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 상 - 안달루시아의 여름 세미콜론 코믹스
구로다 이오우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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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보람
 [만화책 즐겨읽기 151] 구로다 이오우, 《가지 (상)》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으로 달립니다. 나한테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따스한 봄이든 시원한 가을이든 늘 자전거를 달립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짐이 있을 때에도 한결 느긋할까 하고 어림해 보지만, 언제나 고개를 젓습니다.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내 삶이 더 넉넉하거나 기쁘리라 느끼지 않아요. 이렇게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운 자전거를 천천히 몰 수 있을 때에 좋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살을 받습니다. 들새 노랫소리를 듣고 들벌레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누렇게 익은 보리를 바라봅니다. 논둑마다 풀을 싹 베거나 태웠는데, 이 사이를 비집고 새로 돋는 돈나물 작은 줄기와 작은 꽃을 바라봅니다. 돈나물 노랗고 작은 꽃은 자전거를 멈추고 찬찬히 들여다볼 때에 비로소 잘 보입니다. 아마 자가용을 달리면 볼 수 없겠지요. 논이나 밭마다 유채씨를 뿌려 노란 유채누리가 되도록 할 때에 사람들은 ‘노란 빛이 예쁘다’ 하고 여길는지 모르는데,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거나 두 다리로 느긋하게 걸을 때에는 언제나 모든 봄빛이 알록달록 어여쁘다고 느낄 수 있어요.


- “어이, 선생, 안녕하시오?” “아, 안녕하세요?” “선생은 농사짓는 거요, 아님 책을 읽는 거요?” “응? 아! 또 별난 사람 취급당하겠군. 농사짓다 잠시 책 좀 읽으면 어때?” (3쪽)
- “뭐야라니? 너야말로 이 시간에 뭐하냐? 차 좀 주라.” “잠깐만 기다려요.” “아빠를 위해 뭐 만들어 주는 거냐?” “아녜요.” “일은 찾았냐?” “으응.” “일을 안 하는 대신 뭔가 안 하냐? 자격증이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냐?” “별로.” “너는 만날 ‘별로’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 그런 건.” (189쪽)

 

 


  한창 논을 삶거나 모를 심은 논자락 옆을 달립니다. 즐겁게 달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가 달리는 이 들길에서 쐬는 바람은 들바람이 되겠다고. 수레에 앉은 아이한테 얘기합니다. “벼리야, 우리는 들바람을 쐬면서 달려.” “들바람?” “응, 들바람이야.”


  들이니까 들바람일 뿐 아니라, 들일이요, 들노래이고, 들놀이예요. 들마실이 되고, 들사람이 되며, 들일꾼이라 할 테며, 들숨과 들삶과 들꿈이 돼요.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들길을 달립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들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만큼 들볕을 쐬고 들내음을 맡습니다.


  아이들한테 들을 느끼도록 할 수 있어 좋다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함께 내가 이 들을 느낄 수 있으니 좋다고 느낍니다. 우리 식구들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도시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도시가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도시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자전거수레에 탄 채 찻길을 달린다면, 아이들은 무얼 느낄까요.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 사이에 끼거나 자동차 배기가스로 콜록콜록 재채기가 끊이지 않는 일? 아스팔트 뜨거운 기운과 온통 까마득한 건물들?


- “맥주 좀 주시겠어요?” “몇 살인지 말하면 주지.” “18.” “안 되지, 그럼.” “괜찮아요. 날라리니까.” (10쪽)
-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아.” “안심하라니까. 그냥 나만 따라와.” “어디에든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어디에라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흙이 있는 곳은 안 되는 거였네.” “흙이 없는 곳으로 가자.” (39쪽)

 

 


  바람을 느끼지 못하며 자전거를 달릴 때에도 시원할 수 있겠지요. 햇살을 누리지 못하며 걸을 때에도 홀가분할 수 있겠지요. 들풀과 들꽃을 바라보지 못하며 지낼 때에도 푸성귀를 사다 먹거나 열매를 사다 먹을 수 있겠지요.


