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이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이면서 사람이다. 아이는 아이이면서 고운 목숨이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다. 아이와 함께 먹는 밥은 고마운 목숨이다. 나한테도 아이한테도 새 숨결 불어넣으며 오늘 하루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좋은 목숨이다.


  풀을 먹으면 풀내음이 젖어든다. 고기를 먹으면 고기내음이 밴다. 콜라를 마시면 콜라내음이 풍긴다. 냇물을 마시면 냇물내음이 스민다. 내 몸에 들어오는 먹을거리는 그냥 밥이 아닌 목숨인 터라, 내가 먹는 결 그대로 내 삶이 된다. 곧, 내가 읽는 책 하나는 얕거나 깊은 지식이 아닌 바로 내 삶이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삶을 읽는 셈이고,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느냐에 따라 스스로 이녁 삶을 살찌우는 셈이다. 그러니까, 어떤 이는 삶에 지식만 쟁일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삶에 사랑을 따사롭게 누빌는지 모른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누구나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참말 사랑이 맞을까. 아이를 입시학원에 넣는 일도 사랑일까. 아이가 학교에서 동무들끼리 서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도, 또 따돌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받아도, 또 점수따기 시험경쟁으로 동무를 밟고 올라서도, 어버이 된 이들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준다고 할 만할까.


  어느 아이도 100억 원이나 1000억 원을 바라지 않는다. 어느 아이도 서울 강아랫마을 아파트를 바라지 않는다. 어느 아이도 새까만 자가용을 바라지 않는다.


  어느 아이도 즐겁게 뛰놀 동무를 바란다. 어느 아이도 맛나게 함께 먹을 밥을 바란다. 어느 아이도 새근새근 달게 잠들 좋은 잠자리를 바란다. 어느 아이도 고운 노래를 바란다.


  아이를 마냥 바라본다.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 넌 아이다. 더운 여름 한낮, 어머니 실장갑을 끼고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 넌 아이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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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시인이 쓰는 말
[말사랑·글꽃·삶빛 11] ‘웃음’과 ‘미소’와 ‘스마일’

 


  오늘날 사람들이 쓰는 손전화 기계는 전화를 걸거나 받는 구실뿐 아니라, 인터넷을 누빈다든지 동영상이나 영화를 본다든지 노래를 듣는다든지, 여기에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다든지 하는 데까지 쓰임새를 넓힙니다. 이름은 손전화라 하지만, 구실이나 쓰임새는 참 넓어요.


  저는 사진기라는 이름이 붙는 기계를 따로 쓰기에, 굳이 손전화라는 기계로 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사진기라는 이름이 붙는 기계를 따로 안 쓰는 분들은 으레 손전화라는 기계로 사진을 찍으실 텐데, 언젠가 어느 분 손전화 기계에서 사진이 찍힐 때마다 ‘스마일!’ 하는 소리가 나오는 모습을 곁에서 보았습니다.


  서양사람은 사진을 찍을 때에 ‘치즈(cheese)’라 말한다 하고, 한국사람은 사진을 찍을 때에 ‘김치’라 말한다 하니까, 한국 회사가 만들어 한국사람이 쓸 한국땅 손전화 기계라면 ‘스마일’ 아닌 ‘김치’라는 말이 흐르거나 ‘웃어!’ 같은 말이 흘러야 알맞지 않을까 하고 살짝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 스스로 ‘손전화’ 같은 낱말조차 잘 안 써요. ‘휴대폰(携帶phone)’이라 할 뿐입니다. 적어도 ‘폰’을 ‘전화’로 바로잡아 ‘휴대전화’라 말하는 분조차 드물어요.


