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매실 책읽기

 


  매화열매는 노랗다. 뒷밭에 매화나무 한 그루 있기 때문에, 이른봄에는 꽃을 보았고, 늦봄에는 푸르게 익은 열매를 보았으며, 이른여름을 지나 무르익는 여름이 된 요즈음 노랗게 익는 열매를 본다. 사람들은 으레 덜 익은 매화열매(매실)를 따서 효소를 담근다고 한다. 푸른매실을 약으로 써야 좋다고 말한다. 노란매실이 되면 약으로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퍽 옛날부터 이처럼 담가서 마셨을 테니까 그러리라 느낀다. 다만,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다시 매화나무로 자라자면 열매가 다 익고 나서 흙땅에 떨어져야 한다. 잘 익은 열매가 품은 씨앗이 흙으로 녹아들 때에 비로소 싹이 트면서 어린나무가 자랄 테니까.


  어디에서나 푸른매실만 먹거나 마신다 하기 때문에 매화열매가 어떻게 익는지 바라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살았다. 이웃집 매화나무 열매는 덜 익은 푸른빛이었을 때 몽땅 땄으리라 느낀다. 어쩌면 우리 집만 노랗게 익도록 그대로 두었지 싶은데, 노랗게 익은 매화열매를 바라보니 마치 살구열매 같구나 싶기도 하다. 우리 집이랑 맞붙은 밭뙈기에 나들이한 어느 이웃 젊은 아이가 우리 집 뒷밭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저 노란 열매 살구예요?” 하고 이녁 아버지한테 여쭈니, 이녁 아버지는 “아냐, 매실이야. 노란매실이야. 매실이 익으면 노랗게 되지.” 하고 가르쳐 준다. 나도 올해에 노란매실 달린 매화나무를 처음 보았지만, 여느 사람들도 거의 본 적이 없으리라 느낀다. 그렇지만, 살구랑 노란매실 빛깔은 많이 다르다. 모양새도 다르다. 나는 살구를 좋아하고 살구열매를 늘 먹으니까 눈으로 보면 금세 알아채지만, 그렇다고 살구열매랑 매화열매랑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느낌으로만 안다.


  옆지기는 노란매실을 먹으며 오얏 맛이 난다고 말한다. 나는? 음, 아직 잘 모르겠다. 오얏하고 살짝 비슷하달 수 있지만 오얏이랑 또 다른 대목이 있고, 살구하고는 맛이나 냄새가 확 다르고. 다섯 살 아이는 노란매실을 보며 “노란 자두네.”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노란매실은 ‘매실맛’이 날 뿐이다.


  가만히 생각한다. 먼먼 옛날 사람들은 노란매실 맛이 그리 좋지 않다고 여겼을까. 봄에 비와 바람이 잦아 푸른매실 잔뜩 떨어진 어느 날, 바닥에 떨어져 깨진 푸른매실을 손에 쥐고는 아깝구나 하고 여기다가 문득 ‘덜 익은 매실에서 흐르는 진물이랑 이 진물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꽤 좋네’ 하고 느껴, 잔뜩 떨어진 푸른매실을 한번 효소로 담가 마시고, 나중에는 처음부터 푸른매실일 적에 따서 효소로 담갔을까. 푸른매실에서 얻은 물이 몸에 한결 좋거나 맛나다고 시나브로 여기는 바람에 노란매실을 열매로 먹기보다는 푸른매실로 먹고, 노란 열매는 살구 하나로 넉넉하리라 여겼을까. 매화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노란매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날마다 싱그럽고 소담스레 잘 익어 주렴.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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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박 열매 국물 책읽기

 


  마당가 후박나무 열매가 알차게 맺혔다. 온 마을 멧새와 들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후박 열매 따먹으러 나들이한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밥잔치를 베푼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논다. 첫째 아이가 후박나무 열매를 주워서 세발자전거 바구니에 담는다. 떨어진 후박잎도 담는다. 작은 바가지로 물을 붓는다. 그러고는 “자, 국이야.” 하면서 동생이랑 먹는 시늉을 한다.


