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신문과 프랑스 사진책 《뒷모습》 (도서관일기 2012.6.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아침에 두 아이를 데리고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이제 책갈무리는 다 마쳤다 할 만하기에 자질구레한 짐을 치운다. 어쩌면 자질구레한 짐을 치우는 품이 더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쪽에 가지런히 쌓든, 상자에 얌전히 넣든, 이들 짐을 잘 갈무리해야 비로소 서재도서관 꼴이 잘 살아날 테고, 바닥 청소도 하기 수월하겠지.


  오래 묵은 짐 담은 상자를 끌르다가 1994년이 〈인천 시민신문〉과 〈황해시대〉라는 묵은 신문을 본다. 지역에서 아주 작게 나오던 신문들인데, 이 신문들은 몇 호까지 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스무 해쯤 지난 오늘날 이 신문들을 떠올리거나 되새길 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하다. 1994년치 〈인천 시민신문〉에는 ‘인천 현안’이라면서 “방송국, 인천엔 왜 없나” 하는 머릿글이 실린다. 참말 인천은 ‘직할시’와 ‘광역시’를 거치면서도 딱히 방송국이 없었다. 전파 수신기지만 있었다.


  인천 바로 곁에는 서울이 있고, 서울에서는 중앙일간지가 나온다. 어쩌면 마땅하나 하나도 안 마땅하다 여길 수 있는데, 중앙일간지를 내는 ‘서울 신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 내는 중앙일간지는 으레 ‘서울 이야기’만 다루지, 온 나라 이야기를 두루 다루지 않는다. 어느 신문이든 어느 방송이든 이와 같다. 이런 모습이라면 중앙일간지라 하지 말고 ‘서울’일간지라 해야 올바를 텐데, 스스로 ‘서울’일간지라고 밝히는 신문은 없다.


  프랑스 사진책 《VUES DE DOS》을 찾아본다. 엊그제 읽은 어느 책에서 새삼스레 이 사진책 이야기를 다시금 ‘잘못’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왜 책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서 책을 말하려 할까. 책을 다루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왜 책을 찬찬히 헤아리지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글을 쓰려 할까.


  프랑스에서 나온 사진책 《VUES DE DOS》은 발레하는 가시내 모습이 겉에 나온다. 한국에서 옮겨진 《뒷모습》은 웃통 벗어 젖꼭지 보이는 가시내 모습이 겉에 나온다. 프랑스 사진책 《VUES DE DOS》를 죽 살피면, 한국판 겉모습 사진은 아주 뒤쪽에 나온다. 사진책 《뒷모습》은 ‘벗은 몸을 슬그머니 보여주려는 훔쳐보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참말, 뒤에서 바라보는 삶자락을 이야기하는 사진책이다.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옮겨진 《뒷모습》을 손에 쥐면서 느낌부터 아예 달라지고 만다. 벗은 웃통에 젖꼭지 드러나는 가시내 사진이 꼭 이 한 장뿐이라 하지만, 책겉에 이 사진이 드러날 때와 책 끄트머리에 살짝 스치듯 나오는 사진으로 마주할 때에는 느낌이 다르다. 한국땅에서는 사진을 사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까. 한국땅에서는 사진도 책도 삶도 이야기도 신문도 모두 꾸밈없이 수수하게 살피며 어깨동무할 수 없을까.

 

 

 

 

 

 

 

 

 

 

 

.... 왜 한국판은

이런 겉모습으로

사진책이 나와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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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쓰기’와 ‘국어순화’
[말사랑·글꽃·삶빛 18] 삶과 말을 살리는 길

 


  한국사람한테는 ‘한국말’이 있고, ‘한국글’이 있습니다. 지구별에서 제 나라만 남달리 쓰는 말과 글이 따로따로 있는 나라는 퍽 드문데, 한국사람은 ‘나라말’과 ‘나라글’이 남달리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지구별에서 그리 안 많다 할 만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군대힘이나 경제힘이나 문화힘 또한 작다 할 만합니다. 한국말이나 한국글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는 나라는 매우 드뭅니다. 지구별 숱한 나라들 가운데 ‘두 번째 외국말’로 한국말을 가르치려 하는 나라는 딱히 없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한국말이 따로 있을 뿐 아니라, 한국글까지 따로 있는 줄 모르는 지구별 사람 또한 무척 많다 할 만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구별에서 차지하는 땅뙈기 넓이나 사람 숫자가 참 작지만, 스스로 남달리 살림을 꾸리고 삶터를 가꿉니다. 한국땅 사람들은 스스로 문화를 빚고 사회를 이룹니다.


