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사십 분
둘째 아이
끙 끙
소리 내며
일어나

 

잠들 무렵
옆에 누운
아버지
어디 갔나
찾는다

 

문턱
두 손으로 짚고
옆방에서
글 쓰는
아버지
빤히 바라본다

 

쉬 했니
촉촉한 기저귀 벗기고
폭신폭신 기저귀 대어
무릎에 누여
살살 토닥인다

 

삼십 분쯤 뒤
새근새근 잠든
둘째 아이
천천히 안고
천천히 일어서
옆에 방석 둘 깔고
살며시 눕힌다

 

내 웃도리 한 벌
둘째 몸 덮는다

 

아직 많이 작은 둘째
내 웃도리 한 벌로
넉넉히
이불 삼을 만하다

 


4345.5.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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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크레파스 풀빛 동화의 아이들
엘렌느 데스퓨토 그림, 로버트 먼치 글, 박무영 옮김 / 풀빛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맑은 빛을 생각할 때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6] 엘렌느 데스퓨토·로버트 먼치, 《이상한 크레파스》(풀빛,2002)

 


  어질어질한 머리로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 늦게 잠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이른아침에 식구들은 아직 꿈누리를 날아다니고, 나는 홀로 걸레를 손에 쥐고는 방바닥을 훔칩니다. 끝방 바닥에 깔던 깔개를 들추어 마당에 넙니다. 아침부터 좋은 햇살이 퍼지니, 이 햇살을 받아 보송보송 곱게 마르리라 생각합니다.


  걸레질을 하고 걸레를 빨고, 다시 걸레질을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합니다.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도 이른아침부터 집안을 쓸고 닦았습니다. 하루쯤 걸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어머니는 으레 이른아침부터 집안을 쓸고 닦으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두 아이와 부산스레 살아가는 하루를 되짚습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비질을 해도 먼지나 모래가 쓸립니다. 집안과 마당을 쉴새없이 드나드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먼지와 모래를 실어나릅니다. 아들 둘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라면 날마다 이른아침부터 쓸고 닦는 일부터 할밖에 없었겠다고, 이제 와서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른아침에 걸르지 않으며 할 일이라면, 비질과 걸레질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비질과 걸레질을 마친 나는 물을 마십니다. 어제 잔뜩 짠 풀물도 마십니다. 늦도록 자는 두 아이는 몸이 아프니까 늦도록 잘 텐데, 내 몸이라고 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몸을 일으켜 움직입니다. 아이들 일어나서 배고프다 하면 무엇을 먹일 때에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몸이 나아져 신나게 뛰놀 만하다면, 아이들과 모처럼 어떤 나들이를 해 볼까 헤아려 봅니다.

 

 


.. 어느 날 브리짓이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 저 크레파스 좀 사 주세요. 친구들은 모두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걸로 얼마나 멋지게 그림을 그리는지 몰라요.” ..  (5쪽)


  좋은 햇살과 함께 아이들 몸이 차츰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 아이들이 일어나면 맨 먼저 옷을 벗겨야지요. 따순 물 나오도록 보일러를 돌리고, 물이 따뜻해질 때까지 시원한 물로 아버지부터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다음, 이윽고 물이 따뜻해지면 두 아이를 함께 씻겨야지요. 이동안 이불 한 채는 빨래기계에 넣어 빨래하고, 나머지 옷가지는 내가 복복 비비고 살살 헹구어야지요. 다 씻고 다 빨래한 다음, 식구들 모두 풀물을 마시며, 맛난 밥을 차려서 먹든, 아무래도 내 몸이 많이 힘드니 바깥으로 나가서 바깥밥을 사먹든 해야지요.


  생각을 해 보고,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집에서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집에서 누리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늘 바라보며 받아들일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 사랑을 생각합니다. 옆지기와 이루는 삶을 생각하고, 시골집에서 맞이하는 하루를 생각합니다.


  봄에 처마 밑으로 찾아든 제비는 새끼 네 마리 씩씩하게 잘 컸습니다. 새벽에 깨고 아침에 날갯짓을 하다가는 저녁 늦도록 아무도 안 돌아옵니다. 모두들 먹이를 찾느라 바쁠는지 모르며, 기운찬 날갯짓을 가다듬느라 멀리멀리 마실을 다녀올는지 몰라요.

 


.. 엄마는 브리짓이 말했던 크레파스를 사 주었어요. 그것도 500개나 말이에요 ..  (6쪽)


  내가 맑은 빛을 생각할 때에 내 넋이 맑게 거듭난다고 느껴요. 내가 벌나비를 바라보며 너희 참 곱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건넬 때에, 벌나비는 한결 고운 빛을 뽐내면서 싱그럽게 날갯짓하리라 느껴요.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너희 참 아름다운 줄거리를 이 몸에 아로새겼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을 건네면, 책 한 권은 더 싱그러우며 슬기로운 빛무늬를 나누어 준다고 느껴요.


