배달 어린이 삶을 읽었어요. 이밖에는 신문배달 삶을 옳게 그리거나 제대로 담거나 살가이 빛내는 문학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어요.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있을 때에 시를 씁니다. 나는 둘째 아이가 우리와 한식구 될 즈음 새롭게 시를 씁니다. 두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즐기고 누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중에 아이들하고 천천히 주고받고 싶기에 시를 씁니다. 오늘은 오늘 내 삶을 즐기고, 앞으로는 앞으로 아이들과 새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 시를 씁니다.


.. 우리 집 밥상 앞에 앉으면 / 흙 냄새 풀 냄새 땀 냄새 가득하고 / 고마우신 분들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  (우리 집 밥상)


  갑갑한 시멘트 교실에서 시를 쓸 적에는 갑갑한 시멘트 내음이 얼굴을 비빕니다. 얼굴은 까칠까칠 지저분해지고 긁힙니다. 깊은 새벽 조용한 골목을 싱싱 달리는 자전거가 신문을 휙휙 바람 일으키며 골목집 문간으로 던져 놓으며 시를 쓸 적에는 땀내음 바람내음 사뿐히 실립니다. 동이 틀 무렵 하루 일을 마치며 고단하게 드러눕는 움직임이 시로 태어납니다.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얼크러지며 시를 쓰니, 언제나 들새 노랫소리 헤아리고 들풀 푸른내음 되씹습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이런 지식 저런 정보를 주고받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나는 아이들하고 웃으며 떠들 때에 즐겁습니다. 나는 아이들이랑 맛난 밥을 좋게 차려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마음이 고스란히 시쓰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하나 시쓰는 마음입니다. 생각하는 결이 찬찬히 시쓰는 결로 태어납니다. 시라는 씨앗 한 알은 늘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 누가 꽃씨 심지 않아도 / 누가 물을 주거나 가꾸지 않아도 / 저절로 자라서 / 꽃밭이 되었다는 실매 마을 ..  (실매 마을)


  문학하는 분들이 시를 씁니다. 문학을 꿈꾸는 이들이 시를 씁니다. 문학을 좋아한다는 분들이 시를 씁니다.


  누구한테나 가슴속 ‘시 씨앗’이 있으니 시를 쓸 만합니다. 문학하는 이도 시를 쓰고, 문학 안 하는 이도 시를 씁니다. 지식인과 교수도 시를 씁니다. 아줌마와 할머니도 시를 씁니다. 마을 할머니들이 우리 아이들 바라보며 “오매 이쁜 것, 동네가 훤하네.” 하고 읊는 말 한 마디는 고스란히 시입니다. 마을 할아버지들이 들일을 하다 허리를 쉬며 논둑에 주저앉아 먼 하늘 바라보며 땀을 훔치다가 조용히 품는 생각이 모두 시입니다.


  도마질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콩 터는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마늘 뽑는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풀 베는 소리는 시쓰는 소리입니다.


.. 전학 오던 날 / 담임 선생님이 나를 / 촌놈이라고 했다. / 동무들도 따라서 / 나를 촌놈이라고 했다. // 농촌 학교에서 / 도시 학교로 오면 다 촌놈인가 ..  (참고 또 참아도)


  까마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까마귀 노랫소리를 시로 옮깁니다. 까치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는 까치 노랫소리를 시로 담습니다. 종달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종달새 노랫소리를 시로 싣겠지요. 꾀꼬리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꾀꼬리 노랫소리를 시로, 싯말로, 싯내음으로 찬찬히 읊겠지요.