  바람이 불어 아이들 콧등을 간질이고, 내 콧등을 간질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며 아이들 얼굴을 태우고, 내 얼굴을 태웁니다. 풀내음이 퍼지며 아이들 몸을 휘감고, 내 몸을 휘감습니다.


  제비는 들판을 잰 날갯짓으로 낮게 납니다. 까마귀는 커다란 날개를 확 펼치며 천천히 납니다.


  나는 나대로 자전거를 달리며 두리번두리번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수레에 앉아 두리번두리번 바라봅니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누나한테 기댄 채 잠듭니다.

  조용한 시골 한낮입니다. 햇살이 뜨거운 낮입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무그늘 밑에 모여 앉아 낮밥을 자십니다. 낮밥을 먹고는 다시 뙤약볕 견디며 들일을 하시겠지요. 당신들 먹고 당신 아이들 먹으며 도시사람 먹을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일구겠지요.


- “왜 가지를 던지는 거야? 남는 거야?” “아, 저, 죄송합니다.” … “던지지 말고 먹으면 좋을 텐데. 싫어하는구나.” “아니, 그게. 먹긴 하지만 별로 맛이 없다고나 할까요.” “요코시마 중사는 애들 입맛이구나.” (80∼82쪽)
- “할아버지가 입원하셨어. 문병이라도 다녀오렴.” “됐어요.” “그래? 그럼 착실히 공부해. 사립이라서 비싸니까. 할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라니. 불량학생도 아니고 말이야. 너 학원 제대로 가고 있니? 가끔 땡땡이 치지? 수험이 없다고 해서 빈둥대다간.” “잔소리 좀 그만해요.” (89쪽)

 

 


  이른아침에 한 차례 빨래하고, 무르익은 아침에 다시 한 차례 빨래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수레에서 내리고 밥을 차린 뒤, 내 몸을 씻으며 빨래 한 차례 더 합니다. 이윽고 다시 빨래 한 차례를 더 할 테고, 떨어지는 해가 아쉬워 또 한 차례 빨래를 할 테지요.


  시골살이 빨래를 조금씩 잦습니다. 기계를 쓰면 아침 한 차례로 끝이지만, 돌쟁이 둘째가 내놓는 오줌기저귀와 오줌바지를 서너 장쯤 모아 그때그때 시원한 물기운 느끼며 손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며 더위를 식힙니다. 빨래가 마당에서 마르며 개운합니다. 빨래는 햇살을 듬뿍 머금으며 아이들을 따사롭게 품습니다. 저녁이 되어 옷가지를 개면, 낮 동안 옷마다 그득히 밴 햇살이 내 손으로 새삼스레 스밉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생각합니다. 오늘을 누리는 즐거움을 생각합니다. 뒤꼍에 심은 감자는 꽃망울이 자그맣게 달립니다. 며칠쯤 지나면 감자꽃 예쁘게 맺히리라 생각합니다. 감자꽃 옆으로는 노란 토마토꽃이 달리고, 노란 토마토꽃 둘레로는 온갖 들꽃이 흐드러집니다. 이제 뽕나무 열매는 차츰 발갛게 될 테고, 발간 오디는 우리 네 식구 좋은 밥거리가 될 테지요. 고개를 들어 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사다리를 가져와 오디를 따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돌을 실이 묶어 나뭇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싶지 않아요. 뽕나무는 마음껏 하늘바라기를 하며 자라도록 두고 싶어요. 나와 아이들이 천천히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오디를 하나둘 따서 먹고 싶어요. 못 따는 오디는 새가 먹어도 되고, 땅으로 떨어져도 돼요.