  내가 어두운 빛을 생각한다면, 내 넋 또한 어둡게 바뀌겠지요. 내가 케케묵은 빛을 헤아리면, 내 얼 또한 케케묵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나는 늘 맑은 빛을 생각하며 살아야 즐겁습니다. 이 좋은 삶을 생각하고, 저 좋은 길을 바라보며, 그 좋은 꿈을 북돋울 때에 하루하루 기쁘게 누리리라 느껴요.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글로 빚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사진으로 아로새깁니다.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는 좋은 생각을 목소리에 싣습니다. 애써 궂은 생각이나 슬픈 생각을 글·그림·사진·노래에 얹을 일이 없어요. 굳이 나쁜 생각이나 몹쓸 생각을 어디에도 드러낼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 먹으라고 일부러 썩은 고기를 차릴 어버이란 없어요. 옆지기 먹으라고 일부러 쉰내 나는 나물을 내놓을 짝꿍은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 삶터를 돌아보면, 더 때깔 좋고 더 굵직하게 보이는 푸성귀나 열매를 만든다면서 농약을 치고 비료와 항생제를 먹여요. 풀한테도 짐승한테도 못할 짓을 자꾸 일삼아요. 가게에 가득한 과자와 소시지와 빵마다 갖가지 화학첨가물 범벅이에요. 이들 먹을거리를 만든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먹일 생각이었을까요. 공장에서 화학첨가물 만드는 사람은 ‘내 사랑스러운 옆지기’한테 먹일 생각인가요.

 


.. “네, 엄마! 정말 깨끗이 지워지고 있어요!” 브리짓의 그 말은 사실이었어요. 목욕탕에서 나온 브리짓은 진짜 완전히 지워져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어머나, 세상에!” 엄마는 너무 놀라 소리쳤어요. “큰일이구나, 브리짓!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학교에 갈 수 있겠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일자리도 절대 구할 수 없단 말이다!” ..  (26쪽)


  엘렌느 데스퓨토 님 그림과 로버트 먼치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이상한 크레파스》(풀빛,2002)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와 살가이 얘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림책 어머니 또한 고작 열 몇 해 앞서는 ‘똑같은 아이’였을 텐데, 참말 열 몇 해만에 그림책 어머니는 아주 틀에 박히거나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고 말아요.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해요. 스스로 생각을 빛내지 않아요.


  한낱 그림책 줄거리로 나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일자리도 절대 구할 수 없단 말이다(26쪽)!” 같은 외침이 아니라고 느껴요. 참말 오늘날 한국땅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굴레에 갇혀요. 생각이 아닌 굴레에 갇혀요. 생각을 버리고 굴레를 붙잡아요. 생각을 놓고 굴레를 거머쥐어요.


  왜 아이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요. 왜 아이한테 크레파스를 500개씩이나 잔뜩 안기기만 하나요. 크레파스 500개 가운데 하나쯤 어머니가 즐겁게 손에 쥐어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요. 아이 아버지는 집에서 낮잠만 잘 노릇이 아니라, 500개나 되는 크레파스 가운데 하나를 쥐고는 아이랑 신나게 그림놀이를 누릴 수 없을까요.

 


.. 아빠는 전보다 더 멋지게 보였어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어때요? 아빠가 더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 브리짓이 물었어요. “난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구나!” “맞아요.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  (30쪽)


  그림책 어린이는 크레파스를 500개 가집니다. 이윽고 다른 500개를 가집니다. 머잖아 새로운 500개를 또 가집니다. 자그마치 1500개나 되는 크레파스를 가집니다. 이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 곁에서 아이 삶을 지켜보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느라 이토록 바쁜가 궁금합니다. 무엇에 쫓겨 이렇게 아이가 사랑스레 살아가는 꿈결을 지켜보지 못하는가 궁금합니다.


