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군내버스 어린이


  군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은 몹시 드물다. 아이들은 거의 읍내나 면내에 사니까 버스를 탈 일이 없고, 면소재지하고 멀리 떨어진 아이들은 노란 학교버스가 아이들을 태우며 시골 곳곳을 누비니까. 으레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탄다 싶은 군내버스에 초등학교 어린이가 탔다. 읍내부터 퍽 멀리까지 타고 간다. 혼자 씩씩하게 기둥을 붙잡으며 간다. 아이는 나중에 중학교에 들고 고등학교에 들 적에도 이 군내버스를 타겠지. 그때에는 군내버스에서 익숙하게 보던 할머니나 할아버지 가운데 더는 만날 수 없는 분들이 하나둘 늘겠지. (4345.7.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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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8 : 백문불여일견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
《박기성·심병우-울릉도》(대원사,1995) 81쪽

 

  ‘백문(百聞)’은 “여러 번 들음”을 뜻하고, ‘불여일견(不如一見)’은 “제 눈으로 직접 한 번 보는 것만 못함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 합니다. 흔히 두 한자말을 나란히 붙여서 쓰곤 하는데, 한국말로 쉽게 적자면 “여러 번 듣기보다, 스스로 한 번 볼 때에 더 낫다”가 됩니다.


  굳이 한자말을 빌어 말해야 하지 않을 텐데, 애써 이런 한자말을 빌어서 이녁 뜻이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기 일쑤입니다. 쉽게 말할 때에는 내 뜻이나 생각을 못 나타낸다고 여길까요. 쉽게 주고받는 말마디로는 깊거나 너른 마음을 못 담는다고 여길까요. 어떤 허울을 입혀야 그럴듯한 말이 된다고 여길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예전에는 이렇게 한자말로 허울을 입혔고, 요즈음에는 영어로 허울을 입힙니다. 쉬운 한국말이 아닌 쉬운 한자말로 껍데기를 들씌우다가, 쉬운 영어로 겉치레를 합니다. 맑거나 밝은 생각하고는 자꾸 동떨어집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 여러 번 듣기보다 한 번 본다고
→ 귀보다 눈으로 안다고
→ 귀 아닌 눈으로 깨닫는다고
→ 스스로 보아야 한다고
→ 스스로 겪어야 안다고
 …

 

  보기글을 생각합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비로소 한 번 보고서야,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라든지 “한 번 보고 난 뒤에,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번 본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라든지 “몸소 지켜본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려요.


  사람들마다 다 달리 풀어서 적을 만합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마다 다 다른 예쁜 말씨로 적을 만합니다. ‘스스로 본다’와 ‘한 번 본다’와 ‘눈으로 보다’와 ‘몸소 겪다’ 같은 말마디를 꾸밈없이 넣을 수 있고, 이러한 말뜻으로 여러모로 알맞게 적을 수 있어요.


  생각을 하면서 말을 살찌웁니다. 생각을 할 때에 말이 살아납니다. 마음을 기울이면서 글이 빛납니다. 마음을 기울일 때에 글이 제 결을 찾습니다. (4345.7.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몸소 지켜본 장씨는 마침내 깨달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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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는 마음

 


  지난 봄날, 어느 출판단체에 글꾸러미를 하나 보냈다. 어느 출판단체에서 작가와 출판사한테 ‘책 펴낼 돈’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내가 보낸 글꾸러미가 뽑힐 수 있는지 손꼽아 기다린다. 좋은 마음으로 쓴 글을 좋은 마음으로 엮어 보냈기에 좋은 마음으로 살펴 좋은 마음으로 뽑아 주리라 믿고 기다린다.