  아이들과 복닥이며 아이들 재잘거리는 노랫소리를 듣는 어버이들은 누구나 아이들 재잘거리는 노랫소리를 시로 펼칩니다. 아줌마들 이야기꽃은 아줌마들 가슴에 깃든 ‘시 씨앗’을 예쁘게 북돋우는 아이들 재잘거리는 노랫소리하고 어우러지며 환하게 빛나곤 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받는 사랑이 아이들 가슴속 ‘시 씨앗’을 따사롭게 어루만지니, 아이들 나름대로 사랑스레 싯말과 싯노래를 터뜨립니다.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이끌며 보여준 이오덕 님은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라는 이름을 붙여 책 하나 내놓은 적 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참말 어린이는 모두 가슴속 ‘시 씨앗’을 ‘좋은 사랑’으로 북돋아 내놓을 수 있기에 모두 시인입니다. 어린이가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으며 시인이듯, 어른 또한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으며 시인이에요.


  스스로 느끼면 돼요. 스스로 생각하면 돼요. 스스로 사랑하면 돼요. 스스로 살아가면 돼요.


.. 나는 어른이 되면 /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 살고 싶지 않다 ..  (어른이 되면)


  시쓰기는 기계다루기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돈벌기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텔레비전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도시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문학하고 다릅니다. 시쓰기는 졸업장하고 다릅니다.


  시는 기계처럼 쓸 수 없기에, 대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합니다. 시는 돈을 벌며 쓸 수 없기에, 문학강좌를 듣는대서 쓰지 못합니다. 시는 텔레비전 보는 매무새로는 쓸 수 없기에,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릴 때에 쓸 수 있습니다. 시는 온통 사랑을 담는 글이기에, 도시에서 살아가며 쓰지 못합니다. 시는 오직 내 가슴속 꿈을 빛내는 말이기에,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상장을 많이 거머쥔 사람일수록 시를 쓸 줄 모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입니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를 일구고 지구별을 보듬는 사람은 어린이 마음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어린이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일하는 사람도 / 편하게 좀 살다가 죽어야지. / 와, 일하다가 죽어야 하노?” / 어머니가 툭 던진 말씀 ..  (일요일 아침에)


  서정홍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우리 집 밥상》(창작과비평사,2003)을 읽습니다. 노동자로 일하다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살림살이로 바꾸었다는 시정홍 님이 시골살이 이야기를 담은 동시집 《우리 집 밥상》입니다. 참말, 《우리 집 밥상》에는 시골살이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제껏 이 나라 시인이나 동시인치고 시골살이를 살뜰히 노래한 적은 아주 드물기에 몹시 반갑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이들한테 동시를 읽히려 하는 어른들은 으레 자연을 노래하곤 하면서 정작 동시쓰는 어른 스스로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았는데, 서정홍 님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시골마을 이야기를 동시로 풀어내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그런데, 서정홍 님 동시집 《우리 집 밥상》에는 시골살이 이야기는 있지만, 시골살이 사랑은 그닥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바라보는 이야기는 있되, 시골살이를 스스로 즐기는 이야기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나, 시골살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안 보입니다.


  동시집 《우리 집 밥상》을 여러 차례 읽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애써 나온 시골살이 이야기 동시집이지만, 왜 이렇게밖에 쓸 수 없을까 하고 생각에 젖습니다. 서정홍 님은 시골살이 이야기를 동시로 담았지만, 아마 이 동시집은 ‘시골 어린이’보다 ‘도시 어린이’한테 읽히고픈 마음이었겠지요. 아무래도 도시 어린이가 ‘도시에서 살아가며 알아들을 만한 눈높이’로 동시를 썼겠지요.


.. 남들 농약 다 치는데 / 우리만 안 치면 불안하다고 / 사과밭에 열두 번째 / 농약을 친 작은아버지. // 빨갛게 보기만 좋은 사과 농사 / 땅도 사람도 병드는 농사 / 작은아버지는 /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며 / 뿌연 농약을 치고 또 친다 ..  (사과 농사)


  도시 아이들은 찔레꽃과 딸기꽃을 가릴 줄 모릅니다. 도시 어른들은 느티꽃과 뽕꽃을 바라볼 줄 모릅니다. 도시 아이들은 냉이내음과 쑥내음을 모릅니다. 도시 어른들은 제비 노랫소리와 직박구리 노랫소리를 살필 줄 모릅니다.