  ‘화가 되는 길’을 걸어가라고 아이한테 크레파스를 사 주지 않습니다.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길’을 걸어가라고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길을 손 잡고 걸어갈 노릇입니다. 맑은 빛을 생각하며 서로 맑은 꿈을 나눌 살붙이입니다. 맑은 빛을 아끼며 서로 맑은 사랑을 나눌 좋은 삶동무입니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 이상한 크레파스 (엘렌느 데스퓨토 그림,로버트 먼치 글,박무영 옮김,풀빛 펴냄,2002.3.2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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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꽃 책읽기

 


  이웃집은 어디나 마늘이 꽃대(마늘쫑)를 높이 뻗어 꽃망울 터질 때까지 놓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마늘을 바지런히 캐고 손질해서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골마을 어느 집이라 하더라도 마늘꽃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꽃대가 올라오면 뽑아서 먹고, 꽃망울 터질까 싶으면 캐서 손질하거든요. 밭 가장자리에 누군가 마늘을 심고는 가만히 지켜볼 때라야 비로소 마늘꽃을 구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내가 심지 않더라도 배추꽃이나 무꽃은 곧잘 구경할 수 있으나, 마늘꽃만큼은 스스로 심어 돌보아야 비로소 구경할 수 있구나 싶어요. 마늘도 파도 양파도 모두 소담스럽게 꽃망울 터뜨리는데, 이 꽃망울을 아리땁게 바라보자면, 내 삶 한켠에 나 스스로 느긋하게 말미를 마련해 놓아야겠지요.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만 책을 읽고,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만 사랑을 하고,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는 사람만 꽃을 누려요.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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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다시 읽는 사진, 거듭 찍는 사진

 


  2012년에 다섯 살을 누리는 아이하고 글씨 쓰기를 합니다. ㄱㄴㄷ부터 하나하나 함께 쓰며 놉니다. 깍두기 공책을 가득 메우는 아이는 오래지 않아 한글을 싱그럽게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이곳저곳에 적힌 글월을 읽을 수 있을 테며, 어느 날에는 제 삶이야기를 짤막하게 글로 옮길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렇게 아이가 글월을 읽거나 제 삶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는 퍽 먼 일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이와 글씨 쓰기를 함께 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사진을 찍습니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새삼스레 들여다보고, 오늘 새삼스레 거듭 찍으며, 하루가 지나면 또 예전 사진을 들여다볼 테고, 다시금 새삼스레 새롭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길 걷는 다른 분은 어떠할는지 잘 모릅니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과 사람을 사랑스럽고 즐겁게 꾸준히 찍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사랑하는 짝꿍이 있다 할 때에 사진을 어떻게 찍을는지 헤아려 보셔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아마 날마다 새롭게 만나면서 새롭게 사진을 찍을 테지요. 사랑하는 나날을 누리는 햇수가 늘수록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사진첩 몇 권이 되도록 두툼하게 늘 테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 아니라 할 만한 모습까지 사진으로 찍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두 사람한테는’ 서로 믿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한 자락 싣는 사진이거든요. 좋아하는 마음을 담으니 늘 다시 들여다보는 사진이 되고, 언제나 거듭 찍는 사진이 됩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이녁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날마다 새롭게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랑 오늘이 얼마나 다르겠느냐 말할 분이 있을 터이나,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내 마음은, 어제는 어제요 오늘은 오늘이에요. 어제와 같은 놀이를 오늘 똑같이 하더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새롭게 노는 삶이에요. 새삼스럽게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아이가 손에 힘을 꽉 주며 깍두기 공책 메우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봅니다. 사진기 떨리지 않도록 잘 붙잡고는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이제 그만 찍자 싶지만, 사진기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열 장 스무 장 잇달아 찍습니다. 하루 지나 이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어느 사진 하나 버릴 수 없다고 느낍니다. 며칠 지나 또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어느 사진이든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에서 사진길 걷는 분 가운데 최민식 님은 부산 자갈치 저잣거리에서 벌써 쉰 해 넘도록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저잣거리 일꾼’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최민식 님으로서는 ‘늘 새로운 길’을 걷는 마음일 테고, ‘언제나 다른 삶결’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느낄 테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될 때에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운다면, 사진학교를 못 다니고 사진강의를 못 들었다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즐길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곱게 건사한다면, 사진이론이나 사진비평을 모른다 하더라도, 사랑스럽게 사진을 읽는 하루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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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피아노 밑에 들어가

 


  키가 아직 1미터 안 되는 동생 산들보라는 누나가 피아노를 칠 때에 옆에서 얼쩡얼쩡거리다가 겨우 손을 뻗어 건반 몇 누르곤 한다. 밥 잘 먹고 씩씩하게 놀며 바지런히 걷기를 해 보며 너도 누나 곁에 올라 앉아 피아노를 함께 치며 놀 날을 기다린다.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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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21 07:32   좋아요 0 | URL
피아노도 있네요?부럽~
산들보라 머리 여러 번 찍었겠어요?ㅋㅋ
마지막 장면 사름벼리 손자세 아주 좋군요.

파란놀 2012-06-21 07:43   좋아요 0 | URL
석 달 지난 사진인데, 이제서야 들여다보고 갈무리했답니다 @.@
이제 둘 다 피아노 갖고 잘 놀아요.

도시 떠나 시골로 가면서 장만한 피아노예요.
시골에서는 마음껏 칠 수 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