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에 서다

 


  한여름 논에 바야흐로 빽빽하게 자라는 볏포기를 바라본다. 모내기를 하고 이레가 지나며 볏잎에서 맑게 드리우는 빛깔을 ‘사름’이라 하는데, 우리 집 첫째 아이 ‘사름벼리’가 여름날 눈부신 푸른 볏빛을 누리면서 들 앞에 선다. 첫째 아이하고 들길을 걷다가 이 아이가 볏잎을 살살 어루만지거나 쓰다듬을 때면 더없이 예쁘다고 느낀다. 다른 풀잎을 어루만지거나 쓰다듬을 때에도 예쁘고, 나뭇잎을 어루만지거나 쓰다듬을 때에도 예쁘다. 이름에 ‘풀’을 가리키는 푸른 내음 감도는 말마디를 넣어서 부를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운가. 푸른 숲에서 사람이 살고, 푸른 들에서 아이가 놀며, 푸른 꿈에서 모든 목숨이 사랑스레 자란다. (4345.7.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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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옷 입는 엉덩이

 


  땀에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기고 나서 새 옷을 입힌다. 아이들은 하루에 서너 벌씩 옷을 갈아입는다. 아이들이 벗은 옷을 바지런히 빨아서 말리느라 하루가 짧다. 나도 저 나이였을 때에 하루에 옷을 여러 차례 갈아입었을까. 바람에 땀을 말리고는 여러 날 입었을까. 개구지게 놀며 땀에 전 옷을 이틀만 입어도 냄새가 구리지 않을까. 제법 잘 걸으며 다리에 힘살이 붙는 둘째 아이 엉덩이가 토실토실하다. (4345.7.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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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아래 잠들기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밤새 뒹굴면서 잔다. 아이들은 이리 굴러서 척 기대고, 저리 굴러서 착 달라붙는다. 자다 보면 잠자리를 빼앗긴다. 하는 수 없이 이리 쪼그리고 저리 옹크린다. 두 아이만 방에 두면 으레 한 녀석은 위를 보며 눕고 한 녀석은 아래를 보며 눕는다. 어떻게든 자는 녀석들이니, 부디 오래오래 고단함이 모두 가시도록 잘 자면 좋겠다. (4345.7.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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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타루의 빛 1
히우라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마음에 켠 빛살
 [만화책 즐겨읽기 168] 히우라 사토루, 《호타루의 빛 (1)》

 


  철 따라 새벽에 맞이하는 새들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한여름에는 처마 밑 제비집이 휑뎅그렁합니다. 새끼 제비 모두 날갯짓을 익혀 둥지를 떠난 뒤로는 어미 제비도 가끔 집 언저리에 찾아와 맴돌다 갈 뿐, 둥지에 깃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새끼를 낳아 돌본 어미 제비도, 한창 씩씩하게 날갯짓을 뽐낼 어린 제비도, 모두 숲속에서 먹고 자고 날고 놀고 하는구나 싶어요.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수십 수백 참새가 한꺼번에 째블째블 노래하는 소리가 가만히 울려퍼집니다. 귀를 기울이고 참새 노랫소리를 들어 봅니다. 참새도 한창 어린 새끼를 돌보거나 어린 새끼가 다 커서 함께 얼크러지느라 이렇게 부산스레 새벽을 여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이윽고 아침이 되면 참새 노랫소리는 가라앉습니다. 이내 다른 새들 노랫소리가 가만가만 마을에 울립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고, 풀잎을 건드리며, 빨래줄에 걸린 옷가지를 건드립니다. 새로운 하루요, 새로운 날입니다.


- “회사에서는 몰랐는데 호타루 씨는.” “네?” “뭐랄까, 인생 다 산 사람 같아.” “네에?” “호타루 씬 아직 26? 27이던가? 보통은 잠잘 틈도 없이 매일 데이트다 뭐다 해서 한창 바쁠 시기 아닌가? 그런데 자넨 대체 뭐지? 매일같이 곧장 집에 와서 만화책이나 보고 혼자 술이나 홀짝거리고. 심지어, ‘잃어버린’ 두근거림이라니.” (19쪽)

 

 


  스무 날 즈음 이어지던 장마가 그친 어제 하루는 몹시 무더웠습니다. 저녁까지 집안 온도는 30℃였어요. 해가 기울고 밤이 되며 29℃로 떨어지고, 28℃가 되더니 새벽에는 26℃까지 됩니다. 숲과 흙이 있는 시골이기에 밤이 깊을수록 더위가 가시는구나 싶어요. 건물과 아파트와 아스팔트만 있는 도시라면 밤이 깊을수록 후끈후끈 덥겠지요.

