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짜는 어린이

 


  동생이 쉬를 한 바지를 어머니가 빨래한다. 아이는 이 옷을 제가 짜겠다며 들고 흔드는데, 용을 쓰듯 짜고 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어떻게 비틀어야 제대로 짜서 물을 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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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말

 


  아침에 밥을 먹이는 자리에서는 그렇게도 밥을 안 먹으려고 땡깡을 부리며 딴짓을 하던 아이가 낮 한 시 무렵 부엌 밥상 제 밥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더니 아빠 무릎에 털썩 앉고는 밥만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배가 고팠겠지요? 진작부터 다른 반찬하고 밥을 먹으면 좋았으련만. 아빠하고 함께 밥먹는 자리에서 다른 데에 한눈 안 팔고 신나게 밥을 먹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이렇게라도 먹어 주니 고맙습니다. 아직 많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더 잘 알겠습니까. 더 놀고 싶고 더욱더 놀고 싶으며 더더 놀고 싶을 뿐인 이 작고 가녀린 목숨이 놀고 싶다고 하는데 억지로 밥숟가락 들도록 다그치며 입에 밥을 퍼 넣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배가 고플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입니다. 놀다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배는 고프고 잠도 찾아와 꺽꺽거릴 때까지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아이 스스로 밥을 먹어야겠다 싶을 때 ‘옳지!’ 하고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요즈음 이렇게 한참 졸릴 무렵에 밥을 먹으면서 스르르 잠들곤 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된 사람으로서 다른 일은 거의 붙잡지 못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이어오던 글쓰기조차 하루에 한두 꼭지 쓰기마저 벅찹니다. 아이 보느라 바쁘고 힘들며 고단합니다.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 셈틀을 켜고 글을 써야 하는데, 아이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는 애 아빠도 드러눕고 싶습니다. 허리가 결리고 두 눈은 감기며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해째 이와 같이 살면서 제 둘레 사람들한테 편지 한 번 변변히 띄우지 못합니다. 받은 편지에 답장조차 거의 못 씁니다. 바쁘며 고된 나날을 보내면서 아이 키우는 다른 여느 어버이들은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모두들 우리 집식구처럼 고달프지는 않을 터이나 바쁘고 힘들기는 서로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바쁘고 힘들다지만 어여쁘며 착한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새힘을 얻지 않느냐 싶습니다.


  고이 잠든 아이는 오줌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오줌을 징하게 눕니다. 이 바람에 아버지가 덮고 자야 할 이불이 홀라당 젖었습니다. 날이 좀 덥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이불이 다 마를 때까지 자기 어렵습니다. 그래, 이런 오줌싸기를 바라보면서도 아이를 나무랄 노릇이 아니라,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좀 늦게까지 글 하나 붙잡고 용을 쓰라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깊은 밤에 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합니다. 어느 어버이이든 아이한테 못된 밥을 먹이며 ‘아이가 삭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엉터리 책을 읽히며 ‘아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하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앞에서 못된 말을 하거나 얄궂은 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하거나 엉터리 말을 하면서 ‘아이가 좋은 말을 골라서 잘 배울 테지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를 때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말을 바르게 가누고 생각을 옳게 가다듬으며 삶을 아름다이 추스르고자 힘쓰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더 많은 돈만 있으면 되니까, 아이한테이든 나 스스로한테이든 아름다이 말하고 알맞게 말하며 착하고 참되게 말하는 매무새를 잃어도 괜찮을는지 궁금합니다.


