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평화 발자국 7
임소희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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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은 남북을 가르지 않는다
 [만화책 즐겨읽기 164] 리정애·임소희,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남과 북으로 갈린 한겨레는 남과 북으로만 갈리지 않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도 흩어져야 했고, 일본으로도 찢겨야 했습니다. 곧, 한겨레는 남녘 한겨레와 북녘 한겨레와 중국 한겨레와 러시아 한겨레와 중앙아시아 한겨레와 일본 한겨레가 있다 할 만합니다.


  남녘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는 남녘땅 사람 아니면 만나기 힘듭니다. 남녘땅에서 북녘땅 여느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로 사귀지 못합니다. 글월 하나 주고받지 못하고, 전화 한 통 나누지 못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러시아로는 글월도 띄울 수 있고 소포도 띄울 수 있건만, 정작 가장 가까운 북녘으로는 아무것도 띄울 수 없습니다.


  남녘땅 사람들 말삶을 돌아봅니다. 서울사람 말씨랑 대구사람 말씨가 다릅니다. 원주사람 말씨랑 익산사람 말씨가 다릅니다. 강진사람 말씨랑 밀양사람 말씨가 다릅니다. 같은 남녘이라 하더라도 고장마다 말씨가 다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스스로 태어나 자란 고장 삶자락이 내 몸에 배어듭니다. 의성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사람은 뼛속 깊이 의성 말씨로 이야기를 합니다. 고성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지만 서울에서 살아간다면 차츰 서울 말씨로 달라집니다. 그러나, 아주 서울 말씨가 되지는 않고, 고성 말씨가 남은 서울 말씨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한겨레 말씨는 남녘 한겨레 말씨와 다릅니다. 일본 한겨레 말씨는 남녘 한겨레 말씨와 같을 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말씨를 들으면서 ‘당신 말씨를 고쳐야겠네요’ 하고 말할 수 없어요. 서울사람이 제주사람더러 제주 말씨를 버리거나 고치라 말할 수 없어요. 부산사람이 광주사람더러 광주 말씨를 버리거나 고치라 말할 수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말씨는 서로 아끼며 사랑할 삶자국입니다. 예쁘게 바라보고 곱게 얼싸안을 우리 넋입니다.

 

 


- “정애 씨는 ‘북한’ 억양부터 고쳐야겠네. 발음이 너무 세잖아요.” …… “선생님! 저는 일본사람도 중국사람도 아닙니다. 선생님과 같은 민족이고, 제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저는 어느 쪽에서 발음해야 합니까?” (12∼13쪽)
-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발전, ‘북한’은 낙후되어……” ‘외국사람들 앞에서 같은 민족을 비방하는 수업을 하다니! 무엇을 위한 ‘한국의 역사’인가!’ (25쪽)


  내가 지난 열두 해 동안 초·중·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나 하고 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돈을 더 잘 버는 길’ 하나였구나 싶습니다. 내가 도시에서 태어났기에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돈을 더 잘 버는 길’을 배웠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시골로 삶터를 옮겨 살아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보더라도, 이곳 시골마을뿐 아니라 이웃 시골마을에서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입니다. 도시 아이한테도 시골 아이한테도 몽땅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돈을 더 잘 버는 길’ 하나만 가르쳐요. 도시 아이는 더 커다란 도시로 가도록 가르치고, 시골 아이는 도시로 가도록 가르칩니다. 아마 서울 아이한테는 서울보다는 일본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나라밖으로 나가도록 가르칠는지 몰라요. ‘세계화’라든지 ‘글로벌’이라든지 하는 이름이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답게 예쁘게 살아가라는 길이 아니에요. 그예 돈을 더 벌라 하는 이야기예요. 서로 사랑하고 아끼라는 길이 아니에요.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서 나 홀로 1등이 되라는 길이에요.


  이리하여, 예나 이제나, 이 나라 남녘땅 초·중·고등학교는 열두 해 동안 이웃과 동무가 누구인가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남녘 한겨레가 다니는 학교는 북녘 한겨레 이야기를 가르치지 않아요. 남녘 한겨레가 다니는 학교는 일본 한겨레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남녘 한겨레가 다니는 학교는 중국 한겨레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아요. 게다가, 같은 남녘땅 이웃과 동무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밝히지 않아요. 서로 아끼는 길을 찾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길을 살피지 않아요. 온통 대학입시로 맞추는 초·중·고등학교 교육 얼거리는 아이들 스스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쇠밥그릇 챙기는 쪽으로 머리를 쓰도록 내몹니다.