  아이들 잠든 깊은 밤, 긴글 하나를 마무리짓는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한켠에 대기업에서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서기에, 이 일을 놓고 어느 신문에 보낼 글을 썼다. 내 글을 실어 주겠다 하는 신문에서는 한 쪽을 통틀어 글과 사진으로 꾸미겠다고 말씀해 주었기에 고맙고 즐겁게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다만, 내가 쓴 글은 이제껏 수많은 환경운동과 시민운동 글하고 아주 다르다. 나는 이론이나 지식이나 논리나 정보를 갖고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가장 아름다운 꿈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나한테 글을 써서 보내 달라 하는 신문은 여느 일간신문이 아니라 두 주에 한 차례 나오는 신문이기에 내가 쓴 글도 예쁘게 받아들여 주리라 믿는다. 나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믿고 기다릴 뿐이다.


  나와 이웃한 사람들이 겉치레나 돈벌이에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기를 믿으면서 기다린다. 나부터 즐겁게 생각하고 예쁘게 말하면서 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좋은 꿈을 기다린다. 내 마음속에서 산뜻하게 피어날 좋은 글꽃을 믿으면서 기다린다. 내 가슴속에서 해맑게 자라날 어여쁜 사랑열매를 믿으면서 기다린다.


  그냥 기다리지 않는다. 믿으면서 기다린다. 싱긋 웃으면서 기다린다. 가장 예쁜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린다. 개구리 노랫소리와 살랑이는 밤바람 소리에 마음 한 자락 실으면서 기다린다. (4345.7.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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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7-06 02:18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이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파란놀 2012-07-06 07: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모두 잘 되리라 믿어요~
 


 시골 읍내 마트와 자가용 선물

 


  오랜만에 네 식구가 읍내로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사람들이 무척 북적거리는 마트 한 군데를 본다. 고흥시장 한켠에 있는 마트인데, 예전에 이 앞을 지나가며 슬쩍 들여다볼 적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진열장을 바꾸고 가게이름을 살짝 바꾸어 새롭게 여는 듯한데, 이날 이 마트에는 손님이 발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무슨 일일까. 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읍내 빵집에 들러 빵 몇 점을 사는데, 빵집 일꾼이 우리한테 튀김빵 두 점을 덤으로 더 얹어 주면서 “경품으로 자동차 준다니까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요.” 하고 말한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광고종이 한 장을 주워서 펼쳐 본다. 참말 자동차 한 대를 경품으로 줄 뿐 아니라, 한동안 그 마트에서 온갖 물건을 반값으로 판단다. 여느 빵집에서는 3000원에 파는 식빵을 1000원에 판단다. 읍내에 파리바게트가 가게를 넓히며 새로 열면서 이웃한 작은 빵집 손님을 다 끊을 판이더니, 새로 여는 마트에서는 값 후려치기를 하면서 읍내 작은 빵집 손님을 몽땅 쓸어낼 판이로구나 싶다.


  그런데 어떤 물건을 반값에 팔까. 농약이나 비료를 안 쓴 푸성귀를 반값에 팔까. 소포제와 유화제를 안 쓴 두부를 반값에 팔까. 화학조합물 안 넣은 가공식품을 반값에 팔까. 화학세제를, 간장을, 라면을, 참치깡통을, 우유를, 과자를, 달걀을, 소시지를, 바나나를, 수박을 반값으로 판다. 우리 식구가 그 마트에서 살 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여느 때에 그 마트에 들러 물건을 산 일이 없다. 읍내 마트에서는 곤약이나 천사채를 살 뿐이다.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품에 안긴 첫째 아이는 어느새 스르르 잠든다. 뒤에서 마을 할머니가 “벼리야, 어디 갔다 오니? 응?” 하고 자꾸 말을 걸어도 아이는 못 듣고 곯아떨어진다. 버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과 숲을 바라본다. 시골 읍내가 되든 도시 한복판이 되든, 마트 같은 데가 새로 열면서 손님들한테 줄 만한 경품은 자가용, 텔레비전, 두루말이 휴지쯤이 고작일까. 마트에서 경품으로 책을 준다 하면 손님이 들까. 책 선물을 고맙거나 즐겁게 여길 손님은 얼마나 될까. 아니, 마트에서 책을 선물로 준다 할 때에 어느 책을 선물로 삼으려나. 베스트셀러를? 스테디셀러를? 널리 읽히거나 팔리지는 못하지만 우리 가슴을 촉촉히 적시거나 보듬는 아름다운 책을?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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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7-06 02:25   좋아요 0 | URL
사금벼리, 산들보라 둘다 많이 컸겠는걸요~^^