  더 높은 이름값만 있으면 되기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남 앞에서 우쭐거린다든지 남들을 팔아 제 밥그릇을 채우면 된다고 여기면서 내 속삶을 가꾸는 길하고는 동떨어지는 탓에 자꾸자꾸 말과 넋과 삶이 알차거나 훌륭한 길하고는 멀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날 시인 김수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우리 낱말 열 가지를 든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김수영 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우리 낱말 가운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하고 동무들하고 신나게 떠들며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열 가지 고르기란 만만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 가지만 고르는 일은 더욱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은 ‘쏠’이라는 낱말 하나를 알아내어 아끼는데, 우리 형이 쓰는 ‘쏠’이라는 낱말을 입으로 굴리거나 마음으로 헤아리면서 ‘우리 누리에 이렇게 어여쁘고 깊은 낱말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부럽고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내가 좋아하는 낱말로 무엇을 꼽아야 할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좋아할 만한 낱말이란,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이나 엄마나 누나나 잎이나 일이나 땀 …… 이런저런 낱말들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지 어느덧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내 고등학생 때에는 걸상이나 사람이나 나비나 강아지나 밥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면, 오늘날에는 어떤 낱말을 좋아하며 곁에 두는가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내가 즐겁게 꼽을 만한 낱말로 무엇이 있을까 하나하나 살핍니다.

 

 어린이, 하늘, 흙, 물, 바람, 햇살, 마을, 꿈, 손, 빨래.

 

  지난날에도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나로서는 으레 쓰는 낱말이 좋고, 내 삶에서 누리는 낱말이 좋습니다. 내 생각을 드러내는 낱말이 좋고, 내 생각을 이끌 낱말이 좋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할머니라는 낱말을 더없이 좋아할 수 있고, 이불이라는 낱말을 참으로 좋아할 수 있습니다. 구름이나 섬돌이나 지팡이라는 낱말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먹다·하다·쓰다’ 같은 움직씨를 좋아할 수 있겠지요.


  나로서는 늘 쓰는 낱말이 반갑고, 언제나 입에서 굴리는 낱말이 좋으며, 아이와 부대끼며 떠올리거나 되뇌는 낱말이 고맙습니다. 내 삶과 어깨를 겯는 낱말이 즐겁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낱말이 아름답습니다. 딱히 수수하다거나 투박하다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될 여느 낱말이 아주 살갑고 푸근합니다. (4343.5.8.흙./4345.6.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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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2 10:15   좋아요 0 | URL
몸이 아플 때에도 이렇게 고운 글을 쓰시네요...

(맨윗줄의 '땡깡'이란 말을 쓰셨네요~ 저도 이제 저 말을 써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된장님도 쓰셨으니까~ ^^)

파란놀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아파도 살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나저나 자도 일해도
아프기는 똑같으니
그냥 일이든 뭐든 하며 살기는 하네요......

글샘 2012-06-22 09:40   좋아요 0 | URL
뗑깡 (일본어로...) 간질, 지랄병... 이런 말인데요... ㅠㅜ

hnine 2012-06-22 11:5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웃자고 썼답니다~ ^^

파란놀 2012-06-22 17:0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땡'으로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기에 사투리인가 했는데, 일본말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25) 산자전거, 길자전거

 

그래도 명색이 산자전거(MTB)인 데다 프레임이 워낙 무겁고 둔탁해서 요즘 타는 길자전거(로드바이크)에 비하면 노면에 대한 반응은 둔한 편이라
《윤준호,반이정,지음,차우진,임익종,박지훈,서도은,조약골,김하림-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지성사,2009) 204쪽

 

  보기글은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냥저냥 쓸 수 있으나, 차근차근 가다듬을 수 있어요. ‘산자전거’라 적은 다음 ‘MTB’라고 영어를 붙이는데, 이렇게 안 붙여도 얼마든지 알아들을 만해요. 하나하나 짚어 보면, “그래도 명색(名色)이”는 “그래도”나 “그래도 이름이”나 “그래도 허울이”로 다듬습니다. ‘프레임(frame)’은 ‘뼈대’나 ‘몸통’으로 손보고, ‘둔탁(鈍濁)해서’는 ‘투박해서’로 손보며, ‘-에 비(比)하면’은 ‘-에 견주면’이나 ‘-에 대면’이나 ‘-을 생각하면’으로 손봅니다. “노면(路面)에 대(對)한 반응(反應)은”은 “길을 달리는 느낌은”이나 “길을 달리는 맛은”으로 손질하고, ‘둔(鈍)한’은 ‘무거운’이나 ‘묵직한’이나 ‘무딘’으로 손질해 줍니다.