- ‘지하철을 타면 이런 내 처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 태어나 우리 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마치 나만 빼고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너무나 부럽다. 물론 내 나라 내 땅에서 태어나 자란다고 해서 모두가 다 행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재일동포들은 어려서부터 꿈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 왔다.’ (38∼39쪽)
- ‘함께 간 일본 관광객을 보면서도 확실히 알게 됐지만 내가 30여 년 동안 일본에 살며 깨달은 건 일본사람에게 식민지나 전쟁은 ‘남의 나라 얘기’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증거를 눈앞에 보면서도 전혀 이해를 못하니 말이다.’ (54쪽)

 

 


  장마비가 쏟아지는 동안 논개구리가 신나게 웁니다. 그러나, 빗소리에 개구리 노랫소리가 잠깁니다. 장마비가 그치면 논내구리 노랫소리가 온 마을을 휘감습니다. 논둑에 사람이 서든 말든 개구리 노랫소리는 우렁찹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나 듣는 소리는 언제나 몸으로 스며듭니다. 풀밭과 논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풀내음과 논내음을 저희 목소리에 담아 고운 노래로 들려줍니다. 개구리 노랫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날부터 개구리가 들려주는 넋과 꿈과 빛을 가슴에 담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곁에서는 새근새근 잘 잡니다.


  도시에서도 장마비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면, 제아무리 시끌복닥 왁자지껄 어수선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자동차 소리가 잠깁니다. 텔레비전 소리도, 손전화 소리도, 가게마다 틀은 기계 노랫소리도 빗소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모든 도시 소리들도 빗소리에 잠깁니다. 장마비가 그치면 이제껏 잠겼던 온갖 소리가 깨어납니다. 자동차 빵빵 소리, 손전화 소리, 텔레비전 소리, 기계 움직이는 소리, 승강기 오르내리는 소리, 딸랑딸랑 소리 ……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언제나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달갑건 달갑잖건 아이들 몸과 마음은 갖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도시에서는 한갓지거나 느긋하게 잠들기 어렵습니다.


  내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온갖 도시 소리에 길들거나 익숙했기에, 도시 소리가 시끄러운 줄 잘 몰랐습니다. 아이들 낳아 함께 살아가며 아이들이 도시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골을 부리며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모습을 늘 바라보다가 시골로 삶자리 옮겨 살아가다 보니, 참말 사람한테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깨닫고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아이한테 좋은 소리는 어른한테도 좋은 소리입니다. 어른한테 좋은 소리란 아이한테도 좋은 소리입니다.


  물결치는 바다 소리는 그윽합니다. 나뭇잎과 풀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사랑스럽습니다. 새와 벌레와 개구리가 함께 빚는 노랫소리는 아름답습니다. 이들 소리를 듣고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착하고 맑으며 신나는 웃음을 꽃피웁니다. 이들 소리하고 동떨어진 채 돈벌이만 해야 한다면, 사람 스스로 자꾸 시들거나 파리해집니다.


- ‘끝내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간 이유는 우리 민족의 경사스러운 날에 우리 땅에서 치마저고리를 당당히 입고 싶었고, 차별과 폭행 때문에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마음 놓고 입고 다니지 못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 몫까지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64쪽)
- ‘이내 눈물이 핑 돌아 (금강산) 안내원 언니와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이밖에도 북쪽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내가 총련동포인 것을 알면 동포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을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화내며 함께 울어 주었다. 재일동포의 삶을 몰라서 그랬겠지만 재일동포임을 밝혔을 때 ‘일본사람이나 마찬가지’라며 무심하게 일본말로 말을 걸어 온 남쪽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날더러 자꾸 왜 북쪽을 조국으로 생각하냐고 묻지만 바로 이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94쪽)

 

 


  사람들은 돈을 찾아 도시로 갑니다. 돈 때문에 도시로 갑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굳이 도시에 갈 까닭이 없습니다. 더 나은 교육이나 더 좋은 문화나 더 깊은 예술을 생각해서 도시로 간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교육 저런 문화 그런 예술은 모두 돈하고 얽힙니다. 삶하고 얽히는 도시는 아니에요.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는 도시는 아니에요. 꿈하고 얼크러지는 도시는 아니에요.


