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 사진에 관한 특별한 대화
앤 셀린 제이거 지음, 박태희 옮김 / 미진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삶을 찍는 사진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5] 앤 셀린 제이거,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미진사,2008)

 


- 책이름 :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 글 : 앤 셀린 제이거
- 옮긴이 : 박태희
- 펴낸곳 : 미진사 (2008.3.15.)
- 책값 : 3만 원

 


  (1) 사랑하는 삶


  여러 날 햇볕 한 줌 들지 않던 빗줄기가 그칩니다. 이듬날부터 다시 빗줄기가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햇볕 넓게 내리쬘 수 있고, 새삼스레 여러 날 햇볕 없이 비구름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빗줄기 그친 하늘 가장자리를 올려다봅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쪽 멧등성이를 바라봅니다. 해가 살짝 났다 들어갔다 하며 이우는데, 구름마다 짙붉게 타오릅니다. 꼭 불이 난 구름이 하늘을 흐르는 듯합니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녀오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푸른 들판과 하얀 구름, 여기에 살몃살몃 드러나는 새파란 하늘이 참 예쁘게 어우러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참 예쁘구나 싶어 자전거를 멈추고 아이하고 오래도록 들과 하늘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선 바로 위쪽 하늘이랑 저 먼 멧자락 너머 하늘은 빛깔이 다릅니다. 같은 하늘빛이지만, 머리 위 하늘은 짙은 하늘빛이요, 저 먼 하늘은 옅은 하늘빛입니다.


.. 현재 우리는 가장 손쉬운 사진 촬영의 최고봉에 오른 것 같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즉각성과 자동성으로 인해 정작 사진의 심장부인 빛에 대해선 차츰 잊고 있는 중이다 … 실제로 우리가 작품을 보면서 충분히 이해하고 느낄 만큼 시간을 보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 사진의 힘은 삶에 대한 물음 앞에 스스로를 서게 만드는 것이다.  (6, 9, 10쪽/앤 셀린 제이거)

 


  자동차 드나들지 않는 시골 들길 한복판에 서서 귀를 기울입니다. 온갖 새들이 저마다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는 자전거를 멈추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으나, 자전거를 달리는 동안에 새소리를 듣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언제나 새소리를 듣겠지요. 새소리와 벌레소리와 개구리소리를 듣겠지요. 들에서 일하지 않는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새소리를 못 듣겠지요. 벌레소리도 못 듣고 개구리소리도 못 듣겠지요.


  늘 듣는 소리는 늘 품는 마음이 됩니다. 늘 보는 모습은 늘 빚는 생각이 됩니다. 맑은 소리를 들으면서 맑은 마음을 품습니다. 고운 모습을 보면서 고운 생각을 빚습니다. 맑은 마음을 품으면서 맑은 꿈을 키웁니다. 고운 생각을 빚으면서 고운 사랑을 북돋웁니다. 맑은 꿈에서 맑은 말을 길어올립니다. 고운 사랑에서 고운 이야기를 꽃피웁니다.


.. 아름다움이란 우아한 붓놀림, 재료, 구도나 모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개념예술은 명백하게 증명해 보인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매우 고상한 관념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건 거의 없다 … 충분히 혼자 즐기면서 작업을 하고 스스로 질문을 제기한다 ..  (20쪽/토마스 데만트)
.. 찍기 전엔 뭘 찍을지 절대 모른다. 촬영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 오래 전에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게 최고인지 끝내 골라낼 수 없었다 … 사진도 똑같다. 당신 안에 없으면 없다.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 남들이 내 사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든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사진들을 보며 무엇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다 ..  (24, 31, 32쪽/윌리엄 이글스턴)

 

 


  내가 좋아하는 삶은 내가 좋아하는 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은 내가 좋아하는 삶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으면, 이들 그림이나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삶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느끼기에 어떤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읽으면서 흐뭇하게 웃거나 시원하게 울 수 있습니다.


  글 한 줄은 글을 쓴 사람 넋을 담는 거울입니다. 그림 한 점은 그림을 그린 사람 얼을 담는 그릇입니다. 사진 한 장은 사진을 찍은 사람 뜻을 담는 주머니입니다. 좋아하는 삶을 누리면서 좋은 넋 빛나는 글을 빚습니다. 좋아하는 삶을 즐기면서 좋은 얼 눈부신 그림을 빚습니다. 좋아하는 삶을 나누면서 좋은 뜻 자라나는 사진을 빚습니다.


  마음에 앙금이 있으면, 글을 쓰면서 앙금이 스며듭니다. 마음에 생채기가 있으면, 그림을 그리면서 생채기가 배어듭니다. 마음에 얼룩이 있으면, 사진을 찍으면서 얼룩이 묻어납니다.