  한국과 이웃한 여러 나라에서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 했습니다. 한국을 다스렸다 하던 임금님이나 나라님은 이웃나라 군대힘과 무역힘에 주눅이 들어 이웃나라 말글을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임금님이나 나라님, 또 임금님이나 나라님을 모시는 심부름꾼은 으레 이웃나라 말글로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무역을 펼쳤습니다. 더구나, 한국땅에서 지식인이라 할 사람들마저 한국땅에서 여느 한국사람이 주고받는 말글이 아니라 ‘한국과 이웃한 힘이 세고 커다란 나라’에서 쓰는 말글을 썼어요.


  재미있다고 해야 할는지 슬프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이 이웃 커다란 나라 군대에 짓밟히면서 임금님이 머리를 숙이고 나라님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래서 한국말을 잃고 일본말을 써야 하던 때가 서른여섯 해라고 하지만, 정치권력하고 동떨어진 한국땅 여느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쓰던 ‘여느 한국말’을 그대로 썼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을 즐겁게 썼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한국말을 합니다. 학교에서 일본말을 가르쳐도 집에서 한국말을 씁니다. 임금님이나 권력 언저리 사람들이나 지식인들 모두 중국말과 일본말과 미국말(또는 영국말)을 쓰더라도, 땅을 일구던 여느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고이 흐르던 한국말을 알뜰살뜰 살찌우고 꽃피웠어요. 조선 오백 해와 일제강점기 서른여섯 해가 있었어도 한국말이 살아남을 수 있던 까닭은 바로,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고기를 낚고 나물을 캐던 여느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이녁 삶말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기 때문이에요.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짓밟던 무렵, 뜻있고 생각있는 지식인이 밤배움터를 열어 ‘한글 가르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인은 ‘한글 가르치기’는 할 수 있었는지 모르나 ‘(한국)말 가르치기’는 하지 못합니다. 외려, 지식인들은 당신이 글을 가르치던 여느 흙일꾼한테서 ‘말을 배우’곤 합니다. 흙을 일구면서 쓰는 말, 일을 하면서 쓰는 말, 베틀을 밟고 실을 자으면서 쓰는 말, 고기를 낚고 그물을 손질하며 쓰는 말, 나무를 베고, 들풀과 멧나물을 뜯거나 꺾거나 캐거나 따면서 쓰는 말,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쓰는 말, …… 이 땅 여느 사람들이 ‘몸으로 살아내며 오래오래 사랑스레 쓰던 말’은 어느 누구도, 곧 어떠한 지식인도 가르치지 못했어요. 이러한 말, 이를테면 ‘삶말’은 ‘글을 모르던 흙일꾼(여느 사람)’이 ‘글을 아는 지식인’한테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얼거리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말, 시골 흙일꾼은 글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요즈막에도 공장 노동자 가운데 글을 잘 모르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말을 합니다. 누구라도 ‘한국말’을 합니다.


  글이란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말이 없을 때에는 글이 없습니다. 말이 있기에 글이 있습니다. 지난날 조선 때, 여러 지식인이 ‘언문일치’라 하는 이야기를 읊곤 했습니다. 다만, 조선 때 지식인이라 해 보았자 ‘한국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라 ‘중국글’을 쓰던 사람인 탓에 ‘말글 하나되기’ 또는 ‘말글하나’처럼 이야기를 읊지 못했어요. 한자로 ‘言文一致’라 적었고, 이제 이 한자를 소리만 따서 ‘언문일치’라 이야기할 뿐입니다. 돌이키면, 지난날 지식인이나 권력자 또한 중국글을 쓰면서도 ‘중국사람 여느 말’하고 하나가 되지 못했다든지, ‘중국 옛 문학쟁이 아무개나 철학쟁이 아무개 말’하고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셈이에요. 중국글을 쓰고 중국말을 하던 지식인과 권력자 모두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게 글을 쓰지 못하던 나날’이었다는 뜻입니다.