  어른들부터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사랑스레 쓰지 못하는 얼거리이다 보니,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제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사랑스레 쓰도록 이끌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푸름이와 어린이는 바로 둘레 어른들이 여느 때에 늘 쓰는 말을 언제나 들으면서 익숙하게 말을 하고 글을 써요. 둘레 어른들이 곱고 예쁘게 말을 한다면,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곱고 예쁘게 말을 할 테고, 둘레 어른들이 밉고 거칠게 말을 한다면, 푸름이와 어린이 또한 밉고 거칠게 말을 하고야 맙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국문학과를 마치고, 시를 쓰며 살아가다가, 출판사 편집자로도 일한 적 있는, 예순 살 넘은 어느 분이 쓴 시를 읽다가 “헛간에 좀 늦게 들어온 호박이 쭈뼛거리다가 얼굴에 곧 환한 미소를 띠며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앉아(122쪽/늦가을)”라 노래하는 글줄을 봅니다. 《은빛 호각》(창비,2003)이라는 시집에 실린 싯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싯말을 찬찬히 곱씹고 호박꽃과 호박빛을 가만히 헤아리다가 ‘미소(微笑)’라는 낱말이 마음에 걸려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시를 쓰는 예순 넘은 할아버지는 왜 ‘미소’라는 낱말을 싯말로 담았을까요. 책 만드는 일을 한 적 있는 할아버지는 왜 ‘미소’라는 낱말을 싯말로 그대로 남겼을까요.


  ‘미소’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 가운데 일본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은 ‘웃음’이나 ‘빙긋 웃음’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들 얘기하지만, 막상 이처럼 올바로 바로잡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아무래도 ‘웃음’이라는 낱말로는 뜻이나 느낌이 살아나지 않겠다고 여겨 ‘미소’ 같은 낱말을 쓸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미소’라는 낱말을 둘레에서 익히 들었으니, 시를 쓰건 책을 엮건 말을 하건 이 낱말이 저절로 튀어나올는지 모릅니다. 요즈음에는 ‘생일잔치’라 말하지 않고 ‘생일파티’라 말하는 이가 무척 많은데다가, ‘생파’라고 줄여 말하기까지 한답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이면 마땅히 ‘잔치’이지만, 어른들부터 잔치를 누리지 않아요. 어른들부터 아이들과 함께 ‘파티’를 벌여요. 아이들은 아주 스스럼없이 ‘파티’라는 낱말에 길들어, ‘떡볶이잔치’ 아닌 ‘떡볶이파티’를 합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에도 ‘짜장면파티’가 되고, 김밥을 먹어도 ‘김밥파티’가 되고 말아요.


  어른들이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띠면 아이들도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띠겠지요. 어른들이 얼굴에 살며시 웃음을 비치면 아이들도 얼굴에 살며시 웃음을 비치겠지요. 방긋 웃는 어른이요 아이입니다. 발그레 웃는 어른이면서 아이입니다. 싱긋생긋 웃는 어른이기에 싱긋생긋 웃는 아이예요.


  이 나라 어른들은 웃음을 잃습니다. 어른들부터 웃음을 잃기에 아이들이 웃음을 잃습니다. 이 겨레 어른들은 웃음을 잊습니다. 어른들부터 웃음을 잊으니 아이들이 웃음을 찾기 어렵습니다.


  즐겁게 웃지 않고, ‘행복(幸福)한 미소’를 짓고, ‘해피(happy)한 스마일’을 띱니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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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일으켜 걸리는 어린이

 


  마당에서 둘이 놀다 보면, 누나가 동생을 일으켜서 걸리기도 한다. 동생은 누나가 일으키려 할 때에 다리에 힘이 남았으면 일어나고, 다리에 힘이 없으면 손사래를 치며 기겠다고 한다. 동생이 얼른 걷고 뛰고 날며 함께 놀기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릴까.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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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섰어요

 