  그런데, 앙금이 있대서 덜 좋거나 더 나쁜 글이 아니에요. 생채기가 있으니 볼 만하지 않거나 못마땅한 그림이 아니에요. 얼룩이 있대서 볼썽사납거나 아쉬운 사진이 아니에요.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라면 어떠한 글이라도 좋아요. 스스로 아끼는 삶이라면 어떠한 그림이라도 아낄 만해요. 스스로 사랑하는 삶이라면 어떠한 사진이라도 사랑스러워요.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는 글인 만큼, 나는 내가 읽으려고 글을 씁니다. 스스로 내 삶을 짚는 그림인 만큼, 나는 내가 읽으려고 그림을 그립니다. 스스로 내 삶을 아로새기는 사진인 만큼, 나는 내가 읽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 스스로 모든 것을 차근차근 실제로 해 보면서 ‘발견’해야 한다 … 그들의 사진 속에서 감지되는 강렬한 미적 감수성은 서구의 환경과 기술에 부응할 뿐이지 내가 살고 있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 연작의 장점은 좋든 싫든 전부 안고 가는 것이다 … 내 생각에 사진가가 되려면 먼저 인생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삶이 겪어내야 하는 상처들을 사진으로 포용해야 한다.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은 순수하고 따뜻한 작품을 만들게 된다 ..  (34, 37, 40쪽/보리스 미하일로프)
.. 예술대학이란 쓰레기로 가득 찬 곳 같았다 … 애정이 있다면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그저 그들에게 다가서면 된다 ..  (146, 149쪽/랜킨)

 

 


  사랑하는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언제나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언제나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부터 즐겁게 언제나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기를 쥔 손에는 고운 사랑이 감돕니다. 사진기를 들여다보는 눈에는 고운 사랑이 맺힙니다. 사진기를 움직이는 마음에는 고운 사랑이 빛납니다.


  누군가 이런저런 모습을 찍어 달라고 바라기에 찍어 주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런저런 모습을 찍어 달라 바라기에 사진 한 장 찍어 주니 돈을 건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수박이나 오이가 먹고 싶다 하기에, 내 밭뙈기에서 수박이랑 오이를 길러 누군가한테 건네니까, 이녁이 나한테 값을 치러 줄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누군가한테 주려고 수박이랑 오이를 기를 수 있지만, 나부터 스스로 수박이랑 오이를 맛나게 먹고 싶으니 수박이랑 오이를 길러요. 남한테 주기 앞서 나부터 즐겁게 먹을 수박이랑 오이예요.


  처음부터 남한테만 팔려고 수박이랑 오이를 기를 때하고, 내가 먹으려고 수박이랑 오이를 기를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내가 먹고 내 아이들이 먹는다 할 때하고, 낯도 이름도 절도 모르는 사람이 먹는다 할 때에는, 기르는 매무새가 사뭇 달라져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키운 수박이나 오이’가 자그맣거나 겉모양이 못생겼다면 돈을 치러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속살과 속맛이 아닌 겉모습으로 재거나 따질 뿐 아니라, 오직 돈값으로 살핍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내가 키운 수박이나 오이’가 커다랗든 자그맣든 속살과 속맛이 좋은 녀석을 살핍니다. 몸으로 받아들여 목숨을 잇는 먹을거리인 만큼, 돈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며 찍는 사진일 때에는 내 사진 한 장에 값이 얼마라고 붙이지 못합니다. 내 사진 한 장은 100원도 아니지만 100억도 아닙니다. 내 사진 한 장은 그저 ‘내 사진 한 장’이면서 ‘내 목숨 한 가지’예요.


.. 내 경우 고작 스물네 살의 나이에, 아무리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해도 곧바로 독자적인 자기 세계가 구축될 리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스스로 당대 사진가 그룹 선두에 속한다는 자만심이 생기더라 … 요즘 사진가들이 사진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긴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는 시장 안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 스티븐 쇼어의 사진처럼 보이는 사진들을 계속 찍고 싶진 않다. 늘 내가 해 왔던 대로, 나한테 흥미로운 무언가를 찍을 거다 … 내가 찍은 미국의 공간들이 바로 내 모습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47, 48, 49쪽/스티븐 쇼어)
.. 누구나 필름 100통으로 사진을 찍으면 적어도 훌륭한 사진 한 장은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 한 장만으로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다 … 긴 안목으로 보자면, 사진이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쇼킹하면 지겨워진다. 겉모습보다 내면의 깊이가 중요하다 ..  (236쪽/루돌프 키켄)

 

 


  목숨을 살찌우는 밥을 키우는 일이기에, 내 밭뙈기에는 허튼 것이 깃들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를테면,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이나 송전탑이나 발전소나 골프장이나 공장 따위가 내 밭뙈기 둘레에 깃들지 못하도록 합니다. 누군가 담배꽁초 하나라도 내 밭뙈기에 버린다면 아주 끔찍합니다. 나 또한 담배꽁초이든 비닐봉지 하나이든 아무 데나 버릴 수 없습니다. 나한테 내 밭뙈기가 대수롭듯, 남한테도 남들 밭뙈기가 대수롭습니다. 나는 내 사진을 가장 고운 사랑으로 아끼고, 남들은 남들대로 이녁 사진을 이녁 가장 고운 사랑으로 아끼기 마련이에요.


  사진을 찍는 한 사람으로 생각해 봅니다. 내 사진 한 장에는 내 온 꿈과 숨과 넋을 품습니다. 내 사진 한 장에는 내 온갖 생각이랑 사랑이랑 마음이랑 믿음을 담습니다.