- “여어, 중사.” “여, 앗. 그, 그게 아니라, 이름이 뭐예요?” “다카하시.” “제 가지를 먹어 주세요. 다카하시 누나.” “응.” “쓸모없게 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만났으면 해서, 그러면 좋겠다 싶어서, 그날 이후로 이렇게 됐어요. 쓸모없게 되지 않고, 가지가.” “고마워.” “조금 먹긴 했지만, 맛있어요? 제 가지? 어, 어땠어요?” “응, 괜찮았어.” (100∼101쪽)
- “평일 낮에 수퍼나 편의점 아닌 데서 쇼핑하는 것 행복하구나. 이런 말도 해 보고.” (187쪽)

 

 


  구로다 이오우 님 만화책 《가지》(세미콜론,2011) 상권을 읽었습니다. 상권과 하권으로 된 만화책 가운데 첫째 권을 읽으며 여러모로 놀랍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줄거리로 만화를 그리기도 하니 놀랍고, 이만 한 만화책이 한국에 옮겨질 수 있으니 놀랍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도 이처럼 만화책 하나 추스를 수 있을까 궁금하고, 만화책 하나 빚는 얼이란 삶을 사랑하는 얼인 줄 느낄 만화쟁이가 하나둘 늘어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참 마땅한 일이지만, 그림을 잘 그린대서 만화를 잘 그리지 않습니다. 글을 잘 짜 넣는대서 만화가 재미나지 않습니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녔기에 글을 잘 쓰지 않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어긋나지 않기에 글이 재미나지 않아요. 값비싼 장비를 다루어야 사진을 잘 찍지 않고, 나라밖에서 여러 해 배웠으니까 사진이 놀랍거나 재미나거나 뛰어나지 않아요.


  살아가는 결을 살릴 때에 만화가 싱그러이 숨쉽니다. 살아가는 꿈을 다스릴 때에 만화가 푸르게 빛납니다. 살아가는 사랑을 나눌 때에 만화가 예쁘게 피어납니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보람이에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밥을 지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흙을 일구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노래를 불러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자전거를 타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뜨개질을 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빨래를 해요. 살아가는 보람으로 걸레질을 하고,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무등 태우고 들길을 걸어요.


- “나 말이야.” “응.” “연애라든지 결혼이라든지, 애 낳는 것, 그런 것들 전부 안 하고 살려고 해. 맘먹었어.” “그래. 하지만 알 것 같아.” “진짜?” “남들만큼 다 하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렇지?” (197쪽)
- “그리고 너 학교는?” “아, 그렇구나. 학교 가야지. 많이 배웠습니다.” “아니, 뭘.” (220쪽)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사랑을 마음껏 누리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이야말로 사랑스레 살아가는 보람을 마음껏 빛내면서, 우리 아이들이 ‘환한 빛’을 늘 느끼며 아끼도록 이끌면 좋겠어요.


  더도 덜도 아니잖아요. 아이한테 100만 원짜리 옷을 사 입혀야 예쁘지 않아요. 99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98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 39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38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 9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8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 1만 원짜리 옷을 사 입힌들, 이웃집에서 얻어 입힌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사랑스레 건네는 옷 한 벌을 고맙게 받아서 예쁘게 입어요.


  살아가는 보람은 오로지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 가지 (상) (구로다 이오우 글·그림,송치민 옮김,세미콜론 펴냄,2011.3.18./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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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탕 2020-03-0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좋네요. 책 많이 추천해주세요.

파란놀 2020-03-06 23: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만화책 이야기는
꾸준히 쓰니
즐거이 읽어 주셔요 ^^
 

[함께 살아가는 말 94] 그림자빛

 