  둘째 아이가 곧잘 서지만, 스스로 걸을 생각을 웬만해서는 안 한다. 걸어 주면 오죽 좋으랴 싶지만, 둘째 아이는 둘째 아이 결과 무늬에 맞게 천천히 다리힘을 기르며 천천히 걸을 테지. 왜 이렇게 걸으려 하지 않을까 싶어 다리를 만지고 살피고 보면, 아직 다리에 힘살이 덜 붙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서 즐겁게 놀렴. 하루하루 누리다 보면 어느 날 기쁘게 달리기를 하며 네 누나하고 예쁘게 뛰어놀 수 있겠지.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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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03 11:00   좋아요 0 | URL
산들보라야 천천히 서고 천천히 걷고 싶은게구나
천천히 하면서 남들이 못보던 것들을 보고 남들이 못한 생각을 하고
그래도 서서 똑바로 세상을 보렴
아름다운 게 더 잘 보일테니

파란놀 2012-06-03 11:08   좋아요 0 | URL
곧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널리 보여주리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죽에서 밥으로 넘어가는 징검돌이
참 고단하네요 @.@
 

굳이 밝힐 까닭이 없다 할 테지만,

내 알라딘서재 이웃은

거의 '아줌마'이다.

아줌마 아닌 아저씨가 쓴 글은

참 따분하며 읽을 맛이 안 난다고 느낀다.

 

요 한동안 알라딘서재에서 이루어진 논쟁에

한 마디를 붙인다.

 

아줌마(또는 아줌마 나이인 여자)를 괴롭히거나

엉뚱한 샛길로 빠지는 모든 아저씨들 읽으라는 뜻에서,

또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대로 아줌마 삶을 사랑하는

예쁜 글을 아껴 주십사 하는 뜻으로,

이 글을 바친다.

 

......

 


 아줌마 글, 아저씨 글

 


  금을 긋자는 얘기가 아니라, 나는 아줌마가 쓴 글이 아저씨가 쓴 글보다 한결 재미나고 반가우며 좋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모든 아줌마가 다 그러하지는 않을 테지만, 이 나라이든 옆이나 다른 나라이든, 지구별 아줌마들은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일을 거의 도맡거나 아주 도맡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나라이든 이웃한 나라이든, 지구별 아저씨들은 집안에서 나눌 숱한 일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글은 삶이다. 말도 삶이고 책도 삶이다. 저마다 제 삶에 걸맞게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책을 읽는다. 살아가는 결이 글을 쓰는 결이다. 살림을 꾸리는 무늬가 글을 쓰는 무늬이다. 집안일을 하거나 바깥일을 하는 빛깔이 고스란히 글을 쓰는 빛깔이다.


  집에서 살아가며 맡아야 할 일을 맡는 아줌마가 쓰는 글이란 ‘살림글’이기 일쑤이다.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으레 맡는 아저씨가 쓰는 글이란 ‘지식글’이기 일쑤이다.


  지식글은 언뜻 보기에 대단하거나 놀라울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식글은 목숨이 짧다. 지식글은 한때 조회수가 높을는지 모르나, 이런 조회수는 반짝 하고 그친다. 살림글은 언뜻 보기에 하찮거나 흔해빠졌다 여길는지 모른다. 그러나, 살림글은 목숨이 한결같으며 오래오래 고이 이어진다. 살림글은 조회수가 높든 낮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나라 어느 사람이 읽더라도 가슴을 적시고 마음을 움직인다. 조회수나 이런저런 껍데기나 겉치레하고 동떨어진다.


  아줌마들이 떠든다는 수다는 시끄럽다고들 깎아내리지만, 아줌마들 수다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다만, 모든 아줌마 모든 수다가 귀를 기울일 만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내몰면서 학원이나 시험공부 따위 이야기로 날을 지새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하고 슬프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들 돌보는 삶을 이야기한다면, 이 이야기는 언제 누구한테서 들어도 솔깃하며 재미나다. 서로서로 웃고 떠들 만하다. 아저씨들 수다라 하더라도 이렇게 ‘집일’과 ‘아이돌보기’를 놓고 수다를 떤다면 되게 재미나다.