  세발자전거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후박나무 열매는 알맹이 없이 빨간 ‘알맹이 받침’만 있다. 멧새와 들새가 열매를 따먹으며 받침만 밑으로 떨구었구나 싶다. 후박나무는 겨우내 푸른 잎사귀로 푸른 봄을 기다리는 노래를 불러 주었고, 봄에는 환한 꽃망울로 예쁜 나날을 들려주었으며, 이제 여름에는 아이들 노리개를 선물해 준다. 풀잎과 풀꽃과 나뭇잎과 나무열매는 모두 아이들한테 좋은 놀잇감이 된다. 아이들은 손으로 풀과 나무를 만지고, 눈으로 풀과 나무를 바라보며, 몸으로 풀이랑 나무랑 동무가 된다.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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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노래 3
후지모토 유우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웃는 얼굴
 [만화책 즐겨읽기 161] 후지모토 유키, 《다녀왔어 노래 (3)》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습니다. 숨이 턱에 닿지만 고르게 쉬고 고르게 뱉습니다. 왼발과 오른발을 하나둘 하나둘 외면서 힘차게 구릅니다. 아래로 미는 발은 앞꿈치를 써서 잡아당기듯 하고, 앞꿈치를 써서 잡아당기듯 하던 발은 아래로 미는 발이 됩니다. 시골집에서 나와 처음 맞이하는 멧자락은 비봉산 기슭. 447미터 멧자락이니 그리 안 높다 할 테지만 자전거로 지나가는 길은 길에 뻗은 오르막입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에도 비알이 참 길고 가파르게 났구나 하고 느꼈지만, 막상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자니 땀이 솟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다 넘으면 이제 신나게 달리는 내리막을 맞이할 테지요. 거꾸로 이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길디긴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지나서 꼭대기에 다다르면 새삼스럽게 내리막을 달릴 수 있을 테고요.


  비봉산을 지난 나는 마복산(534미터) 옆을 지납니다. 이윽고 상산(272미터)을 지난 다음 삼암산(212미터)을 지납니다. 상산과 삼암산은 내나로도에 있는 멧자락입니다. 섬으로 난 길은 멧자락을 따라 천천히 휘고 천천히 오르막이 되다가 내리막이 됩니다.


- “하지만, 웃는 걸 보는 건 좋아.” ‘그건, 좋아한다는 뜻 아냐?’ (26쪽)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달릴 때에는 얼마나 오르막이요 얼마나 내리막인가를 몸으로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릴 때라야 비로소 길을 느낍니다. 자전거로 멧길을 달리며 온몸이 뻐근합니다. 목덜미와 어깨와 팔꿈치와 손목과 허벅지와 무릎과 발목 모두 뻑적지근합니다. 얕든 높은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헉헉거릴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르막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가볍게 발판을 구르면 다시 기운을 차려 새로운 오르막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며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풀숲 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들풀과 멧나무 잎사귀 건드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닷물이 모래밭에 닿는 소리를 듣습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는 소리도 듣습니다. 아마, 버스나 자동차에서는 자동차 소리 하나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마이고 등판이고 손등이고 팔뚝이고 땀이 줄줄 흐릅니다. 온통 땀투성이가 되지만, 빙긋 웃습니다. 나한테 다가오는 소리가 좋고, 나한테 풍기는 멧내음이 좋으며, 나한테 젖어드는 들바람과 멧바람과 바닷바람이 모두 좋습니다. 나도 그렇고 누군가도 그렇지만, 옴팡 땀투성이가 되어 자전거를 달리는 까닭은 자전거를 달릴 때마다 새롭게 알 만합니다. 온몸 어느 구석 안 아프거나 안 힘든 데가 없으나, 마음이 홀가분하면서 맑아져요. 길을 달리는 내가 아니라 길을 거쳐 하늘을 나는 나입니다. 길에서 숨을 헐떡이는 내가 아니라 가쁜 숨으로 좋은 풀내음 바람내음 바다내음 멧내음 나무내음을 맞아들이는 나입니다.


- ‘이날 하교길에 테츠에게 거의 스무 번 정도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집에 갔습니다.’ (44쪽)
- ‘애당초 내가 돈 관리를 시작한 진짜 이유는,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67쪽)

 

 


  시골 할매가 밭에서 김을 맵니다. 시골 할배가 밭둑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허리를 폅니다. 김매기는 참 허리가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김매기를 하며 이맛살 찡그리는 할매나 할배는 못 보았습니다. 참말 고된 일을 하지만,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는 당신들은 찡그리거나 울거나 골을 내지 않습니다. 그예 맑은 낯빛이요 그저 보드라운 얼굴빛입니다.