  사랑을 찍는 사진이기에 내 사랑이 한결같이 어여삐 빛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랑을 찍는 사진인 터라 내 사랑이 어디에서나 아리땁게 따순 손길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내가 찍는 사진


  앤 셀린 제이거 님이 엮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미진사,2008)를 읽습니다. 군말이지만, 이 책에서 들려주는 ‘사진쟁이 스물여덟 사람’ 이야기 가운데 두 사람 이야기는 이름을 잘못 적었습니다. 네덜란드사람 ‘Anton Corbijn’과 ‘Rineke Dijkstra’는 ‘안톤 코빈’이 아니요 ‘리네코 다익스트라’가 아니에요. 네덜란드사람 이름은 ‘안똔 꼬르베인’과 ‘리네께 데익스뜨라’입니다. 네덜란드말에서 ‘ij’는 홀소리이고, 소리값은 [ei]입니다. 한글맞춤법대로 적자면 ‘안톤 코르베인’과 ‘리네케 데익스트라’로 적어야 할 테고요. 한글맞춤법에서 외래어적기법은 ‘ㄸ’나 ‘ㄲ’를 받아들이지 않고 ‘ㅌ’와 ‘ㅋ’로만 적게 해요. ‘빠리’ 아닌 ‘파리’로 적도록 하고, ‘꼬냑’ 아닌 ‘코냑’으로 적도록 해요.


  아무튼, 책이름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하고 적바림하지만, 사진은 찍지도 않으며 만들지도 않습니다. 책이름으로 이러한 말을 적은 뜻은 사진은 찍는 일도 아니요 만드는 일도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사진은 그예 ‘사진기를 손에 쥐어 단추를 누르는 사람이 누리는 삶’이니까, 따로 찍는다거나 만든다고 할 수 없어요. ‘살아간다’고 할 사진이에요.

 

 


.. 세상을 보는 시각은 배워서 얻는 게 아니다. 시각은 자신의 정체성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며, 이미지를 창조하는 방식이다 …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요즘 범람하는 이미지들을 보면 대개가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진가 자신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진가의 영리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이미지들이다 … 사진 고유의 본질은 잊혀져 가고 있다 … 그 대상의 본성을 드러내려면 끈덕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난 생활공간에서 찍는 인물 사진이 좋다. 그들이 사는 집에서 찍는 게 최상이다 …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찍고 싶다 … 가난이든 장애든 역시 상처를 품고 있는 보편적인 삶의 모습들이다. 아름다움이 당당히 아름다움을 드러내듯, 그들도 상처를 드러내고 고통을 나눌 권리가 있다 ..  (54, 56, 59, 60쪽/메리 엘렌 마크)
.. 사진가의 첫 번째 책은 대단히 훌륭한 경우가 많다. 보통 10년은 걸리니까 ..  (185쪽/알렉 소스)


  사진으로 살아갑니다. 사진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진이 되어 살아갑니다. 사진으로서 살아갑니다. 사진처럼 살아갑니다. 사진하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갑니다. 사진하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사진하고 놀며 살아갑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진은 누가 누구한테서 배우지 못합니다.


  마땅하겠지요. 삶이 고스란히 사진인데, 사진을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겠습니까. 삶은 누구도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가며 깨닫는 삶이에요. 삶이 그대로 사진인 만큼, 학교를 다니건 유학을 다녀오건 사진을 배우지 못해요.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가 사진인 터라, 스스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사진이에요. 스스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삶이요, 스스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꿈이고, 스스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대학교에는 사진학과가 있습니다. 문예창작학과가 있으며, 그림을 배우는 학과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가운데에도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을 가르치는 과정을 두는 곳이 있어요. 사진은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 하지만, 정작 사회를 들여다보면 ‘사진을 배우는’ 곳과 ‘사진을 가르치는’ 곳이 되게 많아요. 참말, 사진은 배울 수 있을까요? 참말, 사진은 가르칠 수 있을까요?

 


..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다면 당신의 사진에 아무것도 담기질 않는다 … 수많은 젊은 사진가들이 형편없는 이유는, 생각을 충분히 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열정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열심히 흉내내기 때문이다 ..  (67, 69쪽/마틴 파)
.. 패션 사진은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내가 의지하는 신념을 표현하기에 좋은 도구다 … 나의 이야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  (115쪽/엘렌 폰 운베르트)


  누가 가르쳐 주기에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누가 가르쳤대서 사랑을 속삭이지 않습니다. 누가 가르친 대로 살을 섞거나 사랑을 꽃피우지 않아요. 스스로 이끄는 대로 사랑을 해요. 스스로 가장 꿈꾸거나 바라는 대로 사랑을 속삭여요.


  책에서 읽은 대로 아기를 낳는 어머니는 없어요. 비디오에서 본 대로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없어요.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비누를 묻혀 빨래를 비빔질하는 살림꾼은 없어요. 요리책이나 요리강좌에서 본 대로 밥을 하거나 반찬을 하는 살림꾼이 있을까요.


  젓가락질 하는 법을 가르칠 수 없어요. 걸레질하는 법을 가르칠 수 없어요. 걸음마를 가르칠 수 없어요. 한 발 두 발 떼도록 이끌 수는 있지만, 이렇게 걸으라느니 저렇게 걸으라느니, 이쪽으로 걸으라느니, 저쪽으로 걸으라느니, 하고 틀을 세워 가르칠 수 없어요. 걸음은 아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면서 스스로 익혀요.