  뜻은 같다 하더라도 말을 어렵게 하거나 글을 어렵게 쓰면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뜻은 어렴풋이 짚을 수 있다지만 환하게 헤아리기 어렵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듣거나 읽는 사람은 고달픕니다. 때로는 잘못 알아듣거나 아예 못 알아듣곤 합니다. 이리하여, 말과 글이 하나가 되게끔 힘을 쓰고,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좋거나 아름답거나 알맞다고 이야기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굳이 어려운 말이나 까다로운 글로 밝혀야 하지 않아요.


  어린이 앞에서 어려운 말로 겉멋 잡을 까닭이 없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글 자랑’을 하거나 동무 앞에서 잘난 척할 까닭이 없어요. 학문을 하거나 철학을 하거나 경제를 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늘 같아요. 우리는 누구한테나 가장 쉽고 빠르며 알맞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한 말이랑 글을 찾아야 즐겁습니다.


  ‘바로쓰기’란, 틀리게 쓴 말을 바로잡는 일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서로서로 가장 쉽고 빠르며 알맞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일입니다. 이러면서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누구하고나 허물없이 사랑을 담아 말과 글로 이야기꽃 피우자는 일입니다. 한자로 적으면 ‘國語醇化’가 되고, 소리를 적으면 ‘국어순화’인데, 이 같은 이름은 그리 걸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국어’라는 낱말부터, 지난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자가 ‘일본말’을 ‘국어’라고 해서 억지로 가르칠 때에 붙인 이름이에요. 예부터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말이나 글을 ‘국어’라 가리키지 않았어요. ‘언문(諺文)’이라고도 했다지만, 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도 있었다지만, 이 땅 사람들 모두 즐거우며 사랑스럽게 나눌 만한 이름은 따로 없었어요. 아니, 이 땅 여느 사람들은 그저 ‘말’이라고만 했겠지요. 권력이나 지식을 쥔 이들이 쓰는 글은 그저 ‘글’이라고만 했을 테고요. 나중에 주시경이라는 분이 생각을 열어 ‘한글’이라는 이름을 비로소 빚었어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더욱 사랑하고 아끼면서 빛내기를 바라면서, ‘말’을 ‘글’로 담을 때에 ‘한글’에 담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글은 ‘한글’이라면 말은 ‘한말’이에요. 이와 같은 흐름이기에, 겨레는 ‘한겨레’이고, 나라는 ‘한나라’입니다. ‘한’은 바로 이 땅에서 살아온 겨레나 나라를 일컫는 이름이에요. 한자로 적는 ‘韓’은 소리만 같을 뿐, 한글이나 한겨레에서 가리키는 ‘한’을 뜻하지 못해요. 오직 한글로만 적는 ‘한’은 “하늘, 하나, 크다, 넓다, 어깨동무, 함께” 들을 뜻해요. ‘한’은 ‘하느님’으로도 이어져요. 먼먼 옛조선 때에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 했다는데, 이 이름은 뒷날 지식인이 한자로 옮겨적은 이름일 뿐, 깊은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겨레’는 스스로 ‘한사람’이었어요. “하늘사람”이기에 ‘한사람’이고, “큰사람”이기에 ‘한사람’이며, “서로 함께 아끼며 어깨동무하는 사람”이기에 ‘한사람’입니다.


  ‘한겨레’나 ‘한나라’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일컫는 이름이나, 이 이름은 어떤 좁은 울타리를 쌓는 ‘민족주의’하고 동떨어집니다. 필리핀에서 왔든 연길에서 왔든 베트남에서 왔든, 이 땅에서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며 뿌리를 내리면 모두 ‘한겨레’이고 ‘한나라’이며 ‘한사람’이에요. 아주 스스럼없이 ‘한글’로 글을 쓰고 ‘한말’로 말을 합니다.


