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38) 있다 11 : 뜻을 모두 지니고 있는

 

미디어는 매체라는 본디 뜻과 대중매체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합니다
《손석춘-10대와 통하는 미디어》(철수와영희,2012) 34쪽

 

  “본(本)디 뜻”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처음 뜻”이나 “제 뜻”이나 “밑뜻”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이해(理解)하면 정확(正確)합니다”는 “생각하면 됩니다”나 “헤아리면 알맞습니다”로 손질해 줍니다.


  “-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는 말이라고”는 “모두 가리키는 말이라고”나 “모두 나타내는 말이라고”나 “모두 일컫는 말이라고”로 손질하면 됩니다. 뜻은 ‘가리키다’나 ‘나타내다’라고 말해야 알맞습니다. 또는 “어떠한 뜻이 있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뜻을 가지다”나 “뜻을 지나다”처럼 적는 일은 알맞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아요. 그러나 이 같은 말투는 나날이 퍼집니다. 영어에서 쓸 법한 말투를 어설픈 번역 말투로 함부로 쓰곤 해요.

 

 -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는 말
→ -라는 뜻을 모두 가리키는 말
→ -라는 뜻을 모두 나타내는 말
→ -라는 뜻을 모두 담는 말
 …

 

  뜻이 있고 생각이 있는 어른부터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며 슬기롭게 쓸 때에 아이들은 뜻이 있는 말을 배우고 생각이 있는 말을 익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뜻이 있는 말을 배우고 생각이 있는 말을 익힐 때에 스스로 삶을 슬기롭게 다스립니다. 말 한 마디에 뜻을 담지 못하거나 생각을 싣지 못하면, 이렇게 말하는 어른부터 슬기롭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더 좋은 뜻이나 더 나은 생각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흐름을 알맞게 살피고, 결을 올바르게 느끼며, 줄거리를 곱게 보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8.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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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매체를 뜻하는데, 요사이에는 대중매체도 함께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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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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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눈길
[시를 말하는 시 2] 문태준, 《가재미》

 


- 책이름 : 가재미
- 글 : 문태준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06.7.21.)
- 책값 : 8000원

 


  바라보는 곳을 시로 씁니다. 바라보면서 느끼기에 시로 씁니다. 바라보면서 느끼고, 좋구나 아쉽구나 기쁘구나 슬프구나 재미있구나 놀랍구나 안쓰럽구나 아프구나 웃기구나 멋스럽구나 하고 느끼면서 시를 씁니다.


  한여름 무르익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시골 논길을 두 아이를 수레에 태워 자전거로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옵니다. 가는 길에는 못 보았으나 오는 길에는 널따랗게 펼쳐진 논 가운데 한 곳은 벌써 이삭이 패고 알곡이 맺힙니다. 달리던 자전거를 멈추고는 한참 들여다봅니다. 작은아이는 잠들었으나 큰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을 쫓습니다. 큰아이더러 여기 이 논에만 벌써 알곡이 맺혔다고 알려줍니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은 살짝 내리막이라 수월히 달리는데, 외려 수월히 달린 탓인지 왼쪽도 오른쪽도 더 찬찬히 살피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살짝 오르막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데, 참말 힘들게 달리기에 천천히 지나가면서 왼쪽도 오른쪽도 조금 더 오래 더 찬찬히 살피는구나 싶습니다.


  땀이 줄줄 흐르지만, 때때로 노래를 부릅니다. 자전거수레에 타며 아버지하고 여름바람 쐬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쉬며 하늘빛을 느끼고 들빛을 느끼라며 온갖 노래를 부릅니다. 살짝 오르막인 길을 땀흘려 달리면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목이 컥컥 막힙니다. 숨이 가쁩니다. 이럴 때에는 빠르기를 더 늦춥니다. 더 천천히 달리며 숨을 고르고, 숨을 고르면서 노랫가락을 가다듬습니다.


