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 맑은 희망
이대성 지음 / 램블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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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배운 사진 사랑하기
 [찾아 읽는 사진책 97] 이대성, 《검은 땅, 맑은 희망》(Rambler,2011)

 


  내 삶만큼 나한테 좋은 길잡이가 없다고 느낍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 한길만큼 나한테 좋은 스승이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하루 살을 부비는 살붙이들과 누리는 보금자리만큼 나한테 좋은 꿈벗이 없다고 느낍니다. 나는 스스로 내 삶을 일구면서, 나는 스스로 내 삶을 가르치고 이끌며 배웁니다.


  밥상에 놓인 밥그릇을 보며 생각합니다. 밥알을 하나하나 씹으며 생각합니다. 우리 집 깃든 마을을 돌아보며 생각합니다. 내 보금자리 살림살이를 살피며 생각합니다. 밥을 차리는 손길을 느끼며 배웁니다. 옷가지를 빨래하는 손길을 돌아보며 배웁니다. 아이들과 얼크러지는 하루를 되새기며 배웁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말 한 마디는 곧 나 스스로를 가르치는 말 한 마디입니다. 내가 아이들과 디디는 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내 몸으로 살아내는 하루는 내 일기이자 교과서이고 성경입니다. 내 마음으로 피우는 생각은 내 꿈이자 사랑이고 믿음입니다.

  학교에 다니는 까닭이라 한다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몸을 찬찬히 읽는 눈길을 익힐 때에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머리에 어떤 지식을 집어넣는다든지, 점수따기 어떤 시험을 치러 더 높다는 학교에 들어가는 정보를 쌓으려고 학교에 다닌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풀어내자면 “배우는 터”를 뜻하는 ‘학교(學校)’입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한국사람으로 한국말을 써야 마땅한 만큼, 우리 한국사람은 ‘학교’라는 낱말이 아니라 “배우는 터”를 가리킬 가장 뚜렷하고 가장 맑으며 가장 사랑스러운 낱말을 스스로 빚어 스스로 누려야 알맞으리라 봅니다.

 

 


  누군가한테는 “배우는 터”입니다. 누군가한테는 “사랑하는 터”입니다. 누군가한테는 “이야기 나누는 터”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놀이하는 터”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꿈을 이루는 터”입니다.


  그런데 어느 어른 한 사람이 어느 아이 한 사람을 어느 한길로 이끌 수 없어요. 어른은 아이를 이끌지 못해요. 어른은 어른 삶을 아이한테 보여줄 뿐이에요. 아이는 둘레 어른들 삶을 바라보면서 아이 나름대로 어느 삶길을 스스로 찾아 걸어갈 때에 스스로 가장 좋으며 기쁘고 아름다울까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무언가를 배운다 한다면, ‘사회를 이루는 어른 한 사람’이 ‘사회를 이루며 스스로 빚은 생각’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아이인 나도 함께 받아들일 만한’가를 살피고, 함께 받아들일 만하지 않다면 ‘아이 스스로 어떤 길을 새롭게 찾아야 하는’가를 곱씹는 한편, 함께 받아들일 만하더라도 ‘아이 깜냥껏 어떻게 삭힐 때에 빛날’ 수 있는지를 찾습니다. 교과서나 교재로는 아무 가르침도 배움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오직 삶으로, 삶을 일구는 마음으로, 삶을 아끼는 몸뚱이로 가르치고 배워요.


  이대성 님이 빚은 다큐사진책 《검은 땅, 맑은 희망》(Rambler,2011)을 읽습니다. 이대성 님은 “(대)학교 수업이 사진 결과물에 대한 토론 중심의 수업이다 보니,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 등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108쪽).”고 말합니다. 그래서 “1999년 가을, 결국 난 휴학을 하고 안산에 있는 공단에서 일하며 6개월가량 돈을 모았다. 그리고 무작정 루마니아로 떠났다. 따분하고 지루한 학교에서의 수업이 나의 마음엔 도무지 들어오지 않는데다,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318쪽).”고 덧붙입니다.