  자격증을 따거나 교수가 되거나 이름값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대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내 넋을 한껏 북돋우면서 내 슬기를 아름답게 일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땅 대학교는 더 높은 이름값을 거머쥐어 더 좋은 돈벌이를 하도록 이끄는 징검돌 구실만 합니다. 배움다움 삶다움 사랑다움하고는 아주 멀리 떨어졌어요. 곧, 배움다움을 잃은 대학교에 보내려 하는 ‘도시 고등학교’나 ‘시골 고등학교’는 얼마나 배움다움 배움을 나눈다 할까요. 도시사람이 보고 즐기는 연속극이나 영화는 얼마나 문화답다 할 만한가요. 도시사람이 만들고 읽는 책은 얼마나 책답다 할 만하고, 도시사람이 빚고 나누는 사진이나 연극이나 그림이나 노래나 춤은 얼마나 문화나 예술답다 할 만한가요.


  예술쟁이가 된 도시사람은 시골로 찾아와 두런두런 나들이를 하다가 예뻐 보이는 나무를 보고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립니다. 예뻐 보이는 꽃을 보고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립니다. 예뻐 보이는 꽃나무를 꽃집에서 사다가는 아파트 툇마루에 놓고 키웁니다. 스스로 씨앗을 얻어 씨앗을 심을 줄 모르고, 씨앗을 심어 천천히 자라다가는 오래도록 우람히 뿌리내리는 나무를 껴안을 줄 모르며, 작품으로 아로새기는 모습이 아닌 가슴으로 아로새기는 사랑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 ‘우리 부모님도 모두 조선학교 출신이지만 지금은 우리 말을 거의 잊으셨고, 조대를 막 졸업한 막내를 빼고는 동생들도 우리 말을 많이 잊어버렸다.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는 언어를 지킨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120쪽)

 


  남녘땅 한겨레는 북녘땅 한겨레보다 돈을 잘 법니다. 남녘땅 한겨레는 일본땅 한겨레보다 홀가분하게 돈을 법니다. 학력이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몸매(와 얼굴)를 놓고 푸대접을 하거나 따돌림을 하는 일이 곧잘 있다지만, 남녘땅 한겨레는 일본땅 한겨레처럼 ‘처음부터 아예 넘볼 수 없는 울타리’가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땅 한겨레는 한겨레 말을 익히더라도 일본에서 한겨레 말을 쓸 자리가 없는데, 한국땅 한겨레는 이러한 대목을 읽지 못합니다. 중국땅 한겨레가 한겨레 말을 무척 잘 할 수 있는 까닭이란, 중국땅에서는 한겨레가 자치주를 이루어 한겨레 말을 언제라도 쓸 자리가 꽤 있기 때문인 줄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중국땅 한겨레나 일본땅 한겨레는 ‘한겨레’일까요. 모두 같은 한겨레라서, 서로를 아끼고 믿으며 사랑하는 좋은 꿈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일까요. 예쁘게 손을 잡고 즐겁게 어깨를 겯으며 살갑게 눈빛을 나눌 만한 동무일까요.


- “그러면 더 국적을 한국으로 바꿔야지요! 왜 안 바꿉니까? 언제 바꿀 거예요?” “쪽바리들은 비자 없이 맘대로 왔다갔다 하는데 같은 민족이고 남쪽이 고향인 우리 동포들은 왜 못 가게 하는 거예요?” “그건, 일본인은 외국인이라 되는 거죠.”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차라리 우리를 외국인 취급해 줘요! 말만 동포라고 하지 말고!” (136쪽)

 


  일본에서 나고 자란 리정애 님 이야기를 임소희 님이 만화로 담은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보리,2010)를 읽습니다. 리정애 님으로서는 남이나 북으로 가르는 한겨레가 아닌 ‘그냥 한겨레’를 생각하면서 만나고 싶지만, 이 같은 일은 선뜻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두 발을 디디는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만 같습니다. 참말 꿈속에서만 서로 만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할 길이 없는 노릇입니다. 남녘땅에서는 초등학교이건 중학교이건 고등학교이건, 일본이라는 나라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한테 어떤 짓을 하는지 한 줄로조차 교과서로 가르치지 않아요. 꼭 교과서로 가르쳐야 ‘알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남녘 정부는 일본땅 한겨레이든 중국땅 한겨레이든 러시아땅 한겨레이든 조금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남녘 정부는 하나되는 삶(통일)을 헤아리지 않아요. 남녘 정부는 오직 하나, 돈벌이(경제발전)만 헤아립니다. 남녘 정부는 돈을 더 버는 길을 대수롭게 여기고, 흩어지거나 갈라진 한겨레가 아픔과 생채기와 눈물을 털고 웃음과 기쁨과 이야기꽃을 흐드러지도록 피우는 일은 하찮게 여깁니다. 더욱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먹고사는 길을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남녘 정부가 하듯, 갈라진 생채기와 흩어진 아픔을 씻는 데에는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살림이 빠듯하고 삶이 팍팍하거든요. 느긋하거나 너그러운 삶이 아니거든요. 따사롭거나 어여쁜 사랑이 아니거든요.