  문득문득 이웃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를 스쳐 지나가며 생각합니다. 까르르 왁자하게 터뜨려야만 웃음이 아닙니다. 부드럽게 싱긋빙긋 짓는 웃음 또한 웃음입니다. 가만히 땀을 흘리는 고요한 낯빛도 웃음입니다. 나는 어떠한 모습과 얼굴로 자전거를 달리며 땀을 흘리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 얼굴도 싱긋빙긋 웃으며 가쁜 숨을 고르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먼먼 바다에까지 드리운 구름을 바라봅니다. 가끔가끔 고개를 내미는 햇살을 느낍니다. 해가 들 적에는 멧자락 숲이 다른 빛깔 다른 무늬 다른 모습이 됩니다. 햇살이란 얼마나 좋은 선물인가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내 삶은 나 스스로 햇살과 같이 맑으며 따스하고 빛나며 싱그러울 때에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 “그리고 얼마 안 되지만 알바 월급도 받고 해서, 고기 사 왔어.” (70쪽)
- ‘내가 울고 있으면 언제나 엄마는 함께 요리를 하자고 했다. 야채 껍질을 벗기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그러다 보면,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아서.’ (119∼120쪽)

 


  후지모토 유키 님 만화책 《다녀왔어 노래》(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나는 따사롭게 맑은 마음이 되고 싶어 만화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을 읽거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도, 시집 한 권을 읽거나 푸른문학 하나를 읽을 때에도, 인문책이나 환경책이나 여느 글책을 읽을 때에도, 내가 바라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입니다. 따사롭게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 꿈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는 안 바랍니다. 이런 사랑과 저런 꿈을 바랍니다. 좋은 넋으로 어깨동무하는 손길을 바랍니다. 예쁜 눈빛으로 품앗이를 하는 마음길을 바랍니다. 만화책 《다녀왔어 노래》는 이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포근한 사랑이랑 꿈을 노래하거든요.


- “아무래도 익숙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참, 그리고요, 평소엔 원래 아버님이 요리를 하시죠? 그러면, 아버님이 요리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따라 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더 잘될지도 몰라요. 전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따라 했거든요. 언제나.” (139쪽)
- ‘(추워서) 손에 감각이 없어. 일한다는 건 정말로 힘든 거구나. 몇 살 위라는 이유만으로, (오빠들은)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있어.’ (180∼181쪽)


  세 시간을 쉬지 않고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엊저녁, 나는 일부러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모처럼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안 태우고 혼자 한갓지게(그러나 무척 바삐)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네 식구 살아가는 이곳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한켠에 어느 대기업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생각을 끝없이 밀어붙이는 터라, 대기업과 군수가 밀어붙이려 하는 화력발전소가 나와 이웃들 ‘예쁜 마을’을 어떻게 망가뜨리려 하는가 하고 살피려고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화력발전소를 세우려 하는 섬마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화력발전소가 선 다음 전기가 모자라다는 큰도시까지 커다란 송전탑을 세울 적에 어디쯤에 세울까를 헤아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화력발전소는 다도해 국립공원을 얼마나 무너뜨릴까 돌아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화력발전소가 서면 고흥 시골마을 예쁜 멧자락과 숲과 들판과 마을이 얼마나 슬프게 무너져야 하나 근심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가장 예쁘구나 싶은 마을과 삶터와 숲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 사랑과 꿈을 담아 사진으로 찍습니다. 거짓스럽거나 바보스러운 검은 돈바람이 이곳에 깃들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고운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시골 흙을 아끼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옆지기 모두 웃는 얼굴로 시골 푸나무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4345.7.4.물.ㅎㄲㅅㄱ)

 


― 다녀왔어 노래 3 (후지모토 유키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3.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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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보수주의’
[말사랑·글꽃·삶빛 19] 한국사람이 한국말 아끼는 길

 


  어떤 이는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나누는 한국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추스르도록 힘쓰자고 하는 일을 바라보며 ‘민족주의’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어떤 이는 ‘한겨레 말글을 바르게 쓰자’고 말하는 사람을 ‘보수주의’라고 깎아내립니다.