  곧, 우리들이 늘 쓰는 말과 글을 ‘바로쓰기’ 한다 할 때에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올바로 맞춘다는 좁은 뜻이 아닙니다. 애먼 중국 한자말이나 덧없는 일본 한자말이나 자랑질 같은 영어를 털면서 ‘더 깨끗한 토박이말’을 쓰자는 좁은 뜻 또한 아니에요. 스스로 내 삶을 밝히면서 아낄 말을 찾아서 ‘삶을 바르게 일군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내 넋을 북돋우면서 일으킬 글을 헤아리면서 ‘넋을 바르게 가꾼다’는 뜻입니다.


  한자로 적는 ‘국어순화’는 한국말로 옮기면 ‘글다듬기’입니다. 글을 다듬는 일이란, 누구나 읽기 어렵게 썼거나 어딘가 글흐름이 알맞지 않거나 조금 더 생각을 기울여 쓰지 못한 글이기에 ‘다듬는’ 일이에요. ‘부드럽게 다듬는다’기에 국어순화예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 ‘국어’는 한국말 아닌 일본말을 가리켜요. 우리 스스로 한국말을 알맞게 다듬으려 하는 자리라 한다면 ‘국어순화’라는 말마디부터 씻거나 털어야 올발라요. 한국말을 알맞게 다듬으려 할 때에는 ‘글다듬기’를 할 노릇이요, 내 넋을 스스로 사랑하며 북돋우려 할 때에는 ‘바로쓰기’를 할 노릇입니다. (4345.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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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1] 풀개구리

 

  마을 곳곳에 널따랗게 펼쳐진 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올챙이 뽀르르 헤엄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곁에 선 아이는 좀처럼 올챙이 헤엄짓을 찾아내지 못하지만, 헤엄을 치다 살짝 멈춘 올챙이가 보일 적에 손가락으로 논물을 살짝 튕기면 올챙이는 화들짝 놀라 다시 헤엄을 칩니다. 이때에는 아이도, 아 저기 있다, 하고 알아봅니다. 논물에서 태어나 자라는 올챙이는 논개구리가 됩니다. 때로는 멧개구리도 되고, 때로는 풀개구리도 됩니다. 때로는 도룡뇽이 돼요. 모두들 논 한쪽에 알을 낳아 저희 새끼를 낳습니다. 300평 500평 1000평 3000평 논은 그리 안 크다 여길 수 있지만, 올챙이한테는 드넓은 바다와 같아, 올챙이로 살아가는 동안 논배미 구석구석 못 다닐 수 있어요. 논 한쪽에는 논거미가 거미줄을 칩니다. 소금쟁이가 함께 살고 물벼룩이 있으며 미꾸라지도 논흙 사이에서 살아가겠지요. 모두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면서 저마다 빛나는 한삶입니다. 문득문득 조그마한 풀개구리 한 마리 우리 집으로 폴짝폴짝 뛰어오곤 합니다. 대문을 열면 바로 논이거든요. 풀개구리는 대문을 열 줄 모르나, 대문 밑으로 난 틈은 풀개구리한테 퍽 널따랗습니다. 요기로 볼볼 기어 들어온 뒤 풀개구리한테 드넓다 싶은 마당에서 다시금 폴짝폴짝 뛰며 놉니다. 어른 손톱만 하다 싶도록 작은 개구리는 온통 풀빛입니다. 나는 이 작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너는 어쩜 이리 싱그러운 풀빛일 수 있니?” 하고 외칩니다. 새로 돋은 풀빛입니다. 여름비로 몸을 씻은 맑은 풀빛입니다. 여름햇살 듬뿍 누리는 싱싱한 풀빛입니다. 나와 아이는 풀개구리하고 동무하며 지냅니다.
 4345.6.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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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사계 - 흙빛에 담은 한국의 봄여름 가을 겨울 그 길을 따라
이대일 글.사진 / 정신세계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03] 이대일, 《춤추는 四界》(정신세계사,2005)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살아가지 않는 곳에서는 사진을 못 찍고, 누구라도 스스로 좋아하며 살아갈 만한 곳이 아니라면 즐겁게 사진을 못 찍습니다.