  저기 하늘에 새가 날아간다고 손가락으로 가르켜야 비로소 ‘새가 날아가는구나’ 하고 깨닫지 않아요. 스스로 새를 바라보며 ‘새가 날아가네’ 하고 느낄 때에 비로소 깨달아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글·그림·사진은 글도 그림도 사진도 아니에요. 학교에서는 ‘돈을 버는 일자리’를 가르칠 뿐이에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아닌 ‘돈을 버는 길’을 가르칠 뿐이에요. 연필을 놀리고 붓을 놀리며 사진기를 놀려서 ‘돈이 될 수 있는 길’이 어떠한가 하고 보여주면서 가르칠 뿐이에요. 대학교를 나와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사진쟁이가 되기도 하지만, 대학교를 나와 글쟁이도 그림쟁이도 사진쟁이도 못 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을 알아차려야 해요. 대학교를 안 나오고도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사진쟁이가 되는 사람들을 알아보아야 해요. 글쟁이는 어떻게 글을 쓸까요. 그림쟁이는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요. 사진쟁이는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요.


  운전면허증을 따야 자동차를 몰 수 있지 않아요. 처음부터 운전면허증 따위는 없었어요. 자전거를 탈 때에 자전거면허증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슬기롭게 익히고 아름답게 배우면서 탈 수 있어야 비로소 자전거예요. 스스로 즐거우면서 내가 디딘 이 땅 이웃과 동무가 나란히 즐거울 수 있는 길이 바로 자전거를 즐겁게 사랑하면서 타는 길이에요.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스스로한테’도 ‘이웃과 동무한테’도 즐겁게 얼크러지는 길을 헤아리려 하지 않으니까 면허증이 생기고 신호등이 생겨요. 그런데, 면허증이나 신호등이 생긴대서 즐겁게 누리는 길을 찾아가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떠한가요. 공모전에서 상장을 타서 점수를 높이면 사진쟁이가 되나요. 이런저런 사진모임에 회원으로 들어가면 사진쟁이가 되나요. 돈값으로 꽤 훌륭하다는 장비를 갖추면 사진쟁이가 되나요. 필름 천 통이나 만 통쯤 찍으면 사진쟁이가 되나요. 어느 스튜디오에 들어가거나 스스로 스튜디오를 만들면 사진쟁이가 되나요. 신문사나 잡지사에 들어가 기자가 되면 사진쟁이가 되나요.


  그러니까, 사진기자란 없어요. 기자만 있어요. 기자 가운데 사진기를 들고 취재하는 사람이기에 ‘사진기자’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사진’기자란 없어요. 사진기를 손에 쥔 ‘직업인’이 있을 뿐이에요.


  사진작가도 없어요. 작가만 있어요. 작가 가운데 사진기를 들고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사람이니까 ‘사진작가’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사진’작가란 없어요. 사진기를 손에 쥔 ‘작가’가 있을 뿐이에요.

 

 


.. 내 작업은 바로 내 삶의 모습이다. 나는 내 삶을 이루는 요소들, 고향같이 편안한 곳, 사상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의 현장을 촬영한다 … 그들의 삶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찍는 것이다 … 우리가 하는 일에 열중하고 애정을 가질수록 우리가 다가가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다. 인간과 동물에게 모두 적용되는 얘기다. 어떤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대상에 대한 존중 없이 서둘러 일을 끝내면 사진 안에 거리감과 냉담함이 그대로 실린다. 하지만 당신이 대상을 섬세하게 배려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한다면 이미지의 품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 철학보다는 스스로 배우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그 일을 통해 배우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 사진가에게 가장 호화로운 생활은 자신의 촬영 대상과 하루 종일이든 일 주일 내내든 함께 있는 것이다 … 사진가들이 기껏 와서 두 시간 동안 찍고 가는 것을 보면 못마땅하다. 관점이 매우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  (78, 79, 80쪽/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은 만들지 못해요. 사진은 찍지 못해요. 사진은 스스로 태어나요.


  사진은 만든대서 빛나지 않아요. 사진은 찍는다고 이루어지지 않아요. 사진은 스스로 맑게 빛나고, 사진은 스스로 사랑스레 이루어져요.


  내 삶으로 빚는 사진이에요. 내 삶이 고스란히 사진이라는 옷을 입어요. 내 삶이 거듭나면서 이루어지는 사진이에요. 내 삶이 하나하나 알알이 빛나면서 사진이 되어요.


.. 사진을 찍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뜻이다 ..  (106쪽/마리오 소렌티)

 


  사진을 창작하는 길이나 사진을 비평하는 길이란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삶이거든요. 내 삶을 창작하거나 비평하는 길이 따로 없듯이, 사진을 창작하거나 비평하는 길이 따로 없어요. 내 삶은 내가 꿈꾸는 결과 무늬로 차근차근 이루면서 스스로 누려요. 내 사진이라 한다면, 내가 꿈꾸는 결과 무늬로 차근차근 이루면서 스스로 누리겠지요.


  이렇게 찍어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저렇게 찍어야 예술이 되지 않아요. 이렇게 읽어야 비평이 되지 않아요. 저렇게 말해야 평론이 되지 않아요.


  사진에는 이론이 없어요. 역사에도, 정치에도, 문화에도, 그리고 삶에도 이론이 없어요.


  사랑에 이론이 없고, 사랑에 비평이 없어요. 오직 내 온몸으로 부딪히고 내 온마음으로 얼싸안는 사랑 하나만 있어요. 사진은, 사랑하는 삶을 찍으면서 태어나는 만큼, 내 온몸으로 노래하는 사랑과 내 온마음으로 춤추는 사랑이 있을 때에는, 내가 무엇을 하든 모두 사진이 돼요. 내가 무엇을 하든 늘 사랑이고, 내가 무엇을 하든 늘 사진이에요.