 

 


  이대성 님은 스스로 삶길을 찾습니다. 학교에서 지식으로 배우는 사진이 아니라, 이대성 님 스스로 삶으로 느끼며 깨달을 사진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책에는 “무작정 루마니아로 떠났”다고 밝히지만, 무턱대고 떠난 먼길은 아니라고 느껴요. 이대성 님 마음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루마니아로 떠났겠지요. 이대성 님 마음속에서 ‘난 어떤 사진을 누리며 어떤 삶을 빛내고 싶을까’ 하는 물음을 풀어내고 싶어 공장에서 일하고 머나먼 길을 나섰을 테지요.


  이대성 님으로서는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실길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은 마실길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사랑할 때라야 ‘사진으로 이루는 빛을 삶으로 누리는 꿈’을 찾아 마실길을 떠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하기에 비로소 ‘내 마음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가볍고 홀가분한 손길로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있어요.


  다큐사진책 《검은 땅, 맑은 희망》은 책이름 그대로 검은 땅에서 사진을 찍는 이대성 님 스스로 맑구나 싶은 빛을 느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검은 땅에서 마주하는 ‘지구별 이웃’을 바라봅니다. “길지 않은 길임에도 짐을 내려놓고 숨 돌리기를 몇 번씩 하고 나서야 분화구 정상에 다다르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해도 신경 쓸 여력도 없는지 묵묵히 발걸음만 옮긴다(53쪽).” 하는 말처럼 지구별 이웃은 군말도 덧말도 없이 스스로 삶을 일굽니다. 이대성 님은 곁에서 군말도 덧말도 붙이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은 가장 좋은 모델입니다. 천진난만한 그들이지만, 삶의 소박함과 깊이를 맑은 눈망울에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자연 역시 소박한 일상과 만나, 더없이 소중한 풍경을 만듭니다(83쪽).” 하는 말처럼 지구별 이웃이 누리는 삶은 환합니다. 검은 땅에서 살아가든 하얀 땅에서 살아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대수롭습니다.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서로 어떤 마음이 되어 서로 아끼거나 사랑하느냐가 대수롭습니다.

 

 


  이리하여, 이대성 님은 검은 땅에서 마주한 지구별 이웃 얼굴을 살피다가는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말해 주는 책과 같습니다(91쪽).” 하고 깨닫습니다. 덧붙여, “기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 남겨져 있는 삶과 이야기이다(198쪽).”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교사는 결국 삶입니다(240쪽).” 하고 배웁니다.


  이대성 님 스스로 배우고 싶던 이야기는 바로 ‘가장 좋은 교사는 삶’이라는 대목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대목을 배우되, 지식 아닌 온몸으로 배우고 싶었기에, 마음이 부르는 소리에 따라 대학교를 그만두고 머나먼 지구별 마실을 떠나며 사진을 찍는다고 느낍니다.


  찬찬히 살피면, 사진기를 손에 쥔 이들 가운데 아직 못 깨닫는 이가 참 많습니다.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는 ‘사진기를 손에 쥔 이들 마음속’에 다 있어요. 무엇을 찍고 어떻게 찍으며 왜 찍어야 하느냐는 까닭과 이야기와 실타래와 궁금함과 설렘과 반짝임 모두 우리 가슴속에 있어요. 스스로 깨워야 합니다. 스스로 깨달으며 깨워야 합니다.

 


  사진강의나 사진학교에서 일깨울 수 없습니다. 사진강의나 사진학교는 ‘이런 삶도 있다고 보여줄’ 뿐입니다. 곧, 사진강의를 하는 이나 사진학교를 여는 이 또한 굳이 더 이끌지 않아요. ‘이런 삶도 있다고 보여주’면서, 사진기를 손에 쥔 이 스스로 사진길을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에요.