  이와 달리, 오늘날 여느 아저씨들이 떠든다는 수다는 조용하거나 차분하다 하더라도 졸립다. 군대에서 공 차는 이야기이든, 정치 이야기이든, 회사나 공무원 이야기이든, 하나같이 골이 아프고 따분하다고 느낀다. 지식이나 정보로 흘러넘치는 이야기라 하면, 언제나 더 새로운 지식이나 더 돋보인다 싶은 정보로 빠지기 마련이다. 어제 한 이야기를 오늘 못 하고, 오늘 한 이야기는 글피에 할 수 없는 틀이 바로 아저씨들 이야기이자 글이라고 느낀다.


  아줌마들 이야기는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같은 이야기감’이라 하더라도 늘 새롭다고 느낀다. 아줌마들 글은 어제나 오늘이나 글피나 ‘같은 이야기거리’라 하더라도 언제나 새삼스러우면서 싱그럽구나 싶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아이들 밥상을 차리며, 아이들 씻기고 입히며 재우는 아줌마들은 아이들과 하루 스물네 시간을 꼬박 붙어서 살아낸다. 집안에서 하루 내내 이것저것 돌보고 추스르며 살아낸다. 곧, 아줌마들 이야기나 글이란, 아줌마들 스스로 느끼든 못 느끼든,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과 빛을 새록새록 차근차근 담기 마련이다.


  아저씨는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 못할 뿐더러, 아기나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는 일조차 드물 뿐 아니라, 빨래를 해서 옷을 입히거나 날마다 틈틈이 씻기고 놀아 주고 하는 일이 드물다.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글’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나눌 때에 비로소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아줌마들은 아줌마들 삶을 빛낼 책을 홀가분하게 즐기며 읽으면 된다. 괜히 ‘아저씨들이나 기웃거릴 지식조각 책’을 어깨너머로 넘겨볼 까닭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과 그림책과 만화책을 함께 읽으면 즐겁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동화책과 그림책과 만화책을 읽으라 하고,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대로 잡지책을 읽든 뜨개책을 읽든 문학책을 읽으면 즐겁다.


  아저씨들은 동화책도 그림책도 읽지 않으니 따분하다. 아저씨들이 어쩌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더라도 ‘지식 어린 눈길과 손길’로 마주하니까 더더욱 따분하다. 게다가 아저씨들이 좋아한다는 만화책은 얼마나 지저분하고 자질구레한가.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듯, 오직 사랑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오로지 사랑이 아이들을 먹여살릴 수 있듯, 오직 사랑이 책을 감싸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저씨들은 참 모른다. 오늘날은 아줌마들도 제법 모른다 싶은데, 지식이나 정보를 글에 담거나 이야기에 실으려 하면 참말 지겹고 어수선할 뿐이다. 아이들한테 지식이나 정보를 주워섬긴대서 아이들이 따르겠나. 아이들한테 고운 사랑과 맑은 꿈을 들려줄 때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줌마들은 아줌마들 가슴속 사랑과 꿈을 기쁘게 꽃피우면 된다. 아저씨들은 가슴속에 사랑과 꿈이 없는 만큼, 스스로 사랑과 꿈을 북돋우거나 가꾸거나 일구도록 땀을 흘려야 한다. 아저씨가 아줌마보다 ‘힘살이 단단히 붙는 까닭’은 마음으로는 깨우치지 못하니까 몸으로 깨우치라는 뜻이다. 아저씨들은 돈벌이 바깥일에 덜 힘을 쓰고, 사랑살이 집일에 더 힘을 쓰면서 글을 쓰고 얘기를 나누며 책을 읽어야 아름답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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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02 09:11   좋아요 0 | URL
어제 집에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정류장 뒤에 이 꽃을 보았어요. 무슨 꽃이지? 명자나무인가? 비슷한 것 같은데 좀 다른 것 같기도 해서 앙증맞은 꽃을 버스 올때까지 들여다보았답니다.
작은 꽃등이 켜진 것 같지요? ^^

파란놀 2012-06-02 10:17   좋아요 0 | URL
오, 이 꽃을 보셨어요?
이 꽃은 '석류꽃'이랍니다!