  만화책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리정애 님이 ‘서울’ 말고 홍성이나 보성이나 횡성 같은 시골에서 머물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장흥이나 고흥, 진도나 완도, 통영이나 주문진 같은 시골마을에서 지냈다면, 이러한 시골마을에서 흙빛 사내를 만났다면, 이때에는 어떠한 삶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남녘도 북녘도 돈을 더 벌어들이는 길이 아니라, 전투기와 구축함을 더 만드는 길이 아니라, 서로 오붓하며 따사롭게 어깨동무하도록 논밭을 아끼고 들과 숲을 사랑하는 길을 걸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서울과 평양으로는 하나될 수 없어요. 서울로는, 평양으로는, 사람다운 터를 이루지 못해요. 60층 넘는 건물이든 100층 넘는 건물이든 부질없어요. 더 높은 건물과 더 많은 건물로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요. 냇물이 맑게 흐르고, 숲이 푸르게 우거지며, 새와 벌레와 짐승이 마음껏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좋은 자연으로 만나야 비로소 하나될 수 있어요.


  하나되는 길은 울타리를 걷는 길이에요. 돈 울타리가 되든 정치 울타리가 되든 아파트 울타리가 되든, 울타리를 걷어야 하나될 수 있어요.


  냇물에는 울타리가 없고, 들에도 울타리가 없어요. 숲에도 울타리가 깃들 수 없어요. 지구별은 처음부터 하나였고 언제나 하나이지만, 정부가 생기고 대통령이 생기며 군대가 생기면서 여럿으로 갈기갈기 쪼개지거나 찢어져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금이란 얼마나 덧없는가요. 부산과 김해를 가르는 금은 얼마나 덧없는가요. 서울과 인천을 가르는 금이란 얼마나 덧없는가요.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금은 얼마나 덧없는가요. 언제나 하나였던 삶을 오늘도 하나라고 느낀다면, 우리가 예쁘게 살아갈 길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하는 실마리도 쉽게 찾으리라 생각해요. (4345.7.12.나무.ㅎㄲㅅㄱ)

 


―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리정애 이야기,임소희 만화,보리 펴냄,2010.10.1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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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줄과 제비

 


  어미 제비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들을 한참 먹여 키울 적에도 빨래줄에 앉아 둥지를 바라보고, 새끼들을 모두 키워 스스로 날갯짓하며 날아다니도록 이끈 뒤에도 곧잘 옛 둥지 있는 집으로 찾아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 제비는 저희가 태어난 둥지로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미 제비만큼은 저희 새끼를 낳아 키운 둥지 있는 곳으로 날마다 한두 차례쯤 찾아와 빨래줄이나 전기줄에 앉아 한동안 옛 둥지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 기저귀를 넌 빨래줄 한복판에 어미 제비가 앉는다. 마침 기저귀 위에 앉는다. 제비로서는 기저귀인지 무언지 알 턱이 없을 수 있고, 굳이 알 까닭이 없겠지. 처음에는 나한테 등을 보이며 앉더니, 이내 머리를 보이며 앉는다. 이러다가 다시 등을 보이며 돌려 앉는다.


  맑은 햇살과 맑은 날갯짓과 맑은 빨래가 얼크러진다. 내 눈을 맑게 틔우고 내 마음을 맑게 다스린다. 나한테는 제비와 같은 날개가 없어 제비와 같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으나, 제비를 바라보면서 제비가 날아다니며 바라보았을 이 땅 모습을 가만히 머리로 그린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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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에 얹은 책

 


  작은 아이가 다리에 그림책을 얹고 읽는다. 작은 아이한테 그림책은 무척 큰 책이다. 다리를 곧게 펴고 앉아 그림책을 얹으면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책으로 덮인다. 나무로 빚은 종이책이 아이 살결에 닿는다. 나무내음과 나무빛이 서린 책이 아이 살갗에 닿는다. 나무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에서 푸른 숨을 마시는 아이는, 나무한테서 목숨을 얻어 빚은 종이책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읽는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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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에서 책읽기

 


  네 식구 함께 여수로 마실을 갑니다. 도시사람이 자주 찾는다 하는 여수바다는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다른 무엇보다 여수에 한 군데 씩씩하게 뿌리내려 책살림 일구는 헌책방 〈형설책방(형설서점)〉이 궁금합니다. 여수시가 여수다운 삶터 빛을 곱게 돌보도록 생각밭을 일구는 헌책방 〈형설책방〉은 어떠한 이야기로 책삶을 나누는가 궁금합니다.