 

 산자전거 / MTB
 길자전거 / 로드바이크

 

 이 글을 쓰신 분은 낱말이나 말투가 썩 싱그럽지 못합니다. 딱딱하고 메마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낱말, ‘산자전거’와 ‘길자전거’라는 대목에서는 산뜻합니다. 저로서는 새롭다고 느낍니다. 곧, “산을 타는 자전거”가 “산타는자전거”요, 간추려 “산자전거”가 됩니다. “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길달림자전거”요, 간추리니까 “길자전거”가 돼요.


  산을 타는 자전거를 가리켜, 알파벳으로 줄이면 ‘MTB’입니다. 미국사람이 만든 자전거라 미국말로 이름이 붙는데, 우리들은 으레 한글로 ‘엠티비’라고 가리키기도 합니다만, 쓰임새 그대로 ‘산타는자전거’라 할 수 있으며, 단출하게 줄여 ‘산자전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드바이크’라는 말마디를 살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흔히 ‘싸이클’이라고도 하는 자전거가 바로 ‘로드바이크’입니다만, 말 그대로 “길을 달리는(로드) 자전거(바이크)”이기 때문에 ‘길달림자전거’라 할 수 있는 한편, 가볍게 줄여 ‘길자전거’라 할 수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짐자전거’와 ‘꼬마자전거’와 ‘세발자전거’를 생각해 봅니다. 짐을 실어 짐자전거입니다. 아이들이 타는 자그마한 자전거라서 꼬마자전거입니다. 바퀴를 셋 달았기에 세발자전거입니다.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자전거라 한다면 ‘아기자전거’라 해 볼 수 있겠지요? 둘이나 셋이서 짝을 지어 함께 타는 자전거라 한다면 ‘짝자전거’나 ‘짝꿍자전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타는 자전거 뒤에 어린이가 함께 탈 수 있도록 안장과 바퀴 하나 붙이는 자전거라면 ‘새끼자전거’나 ‘딸림자전거’라 할 수 있어요.


  장사하는 분들이 손수레를 앞이나 뒤에 붙여서 자전거를 끈다면, ‘짐수레자전거’ 또는 ‘수레자전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 ‘수레자전거’가 거의 없지만,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웬만한 장사꾼들은 하나같이 ‘수레자전거’에 짐과 사람을 잔뜩 태워서 다닙니다.

 

 산자전거 / 길자전거
 짐자전거 / 수레자전거 / 삶자전거
 꼬마자전거 / 어린이자전거
 아기자전거 / 새끼자전거 / 딸림자전거
 세발자전거 / 네발자전거 / 외발자전거
 큰자전거 / 작은자전거
 누워타는자전거
 …

 

 우리가 처음 만든 물건이 아닌 자전거입니다. 나라밖에서 들여온 자전거입니다. 자전거 부속을 가리키는 이름을 살피면, 한자로 지은 이름이나 영어로 지은 낱말투성이입니다. 그래도 요모조모 몇 가지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내어 쓰며, 우리가 생각을 펼치거나 넓히려 한다면 얼마든지 더 많은 부속을 손쉽고 깨끔하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손잡이, 바퀴살, 안장대(안장기둥), 발판, 딸랑이, 뒷거울, 앞등, 뒷등, 기어줄, 브레이크줄, 조임나사, 잠금나사, ……처럼 쓸 수 있어요.


  따지고 보면 ‘자전거’라는 말마디도 우리 말이 아니라 할 수 있을 텐데, 자전거를 놓고 ‘自轉車’라고 적는 일은 없습니다. 굳이 이렇게 한자를 하나하나 뜯어 보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할 노릇이지만, 우리한테 자전거는 ‘자전거’일 뿐입니다. 그냥 우리 말이에요. 더욱이, 자전거를 서양에서 만들었다 하여 우리가 굳이 ‘cycle’이나 ‘bicycle’이나 ‘bike’라고 말할 까닭은 더욱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그저 ‘자전거’라는 이름 하나면 알맞춤합니다.


