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5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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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이란
 [만화책 즐겨읽기 174]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5)》

 


  더운 여름날 자전거를 함께 타던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바람을 쐬며 달리는 자전거수레이지만, 작은아이 얼굴에는 땀이 송알송알 맺힙니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아이를 잠자리에 눕힙니다. 머리에는 기저귀 한 장을 손닦개처럼 깝니다. 날이 워낙 무더워 잠든 아이 머리에도 땀이 흐르며 잠자리가 폭삭 젖습니다.


  작은아이 코끝 땀이 식도록 천천히 부채질을 합니다. 머리카락을 적신 땀을 식히고 손발과 목덜미에 맺힌 땀을 식힙니다. 땀이 식을 만큼 살며시 부채질을 하고 나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다시 부채질을 합니다. 천천히 천천히 땀이 마릅니다. 늦여름 무더위를 받아들이는 아이는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랍니다.


- “너, 그거 아냐?” “뭐가?” “겉은 그래 보여도, 속은 할머니랑 다를 게 없는 겨.” (12쪽)
- “조그만 게 돈 걱정 같은 거 하지 마! 난 린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벌써 10년이나 네 보호자야. 이제 꽤나 베테랑 아니냐! 그 베테랑 님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다! 그리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127∼128쪽)

 


  아침을 차립니다. 저녁을 차립니다. 한국말은 ‘아침’과 ‘저녁’ 두 가지만 때와 밥을 함께 가리킵니다. 한국말 ‘낮’은 때만 가리킬 뿐 밥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낮에 먹는 밥을 ‘점심(點心)’이라는 한자말로 가리킨다지만, 이 낱말을 언제부터 썼을까 아리송합니다.


  어릴 적 이 대목이 궁금해서 둘레 어른들한테 여쭈곤 했지만, 뾰족하다 싶은 대꾸를 듣지 못했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점심’은 한국말이 아닌 줄 생각조차 않을 뿐더러, 이런 말을 언제부터 썼을까 하는 대목은 아예 살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참’이라는 낱말을 곧잘 듣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몸 많이 쓰는 일을 하는 어른들은 ‘참’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새참’이라고도 일컫고, ‘사잇밥’이나 ‘샛밥’이라고도 일컬으며, ‘곁두리’라고도 일컫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침과 저녁은 하루를 열고 닫는 때를 가리키기도 하고, 하루를 열며 집을 나섰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낮에는 집 아닌 일터, 곧 들판이나 멧골에서 밥을 먹기 마련이었으고, 꼭 낮 어느 때라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만큼 ‘참’이나 ‘샛밭’이나 ‘곁두리’ 같은 낱말로 가리킬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혼자 먹으나 둘이 먹으나 만드는 건 똑같고, 예전엔 계속 다이키치가 밥해 줬으니까, 이제는 내가 할게.” (15쪽)
- “그치만 저, 대학 갈지 말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취직을 빨리 하고 싶어서.” “아깝게 왜 그래, 린.” “설마, 다이키치 생각해서 그런 거니?” (121쪽)
- “원래 이런 옛날 집이 아파트보다 더 시원해. 흙벽에다 지붕이 앞으로 나와 있어서, 햇볕을 막아 주거든.” (167∼168쪽)

 

 


  때를 맞추어 밥을 먹는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때를 맞추어 밥을 먹어야 하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 먹고, 배가 안 고플 때에는 안 먹으면 될 노릇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때까지 참아야 하고, 배가 안 고픈데 밥때이니 먹어야 한다면 참 괴로운 노릇이라고 느꼈습니다.


  학교에서는, 또 군대에서는, 또 회사에서는, 시계에 따라 사람이 움직입니다. 사람에 따라 시간을 살피지 않아요. 딱딱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는 때이고, 몇 시가 안 되거나 몇 시를 지나면 일손을 놓습니다. 수업을 하는 50분에만 공부에 파고들고, 날마다 몇 시에 똑같이 일어나 점호를 하고 온갖 것을 합니다. 뒷간은 몇 차례 몇 분 동안 다녀와야 하며, 일할 때에는 수다를 떨지 못하도록 합니다. 학교에서도 수업 때에는 옆짝이랑 말을 섞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떠들지 않기·밥때에 먹기·때맞춰 움직이기, 이 세가지 틀에 맞추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몇 시에 일어나 몇 시에 자야 하고, 주어진 일(숙제)이 날마다 어느 만큼 있으며, 집과 일터(배움터) 사이에서 딴 데로 새거나 곁눈을 팔지 않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언제나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지 않을 때에는, 이를테면 글쟁이나 그림쟁이처럼 ‘남들 자는 때’에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는, ‘남들 일하는 때’에는 곯아떨어져 자거나 바깥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영 못마땅하게 바라보도록 길들이는 사회입니다.