저도 아줌인지라 공짜나 반값엔 혹~하는 경향이 있죠.
근데 얼마전 동네 헌책방에 제가 아끼는 책이 덩치로 진열되어 있는 걸 보니 왠지 씁쓸하더라구요.
빨리 좋은 주인을 만나 귀하게 읽혔으면 싶었어요, ㅋ~.

파란놀 2012-07-06 06:35   좋아요 0 | URL
틈틈이 올리는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참 많이 자랐구나 하고 느끼시리라 믿어요~

큰 가게들 반값 놀이는 너무 지나쳐
서로서로를 무너뜨리겠구나 싶어요.
'제값'과 '제삶'을 잊는다고 할까요..

누군가 동네 헌책방에 '아름다운 책'을 스스럼없이
즐겁게 내놓았나 보군요.
그렇게 책을 내놓아 준 아름다운 넋을 알아볼 분은
금세 나타나겠지요~~ ^^
 

시는 어떻게 쓰는가
[말사랑·글꽃·삶빛 17] ‘이식(移植)’과 ‘착근’

 


  시를 읽습니다. 나는 내가 쓴 시를 나 스스로 좋아하며 읽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쓴 시를 나 스스로 찾거나 살피며 읽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스미는 시가 좋습니다. 마음을 달래거나 북돋우거나 쓰다듬는 시가 좋습니다. 사랑을 노래하거나 기쁨으로 춤춘대서 반갑다고 느끼는 시는 아닙니다. 슬픔이나 울음이나 눈물이 가득하다 하더라도, 아픔과 고단함과 생채기가 가득하다 하더라도, 삶을 따사로이 보듬는 맑은 손길을 만날 적에 참 반갑구나 하고 느끼는 시입니다.


  목사이면서 어린이책 번역도 하는 고진하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얼음수도원》(민음사,2001)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토지문학공원 2〉이라는 시에서 “이식(移植)된 지 얼마 안 된 듯 / 착근을 위한 안간힘이 보이는 듯했다”와 같은 싯말을 읽다가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시인 고진하 님은 왜 ‘이식’이라는 한자말은 묶음표까지 붙이다가는, 왜 ‘착근’이라는 한자말에는 묶음표를 안 붙였을까 궁금합니다. ‘이식’이라는 낱말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이렇게 시를 썼을까요. 〈토지문학공원 2〉이라는 시는 이처럼 한자말을 밝혀서 적어야 빛나겠다고 느끼기에 이와 같이 시를 썼을까요.


  싯말은 시를 쓰는 사람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곧, 시인 ‘마음대로’ 싯말을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쓰고픈 대로 쓰는 싯말일 테고, 시인이 살아가는 마음이 그대로 담기는 싯말일 테지요. 한 마디로 하자면 ‘자유’를 누리며 쓰는 시요,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쓰는 시입니다.


  시인 고진하 님으로서는 한자말 ‘이식’이랑 ‘착근’이 손과 입과 눈과 귀에 밴 낱말이리라 느낍니다. 딱히 한자말이라 느끼지 않으면서 여느 때에 흔하게 쓰는 낱말이리라 느낍니다. 한자말이건 아니건 그리 대수롭지 않은 낱말이기도 하리라 느낍니다.