.. 작은 독에 더 작은 수련을 심고 며칠을 보냈네 ..  (수련)


  스스로 바라보는 곳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곳 내음과 무늬와 결을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저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저곳 흐름과 깊이와 너비를 하나씩 맞아들입니다. 올림픽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느 결에 올림픽 이야기에 마음을 씁니다. 달동네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시나브로 강제철거 이야기에 마음을 씁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논밭을 늘 바라보는 사람은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더라고 흙일에 마음을 씁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늘 바라보는 사람은 저절로 교육에 마음을 쓰겠지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사람은 지하철이나 버스가 언제 오는가에 마음을 쓰다가는 지하철 환경이나 버스가 막히거나 거칠게 달리는 모습에 마음을 씁니다. 어디를 가든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교통 정보에 마음을 써요.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하루를 온통 들여 밥을 하고 비질과 걸레질을 하며 아이들을 보살피다가는 빨래를 합니다. 밥을 해야 하니 저잣거리에 다녀와야 하고, 저잣거리에 다녀오면서 가게마다 물건을 어떤 값으로 파는가를 살핍니다. 집일이나 집살림을 하면서 집안과 집밖 흐름을 살핍니다.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아이들 눈빛이나 몸짓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회사나 공공기관 얼거리에 젖어듭니다. 스스로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내면서 회사원답고 공무원답게 삶을 보냅니다. 스스로 선 자리에서 스스로 삶을 바라볼 뿐 아니라,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선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 장대비 속을 / 멧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 彈丸처럼 빠르다 ..  (바깥)


  내 어릴 적을 돌이킵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첫무렵에는 학교에서 ‘1일 생활권’이라는 낱말을 가르쳤습니다. 나라안 곳곳에 고속도로가 새로 뚫리며 ‘1일 생활권’이 되니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습니다. 새로 뚫리는 고속도로 이름을 외워야 했고, ‘백지도’라는 데에 고속도로를 그려야 했습니다. 고속도로가 더 많이 더 길게 생겨야 ‘나라 발전’이라고 들었습니다. 고속도로를 새로 짓는 대통령 ‘님’인지 ‘각하’인지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가을에 강원도 양구에 있는 군대에 들어가서 스물여섯 달을 지내며 이무렵에도 한국은 아직 ‘1일 생활권’이 아닌 줄 몸으로 느낍니다.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짝에 있는 군부대로 주말마다 온갖 사람들이 면회를 오시는데, 적잖은 시골사람들은 1박2일이나 2박3일에 걸쳐 찾아오셨어요. 전라남도 완도나 진도나 강진에서 찾아오는 분들이 으레 여러 날에 걸쳐 오시더군요.


  그러고 보면, 나도 이런 일을 흔히 겪습니다.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던 때에 충청남도 홍성으로 나들이를 가느라 여덟 시간이 걸렸어요.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며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내 어버이를 뵈러 가는 데에 아홉 시간이 걸려요.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이라 하는 시외버스나 기차를 여러 차례 갈아타면서 ‘가장 빠르다’는 길로 다녀도 ‘길그림으로는 그리 안 멀다’ 싶은 곳까지 참 오랜 시간을 들입니다. 전남 고흥에서 충북 음성까지 아홉 시간이니, 하루에 찾아갔다가 돌아오지 못해요. 열여덟 시간을 들이더라도 시외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움직일 수 없어요.


  오늘날에는 온갖 고속도로가 참 많은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고속도로 이름을 외우도록 시키며 시험문제로도 내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 앞에 선 교사는 ‘나라 발전’이 무엇이라고 가르칠는지 궁금합니다. 공산품을 다른 나라로 많이 내다 팔아야 나라 발전이 될는지, 공장을 많이 짓거나 댐을 세우거나 발전소나 대기업이 많이 생겨야 나라 발전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주식투자와 자기계발과 무엇무엇이 얼마나 시끌벅적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  (극빈)


