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신 신기는 어린이

 


  동생은 아직 혼자 신을 꿰지 못한다. 누군가 곁에서 예쁘게 신겨야 한다. 누나가 곧잘 동생 신을 신겨 보려 애를 쓴다. 아직 동생한테 신을 예쁘게 신기지는 못하지만, 동생은 누나가 신을 신기려 할 적에 퍽 오래 가만히 지켜본다. 이러다가 끝내 신기지 못하니 골을 부린다. 어쩌겠니. 누나가 아직 힘이 드는걸. 골을 부리고 싶으면 네가 얼른 커서 너 스스로 신으렴.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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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머리띠 쓰기

 


  곁에서 누나가 으레 머리띠를 쓰니, 동생 산들보라도 가끔 저한테도 머리띠를 씌워 달라 조른다. 머리카락 얼마 안 난 아기가 머리에 누나 머리띠를 쓰고 논다. 머리띠 말고 네 바지를 머리에 쓰고 놀면 어떻겠니.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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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15 09:36   좋아요 0 | URL
사진을 볼때마다 세분(!)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동생들은 형이나 언니, 누나가 하는 것을 꼭 따라 해보고 싶어하나봐요. 된장님도 어릴 때 그러셨는지...^^

파란놀 2012-07-16 09:43   좋아요 0 | URL
음... 글쎄... 그건 모르겠네요 @.@
 


 글씨 ㄹ 빚는 어린이

 


  글씨를 익히는 아이가 연필을 방바닥에 죽 늘어놓는다. 연필을 이모저모 엮어 ㄱ을 빚고 ㄴ을 빚는다. 이내 ㅁ을 빚은 다음 ㄹ을 빚는다. 동생은 누나가 빚은 연필 글씨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무어라무어라 옹알거린다.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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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 고영일 사진평론집
고영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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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읽는 마음
 [찾아 읽는 사진책 101] 고영일,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을 읽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그린 그림을 읽습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안 읽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찍은 사진을 읽습니다.


  지구별에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살아갑니다. 곧, ‘글읽기·그림읽기·사진읽기’는 다 다른 빛깔과 무늬로 나타납니다. 똑같은 비평이나 평론은 나올 수 없습니다. 같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바라보면서도 다 다른 생각과 느낌과 이야기가 나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학비평이든 사회비평이든 예술비평이든 엇비슷한 비평이 참 많아요. 참말 사람들은 제대로 ‘읽기’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읽기를 제대로 못 하는 일을 나무라거나 꾸짖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읽기에 앞서 ‘쓰기’부터 제대로 못 합니다(‘쓰기’에 앞서 ‘생각하기’와 ‘살아가기’조차 제대로 못한다 할 테지만). 스스로 이녁 삶을 글로나 그림으로나 사진으로나 스스럼없이 쓰지 못 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앞서 스스로 누리는 삶이기에, 스스로 즐겁게 쓰는 글이요 스스로 기쁘게 그리는 그림이요 스스로 신나게 찍는 사진이에요. 작품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애써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로 일구어야 할 글·그림·사진이 아니에요. 문화재단에서 돈을 받아야 글을 쓰나요. 문화부에서 돈을 받아야 그림을 그리나요.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히려고 사진을 찍나요.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스스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습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춤이나 노래로 담습니다. 내 삶을 내 이야기로 빚습니다. 내 이야기는 글로도 태어나고 그림으로도 태어나며 사진으로도 태어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 사진밭을 일군 고영일 님이 남긴 글을 그러모은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를 읽습니다. 고영일 님은 “무엇을 찍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현실에 몸을 내던져서 어떻게 관계 짓고 있느냐 하는 데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14쪽).” 하고 말합니다. 마땅한 말씀입니다. 역사에 다큐멘터리를 남기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눈부신 패션문화를 이끌거나 돈을 잘 벌려고(상업사진) 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스스로 좋아서 찍습니다. 글은 스스로 좋아서 씁니다. 그림은 스스로 좋아서 그립니다.


  반 고흐도, 벨라스케스도, 렘브란트도, 무슨무슨 역사나 문화나 예술을 이루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좋아하기에 그림을 그렸어요. 스스로 삶을 불태우는 꿈을 꾸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박경리나 황순원이나 신동엽이 역사나 문학이나 예술을 뽐내려고 글을 썼을까요. 스스로 사랑하기에 글을 썼어요. 스스로 삶을 일구는 꿈을 빛내면서 글을 썼어요.