  사진기라는 연장을 다뤄야 사진을 얻지 않아요. 사진은 그림으로도 나타낼 수 있어요. 사진은 글로도 보여줄 수 있어요. 사진은 노래나 춤으로도 드러낼 수 있어요. 사진을 영화나 연극으로 함께할 수 있어요.


  밥 한 그릇 먹으며 사진을 느껴요. 이야기꽃 피우며 사진을 맞아들여요. 파리 한 마리를 잡을 적에도, 풀 한 포기 뜯을 때에도, 늘 사진이에요. 내가 사진을 생각하면 모두 사진이 돼요. 파리가 벽에 붙은 모습을 사진기로 담아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아이 볼에 살짝 내려앉은 파리를 가만히 바라보아도 사진이에요.


  빛을 보고 그림자를 봅니다. 빛과 그림자가 얼크러지는 흐름을 봅니다. 빛과 그림자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빚는 삶을 봅니다. 내 삶을 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을 봅니다. 사진은 노상 내 가슴속에 있습니다. 잠자는 사진을 깨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결같이 펄떡펄떡 숨쉬는 상큼하고 멋스러운 사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4345.7.16.달.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덤. 한국 번역책과 외국책은 겉표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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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구름 가득한 들길
[말사랑·글꽃·삶빛 20] 좋은 말이 샘솟는다

 


  여름으로 접어든 유월부터 빗줄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한여름인 칠월에도 빗줄기는 온 들판을 적십니다. 아이들하고 들길을 걷습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들길을 달립니다. 빗줄기가 듣지 않을 때에 가깝고 먼 멧자락을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흰빛과 잿빛을 띠는 구름은 멧등성이에 걸리기도 하고, 멧자락에 따라 길게 걸치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달리다가 문득 멈춥니다. 아이들더러 저 멧자락을 바라보라고 얘기합니다. “구름이 멧등성이에 걸렸구나, 음, 그러면 ‘멧구름’이 될까? 그래, 멧구름이구나.” 하는 말이 절러 터져나옵니다.


  낮게 깔린 구름은 넓은 들판을 사뿐사뿐 걷듯 흐릅니다. 옳거니, 들판을 누비는 이 구름이라 하면 ‘들구름’이 되겠구나. 그렇다면, 아이들이랑 함께 들길을 자전거로 달리니까, 우리 자전거는 ‘들자전거’가 될까요? 들길을 들자전거로 달리며 들구름을 누린다면, 우리들은 ‘들사람’이 될까요? 들길을 들자전거로 달리며 들구름을 누리는 들사람이라 한다면, 나와 아이들은 ‘들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즐긴다 할 만할까요?


  구름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나아갑니다. 바다로 나아가는 구름은 ‘바다구름(또는 바닷구름)’이 됩니다. 바다에서 뭍으로 흐르는 구름이라면 ‘뭍구름’이라 이름을 붙일 만하겠지요. 비를 잔뜩 품어 ‘비구름’입니다. 눈을 살포시 품으면 ‘눈구름’이에요. 구름과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드리울 때에는 ‘무지개구름’일 테지요. 하늘을 온통 채운 구름일 때에는 ‘하늘구름’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천천히 노래하며 자전거를 달립니다. 나는 들마음을 아끼며 들자전거를 달립니다. 나는 들사람 되어 우리 어여쁜 들어린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들길을 달립니다. 들구름을 올려다보다가는 들풀이랑 들꽃을 바라봅니다. 들판에 한두 그루 우뚝 솟은 나무일 때에는, 이 나무를 가리켜 ‘들나무’라고 해도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들판에 지은 집일 때에는 ‘들집’이라 할 테고, 들판에서 하는 일은 ‘들일’이 되겠지요.


  아이들은 들판으로 ‘들놀이’를 갑니다. 아이와 어버이는 나란히 ‘들마실’이나 ‘들나들이’를 떠납니다. 너른 들판을 가슴에 포옥 안으며 ‘들사랑’을 헤아립니다. 들사랑을 헤아리며 ‘들꿈’을 꿉니다. 들사람은 들사랑을 꽃피우며 ‘들글’을 쓰거나 ‘들말’을 나눌 수 있을까요. 들판에서 꺾은 들꽃 한 송이 하얀 종이 한켠에 곱게 붙여 글월을 띄우면 ‘들글월(또는 들편지)’가 되겠지요. 들을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들이야기’를 빚습니다. 바다에서는 ‘바다이야기’를, 멧자락에서는 ‘메이야기(또는 멧이야기)’를, 하늘에서는 ‘하늘이야기’를 빚습니다. 마을에서는 ‘마을이야기’요, 도시에서는 ‘도시이야기’이고, 시골에서는 ‘시골이야기’입니다. 옛날 옛적 이야기이기에 ‘옛이야기’이듯, 오늘 하루 누리는 이야기일 때에는 ‘오늘이야기’입니다.