  새벽 세 시에 작은아이가 기저귀에 쉬를 눕니다. 작은아이 기저귀를 갑니다. 이윽고 큰아이가 끙끙거립니다. 큰아이 등을 쓸면서 쉬 마렵니, 쉬 마려우면 일어나렴,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는 끙끙거리던 소리를 멎고 조용합니다. 이십 분쯤 뒤, 큰아이가 부시시 일어나며 묻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아이는 벌써 일어나서 하루를 열며 놀 마음일까요? 설마. “아직 일어나서 놀 때는 아니에요. 쉬 마렵니? 쉬 하자.” 하고 얘기하며 오줌그릇에 앉혀 쉬를 누입니다. 쉬를 다 눈 아이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누워 자도록 하고 등을 다시 천천히 씁니다.


  큰아이하고는 어느덧 다섯 해째, 작은아이하고는 이제 두 해째, 낮 똥오줌을 치우고 밤 똥오줌을 가리거나 치웁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언제나 아이들하고 찰싹 붙으며 살아갑니다. 이토록 찰싹 붙어 살아갈 줄 알았는지 몰랐는지 헤아릴 길은 없으나, 아이 둘이랑 옆지기하고 찰싹 붙어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찰싹 붙어 살아가기에 ‘아이들 마음’을 한결 깊이 알거나 느낀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이들과 함께 한 곳을 바라보는구나 하고는 느껴요. 내가 바라보는 곳을 아이들이 바라보고, 아이들이 바라보는 곳을 내가 바라봐요.


..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식은 재를 끌어내 그녀가 불의 감각을 잊도록 하는 것 // 저 먼 나라에는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  (가재미 3)


  어버이인 나와 옆지기가 읊는 말은 아이들이 배우는 말입니다. 둘레 어른들이 아무렇게나 읊는 말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익히는 말입니다. 나와 옆지기가 살아가는 모습은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매무새입니다. 둘레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아이들이 맞아들이는 몸짓입니다.


  아이들이 착하거나 슬기롭기를 바라면, 어버이로서 나부터 착하거나 슬기롭게 살아갈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맑은 눈빛이나 밝은 말빛을 길어올리길 바라면, 어버이로서 나부터 맑은 눈빛이 되거나 밝은 말빛을 다스릴 노릇입니다.


  내 눈길이 내 삶이 됩니다. 내 삶이 내 눈길이 됩니다. 내 말마디가 내 사랑이 됩니다. 내 사랑이 내 말마디가 됩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내 삶입니다. 내 삶이 내가 부르는 노래로 태어납니다. 내가 쓰는 시는 내 삶입니다. 내 삶이 내가 쓰는 시로 거듭납니다.


.. 개망초가 하얗게 피었다 / 잠자리가 날 때이다 / 너풀너풀 잠자리가 멀리 왼편에서 바른편으로 혹은 / 거꾸로 / 강이 흐르듯 누워서 누워서 ..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더 좋거나 덜 좋은 시나 노래나 사진이나 만화란 없습니다. 나한테 더 반갑거나 즐거울 만한 시나 노래나 사진이나 만화란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결에 따라 받아들이는 시나 노래나 사진이나 만화가 있을 뿐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맞아들이는 시나 노래나 사진이나 만화가 있을 뿐이에요.


.. 작은 돌에 / 새가 / 지긋이 / 앉아 운다 ..  (작은 새)


  시를 쓰는 문태준 님이 내놓은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2006)를 읽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읽습니다. 아이들과 복닥이는 틈바구니에서 살짝 등허리를 쉬며 자리에 드러누울 적에 천천히 천천히 읽는데 하루만에 책을 덮습니다. 문태준 님은 “울퉁불퉁한 뼈 같은 시(시인의 말)”라고 말하는데, 문태준 님 스스로 바라보기에 당신 싯말은 울퉁불퉁한 뼈요 당신 삶 또한 울퉁불퉁한 뼈일 테지요.