  고향이 서울이기에 꼭 서울에서 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스스로 마음으로 바라는 삶터가 있을 때에는, 서울에서는 사진을 안 찍으나 마음으로 바라는 어느 삶터로 나들이나 마실을 할 때에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진을 바라보는 아무개는 ‘여행사진’이라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막상 이러한 사진을 찍은 누군가한테는 ‘여행사진’이 아니에요. ‘그냥 사진’이요, ‘그저 스스로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며 저절로 찍은 사진’입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스스로 사진기를 손에 들 만한 곳이야말로 스스로 마음을 활짝 열며 살아가고 싶은 곳이요, 스스로 사진기를 손에 들 만하지 못한 곳이야말로 스스로 마음이 닫히면서 고단한 곳이에요.

 

 


  한국땅 적잖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고 자란 동네’에서 사진을 못 찍거나 안 찍는 까닭을 찾자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스스로 나고 자란 동네’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거든요. 둘레가 아름다운 숲과 바다라 하더라도, 숲과 바다를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숲과 바다를 뒤로 하고서 사진 찍는 일도 없어요. 둘레가 높직높직한 빌딩뿐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빌딩들을 뒤로 하고서 사진을 찍어요.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일본 도쿄에서든 프랑스 파리에서든, 스스로 마음에 드는 데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으레 ‘아이 얼굴’만 담고, ‘아이가 지내는 집안 살림살이’가 드러나도록 사진을 담지 못할 적을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인데, 내 보금자리를 나 스스로 좋아할 적에는 아주 스스럼없이 ‘아이 얼굴’뿐 아니라 ‘아이 온몸’이랑 ‘아이가 지내는 집안 곳곳’이 잘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기 마련입니다. 아이하고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요. 아이하고 마당에서 사진을 찍어요. 집을 좀 멀리서 바라보는 들판에서 사진을 찍어요.


  사진이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습을 찍으며 이루어집니다. 글이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삶을 연필로 적바림하며 태어납니다. 그림이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붓으로 놀리며 빛납니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좋아하고, 스스로 좋아하면서 시나브로 살아내기에, 바야흐로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대일 님 사진책 《춤추는 四界》(정신세계사,2005)를 읽습니다. 이대일 님은 한국땅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춤추는 네 철”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보여주려 합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여린 싹들의 노래와 춤 앞에서 나는 조금 전 나비의 춤을 떠올렸다(26쪽).” 하고 읊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눈이 알록달록해지는 듯한 단풍잎들은 하오의 햇살 아래 물비늘처럼 반짝였다(92쪽).” 하고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대문을 나서니 곧바로 아스팔트에다가 양식 이층집들이 사방에서 어수선했다. 어리벙벙해졌다. 시간이 잠시 역류를 했음이 분명했다(124쪽).” 하고 외치며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 가며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저 가벼운 구름은 무슨 의미일까(166쪽)?” 하고 꿈꾸며 사진기를 어깨에 겁니다.


  어쩌면 너무 마땅한 셈인지 모르나, 이대일 님은 ‘아스팔트와 서양식 빌라’로 이루어진 당신 살림집 둘레에서는 사진을 안 찍습니다. 이대일 님이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붙이들과 뒤섞이는 보금자리에서는 사진을 안 찍습니다. 아니, 사진을 더러 찍을는지 모르나 바깥으로는 안 보여줄는지 모릅니다. 이대일 님 삶터에서는 으레 ‘어리벙벙해졌다’ 하고 느끼니,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사진기를 쥔 손이 흔들릴 테고, 사진기에 박은 눈이 빙글빙글 도는데,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대일 님만 이와 같지 않아요. 한국에서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와 내와 메’를 사진으로 담는 분들 거의 모두 이와 같아요. 막상 사진쟁이 스스로 도시 한복판에서 아스팔트와 자동차와 아파트와 빌딩 사이에 갇히듯 살아가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도시 한복판에서 멀리멀리 벗어납니다. 먼먼 그림자로도 도시 끄트머리조차 안 보일 만한 데에서 사진을 찍으려 해요. 사진책 《춤추는 四界》를 살피면 어느 사진 귀퉁이에도 ‘도시 자취’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온통 시골 삶자락입니다. 온통 시골 숲이요 시골 들판입니다.