  나는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주고받는 말을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사진을 사랑스레 찍고 싶기 때문에 사랑스레 찍을 사진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사랑스레 찍을 때에 서로서로 사랑스레 주고받고 싶은 말을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카메라’나 ‘촬영’ 같은 말이 달갑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그저 ‘사진기’로 ‘찍을’ 뿐입니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나 ‘사진쟁이’일 뿐, ‘사진작가’나 ‘포토그래퍼’가 아닙니다. 나는 ‘사진말’을 붙이지 ‘캡션’을 붙이지 않아요. 다른 분들은 ‘플래쉬’를 터뜨린다 하지만, 나는 굳이 ‘불’을 터뜨리며 찍지 않습니다.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쥘’ 뿐, ‘그립’을 쓰지 않습니다. 때때로 ‘세발이’를 쓰지만, ‘트라이포트’나 ‘삼각대’를 쓰는 일은 없어요. 무엇보다, 내 눈으로는 온누리가 ‘무지개 빛깔’ 아름다운 모습이로구나 싶어 ‘무지개사진’을 찍습니다. 꼭 ‘칼라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빨강이라 하더라도 모두 같은 빨강이 아니듯, 까망이나 하양도 늘 같은 까망이나 하양이 아니에요. 그래서 ‘까망하양’으로 이루어졌다 하는 ‘흑백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도, 여러모로 헤아린 끝에, 빨강도 푸름도 파랑도 노랑도 ‘까망하양’ 결로 다 달리 녹여내어 품는 ‘그림자사진’으로 찍는다고 이야기합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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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 아버지 좀 찍어 주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의 없는 탓에 시골마을 어른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적에 논밭을 뒹굴거나 가로지르며 뛰노는 아이들이 참말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어디에서나 거의 혼자 뒹굴거나 뛰어놉니다. 마늘을 캐고 엮어 경운기에 실은 마늘밭은 차츰 넓어지지만, 이 덩그러니 드러난 흙밭을 뒹굴 놀이동무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는 놀이동무가 딱히 없지만, 스스로 놀이동무를 찾습니다. 나무하고 놀고, 풀이랑 놉니다. 고욤나무 밑에서 고욤꽃송이 주워 놉니다. 고추꽃을 바라보고, 돌 틈 마삭줄에 맺힌 하얀 바람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부릅니다. “아버지 일하는 모습 좀 찍어 주어.” 다섯 살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들고 마늘밭 귀퉁이에서 사진 여러 장 찍습니다. 꼭 여섯 장 찍고는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잘 찍어 주었나. 잘 찍었겠지, 하고 믿으며 하던 일을 마저 합니다.


  이윽고 이웃집 마늘밭 일손 거들기를 마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는 이내 아버지 손을 놓고 먼저 저 앞으로 힘차게 달음박질을 합니다. 달리고 또 달려도, 뛰고 또 뛰어도 기운이 넘칩니다. 좋구나, 좋은 삶이고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 뒷모습을 기쁘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이 뒷모습을 참 자주 찍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뒷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씩씩하게 달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꽃밭이나 풀밭에 옹크리고 앉아 꽃이랑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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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 노랫소리 들어

 


  이웃집 마늘밭 일손을 한창 거들다가 살짝 쉴 무렵, 다섯 살 아이가 마늘밭 한복판에 가만히 서서 두 손을 귀에 대고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뻐꾸기 소리가 한결 잘 들립니다. 이웃집 마늘밭 건너 건너가 우리 집인데, 이웃집 마늘밭은 우리 집보다 건너 건너 멧등성이와 가깝기 때문일까요.


  다섯 살 아이는 뻐꾸기 노랫소리를 ‘꺼꾹 꺼꾹’으로 듣습니다. “꺼꾹 꺼꾹 노래해요.” “저쪽 산에 있어.” “어디?” “저어쪽.” “왜 저쪽에 있어요.” “뻐꾸기는 저쪽 산에 집이 있으니까.”


  마늘밭 가장자리에 두었던 사진기를 들어 사진 몇 장 찍는다. 마늘밭 일을 거들다 보면 먼지가 많이 일어 사진기에도 먼지가 많이 스며든다. 천으로 덮었으나, 이렇게 한들 먼지를 꽤 먹겠지. 할머니들은 마늘밭 먼지가 대단해 당신들이 긴옷을 입고 수건을 둘러도 집에 가서 씻을 때에 새까맣다고 말씀한다. 마늘밭에 아이 데려오지 말라 말씀한다. 아이 손에 먼지나 흙 묻는다고 손사래친다.