  사내는 부엌을 기웃거리지 않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오늘날 적잖은 사내가 부엌일을 거든다고 하지만, ‘거들기’를 할 뿐, 부엌일을 ‘하지’는 않아요. 사내들은 집 바깥에서 ‘돈벌이’만 하도록 이끌어요. 가시내들은 바깥에서 돈벌이를 해 주어도 좋으나, 집안에서 온갖 집일을 도맡은 다음에 바깥일을 하든 말든 해야 하는 듯 여겨요.


- “난 아직 남자친구 필요 없어. 누구랑 사귀려고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휘말리고, 그러면서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게, 뭐가 재밌는지 잘 모르겠어.” (47쪽)
- “있지, 다이키치는 사귀는 상대를 보고 그 사람한테 실망한 적 없어? 난 코우키가 누구랑 사귄다고 했을 때 엄청 실망했었어. 왜 코우키가 저런 사람이랑 사귀나 싶어서. 그땐 어렸지. 뭐, 지금도 어리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코우키를 좋아했었어. 그런데 그 일 때문에 코우키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 버렸어.” (72∼73쪽)

 

 

 


  삶이란, 시계추로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삶이란, 교과서처럼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다고 느껴요. 삶이란, 톱니바퀴처럼 틀에 맞추어 맞물려 돌아가는 나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이란, 주어진 몫을 다하며 보람을 누리는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삶이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삶이란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 사람답게 사랑하는 나날이라고 느껴요.


  영어를 배우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돈을 벌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대학교에 가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예쁜 몸매나 얼굴을 가꾸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가수가 되거나 연예인이 되거나 운동선수가 되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태어나요. 사람은 오로지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누리려고 태어나요.


- “정말 대학 가고 싶다면 공부 더 열심히 해!” (167쪽)
- “니타니 씨는 어디서 그렇게 일할 힘이 나세요?” “30대는 원래 그렇잖아요. 애가 있든 없든 간에, 아, 전 이제 마흔이 되지만. 소중한 게 있으면 힘이 나요. 다이키치 씨도 그렇죠?” (188∼189쪽)
- ‘다이키치 씨 옷에 콧물 묻혀 버렸다. 다이키치 씨, 좋은 냄새가 났어. 바보, 바보.’ (209쪽)

 


  우니타 유미 님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0)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고등학생이 됩니다. 장가를 가지 않았으면서 어린이를 맡은 ‘다이키치’는 벌써 열 해째 아버지 구실을 하며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습니다. 다이키치를 비롯해 둘레 어른 모두 ‘린’한테 ‘린이 누릴 삶이나 사랑’보다는 ‘여느 사람이 맞물리는 톱니바퀴와 같은 틀’을 바랍니다. 다만, 린이랑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다이키치는 처음 린을 맡을 적부터 ‘톱니바퀴 같은 틀’은 그리 바라지 않았기에, 린이 스스로 하고픈 일을 하며 가고픈 길을 가도록 문을 엽니다. 린은 린 스스로 톱니바퀴에 맞출 뜻이 없고 언제나 스스로 제 삶을 누릴 마음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라 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누가 이리로 가라 해서 가는 길이 아니에요. 스스로 마음으로 느끼기에 하는 일이요, 스스로 마음으로 가고 싶기에 가는 길이에요.


- 그 사람도 알아챌 수 없도록 소중한 말은 가슴속에 묻고서 그 힘으로 다시 나아간다. (212쪽)


  삶은 누구한테나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으니 삶은 누구한테나 아름답습니다. 삶은 어디에서나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일을 누리니 삶은 어디에서나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벌기에 일이 아닙니다. 김을 매기에 일이 아닙니다. 삶을 짓기에 일입니다. 삶을 빚기에 일입니다. 삶을 누리기에 일이에요. 삶을 사랑하기에 일이에요. 만화책에 나오는 다이키치는 ‘돈과 이름을 조금 더 누리는 길’이 아니라 ‘삶과 사랑을 한결 예쁘게 누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린은 ‘돈이나 이름이라는 허울을 벗고, 삶과 사랑이라는 옷을 입으며 걸어갈 길’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야말로 가장 푸른 나이인 ‘푸름이’로 살아갑니다. (4345.8.19.해.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5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10.11.1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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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빨리 읽기

 


  나는 책을 빨리 읽고픈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책을 느리게 읽고픈 마음이 없다. 그저 읽는 책이요, 내 삶에 걸맞게 읽는 책이다. 내 마음이 이끌리거나 내 마음이 닿을 때에는 제아무리 두툼한 책이라 하더라도 훌쩍 읽는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내 마음이 노래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얇은 책이라 하더라도 오래도록 먼지가 쌓이도록 잊는다.