  “주위를 둘러보니 할퀴어진 땅들이 그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넓게 펼쳐져 있다. 마주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데 정류장에 모인 사람들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으란다. 나중에는 옆에 있는 동료까지 잡아끌며 카메라 앞에 세운다. 나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을 카메라에 담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통근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광부들이 사는 마을에 내려주고는 휑하니 먼지를 날리며 떠나갔다(279쪽).” 하는 대목을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이대성 님이 마음속 소리를 들으며 먼먼 사진마실을 다니기에 비로소 온몸으로 느끼며 사진과 글로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사진으로 못 찍고 글로 못 씁니다. 스스로 부대낄 때에 비로소 사진으로 찍고 글로 씁니다. 스스로 겪어야 깨닫습니다. 스스로 살아내야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사랑해야 마음이 움직입니다.


  밤하늘 별은 밤하늘 별을 보고 싶어 밤하늘에 별이 보이는 터로 몸소 찾아가 살아가는 사람한테만 밝은 빛을 베풉니다. 밤하늘 별은 도시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어떠한 빛도 드리우지 않습니다. 밤하늘 달도 이와 같아요. 낮하늘 해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햇볕을 느끼고 싶다면 햇볕이 있는 데로 가야 합니다. 소나기를 느끼고 싶으면 소나기 내릴 만한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데로 가야 합니다. 무지개를 보고 싶다면서 서울 한복판 높직한 아파트 창가에 턱을 괴고 먼 하늘 바라본대서 볼 수 없어요. 무지개가 있는 데로 삶터를 옮겨야지요.

 


  무지개를 본 적 없는 사람은 무지개를 말하지 못하지만, 무지개를 그림으로도 못 그리고, 무지개 같은 결과 무늬가 살아숨쉬는 이야기를 사진이나 글로도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보면서도 사랑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내 아이가 되든 이웃 아이가 되든, 숱한 아이들 바라보며 사랑을 사진으로 빚습니다. 사랑을 빚는 사람이라면 살구 한 알을 바라보더라도 사랑스레 찍습니다. 사랑을 찾는 사람이라면 나뭇가지 하나에 붙은 나뭇잎들 푸른 무늬에서도 사랑을 찾아 따사로이 사진을 찍습니다.


  삶으로 배운 사진을 사랑합니다. 삶이 아닌 지식으로 배운 사진은 머리속에 갖가지 정보조각으로 쌓입니다. 삶으로 배운 사진은 어여쁜 사랑씨앗 되어 온누리에 차곡차곡 퍼집니다. 삶이 아닌 지식으로 물려받는 사진은 숱한 이론과 실기를 낳을 뿐, 이야기 담긴 꿈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4345.6.5.불.ㅎㄲㅅㄱ)

 


― 검은 땅, 맑은 희망 (이대성 글·사진,Rambler 펴냄,2011.12.28./14000원)

 

 

 

 

이 사진책이 뜻밖에 잘 알려지지 못하고

잘 읽히지도 팔리지도 못하는 듯한데,

참 잘 만든 예쁜 책인 만큼

이제부터라도 널리 사랑받으며

알뜰히 읽힐 수 있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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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3
콘노 키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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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
 [만화책 즐겨읽기 154] 콘노 키타,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3)》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하고 잘 놀며 잘 지내자면, 어른 스스로 자연하고 가까이 지내면 됩니다. 자연을 닮은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놀며 사이좋게 지내자면, 어른부터 자연을 닮은 삶으로 고칠 수 있으면 됩니다.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한테서 자연을 떼어내니,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잃습니다. 오늘날 아이다움을 잃은 아이들은 모두 자연하고 멀리 떨어지고 만 슬픈 얼굴입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싶으나, 아이들 어버이가 아이들을 자연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먹고 자고 입고 배우게 해요. 자연을 닮은 아이들한테서 자연스러움을 벗겨 물질과 문명과 교육과 제도권이라는 옷을 입혀요.


  어른들은 아이한테서 자연을 벗기며 무엇을 얻을까요. 어른들은 아이를 자연과 동떨어지게 하면서 무엇을 누릴까요. 어른들은 아이들 모두 어른하고 똑같이 자연을 모르거나 잊거나 짓밟거나 망가뜨리는 모습으로 크도록 내몰지 않나요.