  시집을 살짝 덮습니다. 국어사전을 들춥니다. 한자말 ‘이식(移植)’을 찾아봅니다. 뜻풀이에 “= 옮겨심기. ‘옮겨심기’로 순화.”라 적힙니다. 곧이어 한자말 ‘착근(着根)’을 찾아봅니다. 뜻풀이에 “(1) 옮겨 심은 식물이 뿌리를 내림. (2)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자리를 잡고 삶. (3) 어떠한 것이 기반을 잡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적힙니다.


  낱말풀이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식’이나 ‘착근’은 한자말인데, 한자말이기 앞서 한국말이 아니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쳐서 써야 한다는 낱말이라면, 또 뜻풀이에서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투가 나타난다’면, 이때에는 이러한 한자말은 그냥 한자말이 아닌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삶말로 으레 쓰는 낱말일 뿐, 한국사람이 삶말로 여길 만한 낱말이 아니라는 소리라고 느껴요.


  곧, 한국말은 ‘옮겨심기’요 ‘뿌리내리기’ 또는 ‘자리잡기’입니다. 한국사람은 예부터 옮겨서 심었기에 ‘옮겨심기’라 말했습니다. 한국사람은 옛날부터 뿌리를 내리거나 자리를 잡는다고 했기에 ‘뿌리내리기’나 ‘자리잡기’라 말했습니다.


  다시 시집을 집습니다. 다른 시를 천천히 읽습니다. 시를 고즈넉히 읽으며 싯말이 내 혀나 눈이나 입이나 귀에 감기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 혀나 눈이나 입이나 귀에 감기는 싯말은 무엇이고 도무지 안 감기고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싯말은 무엇인지 헤아려 봅니다.


  시는 누구나 씁니다. 지식인도 시를 쓰고, 흙일꾼도 시를 씁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마친 이도 시를 쓰지만, 공장에서 기계를 붙잡고 기름밥을 먹는 이도 시를 씁니다. 문학을 꽃피우는 이도 시를 쓰지만, 집에서 아이를 낳아 보살피고 밥과 빨래와 청소로 하루를 보내는 이도 시를 씁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다 다른 자리에 걸맞게 시를 씁니다. 누군가는 책으로 많이 배워서 지식이 한껏 도드라지는 시를 씁니다. 누군가는 책으로 배운 적 없이 늘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가장 수수하거나 투박한 말투로 시를 씁니다. 어느 쪽 시가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 시가 더 훌륭하거나 좋거나 빛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거든요. 나는 나대로 예쁘고 당신은 당신대로 예뻐요.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당신은 당신 삶을 사랑해요. 금을 긋거나 가를 수 없어요. 이 말은 좋고 저 말은 나쁘다고 못박을 수 없어요.


  다만 한 가지뿐이에요. 나는 내가 어떤 말을 사랑하면서 내 넋을 아끼고, 나는 어떤 삶을 꿈꾸면서 내 노래를 시로 담는가 하고 생각하면 될 뿐이에요. 누군가는 ‘환희(歡喜)’를 시로 노래하겠으나, 누군가는 ‘원더풀(wonderful)’을 시로 노래할 테고, 누군가는 ‘놀랍도록 기쁨’을 시로 노래할 만합니다.


  시는 삶으로 씁니다. 누구라도 시는 삶으로 씁니다. 삶에 지식이 가득한 사람이라면 ‘지식으로 쓰는 시’가 이녁한테 ‘삶으로 쓰는 시’입니다. 삶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라면 ‘사랑으로 쓰는 시’가 이녁한테 ‘삶으로 쓰는 시’예요.


  나는 시를 읽거나 쓰면서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꿈을 꿉니다. 나는 시를 읽거나 쓰면서 시골마을 이웃집 할매 할배하고 함께 즐길 꿈을 꿉니다. 내 삶과 내 이웃 삶을 생각하면서 내 싯말을 아낍니다. 내 하루와 내 이웃 하루를 돌아보면서 내 싯말을 짓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할 뿐 아니라, 나 스스로 살아가는 꿈이 고이 깃든 말마디가 내 싯말입니다. (4345.7.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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