그런데 이 꽃하고 비슷하지만,
자그마한 꽃송이인 '명자나무'가 있어요.
제가 앞에서 찍어서 그렇지,
'석류꽃'은 앞으로 길쭉하게 나온답니다.

기다리는여자 2012-06-02 15:3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미미한 블로거입니다. 별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열심히 남기지도 않고요. 제 서재는 그냥 놀죠. 에브리데이 놀토랄까요? ㅎㅎ 그저 서평이나 가끔가다 싸질러 놓을 뿐입니다. 알라딘 서재 페이퍼는 가끔 눈팅만 하는데요, 최근 일어난 알라딘 논쟁도 어떤 의견을 개진한 적은 없지만 어떤 의견이 오고갔는지, 어떻게 일이 진행됐는지 정도만은 파악하고 있었답니다. 오늘 알라딘 서재에 된장님의 페이퍼가 상위에 올라와 있어서(또 알라딘 논쟁에 대한 제목이 달려 있어서) 읽었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초면에 댓글을 남겨요. 아, 저는 아저씨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랍니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고, 알라딘 논쟁에 관여된 사람도 아니지만 쭉 바깥에 서 있었던 사람의 입장으로 글을 남겨요.

우선 글을 읽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은 것을 사과합니다. 불쾌하게 들리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왜 이상하게 느꼈는지 말씀드리면 조금이나마 제 감상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 글을 어떻게 읽었느냐하면요,

아저씨=이성적=지식추구적 성향 = 잘난 척
아줌마=감성적=감정적인 성향 = 진솔하고 사랑이 넘침
지식과 정보를 담는 글 = 지루함
일상이 묻어나는 감성적인 글 = 가치 있는 글

이렇게 대강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하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 아줌마만이 감정에 호소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아저씨만이 지식으로 허세부리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므로 조금 의아했던 겁니다. 또한 지식 글은 허세고 살림 글은 진솔하므로 더욱 가치 있다는 논조도 좀 그래요. 아줌마와 아저씨의 독서취향을 딱 잘라 나눠놓고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경제서적이나 인문서적을 즐겨 읽는 아줌마들도 많고, 소설을 좋아하는 아저씨들도 어마무지하게 많잖아요. 결정적으로 아줌마들은 안 그런데 아저씨라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사랑과 꿈이 없다고 단정하시는 발언은 아저씨들에게 상처가 될 수 도 있겠네요.

왜 알라딘 논쟁이 이렇게 또다시 아줌마 아저씨 논쟁으로 번져가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논쟁이 오갔던 글들만 본다면 어떤것이 남자의 글이고, 어떤 것이 여자의 글인지 알기 어려웠거든요. 그게 아저씨인지, 아줌마인지 짐작도 안됬기에 이제사 남자와 여자, 아줌마를 괴롭히는 아저씨 같은 이야기가 나오니까 어리둥절해졌던 겁니다.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신참의 눈에는 그저 어떤 분이 알라딘 당선작에 대해서 나름의 논리로 문제제기를 하셨고 그에 대해 수많은 알라디너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갔고(때로는 조금 과격해 지기도 했고;;)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사이에 논의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확장되기는 했지만, 또 어떤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저 살벌한 분위기가 가라않은 상황 아닌가요? 어째서 아줌마와 아저씨 이야기로 튀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순수한 의문이에요) 논쟁에 참여하지 않은 눈팅족들은 모르는 흑막의 이야기가 있는 거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요. 만약에 특정한 몇몇 사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그것을 싸잡아서 ‘아저씨들이란...ㅉㅉ’ 하신 거라면 그건 좀 보기 그렇습니다. 엄한 아저씨 알라디너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이 밑으로 냉랭한 댓글을 달고, 또 그 밑으로 누군가 반박 글을 달고, 달고, 달고, 달고, 달고 해서 또다시 논쟁이 일어난다면 조금 씁쓸할 것 같아요. 알라딘 서재가 이렇게 살벌한 곳이었다니..ㅜㅠ 아니지 않나요? 아닌가?;;;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 거라면 차라리 그 분에게 직접 의견을 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하셨던 바를 진솔하게 적으신 거라면 또 다른 엉뚱한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글이니 내용을 조금 순화하신 다거나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괜한 참견을 더하고 갑니다.