 

 


  춤추는 봄이요 여름이며 가을이고 겨울이에요. 시골에서는 언제나 봄부터 겨울까지 춤추는 나날이에요. 시골에서 조그맣게 보금자리 이루어 살아가면, 애써 멀리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날마다 새롭고 새삼스러우며 싱그럽다 싶은 모습을 신나게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빚을 수 있어요. 날마다 같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사진으로 찍어도 날마다 다른 이야기를 얻을 수 있어요.


  꼭 지리산이어야 하지 않아요. 반드시 백두산이어야 하지 않아요. 으레 울릉섬이나 제주섬까지 가야 하지 않아요. 구례가 더 좋거나 경주가 더 좋거나 영월이 더 좋거나 보령이 더 좋거나 하지 않아요. 어느 시골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에서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살림을 일구면 돼요. 사진은 스스로 살아가는 결에 따라 찍기 마련이니,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진기 단추에 손가락 살포시 얹으면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을 일구어요.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진기 단추에 손가락 살짝 얹으면서 스스로 사랑스럽네 하고 느낄 사진을 낳아요.


  이리하여 사진책 《춤추는 四界》는 이대일 님이 꿈꾸는 시골 이야기가 담깁니다. 스스로 살아내지 않거나 살아내지 못하면서 그예 꿈꾸듯 마음속에 담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숲, 멀찍이 떨어진 채 지켜보는 냇물, 멀디먼 데에서 스쳐 지나가며 들여다본 들판 이야기를 《춤추는 四界》로 갈무리합니다. (4345.6.27.물.ㅎㄲㅅㄱ)

 


― 춤추는 四界 (이대일 글·사진,정신세계사 펴냄,2005.12.1./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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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알 깨지다

 


  이른아침에 아이 오줌그릇을 비우려 하다가, 자그마한 새알 하나 오줌그릇에 떨어져 깨진 모습을 본다. 메추리알보다 훨씬 작은 새알은 노른자가 동그랗다. 낳은 지 아직 얼마 안 된 알이로구나 싶다. 제비집을 올려다본다. 왜 이 알 하나 떨어졌을까. 틀림없이 제비알일 텐데, 설마 뻐꾸기라도 여기에 들어와서 제비알을 밀어냈을까. 어미 제비가 똥을 누다가 그만 알을 낳는 바람에 이렇게 떨어뜨려 깨지고 말았을까.


  깨진 알을 꽃밭으로 옮긴다. 흙에 닿은 노른자는 차츰 허물어진다. 노른자가 천천히 허물어지는 동안 어느새 개미가 달라붙는다. 제비알은 새끼 제비로 자라나지 못하면서 이렇게 개미한테 밥이 되는구나.


  아침에 잠을 깬 식구들을 불러 제비알을 함께 바라본다. 옆지기와 아이가 손을 뻗어 제비알 크기를 헤아린다. 빈 껍데기만 아이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모든 제비들은 이렇게 조그마한 알에서 태어났겠지. 알도 작고 제비도 작다. 알도 가볍고 제비도 가볍다. (4345.6.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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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7 07:55   좋아요 0 | URL
어머나 어쩌다 너무 안타깝네요

파란놀 2012-06-28 06:53   좋아요 0 | URL
그래도 다시 새 목숨이 태어날 테지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목숨도 있고
자연에서 새로 태어나는 목숨도 있어요..

BRINY 2012-06-27 13: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요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제비.

파란놀 2012-06-28 06:52   좋아요 0 | URL
도시사람들이
제비 볼 수 있는 곳으로
보금자리 옮기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