  우리 삶에 스며든 이 자전거라는 탈거리를 우리 깜냥에 따라 알맞게 삭이고 다듬으며 추슬러서 즐기면 됩니다. 우리 나름대로 자전거를 신나게 타면서 우리 삶터를 알차게 북돋우면 넉넉합니다. 자동차를 두고 괜히 ‘car’나 ‘카’라고 해야 제대로 자동차를 타거나 즐긴다고 할 수 없듯, 자전거는 자전거요, 자전거를 가리키는 이름은 얼마든지 내 슬기를 빛내면서 일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나 스스로 내 자전거 이름을 빚어낸다면, 또 내 손으로 내 자전거 삶을 가꾸어 본다면, 한결 아름답고 기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342.7.26.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래도 산자전거인 데다 몸통이 워낙 무겁고 투박해서, 요즘 타는 길자전거와 견주면 길을 달리는 맛은 좀 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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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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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133] 호시 요리코,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내 어릴 적, 동네에서는 ‘아기보기’를 해 주는 이웃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은 다른 어느 부업보다 ‘아기보기’ 벌이가 쏠쏠하며 안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가 아프거나 울거나 하면 더없이 고단하다고, 더구나 아기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 아기가 왁왁 울어대면 싫은소리를 듣는다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한 적이 있었다면, 나는 퍽 어린 나날부터 ‘나 또한 어리’지만, ‘나보다 더 어리고 여린’ 목숨을 사랑스레 들여다보면서 아끼려 하는 눈길이나 마음길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이웃집에서 아기보기를 할 때면, 그 집 가시내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니까, 제 동생도 아니면서 가없이 이뻐 하고 돌보아 주니까, 나한테도 우리 집 내 동생이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내 동생이 생기기 힘들다면 우리 어머니가 아기보기 부업을 살짝이라도 하면 어떠할까 싶곤 했어요.


  동생이 있는 동무가 한결 마음이 너그럽거나 넉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어린 동생을 늘 바라보고 따순 사랑을 주고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동무들은 어쩐지 ‘나처럼 동생 없는 아이’보다 마음씀이나 생각밭이나 눈길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대목을 바라보고, 내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곳을 느끼곤 했어요.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동생을 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한 집안에서는 누군가 막내가 될 테니까요.


  내가 잊지 못하는 어릴 적 일 가운데 하나를 되새겨 봅니다. 내가 국민학교 육학년 때였는데, 이제 학교에서 맏언니가 된 몸으로 어느 모로 우쭐거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갓 학교에 든 일학년 동생을 문득 바라보니 키가 참 작고 몸도 참 작으며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릅니다. 한창 개구쟁이 짓으로 학교를 누비던 나는, 일학년 어린 동생 작고 맑은 눈빛과 몸빛을 바라보며 아주 다소곳하게 말을 건넸고, 교실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가 제대로 안 느끼거나 잊을 뿐이라 할 텐데, 내 마음속에도 어리거나 여린 목숨을 아끼는 사랑씨앗은 틀림없이 있어요.

 

 