  사진찍기란 내 삶을 찍는 일입니다. 사진읽기란 내 삶을 읽는 일입니다. 나는 내 삶을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사진으로 한 장씩 찍습니다. 나는 내 삶을 기쁘게 누리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한 장씩 읽습니다.


  고영일 님은 사진모임에서 오래도록 일했습니다. 한국땅 사진모임이 여러모로 말썽거리가 많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점수로 예술가가 되는 제도가 신봉되고 있느냐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17쪽).” 하고 꾸짖습니다.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한 작품활동만이 권장되는 분위기에서는 장차의 위상은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27쪽).” 하고 나무랍니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바로 사진작가가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107쪽).” 하고 외칩니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점수를 쌓아야 시인이 되거나 소설가가 되지 않습니다. 점수를 쌓았기에 화가가 되거나 사진가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시를 좋아하면서 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스스로 그림을 아끼면서 그림하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화가입니다. 스스로 사진을 사랑하면서 사진을 삶으로 녹여내는 사람이 사진가입니다.


  나한테 예쁘며 반가운 짝꿍을 사랑스럽게 찍는 사람도 사진가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귀여운 모습을 즐겁게 찍는 교사도 사진가입니다. 동무들과 즐겁게 한때를 보내며 손전화 기계로 신나게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사진가예요.


  손에 사진기를 들었으면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스스로 예쁘게 보살피면서 손에 사진기를 들고는 활짝 웃음꽃 터뜨리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진가입니다.


  “작품을 발표할 때는 촬영 당시의 상황적 변명은 있을 수 없으며, 최선을 다한 후 작가가 책임질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65쪽).” 같은 말은 ‘전문 직업 사진가’한테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좀 어려운 말이라 할 만하지만, ‘더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더 잘 못 찍었다’ 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까닭은,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사랑스러운 짝꿍을 참 사랑스럽게 찍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 사랑스러운 짝꿍을 그리 사랑스럽게 찍지 못했을 때는 언제일까요? 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이들이 참 곱고 환하게 나온 때는 언제인가요? 내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내가 사진으로 담는데, 막상 그리 볼 만하게 나오지 못한 때는 언제인가요?


  스스로 까닭을 알면 됩니다. 스스로 까닭을 느끼면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때를 잘 깨달으면 됩니다. 내 아이들을 더없이 예쁘게 바라보며 예쁜 모습이 담기도록 하는 사진은 언제 찍을 수 있는가를 잘 느끼면 됩니다.


  어떤 마음일 때에 밥을 맛있게 지어 식구들하고 나눌까요. 어떤 마음일 때에 까르르 웃으며 식구들하고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까요. 어떤 마음일 때에 맑은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부를까요.


  마음을 알 때에 마음껏 살아갑니다. 생각을 할 때에 슬기롭게 생각합니다.


  고영일 님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소재에 맡겨질 자기의 마음, 즉 그 소재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고 보면,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마음을 얹을 소재가 항상 모색되는 사진생활을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126쪽).” 하고 말씀합니다.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생활사진이건 상업사진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어느 곳에서 어떤 사진을 누리든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마음이 있어야 밥을 맛있게 지어요. 마음이 있어야 빨래를 즐겁게 해요. 마음이 있어야 내 사랑을 이녁한테 보내요. 마음이 있어야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마음이 있어야 내 작은 밥그릇을 이웃하고 나눌 수 있어요.


  이리하여, 고영일 님은 “나는 ‘잘 찍은 사진’이라는 말은 삼가 해야 하고, 오직 ‘좋은 사진’이기를 바라고 또 들추어져야 될 것이라고 마음먹기에, 그런 표현을 권장하고 싶은 것이다. ‘좋은 사진’에는 반드시 ‘좋은’ 까닭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321쪽).” 하고 당신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아주 마땅한 말씀입니다. 사진은 오직 ‘좋은’ 사진 한 가지여야 합니다. 글은 오직 ‘좋은’ 글 하나여야 합니다. 그림은 오직 ‘좋은’ 그림 하나여야 해요. 삶은 오직 ‘좋은’ 삶 하나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오직 ‘좋은’ 사랑 하나일 뿐이에요. 내가 날마다 먹는 밥 또한 늘 ‘좋은’ 밥이어야 해요. 굳이 나쁜 밥을 먹을 까닭이 없어요. 굳이 ‘조금 안 좋은’ 밥을 먹을 일이 없어요.