  나한테는 시가 어떠할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나도 내 뼈를 들여다보며 살아가나 하고 고개를 갸웃해 봅니다. 나는 내 뼈를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뼈와 살점과 힘살과 물과 피와 세포와 털과 눈과 여러 가지가 골고루 얼크러져 이루어진 몸뚱이가 있고, 이 몸뚱이를 움직이는 마음(가슴)과 머리(생각)가 있습니다. 나는 내 뼈만 따로 바라보거나 생각한 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뼈가 울퉁불퉁한지 반반한지 곧은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살결이나 손마디가 어떠한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 머리카락이나 발톱이 어떠한지도 모릅니다. 다만, 내 뼈도 살결도 손마디도 머리카락도 발톱도 모두 내 몸을 이룹니다. 곧, 나한테 시가 무엇인가 하고 밝히라 한다면, 내 시는 내 모두입니다. 내 시라면 내 삶이고, 내 시라면 내 사랑이며, 내 시라면 내 마음입니다.


  내 삶이 시로 드러나고, 내 사랑이 시로 스며들며, 내 마음이 시로 빛납니다.


.. 그믐달은 우물물처럼 차오르고 / 잠든 아이는 꿈에서도 자라나네 ..  (겨울밤)


  시집 《가재미》를 읽으며 “나는 노란 소국을 窓에 올려놓고(小菊을 두고)”라든지 “겨울밤 卍海도 東里도 언 잎에 싸락눈 치는 소리 듣다(그리운 밥 냄새)”라든지 “삯바느질로 끼니를 이어가던 貧女의 집안에(오, 가시등불!)”라든지, 톡톡 튀어나오는 한자가 무척 낯섭니다. 그런데 “이런 욱욱한 돌로(돌의 배)”라든지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누가 울고 간다)”라든지 “뜨막하게 소꿈을 꾸는(꿈)”이라든지, 툭툭 튀어나오는 토박이말이라는 낱말도 퍽 낯섭니다.


  그러나 이 모두 싯말을 이룹니다. 이 모두 문태준 님이 바라보고 들으며 읊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싯말을 이룹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나한테 낯익고 낯설고를 떠나, 문태준 님은 이러한 말마디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문태준 님은 이러한 낱말로 삶을 바라보고 사랑을 바라보며 마음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시를 읽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새벽 세 시 사십 분,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하는 큰아이가 아버지를 찾아 옆방으로 또르르 와서는 품에 안깁니다. 나는 큰아이를 무릎에 누여 토닥토닥 재우면서 글 한 줄 씁니다. 큰아이더러 “왜에?” 하고 묻고, 큰아이는 “안아 주세요.” 하고 말하며, 나는 무릎을 내어주며 두 팔로 살포시 안습니다. 아직 많이 후끈거리는 한여름 새벽 세 시 사십팔 분, 아이가 내 무릎에 누우면 아이 등판은 퍽 뜨뜻할 테고 내 무릎이며 몸은 꽤 후끈거려 땀이 돋겠지요. 그래도 부채질을 하며 아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다시 잘 자렴 하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면 아이도 어버이도 좋은 새벽을 누리며 곧 틀 동을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새벽 세 시 오십팔 분, 이제 내 무릎은 찌릿찌릿 저립니다. 아이가 더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할 텐데, 그무렵이 되면 내 무릎은 아주 저려 일어나지도 못할 듯합니다.


  새 하루를 새 마음으로 빚습니다. 새 마음으로 새 삶을 일굽니다. 새 삶으로 새 말을 영급니다. 새 말은 시 하나로 곱게 피어납니다. (4345.8.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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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리 사랑받는 시

 


  요즈음 널리 사랑받는 시를 읽으면서 이 시가 어떻게 사랑받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참말 사랑받을 만한 대목이 있으니 사랑받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요즈음 널리 사랑받는 시를 사랑해 주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이 시를 쓴 분 삶하고 이 시를 읽을 내 삶하고는 사뭇 다른 길이니까.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쏟아진다. 새로운 책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크거나 작게 알려준다. 어느 책은 일찌감치 베스트셀러가 되고, 어느 책은 한두 달 사이에 몇 만 권이나 수십만 권이 팔리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으며 사랑하는 책 가운데 한두 가지를 나도 장만해서 읽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 책꽂이에 꽂히는 책이나 내 마음밭으로 스며드는 책치고 수만 권이나 수십만 권을 팔리는 책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한다.