- “다카시, 취직 결정되었다면서?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할 테니 오늘 밤은 다 같이 축하 파티를…….” “됐어요. 오늘은 서클 녀석들이랑 한잔하러 가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모처럼만인데.” “그리고 호텔 음식은 이제 질렸어요. 네코무라 씨가 만들어 준 게 훨씬 더 맛있거든요. 뭐랄까, 그리운 맛이 난다고나 할까.” (17쪽)
- “정말? 그게 엄마가 만든 거였단 말이에요?” “마, 맞아. 솜씨는 없지만 열심히 만들었지.” “아니에요. 난 그 가방이 맘에 들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썼는데요?” (109쪽)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이웃 아주머니 가운데 파출부 부업을 나가는 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날마다 나가기도 하고, 하루 걸러 하루 나가기도 합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다른 이웃집으로 파출부 일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 열다섯 개 동이 있는 오층짜리 아파트이건만, 열다섯 동 가운데에는 가난한 동이 있고 제법 가면 동이 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나중에 스물 끄트머리쯤 되었을 때 오랜 동무를 만나 얘기를 하다가 ‘어릴 때 같이 살던 그 아파트마을 사이에 가난한 사람과 가면 사람이 따로 나뉘어졌다’는 소리를 비로소 들었습니다. 우리 집은 열석 평이었는데, 어느 집은 아홉 평이요, 또 어느 집은 열여덟 평이라 했고, 또 어느 집은 스물석 평이라 했어요. 어떻게 평수가 이리 다를 수 있을까 그때로서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곰곰이 돌이키니, 동마다 호수가 달랐고 크기도 달랐다고 떠올랐어요.


  파출부 부업 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늘 하는 일’을 똑같이 할 뿐이니까, 안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을 들으며 좀 아리송했어요. 집에서 늘 하는 그 집일이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득한데, 이 일을 다른 집에서 또 한다니, 도무지 일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노릇일까 하고.


  어머니는 날마다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차리는 모습을 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갑니다. 어머니는 밥을 차리는 동안 다리를 쉴 겨를이 없습니다. 살짝이라도 앉아 무릎이나 발목을 쉬지 못합니다. 손도 눈도 머리도 온통 밥하기에 쏠립니다. 밥을 다 차렸어도 어머니가 같이 밥술을 뜨는 일은 드뭅니다. 밥을 차려서 내놓은 다음, 다른 집일을 붙잡습니다. 이를테면 빨래를 한다든지 다 마른 옷을 갠다든지, 집안에 많던 꽃그릇에 물을 준다든지, 바느질을 한다든지,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다리를 쭉 뻗으며 쉬는 겨를이 없어요.

 

 


- “네!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전해질 거라고 믿으세요!” (25쪽)
-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소중한 사람이 슬퍼하면 위로해 주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솔직하게 사과하고 화해하면 속도 훨씬 시원해질 텐데.’ (76쪽)
- “어머, 어차피 눈물은 양파를 썰어도 나오는데요 뭐. 비록 거짓말이라 해도 가슴이 찡해지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니 어쩔 수 없잖아요.” (167쪽)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앞으로 가정부나 파출부 부업이나 일자리를 얻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남자 가정부’는 아마 아무도 안 쓰리라 느꼈지만, 남자라고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못 할 까닭은 없다고 여겼습니다. 외려 몸피 더 크고 힘살 더 단단한 사내들이 가정부나 파출부 노릇을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연 터전을 가장 사랑스레 돌보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삶결을 돌보는 일이라면, 가정부나 파출부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내 집은 나 스스로 예쁘게 건사하고, 다른 집은 다른 집대로 예쁘게 건사한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 “이 집은 엄마보다도 가정부가 자식들 일을 더 잘 알고 있구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부인보다도 애인을 더 챙기잖아요!” … “그야 내가 예뻐지면 당신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평범한 아내예요. 평범한 아내일 뿐, 당신의 연구 재료가 아니라고요.” (47∼49쪽)
- “사모님과 어르신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인걸요. 분명 두 분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셨을 텐데.” “서로 사랑해서 낳은 아이? 네코무라 씨.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에요. 다만 하나가 된 이후에도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어려운 거죠.” (80∼81쪽)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 내 집살림을 돌아봅니다. 치운다고 치우고, 쓴다고 쓸고, 닦는다고 닦는다지만, 집안은 참 어지럽습니다. 먼지가 많습니다. 살림살이는 여기저기 잔뜩 쌓이거나 흩어져, 무엇 하나 찾자면 꽤 애먹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한 해에 한 차례씩 살림집을 옮기다 보니, 무엇 하나 느긋하게 돌보면서 자리잡도록 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우리 살림살이에서 책이 무척 많다 보니, 책에 치여 다른 살림이 이래저래 눌리기도 합니다.