- “반짝반짝 은하수다.” “응? 그 노래 말이구나. 대나무잎 살랑살랑.” (9쪽)
- “별님 손톱이다! 고마워, 리카코 고모.” “별 말씀을.” “아빠, 아빠, 예쁘지?” “사야 손톱은 아무것도 안 발라도 예쁘단다.” (10쪽)
- “비가 내리면 지상에서 별이 보이지 않긴 하지만, 구름 위의 사람들에겐 아무 문제도 없지 않을까?” (21쪽)
-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밤은 점점 길어지고, 까맣고 커다란 주머니 같은 밤하늘에 별빛이 초롱초롱 콕콕 박혀서, 가슴이 두근두근해.” (144∼145쪽)

 

 


  대통령 한 사람이 밀어붙일 수 없는 ‘4대강 사업’과 같은 토목공사입니다. 공무원 몇몇이 밀어붙일 수 없는 ‘국립공원 터널·케이블카 사업’과 같은 토목공사입니다. 재벌회사 몇몇이 밀어붙일 수 없는 ‘원자력발전소·화력발전소 새로 짓기’와 같은 토목공사입니다.


  토목공사를 꾀하는 어른 누구나 ‘해맑던 갓난쟁이’와 ‘싱그럽던 어린이’ 나날을 지났어요.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 나라돈 펑펑 쓰는 이들 또한 티없던 갓난쟁이 나날을 지나 푸르던 어린이 나날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들 모두 어른이 되어 토목공사와 전쟁질에 휩쓸립니다.


  이웃을 괴롭히던 어른도 갓난쟁이로 태어났습니다. 동무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어른도 착한 어린이로 지냈습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도, 좁은 골목에서 빵빵거리며 자동차 모는 사람들도, 입시지옥 굴레를 더 깊게 만드는 사람들도, 모두 사랑스럽던 아기였고 귀엽던 어린이였어요.


  그렇지만, 이들 어른 모두 슬픈 낯빛으로 살아갑니다. 이들 어른 모두 고단한 얼굴빛으로 살아갑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떤 뜻을 이루려고 슬픈 낯빛이 되고 고단한 얼굴빛이 되나요.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들을 먹여살리려고? 식구들을 입히고 재우며 학교에 보내려고?


- “와아, 사야는 빠른 년생이라서 키는 작지만, 굉장히 야무지구나! 역시 하루카 동생이야!” “나도 깜짝 놀랐어.” (19쪽)
- “그래, 엄마 눈에는 아직 한참 어린애로 보일지도 모르지. 여자아이는 성장이 빨라서, 그만큼 더 소중하게 아껴 줘야 하는데 말이야.” “빠르지 않아. 사야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작은걸.” “여자아이의 몸은 비밀을 숨기고 있단다. 지금은 남자아이들과 다르지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앞으로 소중한 변화의 계절이 찾아올 거야.” (50∼51쪽)

 

 


  해 지고 어두운 저녁, 아이 둘을 하나하나 재웁니다. 둘 모두 더 놀려 애쓰고, 둘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더 놀려 힘쓰다가는, 아버지가 자전거수레에 태워 밤자전거 마실을 하니, 먼저 둘째가 스르르 잠들고, 이윽고 첫재가 사르르 잠듭니다. 둘째는 집에 닿아 어머니가 품에 안고 자리에 눕혀 새근새근 재우려 할 때에 깹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품에 안고 자리에 눕혀도 깨지 않습니다. 둘째는 밤자전거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두 시간 만에 비로소 잠듭니다. 한참 놀아 주고 한참 노래 불러 준 끝에 천천히 잠듭니다. 그래, 아이들은 실컷 놀지 않고서야 잠들지 않는가 봐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놀고픈 만큼 개운하게 놀아야 신나게 잠들는지 몰라요.


  아이들은 자연이니까요. 아이들은 자연과 같으니까요. 흐드러지게 놀고 흐드러지게 꽃피우는 아이들이라 할 테니까요. 해맑게 푸른 잎 틔우고 해맑게 꿈을 나누는 아이들이라 할 테니까요.