길어졌네요. 댓글민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습니다.ㅜㅠ

파란놀 2012-06-02 20:45   좋아요 0 | URL
무슨 뜻으로 쓴 글인가를 '알아듣지' 못했으면
알아듣지 못하면 그만입니다.
그뿐이에요.

못 알아듣는다고 잘못일 까닭이 없고,
못 알아듣는다고 '못 살지'도 않아요.

즐겁게 알아들을 수 있으면 즐겁게 살고,
못 알아듣는다면, 그저 그런 대로 님 삶을 누리면 됩니다.

..

덧붙이면,
님처럼 어떤 도식으로 따지려고 이런 글을 쓰지 않았어요.
글이름 그대로 '아줌마 삶'과 '아저씨 삶'이 다르다는 뜻일 뿐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아줌마'였고, 나 또한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줌마' 같은 어버이입니다.

다락방 2012-06-02 17:20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집오리님과 같은 의미로 이 글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쁜 단어들만으로 이루어진 무서운 글로 읽혀요.

파란놀 2012-06-02 20:36   좋아요 0 | URL
스스로 무섭다고 생각하면
그저 무서울 뿐입니다.

나는 시골 어두운 밤길이 하나도 안 무서워요.
밤이니 마땅히 어두울 뿐이고,
어두우니 별이 잘 보여 좋아요.

그러나, 밤이 무섭다고 여기면 그저 무서울 뿐이에요.

(더구나, '예쁜' 낱말은 뭘까요?)

하이드 2012-06-02 19:36   좋아요 0 | URL
워낙 우리말 지킴이시라,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아줌마'도 '아저씨', 특히 '아줌마'라는 말은 나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에, 단어 사용부터 불편하게 읽히구요,

그걸, 속으로 '여자'와 '남자'로 바꾸어 읽어도, 이런 일반화는 좀 무섭네요.

파란놀 2012-06-02 20:38   좋아요 0 | URL
나는 '우리 말 지킴이'가 아닙니다.
뭘 잘못 알고 함부로 말하시는군요?

왜 '아줌마'를 나쁘게 여길까요?
100 사람 가운데 90 사람이 나쁘게 여긴다 한들,
10 사람이 좋게 여기면,
또 이 10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하나도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편견을 품고 살아간다면
하이드 님 스스로
모든 삶 구석구석에 편견이 드러날 뿐입니다.

글은 글 그대로 헤아리면 좋을 뿐입니다.

..

한 마디 덧붙이면,
하이드 님은 바로
'나쁜 의미로 쓰이는 아줌마'가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워서
오늘처럼 살아가고 글을 씁니다.

그럼. 이만.

Fenomeno 2012-06-03 00:08   좋아요 0 | URL
왜 '지식글(아저씨 수다, 만화책)'을 나쁘게 여길까요?
100 사람 가운데 90 사람이 나쁘게 여긴다 한들,
10 사람이 좋게 여기면,
또 이 10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라면,
하나도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편견을 품고 살아간다면
된장 님 스스로
모든 삶 구석구석에 편견이 드러날 뿐입니다.

글은 글 그대로 헤아리면 좋을 뿐입니다.

..

인사도 미처 못 드리고 왕래도 없던 분께 이런 복사글을 남기는 게 약간 겸연쩍지만, 본문보다도 된장님의 답글을 보니 자판에 손을 얹고 싶은 욕구를 참을 길이 없네요. 아무쪼록 넘치는 '사랑'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마디 덧붙이면,
된장 님은 바로
'나쁜 의미로 쓰이는 지식과 정보'가
토대가 되고 자양분이 되고 열매가 되어
오늘처럼 살아가고 글을 씁니다(물론, 어쩔 수 없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읽을 맛 안 나는 아저씨 글일지라도요).