  책은 왜 빨리 읽어야 할까. 책을 빨리 읽으면 무엇이 좋을까.


  베스트셀러를 읽는다고 좋은 책읽기라고 느끼지 않는다. 스테디셀러나 이름있는 책을 읽을 때에도 썩 좋은 책읽기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란 내가 바라는 책을 읽을 때에 책이지, 남들이 이것 읽으라 저것 읽으라 해서 책이 되지 않는다. 내가 마음으로 바라던 책을 누군가 알려줄 수 있으나, 남이 시키거나 잡아끄는 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없다.


  내 몸이 고플 때에 먹는 밥처럼, 내 마음이 고플 때에 읽는 책이다. 내 몸을 아름답게 다스리고 싶어 알맞게 살피어 골고루 밥을 먹듯, 내 마음을 어여삐 돌보고 싶어 차근차근 헤아려 고루고루 책을 읽는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기쁜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좋은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 이뿐 아닐까? 책을 빨리 읽는다든지 더디 읽는다든지 하는 갈래란 덧없다. 책을 많이 읽었다든지 책을 조금 읽었다든지 하는 갈래는 부질없다. 즐겁게 누린 하루라면 즐거운 삶이요, 활짝 웃으며 빛낸 하루라면 활짝 웃으며 빛내는 삶이 된다.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삭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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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들어가다

 


  바다에 간다. 고단한 아버지는 평상에 드러누워 잠든다. 아이들도 그늘에서 눕거나 뒹굴며 쉬다가 어느새 어머니하고 바닷물에 들어간다. 아이들 소리는 없이 옆자리에서 다른 사람들 떠드는 소리로 귀가 따갑기에 문득 잠에서 깬다. 멀리 바라보니 아이 어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물에 들어갔다. 하나는 등에 업고 하나는 앞으로 안았다. 물속에서는 두 아이를 데리고 움직여도 가볍다 할 만하겠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아이 하나를 맡으러 나도 바다로 들어간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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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든 아이

 


  잠든 아이를 무릎에 눕힌다. 한동안 부채질을 하고 어르면서 토닥인다. 깊이 잠들었구나 싶을 때에 평상으로 옮겨 누인다. 이마와 머리칼을 쓸면서 땀이 있는가 살피고, 옷자락 앞뒤를 살살 만지며 땀이 배었나 헤아린다. 땀 기운을 느끼지 않을 때에는 몇 번 살랑살랑 부채질을 하고는 조용히 건넌방으로 간다. 땀 기운을 느낄 때에는 찬찬히 사그라들 때까지 천천히 부채질을 한다. 아이 몸과 내 몸이 닿는 자리는 후끈후끈하며 땀이 밴다.


  읍내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군내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무릎에 눕힌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기에 아이 몸을 손닦개나 긴옷으로 덮는다. 내릴 곳이 다가오면 가방을 짊어지고 어깨에 천가방을 꿴다. 아이가 집에까지 안 깨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걷는다. 가방을 메고 들며 아이를 안은 채 걷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내가 어버이라서 그럴까. 내가 기운이 세다고 느껴서 그럴까. 잘 모른다. 다만, 아이가 새근새근 잘 자면서 아버지 품에 안겨 집에 닿은 다음, 평상에 누여서도 예쁘게 잘 잔 다음 달콤한 꿈을 누리고서 일어나면 맑은 물로 몸을 씻고 하루를 마감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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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에서 물 먹는 어린이

 


  택시를 불러 마을회관 앞에서 잡아타고는 바닷가 나들이를 가던 날,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큰아이는 마을회관 앞에 있는 빨래터로 내려가 낯을 씻고 물을 마신다. 나무백일홍 바알간 꽃잎이 곳곳에 날린다. 꽃잎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고는 잰걸음으로 올라온다. (4345.8.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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