  그렇지만, 아이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마음껏 흙을 만지고 뒹군다. 마늘밭 먼지라고 대수롭지 않다. 옷은 갈아입히면 되고 손발과 몸은 씻으면 된다. 아이는 음성 할머니가 새로 마련해 준 흰치마를 팔랑팔랑 나부끼며 마늘밭을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논다. 이동안 뻐꾸기는 꾸준히 노래하며 땀을 식혀 준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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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또 다른 백년을 기다리며
김동욱 지음 / 눈빛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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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도 사랑도 사진도 빛
 [찾아 읽는 사진책 100] 김동욱, 《농민, 또 다른 백년을 기다리며》(눈빛,1995)

 


  전라남도 고흥 시골마을은 새벽부터 부산합니다. 이웃집 마늘밭에서 올 햇마늘이 처음으로 나온 오월부터 이곳 시골마을은 더없이 바쁜 흙일철(농번기)을 맞이합니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새벽 네 시 즈음이면 논자락으로 나와 일을 합니다. 네 시 반이나 다섯 시쯤은 늦습니다. 네 시 즈음부터 논배미에서 물을 살피고 흙을 돌봅니다.


  시골 흙일꾼 얼굴을 사진으로 담은 《농민, 또 다른 백년을 기다리며》(눈빛,199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1995년에 처음 나온 이 사진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졌습니다. 사진쟁이 김동욱 님은 흙일꾼 이야기를 더 사진으로 담아 보았는지, 이 책으로 마무리짓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진책 《농민》에는 비가 오는 날이나 궂은 날이나 눈이 뿌리는 날, 시골마을 흙일꾼 삶이 어떠한가 하는 모습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진책 《농민》에는 논이나 밭에 나와 일하는 흙일꾼이 ‘사진기를 바라보는 얼굴’ 모습만 드러납니다.


  사진쟁이 김동욱 님은 “운주사를 사진으로 정리하려고 주말을 이용해 일 년 남짓 내려가 보곤 했다. 그러나 찍으면 찍을수록 내 식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웠고,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재 사진이 나올 뿐이었다(101쪽/작가의 말).” 하고 이야기합니다. 김동욱 님 스스로 운주사라 하는 절을 ‘문화재’로 여긴다거나 ‘기록할 값어치가 있는 곳’으로 생각했으면, 운주사라 하는 절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문화재’로 보이는 사진이 태어나거나 ‘기록할 값어치가 있다’ 싶은 사진이 나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재 사진’이 나올 뿐이라면, 사진을 찍는 분 스스로 이 같은 생각굴레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쟁이 김동욱 님 스스로 “한 사람이 부르기 시작하자 노래는 이내 합창이 되어 들로 퍼진다. 빈속에 연거푸 마신 막걸리 때문에 금방 취기가 오르며 다리가 풀렸다. 나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어줍잖은 사명감, 우월감, 무력감, 초조함은 없었다. 노랫가락 따라 남도 들녘 저 멀리로 사라진 듯했다(102쪽/작가의 말).” 하고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찍는 삶이라 한다면, 이러한 말 그대로 김동욱 님 사진에는 “어줍잖은 사명감, 우월감, 무력감, 초조함”이 깃들 까닭이 없습니다.

 


 

  더없이 마땅합니다만, 사진책 《농민》을 들여다보면, 어느 사진에는 바로 이 “어줍잖은 사명감, 우월감, 무력감, 초조함”이 살며시 깃들고, 어느 사진에는 이런저런 “어줍잖은 사명감, 우월감, 무력감, 초조함”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해맑구나 싶은 사진이 있습니다. 좋구나 싶은 사진이 있습니다.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이랑 슬프구나 싶은 사진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사진이든 논자락이나 밭자락 한복판에서 찍은 사진이요, 밝은 낮나절에 찍은 사진입니다.


  왜 새벽 네 시에 찍은 사진은 없을까요. 왜 저녁 여덟 시에 찍은 사진은 없을까요. 흙일꾼을 좇아 흙일꾼을 찍는 사진이라 할 때에는, 흙일꾼 삶자락을 살피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새벽이 없고 저녁이 없는 흙일꾼 이야기를 사진에 살포시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흙 묻은 발가락, 까무잡잡한 얼굴, 갈라터진 손가락, 투박한 몸뚱이, 알록달록 펑퍼짐한 옷차림, 고되다 싶은 일을 하면서도 웃고 노래하는 매무새, ……, 그리고 밭고랑처럼 깊게 팬 주름살을 사진으로 담기에 ‘흙일꾼(농민)’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자리를 바꾸어, 서울 골목동네 한켠에서 이러한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도 똑같은 모습이 나와요. 사람들 뒷모습만 ‘논밭’에서 ‘골목집’으로 바뀝니다. 바닷마을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바닷마을에서 이러한 틀로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 뒷모습만 ‘고기잡이배’나 ‘바다’가 드러날 뿐입니다.