  ‘왜 그럴까?’ 하고 궁금해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삶을 즐기면서 내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찾아드는 고운 동무와 같은 책을 좋아하며 반긴다. 나는 어느 책 하나를 빚은 사람이 일구는 삶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좋아하며 반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삶을 읽는 사람이고, 나는 책 줄거리를 읽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책에 서린 사랑을 읽는 사람이니까. 삶을 좋아하고 싶다. 사랑을 아끼고 싶다.


  시를 쓰는 사람이 삶을 예쁘게 쓰면서 사랑을 예쁘게 노래하는 나날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문학이나 예술이나 창작이나 성공이나 이름값이 아닌, 예쁜 시를 예쁜 넋으로 아끼면서 예쁜 꿈을 나누는 시집이 하나둘 태어날 수 있기를 빈다. (4345.8.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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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이와모토 나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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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만화책 즐겨읽기 171] 이와모토 나오,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풀벌레가 한창 노래하는 한여름입니다. 저녁과 밤과 새벽에 풀벌레 노랫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마을은 조용한 시골이기에 자동차나 가게나 기계 소리가 아닌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도시에서 흘러넘치는 소리를 들을 텐데,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에서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랫소리만큼,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노랫소리는 얼마나 잘 듣는가 궁금합니다.


  한밤에도 31도까지 이어지던 날씨가 수그러듭니다. 봄과 첫여름을 지나 처음 27도 28도 29도가 될 적에는 이런 밤날씨에 어떻게 살아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30도 31도가 되는 한여름 밤을 지내고 보니, 30도 밑으로 떨어진 밤날씨가 참 시원스럽구나 싶어요. 처음 29도가 되던 한여름에는 찌는 듯해 땀이 줄줄 흘렀으나, 31도 밑으로 안 내려오던 밤날씨가 수그러들면서 30도나 29도가 되는 밤날씨가 참 괜찮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다 문득, 내 몸은 이렇게 날씨를 느끼지만, 내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내 몸은 덥구나 춥구나 좋구나 궂구나 하고 느낀다지만, 내 마음은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 “유채꽃이 장난 아니네?” “유채꽃이 아니라 겨자거든? 먹으면 꽤 맛있어. 최근에 편의점 생겼는데 들렀다 갈래? 어차피 다른 가게도 없으니까.” (6쪽)
- “오빠, 이 마을에 고등학생 이상의 젊은이는 우리 셋밖에 없으니까 사이좋게 지내자.” (9쪽)


  마을마다 아이들이 거의 안 삽니다. 마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기 일쑤입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을 낳는 어버이도, 으레 마을을 떠나 면소재지나 읍소재지에서 살거나, 아예 도시로 나아갑니다. 도시는 나날이 커집니다. 면소재지와 읍소재지는 차츰 작아집니다. 마을은 더욱 조용해집니다.


  마을에 집이 없거나 땅이 없기에 어린이와 젊은이가 떠나지는 않습니다. 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거나 바다를 껴안고 살 때에 돈이 안 나오기 때문에 모두들 도시로 가지는 않습니다. 도시에는 사람들 몸을 스물네 시간 내내 건드리거나 이끄는 무언가 있습니다.


  시골에는 사람들 몸을 건드리거나 이끌 만한 무언가 없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마다 달리 느낄 텐데,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스스로 느끼려 하면 느끼고, 스스로 느끼려 하지 않으면 못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날 무렵이면 도시 문화와 문명과 물질에 익숙해집니다.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은 모두 도시에서 만들고, 교재나 교과서나 책은 온통 도시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예쁘게 꿈꾸는 이야기를 다루는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숲 유치원’도 ‘바다 초등학교’도 ‘멧골 중학교’도 없다 할 만합니다. 숲을 느끼는 유치원은 얼마나 있을까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유치원은 둘레에 널린 숲에서 아이들하고 부대끼려 할까요.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는 가까운 바다를 아이들이 껴안도록 이끌까요. 태백산이나 지리산 둘레 중학교는 멧자락을 오르내리는 삶을 아이들이 어깨동무하도록 가르칠까요.