  고흥 도화 동백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 달려 읍내로 나옵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사십 분 남짓 달립니다. 한 시간 훌쩍 넘는 시외버스에서 두 아이와 옆지기가 죽을 동 살 동합니다. 나는 아무 말을 안 했지만 나도 속이 메스껍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살다가 이웃 가까운 도시로 나오는 마실길만 하더라도 참 고단하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여수 버스역에서 내린 다음 택시로 갈아탑니다. 택시삯 3900원을 들여 여수경찰서와 여수등기소 사이 헌책방으로 찾아갑니다. 택시 일꾼은 ‘여수에 한 군데 있는’ 헌책방을 모릅니다. 그래도, 여수 버스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는 ‘여수에 한 군데 있는’ 헌책방을 잘 압니다.


  택시는 엑스포를 펼친다는 곳 옆을 끼고 달립니다. 퍽 먼발치에서도 우람하게 지은 건물이 보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저 우람한 건물에 들어가서 무언가 구경하려고 몇 시간이고 줄을 선다고 합니다. 아마 구경거리가 많으니까 저곳으로 찾아가겠지요.


  택시를 타고 달리는 짧은 길이지만, 여수시에서는 이웃 다른 도시에서와는 좀 다른 빛깔을 느낍니다. 여수하고 이웃한 순천이나 광양하고만 대더라도, 여수 시내에서는 푸른 빛깔이 꽤 짙습니다. 가까이에 숲이 있고, 곁에 숲이 있으며, 둘레에 숲이 있습니다. 여수도 순천도 갯벌이나 바닷가에 온갖 건물과 아파트와 시설을 때려지으면서 관광산업을 북돋우려 똑같이 애쓰기는 하지만, 여수에는 아직 건물이나 아파트나 시설에 덜 밀리거나 안 밀린 숲이 제법 있습니다.


  나무숲이 있기에 이곳 여수에서 책숲을 돌보는 일꾼 두 분이 땀흘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풀숲이 있어 이곳 여수에서 이야기숲을 꿈꾸는 일꾼 두 분이 책손을 기다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여수 길그림에는 여수 헌책방이 적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수 길그림에는 여수 헌책방뿐 아니라 여수 새책방도 안 적힙니다. 관광길그림이건 이런저런 길그림이건 책방을 하나하나 적바림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내는 관광길그림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그려 넣지만, 부산 시내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알뜰히 그려 넣지는 않아요. 서울에서도 인천에서도 대구에서도 광주에서도 대전에서도 길그림에 헌책방이건 새책방이건 제대로 그려 넣지 않아요.


  그렇지만, 책방 일꾼은 스스로 책사랑을 빛내며 예쁜 책길을 걷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들은 책사랑이 빛나는 책길을 함께 걷습니다.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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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는가
 [푸른 책과 함께 살기 97] 파비오 제다,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

 


- 책이름 :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 글 : 파비오 제다
- 옮긴이 : 이현경
- 펴낸곳 : 마시멜로 (2012.4.1.)
- 책값 : 12000원

 


  무척 어린 어느 날 일을 떠올립니다. 얼추 서른 해쯤 앞서, 장마비가 장대처럼 푹푹 꽂히듯 쏟아지는 날, 사람들은 집에서 부침개도 부쳐서 먹고, 밥도 해서 먹으며, 수제비도 끊어 먹는다 하지만, 다른 짐승들은 먹이를 어떻게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자그마한 참새와 도시에 많은 비둘기를 비롯해, 까치나 까마귀나 제비나 박쥐나 노루나 사슴이나 멧토끼는 어떻게 먹이를 찾을까 궁금했습니다. 풀을 먹는 짐승은 빗물에 젖은 잎사귀를 뜯어먹지 않는다 했는데, 그러면 풀짐승은 장마철에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나 궁금했습니다.