  민족주의나 보수주의가 ‘나쁜 생각’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민족주의가 될 수 있으며 보수주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말과 얽힌 자리에서 민족주의나 보수주의 이름표를 붙이는 이들은 티없는 넋이나 얼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자꾸 비아냥과 깎아내리기를 일삼습니다.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려 할까요.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사랑하거나 북돋우려 하지 못할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한자말을 으레 쓰니’까 한자말을 으레 쓸 만하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쓸 만하지 않은 말이라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쓰든 말든 알맞지 않고 올바르지 않을 뿐더러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않은 생각’, 곧 ‘잘못된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품을 때에는 부드럽게 타이르고 알맞게 깨우쳐 슬기롭게 이끌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를테면, 정치나 사회나 문화가 한결 ‘올바르고 좋은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정치운동이나 사회운동이나 문화운동을 해요. 교육운동이나 노동운동 모두 ‘두껍고 커다란 울타리’를 허물거나 바로잡으려고 힘써요.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이라고 해서 이와 다를 수 없어요. 사람들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쓴다지만, ‘스스로 못 느낄 만큼 길들거나 찌들거나 물든’ 채 ‘스스로 생각을 못 빛내’며 쓰는 말이라 한다면, 저마다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말글운동도 할 노릇입니다.


  교과서에 적힌 역사 지식 가운데 올바르지 않게 적힌 지식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교과서에 적힌 숱한 말 가운데 올바르지 않게 적힌 말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학자나 교수나 기자가 쓴 책이나 신문에 쓴 글에서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큰소리로 외친다’ 싶은 대목은 낱낱이 따지며 바로잡거나 고치려 애쓴다면, 이들이 쓴 책이나 글에서 ‘올바르지 않은 말과 사랑스럽지 못한 글’ 또한 낱낱이 따지며 바로잡거나 고치려 애쓸 수 있어야 해요.


  다만, 이곳에서 이렇게 하니 저곳에서도 저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틀은 그닥 반갑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삶이 생각하는 말이 될 때에 반갑습니다. 생각으로 삶을 짓듯, 생각으로 말을 지을 때에 달갑습니다.


  지식을 쌓는대서 역사를 더 잘 알지 않습니다. 지식을 쌓기에 말을 더 잘 알거나 더 잘 하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기에 사회를 잘 읽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거나 국어사전을 자주 들추었기에 말을 더 잘 헤아리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동의(同意)를 구(求)한다”라 말하고, 어떤 이는 “동의를 받는다”라 말하며, 어떤 이는 “허락(許諾)을 받는다”라 말하며, 어떤 이는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라 말하며, 어떤 이는 “받아들인다”라 말합니다. 모두 같은 뜻 같은 쓰임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말투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잘 가.” 하고 말하지만, 어떤 이는 “안녕(安寧).” 하고 말하며, 어떤 이는 “바이바이(byebye).” 하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살펴 가.” 하고 말하는데, 어떤 이는 “조심(操心)히 가.” 하고 말해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연속극을 본 일이 없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으레 “빙긋 웃”고 “활짝 웃”으며 “빙그레 웃”다가는 “싱긋 웃”곤 했으나, 이제는 누구나 “미소(微笑)를 짓”는다고 말할 뿐 아니라, 어린이책에까지 이런 말투가 나타납니다. 이와 함께,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 곧잘 ‘미소’는 일본 한자말이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은(지식인이든 지식인이 아니든) ‘미소’라는 낱말을 스스럼없이 씁니다.