  좋은 말은 내 가슴에서 샘솟습니다. 좋은 꿈은 내 마음에서 피어납니다. 좋은 글은 내 손으로 빚습니다. 좋은 넋은 내 몸에 아리땁게 깃듭니다. (4345.7.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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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협동조합이 일본에서 어떻게 생겨났고, 어떠한 웃음과 눈물이 얼크러지면서 씩씩하게 뿌리내리는가를 다룬 책이 하나 나온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만화책을 읽으면서, 이 만화책 주인공 가시내가 '생협 소식지'를 들추면서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모습을 보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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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생협의 도전- 생협이 펼치는 경영품질 향상과 사업네트워크
일본생협연합회 지원본부 엮음, 이은선 옮김 / 그물코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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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기다린 만화책

 


  오래 기다린 만화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읽는다. 그런데 첫머리부터 어딘가 께름하다. 이야기 흐름이 첫머리부터 몹시 늘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단한 몸을 잠자리에 눕히고는 끝까지 읽는다. 사이사이 아이 오줌바지를 갈아입힌다. 밥을 차려서 식구들하고 먹는다. 빨래를 한다. 손에 다 마르고 겨우 한숨을 돌릴 만한 즈음 마저 읽는다. 그렇지만 매우 따분하다. 왜 이렇게 느낄까?


  그래. 내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읽으려 하던 만화책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작은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꽃피우는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만화책이 넷째 권에 이르자 그만 ‘작은 마을’과 ‘작은 아이들’과 ‘작은 사랑’을 몽땅 놓치거나 잃는다.


  오래 기다리던 만화책이지만 애써 읽으면서도 즐거운 생각이 샘솟지 않는다. 앞엣권 세 권은 더 장만해서 내 좋은 이웃한테 선물하기도 했는데, 넷째 권을 읽고 나서는 이제까지 이어온 세 권 이야기는 무언가 싶어 쓸쓸하다.


  작은 마을은 참 작아요. 작은 아이들은 참 작아요. 작은 사랑은 참 작아요. 그런데, 작은 마을이라 하지만, 이곳도 마을이에요. 작은 아이들이라 하지만, 이들도 아이요 사람이며 목숨이에요. 작은 사랑이라 하지만, 바로 사랑이에요. 부디 놓거나 놓치지 말아 주셔요. 부디 예쁘게 아끼고 곱게 좋아해 주셔요. (4345.7.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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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 바닷마을 다이어리 4 바닷마을 다이어리 4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운 맛
 [만화책 즐겨읽기 166] 요시다 아키미,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날마다 식구들 먹을 밥을 차리지만, 그날그날 어떤 밥을 차려서 함께 먹었는지를 오래도록 되새기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되새길 겨를이 없다 할 만합니다. 집식구 밥을 손수 마련해서 차리고 치우는 살림꾼 노릇을 늘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알 테지만, 집일이 고되기 때문에 오래도록 못 되새기지 않아요. 배부르게 잘 먹었다 싶으면 금세 배가 꺼지고, 곧 새로 밥을 차릴 때가 찾아듭니다. 하루에 두 끼니만 먹어도 밥때는 금세 찾아오고, 하루에 세 끼니를 먹는다면 밥때는 참말 더 빨리 찾아옵니다. 내가 차린 밥을 나 스스로 틈틈이 사진으로 찍지 않으면 엊그제 무얼 먹었는지 모르겠지요.


  그런데, 밥을 차리는 사람 말고, 밥상 앞에 앉아서 먹는 사람이라면, 늘 밥상을 가만히 앉아서 받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 새로 맞아들이는 밥차림을 얼마나 잘 헤아리거나 되새길까요. 밥을 다 차렸으니 와서 먹으라고 부를 때에 비로소 밥상 앞에 앉는 사람은 ‘또 이거야?’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까요. ‘못마땅하면 손수 차려서 먹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참말 스스로 밥을 차려서 식구들 앞에 내놓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예나 이제나 한국이든 일본이든 서양이든, 밥은 으레 가시내가 차리고, 사내는 그저 밥상 앞에 앉아서 수저만 놀리지 않느냐 싶어요. 게다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라도 기쁘게 나서며 살뜰히 마무리짓는 사내란 매우 드문 일 아닌가 싶어요.


- “어? 하지만 그냥 딴 얘기 하다가 우연히 들은 거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들은 건 들은 거잖아. 근데 아무 선물도 안 하면 서운해 하지 않겠니?” (11쪽)
- “두루미가 날아갈 때는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데, 반대로 날지 않을 때는 설령 화창한 날이라도 오래가지 않고, 금방 날씨가 나빠진다는 거야. 말도 안 된다 싶었지. 일기예보에서도 화창한 날씨가 계속될 거라 했고, 무엇보다 두루미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어. 솔직히 허무맹랑한 미신으로만 들려서, 난 예정대로 등반 파트너랑 마지막 캠프를 향해 떠났어.” (96쪽)

 

 


  나는 학교를 안 좋아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못 배우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닌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통틀어 학교에서 집일을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 국민학교에서는 실과 수업에서 밥하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학교에서 한 달에 한 차례쯤 아이들 모두 밥을 하고 반찬을 하도록 이끌기는 했으나, ‘가시내이건 사내이건 제 밥은 저 스스로 차리고 치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는 집에서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웠고, 어머니와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웠어요.


  요즈음 학교에서는 어디에서나 급식을 합니다. 학생도 교사도 도시락을 싸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밥판을 들고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 영양과 부피를 알아서 척척 헤아리는 밥을 손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밥찌꺼기 갈무리할 일이 없고, 설거지를 할 일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청소도 학생이 스스로 하는 일이 드물다 하는 만큼, 학교를 다니면서 몸으로 ‘집에서 늘 하는 일’을 겪을 틈이 없다고도 할 만합니다.


  밥은 엄마가 해 주면 될까요. 밥은 요리사나 영양사나 급식사나 조리사가 해 주면 될까요. 밥은 밥집 아줌마가 해 주면 될까요. 밥은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도시락을 사다 먹으면 될까요.