  이런 매무새로 무슨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한다고 꿈을 꾸었느냐 싶은데, 어린 나날 내가 꿈꾸던 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오늘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아이들과 살아가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곧, 나는 집일을 도맡을 때에 내가 사랑할 자연 터전을 생각하고, 살붙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질 손길을 생각하며,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할 결을 생각할 노릇이로구나 싶어요.


  힘들다면 틀림없이 힘들 테지요. 고단하다면 어김없이 고단할 테지요. 그리고, 사랑스럽다면 참말 사랑스러워요. 아름답다면 참으로 아름답고요.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생각을 다스리는 무늬와 결과 흐름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추슬러 빛내느냐에 따라 새롭게 거듭납니다.

 


- “한창 성장기인 여러분들은 지금쯤이면 벌써 저녁밥 먹고 가족과 함께 TV를 볼 시간 아닌가요?” “그건 너네 집 사정이고!” (123쪽)
- “부모든 자식이든 각자 사정은 있겠지만 부모가 없다는 것만으로 모든 걸 변명할 순 없어. 자네 역시 새끼고양이였을 때 부모도 없이 고생했지만 지금은 훌륭히 일하고 있잖아.” (133쪽)


  호시 요리코 님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셋째 권을 읽습니다. 가정부 일을 하는 고양이 네코무라 씨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고양이 네코무라 씨는 언제나 노래하면서 집일을 합니다. 늘 즐겁게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합니다. 스스로 먹을 밥이든 스스로 입을 옷이든, 남이 먹을 밥이든 남이 입을 옷이든, 딱히 금을 긋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며 밥을 차리기에, 고양이 네코무라 씨가 차리는 밥을 먹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즐거운 노래를 함께 먹습니다. 좋은 사랑을 담아 짓는 밥이니, 누구라도 좋은 사랑을 나누어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옆지기와 두 아이가 ‘굶어죽지 않게’끔 밥을 차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살붙이 모두(나까지) 즐겁게 밥을 먹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기를 꿈꾸며 밥을 차리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고, 사랑을 담아 빨래를 합니다. 밥을 차리는 고마운 손길을 나 스스로 누리면서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 밥을 먹는 살붙이들이 고마우며, 나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아가는 모두 고맙구나 하고 느낄 이야기꽃입니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나한테 차려 주던 고마운 밥을 생각하며 우리 살붙이들 먹을 밥을 차립니다. 나는 내 어머니 몸짓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집일을 하고 빨래를 합니다. 내 어머니 삶자락에 깃든 사랑을 하나하나 아로새기면서 나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빛내고 싶습니다. 멀지 않아, 우리 첫째 아이가 제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우리 두 어버이한테 내밀 테지요. 내가 꽤나 어렸을 적 내 앙증맞은 손으로 밥을 차려 내 어머니한테 내밀었듯,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넋으로 아리땁게 자랄 수 있을 테지요. (4345.6.21.나무.ㅎㄲㅅㄱ)

 


― 오늘의 네코무라 씨 (셋) (호시 요리코 글·그림,박보영 옮김,조은세상 펴냄,2009.12.24./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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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6-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을 차려 주는 고마운 사람,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부추전과 김치전과 수박을 내와서 아버지와 셋이 모여
먹으면서, 참 행복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가족이 모여 있다는 것, 그 안에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어요. 그 감사를 평상시엔 잊고 살 때가 많지만요...ㅋ

파란놀 2012-06-22 17:08   좋아요 0 | URL
함께 모여 먹는 즐거움을... 저도 늘 누리고 싶어요...
 