그럼. 이만.

poe 2012-06-03 02:43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이 좀 돌려 말씀하셨는데 핵심을 못읽으신 듯하네요.
된장님은 전혀 느끼지 못하겠지만 된장님 발언은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 발언입니다. 저는 아줌마가 아니지만, 아줌마였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아요. 아저씨라면 그냥 '이 뭥미' 하고 말았을테지만요.

또 된장님은 이게 왜 성차별이냐, 라고 하시겠죠. 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못알아듣고 있는 게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oe 2012-06-03 02:29   좋아요 0 | URL
이 글도 폭력적이지만 된장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단 댓글들은 그야말로 폭력 그 자체입니다. 이번 사태 보면서 어지간한 것들은 꾹꾹 눌러 참았는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처음으로 한마디 남깁니다.

된장님에 대한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표현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된장님은 편견과 독선과 아집 그 자체입니다. 다락방님 말씀처럼 된장님은 그걸 고운 언어로 포장하고 있죠.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더 환장하겠어요. 열린 자세를 표방하며 '참말로 슬기로운' 것을 지향하시면서, 다른 사람들 말은 도통 들으려 하시지를 않아요. 된장님에게 슬기는 무엇인가요? 자신이 틀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1%도 고려하지 않고, 타인에게 "니가 내 말을 못알아들어 그렇지, 허허..." 하는 것이 슬기인가요? 다른 사람들에 된장님에게 하나같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런 니들이 문제'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한두번쯤은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가 되는 점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지극히 정상 아닌가요? 아무리 말씀드려도 타인의 문제로 치환하시니, 정말 소 귀에 경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말도 못알아들으시고 또 제가 폭력적이고, 제가 문제라고 하실텐데.... 저는 왜 이렇게 열을 내며 열심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 ㅠㅠ

네. 이 지겹고 어수선한 서재에서 곱고 아름다운 것 좋아하시는 분들과 곱게 곱게 참말로 건강한 삶을 슬기롭게 잘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헛수고를 한 기분이네요.

파란놀 2012-06-03 05:41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나날'을 함께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님들께서 제 서재에 올라오는 글을
얼마나 하나하나 살펴 읽으시는가 궁금하군요.

제가 쓴 이 글은
그동안 제 서재에 꾸준하게 쓰던
제 글하고 똑같습니다.

저는 '아줌마'로 살아가는 '두 아이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을 낳아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고스란히 '아줌마'입니다.

아마, '도시 아줌마'는 다르다 여길는지 모르나,
아줌마라는 이들은
'생명을 몸에 품고 낳아 이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이라는 대목이
어떠한 '다른 허울을 붙이더라도 본질'일밖에 없습니다.

..

이 글이 왜 '알라딘서재 논쟁에 붙임'인가 하는 대목은
바로 이러한 곳을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럼 이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찬찬히 새겨 들어' 주시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글을 비롯해 다른 제 서재 글을
굳이 읽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파란놀 2012-06-03 12:10   좋아요 0 | URL
Fenomeno 님 보셔요.

인사도 없고 왕래도 없는 사람한테 섣불리 댓글 다는 일이 어떤 뜻인지는 님 스스로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 서재에 어떤 글을 어떻게 올리는가를 살피지 않고 이런 댓글만 올리는 일이란, 참말 어떤 뜻이 될는지 잘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100 사람 가운데 99 사람이 좋아한다 하더라도,
나 1 사람이 안 좋아하면,
내가 안 좋아하는 결대로 안 좋아합니다.

100 사람 가운데 99 사람이 싫어한다 하더라도,
나 1 사람이 좋아하면,
내가 좋아하는 결대로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며 즐기는가'를 살펴야지
다른 사람이 좋아하며 즐기는가를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좋아 시골마을에서 아이들하고 살아가는데,
누가 내 삶에 '토를 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