  으레 ‘열대야’라고 하지만, 한국말로 쉽게 하자면 ‘밤더위’입니다. 밤까지 더위가 이어지니까 밤더위예요.


  사람들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기에, 언제부터 왜 밤더위가 있었는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숲과 흙이 있는 시골에서 멀어지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덮는 도시로 가서 살아가기에, 몸도 마음도 느끼지 못합니다. 어느 씨앗도 시멘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요. 어느 곡식이나 나무도 아스팔트에 뿌리를 박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지 못해요. 어느 목숨도 시멘트바닥이나 아스팔트바닥에서 느긋하게 지내지 못해요.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시멘트로 집을 짓고 흙바닥은 아스팔트로 바꿉니다. 동물원 바닥이 온통 시멘트로 덮이듯, 사람들 삶터 또한 방바닥이 시멘트로 덮여요. 사람은 짐승들을 울타리 안쪽에 가두어 구경거리로 삼는데, 사람 스스로 살림집 방바닥을 시멘트로 바꾸면서 스스로 울타리 안쪽에 갇히는 몸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을 빛내기보다는 누군가 이끄는 대로 휩쓸린다든지 누군가 떠미는 쪽으로 내몰린다든지 하고 맙니다.


- “하지만, 좋아하게 되는 건 순간 아닌가요?” (29쪽)
- “네? 고, 고백? 글쎄 해 본 적도 없다니까요. 어, 어른이라면 그런 건 자연스럽게 분위기로 전달해야.” “그럴까?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건 몇 살이 되어도 마찬가지야.” (63쪽)
- “당신이 아닌 남자의 아이는 낳고 싶지 않았어. 소중히 여겨 줘. 나와 로쿠쥬로를. 그것이 앞으로 당신이 있을 자리야.” (179쪽)

 

 


  마음에 빛줄기 환하게 드리우지 않을 때에는 따분한 삶입니다. 마음에 빛살 곱게 비추지 않을 때에는 메마른 삶입니다. 빛줄기 환하게 드리우면서 아름다운 삶입니다. 빛살 곱게 비추면서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멧새 노랫소리를 즐겁게 들으면서 내 목소리를 즐겁게 가다듬습니다. 풀잎 푸른 빛깔을 예쁘게 바라보면서 내 눈빛을 예쁘게 다스립니다. 숲을 이루는 기름진 밑흙을 살포시 어루만지면서 내 얼굴과 몸을 살포시 보살핍니다. 즐겁게 누릴 삶이고, 예쁘게 빛낼 삶이며, 살포시 어깨동무할 삶입니다.


- “남자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키스, 하나요?” … “안 하지 않을까? 안 해. 좋아하는 여자 외에는.” (38∼39쪽)
- “이 남자는 마지막까지 행복했어. 남들이 보기엔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93쪽)
- “만나기 전의 경험보다는 둘이 함께할 앞으로가 더 중요해.” (153쪽)

 

 


  히우라 사토루 님 만화책 《호타루의 빛》(대원씨아이,2006) 첫째 권을 읽습니다. ‘말린물고기’처럼 몸과 마음이 말라 버렸다고 하는 ‘호타루’라 하는 스물일곱 살 아가씨가 나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참말 스물일곱 살 아가씨는 몸이며 마음이 온통 말라 버렸다 할 만합니다. 살아가는 빛도, 살아가는 꿈도, 살아가는 사랑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빛과 꿈과 사랑을 잃거나 잊은 사람은 스물일곱 살 아가씨일 뿐일까요. 열일곱 살 푸름이는 얼마나 빛과 꿈과 사랑을 누리는가요. 일곱 살 어린이는 얼마나 빛과 꿈과 사랑을 뽐내는가요. 서른일곱 살 젊은이는 얼마나 빛과 꿈과 사랑을 나누는가요.