 

 

 


  한국땅에 사진이 들어온 지 백 해쯤 되었을까 어림해 봅니다. 백 해에서 더 지났다 할 수 있고, 맨 처음 들어온 날로 치면 백 해를 훌쩍 넘었다 할 테지요. 이럭저럭 나라 곳곳에서 사진일 하던 사람들이 생긴 때로 치면 이냥저냥 백 해로 칠 만합니다. 지난 백 해에 걸쳐, 이 나라 흙일꾼을 사진으로 담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 어떤 삶 어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으려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흙에서 흙일을 하는 흙일꾼은 어떠한 사람 어떠한 삶 어떠한 사랑이라고 여기며 사진기를 손에 쥐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예나 이제나 ‘흙일꾼 스스로’ 흙이랑 뒹굴며 사진기를 든 일은 아직 없습니다. 예나 이제나 ‘흙일꾼 삶결’에 맞추어 사진기를 쥔 사진쟁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사진으로 담는다 한다면, 대통령 삶자락을 어떻게 좇으며 사진으로 담으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담는다 할 때에, 아이들 삶자락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살피며 사진으로 담으면 좋을까 곱씹어 봅니다. 저잣거리 할머니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버스 운전기사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길거리 청소부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탄광 일꾼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사진쟁이는 이들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얼마만큼 살피고 돌아보면서 사진기를 쥘 때에 ‘삶빛’을 ‘사진빛’으로 옮길 만한가 가누어 봅니다.


  사진책 《농민》은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이 사진책에 담긴 시골 흙일꾼 누구나 ‘도시로 나가 회사에서 돈을 버는 아들’을 떠올리며 사진쟁이 앞에서 ‘모델로 선선히 서 주었구나’ 싶은 느낌입니다. 사진쟁이를 바라보는 흙일꾼이 아니라 ‘도시에서 대학교 마치고 커다란 회사에서 일자리 얻은 아들’을 바라보는구나 싶은 느낌입니다. 꼭 이런 느낌이라서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사진쟁이 김동욱 님은 ‘시골 흙일꾼을 바라본다’기보다 ‘이녁 늙은 어버이를 바라본다’고도 할 수 있는데, 따사로이 바라보며 즐거이 어깨동무하고픈 마음을 사진으로 담았어요. 나는 이 결을 느끼면서 사진책 《농민》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쉽다고 밝힐밖에 없는데, 사진과 사진책은 사랑스럽지만, 막상 ‘흙과 흙일과 흙일꾼 이야기’는 살포시 건드리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사진에 흙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사진기에 흙일이 스며들지 않습니다. 사진쟁이한테 흙일꾼이 녹아들지 않습니다.


  김동욱 님이 종달새 소리도 듣고, 뻐꾸기 소리도 들으며, 제비 소리도 듣는 즐거움 누리면서 한결 느긋하게 식구들 모두 이끌고 다니며 시골 곳곳을 예쁘게 누빌 수 있으면 “또 다른 백 해를 기다리는 흙일꾼” 사진이 아니라, “바로 오늘 사랑을 누리는 흙일꾼” 사진을 베풀 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갈 때에는 시골 흙사람답게 흙일꾼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으며 즐겁습니다. 시골로 찾아와 흙을 만지며 살아갈 때에는 도시사람답게 새로운 손길과 눈길로 흙일꾼 삶결을 사진으로 옮기며 기뻐요. 삶은 빛이요, 사랑은 빛이며, 사진은 빛입니다. 삶은 이야기요, 사랑은 이야기이며, 사진은 이야기입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 농민, 또 다른 백년을 기다리며 (김동욱 사진,눈빛 펴냄,1995.4.26./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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