  모든 자연은 새벽에 기지개를 켜고 아침에 일어나며 낮에 신나게 움직이다가 저녁에 시나브로 잠듭니다. 모든 자연은 밝은 낮에 밝은 기운 뿜고, 어두운 밤에 새근새근 잠자며 쉽니다.


- “엄마랑 아빠도 너무너무 사이가 좋아서 신이 심술을 부린 걸까.” (24쪽)
-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걸 깨닫게 돼요. 난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화내고 언성을 높이는, 아직 부족하고 못난 엄마지만, 마음은 언제까지나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위로 뻗어 나가고 싶어요.” (58쪽)

 


  오늘은 마루문을 닫지 않고 모기문만 닫습니다. 마루문을 안 닫으니 시골집 둘레 무논마다 개구리 노랫소리 집안으로 한가득 들어옵니다. 마루에 서면 마당에 있을 적이나 논가에 설 적이나 엇비슷하게 개구리 노랫소리 우렁찹니다. 마루에서 방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노랫소리는 살짝 잦아드는가 싶지만, 그래도 되게 크게 들려요.


  옆지기 코 자고, 두 아이 새근새근 자는 집에서 홀로 깨어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아니, 나는 멀쩡히 깬 몸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기고, 세 식구는 고단히 잠든 몸으로 개구리 노랫소리를 즐깁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내가 듣는 개구리 노랫소리도 좋지만, 깊이 잠든 식구들이 몸으로 받아들일 개구리 노랫소리도 좋으리라 느껴요. 생각해 봐요. 자동차 붕붕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을까요. 술 얹힌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들 만한가요. 가게에서 튼 기계소리를 들으며 잠들기에 좋은가요.


- “사야, 너한테는 내가 있단다. 부족하지만 여자 선배로서, 리카코 고모는 언제든지 사야 네 편이야. 그러니까, 마음 놓고 쑥쑥 자라렴.” (51∼52쪽)
- “눈을 뗄 수가 없네요.” “네?” “어린아이들은 잠시만 눈을 떼도 변하는 것 같아요.” “네, 어린아이들의 시간은 단위가 다르니까요.” (54쪽)
- “어릴 때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쓸데없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그런 시간도 성장하기 위한 에너지로 필요한 것 아닐까요. 성장이란 굉장해요.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뻗어 가는 거잖아요. 입에 넣는 밥 한 숟가락, 앞으로 내딛는 작은 한 걸음. 모든 것이 성장이라는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요. 키가 작은 만큼 대지가 가깝고, 키가 작은 만큼 하늘이 멀죠. 어려운 말을 모르는 만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요. 어린아이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짧은 만큼, 시간은 천천히, 소중하게 흘러가는 거예요.” (55∼57쪽)

 

 


  잘 자는 식구들 이불을 여밉니다. 방 온도계는 25도입니다. 한국땅 남녘은 바람도 햇살도 한결 따사로운데, 시골마을 온도계는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따로 부채를 안 쓰면서 즐거이 잠을 잡니다. 선풍기이든 에어컨이든 부질없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이든 이웃 시골마을이든, 집안에 선풍기나 에어컨 놓은 집을 못 보았어요. 모기그물 치고 문을 열면 아주 시원해요. 외려 썰렁하다 싶어 긴소매를 입거나 두툼한 이불을 덮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벌써부터 푹푹 찌든 무더위 밤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왜 무더위 밤이 되는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니, 지난 5월 첫머리에 경기도 파주 책도시에 한번 마실을 갔다가 푹푹 쪄서 죽는 줄 알았으니,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하기도 합니다. 흙땅 없이, 숲 없이, 나무 없이, 풀 없이, 냇물도 멧자락도 없이,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도시는 봄밤조차 무더위로 후끈후끈 달아오를밖에 없습니다. 작은 아파트나 살림집이나 가게라도 식힌다며 냉방기를 돌린다지만, 냉방기를 돌리며 바깥으로 내보내는 후끈후끈한 바람은 도시를 더 뜨겁게 달구고 맙니다. 그렇다고 냉방기를 안 쓸 수 없고, 그렇다고 자동차가 안 돌아다닐 수 없으니, 도시는 스스로 굴레에 빠져요. 도시는 스스로 어수선해지고 말아요. 도시는 스스로 죽음수렁과 같은 데가 되고 말아요.