  어릴 적부터 도시살이에 익숙한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도시에서 돈을 버는 일자리’만 생각하고 맙니다. 직업훈련이란 도시에서 회사나 공장을 다니도록 이끄는 직업훈련이지,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를 얼싸안는 직업훈련이 아닙니다. 멧나물을 뜯거나 숲을 보살피는 직업훈련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아니, 도시에서조차 작은도시는 큰도시로 가도록 내몰고, 큰도시라 하더라도 더욱 커다란 도시로 가도록 떠밉니다. ‘시골 고등학교’가 없고, ‘나무 대학교’가 없어요.

 

 

 


- ‘(오랜 벚나무 꽃잎을 흩날리는) 그 바람은 내 마음속의 ‘잘 선택했을까?’란 의구심과 ‘어쩔 수 없지’란 체념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날려버린 듯해다.’ (32쪽)
- “쌍방향에서 차가 올 때 반드시 어느 한쪽은 기다려 준다거나 길에서 만난 고등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거나, 그런 곳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니까요. 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76∼77쪽)
- “그래도 갔다 와, 형. 풀죽어 돌아와도, 지금이라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 따뜻한 밥 한 끼는 내줄 거야. 형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거든.” (114쪽)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자라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야 합니다. 곧, 아이 하나 태어날 때에 씨앗 한 알 심어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면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얻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 저희 아이를 낳아 다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면 훨씬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이때에 다른 나무씨 한 알을 더 심으면 우람한 나무 곁에 차츰 크는 새 나무 한 그루 나란히 섭니다. 살기 좋은 마을이라 여기는 곳에서 살기 좋은 보금자리라 여길 터를 일구면, 나무들은 차츰차츰 뿌리를 키우고 줄기를 굵힙니다. 나무는 백 살이 되고 삼백 살이 됩니다. 오백 살과 천 살을 먹습니다. 이제 천 살이나 이천 살을 먹은 나무가 마을이나 보금자리 둘레에 있으면, 이 나무는 뭇사람한테 좋은 기운을 늘 베풉니다. 싱그러운 풀빛과 상큼한 풀내음을 나누어 주면서 따사로운 삶을 누리는 기쁨을 베풉니다.


  고흥 읍내에 볼일 보러 갈 적에는 팔백예순 살 먹은 느티나무 밑에서 다리를 쉬곤 합니다. 어른 여럿이 팔을 벌려야 안을 만큼 굵직한 느티나무인데,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어른도 이 나무에 올라가서 놀 만합니다. 우람한 나무는 누구한테나 좋은 그늘과 맑은 숨결을 베풉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이 나라 곳곳에 나무가 꽤 있습니다. 그러나 몇 백 해를 아름답게 살아낸 나무는 퍽 드뭅니다. 몇 천 해를 기운차게 살아낸 나무는 아주 드뭅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아끼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 스스로 나무하고 어깨동무하지 않아요. 사람들 스스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나무 한 그루 곱다시 지켜보며 사랑하지 못해요. 다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나무 한 그루 곱다라니 지켜보며 사랑한다면, 어느 고을에 가든 눈과 귀와 코와 살결을 쉴 만할 텐데, 나무 한 그루 아닌 편의점과 가게만 끝없이 늘어납니다. 나무가 설 자리에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가 자꾸 생깁니다. 나무 한 그루 천천히 자라날 빈터는 사라지고, 자가용을 댈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 “나 같은 애는 어린 거 빼곤 아무 장점도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너같이 시간 잘 지키고 성격 좋은 애가 어딨다고. 넌 옛날부터 좋은 애였어.” (20쪽)
- “그치만 가슴도 크고 괜찮던데.” “가슴이야 확실히 컸지. 근데 진짜 중요한 건, 날 얼마나 좋아하느냐니까.” (70∼71쪽)


  이와모토 나오 님 만화책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작은 면’에서 어린이와 젊은이가 사라지는 흐름은 엇비슷합니다. 마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고, 할아버지는 술놀이에 젖어드는 모습이 어슷비슷합니다.