  나는 학교를 안 좋아하지만, 열두 해 동안 학교를 다니며 좋았던 적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첫째, 쉬는 때와 체육 시간이 좋습니다. 50분 수업 하고 10분 쉴 적에, 바로 이 10분 동안 개구지게 뛰어놀든 책을 읽든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체육 시간에 넓은 운동장을 마음껏 차지하며 놀 수 있어 좋습니다. 다음으로, 청소 시간이 좋습니다. 나는 낮밥 먹는 때보다 하루 수업 마치고 청소하는 때가 훨씬 좋았습니다. 집 청소부터 썩 잘 하지 못하는 깜냥이지만, 땡땡이치는 아이들이 있건 말건 비질하고 걸레질하면서 교실을 말끔히 건사하는 일이 좋았어요. 학교 다닌 열두 해를 통틀어 헤아리면, 나 혼자 넓은 교실을 청소한 적도 꽤 잦았고, 나와 다른 동무 둘이서 교실 청소를 한 적도 퍽 잦았습니다. 몸이 그리 안 튼튼해서 개근상을 못 받은 적이 많지만, 청소를 빼먹은 적은 없어요. 빗자루와 걸레를 드는 동안 시나브로 마음이 맑아진달까요. 빗자루와 걸레를 들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나를 참다이 사랑하는 길을 살핀달까요.


- “나 센다이에 있을 때 아빠는 택시 운전 일하느라 바빴고, 엄마도 일을 하고 있어서 축제 같은 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어.” (18쪽)
- “유야가 좋아하는 장소 어디일까?” “어?” “난 아빠가 입원했을 때 신사 뒷산에 자주 가곤 했어. 아빠도 거길 좋아해서 건강했을 때는 자주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거든.” (78쪽)

 

 

 


  내 마음에서 내 중학교 세 해는 거의 자취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참 엉터리였구나 싶어, 천 날이나 되는 삶을 나 스스로 마음속에서 거의 지웠습니다. 국민학교를 갓 마친 아이들이 ‘마치 어른이 다 되었다’는 듯이 꼴값을 떠는 짓이 싫었어요. 철부지 사내들이 끼리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날이면 날마다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때리는 짓을 일삼는 모습이 끔찍했어요. 교실 한쪽에서는 늘 싸움판이고, 교실 다른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대입시험을 생각한다며 눈과 귀를 닫은 채 그저 공부만 팝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학교에 오면 마냥 담배를 피우고 학교 바깥에서는 술을 먹느라 바쁜 넋이 책상에 엎어져 잡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온 교실이 북적거리도록 뛰노는 바보들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끼지 않고 혼자 지냅니다. 중학교에서는 나 스스로 누구하고도 동무를 삼고 싶지 않습니다. 동무를 얼간이로 여기면, 나 또한 스스로를 얼간이로 굴리는 셈이지만, 서로 얼간이가 되더라도 이곳에서는 내 동무가 하나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겨우 마음을 열어 동무를 사귑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 때처럼 담배놀이와 바보짓을 하는 녀석이 꽤 있었지만, 대입시험과 사회라는 울타리를 코앞에 둔 탓인지, 중학교 때처럼 어리석게 굴지는 않아요. 나도 스스로 얼간이가 되었던 허물을 벗고, 내 동무들을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애씁니다. 착한 마음이 되고 참다운 생각이 되어 즐거이 살아갈 길을 헤아립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 적 도시락을 늘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 적 도시락은 한 가지도 못 떠올립니다. 고등학생 세 해를 지내는 동안 첫 해에는 김밥으로만 도시락을 쌌고, 다음 두 해에는 볶음밥으로만 도시락을 쌌어요. 날마다 같은 도시락이요, 언제나 같은 도시락입니다. 어머니가 ‘집안 사내 세 사람 도시락’을 날마다 다섯 그릇이나 싸자니 너무 힘들다고 하셔서, 다른 반찬은 하지 말고 날마다 똑같은 도시락으로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참말 내 딴에, 어머니 짐을 덜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참말 어머니 짐을 덜려 했다면 내가 도시락을 싸면 되는데, 그무렵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도시락 싸기 힘들면 반찬이 없이 김밥으로만 하거나 볶음밥으로 하면 되겠지’ 하고만 여겼어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이 되어 곰곰이 되새깁니다. 내가 사내 아닌 가시내로 태어났으면 어떠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내가 가시내였다면 도시락을 손수 쌌겠지요. 내가 가시내였으면 어머니는 나하고 함께 도시락을 싸셨겠지요. 나는 나도 미처 모르고 내가 스스로 옳게 살피지 못하는 사이, ‘사내로 태어난 어떤 특권이나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을 바보스레 이끄는 ‘사내 특권’과 ‘사내 권력’을 나 스스로 참 오래도록 누렸어요.


- “우리 엄마가 언니들한테서 아빠를 빼앗아 버렸던 거야. 언니들은 그건 어른들끼리의 일이니까 나랑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난 계속 언니들한테 미안해 하고 있었어. 부인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 우리 엄마가 나쁜 거라고.” (32쪽)
- ‘진짜로 우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울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돼 버려서, 여러 사람을 상처 입히고 언니 자신도 상처받으면서, 그런데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던 거야?’ (38쪽)

 

 

 


  네 식구 먹을 밥을 날마다 차리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아니, 밥차리기는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즐겁게 맞아들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아직 밥차리기가 얼마나 좋은 삶인지 더 깊이 느끼거나 맞아들이지는 못했다고 느껴요. 날마다 새로 익히고 나날이 새삼스레 배우는구나 싶어요.