 아이 어버이가 아플 때

 


  둘째가 몸앓이를 하던 날부터 아이 아버지 몸이 차츰 안 좋아지더니, 어제와 오늘 아이 아버지는 어떻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이제 깊은 밤이 되어 아이들 모두 새근새근 잔다. 아이들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나서 겨우 몸을 일으켜 쉬를 누고 코를 푼다. 몸이 후끈 달지는 않으나 언제 다시 후끈 달는지 모를 노릇이다. 오늘 아침에는 퍽 늦게까지 자고 나서 일어나니 몸이 나아지는가 싶었으나, 이른아침부터 온 집안을 쓸고 닦은 다음, 아이들 씻기고 빨래하며 밥을 차리느라 여러모로 움직이고 보니 도로 몸이 달면서 기운이 쪽 빠진다. 이제 나는 어찌할 수 없다며 자리에 드러누워 한 시간 반쯤 허리를 펴려 하지만 기운이 도로 살아나지는 않는다. 아이들 부산한 소리가 귀에 쟁쟁거려 그만 벌떡 일어난다. 어지러운 몸으로 집일을 건사한다. 눈알이 핑 돌고 골이 쑤시니 스스로 생각을 빚지 못한다. 그래도 생각을 잊고 싶지 않아 자꾸자꾸 생각한다. 나 스스로 내 몸이 아프다고 여기니 자꾸 아픈지, 나 스스로 내 몸이 아플 까닭 없다고 생각하며 내 몸을 낫게 돌릴 수 있는지, 끝없이 생각한다. 식구들 굶길 수 없기에 밥은 차리지만, 밥술을 들기란 참 벅차다. 저녁 밥상은 도무지 차릴 기운이 없으나, 어찌저찌 감자 두 알 썰어 감자국을 끓여 아이 앞에 내놓는다. 첫째 아이가 밥을 제대로 뜨는지 마는지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며 그냥 뻗는다. 둘째 아이는 오늘 네 차례 똥을 누면서 몸속 나쁜 기운을 이럭저럭 빼낸 듯하다. 그래도 저녁에 가슴에 누여 재우며 보니, 몸이 아직 뜨겁고 눈곱과 콧물은 자꾸 나온다. 이 아이들이 하루 더 달게 자고 나서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빈다. 나 또한 신나게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빈다.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갑다. 안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내가 내 몸 구석구석 아프기를 바라기에 이토록 괴로울 만큼 아픈지, 참말 내가 스스로 맡는 일이 너무 무거워 아플밖에 없는지, 차근차근 생각한다. 몸이 무겁거나 아프기 때문에 입에서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오는지, 스스로 더 슬기로우며 착하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못하니까 스스로 망가지고 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온몸이 찌뿌둥한 나머지, 낮과 밤과 아침과 새벽을 보듬는 아름다운 소리를 한 가지도 듣지 못한다. 햇살도 바람도 물도 흙도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무엇을 남겼을까. 나는 우리 아이와 옆지기한테 무엇을 남기는가. 밖에서 보기에는 고단하다지만, 안에서 누리기에는 즐거운 삶이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멀쩡하다지만, 안에서 느끼기에는 고단한 삶이 있다. 우리 아이들과 옆지기와 내가 모두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나날을 누리면서 마음 가득 흐뭇한 물결이 넘실거릴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본다. 좋은 생각을 품으면서 흐트러진 몸을 다스리고 싶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고단한 몸으로 밥을 차리든 개운한 몸으로 밥을 차리든 맛나게 숟가락 들지 않는가. (4345.6.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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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6-22 05:43   좋아요 0 | URL
몸이 아플땐 몸이 내게 할말이 있는거라 생각해요.
그럴땐 무리하지 마시고 좀 쉬세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 무책임한 말을 쉽게 하고 있네요.
산들보라가 좀 나은 것 같다니 다행인데, 사름벼리랑 된장님이 어서 나으셔야할텐데요.

파란놀 2012-06-22 07:17   좋아요 0 | URL
제가 쉬면 집에서 일할 사람이 없거든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몸에서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기를 빌고 또 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