  어린 나는 또 다른 대목이 궁금합니다. 이제 꽁꽁 얼어붙는 겨울입니다. 영 도 밑으로 십오 도나 이십 도 떨어지는 오들오들 떨리는 이 겨울에, 참새부터 멧토끼까지, 모두들 어떻게 추위를 견디거나 겨우살이 먹이를 찾을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시골마을 어른들은 멧짐승을 걱정해서 멧짐승 먹이를 어느 한켠에 마련해 둘는지 궁금했어요. 예부터 몹시 춥고 시린 겨울에는 멧짐승이 먹이를 찾아 사람들 살림집까지 찾아온다 했는데, 먼먼 옛날 먹이를 찾아 여느 살림집에 찾아온 범이나 여우나 사슴이나 멧토끼를 바라보았을 옛사람은 이들 멧짐승이나 들짐승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궁금했어요.


  궁금한 마음은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으레 ‘내가 토끼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토끼 몸이 되어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빕니다. ‘내가제비라면 어떻게 지낼까?’ 하고 생각하며 제비 몸뚱이로 들판이나 멧자락을 누비며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 만한가 하고 알아봅니다.


..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돼. 누군가 신과 땅, 인간을 모욕하며 네 기억, 네 추억, 네 감정에 상처를 낸다 해도, 권총이나 칼, 돌을 손에 쥐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줘.” … “아프가니스탄인들과 탈레반은 다르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선생님을 죽인 그 사람들의 국적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요? … 자신들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일들이,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  (14, 42∼43쪽)


  개미는 시골에서 살지만 도시에서도 삽니다. 개미는 처음부터 도시에서 살아갈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을 밀어 도시로 만드는 바람에 개미는 도시에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 ‘자, 이곳을 밀어 없앨 테니 너희 스스로 알아서 떠나.’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한테뿐 아니라, 쥐한테도 ‘너희는 새 보금자리로 떠나렴.’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개미나 쥐한테뿐 아니라, 풀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도 ‘이제 너희는 얼른 너희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날려 새로운 터에서 자라 보거라.’ 하고 알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삽차로 밉니다. 사람들은 그냥 땅을 깊이 파고는 시멘트와 쇳덩이를 단단히 박습니다. 이 다음에 사람들은 흙땅에 시멘트를 가득 붓습니다. 개미도 쥐도 풀도 꽃도 나무도, 한꺼번에 떼죽음입니다. 죽는 줄조차 못 느끼며 그냥 죽습니다. 두더쥐도 지렁이도 죽습니다. 참새도 까치도 죽습니다. 아직 깨지 않은 알인 채 죽는 멧새와 들새가 있습니다. 거미도 죽고 메뚜기도 죽습니다. 개구리도 죽으며 뱀도 죽어요. 모두 죽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모든 도시는 숱한 목숨들을 한꺼번에 마구 죽인 뒤에 세운 무덤누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얼거리를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이 얼거리까지 헤아릴 겨를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너무 바쁩니다. 도시에서는 모두들 밥벌이로 몹시 지칩니다. 도시에서는 내 식구들 작은 보금자리 얻느라 매우 고단합니다. 개미를 생각하거나 쥐를 헤아리거나 풀·꽃·나무를 살필 만한 틈이 없다 할 만해요.


  새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이 아파트를 짓느라 어떤 논밭이나 시골을 망가뜨렸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오래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에도 ‘이 아파트가 서기까지 얼마나 예쁜 논밭이나 시골이 무너졌을까’ 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합니다.


  새 고속도로가 날 적에도, 새 고속철도가 뚫릴 적에도, 새 공항이 생길 적에도, 새 놀이공원이 들어설 적에도, 새 공장이나 발전소가 설 적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문화와 문명과 시설과 설비 때문에 소리와 이름과 주검 없이 사라지는 목숨들을 헤아리는 사람은 찾아보지 못해요.


.. 내 고향은 아주 좋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곳도 아니고 전기도 없는 곳이었다. 불빛이 필요하면 석유램프를 사용하곤 했다. 그렇지만 사과가 있었다. 난 사과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 내 눈앞에서 사과 꽃봉오리가 터지고 그것이 사과로 변해 갔다 … 사실 우린 더 이상 돈이 없었고 그 브로커는 우리를 국경 너머로 데려다줄 발루치족과 이란인들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아주 컸다. 그러니까 그 사람 잘못은 아니었다. 우린 그 사람 자식이 아니니까. 우리를 데려다주기 위해 돈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  (35, 87∼88쪽)


  저녁부터 빗소리를 듣습니다. 장마비는 거센 바람하고 찾아옵니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잦아드는 새벽나절, 멧새 몇 마리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후박나무 가지에 앉아 열매를 따먹습니다. 비가 살짝 그은 틈을 타서 고픈 배를 채우고 싶겠지요. 나랑 옆지기는 이 시골집에 후박나무를 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앞서 이 땅에 집을 짓고 아이들 낳아 살아가던 예전 어른들이 후박나무를 심었어요. 후박나무는 우람하게 자라 가지를 죽죽 뻗으며, 사람한테는 예쁜 그늘과 시원한 바람노래를 들려줘요.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쉼터가 되면서 좋은 잔치밥상이 되어 줘요.