  서정홍 님이 찔레꽃과 딸기꽃 이야기를 쓰더라도, 도시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며 어리둥절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서정홍 님이 즐겁게 제비와 직박구리와 종달새와 꾀꼬리와 노랑할미새 이야기를 읊어도, 도시 어른들(이 동시집을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힐 어버이와 교사)부터 도무지 못 알아듣고는 이 동시집을 도로 책방 책꽂이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말해야지요. 시골살이가 어떠하다고 말해야지요. 도시에서 바라보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을 말해야지요.


  그러니까, 말해야지요. 시골살이가 어떤 사랑이라고 말해야지요. 도시에서 겉훑기로 짚는 시골이 아니라, 시골에서 사랑하는 시골을 말해야지요.


.. 도시 손님들은 / 농촌에 오기만 하면 / 돼지 삼겹살 구워 먹고 / 우리 엄마 애써 기른 암탉까지 잡아먹는다 ..  (손님들)


  시골을 사랑하기에 시골에 삶터를 마련해 살아가려는 서정홍 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기로 했지만 아직 시골을 사랑하지는 못하는 서정홍 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서정홍 님은 시골살이를 합니다. 도시살이 아닌 시골살이를 합니다. 시골이 좋은 까닭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헤아리기에 도시 아닌 시골에서 땀을 흘리고 햇살을 누리며 물을 마십니다.


  도시사람이야 시골에 가서 세겹살 구워 먹고 싶겠지요. 그러면, 시골사람 서정홍 님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무얼 하고 싶을까요. 도시사람이야 때깔 좋아 보인다는 굵직한 열매를 사서 먹는다 하겠지요. 그러면, 시골사람 서정홍 님은 어떤 밭에서 어떤 열매를 거두고 어떤 밥을 즐기며 어떤 사랑을 짓는가요.


.. “아버지, 누렁이 꼭 팔아야만 경운기 살 수 있어요?” / “경운기 사면 농사 짓기도 수월하고 / 누렁이 고생 안 해도 되니 파는 게 좋겠다. / 서운해도 내일 팔기로 했으니 그리 알아라.” ..  (누렁이)


  사랑하는 삶을 시로 빛냅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그립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엮습니다. 사랑하는 삶을 시로 밝힙니다. 사랑하는 시골에서 사랑하는 어여쁜 꿈을 시로 일굽니다.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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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9 07:57   좋아요 0 | URL
서정홍님의 시 중에는 도시와 농촌 살이에 대한 것들이 많지요. 은근히 뼈 있는 내용들이어서, 읽으면서 그냥 아름답다고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뜨끔하게 해요.

파란놀 2012-05-19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는 '뼈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는데,
이제 시골살이를 하며 새롭게 읽다 보니,
'뼈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자꾸 '도시사람 눈치를 보며 뼈를 생각하도록' 하는 이야기 틀에
스스로 갇혔구나 싶더라고요.

스스로 한껏 즐기고 누리는 시골살이 이야기는
아직 좀처럼 못 쓰시는구나 싶어요......
 
 전출처 : 한사람님의 "...인간다운 생각은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사람들은 '배운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바보짓을 해요.

 

사람들은 '느낀 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길들어져요.

 

아이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까닭은, 아이들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아닌 '몸과 마음이 느끼는 결'을 고스란히 따르며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든 믿음이든 늘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데, 사랑이라면 이렇게 되야 하거나 믿음이라면 저렇게 되야 하는 듯 자꾸 한쪽으로 내모는 '교육을 제도권에서 주입'시키고 '책으로 읽히'며 '지식으로 가두'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배울수록 바보가 돼'요.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말'고, 스스로 손에 호미를 쥐어 들판에서 몸을 놀리며 풀내음 흙내음 햇살내음 바람내음 물내음을 받아들이며 '삶을 익혀'야, 비로소 '마음을 슬기롭게 쓰며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길'을 스스로 깨달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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