  좋은 햇살을 누립니다. 좋은 바람을 쐽니다. 좋은 물을 마십니다. 좋은 집(비싼 집이 아닌 좋은 집)에서 살아갑니다. 좋은 책(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닌 좋은 책)을 읽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됩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말을 읊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빛을 밝히고,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썰미를 북돋우며, 나 스스로 가장 좋은 눈망울로 사진을 찍습니다.


  오로지 좋은 삶을 누리면서 좋은 사진을 찍습니다. 오로지 좋은 사랑을 빛내면서 좋은 사진을 읽습니다. 처음도 끝도 하나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결같습니다. 나한테 가장 좋은 사진기(가장 비싸거나 값진 사진기가 아니라, 내 삶에 가장 걸맞는 즐거운 꿈을 찍을 만한 좋은 사진기) 하나를 곁에 두고, 나한테 가장 좋은 옆지기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돌보면서, 나한테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내 가장 좋은 손길로 살며시 어루만지면,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사진 하나 태어나요.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삶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사랑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진을 읽는 마음은 사람을 읽는 마음입니다. (4345.7.14.흙.ㅎㄲㅅㄱ)

 


―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고영일 글,한울 펴냄,2011.3.3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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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장마를 어떻게 보냈을까

 


  엄살을 부리고픈 마음이 없고, 그렇다고 딱히 견주고픈 마음은 없으나, 2012년 장마철은 2011년 장마철보다 한결 수월하다고 느낀다. 아직 장마철이 끝나지 않았으니 더 두고보아야 하는데, 2011년 장마철은 2010년 장마철하고 대면 되게 힘들었는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살아낸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느끼거나 치르는지 잘 모른다. 다만, 혼자 살던 때와 옆지기하고 둘이 있던 때에는 장마철이든 아니든 썩 대수롭지 않았다. 두 사람 살림이더라도 우리 집에서는 빨래 옷가지가 얼마 없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비로소 ‘장마철과 겨울철 빨래가 참 고되구나’ 하고 깨닫는다.


  2008년부터 네 차례 장마철을 치렀다. 이제 다섯 차례 맞이하는 장마철이다. 올 장마철은 햇볕 구경하기 몹시 어렵지만, 여러 날 내리 빗줄기 퍼붓는 날은 없다. 나로서는 이 대목이 참 고맙다. 제아무리 드세게 빗줄기가 퍼붓더라도 딱 하루에서 그치고 이듬날은 빗줄기가 듣지 않고 구름만 가득하더라도 반갑다. 퍼붓는 빗줄기도 하루 내내 퍼붓지는 않고, 틈틈이 말미를 두니까 반갑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지난 장마는 어떻게 보냈을까 하고 떠올린다. 아이들 옷가지를 날마다 두어 차례나 서너 차례 손빨래를 하면서 ‘아무렴, 잘 보냈지. 아무렴, 올해도 잘 보내잖아.’ 하고 생각한다. 날씨가 궂고 축축해 틈틈이 새 빨래를 해서 말려야 하는 날이 끝나면, 나도 좀 수월하게 기계빨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기계빨래를 한대서 내 몸이 가뿐해진다고는 느끼지 않아, 좀처럼 빨래기계를 안 쓴다. 아니, 이제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 돌이 지나고 보니, 예전보다 오줌기저귀나 오줌바지가 한결 적게 나와, 날마다 빨래를 해야 하기는 하되, 빨래기계를 돌릴 만큼 빨랫거리가 넘치지는 않는다.


  어느덧 새날이 밝는다. 오늘은 오늘 몫만큼 새 빨랫거리가 나오겠지. (4345.7.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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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7-14 15:1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2010년 장마때 살던 지하에 빗물이 마구 들어와 양동이로 물을 퍼낸 악몽이 생각나네요ㅜ.ㅜ

파란놀 2012-07-16 09:44   좋아요 0 | URL
에고... 지하방에서는 안 살아야 할 텐데요...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