  뒤꼍 뽕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자 잔치밥상입니다. 매화나무도 감나무도 멧새와 들새한테는 좋은 쉼터이면서 잔치밥상입니다. 사람도 매화열매를 먹고 새도 매화열매를 먹습니다. 사람도 감알을 먹고 개미도 감알을 먹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마을 논밭은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일 뿐 아니라 도시마을 사람들을 먹여요. 도시마을에는 논도 밭도 없으니 도시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시골마을 사람들을 먹이지 못해요. 도시마을에서는 시골마을 사람들 먹여살릴 길이 없지만, 이에 앞서 도시마을 스스로 먹여살릴 길이 없어요. 돈을 낳고 돈을 키우지만, 돈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돈은 먹을거리하고 바꿀 수 있는 이음고리이지만, 누군가 먹을거리를 흙에서 거두지 않는다면 아무도 밥을 먹을 수 없어요.


..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들 앞으로 가서 ‘하나만 사 주세요. 제발 하나만 사 주세요.’라고 말하며 파리처럼 귀찮게 달라붙어야 했다.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나를 함부로 대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게 싫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산다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난 학대받는 데애 지쳐 버렸다. 근본주의자들과 경찰이 지긋지긋했다 … 나는 사람들이 신분증이나 종교적 신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  (74, 81, 82쪽)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돈이 밥을 만들지 못하듯, 사람이 돈을 먹지 못하듯, 총이나 칼은 평화를 이루거나 부르지 못해요. 총이나 칼은 오직 전쟁을 이루거나 부를 뿐이에요. 총이나 칼은 전쟁을 비롯해 미움과 눈물과 슬픔과 아픔을 이루거나 부릅니다. 총이나 칼을 손에 쥔 사람은 고운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한테 총이나 칼을 손에 쥐도록 이끄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착한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평화를 지킬 뜻’으로 구축함도 만들고 전투기도 만들며 잠수함도 만든다 외치지만, 정작 구축함이나 전투기나 잠수함을 만든 다음에는 전쟁을 꾀합니다.


  한국이랑 이웃한 일본이 ‘자위대’라 하는 군대를 만든 일은 평화를 지킬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고 싶은 뜻이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군대나, 아니 남녘땅에 있는 군대나 북녘땅에 있는 군대도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전쟁을 꾀하려고 군대를 둡니다.


  전쟁은 옆나라를 치는 전쟁이 있고, 제 나라 여느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전쟁이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로 쿠테타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는 군대(또는 경찰 또는 전투경찰)를 앞장세워 독재에 맞서려는 사람들을 총과 칼로 찍어 누르곤 합니다. 가만히 돌이키면, 경찰이 하는 일 또한 군대와 똑같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지키는 일이 아니에요.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는’ 일이 경찰들 몫입니다. 정치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경찰들 힘을 빌어 여느 마을 여느 사람을 억누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마을에서 경찰이 할 일은 없습니다. 참말 평화롭다 하는 시골마을에서 경찰은 제구실을 못합니다. 도둑이 많은 도시에서 경찰이 바쁘다 하는데, 도시에는 도둑이 많을밖에 없습니다. 도시라는 삶터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 밥을 나누는 얼거리가 아니거든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진 이가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면서 등치도록 하는 얼거리예요. 1등을 하든 2등을 하든 아무튼 성공을 해야 살아남는 도시예요. 경쟁을 붙이고 싸움을 붙이는 도시예요. 착하거나 여린 사람은 뒤로 밀리다가 굶습니다. 밥을 먹는 일이 전쟁이나 싸움처럼 되고 말아, 도시에서는 도둑이 끊어질 수 없어요. 돈이 더 있으면 떵떵거리며 놀음놀이를 누릴 수 있다는 바보스러운 꿈이 연속극으로든 영화로든 책으로든 자꾸 쏟아지니까,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 도둑이 되고 말아요. 밥도 사랑도 삶도 나누지 못하는 얼거리인 도시에서 마음이 다친 이들이 도둑이 되고 말아요.