  돌이켜보면, 밤에 별을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은 사람도 여느 짐승도 푸나무도 목숨다이 살아갈 수 없구나 싶어요. 내 어릴 적 살던 도시이든, 첫째 아이 낳던 도시이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 참 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더위 그 후끈거림 그 땀내음 어떻게 견디었는치 퍽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골버스는 에어컨이 없어도 됩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합니다. 도시버스는 창문을 열지 않을 뿐더러, 아예 창문이 없기도 합니다. 고속도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온통 통유리예요.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쐴 만하지 않으니까 창문을 못 열도록 만들어요. 도시에 있는 건물도 고속버스와 비슷해서, 창문을 활짝 열게끔 짓지 않기 일쑤예요. 햇살도 바람도 마음껏 스며들 수 없어요. 회사도 집도 학교도 가게도, 도시에서는 자연하고 너무나 동떨어져요.


-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바통을 이어서 달리면, 누구 한 사람이 늦어도 다른 사람이 금방 커버할 수 있구나.’ (116쪽)
- “우리가 어렸을 땐 거의 매일 밖에서 뛰어놀곤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위험이 가득하다는 것도, 어린아이가 이렇게 가냘프고 약한 존재라는 것도 몰랐어.” (138쪽)


  콘노 키타 님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오직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홀가분하며 기쁘고 예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을 읽으며 즐겁습니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첫째 아이가 머잖아 한글을 익히고 나면 혼자서 예쁘게 읽을 만한 만화책이 되리라 생각하며 참말 즐겁게 읽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을 수 있을 때에 씩씩하게 자라듯, 나는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책을 읽으며 씩씩하게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아이들은 자연과 가깝기에 자연을 마음껏 누리는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자라듯, 나는 아이들이랑 자연을 곱게 누리는 보금자리에서 자연스러운 넋으로 사랑을 가꾸도록 돌보면서 빙긋 웃습니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스며들고, 어버이 웃음은 아이들한테 젖어듭니다.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은 자연을 살가이 보듬고, 자연과 가까운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자연을 사랑으로 맞아들이며 고운 꿈을 빛냅니다. (4345.6.4.달.ㅎㄲㅅㄱ)

 


―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 (콘노 키타 글·그림,김진수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6.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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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 전기세 (고흥 화력발전소를 반대하며)

 


  포스코 회사가 꾸리는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에서 쓰는 전기 가운데 70%를 스스로 만들지만, 나머지 30% 전기세로 낸다고 합니다. 포스코에서 바깥으로 널리 밝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고 하지만, 지난 2011년에 포스코가 전기세로 쓴 돈은 2700억 원이라느니 5200억 원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전력에서 포스코한테 ‘원가’로 전기를 대 주었기에 퍽 값싸게(?) 전기를 썼고, 제대로 전기세를 셈했으면 6000억 원은 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곧 전기세가 다시 오른다 해서 포스코는 330억 원인지 수백 억 원인지를 전기세로 더 낸다고 합니다.


  나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네 식구 살림을 꾸리기는 하는데, 한 달 전기값으로 1만 원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나 혼자 살던 때에는 전기값을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씩 내곤 했습니다. 나 혼자 살던 때에는 ‘고지서를 낼 만큼 전기를 쓰지 않’아서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 고지서가 나왔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 전기값은 참 적습니다. 우리 이웃집 또한 전기를 참 적게 씁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전기를 펑펑 쓸 사람은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기가 모자라다며 아우성을 칠 때에, ‘도시에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겠다’고 말하는 일이란 없어요. 언제나 바람 맑고 햇볕 좋고 물 시원한 시골에 발전소를 짓겠다 합니다. 시골에 발전소를 짓고는 우람한 송전탑을 길디길게 도시까지 잇겠다고 해요. 발전소와 송전탑이 시골마을을 어떻게 어지럽히고 얼마나 더럽히는가를 헤아리는 이가 드물어요.