  스스로 생생한 기운을 잊습니다. 스스로 맑은 기운을 잃습니다. 스스로 예쁜 기운하고 등돌립니다. 스스로 푸른 기운하고 멀리합니다.


- “미안해, 오빠. 고마워. 그렇게 동네 심부름 가는 차림으로 달려와 줘서.” (48쪽)


  도시사람은 휴가철을 맞이해 물과 흙과 하늘과 풀이 좋은 시골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도시사람은 휴가철이 아니어도 틈틈이 ‘눈과 귀와 코와 살결이 예쁘게 쉴 만한’ 좋은 시골을 찾아 나들이를 다닙니다. 도시사람은 여느 때에는 언제나 도시에서 먹고 마시고 쓰고 즐기지만, 온통 도시에서만 젖어들지 못합니다. 숨을 돌릴 틈을 마련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공원을 찾고, 도시 곳곳에 나무 몇 그루나 꽃 몇 송이를 심습니다. 아파트 툇마루이든 방 한켠에든 꽃그릇 한둘이라도 놓으려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준다며 꽃다발을 마련하곤 합니다. 시골에는 꽃가게가 없습니다만, 도시에는 꽃가게를 쉬 만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들판과 숲을 바라보며 철과 날씨를 헤아리지만, 도시에서는 사람들 옷차림으로 철과 날씨를 헤아립니다. 시골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을 들추지 않아도 철과 날씨를 깨달으나, 도시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을 들추지 않고서야 철과 날씨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 스스로 자연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고을이 바로 자연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며 사람들 스스로 자연이고 사람들 살림집 또한 자연인 줄 모르거나 잊거나 생각조차 못합니다. 이리하여 따로 자연그림책을 그려서 아이들한테 읽히거나 생태환경책을 써서 어른들끼리 읽곤 합니다.

 

 

 


-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을 사람들은 반대할까?” ‘괜찮아, 여름축제도 해냈는데 뭐.’ “축제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야. 마을 전체를 설득해야 해. 그동안 이렇게 대규모의 일을 생각한 적도 없고, 했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 ‘하지만 넌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 (175∼176쪽)


  나무는 늘 노래를 합니다. 풀벌레도 노래를 하고 멧새도 노래를 하는데, 자동차도 노래를 하고 공장도 노래를 하겠지요. 저마다 제 삶결에 맞추어 노래를 하겠지요.


  나무는 푸른숨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는 푸른잎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는 푸른빛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 보셔요. 나무가 베푸는 노래를 맞이해 보셔요. 나무가 나누려는 노래를 받아들여 보셔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 짙푸르게 가지를 뻗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해마다 씨앗을 맺어 천천히 숲을 이루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사람과 벌레와 짐승과 새와 풀 모두하고 사이좋게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예쁜 숲누리를 보살피고 싶습니다. 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온 고을에 맑은 웃음꽃이 피어나도록 이끄는 바람을 불러옵니다. (4345.8.9.나무.ㅎㄲㅅㄱ)

 


―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이와모토 나오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12.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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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맡 만화책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만화책에 푹 빠졌다. 만화책은 밥을 먹고 나서 읽으라 말하지만 듣지 않는다. 한참만에 겨우 밥상맡에 앉지만, 손에 만화책을 쥔다. 밥을 다 먹은 다음 보라고, 보라고, 여러 차례 되풀이하며 말하니 비로소 바로 옆에 만화책을 내려놓는다. (4345.8.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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