  퍽 여러 해가 걸렸으나, ‘국민(國民)학교’라는 이름이 ‘초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국민학교’ 이름이던 때에 학교를 다닌 이들은 아직 ‘국민학교’라는 말투가 입에 남으나, 이제 어느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초등학교’라고만 말합니다. 왜냐하면, ‘국민’이라는 낱말은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천황 폐하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썼거든요. ‘국민·국어·국가(國歌)·국화(國花)’ 모두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사람은 숱한 “천황 폐하 식민지 적 말찌꺼기” 가운데 ‘국민학교’에 붙던 ‘국민’ 한 가지만 겨우 씻었습니다. “국민투표”라든지 “국민 여러분”이라든지 “국어 수업”이라든지 다른 자리에서도 마땅히 씻어야 할 말투는 씻지 않아요. 아니, 씻지 못한다기보다, 씻어야 하는 줄 느끼지 않아요. 느끼지 않는데다가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이럭저럭 쓰니’까 그대로 쓸 뿐이에요.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일은 ‘민족주의’나 ‘보수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영국사람이 영국사람으로서 영국말(영어)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일은 민족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니에요. 독일사람도 덴마크사람도 일본사람도 이와 같아요. 어느 한 나라나 겨레에 얽매이는 일이 아니에요.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바르게 쓰자고 외치는 일이란,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우면서 삶을 사랑하자는 뜻입니다. “한겨레를 지키자”라느니 “오랜 전통을 지키자”하고는 아주 동떨어집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가꾸고 내 넋을 북돋우며 내 꿈을 보살피자는 뜻입니다. “고유어를 살리자”라느니 “토박이말을 쓰자”하고는 사뭇 동떨어져요.


  나는 민족주의나 보수주의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어떠한 생각이든 ‘주의·주장’이 될 적에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생각’을 좋아하고 ‘마음’을 사랑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고 이웃을 헤아리는 생각이 좋습니다. 내 꿈을 아끼고 동무와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사랑스러워요.

  부디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한국말을 곱게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이주노동자이든 대학교수이든 누구이든, 부디 한국땅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한국글을 어여삐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생각할 때에 싱그러이 빛나는 삶이에요. 마음을 기울일 때에 상큼하게 나누는 사랑내음이에요. (4345.6.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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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로 세 시간 달리며 보다

 


  자전거로 세 시간을 달린다. 고흥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에 있는 우리 집부터 고흥 봉래면 나로2다리까지 달린다. 가는 길에 바지런히 사진을 찍느라 나로2다리 앞까지만 가고 더 나아가지 못한다. 돌아올 길을 생각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도 했고, 사진을 찍느라 자전거를 멈추면 집에 너무 늦는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두 아이를 생각하자니, 이제 더 늦출 수 없다.


  어쨌든, 집부터 길을 나선 뒤 나로2다리 앞까지 한 시간 반을 달리며 사진을 찍었고, 나로2다리에서 다시 길을 나서며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 반을 달렸다. 가는 길은 사진을 찍으며 갔어도 한 시간 반이요, 오는 길은 사진을 안 찍으며 달려도 한 시간 반. 아주 마땅하지만, 갈 적에는 기운이 팔팔하고, 올 적에는 다리힘이 풀리니까. 세 시간을 내리 쉬지 않고 달리니 집에 닿을 무렵에는 온몸이 뻑적지근하다. 게다가,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리기 앞서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에 다녀왔으니.


  집에 닿아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찍은 사진을 죽 살핀다. 내가 자전거로 이 길을 달리며 무엇을 보았는지 살핀다. 그리고, 고흥에서 태어나 오래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이 고장을 얼마나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바라볼까 하고 생각해 본다. 마복산 기슭을 넘을 무렵 만난 마을에서 비탈밭을 일구는 할배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자꾸자꾸 들여다본다. 사람은 왜 태어나서 살아가는가.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누릴 때에 가장 즐거울까. 사람은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기쁘게 잠을 자는가. (4345.7.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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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05 07:54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남편과 마곡사에 갔다가 그 주위를 두어 시간 걷다 왔습니다. 약간 흐린 날씨라 한낮이지만 아주 덥지는 않았지만 제법 땀이 많이 나더군요. 논, 밭을 따라, 숲을 헤치며 걷다보니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평소에 갖기 힘든 시간이었답니다. 눈에 뭐가 반짝 들어올때마다 사진도 꽤 많이 찍었어요.
세시간을 페달을 밟으셨으면 아무리 중간에 잠깐씩 쉬셨다해도 다리가 무척 많이 아프셨겠어요.

파란놀 2012-07-05 07:53   좋아요 0 | URL
여느 때에도 숲에서 살아간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나 미움은
눈녹듯 사라지지 않으랴 싶어요.

숲이 사라지고,
인공 공원만 생기니
사람들이 사랑을 못 키우지 않나 싶기도 해요..

2012-07-05 0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7-05 07:52   좋아요 0 | URL
좋은 마음으로 즐겁게 읽어 주셔요~ ^^

사람들이 새책도 헌책도
모두 사랑스러운 책으로 여겨
예쁘게 아낄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