  한국땅에서 열일곱 살 빛나는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은 참말 빛나는 생각을 펼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국땅에서 일곱 살 꿈꾸는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은 참말 꿈꾸는 마음을 꽃피울 수 있는가 궁금합니다. 한국땅에서 서른일곱 살 사랑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어른들은 참말 사랑스러운 넋을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이불 냄새 넘 좋아. 햇볕 냄새? 아, 이불을 널면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21쪽)
- ‘어느새 비가 그치고, 흐르는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나와 있었다.’ (119쪽)
- ‘그건 작은 빛. 내 마음에 켜진 소중한 빛.’ (158쪽)


  마음에 빛살을 켤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등불을 켜든 촛불을 켜든 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좋기로는, 내 마음에 내 가장 고운 햇살이 드리우도록 하는 일이겠지요. 내 마음속에서 해님이 방글방글 웃도록 삶을 이끌 때에 가장 아름답겠지요. 내 가슴속에서 달님이 방실방실 웃도록 삶을 일굴 때에 가장 어여쁘겠지요.


  마음이 살 때에 삶이 살고, 마음이 빛날 때에 삶이 빛납니다. 마음이 산뜻할 때에 삶이 산뜻하고, 마음이 반짝일 때에 삶이 반짝입니다.


  말린물고기 아가씨 호타루는 스물일곱 살이 되기까지 스스로 마음속에 빛살 하나 드리우도록 하는 꿈을 배우지도 듣지도 보지도 알아채지도 물려받지도 못했어요. 이제부터 천천히 하나씩 느끼고 생각하고 마음쓰며 돌아봅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마음을 사랑하는 길을 깨달으려 합니다. (4345.7.21.흙.ㅎㄲㅅㄱ)

 


― 호타루의 빛 1 (히우라 사토루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6.6.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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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09 : 광대무변

 

집도 절도 없이 애비 에미도 없이 광대무변에서 태어나
《김해자-축제》(애지,2007) 116쪽

 

  네 글자 한자말 ‘광대무변(廣大無邊)’은 “넓고 커서 끝이 없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적잖이 쓰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도 꽤 쓰는 낱말입니다. 그런데, 한자말로 적자면 ‘광대무변’이겠지만, 한자말 아닌 한국말로 적자면 ‘끝없다’예요. 또는 ‘가없다’이고, 또는 ‘그지없다’입니다.


  보기글에서 쓴 ‘광대무변’ 뜻을 헤아리면 “끝없이 넓고 큰 벌판”을 가리키는 한국말 ‘허허벌판’을 넣을 만합니다. 허허벌판은 ‘벌판’을 가리키는 낱말이라 하지만, 쓰는 곳과 때에 따라서는 ‘벌판’뿐 아니라 ‘넓고 큰 무엇’을 일컬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허허벌판 같은 마음”이라든지 “허허벌판이 된 마음”처럼 쓸 수 있어요.

 

 광대무변에서 태어나
→ 허허벌판에서 태어나
→ 너른 들에서 태어나
→ 빈 들에서 태어나
 …

 

  생각을 넓히면 ‘허허벌판’을 바탕으로 ‘너른들’이나 ‘빈들’을 헤아릴 만합니다. ‘너른 들’이나 ‘빈 들’처럼 적어야 올바르다지만, 새 넋을 담는 새 낱말로 여길 수 있습니다. “가없는 터”나 “끝없는 곳”처럼 써도 돼요.


  마음을 살찌우면서 말을 하면 아름다우면서 넉넉합니다. 생각을 빛내면서 글을 쓰면 어여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같은 보기글이라면 “지구가 강바람이나 벼락처럼 빠르게 끝없이 넓은 곳을 달린다는”처럼 손볼 수 있고, “광대무변의 우주 공간” 같은 보기글이라면 “가없이 넓은 우주”처럼 손볼 수 있어요. 흐름에 맞추어 마음을 기울이고, 낱말 하나하나 예쁘게 넣습니다. 앞뒤를 살펴 생각을 꽃피우고, 낱말 하나 곱게 엮습니다.


  나는 넓디넓은 땅에서 살아갑니다. 내 마음은 가없이 넓은 바다와 같습니다. 나는 넓고넓은 마을에서 꿈을 키웁니다. 내 생각은 그지없이 널따란 하늘과 같습니다. 말은 숲이고, 숲은 사랑이며, 사랑은 삶입니다. (4345.7.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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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절도 없이 애비 에미도 없이 허허벌판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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