  칼질을 하면서, 밀반죽을 하면서, 국을 끓이면서, 밥물을 맞추면서, 접시에 반찬을 담고 밥상을 닦으면서, 수저를 놓고 식구들을 부르면서, 밥을 하고 차리는 사이 틈틈이 끝없는 설거지를 하면서, 개수대에 튀긴 물기를 닦고 또 닦으며 행주를 하루에도 열 차례는 빨래하면서, 누런쌀을 미리 불리고 국거리 간을 소금이나 간장으로 맞추면서, 밥을 하는 사람은 손에 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손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내가 그토록 손에 붙이는 책을 쥘 수 없을 뿐 아니라, 손에 연필을 들고 글을 쓰지도 못한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살며 네 식구 밥을 하루 세 끼니 차리던 어머니가 날마다 가게나 저잣거리로 마실하면서 먹을거리를 장만할밖에 없던 일을 도마질을 하며 떠올립니다. 어머니가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파 한 묶음 호박 하나 두부 한 모’ 사는 데에 뭘 그리 오래도록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살피며 힘들게 장만하나 하던 일을 국자로 국을 뜨며 되돌아봅니다.


  내 어머니는 나와 형이 과자 노래를 부를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내 어머니는 나와 형한테 핫케익 굽는 법을 가르쳐 주어 스스로 주전부리를 마련해 먹으라고 가르칠 적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나는 어릴 적에 김치를 못 먹는 몸이었는데, 아버지 등골에 김치를 먹이라 하는 눈치와 으름장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요. 늙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직도 당신 둘째 아들이 김치나 동치미나 찬국수를 못 먹는 줄 못 깨달으시는데, 그러면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좋아하거나 잘 드시는 먹을거리를 얼마나 잘 깨닫는 아이일까요.


-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서 제일 맛있었던 것 기억해요?” “제일 맛있었던 거요?” “예. 꼭 맛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되게 인상에 남았던 거라든지 뭐 그런.” “글쎄요, 바로 떠오르는 건 없는데.” (172쪽)
- “지금은 제 취향대로 카레를 만들지만, 가끔 그 치쿠와 카레는 대체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 우리를 위해서 정성껏 만들어 주셨던 거죠. 맛이 없어도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177쪽)
- ‘엄마 아빠는 아마도 이 가게에 왔었을 것이다. 건강하던 시절 엄마는 생각을 넣은 과자를 자주 만들었다. 생강을 넣은 밀크티는 별로 안 좋아했지만, 생강 향이 살포시 나는 그 과자는 아빠도 나도 참 좋아했다. 더 이상 카마쿠라에 갈 수 없게 된 엄마 아빠에게, 저 카페의 메뉴는 카마쿠라를 생각나게 하는 그리운 맛이었겠지.’ (191쪽)

 


  요시다 아키미 님이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그리는 만화책 넷째 권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애니북스,2012)을 읽습니다. 넷째 권에 붙은 이름은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이요, 만화책을 찬찬히 읽으며, 이와 같은 이름이 붙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마음은 다른 데로 갑니다. 그래요, 서로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어요. 언제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요. 그런데, 서로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길을 돌아보면, 모두들 ‘그리운 이야기’가 있어요.


  딱히 무어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애써 어찌저찌 말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으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중학생도 사랑을 하겠지요. 어른도 사랑을 하겠지요. 열네 살 아이도 예쁘게 사랑을 하겠지요. 서른네 살 어른도 예쁘게 사랑을 하겠지요. 그러면, 열네 살 아이와 서른네 살 어른, 또 스물네 살 어른이랑 마흔네 살 어른은 저마다 어떤 사랑을 꽃피울까요. 사랑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가 태어날 적에, 이 사랑씨앗은 어떠한 그림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이을까요.


  내 옆지기는 잔뜩 차려져 잔뜩 남을 수밖에 없는 밥을 어릴 적 먹을거리로 떠올립니다. 나는 밥이랑 간장을 달랑 놓고 간장에 밥을 비벼서 먹던 어릴 적 작은 밥상을 떠올립니다. 우리 집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어린 나날을 누리면서 어떤 밥을 마음과 생각과 몸과 가슴에 고이 아로새길까요. 그리운 사랑은 오늘 이곳에서 새로운 사랑으로 태어나고, 그리운 밥은 오늘 이 작은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밥으로 거듭납니다. (4345.7.15.해.ㅎㄲㅅㄱ)

 


― 바닷마을 다이어리 4 :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조은하 옮김,애니북스 펴냄,2012.7.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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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1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바닷가 마을 다이어리 1권을 사서 보았는데 기대만큼 아니어서 그 다음 권 읽기를 그만두었어요. 저는 별로 재미있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ㅠㅠ
학교 다니실 때 이야기는 저도 참 안타깝네요. 지금도 그럴까요?

파란놀 2012-07-16 09:42   좋아요 0 | URL
오늘날도 학교는 거의 똑같다고 느껴요.
아주 바보스러워서
아이들을 이런 데에 밀어넣을 수 없다고 느끼고요...

그래도 1권과 2권은 그럭저럭 볼 만했는데,
이 만화를 그린 분은 어인 일인지
'길게 이어지는 작품'을 알뜰히 엮지 못하는 듯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