  전기를 많이 써서 전기가 모자란 데는 도시인데, 왜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려 할까요. 시골이 땅값이 싸고 발전소 반대할 사람 숫자가 적어서? 시골 어르신들은 땅 팔아 아이들한테 물려줄 생각을 하니까, 시골에 땅 사들여 발전소 짓기 좋아서?


  전기가 모자라다면 온 나라에 구석구석 있는 고속도로나 고속철도 지붕을 햇볕전지판으로 대고는 전기를 얻어도 될 텐데, 막상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찻길 지붕을 햇볕전지판으로 마련하면 도시에서 쓸 전기를 꽤 넉넉히 얻을 뿐 아니라, 도시 건물을 덥히거나 식힐 기운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정작 이렇게 생각을 하며 시설을 마련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지하자원만 쓰려 해요. 오직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 시골을 망가뜨리려 해요.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바보가 돼요.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을 하며 사랑을 스스로 버려요. (4345.6.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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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05 02:05   좋아요 0 | URL
국내 전기료가 싸니 전기값 귀한줄을 모르고 펑펑 쓰는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어디에 쓰인 말처럼 전기는 국산이지만 그 원재료는 수입산이니 아껴야 되는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자꾸 까먹는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2-06-05 07:28   좋아요 0 | URL
전기를 만들며 자연과 시골을 온통 망가뜨릴 뿐 아니라, 도시에서는 도시 터전을 마구 허무는 모습을 본다면, '값이 싸다'고 할 수 없어요.

어쩌면, '체감 온도'로는 싸다고 여기기에, 지구별을 마구 망가뜨리는 전기일 수 있겠지요

책읽는나무 2012-06-05 07:32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안그래도 시골엔 항상 사람보다도 그러한 것들로 넘쳐나는 것같습니다.
무언가를 짓게 해준다면 보상을 해주겠다라고 하지만..ㅠ
전기를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네요.
전 한 달 전기세를 3만원을 넘기지말자라고 생활하고 있는데,님은 만 원을 넘기지 않으신다니...ㅡ.ㅡ;;
갑자기 진주님의 전기세에 관한 페이퍼가 생각나네요.
나부터 전기를 좀 더아껴야 할 듯.^^

파란놀 2012-06-05 07:58   좋아요 0 | URL
전기를 아끼는 일은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집에서 어떤 물건을 어떻게 건사하느냐를 살펴볼 수 있으면 돼요.

전기 아끼는 일에 앞서,
'전자파 문제'를 잘 헤아려 보셔요.

전자파가 사람한테 매우 나쁘거든요...
 

송전탑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봉래면 섬마을.

 

포스코에서
7조 원 들여
친환경 화력발전소
짓고
3525억
고흥군에 선물하고
432만 명
일자리 생긴단다.

 

2012년 1월
고흥군
흙일꾼 고기잡이
모두 더하면
7만 명 아슬아슬
425만 명은
어디에서 찾아올까.

 

작은 시골마을
전기 쓸 일 없으니
친환경 화력발전소
전기는
몽땅
높고 우람한 송전탑
세워
굵직하고 기나긴 전깃줄
이어
커다랗고 사람 북적이는
큰도시로 보내겠지.

 

시골 전기 쓰는
도시사람
시골 푸성귀 먹는
도시사람
시골 샘물 마시는
도시사람
시골 흙길 마실하는
도시사람
시골 어른 용돈 주는
도시사람.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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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올 때부터 소식을 들어서 알기는 했지만, 책값 10만 원에 엄두를 못 내며 생각만 했는데, 요 며칠 사이에 어느 중앙일간지에 이 책 기사가 나왔다. 그러면 1000권 한정판은 다 팔리고 없으려나. 1000권 한정판이 다 팔리면, 이 책은 2쇄를 안 찍으려나? 아아아... @.@ 10만 원이 대단한 돈은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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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앨범- 교향곡에 세계를 담은 음악가의 초상
길버트 캐플런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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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10만원이면 헌책방에서 상당수의 책을 살수 있는 돈이죠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