.. “지금 하자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저 말 한 마디 때문에, 혹은 의미 없는 어떤 규정 때문에 거리에서 개처럼 죽을 수 있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벗어나게 해 준 네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 …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보지 못한 것,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곳 쿰에서, 공장 밖으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위험하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난 완벽하게 (떠날) 준비가 됐어.” ..   (141, 151쪽)


  파비오 제다 님이 쓴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마시멜로,2012)를 읽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사내아이가 고향마을을 떠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프며 슬픈 삶자국을 찬찬히 돌아보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 사내아이를 낳아 사랑스레 돌보던 어머니는 이 아이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아, 이 아이를 이웃나라로 데리고 가서는 ‘그곳에 가만히 놓’고 고향마을로 돌아갑니다. 이 아이는 제 목숨이 개죽음으로 사라질는지 안 사라질는지 모릅니다. 아직 온누리를 스스로 널리 겪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조금씩 느낍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눌리며 괴로운 여느 사람들이 삶을 붙잡으며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너무 가늘고 작은 탓에, 이 아이는 이 가늘고 작은 삶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려고 온힘을 쏟아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이에서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항상 그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분명히 말하지만 50유로였다. 할머니는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주 이상하고도 친절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  (191, 217쪽)


  푸른책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를 읽는 사람 가운데 이 아이가 겪어야 한 일을 ‘눈앞에서 그리듯 떠올리’거나 ‘코앞에서 지켜보듯 믿을’ 만한 이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서 먹는 오늘날 푸름이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돈 몇 푼 치르면 어디에서든 맛난 밥을 사다 먹을 수 있는 오늘날 공무원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낱낱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나는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나요. 내 동무는 누구일까요. 나는 내 동무를 얼마나 아끼며 살아가나요.


  내가 입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나는 몸으로 전쟁 아닌 평화를 이루려고 어떤 일을 하는가요. 전쟁 아닌 평화가 지구별에 깃들 수 있도록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땅에서 전쟁 아닌 평화가 싹터 자랄 수 있도록 내가 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왜 스무 살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는 군대에 들어가야 할까 궁금합니다. 푸르며 빛나는 젊은 사내가 군대에서 총칼을 손에 쥐며 배우는 ‘사람 죽이는 솜씨’는 이웃과 동무를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이 될까 궁금합니다.


.. “이탈리아 학원을 6개월 다닌 뒤에 사설학원 학생 자격으로 중학교 3학년 시험을 봤어요.” “그럼 그 전에는?” “아무것도요. 아프가니스탄 고향마을에서 잠깐 학교를 다녔지만 그 이외는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어요.” 나는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탈레반에 끌려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그 이전에도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지만 체류허가증을 받고 나서야, 생존에 필요한 안정을 찾고 나서야, 나는 다시 어머니와 남동생과 누나를 떠올린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을 지워 버렸었다. 내가 사악하거나 몰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경을 쓰기 전에 우선 내 자신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내 삶을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겠는가 ..  (264, 271쪽)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아직 아이들한테 전쟁 아닌 평화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한국땅 초·중·고등학교는 이제껏 아이들한테 평화 아닌 전쟁을 가르친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과 ‘입시지옥’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입시전쟁을 치르는 병사’와 ‘입시지옥을 가로지르는 전사’를 말합니다. 아이들은 그저 책상 앞에 달라붙어 문제집과 시험지를 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책상 앞에서 군인이 됩니다. 아이들이 손에 쥔 연필은 총이나 칼입니다. 아이들은 동무나 이웃이 아닌 적군을 마주하며 교실에서 부대낍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무나 이웃을 사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는 솜씨를 익힙니다.


  고등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대학교에서 새삼스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대학교까지 마친 아이들은 회사에서 다시금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짓밟습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서로를 살리거나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그래도,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에 나오는 씩씩한 아이는 스스로 죽음길을 가로질러 삶길로 나아갔어요. 미움과 시샘과 따돌림과 우쭐거림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과 꿈과 빛을 찾아 먼길을 나섰어요.


  슬픈 한국땅에도 미움 아닌 사랑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단한 한국땅에도 시샘 아닌 믿음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온통 전쟁투성이 한국땅에도 따돌림 아닌 꿈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디를 가나 도시로 바뀐 한국땅에도 우쭐거림 아닌 빛 찾는 아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4345.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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